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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하기가 참 어려운 주제 가운데 하나가 종교에 관한 것이다. 특히 한사람이 비신자이고 한사람은 열정적인 신자일때 더욱 그렇다. 나같은 사람은 주변에 종교인이 참 많은데 종교를 가지지 않아서 섣불리 말하기가 정말 힘들다 특히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면 신성모독에 가까운 시선을 감내하기가 힘들어서 그 사람과의 관계조차 서먹해진다. 난 작가의 고뇌를 10분의 1도 이해못하지만 고뇌가 많았을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종교를 가진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일부 극성스럽고 잘못행동하는 종교인때문에 다수의 양심적이고 선량한,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훌륭한 사람들이 욕을 먹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이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일부의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교회내의 시스템, 관행들을 고치려는 노력을 과연 해보았나를 묻고 싶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동안 잘못된 교회의 관행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서 용기있게 말하고 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 헌금의 문제, 목회자의 문제, 부흥회, 그리고 교인의 숫자를 말하는 경쟁적이 숫자놀음에대해서 사심없이 비판하고 있다. 이 부분은 종교인이 아닌 내가 들어도 상상이 가는 잘못된 관행이다. 실질적으로 교회가 부흥하려면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고집과 보수성이 유지된다면 한국교회는 여전히 개혁의 불모지로 남을것이다. 조엘박 목사의 용기있는 비판을 받아들여 한국교회가 진정한,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교회로, 종교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쉽게 말하기 힘든 부분을 제대로 말하고 있다. 난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주일예배등에 참석하는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교회참석을 강요받는 그들에게 일상의 삶의 의미는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그리고 헌금관행(실제로 장로가 되기위해 내는 돈이 얼마이상이다 라는 내용은 여러번 들은적도 있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교회가 참 종교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기는 요원해지는 것 같다. 제대로 읽고, 교회다니는 사람, 그리고 다녔던 사람, 다른 종교인들과 함께 진지한 토론을 하고 싶게끔 만드는 책이다. 평신도를 제대로 교회의 주인으로 세우고, 목회자는 목회활동과 직업활동을 통하여, 교회의 헌금은 목회자의 활동비가 아니라 진정한 헌금으로 다양하게 쓰여야 하는등 다양한 개혁대안을 내놓고 있다. 올초부터 소망교회, 고소영등 이명박대통령과 관련하여, 종교편향이니 뭐니해서 문제가 많았다. 비단 교회다니는 정치인의 문제는 아닐듯 싶다. 그동안 교회가 만들어온 잘못된 교회의 관행과 인식과, 행태가 문제의 정점에서 사람으로 대변된다고 본다. 한국교회가 제대로 개혁되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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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글을 읽으니까 그동안 가져왔던 교회의 잘못된 것들이 하나둘씩 드러나는 것 같다. 나는 교회인도 아니고 교회의 편견도 없는 사람이지만 자명한 것은 한국사회의 교회들을 시민의 눈으로 보았을때 잘못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거다. 그런점에서 이책은 교회의 몸담고 있는 작가가 건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와 종교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문화개혁을 바라는 사람에게 교회의 필요개혁을 촉구하는데 시발점이 되어줄 것 같다.
나도 중학교때 교회에 다니는 친구를 따라 몇번 가본 적이 있었다. 처음 간 나에게 이름을 호명해주고 사람들이 박수를 받으면서 교회의 좋은점이 이런거구나! 했었다. 또 때마다 가는 행사들과 스터디들은 교회지만 공동체들이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좋은모델들을 가지고 있어 나도 교회에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상은 긍정적인 편이었다.
물론, 십일조라든지, 과도한 홍보, 헌금을 보자면 예외적인 것들이 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 정교분리, 헌금의 사용, 목회세습, 숫자놀음등 가운데 일부분이기도 하고 현실에서 교회인이 아니라도 느낄수 있는 것들이 있었고 책에서 그것에 관한 구체적인 것들을 볼 수 있어 교회에 대해 좀더 알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내 친구 한명은 월급을 십일조로 내고 있었다. 당연히 강압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활형편에 비해 굉장히 많은 것이 었다. "너 십일조를 왜 해? 적당히 해!" 라는 내 물음에 "하는만큼 나한테 행운을 가져다 주시는 거야.!" 건실한 내친구는 이말과 함께 힘든 십일조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런 십일조는 반대이다. 십일조가 어떤 목적으로 태어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월급의 얼마는 내라는 것은 정해두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생소한 것이고 거부감이 있다. 헌금이라는 것은 조금씩 내가 낼 수 있는 만큼 내는 자율화헌금, 무기명헌금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바꾸어야 한다고 견지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교회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결과는 1위 성전, 2위 교회건물,3위 목사,4위 십자가,5위 찬송가,6위 예배로 나타났다.(142p) 교회인들이 원하는 것은 큰 성전과 교회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이 편해지는 교회, 웃음이 가득한 교회, 기도로 마음을 열어 아픈 것들을 쏟아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희망을 가지고 떠나는 교회를 원하는 것이 아닌가. 교회를 책임을 맡고 있고 있는 사람도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이제는 자신에게 자문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는 왜 교회를 다니는가? 우리들이 원하는 교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책에서 말하는 것 처럼 책임을 지적할 때는 확대하려고 하고, 권한을 이야기할때는 축소하려고 하는 이같은 교회는 되지 말아야 한다.
교인들이 잘못된 생각과 행동은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교인들의 숫자가 목회들에 비해 훨씬 많기 때문에 잘못을 지적하기도, 설득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81p) 한국교회는 토론문화가 부재합니다.(21p) 민주주의가 꽃 치우자면 두가지 전제가 성립되어야 한다. 하나는 다양성의 인정이고 다른하나는 회의 결과에 전적인 동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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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31일 기준으로 4만3443개였던 전국 교회수는 2007년 5만2905개로 늘어 8년간 21.78% 증가했다. 2003년을 제외하고는 연평균 1200개 안팎의 성장세다. (국민일보 2008.12.10)
이 책의 저자는 호주 애들레이드 한국인 교회에서 2005년부터 목회하고 있는 조엘 박 목사님이시다. 그간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교회 비판' , '한국교회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라는 제목의 두권의 책을 통해 헌금ㆍ목회세습ㆍ정교분리ㆍ예배출석 강요,교인수 부풀리기,기복주의와 교회 성장을 위한 부흥회 등 우리나라의 교회에 당면해 있는 민감한 문제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또한 문제해결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 책은 '사회를 통해 한국사회를 본다'와 '성경을 통해 한국교회를 본다' 이렇게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어 문제제기와 해결방안을 내놓고 있다. 첫번째 파트인 '사회를 통해 한국사회를 본다'에서의 핵심을 5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는데 그 첫번째는 '정교분리'이다. 그는 교회는 정치 참여를 하지 않아야 하지만 교인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인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치에 참여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인 헌금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후 '헌금은 자율화'되어야 하며 명단은 비공개하되 헌금 집행은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의 직간접적인 헌금의 강요행위는 첫째로, 교인들이 헌금하도록 하는 여러가지 행태의 직간접적인 강요를 둘째는 감정과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경쟁적으로 작정현금을 내게 만드는 것과 셋째로는 직분을 전제로 헌금하게 하는 행위를 신방감사헌금이나 절기헌금을 필두로 건축,월정, 연말감사, 구제헌금등 각종의 헌금을 위한 헌금 등 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세번째는 목사가 은퇴하며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목회 세습’에 대해 “한국 교회의 개혁 대상 1호”라고 지목하며 우리나라의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심지어 교회 헌법에 세습 금지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네번째로는 ’목사도 직업을 가져야 하는데 작은 교회의 경우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갖게 하면 재정 자립과 함께 교인들의 교회 업무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고 있다. 또 주중에 올리는 예배 수를 줄이면서 주중 예배는 의무가 아닌 선별적으로 교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고, 큰 건물에다 교인수가 많은 교회를 선호하는 교인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의 근거로는 교회의 주체는 평신도이며, 이들이 교회를 세우고 부패와 타락을 미연에 방지한다면서 목회자 중심으로 폐쇄된 한국 교회는 목회자가 기도와 설교를 맡고 평신도는 교회 행정에 참여하는 식으로 개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마지막 다섯번째로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에만 주력하는 세태를 경계하면서 한국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한 것은 소위 '숫자놀음'을 했기 때문이므로 가족 중심의 작은 교회로 변해야 산다는주장이다.
두번째 파트에서는 더이상 부흥에만 현혹되어서는 안되며 예배출석도 자율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성경으로의 회귀이다. 세속화된 교회가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적 구조로 회귀하는 것뿐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세속적인 성장에 눈이 멀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과오를 저질렀는데 성경의 진리를 외면하고 전통과 세속화된 가치관, 그리고 기복주의 사상을 성경에 적절히 가미하여 구조적으로 교회와 교인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한국교회의 잘못된 관행과 기득권이 버려야 할 여러 악습들에 대해 과감한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그래야만 그 옛날 우리 민족과 사회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참 자화상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개신교가 성장에만 치중한 탓에 개신교인은 줄고 가톨릭 인구는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형 교회수가 늘면서 비슷한 시기 기독교인 수가 줄었다면 더이상 '교회 개척이 곧 기독교인 증가'란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 소명에 따른 개척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내는 만큼 교단 중심의 질서있고 섬세한 개척 정책 수립이 절실하다 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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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으로서 느끼는 신앙생활의 부담감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는 성경의 기준대로 살기에는 부족한 나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나머지는 독특한 한국적 문화로 토착화된 교회의 시스템에 대한 부담감도 여전히 만만치만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다닐 교회를 정하기가 정말로 어렵다. 가까운 교회에 아무 생각 없이 등록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짧지 않은 시간을 탐색한 후에 교회공동체에 등록해야 한다는 것은 현재 교회의 상태가 원래 성경에서 의도한 바와 같이 균일한 함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많은 선량한 목회자가 있는 반면에 교회인지 기업인지 분간이 안 되는 교회도 있다. 직장생활보다 더 힘들게 다녀야 하는 교회도 있다. 이 모든 것의 문제는 어디서부터 비롯 되었는가? 저자는 감히 교회의 시스템의 문제라고 했다. 좀 식상한 말이긴 하지만 결국은 교회의 리더인 목회자들의 기득권에 대한 포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신의 의도라고 교회구성원들에게 강요하면서, 물질적 안정추구, 명예와 권력욕 추구 등 이미 세상적인 가치관들을 가지고 교회 리더인 목회자가 교회를 비정상적으로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특성상,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분파주의, 카리스마적인 리더를 신격화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지 못하며, 신본주의를 내세운 독재에 가까운 리더십 등 많은 약한 고리들이 별로 반갑지 않은 이기적인 기독교적 신앙생활을 양산해 난 것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본인이 목회자이면서 이런 한국교회의 어두운 면을 처절하게 파헤쳤다. 정치적 목회자, 강요되는 헌금, 교회 목회자 자리의 세습,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신도수의 왜곡 등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목회자라면 할 수 없는 많을 일들을 고발하고 있다. 이런 교회의 모습을 비교인들이 볼 때 정치판과 어떤 차이를 느끼겠는가 생각해 본다. 성도들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어려운 일들을 회피하고 자기의 입맛 대로된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여러 가지 행정의 일에서 직장에서와 같은 역량을 발휘하며 교회의 부패에 대해서 마땅히 바른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프로테스탄트는 예전의 로마교회의 부패에 막닥드려서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고자 하는 양심 있는 교회의 리더로부터 시작된 교회 자성운동이었다. 결국은 하나되지 못했지만 그 당시 목숨을 건 교회의 개혁은 지금의 교회를 만들어 내었다. 이제는 만연한 지극히 인간적인 교회의 모습을 성경에서 근거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생명력 있는 교회로 한 단계 나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래야만 지금의 세대와 다음의 세대에게 버림받아서 사회의 정의를 밝히기는커녕 스스로 버리워진 맛을 잃은 소금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제자리를 찾기 바라는 저자의 통한의 자기 고백이 하나님이 말씀하는 경고로 듣고 잘못된 것으로부터 자신을 돌이키는 용기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지금이 때가 아닌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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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교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통계적인 수치에서 우리나라 기독교 신자의 수가 줄었다. 이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한국 기독교가 전투적인 전도활동을 하는 것에 비하면 의아한 결과이다.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은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목회자가 저자이다. 지금은 국내에 있지 않고, 호주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가 한국교회 내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을 때는 쉽게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외국에 나가 있는 것을 계기로 우리나라 목회의 전반적인 부분을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전체를 객관적으로 바로 볼 수 있었다는 것과, 외국과 우리나라 목회의 차이점에서 오는 괴리감 등으로 저자의 눈에 확연히 들어 왔으리라 생각한다. 생각으로만 머물지 않고, 직접 한국교회의 문제를 피력하는 것은 현직 목회자로서 대단한 고통이었을 것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것처럼 한국교회가 양적인 성장을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존재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교세를 넓히면서 교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간 발생할 수 있는 인수, 합병과 같은 현상이 생기기도 하고, 교회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대형교회만이 살아남는 ‘시장의 원리’가 작용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교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회 세습’의 문제 또한 간과하기 힘든 부분이다. 대형교회에 다니는 것을 벼슬로 아는 사람까지 있다고 하니 별천지가 아닐 수가 없다. 목회자가 별도의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의 정서상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자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요, 목회자도 한 사람의 연약한 인간으로 보자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면이 없진 않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한국교회의 상황들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잘못된 점은 분명히 잘못된 점이다. 이는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으로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우려되는 것은 묵묵히 성경을 묵상하며 성경대로 행하는 교회와 목회자, 성도마저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색안경을 끼고 있다면 모든 것이 시꺼멓게 보일 수 밖에 없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편향되지 않은 시선과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는 안목도 분명히 필요하다. 성경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실한 .교회와 목회자, 성도를 찾는 노력과 그들을 본받기 위한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 잘못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신앙으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문제는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문제를 용기 있게 지적하는 것과 그 용기를 수용하는 자세 일 것이다. 어느 시대에서나 충고와 조언은 버릴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현직 목회자, 성도, 비기독교인 등의 충고와 조언을 겸허하게 받아 들이고 걸어 온 길을 뒤돌아 보고,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환골탈태하는 한국교회가 될 것임을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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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에 대해 위기가 왔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물론 그렇게 보여지기까지에는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종교라는 민감함 때문에라도 그것이 공론의 대상이 되어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는 늘 한계가 느껴지곤 했다. 이미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교회 비판>을 통해 한국교회에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했던 조엘 박 목사는 이 책 <한국교회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를 통해 이제는 한국교회가 부패와 타락에서 벗어나야 하며, 목회자와 신도 모두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 을 외치고 있다.
"지독하리만큼 한국교회를 사랑한다."
"한국교회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비신자는 하나도 없을 정도로 한국교회는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책은 현재 시점의 개신교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고 있는듯하다. 초심을 잃고 자본주의의 생태에 익숙해져버린 한국교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보면서 씁쓸한 부분을 감출수가 없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들이 단순히 비판만으로 해결되어질지에는 의문이다. 교회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나 역시도 그러한 구조적 문제점들은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실제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 역시 저자가 지적한 헌금문제나 교회건물 건축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어느 정도는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비판은 오히려 반대급부를 양산하지 않을까란 우려가 든다. 예를 들어 1장에서 제기한 일부 정치목사들의 정치참여를 이유로 개신교 전체를 비판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기에 그들에 대한 비판은 그들 개개인에 대한 비판이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요되는 헌금의 문제는 어쩌면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며 또한 교회의 존립에 최우선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문제이기에 계속되는 비판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문제제기를 통해 공론화되어 건강한 토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 대안중의 하나로 미리 1년분의 헌금을 스스로 정하고 그에 맞게 예산을 집행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자신이 속한 호주 교회의 헌금 시스템에 대해 언급하는데 우리의 사고방식에 비춰볼 때 그것 역시 그리 현실적인 방법이 되진 못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저자의 작은 교회로 돌아가자는 주장 역시 현실적으로는 어려워 보이기만 하다. 또한 작은 교회가 교회 자체의 목적과 본질에 충실하다는 견해는 저자의 주관적 의견이 짙어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교회는 짧은 시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왔고, 그 모든 바탕에는 성경의 가르침이 있었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 역시도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저자의 비판에는 힘이 느껴진다. 하지만 비판적 문제제기와는 달리 그에 따르는 저자의 대안은 힘이 부쳐 보인다. 그만큼 많은 대화가 요구되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것이 그간 무조건적으로 교세확장에만 열을 올려왔던 목회자와 신도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이가 한번쯤 숨을 고르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봐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저자의 메세지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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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에 대한 선입견도,종교에 관한 깊은 생각도 진지하게 해본적이 없다.
하지만 마음에 평안을 위해..정말 단순히 순수한 의도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흔히 불리우는 초신자 인것이다. 이제 막 시작한 햇병아리 신앙인이 조금은 위험수위의 책을 읽은것은 아닌지...의문이 든다. 정말 말그대로 이책은 나같은 초신자나 신앙심이 갚은사람도 간혹 반발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책이다. 한국교회의 강력한 솔루션으로 나온 '맞아죽을 각오로 쓴 한국교회 비판'이란 책의 후속편으로 나온 이책은,, 아마도 읽은 독자의 가슴에 새로운 반발심을 불러 일으키게 될지도 모른다. 전편이 비판 중심의 책이고 이책은 거기에 따른 대안을 제시했다는 작가의 말이 난 조금 의아스럽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위의 비판이 적나라하게 허물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에 종교를 갖기전엔 기독교나 교회자체를 조금은 색안경을 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순수한 교회도 있지만 한국사회에 범람하는 이단들의 활동이 너무도 활성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사노라면 누구나 만나게 되는 전도인들도 우리의 색안경적인 시각에 한몫을 하고 있지 않나..생각해본다. 이책은 크게 사회를 통해본 한국교회와, 성경을 통해본 한국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어쩌면 절실한 기독교인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같은 초신자는 생각에 커다란 혼란이 올것이다. 기존의 교회에서 접했던 종교적인 색채와 성격이 이책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정교분리의 실천을 주장하고 있는 작가도 알고보면 충실한 목사님이다. 기독교 정당의 창당은 과연 옳바른 것인지..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목사가 국회로 가서 편협한 정치로 욕을먹고 있는게 현실임을 감안해보면 조금은 맞장구를 치게된다. 또한 가장 민강한 부분인 헌금에 대해서도 논하는데.. 기존에 내가 교회에서 늘 들어왔던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른점이 내마음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어느말이 진실인지 판가름하기란 쉽지않은 선택인것 같다. 헌금자의 공개로 인한 신도들의 부담이나 일천번제 헌금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엔 나도 개인적으로 동감이다. 헌금은 마음으로 드리는 일종의 제물인데..우리한국교회는 실제적으로 강요나 눈치를 봐서 내는 경우도 없지않으니 말이다. 교회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집사나 전도사라는 직급에 따라 내야만 하는 헌금도 있는듯하다. 이런 직분을 팔아먹는 행위를 철른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말엔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도 싶다. 헌금에 대한 올바른 교육으로 사람에게 보이는것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되도록 교육을 해야한다고 한다. 교회에 대해 좀더 깊이 들여다 보면 목회도 세습되는 부분을 볼수있다. 한국교회 개혁 1순위로 목회의 세습을 들정도로 우리 한국교회에 그 뿌리가 깊은듯하다. 목회세습은 한국교회 분열의 불씨가 된다고 하니...초신자인 나조차도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닌것 같다. 또한 개척교회나 큰교회나 교인수를 중요시 하는 것은 없어져야 할 마음가짐인것 같다. 교인수가 곧바로 헌금과 직결되는 문제이니 아무래도 교회재정상 쉽게 포기할 일은 아닐것이다.하지만 종교적인 본질을 고려해볼때 반드시 없어져야 할 그릇된 생각이다. 우리가 교회는 꼭주말이면 가는것으로 알고있지만,실제로는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작가의 주장이 어쩌면 정말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교는 마음의 문제지..강요는 아니라는 본연의 의미를 말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아닐까? 성경적으로 볼때 진정 신자들이 나아가고 지향해 나가야 할부분이 무엇인지,,, 좀더 진지하게 시간을 두고 생각을 정립할 필요가 있는것 같다. 근본적인 부분의 종교는 무엇인지,본연의 의미로 돌아가 순수한 생각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할것이다. 이책은 정말 위험한 책이다. 다르게 해석하면 반향심을 불러올만큼 한국교회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괜한 색안경적인 시각이 아닌 작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읽어야 할책인것 같다. 한국교회를 제대로 지키기 위해 반드시 읽고 되짚어 볼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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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이 책의 저자가 쓴 '카푸치노 레슨'을 읽었다. 많은 부분에 공감을 하면서 밑줄을 쳐가며 읽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적은 분량이었지만 적지 않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그런 기대감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교회를 너무 몰랐던 것일까? 저자가 쓴 '맞아 죽을 각오로 쓴 한국교회 비판'을 읽지 않아서 그런지 시작부터 보여지는 한국교회의 현실이라고 하는 내용들이 부끄러운 차원을 넘어서 불쾌하기까지 했다. 어떤 경우는 '정말 이런 일이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나'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했다. .
'헌금, 자율화 되어야 된다'에 보면 부흥회 때 헌금강요에도 불구하고 헌금을 하지 않는 장로들을 향해 '장로님 째째째'를 부른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노래는 무엇이며, 어떤 교회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고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혹시 이 책을 초신자나 불신자가 읽을 경우 '한국 교회의 대부분이 이렇구나'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죄는 누룩과 같이 커지고 퍼져가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저자는 소수의 교회에서 자행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알고, 경계해야 할 일이기에 언급했던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저자가 침소봉대(작은 일을 크게 불리어 떠벌림)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럴지라도 겸허한 마음으로 끝까지 책을 읽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들도 있었고, 미처 몰랐던 부분들, 당연시하고 있었던 일인데 고쳐야 할 부분들도 발견하였다. 그런데 저자는 이번 책에서 한국교회의 비판보다는, 대안을 제시한다고 책의 서두에서 밝혔는데 내가 볼 때는 특별한 대안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대안을 제시할 때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목회자나 교회의 언급이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 저자는 목회자에 대한 부분에서 저자 자신을 언급하며 바람직한 모습을 이야기했고, 평신도가 교회의 주체가 되어야한다면서 저자가 담임하고 있는 호주교회의 예를 들었다. 그 부분을 확실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지도 않았고, 없는 얘기를 지어내어 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은 비판적인 이야기 속에서 언급되었던 이 두 부분이 다른 어떤 것보다 내 머리에 많이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일부러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저자 자신과 저자가 담임하는 호주교회는 참 목회자요 참 교회라고 자연스럽게 생각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도 찾아보려면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전부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라도 본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텐데......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