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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라 이불을 움켜줬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허나 충분히 낯익은 한기가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수면 상태에서 어물쩍거리던 뇌수가 기억의 달력을 넘기기 시작했고 그보다 먼저 코끝이 가을 냄새를 감지해냈다. 한낮엔 보양식이라도 끓이는 양 오지게 육수를 빼더니 얼마간의 시차로 이렇게 차가운 애무로 몸을 떨게 한다.
모래내 천변 오동가지에
맞댄 두 꽁무니를 포갠 두 날개로 가리고 사랑을 나누는 저녁 매미
단 하루 단 한사람 단 한번의 인생을 용서하며 제 노래에 제 귀가 타들어가며
벗은 옷자락을 걸어놓은 팔월도 저문 그믐
멀리 북북서진의 천둥소리
- '처서' 전문(P. 37)
그러고 보니 이때쯤이면 실컷 울던 매미소리를 듣지 못했다. 생의 단 한번의 사랑을 나누기엔 이 도시의 가로수가 형편없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 챈 걸까. 모래내 오동나무처럼 안락한 곳에서 꽁무니를 맞대고 제 귀가 타들어가도록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단 한번의 사랑으로 그간의 생을 서로 이해하고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위로하는 매미의 울음소리. 애처롭기보다는 너무나 에로틱하다.
첫 매미소리를 동네 이발소에서 들었다. '번번이 두부와 부두 사이에서, 시치미와 시금치 사이에서 망설이다 엄마 부두 부쳐준다더니 왜 시금치를 떼는 거야('통속' 부분 P. 52)' 식의 서툰 언변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무렵이었다. 양쪽 팔걸이에 나무판자를 올려놓으면 나는 신발 벗고 올라가 판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눈을 감았다. 잘린 머리카락이 들어가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거울로 이발사 아저씨와 눈이 맞닥뜨리는 일이 유쾌하지 않았다. 어서 내려가기만 기다리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 묘한 기기로 내 머리칼을 밀기 시작하면서부터 음악 감상에 심취한 이의 그것을 닮아갔다. 매미울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긴 여름날이 자신 없던 매미 한 마리가 내 귓속으로 들어간 게 분명했다.
그 매미는 가을이 되어도 죽지 않고 위협을 느낄 때만 간간이 자기의 존재를 알려왔다. 머리통을 얻어맞을 때도 매미는 대신 울어 주었다. 혹시, 매미는 생에 단 한번뿐일 하루를 맞이하지 못한 억울함으로 내 속으로 들어온 건 아닐까? 호시탐탐 그 하루의 한번을 노리고 있진 않을까? 그리하여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 불후의 입술 /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을 맞아 '허공을 키질하는 / 바야흐로 바람 한자락( '와락' 부분 P. 17)'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죽어가는 감나무의 감은 달다 죽어가는 감나무는 감잎도 감꽃도 애기감도 죄다 놓아버리고 헐겁게 겨우 달랑 감 몇꼭지만을 매달고 있다
- '죽음의 방식' 부분(P. 86)
그렇다. 매미는 죽기 위해 달아오르고 있었다. 죽어가는 감나무처럼 버릴 것이라고는 이제 달디 단 감 몇꼭지, 그나마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매미여, 어서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게를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旨)를 올리는 소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 정호승 시, ‘그리운 부석사’ 전문
화들짝 놀랐다. 그 매미는 바로, 또 다른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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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미묘한 제목이다. 와락. 제목만 보고 떠오른 것은 ‘와락 안다’ 혹은 ‘와락 안기다’ 정도였다. 물론 나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시집의 해설자 권혁웅도 ‘와락’과 어울리는 동사는 ‘껴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와락’과 어울리는 말은 ‘(눈물을) 떨구다’도 있다. 앗, 이건 몰랐군. 그러고 보니 ‘와락 울음을 터뜨리다’는 식의 표현을 쓰기는 한다. 음, 내가 미숙했다. 그렇다면 이외에 또 어떤 말과 잘 어울릴까. ‘와락 ~하다’.
시는 낱말들의 모음이다. 그것도 최소한의 분량과 최선의 구성, 배열을 뽐내는 것이 이 장르의 특기 아니던가. 단어는 단 하나만으로도 의미전달이 가능하지만 대개 다른 단어와 짝을 맞추거나 호응을 이룬다. 즉, 단어끼리 소통한다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다른 단어들과의 관계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들이 있다. 한국어에서는 관형사와 부사가 그에 해당한다. 이들은 명사를 꾸미거나 동사를 수식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따라서 스스로는 항상 들러리일 수밖에 없다. 정끝별은 그런 소수자들을 시의 전면에 내세웠다.
와락, 도랑도랑, 아슬아슬, 시시각각, 앗, 순식간 같은 말들. 이들은 문장에서, 글에서 어떤 식으로 존재할까. 어쩌면 이 시집은 단역이 주연이 되는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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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 알라딘 중고서점을 겨울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마, 등불축제를 보러 갔다가...
지난 주말 아이들과 인사동에 들러 맛있는 점심도 먹고, 필요한 서예용품도 구입한후... 들렀던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시집들.. 20대초반에 많이 읽었던 시들을 왜이리 많이 구입했는지 올가을에 있을 전시회에 필요한 글을 찾아보기 위해서 ,... 털털 털었다. 딸들까지 한몫을 하여 거금을....
와락
반 평도 채 못되는 네 살갗 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불후의 입술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 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자락
세상의 등뼈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된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한번 읽어 이해가 가는 것이 아니어 읽고 또 읽어야 마음에 자리잡는 것이 시란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