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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시가 동등하게 서로 대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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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 전집으로 유명한 저자의 슈베르트 입문(저자의 고백에 의하면)은 뜻밖의 계기로 이루어진다. 2005년 루체른 음악제에서 하겐 4중주단과 첼리스트 하인리히 쉬프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현악5중주 D.956을 듣고 저자가 말한 슈베르트에 대한 '선입견'은 사라졌다.   보통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틀' (예를 들어 나이브하고 소녀 취향의 멜로디를 작곡하였다라든가, 감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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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 전집으로 유명한 저자의 슈베르트 입문(저자의 고백에 의하면)은 뜻밖의 계기로 이루어진다. 2005년 루체른 음악제에서 하겐 4중주단과 첼리스트 하인리히 쉬프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현악5중주 D.956을 듣고 저자가 말한 슈베르트에 대한 '선입견'은 사라졌다.

 

보통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틀' (예를 들어 나이브하고 소녀 취향의 멜로디를 작곡하였다라든가, 감정이 여과되지 않고 나와 음울하고 미성숙한 느낌을 준다)과 거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저자도 이해했던 슈베르트였는데, 슈베르트의 인생과 음악의 본질을 마주한 순간, 저자는 그가 평생 올인하였던 말러의 우주의 소리를 담은 치명적인 음악보다도 슈베르트의 음악이 더한 '인생의 음악' 소리를 지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래서 '슈베르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음울하고 어린 아이 같았던 슈베르트만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그와 반대편에 있는 전인적 인간 슈베르트도 있으며 사실 이 얼핏 보이지 않는 후자의 모습이 진짜 슈베르트임을 발견한다. 그 슈베르트가 그의 음악기호에 재치발랄하게 혹은 은유적으로 담아낸 것은, 보이는 세계를 지배하는 이성의 반대편에 숨어있는 감성이라는 거대한 소우주였다. 그의 음악은 그의 평생에 걸친 고뇌와 비통함을 담아낸 은유였으며 저자는 음악 이면에 숨겨진 그의 인생의 비밀을 파헤친다.

 

'천상의 방랑자'는 바로 저자가 바라보고 풀어낸 슈베르트의 기록이다. 사실 가볍게 자신의 감상기를 나누었다고 하지만 절대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다. 저자 입장에서는 '말러 전집'과 비교되기 때문에 '천상의 방랑자'를 스스로 '가볍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겠다. - 아닌 게 아니라 책 속에선 말러와 슈베르트를 비교하는 내용 혹은 말러를 기준으로 슈베르트를 파헤친다거나, 슈베르트의 연장선에서 말러를 다룬 흔적이 보인다. -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주관적인 발견을 보는 것이 익숙치 않은 독자들도 있기 마련이므로, 그러한 독자들에게 미리 이실직고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일단 '천상의 방랑자'는 인문학을 다룬 이야기이다. 괴테를 중심으로 낭만파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슈베르트 덕분에,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다루면 그가 음악과 가치를 등치시켰던 '시'와 그가 가사를 빌린 '고전소설'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원역인 겨울 여행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살짝 의역한 '겨울나그네'가 연가곡집<겨울나그네(die Winterreise) D.911>이 주는 느낌에 더 어울린다고 말했던 이 '겨울나그네' 시를 지은 시인은 빌헬름 뮐러로 이 시를 짓고 나서 요절한, 상당히 비통하고 분열적 성향이 있는 시인이었다. 빌헬름 뮐러의 따끈따끈한 시를 받고 슈베르트도 이 곡을 작곡한 후 바로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왠지 이 곡을 두고도 음악 스릴러를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물론 이 곡은 스릴러와 같은 논리적 구조의 신비함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음울함의 그림자가 더 크다. - 근데 가사만 보면 외향적 소설보다는 만년 내향적 서정시 영역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슈베르트가 그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향적인 우울의 감정을 거울 스릴러를 보는 듯한 걸출한 음악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겨울 서정 비극을 넘어선 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는 웬만한 스릴러 소설보다 더 가슴을 오싹하게 만든다. 그것은 괴테의 시에 의한 슈베르트의 대표적 가곡 '마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개 슈베르트의 가곡의 가사는 그가 존경해 마지 않았던 괴테에게 빚을 졌다. 막상 괴테는 슈베르트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가 자신의 시에 작곡하는 것을 탐탁치않게 여겼다고 하지만 말이다. 슈베르트가 음악으로 옮긴 '제우스가 사랑한 미소년의 가니메데 이야기'는 신화이지만 괴테가 자신의 자기애적 시선으로 각색한 것이고, 저 유명한 '미뇽의 노래'들은 괴테의 8부작 '빌헬름 마이스터'에 나오는 등장인물 미뇽이 한 말(혹은 연극 대사 혹은 시)에 의한 가사이다. 미뇽이 부르는 '그대는 아는가 레몬꽃 피는 나라를',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참다운 존재가 될 때까지'...는 슈베르트 말고도 다른 작곡가들도 이 가사에 노래를 붙였다. 같은 소설에서 나오는 '하프타는 노인'의 일화에서는, 저자의 표현에 내 표현을 첨가하면, 한국 막장 드라마의 인류 보편적 특성을 볼 수 있다.

 

고전 시인데 우리가 늘상 알고 있는 '어린이용 멜로디'가 있다. 대표적으로 저 유명한 '들장미'이다. 괴테의 이 시가 사실은 어떤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 지 그 수수께끼를 슈베르트는 어떻게 풀어냈는지 책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근데 그 위험천만의 내용을 '빈 소년 합창단'의 소년 솔리스트가 불렀다는 사실은 애당초 그 곡을 그렇게 영악하도록 순수하게 지어낸 슈베르트의 아이러니가 연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인 '위험'과 '순수'를 그 노래 속에 동시에 양립시킨 것은 '음울한 어린 아이와 같은' 슈베르트에게서 나올 수 있는 '재치'가 아니다. 그것은 고마고마한 인생들이 가진 생각을 우롱하고 뒤엎는 '반전'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단조의 노래들로 이루어진 연가곡집 '겨울나그네'에서 장조로 화하는 순간이 사실은 무엇을 그려내는 지 알게 되면, 이것이 음악인지 동영상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될 정도로 의식이 묘해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멀리만 느껴졌던 고전과 클래식 음악이 우리의 삶의 일부이자 우리의 마음을 읽어주는 '작가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술가라는 말이 너무 거리가 멀리 느껴질 것 같아 '작가들'이라는 말로 해 보았다) 

 

인문 고전에서 보이는 삶의 고뇌와 분열적 환상과 착란의 천착과 감정의 울림을 슈베르트는 매우 정확히 잘 잡아냈다. 비통함 속에서 순간적 흥분으로 감정이 용솟음칠 때, 시로만 보면 놓칠 수 있는 그것을 슈베르트는 그의 음악 속에서 그 변화의 양상을 은근하지만 확연한, 절묘한 차이를 가진 음율로 드러낸다. 즉 음악 속에서 등장인물의 외침을 실체적인 외침으로 들을 수 있다고나 할까. 글로 보면 상상에 의존하게 되는 그 내용을 그의 가곡이 천재의 악상으로 포착하여 더더욱 그 시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잡아낼 수 있도록 해 준다. - 저자는 이 부분을 독자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매우 구체적으로 정리해준다. 슈베르트와 생일이 같기 때문인지 슈베르트의 삶과 예술성을 지배한 그 미묘한 양가적 감성(소멸 욕구 vs 희망 갈구 ; 희망이 없어서 스스로 자멸하는데 자멸이라는 행위를 하는 이유는 희망을 의식해 내가 자멸하면 희망도 나에게 양보하고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바램에서이다 / 자학 vs 사랑의 대상 찾기 ; 자신을 사랑해주는 대상이 없어 그것을 반영해 남한테 보여주듯 스스로를 자학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 자학하는 행위는 사실 자신이 자학을 안 할 수 있도록 자신을 사랑해주는 대상이 나타나길 바라는 것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 미안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바램이 절대 통하지 않는다. 엄마한테 떼쓰는 어린애의 행동이라고 치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러한 성향의 인물들은 이런 양가적 모순이 창작 동력이 되는 예술에서 안식을 찾고, 재능이 있다면 승화시켜 자신의 소망을 이루게 된다. 반면 상담쪽에선 이런 사람을 미성숙하다고 규정하고 치료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적 재능이 없거나 예술에 의지할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은 결국 현실이 원하는 모습 혹은 사회에 적응이 되기 위한 선택을 한다)은 잘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심상으로만 그려지고 언어로 정리되지 않았던 나에게 이 책은 그것을 언어로 기록해 저장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은 책에서 다루는 음악도 시디에 수록하여 슈베르트가 포착한 음악을 우리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 준다. 특히 챕터 마다 수록된 그림들은 슈베르트 음악의 느낌과 정말 많이 닮았다. 특히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 속에서 슈베르트의 음악이 전달하는 인생의 비통함과 안개와 같은 감정의 착란을 시각적으로 보는 것 같다. 이러한 매칭은 저자 자신이 가진 대단한 안목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슈베르트 음악과 (혹은 인생과) 프리드리히 그림의 조화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편, 가곡에 있어서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카프리치오'가 다루었던 명제처럼 가곡에서도 시가 먼저냐 음악이 먼저냐 하는 우선순위 정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슈만과 브람스, 말러와 같은 작곡가들은 음악을 더 우선시해 가사를 음악에 맞추고 바그너와 볼프와 같은 작곡가들은 가사를 우선시해 마치 낭독처럼 들리게 하거나 음악을 맞추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슈베르트는 음악과 시를 동등하게 다룬 유일한 음악가로 간주된다. 시는 슈베르트의 천재적 악상 속에서 그 언어 안에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선율을 시공간 안에서 확인받는다.

 

아직 전반부 반만 읽고 쓴 리뷰라 아직 보충해야 할 것이 많다. 지금 쓰지 않으면 잊어버릴까봐 일단 남겨둔다. 먼저 저자가 우리에게도 맛볼 수 있도록 허락한 그의 발견과 통찰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 저자는 그것에 '파격'이라는 재미를 부여해서, 해박한 지식에 의한 정보제공적 일면과 저자 개인적 심상을 엿볼 수 있는 감성적인 글쓰기로 독자에게 책 읽는 기쁨을 덧댄다. 사실 천상의 방랑자를 2009년에 읽었는데 리뷰를 쓰기 위하여 다시 읽고 있다. 당시엔 리뷰를 쓰지 않고 어록만 남겼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영감받은 이야기, 특히 미뇽의 이야기를 내 소설에 옮겼다. 사실 미뇽의 노래라고 구체적으로 장면을 설정해 소설에 옮기기 전에 이미 그 소설 자체가 '미뇽의 이야기'였다. 거기에 미뇽의 노래를 인용했으니 더더욱 그 애절한 느낌이 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고등학교때 좋아했던 미뇽의 노래를 지금 다시 발견하게 해 준 저자에게 다시금 고마움을 느꼈다. 난 리뷰를 쓰는 것 보다는 영감받은 내용을 이야기 창작으로 풀어내 그 읽은 내용을 말하는 것이 더 쉽다. 사실 나에게 내가 읽는 책들이란 모두 내가 읽었던 것을 재편집하고 재구성하게 하는 아이디어 창고들이다. 남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보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끌어들어모아 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더 익숙한 걸 보아하니, 나도 아무래도 슈베르트처럼 자기의 덫에 갇힌, 제도권에서 벗어난 외곬수인가 보다.

 

 

 

 



l****0 2012.01.23.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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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다 더 큰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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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가 워낙 세심하게 작성되어있어서 CD안내를 하고자 합니다. 부록으로 나온 CD는 케이스가 없다는 불편함만 빼면 최고의 가치투자가 될 듯합니다. 뭐 빈 CD케이스야 늘 굴러다니니까 그곳에 보관하면 되지요. 책에 CD가 부록으로 딸려나오는 경우는 많이 있었는데, 그 선곡이라든가 구성에 있어서 대충 만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왔어요. 그런데 이 CD는 그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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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가 워낙 세심하게 작성되어있어서 CD안내를 하고자 합니다.

부록으로 나온 CD는 케이스가 없다는 불편함만 빼면 최고의 가치투자가 될 듯합니다.

뭐 빈 CD케이스야 늘 굴러다니니까 그곳에 보관하면 되지요.

책에 CD가 부록으로 딸려나오는 경우는 많이 있었는데,

그 선곡이라든가 구성에 있어서 대충 만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왔어요.

그런데 이 CD는 그게 아닙니다.

1.뮤즈의 아들 - 마티아스 괴르네(바리톤)

2.들장미 - 브린 터펠(베이스바리톤)

3.가니메드 - 마티아스 괴르네(바리톤)

4.겨울나그네 중 보리수 -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바리톤)

5.겨울나그네 중 여인숙 -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바리톤)

6.미뇽의 노래 중 그 나라를 아시나요 - 군둘라 야노비츠(소프라노)

7.미뇽의 노래 중 말하라 하지말고 - 군둘라 야노비츠

8.미뇽의 노래 중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 군둘라 야노비츠

9.미뇽의 노래 중 참다운 존재가 될 때까지 - 군둘라 야노비츠

10.하프타는 노인의 노래 중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 - 마티아스 괴르네

11.하프타는 노인의 노래 중 고독에 몸을 바친 자 - 마티아스 괴르네

12.하프타는 노인의 노래 중 문마다 가만히 다가가 - 마티아스 괴르네

13.서신, 린츠의 세무사무관 슈파운나리에게 -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14.친구와의 이별 -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15.난쟁이 -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16.소멸 - 제시 노먼(소프라노)

17.아베 마리아 - 군둘라 야노비츠(소프라노)

18.전능 - 제시 노먼

이정도면 이 자체만으로도 최고의 슈베르트 가곡 CD인 셈이죠.

저분들을 저렇게 한 곳에 모아 노래하게 한다면?

어휴~~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런 CD를 제작해주신 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게다가 각 곡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명반안내에 이르기까지

책은 최상의 설명서 역할을 하고 있구요.

또 성지순례를 통해서 많은 사진자료가 첨부되어있습니다.

이만한 설명서를 갖춘 이만한 CD를 어디 가서 구하겠습니까?

슈베르트 가곡에 대해 많이 아는 분이든, 처음 관심 갖는 분이든,

최상의 선택이 아닐 수 없군요.

게다가 가격이 13,500원~

최고의 CD를 할인가격에 사고 거기에 책 한권은 보너스로 따라오는 셈...

세상에 이보다 더 싼 것이 지구상에 있을까 싶네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들어가야 할 듯~

 

김문경박사님은 약학박사이시면서

어쩜 그렇게 음악에 조예가 깊으시고, 글솜씨도 좋으시고...

서울대 약대는 일찌기 무용평론가 조동화씨도 계셨고, 이제 김문경씨!

대단한 전통이 아닐 수 없군요.

부담되시겠지만, 다음에 또 더 좋은 책 내시기를 기다립니다......



d*****y 2009.08.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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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서 삶과 예술이 연결된 여러가지 이야기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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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의 키워드, 그 12가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나름대로 테마를 잘 이끌어낸 것이 아닌가 한다. 오르페우스 열전, 금지된 사랑, 소설 속에 흐르는 클래식, 팜므 파탈 이야기, 신화를 동경한 음악, 복수의 아리아, 파우스트에 매혹되다, 죽음에 대한 3가지 명상, 음표로 새겨진 전쟁의 참상, 독일음악 속의 영웅들, 나로 하여금 취하게 하라, 백조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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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의 키워드, 그 12가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나름대로 테마를 잘 이끌어낸 것이 아닌가 한다. 오르페우스 열전, 금지된 사랑, 소설 속에 흐르는 클래식, 팜므 파탈 이야기, 신화를 동경한 음악, 복수의 아리아, 파우스트에 매혹되다, 죽음에 대한 3가지 명상, 음표로 새겨진 전쟁의 참상, 독일음악 속의 영웅들, 나로 하여금 취하게 하라, 백조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듣는 음악은 들어서 즐겁고 편안함을 주는 음악이 대부분이다. 현대 생활에서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악으로 해결한다. 그러다가 요즘은 좀 복잡하고 어려운 음악도 들어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책을 읽다가 듣는 좀 복잡한 음악도 한 번 들어볼 필요성이 있지 않나 한다. 너무 편한 음악보다는 가끔은 좀 이상해 보이는 클래식 음악도 들어보아야 할 것 같다.

 

여담이지만, 세상에는 타당한 이유 없이 남을 괴롭히는 인간들이 많으며 그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고자 복수의 일환으로 자신의 삶을 내던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없을까? 어차피 인간의 한계상 사랑과 관용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기 어렵다면 우주의 섭리를 믿고 인내하는 것도 ‘훌륭한 복수’라는 생각이 든다(142-143쪽). 매우 좋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그런 길이라도 생각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죽음보다 더욱 확실한 것은 우리들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왜 내일이나 밤 혹은 겨울에 대해서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은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오직 한 가지,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것뿐이다. 보다 나은 삶을 살수록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공포는 사라지고 좀더 자연스럽게 숙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184쪽).

 

이건 톨스토이의 저서인 인생의 길에 나온 내용이라고 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회피한다고 해서 도망가지도 않는다. 그렇다. 그저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다가 죽음이 다가오면 그냥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한다.

 

<영웅>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베토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불굴의 의지와 뛰어난 통찰력으로 많은 걸작을 작곡했고 오늘날까지 그의 음악이 숭배되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로망 롤랑은 「베토벤의 생애」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총칼로 승리한 사람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는다. 내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오직 마음으로 위대했던 자들이다.”(214-215쪽)

 

과연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이 큰 자가 영웅이다. 아마도 이렇게 보면 평범한 개인들도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고통은 명곡을 낳고 깊은 슬픔은 아름다움을 낳는 것 같다. 강한 것만이 영웅은 아닌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말이 생각난다.

 

12음기법은 열두 음을 공평하게 쓰자는 합리적인 작곡 기법이기는 하지만 이 기법으로 작곡된 음악들은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즐거워할 수 있는 종류가 되지 못한다. 12음음악은 일단 조성을 포기했기 때문에 불협화음에서 협화음으로의 음악적 해결이 없다. 불협화음과 협화음의 관계는 마치 직장생활에 있어서의 출근과 퇴근의 관계와 같다. 음악에 적절한 긴장과 이완을 부여하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후기 낭만파에 오게 되면서 이른바 퇴근시간이 점점 늦어지더니, 12음 음악에 이르러 아예 퇴근이란 것이 없어지게 되고 24시간 내내 일하는 듯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현대 음악 작곡가들은 수십 년이 지나면 자신들의 음악도 말러의 음악처럼 사람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미술은 추상적인 작품에서도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만 음악은 듣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면 소음에 불과한 것이다. 12음기법은 우리 뇌 속에 그러한 음악을 받아들일 수용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하지만 <바르샤바의 생존자>를 감상할 때면 12음기법도 나름의 효용성은 있다고 느껴진다. 그 어떤 조성음악도 전쟁의 공포와 홀로코스트의 망령을 이토록 강하게 웅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곡 연주시간이 7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감상에 부담도 적은 편이다(198-199쪽).

7*****0 2009.10.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