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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메리시, 낯설은 이름으로 책이 시작한다. 카라바조의 본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이름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베르가모 지방의 작은 마을의 이름인 동시에 그의 아버지 페르모가 마지스터가 될 수 있도록 돌봐준 고용인 겸 후원자였던 후작의 이름이다. 그의 정확하지 않은 출생의 기록과 함께 시작하여 연대 순으로 그의 삶을 따라가면서 각 시기마다 남긴 대표작들을 살피는 것이 이 책의 방식이다. 도판이 작은 대신 작품의 중요한 부분들은 다시 확대해서 보여주고 있어서 좋다. 화질도 좋은 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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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그의 이름을 다른 예술가들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그림 이야기와 화가들에 대한 책을 빌려 볼 때에도 카라바조에 대한 책 한 권을 따로 꺼내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름만 대도 알만한 유명한 화가들의 생애에서 매번 함께 거론되었던 카라바조.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카라바조의 생의 흐름을 따라가며 그의 삶과 예술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책이 같은 출판사의 아트북 시리즈보다 크기가 커서 실린 도판이 큼직해서 좋았다. 카라바조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음을 미리 밝히며 읽으며 그를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카라바조를 온전히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카라바조의 예술적 경험을 이해하려면 그가 나고 자란 지역의 역사문화적 환경을 살피고 그의 예술을 전설로부터 구해내서 역사 속에 편입시킬 수 있도록 보다 넓은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전에 그와 유대가 있었던 이들을 통한 이야기를 읽었을 뿐 자세히 알지 못했던 나는 편견이라기보다 호기심이 먼저 앞섰다. 뚜렷히 알려지지 않은 출생과 유년기, 폭행, 구금, 살인, 예사롭지 않은 인생의 파랑 속에서도 바로크 미술의 정점에 위치한 화가. 당시유행이었던 화풍에 맞서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런 그의 그림은 사람들의 입에 곱지 않게 오르내렸지만 이후 19세기 말에 그의 천재성이 부각되었다. 그의 그림은 배경이 어두운 그림이 많다. 그래서 음울하고 고독한 느낌이 더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두운 배경에서 밝은 색은 더욱 강렬하게 하여 그 밝음이 더 선명해진다. 강렬한 명암의 대비는 표현하고자하는 인물의 표정이나 동작에 눈길이 먼저 가게 만드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도 그게 느껴지는지 책을 보는 내 옆에서 진중한 자세로 들여다보곤 했다. 수많은 스캔들과 예사롭지 않은 그의 삶이 그의 예술작품들을 당대에 더 평가받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확실하지 않은 소문을 만들며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숱한 소문들도 그의 인생의 일부 중 하나이지만 그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만을 두고 우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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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1610)의 출생이나 죽음은 불가사의하고 의문투성이다. 그의 출생과 초년에 관한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고, 죽음에 관해서는 엇갈린 추측만 전해질 뿐이다. 확실한 것은 천사장 미카엘의 축일인 9월 29일이 카라바조가 태어난 날이라는 것이다. 그의 죽음을 두고 혹자는 고열로 죽었다고 하고, 혹자는 암살당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과 관련한 주장은 이렇다. 카라바조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배를 타고 도망하다 잠시 정박한 항구에서 체포되지만 바로 풀려난다. 그는 자신이 타고 온 배를 찾아 해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이미 배는 떠나고 없었다. 배를 찾지 못한 그는 분노에 사로잡혔고 자포자기의 상태로 이글거리는 해변을 걷다가 어느 해변가에서 고열로 쓰러져 며칠 후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주장이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고의로 그를 죽였다는 설이 있다.
출생과 죽음이 의문이라면 그의 삶은 위험스럽고 불안하다. 카라바조의 삶은 싸움과 폭행, 말타툼과 살인, 소송과 투옥, 그리고 도망으로 점철된다. 한 고객은 카라바조를 '무분별하고 정신 나간 사람', '혼란스러운 사람',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 '미친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런가하면 여성스럽고 도발적인 남성들이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고 하여 동성애자라는 추측을 낳기도 한다. <젊은이들의 음악회>는 이러한 오해를 받은 그림 중 하나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피부나 얼굴, 헤어스타일은 남자로 보이지 않을 만큼 여성스럽다. 동성애자라는 주장은 그를 '저주받은 화가'라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
청년기를 지난 카라바조는 종교적인 주제를 매우 혁신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한다. 종교적 주제를 가능한 가장 자연스럽게 다루며 명암 대비를 이용해 그림 전체에 빛이 배어들게 했다. <이삭의 희생>, <마르타와 막달라 마리아>, <성 프란체스코의 법열> 등은 새로운 방식으로 빛을 다룬 작품이다.
나는 카라바조의 작품 중 유독 죽음과 관련된 그림이 많다는 점을 발견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 <성 마태오의 순교>, <성 베드로의 십자가 책형>,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세례자 요한의 참수>, <성모 마리아의 죽음>, 그의 최후작 된 <골라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등 많은 죽음을 그렸다. 이 중 내 관심을 끈 그림은 세례 요한의 죽음을 그린 <세례자 요한의 참수>이다. 이 작품을, 공간의 깊이를 강조하고 배경과 인물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는 데 전문가임을 증명한 그림이라고 책은 평한다. 요한의 표정은 그림 속 인물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인간의 표정을 하고 있다. 그가 여러 작품에서 표현한 죽음과 고뇌, 내면의 고통과 죽음 너머의 안식은 그의 어두운 삶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폭력적인 성향으로 많은 문제를 달고 다니며 어두움 속에서 살았던 화가. 바로크 양식의 탄생에 영향을 끼친 화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만큼 혁신적이었던 예술가, 빛과 어둠의 대가 카라바조가 뒤늦게라도 거장으로 재평가 된 것을 반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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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북스에서 출간한 Art Book 시리즈는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에서부터 바로크시대의 화가와 가장 빛나는 회화의 시대를 열었다고 하는 인상주의 화가들, 인상주의를 넘어선 표현주의 화가들까지 근대와 현대를 이끈 화가들로 구성된 시리즈물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작가들에 의해 기획, 출판된 것이 아닌 아탈리아 몬다도리 출판사에서 출간한 시리즈를 마로니에북스에서 번역 출간한 것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특정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뿐만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기의 정치. 사회적인 면들을 소개함으로 그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었으며 동시대를 살아간 동료 작가들과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배려가 있다. 그리고 중요한 작품에 대해서는 조각조각 분해해서 다시 해석해 주는 친절함도 있다. 무엇보다도 한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들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의 사변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어 주관적인 견해 보다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좀 아쉽기도 했다. 때론, 나의 부족한 지식을 전문가들로 하여금 채워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런 재미는 좀 덜했지만 미술사를 이해하기엔 충분한 배려가 함께 했다고 본다. 카라바조는 16세기말에서 17세기 초까지 활약한 이탈리아의 화가이다. 이 시기의 이탈리아 피렌체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바로 근대로 접어드는 르네상스의 시발지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예술의 쌍두마차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순전히 나의 주관이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해도 할 말은 없다.)가 여기에서 태동하면서 빛을 발했고 라파엘로 등 당대에 유명한 예술가들의 정신적 고향이었으며 활동지였던 이탈리아. 그 한가운데에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아버지인 카라바조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초기작들은 티치아노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레토 다 브레시아, 라파엘로 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 영향을 준 다른 작가의 작품도 함께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그림도 소개되어진다. 개인적으로 본문보다 주석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의 주석들은 본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창녀와 남창 집시 등을 미술에 등장시킨 그에게 동성애자라는 추측까지 낳게 한 그의 중기 미술세계. 어깨를 훤히 드러낸 여자같이 곱상한 소년들의 등장. 그는 그림의 무척 사실적인데 ‘성 마태오의 소명’에서는 셈을 하는 세리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카드게임의 한 장면으로 오해 받기도 했으며, ‘성모 마리아의 죽음’에서는 기존의 성화와 달리 마리아의 임종 모습이 다리가 훤히 드러나고 몸은 퉁퉁 붓고 머리는 흩어져 있게 그림으로 하늘의 높은 곳의 인물이 우리 삶의 일부로 내려 뜨려놓기에 이른다. 이렇듯 자연주의적인 그림을 그린 그의 삶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림은 선계약 후 다시 계약이 파기되기 일수고 그의 폭력적이고 무분별한 행실은 삶을 더더욱 어렵게 했다. 로마에서 나폴리로, 나폴리에서 몰타로, 몰타에서 시칠리아로 그의 행정은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다. 온갖 폭력과 싸움 범죄로부터의 도피였다. 그의 그림은 후반기로 갈수록 더욱 그 느낌이 강해진다. 빛과 어둠의 조화로 공간의 깊이를 강조했고 배경과 인물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는 데 일목한다. 카라바조의 많은 작품들에는 마음을 동요하게 하는 다양한 표정들이 있다. 죽음과 폭력, 고뇌의 눈빛, 승리자는 결코 즐거워하지 않고 죽는 자는 결코 슬퍼하지 않는 듯한 느낌. 그 내면의 고통과 안타까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죽음 속에서의 살아있음. 이런 복잡한 의미를 지닌 얼굴들이 빛과 어둠속에서 그 가치를 내뿜는 느낌을 준다. 카라바조의 최후작인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에서 이 느낌은 더욱 강하게 남는다. 카라바조는 범죄로 인해 망명되어 있을 때 보르게세 추기경에게 사면을 부탁하며 이 그림을 보낸다.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의 표정은 ‘승리에 취한 영웅이나 성경의 그리스도의 예시가 아니다. 그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으며 비극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그런가하면 골리앗은 일관되지 않는 온갖 감정이 담겨져 있다. 어떻게 얼굴에 각기 다른 표정이 이렇게 많이 담겨져 있을까 싶을 만큼. 코와 입을 가리고 눈만을 봤다. 아직도 열정이 남겨져 있지만 이미 반쯤 감긴 오른쪽 눈은 죽음을 맞는 자의 회한이 담겨져 있다. 이마의 찡그린 주름살은 아직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신경질적인 날카로움이 담겨있다. 그런가하면 벌려진 입술 틈으로 흘러내린 침은 노장의 허무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벨로니는 이 골리앗상이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라고 하기도 했다. 1610년 7월 카라바조는 나폴리를 떠나 로마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카라바조는 나폴리왕궁의 몬테 아르젠타리오에 잠시 정박하려했으나 이내 체포되었다. 사면에 대한 사실을 확인한 후 풀려났지만 이미 그가 타고 온 배는 떠나고 없었다. 거기서 카라바조는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사면에 대한 희망과 죽음의 두려움이 오고간 최후의 날이었다. 탄생도 죽음도 의문투성이인 이 거장은 지금도 많은 작품이 위작이냐 진품이냐 라는 낭설을 품은 채 우리 곁에 살고 있다. |
![]() <카라바조가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의 콘타렐리 예바당에 걸리 위해 제작한 두 번째 작품이다. 예수의 부름을 따르는 세리 마태오라는 주제는 후일 카라바조의 추종자들에 의해 자주 모방되었다(p. 66).>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이다. ’카라바조’는 그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이라고 한다. ’빛과 어둠의 대가’라고 불리는 카라바조는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화가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화 그의 작품 ’성 마태오의 소명’(p. 66) 때문이다. 신약성경 <마태복음>을 공부를 하며 알게 된 이 작품은 신앙적으로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마로니에북스가 펴낸 [카라바조]를 읽으며, 나는 화가 카라바조가 다른 화가들은 주제로 잘 다루지 않는 마태의 소명 장면을 이토록 강렬하게 그려냈는지 알 것 같아 흥분되었다. 예수님의 12 제자 중 한 사람인 ’마태’는 당시 사회적으로 멸시 받았던 ’세리’였다. 지배국 로마를 위해 자신의 민족에게 세금을 부여하는 ’세리’는 우리나라의 역사로 볼 때, 친일파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세리를 얼마나 미워하고 싫어했는지, 문둥병 환자나 돼지와 같이 취급했으며, 심지어 세리는 성전 출입도 금지되었고, 재물을 받치는 것도 금지되었다. 사회적인 소외의 대상이었던 세리는 성경에서 ’창녀’나 ’죄인’의 친구로 묘사된다. 세리라는 직업으로 재물은 많이 모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와 모욕을 당했던 세리는 창녀들과 어울리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카라바조의 생활이 세리의 생활처럼 어둡고 칙칙하다. [카라바조]의 저자는 <카라바조의 초상>이라는 작품을 이렇게 설명한다. "진지하면서도 약간 까다로워 보이는 카라바조의 표정은 이제는 전설이 돼버린 그의 성격을 잘 전달해주고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전혀 순진해 보이지 않는다." 카라바조의 생애는 끊임없는 싸움, 소송, 투옥, 도망으로 얼룩져 있다. 그는 늘 싸움, 폭행, 치안방해, 상해, 물법 무지소지, 온갖 불법행위로 유명할 만큼 폭력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말다툼 끝에 상대 남자를 살해하고 사형을 선고받은 카라바조는 현상금이 걸린 채, 도망다니는 생활을 했다. 마흔도 되기 전에 젊은 나이로 사망한 카라바조는 암살 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카라바조는 사실적이고 파격적인 주제들로 인해 물의를 일으키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성모 마리아의 죽음>이라는 작품은 "카라바조가 관계한 창녀의 모습을 성모 마리아 속에 담았다는 이유로" 혹은 "불경스럽게도 몸이 퉁퉁 붓고 다리가 드러난 모습으로 성모 마리아를 묘사했다는 이유로"(p. 71) 거부당하기도 했다. 또한 카라바조의 작품에는 여성스럽고 도발적인 남성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 때문에 그는 동성애자로 오해받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저주받은 화가"라는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런 그가 다른 화가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 ’세리 마태’의 소명에 관심을 가졌다. 어두운 세관에 앉아 돈은 세기에 여념이 없는 마태에게 한 줄기 강렬한 빛이 임하며, 예수님이 손짓하고 있다. 그림에서 예수님은 매우 의미심장한 손짓으로 마태를 부르고 있는데, 예수님의 이 손짓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한 그림, 바로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 <친지창조>에서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하나님의 손짓이다(p. 67).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고 멸시 받았던 마태는 예수님의 이 손짓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부르심이었다. 마태는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나와 신약성경의 첫 권을 기록하는 ’영광’을 얻었다. 나는 여기서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강조하는 카라바조의 화법의 절정을 보는 듯 하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포착해내고, 그 고통에 감정이입이 되는 <도마뱀에 물린 소년>, 예수 몸의 상처를 생략하고 내적 고통의 묘사에 집중한 <에체 호모(이 사람을 보라)> 등 그의 작품은 내면의 고통을 묘사하는 작품들이 많다. 어두움 가운데 살았지만 늘 빛을 갈망했던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 플라톤식 이상을 버리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원했던 그의 작품들은 어쩌면 현실세계의 고통이 너무나 생생하고 처절하여 이상을 꿈꿀 수 없었던 그의 좌절과 번민을 보여주는 듯 하다. 카라바조는 미술의 흐름을 급격히 변화시킨 천재 화가였지만, 사망 후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20세기에 들어서 재발견되어 거장으로 재평가되었다고 하니 다행이다. 어둠 속에 살았지만 늘 빛을 꿈꾸고, 소망했던 화가 카라바조를 한동안 편애할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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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르 박물관과 바로크이 거장전을 보면서 색채와 빛, 사람 하나 하나의 표정을 보면서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뽀얀살결, 커다란 캠퍼스의 풍경 모두가 내 마음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나 사실 화가에 대하여는 그리 많이 알고 있는 편은 아니다. 그냥 그림이 좋아 아이들과 함께 전시회를 다녔었다. 15,6세기의 그림을 보면 성서이야기를 주제로 한 그림이 많아 성서이야기를 알고 보면 그림을 보는 재미가 더 있었다. 고흐의 생애를 알고 고희의 그림을 보면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카라바조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하였다. 그림을 살펴보면 그동안 많이 보아왔던 그림들이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닳게 되는 부분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의 화법을 설명 들으며 그림을 살펴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5살때 흑사병으로 부모를 잃고 생활하면서 아마도 그는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성인 되어서도 약간은 괴팍했을 것이다. 이탈리아 반도 최대의 문화중심지 로마에서의 문화의 꽃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미켈란젤로의 스승 시모네 페테프자노는 카라바조의 초기작에 영향을 많이 주었으며 카라바조는 미술공부에 있어 단순한 테크닉만을 배운 것이 아니라 자연과 빛을 연구하고 르네상스의 회화와 원근법의 대가 만테냐, 줄리오 로마노의 프레스코, 캄피 형제의 마니에리스모 등을 공부하면서 성장했다. 그는 종교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으면 싸움과 살인등으로 로마에서 추방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림 그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시칠리아에서 지내는 동안의 그림에서는 로마의 시기와 다르게 비장함과 웅장함을 드러냈으며 이는 후세의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원판의 그림의 부분 부분을 확대하며 사람들의 표정과 건축물의 구조, 빛과 색의 변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루어져 있어 전시장에서 보는 그림과 또다른 느낌으로 그림을 감상할 수 있으며 카라바조라는 화가에 대하여 더 잘 이해 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 삶이 순탄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그림 또한 순탄하게 걸려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이 세속적이라는 이유로 예배당에서 거부당하기도 하였다. 교회와 교황의 보호아래 성화가 그려지는 시기였음을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카라바조는 빛과 어둠의 조화를 잘 표현하므로서 그림속의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림에 대하여 많이 알지 못하는 관계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림에 내포되어 있는 뜻과 표현방식을 읽으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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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라고 불리는 몇몇 화가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렘브란트, 베르메르, 모네... 이들의 작품을 몇 개만 감상해 보아도 왜 빛의 작가라고 부르는지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빛'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빛은 피사체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사실적인 묘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빛과 어둠의 대가'로 소개된 카라바조의 그림은 어떨까. 사실 카라바조라는 화가는 이름만 들어보았지 얼른 떠올릴 수 있는 유명 화가들의 리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은 화가였다. 하지만 카라바조 또한 '빛'을 사랑한 화가로 빛과 어둠을 어떻게 표현하였을지 '빛의 화가'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베르메르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를 떠올리니 카라바조와 선명하게 대조되는 느낌이 들었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매우 사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물과 주변의 배경도 꼼꼼하게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작품의 배경은 해질녁이나 이른 아침일 수도 있겠지만 낮이면서 바깥보다는 어두운 실내를 비추는 '빛'을 담아낸 작품이 많다. 하지만 카라바조의 경우는 배경이 매우 어둡다. 주변의 배경은 대부분 어둠이고 드물게 단순한 형태의 벽이 살짝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베르메르의 그림을 처음 볼때는 작품 전체가 주는 느낌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카라바조의 그림은 인물에 그것도 인물의 얼굴에 주목하게 된다. 수많은 화가들이 작품에서 그려냈던 그리스도에 관한 부분에서도 배경은 최소한으로 표현하고 인물 중심으로 그렸다. 작품 속의 주인공들과 한번 마주치면 그들에게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카라바조와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또 한지 이유는 그의 삶을 엿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예술가들의 삶이 대부분 그러하듯 카라바조도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의 경우는 다른 예술과들과는 좀 다르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인정받지 못한 괴로움, 경제적 궁핍함 이런 것들을 떠나 스스로가 폭력과 살인이라는 문제를 일으켜 곤란을 겪었고 결국 그로인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천재들은 예술적 영감과 함께 까칠한 성격을 함께 가지고 태어나는가 보다. 아니면 예술적인 영감이 내면에서 소용돌이칠 때면 감정 따위는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 된다든지 말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들이 종종 있었고 작품속에 자신의 모습을 슬쩍 그려넣는 화가도 많았다. 어쩌면 카라바조의 작품 속에 묘사된 '자신'은 어둠 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카라바조 - 빛과 어둠의 대가> 이 책은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아트북 시리즈중 여덟번째 권으로 카라바조의 생애를 되짚어 보며 시대순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작품 활동을 했던 다른 화가들의 작품도 함께 소개되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편집상의 이유인지 몇몇 그림의 경우 한 쪽 페이지에 실을 수 있는 크기의 그림이 제본되는 부분과 겹쳐지게 배치가 되어 감상하는데 불편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카라바조라는 화가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충분할 만큼의 그림과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기회가 된다면 미술사를 통틀어 시대순으로 영향을 주고 받은 화가들이 소개된 책을 읽어보고 싶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피카소나 고야, 클림트, 베르메르, 고갱등의 화가보다 카라바조가 앞서 소개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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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점의 그림만으로 멋지다며 이름을 외워둔 화가가 "카라바조"다. 자화상을 보니 예상했던 얼굴이 아니어서 좀 그랬지만 그림이 멋지니 패스. 카라바조氏가 거울이나 보라며 시비라도 걸까 무섭다 ㅎㅎ
얼마전 마네와 모네에 관한 책을 읽고 역시나 예상했던 인품과 달라 당황스러웠지만 그림이 멋지니 패스했던 기억이 났다. 상상속 화가들은 꽃미남 그 자체다. 돈, 명예는 먼나라 이야기, 그들은 오직 예술에만 푹 빠져있는 "고흐"같은 삶을 사는 인물들이었다. 때론 그런 화가도 있었지만 카라바조는 예상을 완전 뒤엎었다. 좀 회안한 느낌이었다. 책에서 말한대로 도망다니며 사는 신세였는데 어찌 그리 멋진 작품을 남겼을까, 더 궁금하게 만드는 그의 천재적 실력.
부제 "빛과 어둠의 대가" 답게 빛과 어둠으로 선명하게 대비되는 그림이 마치 조각을 보는 듯 입체적이며, 연극의 한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림만 보고 누가 그렸는지 맞출 정도의 능력은 전혀 없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상황에선 카라바조 그림만은 비교적 쉽게 찾을 자신감이 생긴다. 카라바조가 폭력을 일삼고 여기 저기 도망다니며 살았다는 것은 충격이다. 위대한 화가였지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결국 파멸에 이르렀다니 안타깝다. 한편으론 이기심과 욕심이 가득한 삶을 살더라도 그보다 위대한 작품으로 후세에 길이 남을 수 있다니 예술가가 부럽기도 하다.
작은 분량이고 크기도 작은 책이지만 두 번 읽고 나서야 비로서 책의 내용이 모두 이해되었다. 물론 시간순으로 정리되어 있으므로 쭈욱 읽어 나가다보면 이해야 쉽게 되지만 시대 상황과 삶과 여러 그림들을 동시에 읽어나가려니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은 책이었다. 큰 그림으로 가득 채운 책이 아닌 설명이 상세한 책이다보니 꼼꼼하게 읽어야 헛갈리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일부 명칭이 혼동을 줬지만 그닥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아트 북 시리즈 설명대로 300여 점의 화려한 원색 도판이 이해를 도와 주었고 당시의 역사, 사회적 맥락을 쉽게 설명해 주어 화가의 일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화가의 일대기를 간략하고도 집중적으로 알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다음으로 "고야"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편을 읽어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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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에 대해서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빛과 어둠의 대가이며 미술사에서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화가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카라바조가 활동하던 당시의 상황이며 어떤 화가들에게 받고 또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카라바조는 롬바르디아의 전통을 체득하고 자연 관찰에 관심을 갖었으며, 르네상스 회화, 생기가 넘치는 사실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포파, 원근법의 대가 만테냐, 줄리오 로마노의 프레스코, 캄피 형제의 마니에리스모 등을 공부했다고 한다. 브레시아 화가들, 특히 빛의 연구를 전문적으로 했던 사볼도의 성과는 카라바조에게 매우 중요했다고 한다. 그는 실내의 빛의 묘사, 어둠 속에서의 실험, 인위적인 빛을 표현하면서 매우 시적인 효과를 연출했다고 한다. 명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할 때마나다 다른 것에서는 줄 수 없는 감정을 갖게 한다. 그런데 감상할 때 설명이 되어 있다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더 큰 감동을 준다. 이 책 또한 명작을 감상할 수 있고 그 작품에 어느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지 소개되어 있어서 여행을 하기 위해 또 그림을 보기 위해 그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한다. 이 책은 색깔별로 노란색은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하늘색은 역사, 문화적 배경을, 분홍색은 주요 작품 분석을 해놓아 읽는 이로 하여금 좀더 세심한 관심을 갖고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젊은 남성의 초상을 자주 그렸고,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방식을 그림 그리는 것을 선호했다고 한다. 카라바조는 과거 예배당 장식에 주로 이용되었던 전통적인 프레스코를 거대한 캔버스 그림으로 대체했고, 빛을 이용해 비극의 종교적인 의미를 고양시켰으며, 인물들을 살아 있는 캐릭터로 재현했다. 카라바조는 인간의 마음을 심리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관심이 지대했고, 이러한 심오한 경향은 카라바조의 자연주의 연구의 결과였고, 고향 롬바르디아에서 익힌 전통에서 기이한 것이라고 한다. 카라바조는 르네상스의 유산이 강하게 남아 있던 나폴리에서 카라촐로, 스탄치오네 혹은 칼라브리아 태생의 마티아 프레티 같은 화가들에 의해 카라바조풍의 자연주의는 빠르게 부리를 내렸고, 안토넬로 다 메시나부터 폴리도로 다 카라바조에 이르는, 플랑드르의 영향을 받은 시칠리아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시칠리아에서도 카라바조의 혁신은 이어졌다고 한다. 카라바조는 폭력적인 기질로 인한 문제들이 많았는데, 그런 성격 때문에 싸움, 소송, 투옥, 도망이 반복되었으며,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카라바조는 사후에 더 큰 명성을 얻었고, 그는 유렵 전역에 추종자를 만들었으며, 미술사에서 카라바조는 끊임없이 모방, 해석, 재발견, 언급 되었고, 수많은 화가들이 그의 작품을 모사했고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은 작지만 많은 내용과 명작들을 담고 있어서 큰 책이라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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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기 전에 내가 아는 유일한 미켈란젤로(‘피에타’상의 조각가)는 단 한 명 밖에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카라바조 - 빛과 어둠의 대가>의 주인공인 미켈란젤로 메리시 역시 미켈란젤로라는 위대한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고, 르네상스 시대 말기에서 바로크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주자로서 그 위명을 떨쳐 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가 있었다. 이태리의 밀라노에서 태어난 카라바조의 가족은 그가 5살 때, 흑사병을 피해 롬바르디아의 카라바조로 이사를 갔다. 그후 미켈란젤로라는 이름보다 카라바조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이주에도 불구하고 어려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은 카라바조는 당시 이태리 최대의 명문가였던 스포르차 가문과 콜론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3살 때, 스승인 시모네 페레트차노의 휘하에 들어가 4년간 도제생활을 시작한다. 카라바조는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밀라노를 휩쓸던 인위적인 마니에리스모 스타일, 다시 말해 사실적 디테일을 강조하고 단순성을 중요시하는 사실주의 화풍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그의 초기 작품들에 등장하는 정물화와 정물 소품들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카라바조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작품들을 생산해 내기 시작한 것은 21살이 되던 해인 1592년 예술을 하는 모든 이들의 꿈의 도시였던 로마로 오면서부터였다. 로마의 교황과 추기경들은 로마를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건축가, 조각가 그리고 화가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카라바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큰 물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지론처럼, 로마에 온 카라바조는 선배 화가들의 작품 세계를 접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풍과 도상 그리고 기법들을 개발해 나간다. 예의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로 소개된 32쪽의 <도마뱀에 물린 소년>에서는 전통적이면서도 딱딱한 고전주의 양식에서 벗어나 그림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도마뱀에 물론 소년”에게 감정이입을 요구하고 있다. 깜짝 놀란 소년의 표정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반쯤 벗은 어깨의 주인공은 이후 카라바조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미소년 이미지의 전형이다. 심지어는 이런 그의 취향 때문에 그가 동성애자라는 설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책에서 설명되고 있듯이, 쾌락과 고통의 알레고리에 대한 분석 또한 일품이었다. 카라바조는 또한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모사로도 유명했는데, 예비 드로잉 없이 거침없는 붓질로 속사포 같이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똑같은 소재와 주제의 작품들이 약간의 차이를 지닌 다른 버전들이 양산되었다. 한편, 반종교개혁의 분위기에서 카바라조는 점점 더 종교화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근대시민혁명 이전까지 종교가 지배하고 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세속적인 그림들을 그리기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고전적인 주제인 그리스 신화 같은 소재가 아니면 거의 종교화가 유일한 주제였다. 동시에 카라바조는 그동안 자신이 배워왔던 것들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면서, 빛과 어둠의 대비를 이용한 명암효과와 다소 느슨한 종교화의 소재들을 다루기 시작한다. 자신의 최고 절정기였던 1600년에 그린 <성 마태오의 순교>는 비로소 그에게 대중적인 성공을 가져다주기에 이른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의 콘타렐리 예배당에 걸리게 되었다. 카라바조는 이전까지 예배당 벽화를 장식하던 프레스코 화를 극도로 싫어해서, 캔버스 화를 그려서 예배당에 걸었다고 한다. 그는 빛과 어둠의 대가로서 원숙미와 자신감이 넘치는 역동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해냈다. 아울러 자화상의 도입과 함께, 자신의 생애 내내 따라다녔던 폭력의 상징인 칼의 묘사에도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었다. 일련의 성공과 더불어 그의 삶에 그림자가 비추기 시작했는데, 지속적인 폭력과 무분별한 행위로 결국 로마에서 버티지 못하고 제노바와 나폴리 심지어는 몰타 섬까지 자타에 의한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그 와중에서도 카라바조 화풍의 영향을 받은 추종자들이 많은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 지상에서 40여년을 보낸 카라바조는 열병으로 토스카나 지방의 에스콜레 항구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쳤다. 전반적으로 카라바조의 소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옥의 티라면 소개된 그림들과 부분 삽입된 사진들의 사이즈가 너무 적어서 카라바조의 작품들을 진지하게 감상하는데 있어서 불편했다. 물론 파란만장했던 카라바조의 삶과 작품 세계를 150쪽 남짓한 지면에 담는다는게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사후 근 1세기 동안이나 잊혀져 있다가 19세기 들어 비로소 재평가를 받게 된 카라바조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나마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특히 후기 걸작으로 손꼽히는 <성 히에로니무스>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같은 작품에 대한 설명들을 예술작품에 대한 심오한 알레고리와 도상학적 측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도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