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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 중에 하나가 이소룡일 것이다. 어느 날 벼락처럼 우리 곁에 다가와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그리고 미완성 유작 <사망유희>까지 2년여의 짧은 기간동안 다섯 편의 영화로 우리에게 섬광처럼 빛났던 이소룡. 비록 30년도 더 넘은 영화들이지만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강렬한 인상, 파워, 카리스마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추앙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이소룡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영화들 때문이지만, 이소룡의 진면목은 그가 진정한 무술 고수였으며,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장면들은 허구나 카메라 조작이 아닌 실제 그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소룡은 영화를 통하여 그가 오랜 기간 수련을 통하여 얻은 깨달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실제로 이소룡을 가까이에서 보면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매직'이라는 말을 붙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직'이라는 단어가 무쓴 뜻인지 알지요?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열정이라는 불꽃이 있습니다. 이소룡은 그런 불꽃을 저 깊숙이 불사르고 있었지요. 그는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당신이 그의 무술을 직접 봤다면 이렇게 외쳤을지도 모릅니다. '와 이게 정말 진정한 무술이야! 이소룡, 당신이 옳았어!' 이소룡은 그런 멋과 매력을 갖고 있었지요. 아마 그는 당신을 무술에 빠져들도록 만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영감'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쓸 수 있겠군요. 이소룡은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용기를 북돋아주고 영감을 주는 에너지의 화신이었습니다.
이 책은 이소룡 평전으로서 저자가 충실한 자료수집과 분석으로 32년간의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 간 이소룡의 발자취를 충실히 더듬어 간다. 1부 소룡의 삶, 그리고 일에서는 이소룡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삶을 조명한다. 배우였던 아버지의 공연때문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하였으며, 홍콩에서 자란 어린시절, 공부보다는 싸우기를 더욱 좋아했던 이소룡이 엽문사부에게 영춘권을 배우면서 삶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은 이야기, 미국으로 건너온 이소룡이 식당에서 일하고 공부하면서 그의 무술을 서양인에게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통을 고집하는 중국무술의 관습에서 벗어나 그 자신만의 철학을 가미한 보다 효과적이고 실전적인 무술을 발전시킨다. 이 무술이 훗날 그가 절권도라 지칭하게 되는 무술이다. 남들과 다른 그의 무술실력은 제자들을 통하여 방송제작자들에게 알려지고 그 결과 '그릿호넷'이라는 TV시리즈에 출연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리즈물의 영향으로 홍콩에서 그의 인기는 급상승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홍콩으로 건너온 이소룡은 골든하베스트와 '당산대형'을 찍게 된다. 그 후로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새로운 스타탄생의 과정이다. 당산대형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이러 계속해서 제작된 영화들의 성공으로 이소룡은 최고의 아시아 스타로 빛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최고의 정점에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이소룡. 2부 전설, 그리고 진실에서는 갑작스런 이소룡의 죽음에 따른 온갖 루머와 소문에 대하여 보다 진실에 접근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3부 투혼:이솔요은 누구인가?를 통하여 저자는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말을 꺼낸다. 저자가 쫓은 이소룡의 모습은 스크린 스타의 모습이 아니다. 무술인 이소룡이 평생을 수련하여 깨우친 그의 무술의 정점. 그 안에 담겨있는 철학이었다. 그가 무술을 통하여 깨우치고자 했던 것.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을 우리에게 알림으로써 스크린 스타라는 모숩 속에 가리워진 보다 이소룡의 실체에 가까운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된다. 저자의 분석처럼 <용쟁호투>의 오프닝 속에 이소룡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을 줄 모른다.
모처럼만에 이소룡에게 흠뻑 빠졌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소룡에게 무술이란 자신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었다. 절권도의 진정한 의미는 이미 상당한 무술 경지에 도달한 무술가가 그것을 자기 발견 및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데 있다. 다시 말해 절권도는 무술에 전통한 상태 따라서 극기에 도달한 상태를 함축하는 개념이자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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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
어릴적, 내가 유치원,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유아원을 다니던 시절, 초등학교 다니던 형이 학교에서 영화 단체관람을 하고 와서 형친구들과 침 튀겨가면서 영화 이야기를 했다. "이소령 진짜 싸움 잘하더라", "진짜 빠르더라" 등등. 그 때 나는 "이소룡"을 "이소령"이라고 듣고 군인인줄 았았다. 대위 윗계급, 중령 바로 아랫계급 소령, 성姓은 나하고 같은 이씨李氏. 몇년 후에 집에 유선방송을 연결하고(당시 유선방송은 고작 비디오를 틀어주는게 전부였다. 그것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오전 10시부터 하는 중국영화 타임에서 이소령이 아니라 이소룡인 것을 알았고, 그가 군인이 아니라 무술을 하는 사람인 것을 알았다. 우리 어릴적 영화장르중 최고 인기는 무술영화였다. 시대의 차이는 있지만 이소룡, 원표, 홍금보, 성룡, 이연걸등은 우리의 영웅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올라 갈 즈음 이 무술영화가 홍콩 느와르로 바뀌면서 우리의 영웅는 이소룡이 아니라 주윤발이었다. 그렇지만 이소룡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 이소룡에 대해 조금 알고 싶다면 그가 출연한 영화를 몇 편 보고, 조금 더 알고 싶다면 CBS FOX사에서 만든 이소룡에 관한 다큐(BRUCE LEE THE LEGEND)를 보고 많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이소룡"이라는 이름은 그가 어릴 적 출연했던 영화 [세로상]의 극중 이름이었다. 아버지가 배우여서 아역배우 생활도 많이 했다. 이소룡이 태어난 곳은 홍콩이 아니라 미국이다. 아버지 이해천의 미국 공연을 따라갔던 어머니가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면서 이소룡을 출산했다(1940년). 이소룡이 태어나고 몇달뒤에 그의 가족은 홍콩으로 돌아왔다. 홍콩에 다시 온지 20년이 채 안 되어 그는 다시 미국으로 간다.
어린 시절 이소룡은 승부욕 강하고 싸움 잘하고, 운동 잘 하고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나 패거리들과 다툼도 많았다. 공부 하는 것은 싫어했고. 아역시절 그가 맡은 배역도 한결같이 이런 모습이었는데, 영화 장면들을 보면 다른 아이들과 주먹질하고 어른과 말다툼하고 물건 훔쳐 달아나는 모습들이 제법 보인다. 어린 시절 이소룡의 관심거리는 오직 3가지. 영화, 쿵푸, 춤이었다. 춤은 홍콩 차차차댄스대회 나가 우승한 적도 있다.
미국으로 간 이소룡은 학교 공부를 계속하면서 일을 하는 중에도 쿵푸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제자를 받아들인다. 그는 중국 무술이 전통만을 고집하던 것에서 벗어나 외국인도 제자로 받아들였고, 엽문사부로부터 배운 영춘권을 실전적이면서 효율적인 동작으로 바꾸었다. 1966년 [그린호넷] 이라는 TV시리즈로 미국인 가정에 처음 자신을 알리게 되는데 그것은 방송을 통해 중국 무술을 최초로 소개한 계기가 되었다. 주인공 "그린호넷"의 운전수이자 동료인 카토를 연기했다.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진정한 스타는 "카토"였고 젊은 시청자들은 카토의 빠른 무술동작을 좋아했다.
다시 홍콩으로 돌아온 이소룡은 골든하베스트의 찾아가 우리가 진정 이소룡 영화로 알고 있는 영화들을 찍게 된다. 그 시절 처음 찍은 영화가 1971년에 찍은 [당산대형]이다. 그 다음해에 [맹룡과강]과 [정무문]을 찍고 1973년에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이소룡다운 영화 [용쟁호투]를 찍는다. 그는 [맹룡과강]이후 배우뿐 아니라 각본, 감독, 무술지도 등을 맡았고 어느 정도 제작에도 관여하게 된다.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각인된 영화는 미완성작 [사망유희]다. 트레이드 마크인 노란색 점프슈트와 쌍절곤을 우리는 이 영화에서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그의 무술제자이자 그에게 쌍절곤을 처음 가르쳐 준 필리핀계 무술인 댄 이노산트, 우리나라의 합기도 고수 지한재, 그리고 NBA에서 스카이훅슛으로 유명한 키 2m 13cm의 카림압둘자바가 출현한다.
이소룡은 죽기 몇 달전에 뇌부종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 누구보다 건강하던 그가 1973년 7월 20일 여배우 베티 팅 페이의 아파트에서 구급차에 실려 퀸 엘레자베스 병원으로 실려온다. 진료요원들이 달려들어 급히 흉부압박을 실시하고 흥분제를 주입하고 전기 충격 패드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소룡은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그토록 수많은 루머를 들으며 갑론을박했던 이소룡 죽음에 관한 진실이다. 그의 나이 34살이다. 그가 죽은지도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이소룡은 35에 은퇴해서 10년동안은 가족을 돌보며 지내고, 그 다음에 사회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가 바라던 모습은 이소룡 이후 최고의 홍콩 영화 스타인 성룡이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소룡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 [드래곤 : The Bruce Lee Story]의 마지막 부분 내레이션에서 그의 미망인 린다 에머리는 "세상사람들은 남편이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해 무척 궁금해한다. 그러나 나는 남편이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이소룡 장례식장의 초상화 위에는 "한 개의 별이 예술의 바다속에 가라앉다"라는 추모의 글이 적혀 있었다. 제임스 딘이 그랬고, 마를린 먼로가 그랬듯이 그는 우리에게 젊은 시절의 모습 그대로 영원히 불세출의 무술영화 배우로 남아있다.
이 책 덕분에 이소룡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소룡의 추억의 명작 5편을 다 볼 수 있었고 - [당산대형],[맹룡과강],[정무문],[용쟁호투],[사망유희] 이소룡에 관한 다큐 한 편 - CBS FOX사에서 만든 이소룡에 관한 다큐(BRUCE LEE THE LEGEND) 이소룡을 주제로 KBS에서 만든 타큐 2편 - KBS 과학카페 [이소룡 절대근육의 비밀],[이소룡 최강 격투의 비밀] 을 봤다. 다시 말해 위의 자료들은 책과 함께 보면 좋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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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소룡의 영화를 한번도 본적이 없다. 그가 인기가 많았던 70년대는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때였지만 아직까지도 이소룡하면 기억하는것은 쌍절곤과 "아~뵤~~"하는 소리다. 그리고 요즘 광고에 나오는 영화의 한부분 때문이라서 그런지 그가 낯설어 보이지는 않는다.
이 책은 세계적인 무술 스타인 이소룡의 인간적인 모습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잘 몰랐던 배우의 이야기를 알게되고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과거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책의 1부는 소룡의 삶,그리고 일 2부는 전설,그리고 진실 3부는투혼:이소룡은 누구인가로 구성이 되어 있다. 많은 자료와 사진들 덕분에 그의 여러모습들을 볼수 있어 좋았고 부록을 실린 신문에 나왔다는 영화광고는 새롭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조조가 280원, 일반이 380원이라는 말에.. 아. 이런 때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광이던 나도 이런 광고를 오려서 스케치북에 다가 붙이곤 했었는데...
책으로만으로는 그를 다 알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영화를 봐야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내어 그의 영화를 봐야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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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권도라는 무술은 이소룡이 창시했고 그것을
'절권도는 무술에 대한 하나의 개념 즉 철학이었다.
그것의 부정은 하나의 센세이션같았다
이소룡에 관한 수많은 방대한 영상과 책들을 보았지만 절권도에 관련된 이야기뿐 아니라
그 안에서 부유한 삶을 살았다고만 기억했던 지난날. 난 이소룡은 우리와 같이
인간 이소룡이 스크린속에서 얼마나 강인한 정신과 육체의 소유자로 이소룡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었으며
'모든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창조해야 해.
오늘날 우리는 그런 감정을 자신의 자아를 잘 통제하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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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려는 이는 반드시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인내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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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31세 당산대형을 첫 영화로하여 1973년 33세를 타계로 용쟁호투가 마지막 영화 였으니 3년여 동안의 우리가 기억하는 영화 속 이소룡의 모습이 아닌, 나머지 30년의 이소룡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그의 다양한 생각들과 신념이 오롯하게 담겨져있다, 이소룡이 출연한 다섯편의 영화는 그 당시 멋있게만 보이던 무술의 세계와 통쾌한 몸동작으로 인간이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극치의 미학적 가치를 보여 주며 커다란 몸집의 악당을 단숨에 쓰러뜨리는 명장면 등등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의 33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한 생의 모든것을 알고 싶어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불과 다섯 편의 영화로 화려한 ‘영웅’이자 ‘전설’로만 기억돼온 그다. 여기에는 물론 서른두 살이라는 나이에 갑작스레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의 섬광 같은 이력 탓도 크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소룡이 무술영화 배우로 성가를 높였던 건 사실 채 2년이 되지 않는다. 그 이전에 그는, 홍콩에서 5년간 영춘권을 수련했으며 이후 미국에서도 12년 동안 자신의 무술과 그 철학을 발전시키고 가르치는 데 전력했던 무술가였다. 영국령 식민지 홍콩 주민이자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데 필요한 삶의 방법이자 구도의 방편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뵤오~’로 널리 알려져 있듯이, 괴성이 독특했던 액션배우 혹은 헐리우드 최초의 아시아계 월드스타로만 기억되기 일쑤다. 그러나 그에게 무술이란 영화 이력에 덧붙는 장식물 따위가 아니었다. 무술은 몸의 언어일지언정,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뤄 구현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무술로 불릴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소룡은 미국에서도 12년 동안 자신의 무술과 그 철학을 발전시키고 가르치는 데 전력했던 무술가였다는데 그의 절권도 철학에 대한 철학과 짧지만 강렬한 삶을 통해 그가 느꼈던 미국이라는 사회에서의 개척을 위한 외로움과 또 뜨거운 정열로 고통의 한가운데서 고뇌한 인간 이소룡의 모든것이 담겨 있다.
문득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안다는 건, 그 사람이 표현한 것 중 인상 깊거나 내가 기억하고 싶은 모습으로 그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소룡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 아니 이소룡이 되고 싶다는 욕망. 과장되게 말하자면, 이 욕망이 내 교복의 나날을 견디게 해주었다. 난 그 국화빵의 시절을 이소룡 스타일에 대한 집념으로 통과해냈다. 교복 상의에 차이나 의상처럼 콘티를 팠고, 체육복에도 이소룡의 노란 추리닝처럼 양 옆으로 줄무늬를 넣었으며, 어깨가 파진 러닝셔츠만을 입고 당당하게 신당동 떡볶이 골목을 활보했다. 그러다 교련선생이나 선배들에게 걸리면 대걸레 자루나 알루미늄 야구배트로 엉덩이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흠씬 두들겨맞곤 했다. (난 유난히 키가 컸던 까닭에, 선배들에게 자주 시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우우, 마음속으로 괴조음을 질러댔다. 그 마음의 괴조음이 고통을 치유해주었다. 이소룡의 괴조음이 상대방의 의도 이전으로 파고들어가 상대방을 제압하듯, 내 마음의 괴조음 역시 상처 이전으로 날아가 상처를 무화시켜주었다. 요컨대 이소룡의 괴조음은 당시의 나에겐 그 암울한 날들을 이겨낼 수 있는 신비한 주문과도 같았다. (p.34~p.35 시인 유하의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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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에게는 무술계의 전설과 같은 영웅이 두명이 있었다. 당시는 프로레슬링이 전국민의 사랑받는 스포츠였던 시기인지라 김일선수와 안토니오 이노끼선수간의 빅매치리도 있는날이면 온 장안이 모두 TV앞으로 모이던 때였다. 이 세계적인 프로레슬링의 양대산맥의 스승이었다는 '역도산'이라는 프로레슬링 선수는 나에게는 전설속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또 한사람이 바로 '이소룡'이다. 이소룡을 생각하면 노랑색의 추리닝과 어릴적에 학교앞 문방구에서 파는 쌍절곤을 가지고 놀며 아뵤오~를 외치며 애꿎은 우리 강아지만 괴롭혔던 기억이 나 피식 웃음이 난다.그가 출연했던 이소룡. [당산대형]과 [정무문], [맹룡과강], [사망유희], 그리고 [용쟁호투]까지 모두를 섭렵하고 나서도 그의 영화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서운한 감정을 느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왜그렇게 이소룡에 열광했는지 그 이유는 잘모르겠지만 당시 어린나이에 태권도를 배우던 시기였으니 당연히 무술인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였지 않았겠나하고 추측해본다. 아뵤~" 하는 독특한 기합과 작은 체구에 날렵한 몸짓 현란한 동작 화려한 발차기로 기억되는 그의 카리스마있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어린시절의 나를 완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정말 폼나는 사람이었다. 문득 그가 다시 그리워 진다. 서른 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우리곁을 떠나기엔 정말 안타까운 카리스마 넘치던 배우였던 그를 추억하며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은 짧지만 강렬한 삶으로 전설이 된 세계적 무비스타이자 무술지존 이소룡의 삶에 대한 평전이다. 짧은 생애지만 매 순간 치열하게 그리고 그 짧은 생애 동안 이루었다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한 사유의 모험을 감행했던 ‘철학자의 면모를 가진 이소룡’을 소개하는 책이다. 1부 “소룡의 삶, 그리고 일”과 2부 “전설, 그리고 진실”, 3부 “투혼: 이소룡은 누구인가”로 구성돼 있다.
1950년대 홍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소룡은 아역배우로 23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이름을 날리기도 했고 넉넉한 집안 배경 덕분에 명문 사립학교에 다녔지만 공부보다는 '뒷골목'에 관심이 많았다. 식민 지배국 영국에 반감을 가져 영국인학교의 백인 아이들과 패싸움으로 일상을 보냈고 결국 퇴학까지 당하게 된다. 그는 얻어맞은 것은 인정해도 패배는 절대 인정하지 않았던 "싸움에 환장한 놈"이었다. 그는 홍콩에서 5년 동안 소림무술의 일종인 영춘권(詠春拳)을 익혔고, 열아홉 살에 미국으로 가서 12년 동안 무술과 영화에 투혼을 불사른다. 온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제 그의 앞길은 부와 명예로만 가득 찬 듯했다. 그러나 그 모든 영광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을 때 그는 갑자기 쓰러졌고 이내 다시는 일어나지 못 했다. 현재의 삶,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살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던 이소룡은 많은 미스터리를 남기며 말 그대로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났다.
이소룡의 가장 큰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는 간혹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데 곤란을 겪을 정도로 감정의 기복이 큰 사람이었다. 급하고 뒤틀린, 과격한 성격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했다. 이 책을 본다면 이소룡이 단순한 무술가가 아니라 철학적인 면모까지 갖추고 있는 최고의 무술가이자 영화배우였다는 것을 깨닫게될 것이다. 자신 스스로 창안한 절권도가 어떤 ‘고정된 체계’로 굳어버리는 것을 두고두고 우려하고 경계했던 것만큼이나, 자신의 바램과는 무관하게 고정된 이미지로 굳어져버린 채 기억된 지 오래인 셈이다. 벌써 그가 사망한 지 30여년이나 흘렀다. 삶은 허망하게도 불현듯 그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을 각인시켜준 그의 사망소식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던 당시 초등학교학생이었던 나의 나이도 어느덧 그 숫자만큼이나 순식간에 더해졌으니 세월의 무상함이 더욱 느껴진다.
이 책에 있는 그의 철학을 하나하나 볼때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깨닫게 해주는 그런 책이다. 이소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이라고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내가 진짜 세상이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싶다!.정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게만들고 힘을주는 지침서가 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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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노랑색 체육복을 입고 쌍절곤을 돌리며 ‘아비오~’하는 괴음 이다. 내가 이소룡을 처음 접한 건 중학교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후로 수년에 거쳐 이소룡이 출연했던 몇 편의 영화를 더 보았었다. 개인적으로 액션영화를 좋아했었는데 서양액션보다는 동양액션물을 좋아했었다. 아무래도 우리와 비슷한 체격을 이소룡의 대를 이은 액션 배우로는 성룡과 이연걸이 있는데 이들은 이소룡보다 한단계 아래 단계라 한다. 또한 외국액션 배우 중에는 스티븐 시걸과 척노리스가 나오는 영화를 자주 봤었는데 그 들 또한 이소룡보다 한 두수 정도 낮은 단계라고 한다. 이 말 한마디가 그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가 될것같다. 이 책에서 이소룡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600페이지가 넘는 지면을 통해 자세하게 서술해 놓았다. 이 책을 통해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들을 아래와 같이 나열해 보았다. 이소룡의 아버지는 연애인(?) 이었고 이소룡 또한 아역배우였다?? 이소룡의 아버지는 이해천으로 광동지방의 경극배우 였고 그의 아들에게 태극권을 가르쳤고 ‘금문녀’ 라는 영화에 소품 같은 형태로 최초 출연하였고 세로상, 인해고홍, 뇌우, 귀여운 여자, 그린. 호넷트, 롱 스트리트등이 있었고, 진짜 영화는 1971년에 찍은 당산대형, 이듬해에 찍은 정무문, 맹룡과강, 다음해에 찍은 용쟁호투가 있고 1973년에 사망유희라는 영화를 찍다가 사망한 것으로 나와있다. 이소룡이 배운 영춘권은 정통이 아니라 수정된 영춘권이다?? 윌리엄 청이 엽문 사부가 생전에 완전히 상이한 두가지 영춘권을 수련했다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엽문 사부보다 두 세대전에 영춘권을 전수 받은 대사부 량찬이 그의 아들에게만 영춘권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를 볼래 훔쳐본 이가 있었는데 그가 이소룡의 아들 브랜든 리는 영화 촬영 도중 권총에 맞아 죽었다?? 브랜든 리가 스물아홉번째 생일을 맞이한 총이 발사되는 것처럼 효과를 내기 위해 불꽃이 튀는 순간 모조 탄환도 함께 발사되면서 그럼 끔찍한 결과가 초래된 것이라 한다. 사실 이부분은 언듯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이소룡이 죽기 전날 밤 베티팅페이라는 여배우와 함께 있었으며 그들은 연인사이였다?? 베티팅 페이는 불륜사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였지만 펠릭스세니스라는 인터내셔날 타임즈 발행인에게 고백했으며, 이소룡과는 약 1년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이소룡은 철학을 공부 했었다??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다가 중퇴하였으며, 붓다, 노자,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을 공부 했으며, 무술에 관련된 모든 책들을 섭렵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그의 철학적인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띄기도 한다. ‘물을 컵에 다르면, 그것은 컵이 되고 물을 찻주전자에 다르면 그것은 찾주전자가 됩니다.’ ‘무술이 담고 있는 진리는 개개인마다 다르다. 이 진리가 무엇인지 자신의 경험을 되짚어 봐라. 유용한 것은 받아들이되, 쓸모없는 것은 내버려라. 그리고 이 진리를 자신의 경험과 접목시켜라. 창조적인 인간은 어떤 무술양식 또는 체계보다 더 귀중하다. ‘등이다. 이소룡은 차차차 우승자이다?? 이소룡은 쿵푸를 익히면서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세게적으로 열품이었던 ‘차차차’를 잘 추어 1958년 홍콩에서 열린 차차차 경연대회에서 이소룡은 우승하였다고 한다. 이소룡을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 이소룡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가 단지 노란색 츄리닝을 입고 쌍절곤을 돌리고 유난히 활배근이 빼어난 무술인 이면서 영화배우 였다는 사실밖에…. 원래 무술은 육체적으로 상대를 제압 하기 위하여 나온 것이 아니라 정신 수양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소령은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의 족적은 영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소령 하면 不狂不及이란 말이 생각난다. 어떤 일이 미친듯이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요즘 전 세계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어 고통 받는 이들이 많은데 낙심하지 말고 이 말을 마음속에 새긴다면 고통이 성공으로 부활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좋은 점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소룡이란 사람에 대해 좀더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다음은 그의 열정이 책을 통해 전해 온 것 같은 느낌이어서 좋았다. 그리고 한국 무술인 지한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