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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가운데서 깨달음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반짝하고 떠오른 내면의 카타르시스일까? 아니면... 이론과 학문에 의해 탐구되는 본질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삶이란 문제를 떠올리면.. 솔직히 할말이 많은 것 같다가도 이내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입술을 살며시 깨물게 된다. 솔직히 누군가 나에게 "그래.. 인생이 무엇인 것 같아?" 하고 묻는다면 나는 그냥 "글쎄.. 모르겠어" 라고 말하며 베시시 웃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인생이라는 명제 앞에서 대두되는 수 많은 물음을 뒤로 하고 오늘.. 법정 스님의 "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었다. 마무리라고? 아~ 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이질감 느껴지는 제목은 뭐람^^ 아직 해 보고 싶은 많은 것들.. 시도도 해 보지 못해 계획으로만 머리속에 존재하는 많은 일들.. 삶의 풍요.. 마무리란 말은 뭔가 이루고 나서야 할 수 있는 말 아니었던가?
그랬다. 법정 스님의 글은 내가 소유를 원하고 풍요를 갈망했을 때, "무소유"의 미덕을 강조했고... 내면의 외로움으로 몸부림 치고 있을 때, "홀로 사는 즐거움"을 역설하셨고... 이제 막 뭔가를 시작 해보자고 마음먹은 내게 "아름다운 마무리"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맞다. 법정 스님이 쓰신 글들의 제목부터가 내 인생의 딴지와 같은 것이었다.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전"으로 불릴 만큼 내면에 큰 영향을 준 "무소유"... 여기 내가 읽은 책 "아름다운 마무리"는 법정 스님이 그토록 사람들의 내면에 일깨우고자 했던 "비움"과 "무소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청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이 후회없는 삶이었길 바라고.. 아마.. 내게 있어서도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 이 땅에서의 생명줄이 풀어지는 그 날 내 삶이 어땠을까 되돌아보며 "마무리"에 대해 생각 하게 되겠지...
그러나, 인생의 불확실성을 생각 할 때... 우리는 매사.. 그 "마무리"에 대해 생각 해야 할 것 같다. "삶은 순간 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고 말씀 하신 법정 스님의 말씀 처럼 말이다. 나도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내 삶이 아름다웠었다고 말이다.
사실, 나는 불교인이 아니다. 하지만, 내면의 성찰과 인생에 대한 "정화"를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돌이켜 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법정 스님의 말씀은 내게 뼈에 사무치도록 다가온다. 물질과 심리적 견재라는 피고름으로 얼룩진 우리들의 삶은 결국 정화해야 하고 깨끗이 비워내야 하고... 바람이 한가로이 거니는 향기로운 곳이 되도록 하야 한다고 나는 생각 한다.
법정 스님은 이 책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 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준재계에 대해 감사 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라고 말씀 하신다.
그래... 이곳 지상에서의 삶은 어쩌면, 고통스러웠을 지라도.. 어쩌면, 힘들고 지친 내면을 만들어 낸 것이라 할지라도... 나를 내적으로 성장하게 해 준 곳일지 모른다는 생각 을 해 본다. 그러는 동안 나는 가치있고 빛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인생 가운데서 많이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말이다.
불교인이 아니지만, 이렇듯 내면의 것들을 떠올릴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 한다. 이 책 "아름다운 마무리"의 글 하나하나가 한지에 아름다운 먹선이 살며시 스미듯 .. 한자취.. 그리고 또 한 자취... 멋스럽고 고요한 기품의 수묵화를 그려내고 있다.
나의 마무리는 또다른 시작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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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의 책꽂이에 못보던 책이 꽂혀있는 것을 보고, 첫 장을 읽어나가기 시작한 것이 이 책을 읽게 된 동기였다. '무소유'의 상징으로 알고 있는 법정 스님. 한 차례도 그 분의 저서를 접해보지 않았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접해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막힘없이 술술 읽어나가면서 책장을 덮어나가는 순간, '순리'에 대해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시는 좋은 책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인상깊었던 구절 몇 가지를 꺼내놓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스님은 직접 채소를 키워서 드시는 것을 좋아하시고 여러 이야기에서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계셨다. 책을 읽는 내내 신선한 상추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적당히 숨이 죽어 된장국 속에서 어우러질 아욱의 모습이 떠올랐다. 본가에 오기 위해 종종 기차를 이용하는데,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들어오려고 나가는 길에 배추밭이 보인다. 수확을 마치고 난 배추밭은 황량하고 지저분한 마무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수확되지 못한채 서리를 맞은 배추의 모습은 황량한 밭의 모습을 더 황량하게 만든다. 법정 스님은 이런 모습을 지적하셨다. 이렇게 황량하게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맛있는 한 끼를 제공해줬던 채소들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을 이야기하셨다. 분명 '아름다운 사람이 머문 자리는 그 자리까지 아름답다'라고 하는 화장실 명언이 있듯 진짜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마무리'가 중요하지 않을까?
● 욕심을 버려라 법정 스님의 다양한 일화속에서도 '욕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수집이고 나쁘게 말하면 욕심을 보이는 몇 가지가 나에게도 존재한다. 매년 수없이 많은 옷을 구입하지만 그만큼 매년 입을게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화려하고 다양한 옷을 입는 것도 아니고, 늘 비슷한 느낌의 비슷한 옷들을 입곤 한다.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현재 내가 지내고 있는 공간이 평생 나의 공간이 아닐 수 있다는 점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어떤 물건을 필요이상으로 가지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행동이며 욕심인지 조금은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물건을 하나 나의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고민하고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욕심없이 구입하고 소유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 생로병사의 중요성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바로 '생로병사'에 대한 설명이였다. 태어나서 늙고 그리고 병이 들어 죽는다는 생로병사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하고 감사한 과정인지에 대한 설명이였다. 사람들은 늙고 병들어 가는 과정은 마냥 싫고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법정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것이 순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생에서 사라는 과정으로 바로 연결되지만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바로 '생로병사'라는 것이였다. 이렇게 보니 늙고 병드는 과정 또한 자연스럽고 순리에 따르는 과정이라는 것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법정 스님의 식견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감탄할 수 있었다.
법정 스님의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확고한 철학과 함께 살아오신 분의 멋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역시 한 줄의 확고한 철학이라도 나의 평생과 함께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만큼 철학을 갖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고 더욱 정진해야겠다. 좋은 가르침을 접할 수 있는 책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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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속인(俗人)으로 일상에 부대끼며 살다 보면 일련의 일들이 많은 번민을 남기고 풀기 힘든 숙제를 줄 때가 있다. 2009년도는 특히 나에게 마음의 짐이 많았던 해였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어머니의 투병 생활은 마음 편히 살아가기 힘든 시련 속에 가족들을 옭아매고 형제들 간의 정까지도 갉아 먹어 나갔다. 장기간의 입원으로 중간에 치료비를 정산할 때마다 형제들의 경제적인 압박은 더했고 부양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동서의 푸념까지 줄을 이었다. 모두들 살아가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요즘 밥벌이도 시원치 않은데 십시일반으로 내야 하는 병원비 압박도 컸을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병원비를 분담하기 힘들다는 이들 앞에서 근원적인 효도를 말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며 녹차 한 잔 을 마신 뒤 지인이 선물해 준 책 아름다운 마무리를 펼쳐 들었다. 병마가 자신을 기습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건강을 회복하였을 때 비로소 건강한 육신으로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더욱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진정한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음을 절감하면서도 늘 신기루 같은 환영에 매달려 왔는지도 모른다. 스님은 화전민이 떠나버린 빈 집을 개간하여 극히 최소의 물건만 갖추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고 있다. 늘 깨어있는 의식으로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현재를 불사르는 모습은 숭고한 삶의 연속이라 허랑방탕하게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게 한다.
아직까지는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고만 여겼던 이들의 급작스런 부음은 인생의 마무리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무한히 살아갈 것처럼 욕심을 채우려 아귀다툼을 벌이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마음 비우고 욕심을 내려놓음이 아름다운 마무리라 일갈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범부들의 삶이다. 내려놓지 못할 때 마무리는 일어나지 않으며, 그것은 또 다른 윤회와 반복의 여지를 남긴다 했는데 나 역시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갈 때 비로소 아름다운 마무리는 가능해진다고 했다. 비워야 내용물을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을 채워 충만해질 수 있다.
마흔을 훌쩍 넘기고 지나 온 시간을 돌이켜 봤을 때 남는 것은 잘한 일보다는 못한 일이 더 많이 떠올랐다. 지금이 바로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간임을 깨닫고 타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마음을 풀어야 할 때인 듯하다. 회한이 남는 일들은 깡그리 잊고 용서하며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염려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길밖에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좋은 책의 내용이 나 자신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삶을 강조하고 실천의 중요성에 힘을 실어 두고 있다.
거리를 두고 내면을 응시하며 일상을 관조하는 가운데 느낀 삶의 가치는 행간을 따라 읽다 보면 맑은 영혼의 나를 만나게 된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스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얻은 일상 속 가르침은 잔잔한 울림으로 깨어 있는 의식으로 탐욕을 버리고 살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일러 준다. 이분법으로 재단하며 적과 동지로 편을 갈라 생활하던 자신에게 타인을 포용하며 살아가는 가르침을 주고, 때로는 세상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제자를 이끌어 주는 선지식으로 스님의 가르침은 그 어떤 법문보다 강한 울림을 준다. 스님이 말하는 '아름다운 마무리'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상투적인 삶 속에 깃든 진부함을 벗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힘차게 내디뎌야만 한다. 타성에 젖어 안이하게 살던 자신과는 결별하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새해가 밝기 전 아름다운 마무리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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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저자가 남긴 ‘무소유’라는 표현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안겨주고 있다. 속세를 벗어나 수행하던 승려였기에 ‘무소유’의 실천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뭐든지 넘쳐나는 자본주의 환경에서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지금은 ‘미니멀리즘’이라는 삶의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이해된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이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했던 저자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저자는 같은 제목의 에세이를 통해서 ‘아름다운 마무리’의 다양한 의미를 풀어내고 있지만,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라는 표현이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곧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라는 의미를 거듭 되새겨보았다. 이 책에서는 ‘무소유’를 넘어 ‘놓아두고 가기’를 새로운 ‘행동지침’으로 삼은 사연을 풀어내고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을 필요한 이들과 나누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삶의 자세를 일컫는 것이라고 하겠다. 소로우가 2년여 동안 머물렀던 월든의 숲속을 찾아 그 흔적을 더듬어보기도 하고, 자식들에게 보낸 서간첩을 읽으면서 연암 박지원의 마음을 기리는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도 있었다.
아마도 글을 쓸 당시 한창 논란거리가 되었던 ‘한반도 대운하는 안 된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서, 그것이 우리의 ‘생태계를 크게 위협하고 파괴하려는 끔찍한 재앙’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특히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터전으로 인식하는 ‘인디언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자’고 말하는 내용도 있다. 수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접하게 되었음을 밝히면서, ‘읽고 나서 남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삶에 대한 감사’하게 여기는 것을 아름다운 마무리로 꼽는 삶의 자세를 통하여, 자칫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을 잔뜩 품었던 나의 일면을 되새겨볼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느리고 불편하게 살자!’고 다짐하지만, 여전히 조금 더 빠르고 편한 것을 찾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았다. ‘무소유’를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저자 역시 ‘때깔 고운 도자기를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고백을 들으면서, 여전히 책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제는 무엇엔가 욕심내기보다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생각해 봐야겠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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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에 홀로 살면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한 달에 한 편 쓴 짧은 산문집을 모은 책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남기고 있다. 출가 이후 생의 대부분을 산중 오두막에서 홀로 수행하면서 단순하고 청빈한 삶의 모습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던 법정 스님의 본래의 모습을 만나게 해주는 책이다.
이번 산문집에는 침묵과 고요, 간소한 삶과 선택한 가난, 그리고 병상에서 건져 올린 가치 있는 삶의 기술에 대한 글들이 담겨 있다. 과속하지 않고 음미하면서 천천히 살아가기, 자연과 함께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내려놓기와 단순한 삶... 법정스님이 스스로 선택한 자유인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책에 소게된 수많은 이야기중에서 심금을 울리는 부분들을 정리해 본다.
행복할 때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를 피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바라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다른 맛을 느낀다.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소개된 많은 이야기들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스님이 왜 그런 책들을 좋아하는느지, 스님 개인적으로 어떤 사연에서 그런 책들과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는지를 느끼면서 조용히 미소짓곤 한다.
순수한 감동과 울림이 있는 이 책에서 독자 개인개인이 갖는 느낌은 하나하나 다르면서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다. 리뷰를 통해 그 느낌을 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다.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내면의 자신의 모습을 만나고 싶을 때 펼쳐 보면 좋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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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삶을 참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시고 이제는 고인이 되신 이분을 뵈러 송광사에 간 적이 있다. 서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이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 때여서 스님은 찾아오는 세인들을 피해 자리를 옮기시고 난 후여서 뵙지 못하고 돌아왔고, 그 이후로 늘 뵙고 싶다는 마음만 품고있엇을 뿐 결국 한번도 뵙지 못한 것이 그 분의 책을 대할 때마다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책 아름다운 마무리는 2008년 11월에 초판이 나왔으니 스님의 작품 중에서 비교적 최신작인 샘이다. 몸이 편찮기 시작하고 나서 쓰신 글이라 곳곳에 제목을 닮은 스님의 인생 마무리가 녹아있다. 부자란 집이나 물건을 남보다 많이 차지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불필요한 겄들을 갖지 않아 마음이 물건에 얽매임 없이 홀가분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스님의 무소유 정신도 곳곳에 보인다. 이런 글들은 늘 나를 부끄럽게 한다. 떨어진 양말 한 짝조차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인 나는 매사에 도대체 무슨 미련이 이리도 많은 곰탱이란 말인가? 모자랄까 봐 미리 준비하고 쌓아 두는 마음이 곧 결핍이라는데 버려야 할 것도 제대로 못버리는 어리석음은 무어라 말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스님의 책이 좋다.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나를 돌아 보게해서 좋다. 가끔이라도 대대적으로 주변을 정리하게 해주어서 더욱 좋다. 그래도 여전히 버림보다 끌어안음에 익숙할 나에게 스님은, ' 비우라,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라' 하신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라 하신다. 진정한 내려놓음과 비움이 가져다 주는 충만함으로 자신을 채우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마무리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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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 어느 누구의 주례사에서 그 부부에게 한달에 두권 산문집과 한권의 시집을 빌려보지 말고 꼭 구입해서 읽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한동안 소설만 읽다가 요즘에는 산문집도 꽤 많이 읽게되며 새삼 산문집에 맛을 들여가고 있다. 짧은 글들이지만 그 글속에서 글쓴이의 삶과 생각들, 그 느낌들이 상당히 기분좋게 다가오며 나 또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스님의 글들은 몸소 비움을 실천하셔서 글을 읽고 나면 내 삶을 뒤돌아 보고 반성도 하게 되니 생각의 창이 열리는 것 같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글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 ~~~~~~ 22페이지 중에서 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서 콕 막힌 사람들이 더러 있다.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때 열린 세상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책에 읽히지 않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책에는 분명히 길이 있다. ~~~~~~ 120페이지 중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며 탐구의 지름길인 독서의 필요성을 알려 주시며 좋은 책들도 소개해 주신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까지 몇 그루의 나무를 심고 돌보았는지 물으신다. 나무를 심고 보살피는 일들이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이라며 자연을 가까이 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신다. 많이 배우며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기를.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말씀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시간이 조금씩이라도 빌때마다 책을 가까이하는 내 습관이 기분좋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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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법정 스님의 책들이 동이 난다하여 구비해 놓은 <아름다운 마무리>. 보기도 아까워 책꽂이에 고스란이 놓여만 있던 이 책을 탐내는 자가 있어 주고, 다시 구비했다. 무소유라 했거늘... 오늘은 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일 중간중간 읽게 되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며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또한 아름다운 마무리는 진정한 내려놓음에서 완성된다고 한다. 법정 스님은 송광사 뒷산 불일암에서 홀로 산 17년과, 혼자 땅을 일구며 오두막에서 홀로 지낸 강원도 산골에서의 17년 삶을 고스란히 이 책 속에 담으셨다. 한장 한장 읽을때마다 자연 외에는 그 어느 누구와도 접촉을 하지 않으셨던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이 녹아있고, 때론 혼란스런 세상에 질타를 하실 때도 있었으며, 똑바로 살지 못하는 세속 인간들에게 따끔한 충고 한마디도 하시었다. 그리고 육체에 병을 가지셨을 때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추는 게 아름다운 마무리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다. 법정 스님의 입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인 것이다. 세상을 들썩들썩하게 했던 스님의 입적은 앞으로도 수십, 수백년간 그분의 기록과 말씀이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다. 이 책엔 자연을 벗삼아 인간의 근원적인 욕심을 뛰어넘어 비움을 통해 살아온 날들에 감사하며, 용서하고, 이해하는 스님의 청초한 풀 한포기와 같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스님을 풀 한포기에 빗대었으나, 그만큼 그분은 세속과 멀리하며 인간의 순수 본질에 따랐던 세기에 더 없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의 하나 하나 행동과 말씀을 <아름다운 마무리>를 통해 내 머릿속에 채워넣을 수 있어서 좋았고, 오랫동안 잊지 않는 내가 되리라 결심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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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많은것에 시간을 허비하고 너무 많은것을 잃고 산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얼마나 고귀하고 내 삶이 행복한지도 모른체 하루를 시작하는 일들이 허다하다.
한 친구가 부모님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단다.
어찌 도움줄지 몰라 그저 묵묵히 바라만보다 어느날 내게 책 한권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건...법정 스님이 쓴 아름다운 마무리...
이거다 싶어...그 친구에게...그리고 주위 지인들에게 일일이 다 보내어줬다.
나 역시 삶에 대한 지침에 정신도 육체도 망가져가는 싯점에 이 책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읽어내려가기를...
스님은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아둥바둥 사는 삶이 다 부질없음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하루 하루 일상을 바탕으로 적어내려가는 글들속에 내 가슴속깊은 응어리를 하나하나 풀어헤쳐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마음으로 다들 읽었을까?
아무튼...무소유라고 떠벌려도 다 받는 중생을 보며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던 말씀이 꼭 우리네 삶을 얘기하는것같아 나 또한 부끄러워 잠시 읽기를 멈춘체 지난날 나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였다.
하루하루 일기처럼 써내려가는 이야기속에 간간히 적혀있는 삶의 지침서들 그밖에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쇼의 묘비명 글귀들 어느것하나 피해갈수없는 우리네 삶을 미리 알려주기라도 하는것처럼 반성과 다짐으로 다가오는 내용들 뿐이다.
결국은...인간이기에...어리석고...그 어리석음으로 많은 것들이 망가져가고 있다는걸 경고하는게 아닌가싶다.
내용에 잠시 나왔던 대운하에 대해서도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을 잊은체 오직 돈에 눈이 멀어 선을 악으로 갚는 인간에게 닥칠 위험성을 약간 비치기도 하고..우리는 앞으로도 얼마나 자신의 망각속에 허덕이며 살지 모른다. 다만... 얼마나 삶에 대한 깨달음을 익히 아느냐에 따라 삶의 무게도 가벼워지지 않을까싶다.
끝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으며...틈틈이 괜찮은 대목을 적어보았다.
p57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p77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 -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쇼의 묘비명 -
p78~79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말라.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지 말라. 자신의 행동을 항상 살피라. 하느님이 어디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공허한 말, 남을 웃기려는 말을 하지 말라. 다툼이 있었으면 해가 지기 전에 바로 화해하라. - 성 베네딕도 생활 지침서 -
p138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한번 내 식대로 살아 보기 위해서였다. 즉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인생이 가르치고자 한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해서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을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하는 일이 없도록하기 위해서였다. - 소로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