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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 말이 그야말로 옛말이 돼 버린 것 같다. 젊음을 추구하고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은 나이를 불문하는 추세가 돼 버렸다. 성형의학과 피부과 시술의 도움을 받아서 마흔이 넘어도 주름이나 잡티도 없이 팽팽한 얼굴에 보톡 스나 레이저 시술 등으로 젊어보이긴 하되, 그 사람만의 고유한 분위기와 개성이 사라져버린 비슷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많아졌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더 젊고 더 예뻐 보이기 위해서 사진을 찍어도 포토 샵에 보정은 기본이 돼버린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만약 조선시대 화가가 환생해서 현대인의 얼굴을 초상화로 남긴다면 어떤 그림을 남겼을까?
얼마전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열렸던 '초상화의 비밀'전에 다녀왔는데, 그때 전시된 초상화, 주로 조선시대 초상화는 그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외관상의 미추(美醜)를 떠나 있는 그대로의 얼굴에 주름이나 검버섯 같은
노화의 흔적은 물론이고, 사시나 마마자국 까지 전혀 감추지 않고 적나라 하게 드러낸 초상화가 적지 않았다.
만약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하는 이 책의 제목대로 누가 질문한 다면, 간략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선시대 초상화는 '진실성'을 가장 큰 미덕 으로 삼았다고. 정조시대의 정승이었던 채제공 초상화를 보면 그가 사시라는 것을 알 정도인 것만 봐도, 사실성은 초상화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던 것이다. 물론 외양을 똑같게 그리는 것이 초상화의 최종 목적은 아니었다.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외모를 닮게 하면서도 외모를 넘어 대상 인물의 정신까지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조선시대 초상을 전신 (傳神)이라 일컬은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김은호가 그린 초상화가 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지 이해가 갔다. 조선의 기준으로
김은호가 남긴 초상화는 한국인의 그것이라고 할 수 없는 얼굴이었으니, 가짜에 가까웠
던 것이다.
조선의 18세기는 문화예술의 융성기였고, 그 중에서도 회화의 발전은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산수화에서는 사실에 가까운 우리나라 자연을 담은 진경산수화가 등장했고, 양반이 아닌 민초들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가 등장했다.
성리학의 관념성을 한꺼풀 벗겨낸 현실을 담은 작품들이 그 면모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런 사실성에 집중하는 회화의 추세에 발 맞추어 초상화 역시나 더욱 사실적인 표현 이 정밀해졌다. 이렇게 사실과 객관성을 세계를 담아낸 것은 바로 과학의 정신의 발로라
할 수 있는데, 초상화에 사실성을 높여가는 그 과정에서 필자는 카메라 옵스쿠라라는
광학 도구의 도움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암실이나 밀폐된 공간에 작은 구멍을 통과해서 들어논 빛이 영상 으로 변하는 자연현상을 이용한 광학적 투영기구이다. 서양에서도 카메라 옵스쿠라가 풍경화 등 회화가 발전하는데 한 몫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중국을 통해 들어온 이 카메라 옵스쿠라의 사용 덕에 조선의 초상화 역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얼굴의 굴곡이나 주름을 통해, 또 옷의 주름선을 통해 입체감이 높아지고, 투시도 법을 활용하는 등 서양화법을 수용하면서 작품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더욱 정밀한 표현과 아름다움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학의 발전은 그 사회의 모든 분야의 변화를 끌어내는 동력이 되듯, 카메라
옵스쿠라의 활용은 과학이 예술에 침투하면서 예술의 변화를 촉진하는 기폭제가
된 것이었다. 그 변화는 실학정신과 잇닿아 있었고, 시대적인 변화나 정신을
반영하고 있었다. 객관성과 사실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조선사회가 근대성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익히 알려진 '윤두서의 자화상'은 얼굴의 입체성이 드러나면서 후대의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림을 보면 얼굴의 주름을 세세하게 묘사한 것이나 특히 한올한올
사실적으로 그려진 수염은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였다.
조선의 초상화는 주로 옷의 주름이나, 얼굴 묘사에서 입체감을 살리고 있는데, 윤두서 자화상을 보면 얼굴의 주름살이나 굴곡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그 전대 작품과
비교하면 한눈에 입체감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입체감 외에도 그의 강렬한 눈빛이나 당당한 자존감을 잘 표현하고 있기에 남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대표적인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초상화의 비밀'전에서 본 윤두서 자화상은 명불허전이었다.
그의 눈빛은 강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윤두서의 눈과 내 눈을 맞추며 한참을 그
자화상을 떠나지 않고, 들여다 봤다. 그 강렬하고 당당한 눈빛은 조선 초상화 중
단연 압권이었고, 초상화를 보고 있는 내내 그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윤두서의 입체기법은 곧바로 다른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김홍도나 이명기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화원들의 작품에 수용됐고, 조선의 초상화는 한차원 더 발전할 수
있었다. 18세기 후반 전통화법에 서양화법을 수용한 조선 초상화는 근대적인 변모를 이루었고 세계적인 수준에 견주어도 결코 손색이 없는 예술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초상화의 비밀'전에서 보고왔던 초상화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책 속에서 인용된 작품이나 언급되는 작품이 아는 작품이라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직접
눈으로 본 작품과 책으로만 접하게 된 작품은 체감되는 감정이 확연하게 달랐다. 반갑기도 했고,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때는 몰라서 무심하게 지나쳤던 초상화들의 가치나
아름다움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작품들을 연상하며 이 책을 읽으니 초상화를 통해 얼굴의 외양만이 아닌 정신까지 담아 내려했던 화공이나, 문인화가들의 예술혼이 한결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아쉽게도 그뒤 초상화는 조선의 몰락, 사대부의 몰락과 궤를 함께 하며 쇠퇴의 길을 걸었다. 초상화의 사실성과 입체감 역시나 뒷걸음질 쳤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에서 싹트고 있던 과학정신과 근대적인 기운이 후퇴하는 징조이기도 했다. 조선의 초상화는 조선 사대부와 지배층을 위한 쟝르였다는 점을 고려할때, 사대부와 조선의 초상화가 운명을 함께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초상화의 비밀'전을 다녀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점
한점 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었고, 많이 보며 감상하는 것이야 말로 작품을 느끼고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또 조선시대 초상화의 형식적인 아름다움과 예술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살필 수
있었다. 막연하게 좋은 작품이라고 느끼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조선의 초상화가 미학적인 기준으로 왜 수작인지를 이해하게 된 것은 내겐 수확이었다.
아름다움은 느끼는 것이지만 동시에 공부해서 배울 수도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애정을 갖고 공부하고, 작품을 자주 보게 되면, 어떤 것이 왜 아름다운지를 감상하고,
감별하는 눈은 트이게 된다는 것, 그렇기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초상화에도 역시나
해당되는 말이리라.
["나는 리뷰어다" 이벤트 참여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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