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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서유기라 함은 대승경전을 구하러 떠난 삼장법사와 세 명의 제자들의 이야기이다. 처음 최인훈의 <<서유기>>를 접하고 가진 의문은 독고준의 <<회색인>> 2부라는 점에서였다. 동양 판타지의 대표인 서유기와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겪는 독고준과의 이음줄은 다방면의 각도에서 바라봐도 찾기 어려웠다. 지극히 현실직시적인 소설에 서유기라? 최인훈의 서유기는 회색인 마지막 유정의 방으로 들어가는 – 무언의 선택적인 결말을 암시했던 – 장면으로 끝이 난 후 “독고준이 이유정의 방을 나설 때..” –p8 로 시작한다. 기나긴 갈등 끝에 유정의 방문을 열었던 독고준은 아무런 행동이나 사건 없이 그대로 방문을 나선다. 그리곤 복도를 지나 자신의 방을 향해 가는 중 형사에게 검거된다. 집안엔 존재할 수 없는 기나긴 통로와 계단을 지나 의사들이 앉아 있는 방으로, 그리고 일본 헌병에게 잡혀 경찰서로 연행 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진행인가?
최인훈의 소설세계는 상반되는 계열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는 크게 사실주의, 반 사실주의로 나눌 수 있는데 회색인과 광장은 사실주의 계열에 서유기와 구운몽은 반 사실주의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김형중 – 문학평론가> <<광장/구운몽>>에서의 구운몽 또한 사랑을 찾아 헤 메는 독고민에게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간판장이(극장 간판 화가) 독고민은 시인들의 선생님이 됐다가 금융업의 사장이 됐다가 혁명조직의 우두머리가 되고 급기야 “얼어붙은 광장”에서 총살 당하기에 이른다. 회색인의 후속작 서유기 또한 구운몽과 비슷한 반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로써 분류된다.
형사들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감금된 독고준은 감방 안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신문을 통해 이상한 광고를 접하게 된다. “이 사람을 찾습니다. 그 여름날에 우리가 더불어 받았던 계시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자신을 찾기 위하여, 우리와 만나기 위하여, 당신이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p14 이는 신의 계시인가? 전쟁 중 학교의 소집 연락 때문에 원산시로 가고 있던 그 여름날을 기억해 낸다. 독고준의 운명을 만난 날. 그 곳으로 가야만 한다는 숙명을 느낀 독고 준. 그렇게 독고준은 기이한 여행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서유기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다. 일제시대 헌병에게 붙들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근대화 이후 형사에게 검거되기도 한다. 또한 제자리만 달려가는 열차를 타거나 논개, 이순신, 이광수 등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혹 다른 사람들도 열차에 타고 있을까 확인해 보기 위해 다른 칸을 향해 가지만 아무리 가도 끝에 도달하지 못한다. 읽다 보면 내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다. 또한 회색인과 가장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점은 현실에 대해 분석적이고 냉철한 “회색인”으로써의 독고준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서유기의 독고준은 신문에서 잘라 낸 광고문구를 통해 막연하게 그 여름날을 찾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는 가볼 데가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다. 기이하게 마주치는 사건의 연속에서 독고준이 하는 말은 저 뿐이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체.
분석적이고 냉철한 독고준을 죽이고 맹목적인 하지만 정확한 근거도 원인도 알 수 없는 목적지로 향하는 독고준을 만들어 낸 대신 이번엔 그의 주변인물, 라디오, 전화기 등에서 수많은 언변을 토해낸다. 회색인에서 끊임없이 사색하던 독고준의 생각들을 그들이 대신해 준다고 해야 할까? 또한 사건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고준을 그 목적지로 가지 못하게 설득하고 제지한다. 그 옛날 전쟁 속에서 학교를 찾아가던 독고준을 역장이 가지 못하게 만류한 적이 있었다. 이런 전쟁 속에 출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란 말로써. 그 역장은 서유기에도 등장하며 열차를 타고 떠나야 하는 독고준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설득한다.
어찌 보자면 서유기는 독고준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혹은 꿈을 꾸는듯한 환상여행이다. 그렇다면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배경 – 스피커나 전화에서 들려오는 정치적 언변이나 학문적 이야기들을 배경처리라고 하자면 – 은 독고준의 내면적인 목소리라 볼 수 있다. 회색인에서 그려지는 독고준은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방황을 하고 있다. 그렇게 갈 곳 없이 방황하는 내면적 갈등을 정착시키려 고집하는 또 하나의 자아일 수 있다. 역장으로 탈바꿈한 내면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독고준을 설득한다. “살아보면 여기 재미를 알게 될 거야. W시로 가보았자 자네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할 걸세.” –p81 하지만 독고준을 이끄는 강철의 새 소리(비행기 – 원산폭격을 감행했던) 와 그 해 여름 속으로 가야 한다는 막연한 의지는 계속해서 정착의 유혹을 거절하게 만든다. “아무튼 이것은 참을 수 없다. 구청에서 만난 사람이라든지 헌병이라든지 또는 역장의 행동으로 보아서, 독고준이 어디론지 여행을 할 모양인 것은 분명하였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를 독고준 자신으로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여름으로, 그 여름 속으로 가야 한다는 것만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으나 그것은 두말의 여지가 없도록 막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이러나저러나 이것은 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는 떠나야 하고 아무튼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p101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떠나야 하는가? 독고준은 두말의 여지가 없도록 막연한 일이라 느낀다. 무엇을 위하여? 스스로에 대한 질문은 서유기라는 환상여행을 통해 수많은 환상을 만들어 낸다. 일본 헌병에게 잡혀있는 논개. 논개는 3백년을 내리 일본 헌병에게 고문을 당하며 독고준을 기다려왔다고 한다. 이제 그녀와 결혼하고 고통에서 해방하라 한다. “저는 지금 그럴 사정이 못 됩니다.” –p47 아마 논개의 구원은 3백년간 일제에 고문당하고 침략당한 조국의 구원과 일맥상통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독고준은 지금은 그럴 사정이 못 된다는 이유.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막연한 이유로 논개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은 채 갈 길을 간다. 조국의 구원자보다도 자신의 목적이 더 중요한. 회색인에서 자신의 에고에 대한 성찰을 우선으로 하던 독고준의 모습은 서유기에서도 동일하게 그려진다.
하염없이 열차를 타고 제자리 걸음을 하는 독고준은 논개를 지나 사학자와 이광수 등을 만나 동일한 문제에 봉착한다. 사학자는 이순신을 등장시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민족성을 설명하고 어떤 민족성, 즉 어떤 형(型)이 가장 바람한지 공동연구를 제안한다. 또한 일제강점기 창씨개명까지 했던 소설가 이광수를 등장시켜 일본 헌병과 “흙”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며, 거기에 창씨개명을 했던 이광수의 심정과 시대적 판단의 오류를 변명하게 된다. 또 다시 독고준에게 던져지는 질문. “자네 소설 쓸 야심을 가지고 있지 않나. 선생님한테 사사하게. 소설 쓰는 법을 여간 잘 가르쳐 주실라구? 머리에 쏙쏙 박히게 말야.” –p210 하지만 그 무엇도 독고준의 목표에 대한 집념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결국 또다시 열차에 오르는 독고준.
중요한 것은 논개, 사학자, 이광수 등이 등장해 독고준을 현혹하는 미끼들은 이미 회색인에서 지독하게도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러한 문제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조국의 구원자라는 타이틀은 약간 오바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성에 대한 문제라고 한다면 대략 비슷하지 않을까? 또한 예술, 종교, 정치, 경제 등 폭넓은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독고준에게 공동연구 제안이나 소설 잘 쓰는 방법 등은 뿌리치기 힘든 강력한 미끼였다. 그런데도 자신의 마음에서 이끄는 소리 – 서유기에서는 왜 가야만 하는지 이유를 망각하고 있지만 – 를 물리치지 못하고 방랑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어느새 가야 한다는 목적만을 남겨놓고 그 이유와 원인은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 도대체 왜 거기에 가야 하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곤 방안에서 잠을 깨는 독고준. 열차 생각 따위 이미 생각나지 않는 꿈처럼 꿈을 꾸었다는 의식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구렁이로 바뀐 몸에 달려있는 손과 발. 팔과 다리가 없어져 버려 그 몸은 흡사 도마뱀을 연상케 했다. 또한 생각지도 못했던 검차원이란 직업을 가지고 있고, 누님은 사라지고 동생 두 명을 부양하고 있다. 하지만 추호의 의심도 없다. 당연히 그렇게 살아온 사람처럼 동생들과 자신의 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방금 전까지 이어온 열차 여행은 한낱 꿈처럼 온데간데 없다.
그러한 은둔 생활 중 독고준은 또아리를 틀고 상념에 사로 잡힌다. 그리곤 생각해 낸다. 지난 여름 햇볕에 반짝이는 두 가닥 레일 사이로 걸어가는 자신을. 그리고 무서운 철의 새들이 덮치는 광경을. 젊은 여자와 함께 방공호 속에 숨어 살의 냄새와 머리칼을 느꼈던 그 기억을.
눈을 뜬다. “벤치에 혼자 앉아서 깜빡 졸았던 모양이다. 그 짧은 사이에 꿈을 꾸었던 모양이다. 꿈의 내용은 싹 솎아지고 그의 머리에 남은 것은 휑뎅그렁한 텅 빔이었다.” –p 237 또 다시 원점이다. 그렇게 독고준은 또다시 열차를 타기 전 역에 혼자 남아 있었다.
이렇게 서유기는 독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상상을 초월한 환상의 텍스트를 반복시킨다. 조금 진도를 나간 것 같으면서도 계속해서 제자리 걸음이다. 대체 이 역에선 언제 탈출하는지 조급함이 밀려들게 만든다. 게다가 지금까지 등장한 역장, 검차원, 헌병, 간호원들은 조금씩의 입장만을 바꾼채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러니 더더욱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 수 밖에.. 이렇게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반복되는 장면 앞에 지쳐갈 무렵 독고준 또한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지 결국 역에서의 탈출을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탈출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갑작스럽게 재판에 회부되는 독고준. “독고준 동무는 이곳까지 오는 중 여러 검문소에서 그의 목적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러가지 질문에 대해서 모두 회피하고 여러 가지 유혹을 모두 거절하였는데 남는 것은 그렇다면 본직이 지적한 목적밖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p273 공화국을 전복할 목적으로 몰아 붙이는 검차원. 잠시의 휴정과 함께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는 독고준은 여기가 그렇게도 막연하게 찾아 헤매던 원산(W시)이란 걸 알게 된다. 독고준은 어릴적 추억에 잠겨 시내를 돌아 다닌다. 라디오에서 방송이 울려 퍼진다. 공화국에 침입한 스파이가 원산 시내를 돌아다닌다는.. 하지만 독고준은 별 신경쓰지 않는다. 준은 운동장과 극장, 토치카를 차례로 돌아다닌다. 하지만 그것들은 준이 지나가고 나면 폭격을 맞은 듯 무너져 내린다. “W시 인민에게 고합니다. 간첩은 시내 곳곳 인민의 재산에 파괴적인 공격을 가했습니다” –p296 간첩의 소행. 그것은 미국 강철의 새가 원산을 폭격했던 것과 동일 했다. 미국 브루주아(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에 가한 폭격. 브루주아의 손길에 의해 붕괴되는 다른 세계의 이데올로기. 그것 이었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는 대립할 수 밖에 없다는 잠정적인 결론. 두 세계의 화해(그 해 여름과 강철의 비행기가 이끈 길)는 한 세계의 이데올로기 붕괴라는 결말을 가져오는 것으로 끝맺음 되는 것이다.
“그는 뒷손으로 문을 닫고 자기 침대에 가 걸터앉았다. 나는 무엇인가를 어겼다고 그는 취한 머릿속에서 생각했다. 누군가를 배신했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이유정은 자기가 들어간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는 온몸이 모닥불이 된 것처럼 섰다가 그대로 물러나왔는가? 그는 일어서서 창문 앞에 섰다. 지척지척 내리는 무거운 비. 독고준은 그 흠씬 젖어 있을 보이지 않는 밤을 유리창 너머로 내다보았다.” –p353
이유정 방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오는 짧은 시간 동안의 환상여행이 막을 내렸다. 남은 것은 지독한 카오스 뿐.
최인훈 문학은 사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역사, 예술, 문학, 정치, 고고학 등 수 많은 지적 탐구를 통해 만들어진 그만의 문학적 바운더리는 일반 독자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그의 문학을 탐구하고 분석하는 일은 문학평론가들도 쉽게 결론 내리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인훈 문학은 문학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겐 탐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수 백여 편의 학위 논문들이 최인훈 문학을 소재로 쓰여졌고, 쓰여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서유기는 최인훈 문학의 가장 극단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아직까지 서유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탐구 되어지고 분석되어지는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서유기를 두 번 정독하고 부록으로 달려있는 해설 평론을 여러 번 읽어 그나마 나름대로의 줄거리와 속 뜻을 정리할 수 있었다. – 물론 속 뜻이래 바야 어림짐작한 수준이지만 – 최인훈의 소설을 이해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만한 <<유토피아의 꿈>>,<<문학과 이데올로기>>,<<길에 관한 명상>> 등의 작가 에세이 집도 참고하여 읽고 있지만, 전혀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최인훈 문학이 갈구하는 중요한 목적의 하나는 유토피아에 대한 꿈이다. 서유기에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무너지는 다른 세계의 이데올로기를 보며 독고준의 꿈 또한 함께 무너져 내렸다. 아마도 작가가 시도하는 유토피아의 꿈은 이처럼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들의 화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유토피아에 이르기 위해 문학이 취해야 하는 입장을 그 나름대로 만들고 다듬어 온 것이라 할 지 모른다. 최인훈 문학엔 딱 떨어지는 결론이 없다. 문학을 통해 잠정적으로 내려져야 하는 결정은 어쩌면 우리들의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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