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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인문학, 사회과학의 통섭에 대해서, 학문 간의 이해와 소통의 증진을 위해서, 그리고 과학의 대중적 접근을 통한 폭넓은 공감과 발전의 지반을 다지고자 함에 이 저술의 의미를 두고 있는듯하다. 과학의 진리를 향한 실험의 규모가 점차 거대해지고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경제적 영향에 노출되어있다. 이는 자연과학과 대중 및 타 분야의 간극을 넓히고 커뮤니케이션을 소원하게 할 뿐 아니라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배타성만을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30편의 과학에 대한 소설가에서 교육자, 물리학자에 이르는 에세이는 오늘 한국사회가 자연과학을 인식하는 평균적 시각의 다름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과학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후진적인지, 그리고 과학의 비판적 발전을 위한 담론조차 본격화되거나 심화되지 못하고 표피적인지 목격 할 수 있게 된다. 이미 1960년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로 인한 과학수호자와 비평자들간의 공개적 논쟁이 촉발 된 이래 과학에 대한 본격적 비평을 넘어 사례연구에 대한 상세 비판의 단계와 확장된 동료 공동체로의 진전에 이르고 있는 서구와 달리 우리사회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자연과학에 대한 지원론만 반복하고, 깊이 있는 담론은 차치하고, 과학과 인문학의 교감이나 혹독한 과학의 자기반성, 심화된 과학비평의 논의를 발견키 어렵다. 문제의 인식과 제기를 보여주는 몇 편의 글들을 제외하고는 지금에도 시대착오적인 이성중심주의와 맹목적 합리주의에 기초한 과학만능의 사고가 갖는 근원적 문제에 대한 자각 부재나 인식의 결여를 발견케 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저마다 자기 한계성을 인식치 못하고 편협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보기의 글들, 즉 개체가 개체군의 구성요소이긴 하지만 개체를 안다고 해서 개체군을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과 같이 ‘세포’만을 이야기하는 ‘과학 밖의’대부분의 기술(記述)에서 역시 과학 밖의 많은 식자들이 과학에 대한 작은 학습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우리의 천박한 현실을 확인케 된다. 과학 밖, 과학 변경 지대, 그리고 과학 안으로 삼분되어 구성된 에세이에서 과학의 자기성찰과 저술의 지향점을 부족하지만‘과학 변경 지대에서’중, 김동광 선생의 <과학 비평은 가능한가>, 정영목 선생의 <제너의 아들>, 이진경 교수의 <생물학과 코뮌주의>, ‘과학 안에서’중, 이성렬 교수의 <소통, 과학과 인문학의 공통과제>는 과학의 자기반성과 타학문의 과학의 이해를 위한 학습의 요구라는 진정한 소통을 위한 전제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글들이라 하고 싶다. “과학읽기의 다양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과학비평과 과학자 내부의 비평요구라는 문제, 인체실험에 대한 과학의 오만성과 윤리적 문제, “역사와 철학의 배경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같은 시대의 과학자들 대부분이 어떨 수 없이 품게 되는 편견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습니다.”라는 아인슈타인 강의록을 인용한 “과학의 진리는 관계의 확실성이 결정한다.”는 과학철학의 전언은 아쉽지만 우리사회의 과학을 진리의 장으로 끌어내는 전제를 이야기하는데 근접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대다수의 글들은 과학을 기술이라는 협의의 자기상식에 따라 기술한 추억이나 향수의 글, 지극히 막연한 과학의 동경, 과학의 자기주장이나 역시 거대실험을 위한 정부지원론 같은 자기중심적 안일에만 빠져있는 답답함만을 읽을 수 있다. 특히나, 자기가족이나 친지는 실험대상으로 쓸 수 있다는 인정론을 주장하는 어느 과학자의 단상은 우리사회의 과학은 아직 멀었구나! 하는 아쉬움만을 남기게 한다. 일부의 과학자들과 인문사회학자들의 진정어린 소통의 노력과 발전을 위한 자기비평과 학습과 연구의 심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 말하는 과학과의 소통이라는 표제와는 달리 C.P.스노의 두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진지한 성찰은 터무니없게도 존재치 않음에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아무쪼록 한국이 유교문화의 탓으로 인문학이 과학과 소통할 기본도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용맹스런 탓을 하기에 앞서, 우리의 과학 역시 서구의 근대 산업화라는 물결 속에 휩쓸린 지 60여년 남짓에 불과하다는 자각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일이든 냉정한 자기성찰이 출발점이 된다. 과학내부의 비판적 역량의 육성, 인문학, 사회과학에서의 과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의 습득을 위한 노력 등이 경주될 때 비로소 우리도 탁월한 과학과 학문에서 뛰어난 역량을 창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미흡하지만 과학과의 소통을 위해 이 정도만이나마 책으로 엮여 대중에게 선보이게 된 것도 진일보라면 진일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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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고와 문학적 사고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은 같은 범주의 과학일까? 생명공학과 생명윤리의 관계는 어떠할까? 국제테러주의와 바이러스의 확산 그리고 전지구적 생명정치간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과학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가? 문학비평은 있는데 과학비평은 왜 없을까? 유인우주비행은 시대착오적 개념인가? 「한국과학」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창의적인 과학자들이 즐겨 사용한 추론방법은 무엇인가? 과학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의 여성과학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 책《과학이 나를 부른다》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생생한 「10분 토론」의 장이다. 한편 한편 모두 10분내에 발표를 마칠 수 있는 적절한 분량이기에, 독자는 자신이 흥미 있어하는 글을 먼저 읽어도 좋을 듯싶다. 개인적으로 유쾌하게 읽었던 글로는 소설가 김연수와 과학담당기자 오철우의 수필이 있다.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글로는 과학저술가 김동광, 생물철학자 장대익과 물리학자 오세정의 소품을 꼽고 싶다. 이들의 글은 의미심장하고 예리한 시각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문학자 정남영과 과학철학자 홍성욱의 논리정연한 소논문도 재미나게 읽었다. 유익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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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서 들었던 가장 인상에 남는 강의 중 하나로 마지막 졸업 학기에 들었던 홍성욱 선생님의 <과학 기술과 사회>를 나는 항상 꼽는다. 비록 교양 강의 였지만, 당시 토론토 대에서 교환 교수로 오셔서 학부 강의를 맡으셨던 홍성욱 선생님의 명강은 글로만 만나 오던 선생님의 생각을 직접 강의로 들을 수 있는,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물론 지금은 귀국하여 모교에서 강의중이시다..)
인문 사회 과학을 전공했던 내게, 개념적인 사상을 좇는 것은 과학이 아니며 진리를 찾아가는 자연 과학이 진짜 과학이라고 했던 과학 철학 강의 선생님과 달리, 홍성욱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 과학사 자체와 그 과학사를 통해 변해가는 진리에 대한 인식론적 변천사, 그리고 인문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두 문화 사이의 갈등 등 보다 차원높은 세계를 맛 볼 수 있었고,, 그때 부터 이러한 두 과학 사이의 인식 문제는 나의 관심사 영역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에드먼스 윌슨의 통섭을 알게 된 것도 그 이후이다..
이 책은 웹진 크로스로드에 실린, 이러한 인식을 갖고 있는 지식인들 30명의 30편의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이다. 인문학적 배경, 자연학적 배경, 그리고 둘의 주변에 있는 중립적 배경 정도를 가진 분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두 문화', '과학'에 대하여 재미있게 풀고 있다.
가끔 방문은 했지만 웹진이라는 한계상 뭔가 꼼꼼하게 읽기는 어려웠고 쌓아두기는 어려웠던 글들을 지면으로 다시 만나서 밑줄 그으며 읽는 재미가 좋다.. 학자들 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모두 재미있는 예라든가 비유를 들어 자신들의 생각을 펼쳐 나가는데 그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다.
예전 독서 토론을 즐겨 했던 동호회에서 내가 했던 말이, 이과 전공자는 문과 책을 읽을 수 있는데 문과 전공자는 이과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양 과학 사이의 단절을 풀고 이해하며 가능하다면 공통적인 연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통섭의 시발점이며 이런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이 책의 세 가지 꼭지에서 인문학쪽 학자들은 이학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논하는 반면, 이학쪽 학자들은 인문학쪽에 대한 언급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은, 아직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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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과 인문학,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의 30편의 에세이.
수학을 좋아하지만, 과학의 모든 분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목차를 보고 내가 알고있는 필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세어보았다. 김연수 작가, 김병익 평론가, 고병권씨, 정영목 번역가,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의 저자 김용규씨, 홍성욱씨, 정재승 교수까지 8명이었다. 30프로는 되네. 하는 마음으로, 별 기대없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 다양한 시선에서 과학을 이야기하다.
30개의 눈으로 바라보는 과학의 면모는 각양각색이었다. 글쓰기에서 과학적 방법론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김연수 작가의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현직 과학선생님이 고민하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과학을 즐겁게 해 줄것인가에는 암기위주의 주입식으로 물든 사회현상이 보이기도 했다. 인간실험과 과학영웅담에 스며있는 음모를 드러낸 정영목 교수의 이야기도 좋았고, 인간윤리를 위해 기생충 연구를 위해 자신의 몸에 기생충을 주입하는 서민 교수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과학은 실험과 딱딱하고 어두운 분위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인문학과 사회와 깊은 연관을 지으며 존재한다는 점을 책을 통해 재확인하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을 다시 기억하는 즐거움,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배우는 즐거움과, 과학이 안고 가야 할 숙제들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청소년들에게 바로 효과적으로 다가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생 이상의 성인들이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책이다. 심장에서 흐르는 피가 온 몸에 곳곳이 퍼져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듯이, 손과 발이 따로 떨어져 있어 보이지만, 각기 한 몸안에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문화의 틀 안에서 과학과 인문학은 함께 공존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칼럼형식이라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깊이는 상상이상이다. 깊이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많은 지식도 얻을 수 있고, 언급된 책들을 다시 찾아보며 읽게 될거라 생각한다. 많은 책 파도넘기 할 책을 발견하였다. 과학에 대한 선입견도 고쳐주었던 점이 책이 안겨준 또다른 선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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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교양과목으로 과학을 공부한 이후 과학과 관련된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그보다는 과학에 관련된 책을 피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어차피 내 선택과 필요에 의해 책을 읽으니까, 과학과 관련된 책을 피했다는 게 적절하다. 추리 소설이나 과학 소설도 좋아하지도 않아서 과학의 언저리조차 기웃거리지 않았다. 이런 내가 당시 학점을 따기 위해 과학 공부를 하면서 어렵고 지루할 것 같던 과학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는 흐릿한 기억을 끄집어 냈다. 인문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만나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란 화두에 답하는 형식의 에세이라는 것은 [과학이 나를 부른다]를 선택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과학 밖에서'의 주제로 인문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쓴 글을 묶었고, 2부 '과학의 변경지대에서'는 과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의 글을 소개하는데 과학과 인문학사이에서 겪는 고뇌를 볼 수있다. 3부는 '과학 안에서'는 과학의 어려움과 기쁨, 미래에 대한 과학자들의 글을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인문학자들의 글 중 김연수 작가의 "가장 과학적인 것이 가장 문학적인 것이다"라는 구절이 아직도 선명하다. 관념적인 글을 피하려면 과학적인 사고를 해야하고, 좋은 글을 쓰려면 과학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은 앞으로 내 책읽기의 방향을 알려주는 듯했다.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는 과학자의 과학책 쓰기와 아인슈타인의 과학사상, 철학사상, 우리나라의 과학 교육과 과학계의 어려움 등 한 편 한 편이 모두 유익하다. 과학을 바라보는 각계의 의견을 쉽고 논리적으로 소개하는 이 책은 청소년 이상이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교양서이다.
과학계는 과학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 대중과 사회와 소통하기 원한다. 이를 위해 [크로스로드]란 사이버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이 이러한 새로운 장을 활용하여 인문학자들과 대중, 그리고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제 인문학과 과학은 '두 문화'라는 별개의 두 갈래 학문이 아닌, 상호 접근이 일어나고, 상호 접근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여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한 때는 인문 과학과 자연 과학이 실용 학문에 밀려 대학에서 찬 서리를 맞기도 했다.
우리가 자든, 먹든, 이동하든, 어느 경우든 과학기술이 동반되지 않는 적은 거의 없다. 우리 삶은 과학기술에 의해 상당 부분 규정되고 내적인 영역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내면적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인간의 모든 활동의 바탕이 됨에도 불구하고 상업주의에 밀려 과거의 영광을 잃은 것이다. 이제 인문 과학과 자연 과학 사이에 놓인 담을 헐고 동지애를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뉴턴이나 다빈치 등이 과학자이며 철학자였다는 것은 두 학문의 뿌리는 결국 하나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 두 문화의 소통은 과학의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크로스로드]에 그 희망을 걸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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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이 참 어려웠다. 어떤 사물을 관찰하는 것은 재밌었지만 그것이 어떤 원리로 작동 하고 어떤 물질로 구성되어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 덕에 내 이과성적은 항상 바닥을 기었었다. 이런 형편없는 결과에 대해 “나한텐 수학적 머리가 없나봐” 하며 농담으로 넘기곤 했지만 왜 난 이해할 수 없는지, 똑같은 수업을 받고도 왜 성적이 나쁜지에 대해 학창시절 많은 고민을 하곤 했었다. 지금은 상식이라도 쌓아놓으려고 과학서적을 읽곤 하지만 그뿐, 그이상의 관심은 생기지 않고 너무나 어려운 책을 만나기라도 하면 덮어놓고 한숨 먼저 쉬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상식을 쌓아보고자 읽게 된 이 책 [과학이 나를 부른다]엔 30편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에세이가 실려 있다. 전문가들이라고 해서 딱딱한 이론을 설명하거나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일 거라는 예상했지만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았다.
과학과 인문학 경계를 넘나들다.
과학이 문명의 총아로 떠오르면서 우리의 생활은 편안하고 편리해졌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치판단의 중요성도 점점 강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두 문화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함께 했을 때 더 완전한 것이 된다. 전부터 소칼의 사기극이라든가 과학전쟁 등 많은 일들이 있어왔고 서로 자기의 학문이 우위라는 편파적인 주장도 있어 왔지만 계속 서로를 헐뜯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다면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증명되지 않는 사실은 무시하고 믿지 않는가? 인문학자들의 말은 허황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리는가? 무엇이 옳다고 옹호할 수도, 무엇이 틀리다고 욕할 수도 없다. 세상에 절대적 진리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아야할 건 두 가지 모두 인간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주관하는 이상 두 문화의 뿌리가 다를 수 없다.
서양에서는 16세기의 르네상스에 이르러서 암울했던 중세의 분위기를 떨쳐버리고 큰 문화혁명을 만들어 냈다. 수학의 발달로 정교한 조각과 건축물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냈으며 많은 과학적 이론들이 팽창하듯 터져 나왔던 시기이다. 이 시기엔 과학적 발견들과 문화의 조화로 찬란한 인류문명이 만들어졌다. 또 그것의 연장선상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그 움직임은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세종대왕이 재위하던 15세기에 양 학문을 결합해 더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지 않았던가. 물론 후에 두 문화가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의 겪는 불행을 몸소 체험했지만 말이다. 역사의 예에서도 나와 있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지 말고 눈을 돌려 서로의 학문을 공유하고 전파한다면 인간의 발걸음은 크게 진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서로를 반목하고 적대시하기 보다는 통합화의 길을 걷는 것이 양쪽 모두의 이익이 될 것이다. 책을 읽고 비 과학자들의 과학에 대한 생각과 과학자들의 자기 학문을 바라보는 시선, 성찰 등등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설명해줘서 좋았다. 이 책이 우리나라 지식인들 뿐 아니라 나처럼 일반사람들과의 소통장소가 됐으리라 믿는다. 시작은 미미하더라도 앞으로 더 많은 소통의 장이 열리길 바라는 바이다. 책을 읽고 나니 방대한 양의 지식을 흡수해서 그런지 배가 부른 느낌마저 든다.
지금 떠올려보면 과학수업을 이론으로 했을 때보다 다양한 실험으로 했을 때의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 획일화 된 수업보다 이 책처럼 과학에 대해 좀 더 쉽게 접근했더라면 내가 과학을 대하는 태도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물론 사각 교실의 과학수업에서 도태된 한 사람의 가련한 외침일 뿐이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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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에게 있어 과학이란 그런데 20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오늘날에 이뤄지면서 ‘과학이 나를 부른다’는 통섭과 융합의 시대에 이 책은 3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과학의 부름을 받은’ 30인의 저자들이 쓴 이 책은 물론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담론들은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나갈 담론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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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 APCTP 에서 기획한 책으로는, 이것이 두번째 만남이었다. 나와 APCTP의 첫만남은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 이라는 책으로, 그것은 현재 이공계를 전공하고 있는 여학생들에게 여성으로써의 과학자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길이 얼마나 눈부신지, 그 각오를 탄탄히 다져주기 위하여 기획된 책이었다면, 이번에 만난 '과학이 나를 부른다' 라는 책은, 좀 더 폭넓게, 이공계 전공자는 물론이고 이공계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도 깊은 호소력을 가진 책이었다. 부제에서도 씌여있듯이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30편의 에세이' - 과학과, 그렇지 않은 학문과의 선을 넘기 위한 기획의도를 가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APCTP에서 발간하는 웹진 <크로스로드> 에서 이러한 기획의도로 실었던 여러 에세이 중 30편을 골라 묶어, 이 책이 탄성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과학밖에서" 라는 제목으로 인문학에 몸담고 계신 사람들이 평소에 과학이란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문학과 과학과의 관계에 대한 인문학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2부에서는 "과학의 변경지대에서" 는 인문학자와 과학자의 이야기가 한데 섞여 모여있다. 마지막으로 3부 "과학 안에서" 는 앞으로의 과학의 발전을 위한 과학자들의 고뇌가 담겨있다.
일단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1부 과학밖에서를 무지 힘들게 읽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가서 여러번 읽어야했기도 했고, 온갖 이론과 인문학자 - 철학자, 사회학자 등등 - 의 이름이 거론되었는데 나의 인문학에 관한 지식은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솔직히 읽긴 읽었으나 그 뜻을 깊이 이해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다만, 그렇게 힘들게 1부를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아, 과학과 인문학과의 벽이 이렇게 두껍나 - 하는 것이었다.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와 같이 이공계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역사나 사회학에 대해 물어보면 대충의 지식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역시 반대로 인문계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과학에 대해 물어보면 역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인문학에 대한 지식은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하기 이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배운 것이 전부인데 - 지금은 당연히 그 기억마저 빛바랜 것이다. 반대로 3부 과학안에서를 읽을 때에는 좀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깊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아직 이공계에서 한자리(?)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배들이나 교수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느꼈던 과학계의 어려움이나, 앞으로의 발전경로를 생각했던 것들이 여러 사람들의 에세이에서도 그대로 묻어나와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인문학자들이 사실 우리 과학과 친해지고 싶어한다는 사실이었다. 역사적으로 문화의 발달과 과학의 발달은 함께한다는 말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었는데, 여러 에세이에서 이 구절을 언급하며 인문학과 과학도 역시 서로 소통하며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과학자들도 막연히 인문학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더 과학을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뇌하고 있었기에 ,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 통하고 있다면,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그 날이 머지 않았다는 희망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다시 한번 내 꿈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나는 과학이 이렇게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과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과학이 얼마나 재미있는 학문인지, 그리고 그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내 꿈이다. 아직 그것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대해 힘을 얻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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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일까? 초.중.고 정규교육과정 안에서 배운것들? 이미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누리고 있는 과학 기술들? 아니면 좀더 근본적인 지적 호기심을 추구하는 행위일까? 쉽게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을 과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좀 더 개인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과학이란 무얼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 책에서 나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말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과학 밖에서','과학의 변경지대에서','과학밖에서'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과학 밖에서'는 말 그대로 전문적인 과학 분야를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 있었다. 여기에는 과학과 인문학이 단절되어 있는 점이나 서로 공통 분모를 가지고 공존하는 점을 지적하는 글도 있었고, 거기서 더 발전해 과학과 인문학의 새로운 미래 관계도를 그리는 글도 있었다. 물론 급진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의 과학에 쉼표 하나를 찍어주며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도 보았다. 이 쯤에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미 인문학과 과학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둘 사이에 있어야 마땅할 상호 발전이 참 더딘 것 같아서 아쉽기만 했다.
'과학의 변경지대에서'는 분야에 관계없이 말 그대로 변경지대 안에서의 이야기를 묶어놓고 있었다. '과학 밖에서'에서 남았던 아쉬움이 조금씩 풀릴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한국 과학과 인문학이 어떤식으로 좋은 교류를 해 나가야 할지 실마리들이 글 속에서 쏙쏙 눈에 들어왔다.
'과학 안에서'로 들어 오면서 눈에띄게 글들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 주었다. 현재 과학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식인들의 일화적인 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또는 몰랐던 부분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눈길이 갔던 부분이 있다.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과학교육에 대해 개탄하는 내용이었다. 과학교육을 통해 진정으로 길러야 할 능력이 무엇인지 많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과학과 인문학은 서로 떼어놓고도 성립할 수 있는 단순한 두문화가 아니다. 이건 모두가 지난날의 아픈 교훈들을 통해서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면 이제 두 문화 사이에 소통의 길을 확실히 열어주는 일 만 남은건가? 솔직히 아마도 가까운 내일에는 아직 일 것 같지만 이렇게 조금씩 절실함을 느끼는 것부터가 발판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남기고 싶은 한마디> 창의력이 요체가 되는 장래의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주어진 문제의 해답을 구하는 '문제해결능력'보다도 문제 자체를 찾아내어 풀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므로, 과학교육에서도 이러한 능력을 길러 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