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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이 여전한 와중에 드디어 바헬과 아스파샤는 재회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전쟁터의 다른 곳에서는 샤르휘나와 음유시인이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면서, 우리들은 클라우커스의 존재에 대한 진실을 슬픈 바닷가의 파도소리마냥 들을 수 있다.
레 마누는 허약해져 가는 몸을 이끌고, 아르미안의 영화를 위해 애쓰지만 그녀에게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 듯 하다. 지는 해의 운명인 그녀의 이 시간이 못내 애처롭지만 붉디 붉은 노을도 아름다움을 발하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던가. 그녀의 이 꺼져가는 시간 역시도 초라할 수는 없다.
신들은 에일레스의 성장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대책회의를 가지게 된다. 단 한 번도 전쟁터에서 자율정신을 갖지 못 했던 에일레스가 전쟁터에 있는 샤르휘나를 의식하고, 그녀로인해 전쟁의 시나리오가 변하게 되는 일을 지켜보면서 위기감을 느끼는 신들, 오래전 그들이 행했던 일에 대한 결과의 모습에 떨림의 전율을 느끼고 있다. 신들에게 절대 불가능한 성장이라는 것을 에일레스는 샤르휘나의 사랑으로 인해 겪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함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랑을 받음으로 성장하는 것,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한 사람을 완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임을 사랑의 힘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 9]에서는 나에게 소리없는 잔잔한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말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싶다. 바로 불새의 깃털을 찾기 위한 그 마지막 여정 속에서 나는 미카엘의 죽음을 목격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그런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설득을 할 수도 없었고, 그가 선택한 일에 원망을 던질 수도 없었다. 나는 그가 샤르휘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는 한 사람이기에 그 사랑을 위한 그의 마지막 마음을 그냥 지켜보는 자의 몫을 감당하는 일 외에는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 만화의 1권에서부터 언급되어오던 글귀가 있다. 삶이 처절한 슬픔을 내포한다할지라도 미래를 모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라던 글귀였는데, 운명에 맞서기 위해 선택한 샤르휘나의 여정이었지만 그것은 처절하게 슬픈 삶이 섞여 있었고, 그 슬픔 위에 그녀의 운명이 서 있었다. 많은 이들의 희생 속에 그녀의 운명이 놓여져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코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었던 것일 거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나는 아르미안의 네 딸들, 그 마지막 편의 이야기로 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인상적인 구절-미카엘, 그를 기억하며] 나...나는... 아마조나가 이렇게 날 필요로 하고 있는 이때에.. 그녀의 곁에서조차 갈 수 없는 나의 나약함이...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어머니..나의 어머니...바다의 여신 라아나여-----! 제게 힘을....! 이제....마지막 단계에 이른 그녀를 지켜낼 힘을... 희생된 두 사람의 몫까지 아마조나를 지켜낼 힘을... 운명조차 이겨낼 힘을....
[인상적인 구절-라아나가 미카엘에게 언젠가 건네었던 말] 미카엘--- 사랑은 때로 운명보다 강할 수 있는 법이다. 또한 진실로 상대를 지키는 것은 힘이 아니고 사랑이란 것을--- 운명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사랑의 기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