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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후배 지휘자는 '부르노 발터'와 '오토 크렘페러'이다. 따스하고 편안한 지휘자 발터는 번호 없는 교향곡 [대지의 노래]나 [9번 교향곡]에서 명연을 남겼다면, 올곧은 대나무 같은 지휘자 크렘페러는 [말러 2번 (부활)]에서 명연을 남겼다. 그 전설의 명반이 바로 이 이다. 그럼 어떠한 점에서 이 음반이 아직까지도 명반의 대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가? 이유는 아마도 전체를 조감하면서 황소처럼 한걸음씩 밀고나가는 크렘페러의 우직함이 이렇게 뛰어난 연주를 이루어 냄 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작위적인 템포조절나 세부의 세밀한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다소 재미없게 들릴 수도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일관된 표현이다. 그래서 다소 밋밋하고 묵직하다. 그러나 전곡을 다 듣고 나면, 말러라는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과 크렘페러라는 거인 마에스트로의 모습이 나타나면서 강인한 예술혼이 느껴진다. 이런 음반이야말로 "진정한 명반"이다.
말러는 [2번(부활)]을 통해 대작곡가로써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곡일 것이다. '메머드교향곡'이라고 불릴 만큼의 거대한 스케일과 그 죽음에서 부활로 변해가는 구성은 실로 이 2번 "부활"이 교향곡 역사상 길이 남을 명곡임을 증명해준다. [1번(거인)]이 영웅의 탄생이었다면 이 [2번]은 그 영웅이 죽는다. 그것도 1악장에서부터. <1악장> 장송풍에서 그 당차던 거인은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것은 말러가 세상으로부터 느낀 고통의 깊이를 말하는 것인지 매우 거대하면서 위엄있다. 가슴을 칼로 긋는 듯한 날카로운 표현들과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감동적인 부분들에서 듣는 이의 온 마음을 사로잡고 만다. <2악장>은 매우 따스하고 안정적이다. 아마 말러가 인생에서 겪었던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표현해 낸 듯 싶다. 그러나 <3악장>의 그 알 수 없는 이상한 리듬들과 갑자기 튀어나오는 불협화음들에서 다시금 듣는 이를 불안하게 한다. <4악장>, 메조 소프라노(뢰슬마이단)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큰 고난 가운데 있도다. 인간은 큰 고통 가운데 있도다. 그러니 나는 천국에 있고 싶다." 그러나 천사가 천국의 문턱에서 돌려보낸다. 결국 "나는 신에게서 왔으니 신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말하며 그 위대한 <5악장>을 맞이한다. "부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치 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처럼 온 천지는 요동친다. 그리고 세상은 아비규환의 상태로 된다.(이것을 음악으로 치밀하게 표현해낸 말러의 천재성에 그저 경탄할 뿐이다.) 그 거대한 혼돈 속에서 신과 천사들이 강림한다. 그리고 소프라노(슈바르츠코프)와 메조 소프라노의 이중창, 남성합창단의 중후한 합창속에서 "부활"이 일어난다. "태어난 것은 죽고, 죽은 것은 다시 살리라. 떨지 말고 삶을 준비하라." "부활하리라, 내 마음이여, 한 순간에 부활하리라! 그대가 쳐 넘어뜨린 것, 그것이 그대를 하느님께로 이끌 것이다" ("~"부분은 곡의 가사를 빌려 표현한 것이다.) 인간이라면 이 부분에서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감동에 벅차 오를 것이다. 평생 인생을 고뇌하고 음악으로 인생의 모든 모습을 표현하려 했던 그 위대했던 천재 작곡가 말러, 그 말러가 한 인간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렇게 해서 메머드같은 대곡이 끝난다.
40년 전, 말러가 그리 주목받지 못하던 때 이렇게 수준높은 지휘가 나왔음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지금은 말러를 지휘하지 안으면 지휘자로 명성을 얻기 힘든 것 같다. 그래도 아르농쿠르는 말러를 지휘 안한다.^^) 크렘페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정격으로 지휘해 79분 30초에 연주를 했다.(다른 지휘자들은 보통 80분을 넘어가 지휘가 음반 2장에 담긴다. 특히 번스타인은 너무 위용있고 장엄하게 하려고 하다 무려 90분을 넘겼다.- 93분 30초. - -;) 그리고 전체를 잘 조감했기에 매우 안정적이다. 또한 당시 최고의 소프라노인 슈바르츠코프와 뢰슬마이단의 기량이 한 껏 발휘되었다. 단점으로 지적되는 딱딱한 표현이나 옛 녹음이기에 다소 떨어지는 음질등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이렇게 위대한 지휘를 들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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