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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치의 전작을 읽고 파비치의 다른 글을 열심히 찾다가 뜻밖에 환상문학시리즈에서 발견하고는 기쁜 마음에 바로 주문했다. 그러나
이 정도면 거의 무성의로서는 금자탑이다. 먼저 번역의 문제이다. 나는 파비치의 모국어를 모른다. 그리고 파비치의 문장이 얼마나 현란하고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지는 글을 읽은 이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문장이 복잡하더라도 글을 번역하는 이는 최소한 한국어법으로 읽을 수 있는 문장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값싼 번역기로 대충 훑어놓은듯한 문장은 끝까지 이어진다. 거기에 기본적인 교정, 교열도 이루어져 있지 않다. 대충 읽는 스타일인 내가 맞춤법에 위배된 글자, 순서가 바뀐 단어(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띄어쓰기, 를 찾는 일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일기장을 뒤적이는 일과 비슷하다. 굴지의 출판사에서 이런 책을 낸다는 일은 독자에 대한 모독이고 위대한 작가에 대한 배반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반드시 새로운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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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본과 대조해보았다. 나쁜 번역이 아니라 사기다.
- 사형장에서의 발포(fire)를 불이 붙는다고 번역
- 현재(present)를 선물이라고 번역
- 영역에서 even if라고 되어있는 부분을 그저 '만약'이라고만 한 번역은 꽤 된다. 이 때문에 대부분 비문이 된다.
- 51쪽 주인공 라다차 취호리치(레안더)가 그리스 시인 무쎄이의 '헤로와 레안더'스토리에 관한 수업을 들을 때, 레안더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 과정을 어이없게 왜곡.
50쪽의 마지막에는 무쎄이의 이야기가 1494년에 라틴어로 번역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어지는 영역본 내용은 '유명한 석공의 후손이며... 라다차 취호리치의 여섯 번째 이름인 '레안더'는 이 이야기(무쎄이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어떻게 그 별명(?)을 얻게 되는지 라다차 취호리치가 공부하던 클래스와 러시아 선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글판에서는 '그 시적인 이야기는 그리스어로 지어졌는데 1494년에 베니스에서 라틴어 번역이 나왔다고 한다. 거기에 나오는 레안더는 유명한 석공의 자손인 라다차 취호리치라는 자로....'라고 되어 있다.
졸지에 라다차 취호리치가 헤로와 레안더의 이야기 안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 번역(?)때문에 앞뒤의 내용이 짐작하기 어려워 진다.
- 161쪽 영역에서 Dr. Wiezhbitsky sat chuckling quietly into his beard라는 문장이 있다. '브예쥬비츠키 박사는 싱글벙글하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laugh in one's beard는 소리없이 비웃다는 뜻) 원문이 무엇이든, 이 정도면 별 무리없이 읽힐 수 있다. 한역은 이렇다.
'브예쥬비츠키 박사는 수염으로 웃으며 조용히 앉아있었으며'
비록 파비치의 글에 은유가 많긴 하지만 아무렇게나 쓴다고 다 은유로 읽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 대목은 비유적 표현이 등장할 만한 내용도 아니다. '항문으로 번역한다'면 수염으로 웃을 수 있겠다.
- 146쪽 '그녀는 자기 안에 늙은 아주 늙은 가슴을 지닌 얇은 다리를 가진 아직은 아이였었지.'
우리말의 어순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영역은 이렇다.
She was still a thin-legged child with an old, an ancient soul inside her
thin-legged 라는 표현을 어떻게 번역해야할지 좀 까다롭지만, 어쨌든 헤로니야가 아직 어릴적에 과거의 늙은 레안더(취호리치)의 영혼과 연결된다는 내용이다.
- 130쪽 헤로니야와 그의 동생이 극장을 찾는 장면에서...
'다음은 헤라와 레안더의 공연에 관한 것이었는데 훨씬 더 이상했다.'라고만 되어 있다.
'다음'은 두 번째 선전 포스터를 말하는 것인데, 원문에는 라틴어와 로마숫자로 가득한 광고지가 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아마도 파비치의 설명이 필요할 듯) 어쨌든 아예 생략되어 있다.
- 72쪽 ...그가 지은 건물들의 창문들과 문들에 그것을 남기면서 영원히 잊어버렸다.( ) 벽돌공은 생각했다.
괄호부분에는 이런 원문이 있다.(벽돌공은 주인공 레안더)
Κάδδ Ηρώ τέθνηκε σύν όλλυμένω παρακοίτη άλλήλων δ άπόναντο καί έν πυμάτω περ όλέθρω
이 부분은 아예 생략. 문제는 이 내용이 - 정확하게 번역할 수는 없지만 - 그 위의 시구절과 대구를 이루는 것 같다는 점이다. 즉, 위의 내용은 '헤로와 레안더 이야기'의 레안더가 어찌저찌 했다는 것이고 아래의 희랍어로 쓰여진 것은 헤로Ηρώ가 어찌저찌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 희랍어 구절은 밀로라드 파비치가 라틴어(희랍어표기로)를 섞어 쓴 것 같은데(아님 말고), 대체로 헤로가 바다(레안드로스가 매일밤 헤엄쳐오던)의 바닥을 바라보고, 서로 어쩐다는 내용인 것 같다. 아테네의 동쪽이라는 말도 있는 듯 하고...
어쨌든 이런 내용이 있고, 나처럼 모르겠으면 희랍어 잘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든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희랍어라도 그대로 옮기든가 해야 할 것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빼버렸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오역, 오탈자, 비문, 단어의 중복(영어권에서 주어가 잘 생략되지 않는 경우) 등등으로 가득하다. 최근 10년간 나온 책들의 오역을 다 합쳐도 이 짧은 책 한 권에 못 미칠 것이다.
번역자의 사회적 지위를 염두에 둘 때, 이 번역본은 아마도 세르비아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과제로 내준 것을 취합해서 만든 것 같다. 마치 알파벳만 읽을 줄 알고 기초적인 어순만 아는 사람이 영어를 사전만으로 번역해놓은 것 같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 번역자는 정신나간 인간이다.
학생들에게 떠넘긴 게 아니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번역자가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더군다나 약력을 보면 우리 문학을 세르비아에 번역하는 일을 해버렸다. 이 정도 수준으로 번역되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 번역자가 소개한 한국의 시인들은 졸지에 쓰레기취급을 받지 않겠냔 말이다.
영역본을 읽어보니, 이 책은 전작인 카자르사전보다 짧지만 더 어렵다. 상징들이 서로 얽히면서 이야기의 뼈대가 된다(시간과 강의 비유, 주요 인물들에게 교차되는 죽음, 4개의 자리, 4개의 원소, 4개의 눈, 여성과 남성의 눈, 죽음의 속도 등등). 또 이 핵심적인 상징들과 연결되는 부수적인 상징들과 비유적 표현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세르비아의 문화코드 혹은 파비치의 지적 배경을 이해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될 듯하다. 카자르사전의 경우에는 희랍철학과 중세철학의 세계관이 많이 반영되어 있었다. 적어도 물,불,흙,공기의 4원소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한 이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번역자와 출판사는 역주를 달아서라도 독자에게 정보를 주어야 한다. 종이에 잉크만 묻히고 그럴싸한 광고문구로, 저자의 이름만 팔아 돈만 챙기면 다가 아니다. 포장은 밀로라드 파비치인데, 알맹이는 김지향이라는 정신나간 전공자(?)이다. 흔히 이런 걸 사기라고 하는 것이다. 번역자, 편집자 모두 어떻게든 응징하고 싶은 작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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