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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온갖 것을 다 소유하면서도, 더하여 예수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신앙 중심에 예수님을 두지 않는다면 그 모든 신앙은 거짓이다.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두는 것, 그것이 참 기독교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러한 재림의 때의 변개에도 불구하고 약소대로 예루살렘멸망할 때 재림하여 당시 준비된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구원하셨다.
어떤 사람을 믿는다는 말의 정확한 사용처를 보면,죽은 자보다는 살아 있는 자에게 적용되는 말이고,
이 책의 저자인 스펄전은 열정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뜨겁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전혀 기도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라고 외친다. 주님을 믿기 싫어하는 게으름, 주님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고 세상을 믿고 이성을 믿는 우리의 속 모습을 여지없이 폭로하여 거짓 믿음을 청산하고 주님 품에 돌아가게 만든다. 그 격렬한 기도의 촉구를 들은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고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리하여 그가 시무하던 메트로폴리탄 타버너클 교회는 기도로 펄펄 끓는 교회가 되었다. 19세기 영국에서 그 교회만큼 강력한 기도회가 열리는 곳은 없었다. 목사가 기도의 사람이니 교인들도 기도의 사람이 된 것이다. 스펄전은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위인이다. 비록 그리스도의 정확한 복음은 아니였지만, 하나님게서는 그리스도되시는 예수에 대한 그의 중심을 통해 당시의 영국과 세계를 축복하셨다
하나님의 임재의 즐거움을 그리스도인들이 풍성하게 누리고 예수님과 통행하는 기쁨을 날마나 더해갈수 있다, 우리가 심하게 아프거나 무척 우울할 때, 병약한 자녀나 어려운 살림, 사탄의 유혹 때문에 염려할 때 하나님께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걷는다면,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대로 행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 안에, 그의 소망과 그의 사랑 안에, 그의 기쁨과 그의 생명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의 형상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주인과 아주 많이 닮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산다”고 말할 것이다.
“주님이 밤중에 여러분을 처음 방문하실 때의 상황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방문하실 당시와 똑같게 느껴질 것이다. 베드로는 밤새껏 그물과 씨름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베드로의 배를 찾아오신 주님이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잡혔다. 베드로와 잡힌 물고기, 그리고 나머지 것들이 모두 물에 잠기기 전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외쳤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예수님의 임재는 베드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지자 그는 배처럼 가라앉았고, 거룩한 주님을 피하게 되었다.”(p.16)
“예수 그리스도는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가치한 사람을 구원하신다. 간구할 때 의로움이 아니라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더라도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는다.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분께 다가갈 수 없다는 느낌이 들지라도 더욱 진지하게 갈망해야 한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느낌 때문에 주님께 다가가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져야 한다. 주님은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 주실 수 있다.”(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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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의 함께 누리는 삶을 산다면... 크리스챤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 아닐까...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자.. 매 기도할때마다 드리는 나의 기도이기도 하다. 책 겉표지에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이 문구가 나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해 주었다 참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마음먹어 본다. 이 책을 통해 나도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노력해 볼 것이다.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 설교의 왕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하신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미발굴설교문으로서 고전으로 꼽힌다 하니 더욱더 흥미롭게 읽게 된것 같다.. 19세기에 쓰여진 설교문인데도.. 오늘 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는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죄로 인하여 대신 고난을 받으셨다. 그 분이 나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렇다면 죄는 나와 무관하다. 그러므로 더 이상 헤매지 않고 나는 그분의 그늘에 앉아 즐거운 휴식을 누릴 권리가 주어졌다. 그분의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동행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준것 같아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책속에서 스펠전 목사님은 아가서에 등장하는 여인을 통하여 우리에게 특별한 성경적 관점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그늘은 우리가 잠시 쉬어 가는 곳이 아니라 영원한 거처가 된다. 거기서 우리는 위안과 더불어 새로운 거처를 발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늘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는 사람이기에 보호를 약속 받았다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겪든지, 어떤 어려움과 시험과 환란과 혼란스러운 일을 만날지라도 우리는 항상 “전능자의 그늘”에 있을 때 보호를 받게 되어 안전하다. 그 분의 그늘에 앉아서 그 분이 허락하신 행복한 휴식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된다.
스펠전은 우리가 예수님의 그늘 밑을 진정으로 휴식처로 삼고 있는지.. 묻는다. 아가서의 신부처럼 자신의 주인을 결코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그늘 아래에 앉아서 크게 기뻐하고 달콤한 향기를 사방으로 내뿜으며 마음껏 휴식하면서 만족을 누려보라고 한다. 성령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함으로써 예수님 안에서 마음의 휴식을, 상쾌한 기분을 느껴 달콤한 열매를 맺으라고도 한다.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자 한다면 우리를 찾아 오시는 주님을 큰소리로 외쳐야 한다. “주여, 어느 때 저를 찾아오시겠습니까?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주여, 오십시오 가까이, 더 가까이, 다욱더 가까이 오십시오 당신이 가까이 계실 때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임재는.... 하나님과의 동행이며 은혜의 시간이 하루 하루가 안식일이 되고, 식사는 성찬식이 되고 가정이 성전이 되고 지상이 천국으로 바뀔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나도 예수님과의 동행을 경험할수 있는 기회가 된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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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이 닫히는 순간 하늘의 문이 열린다"
힘겨운 일에 부딪힐때 우린 하늘을 올려다 본다. 내 힘으로 도저히 감당히 되지 않을 때도 우린 하늘을 올려다 본다. 간절한 눈으로 절박한 애원으로 메달림의 부르짖음으로....... 이 세상에서 모든걸 포기하고 내려 놓을때 비로소 하늘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알게 하시고 더 많은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코 홀로 버려두시지 않겠다는 말씀을 우린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 내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린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 하물며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린 세상 어떤 상황이 닥쳐도 어떤 시험과 환란이 올지라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스펄전 목사님의 힘있는 설교라기 보다는 왠지 잔잔하게 다가오는 속삭임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잔잔한 물결이 다가와 커다란 충격이 되어 나를 흔들어 놓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 시력은 상상 이상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그분의 임재는 이해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주님의 위대한 마음이 우리의 마음과 접촉하면 우리의 마음이 그분께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들의 마음을 예수님께 맞추면 우리도 에녹처럼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하루하루가 안식일이 되고, 식사는 성찬식이 되고, 가정이 성전이 되고, 그리고 지상이 천국으로 바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가려 주시고 진노의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 바위 그늘은 그 어떤 그늘보다 짙고, 시원하고, 보다 더 완벽하다. 햇볕은 바위를 뚫고 그늘에 도달할 수 없고, 이따금씩 숲의 나뭇잎을 통과하는 열기도 통과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은 "마음과 생각"을 지킨다. 즐거운 순간의 특별한 휴식처가 아니라 어려울 때 필요한 피난처인 것이다. 우리는 더이상 헤매지 않는다. 주님이 우리의 거처가 되시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께 메마른 강바닥이 차고 넘칠 수 있도록 부르짖으라. 지금껏 자기도취만 흐르던 수로를 비우라. 주님께 넘치는 은총으로 그것 역시 채워 달라고 간구하라. 힘겨운 시련으로 인해 그분의 밀물 같은 홍수에 더 깊이 가라앉게 되면 기뻐하라. 주님안에서 기뻐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즐거워 할 줄 아는 믿음이라면 온전한 모습의 믿음이 아닌가 한다. 나의 교만으로 계획한대로 계산대로가 아닌 주님의 발 앞에서 나의 어리석음을 내려 놓을때 우리는 진정한 주님의 임재를 즐거워 할 수 있을 것이다. 닭들을 물을 먹을 때마다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든단다. 마치 감사하는 것 같은... 마찬가지로 우리도 축복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 머리를 들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을 부르짖는 나의 입술에서 감사를 떨쳐내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제대로 주님의 임재를 즐기는 삶을 살기를 소원한다면 말이다. 요나단의 영혼이 다윗의 영혼과 결합됨으로써 다윗을 자신의 영혼처럼 사랑하게 되었듯이 영광의 주님은 뜨겁고 성실한 사랑의 끈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셨다는 것을 되새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귀하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막연하게 느끼는 주님의 임재를 통한 안락함이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을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진정한 임재를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감사와 즐거움과 그리고 축복을 깨닫고 살아야 하는지 짚어볼수 있는 진지한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급하게 하지 말고 진지한 모습으로 한 순간도 놓치지 말고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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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옛날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누렸던 그 기쁨이 그 평안이 그리워 졌다. 첫사랑을 회복하고 싶었다. 제목이 나의 마음을 이끌었다.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 그래, 바로 이거야! 난 지금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이 필요해. 목마른 사슴이 시냇가를 찾아 헤매듯 나는 그렇게 첫장을 열게 되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42:1)
ㅇㄴ..첫부분부터 내 마음이 뜨거워 졌다.
여러분이 주님을 갈망하게 되면 주님은 그 이상으로 여러분을 갈망하신다. 예수님께 달려가려고 마음을 먹는 그 순간에 그분은 이미 옆에 계신다.
내가 주님을 갈급해하는 지금 이 순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이 말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는지 모른다. 어쩜 나의 이 갈급함을 주께서 먼저 아시고 이 책으로 내 손을 인도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딸아 이 책이야. 이 책을 읽고 나의 임재에 빠져 다시 기쁨을 회복하렴'
주님의 임재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주님과 교제해야 한다. 우리가 연예할 때 만나기만 하면 아무 이유없이 입가에 미소가 퍼진다. 아니 생각하기만 해도 그 마음에 기쁨이 넘친다. 그렇듯 우리도 주님과 연예를 하듯 교제를 해야 한다. 주님의 임재 즐거움에 누리기 위한 그 첫번째는 바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욕심을 내서 구제주의 끝없는 충만함을 더 많이 누려야 한다. 성도가 예수님을 완전히 확신하고,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사귐을 실천하는 것이다.
성도가 예수님을 완전히 확신하고,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사귐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말씀이 나의 눈속에 띄용하고 뛰쳐 들어왔다. 나는 지금 예수님을 확신하고 있는가? 나는 그 분을 즐거워 하고 있는가? 그것이 사귐의 첫걸음이다.
예수님의 어떤 부분을 확신해야 하는 것이지? 멀 확신하라는 것이지? 하나님이 은혜주셔도 얼마 못가 넘어지는 나약한 나에게..멀 확신하라는 걸까 ..
알렉산더 대왕의 초상화를 그린 아펠레스는 알렉산더를 그릴 때 손가락으로 볼의 상처를 가리게 해 그림에 드러나지 않게 했다. 그분은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아스라엘의 반역을"(민23:21) 보시지 않기 때문에 허물 많은 인간의 자식들과 교제할 수 있다.
어흑 ㅠ ㅁ ㅠ 책을 읽으며 드는 나의 의문들에 책이 대답해주고 있었다. 마치 책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이..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이미 주님은 알고 계신다. 그런 나의 나약함을 한 손으로 가리시고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는 주님이시다.
너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사43:1)
이 말씀 한 구절이 얼마나 많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 점 때문에 찰스 스펄전이란 분을 존경하게 되었다. 뭐든지 빠르게 돌아가는 이 세상속에 빠져 나또한 성경을 읽을 때는 한 구절 한구절 깊이 묵상하기 보다는 재빨리 읽기 위한 목적으로 쉭쉭 지나치듯 읽어내렸다. 그런데 이분은 한 섹션마다 말씀도 그리 길지 않다. 많아야 3~4구절을 가지고 몇십장을 써내려 가셨다. 나의 말씀읽기에 대한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 책을 계기로 나의 말씀을 보는 시각이 좀 더 성숙해진거 같다.
주님이 나를 구속하셨다. 주님의 사랑스런 독생자 아들 예수를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로 내놓으신 주께서 그 아들의 죽음으로 나를 구속하셨다.
내가 너를 구속했다. 나는 이미 네가 죄 때문에 길을 잃은 미로에서 너를 이끌어 내었다. 그런즉 시험의 그물망을 벗어나고, 시련의 미로를 통과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할 것이다.(사42:16)
주께서 나를 구속하셨기에 나의 가는 길을 인도하신다. 주님의 선한 계획하심에 따라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 나는 그저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되는 것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허락하신 이상 일부가 아니라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값을 치르신 사실과 예수님의 보혈 덕분에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은 달라질 수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핏자국으로 인해 우리는 두려움을 넉넉히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버림을 받을 수 있을까? 구속자가 아주 큰 값을 치르셨기에 우리는 무시될 수 없다. 그러므로 확신을 갖고 행진하면서 구속자가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그저 제목을 보고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할 것이라고 여겼던 나의 생각을 빗나가 책은 내게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시선과 마음을 깨닫게 하였다. 주님의 즐거움을 깨닫기 이전에 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나 보다. 하기야 연예를 하면서 상대방에 대해 더 알아가지 않은가! 그처럼 나도 주님과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선 주님을 아는 시간이 필요했나보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시 55:22). 짐을 지고 있다면 주님께 맡기라. 그 짐을 직접 짊어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하나님의 실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모든 염려를 내려놓아야 한다. 예수님이 조용히 배의 고물로 가셔서 베개를 베고 주무신 것처럼 말이다.(막4:38~39)
흑.. 생각해보니 주님과의 즐거운 교제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던 것이 현실에 대해 내가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부터였던거 같다. 주님이 나를 구속하셔서 나를 선한길로 인도하시고 모든것을 풍성히 채우시며 나의 짐을 덜어주겠노라고 나의 짐을 달라고 하시는데 내가 그 짐을 지려고 하다보니 지쳐서 그분의 임재 즐거움을 놓쳤던거 같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 믿음과 평안은 함께 간다. 믿기만 하면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그 분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때 자비와 기쁨과 빛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은 언제나 "믿음대로 되라"는 말씀을 따른다.(마 9:29)
현실에 대해 근심하고 걱정하는 그 마음을 좀 더 들여다 보면 그건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현실을 두려워 하는 주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 네.. 하나님... 이토록 주께서 저를 보살피고 계시는데 제가 어찌 두려워합니까!? 믿음없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ㅠ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그 마음을 깨달으니 내마음에 먼가 알 수 없는 평온함이 밀려왔다. 이젠 주님을 만나고 싶어졌다. 얼른 만나서 주님의 임재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어졌다.
그들은 읽고, 노래하고, 무릎꿇고, 듣는 것에 만족한다. 껍데기에 만족함으로써 복된 영적 알맹이, 즉 진정한 "골수와 기름진 것"(시 63:5)을 전혀 알지 못한다. 어느 교회를 둘러보더라도 대부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예수님을 밀면서도 만지는 법이 없다. 그들은 찾아오지만 예수님과는 접촉하지 않는다.
ㅇㄴ..저 모습은 예전의 내모습인거 같다. 말씀을 읽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는 것에 만족해 하던 내 모습. 그것은 어디가지나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그 이전에 있는 주님과의 접촉을 더 갈급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눅8:46)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여러분은 홀로 기도하면서 기도하는 것 자체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지기 전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예배에 참석해서도 설교나 기타 순서를 듣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 다가가서 만지기 전까지 만족하지 말라.
주님께 손을 뻗어야 한다. 그 여인처럼 주님의 그 옷자락을 잡아야 한다.
이전의 그 즐거움은 과거이다. 그 즐거움을 현재에도 누려야 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껍데기에 연연해하지 말고 그 근원이 되시는 주님의 옷자락을 잡아 주님을 만져야 한다.
이 책의 각 세션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가운데
그 말씀들이 퍼즐처럼 딱딱 들어맞춰져서 읽고 난 뒤에는 나의 이런 마음과 같은 큰 흐름을 형성하게 해준다. 갈급함으로 메마른 내 마음에 주님의 진리의 말씀들이 비가 되어 내 마음을 즐거움으로 흠뻑 적신다.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에 빠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를 구속하신 그 분의 마음을 가슴깊이 느끼며 껍데기(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과거의 기쁨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 지금 이 순간 손을 뻗어 주님을 만져라. 주님과 접촉하라. 그러면 그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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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세계경제위기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먹고 사는 문제에 바빠 더욱더 주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작은 일에도 하나부터 열까지 기도로 예수님을 찾으며 주님의 임재를 경험했는데…….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 이 책은 지금 같은 시대에 정말, 나에게 너무나 간절히 필요한 책이었다.
이 책은 임재를 통한 즐거움을 소재로 총 15분류의 내용을 통해 주님의 임재에 대해 말씀해주고 있다.
2장, 3장,........15장까지 주님의 임재는 우리에게 더없이 큰 기쁨이요. 깨달음을 준다. 다시 한 번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해준 이 책에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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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펄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지가 100년이 훨씬 더 넘은 지금까지도 그의 설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은혜를 주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의 설교가 오로지 성경만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설교자인 그 역시 기도하는 성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브니엘.2008>은 예수님의 임재와 친밀한 사귐에서 오는 기쁨을 소개하고 있다. 총 15편의 스펄전의 설교를 담고 있는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예수님의 임재”와 “친밀함 사귐”이다. 우리의 삶의 안식과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임을 말하고 있다. 스펄전은 예수님의 임재를 소개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님이 찾아오시던 그때의 감격을 기억하며 책을 시작한다. 책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가장 먼저 한 행동은 회개였다. 그리고 회개 후에 비로소 예수님의 임재가 “달콤한 위로”로 다가왔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임재의 달콤함을 경험해보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 인간은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임재를 직접 경험해 보아야 진정한 예수 믿는 기쁨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성경적이면서도 성경의 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구절 하나를 중심으로 성경 전체에서 나타난 주님의 임재의 모습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 전체에 나타난 주님의 임재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주님과의 관계를 평생토록 유지하며, 예수님을 통한 구원과 평화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깨어짐과 회복의 연속이다. 깨어짐에 비해 회복은 몇 배 더 어려운 일이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다. 그래서 날마다 주님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날마다 시간을 내어 하나님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 노동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저자는 날마다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고 쉼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과 주파수를 맞추고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우리는 임재의 기쁨을 날마다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스펄전은 책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접촉을 우리의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자”(215p)라고 말한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지만 예수님과 접촉한 사람은 얼마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님과의 접촉을 원한다면 기도와 성경이 주님을 만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확실한 방법임을 알고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말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말씀과 예배를 멈추지 말라고 말한다. 스펄전의 호소력 있는 예수님의 임재에 대한 감격과 달콤함을 시종일관 느낄 수 있었던 이 책을 통해 예수님의 임재에서 나오는 달콤함을 배웠다. 이제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예수님의 임재의 달콤함이 내 삶에 나타나기를 소망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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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접했는데, 그 때 받은 큰 은혜때문에 스펄전 목사님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가끔씩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문을 보기도 합니다. 감사하게도 스펄전 목사님의 모든 설교가 올라가 있는 사이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문입니다^^;(http://www.spurgeon.org )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은 미발굴된 원고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데, 실제로 찾아가보니 스펄젼 목사님의 모든 설교가 다 있다고 생각한 이 사이트에도 이 책의 내용은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별로 인텍스 된 사이트는 http://www.spurgeon.org/index/rindex.htm 입니다)
참으로 보석을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의 특징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언제나 하나님께 고정시켜 줍니다. 오늘날 인기있는 목사님의 설교 중에는 지나치게 우리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들도 있는데(물론 그런 설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설교에서 가장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눈이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굳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이 변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면 우리는 그 앞에 무릎꿇고 주라 고백하며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이 책은 총 15편의 설교집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각각 다른 본문이고, 본문 간에 서로 연관성이 없지만 (스펄젼목사님 설교의 특징은 본문이 거의 1절이고 많아도 3절을 넘지 않습니다) 설교의 핵심 내용은 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가와 하나님 품안에 거하는 영혼의 안식과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이 주님 안에 있을 때 그 때서야 우리는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립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쉽게, 너무나 자주 잊어버리고, 이 세상의 즐거움과 기쁨을 좇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터진 웅덩이라(렘 2:13), 우리에게 일순간의 기쁨을 줄지언정 더 큰 갈증만을 불러일으킬 뿐인데도, 진정한 기쁨의 원천인 하나님을 버리고 왜 그렇게 세상일락만을 추구하는지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참으로 멋진 중매장이입니다 (고후 11:2). 우리에게 계속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며 얼마나 멋진분인가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지 잘 아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나의 모든 삶에서 주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임재를 느끼며 그 분에게 내 모든 것을 의탁하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싶습니다. 이 결심이 흔들리지 않고 열매맺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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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펄전!
고전 중의 한 권인 찰스 스펄전의 "목회자 후보생들에게"란 책이 있다. 아마도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그리고 설교의 깊이를 알고픈 성도들에게 또한 당대 최고의 목회자라 할 수 있는 찰스 스펄전의 목회철학에 관해 궁금한 독자라면 누구나 읽어야할 그런 고전 중의 고전이다.
그렇게도 유명하고 유명한 찰스 스펄전의 책이 나왔으니 기대감과 호기 심은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역시나 찰스 스펄전의 목회는 이러한 기대감 을 충족시키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첫 페이지를 펴면서부터 조금 은 차분한 듯한 내용인 듯, 정독을 하면서 음미하면서 읽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었는데 마음이 가라앉고 스펄전이 쓴 그 내용 그대로 예수님 께서 나와 함께 임재하시는 듯- 무척 은혜스러웠고 감사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창조주의 은혜를 느낀다는 것은 정녕 너무도 감사하고 감격 스런 일이다! 마치 성경을 읽으며 나의 아버지의 뜻을 발견하게 됐을 때의 그 감격스러움과 나 자신의 본모습에 대해, 그리고 나의 자녀로서의 역할과 나의 사명에 대해 깨닫게 되는 일만큼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
"임재"라는 표현은 무척 생소했던 표현이다. 교회 담임 목사님의 설교시에도 임재라는 표현은 자주 등장하지 않는, 조금은 신앙을 조금 더 깊게 들어가야 더욱 느낄 수 있는 그런 표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임재에 관한 생각과 마음 이란, 늘 우리들의 갈망이요 연구하고픈 대상이 아닐까한다.
찰스 스펄전은 본 도서를 통해 예수님의 임재에 관해 너무도 많은 말들을 하고팠을 것이고, 또 쓰여진 내용 외에도 독자 스스로가 예수님의 임재에 대해 얼마나 전과 같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위해 기도해나가야하는지 직,간접적으로 설교하는 듯 하다.
2000여년전의 일, 그리고 약4500여년전부터 쓰였던 성경이 어제나 오늘 이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진리이듯 설교학의 황제라 불리는 스펄전의 본 도서는 성경과 같은 진리를 우리가 느끼고, 어떻게 받아들이며 또한 어떻게 느끼며 하나님과 교통해야하는지 충분히 표현하고 있으며 강조하고 있다.
부디 본 도서를 통해 예수님의 임재가 내게 얼마나 큰 즐거움과 행복을 주시는지, 왜 우리가 지금 살아가야하는지를 느껴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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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임재 체험하기!! 설교의 황제, 황금의 입을 가진 찰스 스펄전 목사님! 어렸을 적부터 그분에 대한 일화나 그분의 설교사역에 대해서는 참 많이 들었다. 그래서 막연히 “아~ 대단한 분이구나”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접하게 된 “예수님의 임재의 즐거움”은 나에게 도전을 주었다. 예수님의 임재에 대한 설교를 읽으면서 파스칼의 회심의 쪽지가 기억났다, “철학자나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확신, 확신, 감동,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자기 부정, 완전하고 달콤함.” 파스칼이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한 순간을 쪽지에 적어놓고 자신의 안주머니에 숨겨 놓았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이 책은 성경의 믿음의 조상들이 경험했던, 파스칼이 경험했던 그리고 스펄전 목사님이 경험했던 예수님과의 임재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예수님의 임재의 그 기쁨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유익한지를 자세히 설교하고 있다. “기도를 하세요. 말씀을 읽으세요” 라는 식의 구태의연한 권면의 말을 뛰어 넘는다. 그분의 임재를 사모하면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 목사님은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 아닌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소개해준다. 또한 ‘아가서’를 본문으로 한 설교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나에게 4편이나 되는 설교를 읽게 된 것은 큰 유익이었다. 본문들을 잘 이해하기 어려웠음에도 설교 가운데 들려지는 음성은 사랑을 속삭이시는 예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었다. 요즘의 설교가 때로는 단순한 격려와 심리학적 위로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비하여(소수의 설교겠지만) “예수님의 임재 즐거움”은 정말 성경적이면서도 마음에 단비를 내려주는 설교였다. 예수님의 임재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면, 책 속에 기록된 설교에 귀를 기울이기를 권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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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황제라고 불리웠고, 최초의 대형교회인 메트로폴리탄 담임목회자였던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읽을 수 있다는 자체가 내게는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닮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평상시에도 가지고 있었다. 설교자라고 한다면 누구든지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책을 한권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을 설교의 황제라고 하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의 특징은 예화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 중에 설교의 시작부터 끝까지 예화로 도배되다 시피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예화를 서너개 연결하다가 보면 어느새 설교가 끝나버리고, 나중에 기억나는 것은 설교 제목도 아니고, 말씀도 아니고,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만 남게 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말씀 중심으로, 말씀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전달하고 있었다. 마치 성경의 중심에 내가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 현장을 내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말씀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청중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교에 예화는 없지만, 예화가 있는 설교보다도 더 감동적인 내용들이 더 많았다. 아가서 말씀을 본문으로 한 설교에서 대부분의 많은 설교자들이 범하는 오류는 설교 내용이 솔로몬 왕의 인간적인 사랑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사랑에까지 적용하고 있었다. 솔로몬 왕의 사랑보다도 오히려 더 달콤하고, 그것보다도 더 깊은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성경이 이야기하는 진정성에 접근하려는 스펄전 목사님의 진지한 고민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느껴졌다. 이 책에 있는 모든 설교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모든 설교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였다. 실제로 그렇게 설교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많은 설교들이 부자되기 강의나, 성공학 강의 정도로 변질되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만일 스펄전 목사님께서 요즘 시대에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설교를 듣고 계신다면, 아마도 울분을 토하실 것이다. 모든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여야 되고, 구원의 감격과 감사에 대한 이야기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설교자들의 설교지침서가 될 정도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있는 구절 - 여러분이 예수님을 소유해야 한다면 그분을 갖게 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이렇다. 우리는 이 우물을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갈증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굶주리게 될 것이다. (p. 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