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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작품성에 사이코 누아르(Psycho-noir)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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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비평가들의 표현처럼 이 작품은 어둡고, 불안하고, 강렬하고 그리고 음울하다. 그러나 매혹적이다. 자동차 리콜 심사관이라는 비열하고 일상적인 직업을 가진 나, 그날이 그날이고, “뭔가를 원하는 것과 바라는 일 뿐”인 멍청하고 무력한 인간이다. 무능한 나는 ‘자기개선’으로 극복될 수 없다. 오직 완벽한 ‘자기파괴’만이 나를 새롭게 세울 수 있을 뿐 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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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비평가들의 표현처럼 이 작품은 어둡고, 불안하고, 강렬하고 그리고 음울하다. 그러나 매혹적이다. 자동차 리콜 심사관이라는 비열하고 일상적인 직업을 가진 나, 그날이 그날이고, “뭔가를 원하는 것과 바라는 일 뿐”인 멍청하고 무력한 인간이다.

무능한 나는 ‘자기개선’으로 극복될 수 없다. 오직 완벽한 ‘자기파괴’만이 나를 새롭게 세울 수 있을 뿐 이라고 생각한다. 자기파괴, 죽음에 다가간 사람들, 말기 암환자, 뇌 기생충에 시달리는 환자, 고환을 잘라낸 남자들의 모임에 참여해 죽음의 그림자가 깊숙이 드리운 그들과의 포옹에서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그가 참여하는 이 환자들의 모임 모두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거짓으로 가득한 그녀, ‘말라’를 발견한다.

제발 추락하기만 바랐던 비행기를 타고 출장에서 돌아온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나의 아파트는 폭발해 버렸고 길거리에는 나의 이케아 소파의 잔재가 나뒹굴고 있다. 거주할 곳이 사라진 나는 우연치 않게 만난 ‘타일러 더든’을 찾아가 함께 살기로 한다.

영사기에 1/16포르노 한 컷을 끼워 넣는 영사기사이자 식당 웨이터로 살아가는 타일러, 자기를 세게 패달란다. 주저하던 나는 그에게 한방 날린다. 그러나 타일러는 내 턱을 강하게 쳐올린다. 나는 다시 타일러를 향해 주먹을 뻗는다. 그의 주먹이 나의 복부를 강타한다. 서로 뒤엉켜 일그러지고 깨진 얼굴을 마주한다. 그래, 세상의 새로운 탈출구, 영업이 끝난 술집 지하실에 ‘파이트 클럽’을 만들자. 사정없이 짓이기고, 깨지고, 두들겨 맞고 패대는 폭력의 공간, 해방의 공간, 쾌락의 공간이다.

직장 상사로부터 바지에 묻은 피로 핀잔을 듣는다. 피를 지우려면 비누가 필요한데 비누가 없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타일러가 알고 있으니까. 지방을 끓이고, 위에 떠오른 수지를 걷어내 잿물과 혼합하면 비누가 만들어진다. 잿물은 물과 만나면 엄청난 열을 발생시킨다. 내 손등에 타일러가 키스한다. 그리고 잿물을 붙는다. 아~키스자국에 맺힌 침과 잿물이 반응해 내 손등을 태운다. 식초를 부으면 중화된단다. 손등에 타일러의 키스자국이 벌겋게 부풀어 올라있다. 타일러는 내게 잘난 그 상사 녀석을 한방에 날려 버릴까하고 묻는다. 난 그러지 말라고 한다.

난 파이트 클럽에서 가장 덩치 큰 힘센 녀석을 잡아 싸운다. 나를 잡아 시멘트 바닥에 얼굴부터 매다 꽂는다. 이가 볼을 뚫고 검붉은 피가 흐른다. 얼굴은 짓이겨지고, 눈은 뜰 수가 없다. 양 볼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파이트 클럽의 첫 번째 룰, 절대 파이트 클럽에 대해 발설하지 않는다. 파이트 클럽의 두 번째 룰, 절대 파이트 클럽에 대해 발설하지 않는다. 세 번째 룰, 등등”

그러데 파이트 클럽은 점점 많은 이들이 몰려든다. 이젠 토요일 밤이 아니라 매일 열어야 할 지경이다. 전국 각지에 지부가 결성된다.

타일러에게 묻는다. 난 이제 세상 가장 밑바닥까지 간 것일까? 온몸이 부숴 지도록 흠씬 두들겨 맞은 후의 가쁜 함을 즐길 뿐, 세상의 쓰레기인 나는 비로소 지리한 일상을 벗어난다. 급기야 타일러는 세상을 완전히 날려버릴 ‘메이헴 작전’을 세운다. 쓰레기와 역사의 노래, 썩어빠진, 인간의 세계를 없애버려야 한다. 철저한 파괴만이 새로움을 낳는다.

소유할 수 없는 것, 영원히 가볼 수 없는 곳, 열대우림과 오존층까지 지구상 모든 것을 싹 날려버리고 싶어 하는 미친놈, 그저 그 자리에서 팍 죽어버리는 것이 소원인 놈, 그 정신이 분열된 놈은 타일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작전을 위해 사람을 잔득 모아놓고 타일러가 보이지 않는다. 이 도시, 저 도시의 파이트 클럽에 가서 타일러를 보았느냐고 물어본다. 그들은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엄지를 치켜 올리며, 눈을 찡긋하며 미소를 보낸다. 젠장...

타일러가 말라를 죽일지도 모른다. 먼저 죽여야 한다. 아니 내가 죽으면 될 것이다. 차디찬 총구의 끝이 아가리 깊숙이 찔러져있다. 더 이상은 그만...짜릿한 대반전이 이 글에도 숨어있다. 발설하고 싶어 환장할 지경이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첫 번째 룰은 반전에 대해서는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룰도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 무정부주의자, 몽상가, 세상의 좋은 일이 자신에게 저절로 일어나길 바라는 무지몽매하고 안일한 인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어쭙잖은 개선으론 안 된다. 철저한 파괴만이 새로워 질 수 있다. 갑자기 온 몸이 근질근질 해진다. 어디 가까운 격투기도장으로 달려가 코가 부러지고 낯짝이 으깨어지도록 얻어터지고 싶어진다. 정말 이 지긋지긋한 삶을 뒤바꿔 놓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놀라운 죽음의 기적.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걷고, 떠들어 대던 이들이 몇 초 후에는 그냥 물체로 전락해버리는 것.” 타일러! 탕! 탕!

정말 기이하게 매력적인 작품이다. 전형적인 대중 장르소설 같다가도, 진지하고 철학적이며 사색적인 이상향을 은유하는 문장들은 정통문학작품으로도 다가온다. 그럼에도 붉은 액체와 차가운 철의 감각, 니트로글리세린, 승부 없는 맹목의 싸움, 어두운 지하의 노란 등불아래 번질거리는 땀과 엉킨 피와 폭력이 낯설기만 한 것은 무어지? 이미 이 사회에 너무 동화되어 내 감각이 무뎌져 버렸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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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현실도피,끝없는 자기부정:파이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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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꿈속에서 혹은 공상 속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생각해본다. 좀 더 멋진 외모와 좀 더 고급스러운 환경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직업을 갖은.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의 모습보다는 좀 더 나은 존재로서의 자신을 말이다. 하지만 꿈은 언젠가 깨고 환상이 사라지고 나면 현실은 더 비참하게 느껴질 뿐이다. 여기 자동차 회사 리콜 심사 조사관인 "나"는 불면증을 앓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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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꿈속에서 혹은 공상 속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생각해본다. 좀 더 멋진 외모와 좀 더 고급스러운 환경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직업을 갖은.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의 모습보다는 좀 더 나은 존재로서의 자신을 말이다. 하지만 꿈은 언젠가 깨고 환상이 사라지고 나면 현실은 더 비참하게 느껴질 뿐이다. 여기 자동차 회사 리콜 심사 조사관인 "나"는 불면증을 앓고 있을 뿐인 지나칠 만큼 평범한 사람이다. 단지 매일 또 다른 도시의 공항에서 눈을 뜨고, 자신의 완벽하고 깔끔한 아파트는 점점 낯설어지고, 환자들의 모임에서만 평안을 느낄 수 있는 미치도록 단조로운 일상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억압된 자아의 만족을 위해서인지 "나"는 강박적인 수집이라는 이상행동을 보인다. 온갖 환자들의 모임. 색깔별로 모은 커버세트. 먹을 것보다 온갖 다양한 맛의 향신료가 들어찬 냉장고등. p.56 경비원의 말처럼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전혀 원하지 않았던 것들 속에 묻혀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평범한 자신을 그대로 둔 체, 자유와 일탈, 파괴와 무자비한 새로운 나를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나"가 환자들의 모임을 즐겨 찾는 이유는 주목과 배려,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어서였다. 파이트 클럽이 시작된 이래, 타일러 더든은 어느 곳에 가든 주목과 배려,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하지만 타일러는 문화적, 정신적 테러로 사람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조성하는 반사회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해주겠다고 말하는 타일러에게서 위협을 느끼는 "나"에게 말라 싱어는 본래의 자신과 연결된 한줌의 희망의 끈이다. 그러기에 타일러로서 그녀를 사랑하기도 "나"로서 거부하기도 다시 가까워지기도 하면서, 스스로도 어느 쪽의 삶을 선택할 것인지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파이트 클럽> 전체에 걸쳐 "나"라는 인물의 정신분열 과정을 탐미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짧은 호흡으로 극대화된 냉소적인 작가의 시선은 때론 너무나 신랄하고 잔인해서 거북함을 느끼게도 한다. 처음 "나"는 자신의 개별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점차 "나"와 삐뚤어진 타일러 더든의 일상이 겹치고, "나"와 타일러가 서로에 주먹을 날리며, 그와 동시에 p.26 "눈에 보이는 건 모두 거짓이다 그들의 진실 한가운데에 감춰진 거짓" 작가와 독자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나"와 타일러 더든의 숨바꼭질이기도 한. "나"는 타일러를 찾고, 사람들은 "나"에게 그를 모른다고 부정한다. 끝없는 자기부정이 반복된다. 결말에 이르기까지도 "나"의 이름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익명성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체 자기 파괴적인 타일러 더든으로 남는다. 아니, 최후의 순간까지도 살아있음을 부정하는 "나"가 남는 것이다.

역자는 <파이트 클럽>이 아버지와 소원하거나, 아버지가 없는 젊은 남자들의 나약한 정신이 불러온 주체성 상실을 그려내고 있다고 한다. "나"도 타일러도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아버지라는 강력한 울타리 안에서의 안정감을 느껴보지 못한 이들에게만 해당될까. 기본적인 뿌리의식이 결여된 이들이 극단적 자기부정으로, 새로운 자아형성을 통하여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닐까 싶다.

YES마니아 : 로얄 j*****u 2008.12.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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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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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탕에 피가 뭍은 주먹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것 같은 강렬한 인상을 주는 표지. 이 책은 그 표지에 걸맞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로도 보았던 이 책은 희미한 기억속의 영화가 안겨준 내용과는 사뭇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로서도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이 책은 겉으로 드러나는 액션과 미스터리의 표피 밑에 많은 것을 안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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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탕에 피가 뭍은 주먹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것 같은 강렬한 인상을 주는 표지. 이 책은 그 표지에 걸맞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로도 보았던 이 책은 희미한 기억속의 영화가 안겨준 내용과는 사뭇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로서도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이 책은 겉으로 드러나는 액션과 미스터리의 표피 밑에 많은 것을 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떄문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싸우는 클럽이 있다. 사교클럽, 당구틀럽, 댄스클럽, 포커클럽처럼 말이다. 싸우기 위해서 모이는 클럽. 개인적인 감정이나 원한 같은 것, 혹은 신체적인 단련이나 육체의 수련같은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저 싸움 그 자체를 위해서 모이는 클럽. 어쩐지 B급 영화같은데서 본것 같은 스토리이면서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 힘든 매력적인 소재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나는 싸움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허구헌날 책만 읽는 일개 서생에도 미치지 못하는 창백한 얼굴의 먹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먹물들의 억눌린 콤플렉스를 풀어주는 시원한 폭로성 발언이 바로 이런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셔츠도 신발도 벗고, 아무런 룰도 없이, 상대편이 완전히 뻗을때까지, 아무런 이유없이 그저 싸우기 위해 싸우고, 그 싸움이 끝나고 나면 이긴자와 진자가 나란이 부둥켜 않고 격려와 위로는 나누는 그런 생활.

 

당연히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디오니소스적인 환상이다. 이 세상에서 문화니 문명이니, 지식이니, 창의성이니 하는 것들로 무장하여, 자신의 신체적 나약함과 정신적인 의지의 박약함을 감추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기득권자인 소위 먹물들에게 보라는 듯이 생생하게 펄펄 살아 숨쉬며 끓어 넘치는 피와 살의 냄새를 안겨주는 책. 이 책을 그렇게 부르면 안됄까...

 

이 책은 원래는 7페이지 분량의 아주 짧은 단편을 늘린 책이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이 책에 소개되는 수많은 소재들이 첨가된 것이라고 에필로그가 말을 한다. 나는 거꾸로 생각을 한다. 이 책에서 너무 짧은 분량을 커버하기 위해 덧붙여진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7페이지에 들어 있었던 진짜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늘날 문단에서 문학작품이라고 인정을 받을수 있을만한 형식을 갖추기 위해 억지로 끼워넣은 틀을 해체하고 작가가 진정으로 세상에다 말하고 싶었던 싱싱한 육성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소설적인 요소, 문학적인 기교, 우아함, 세련됨, 기승전결의 형식을 해체하고도 남는 이 책의 진짜 메시지는 무엇일까...

 

나는 생각해보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 속에 내재하는 또 하나의 본성. 나를 비롯한 이 사회의 기득권층들이 깃대어 살고 있는 소위 문화라는 것을 벗겨낸 삶의 또 다른 모습. 야수성. 바로 저자는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지식과 문명의 찬란한 발전이라는 모습뒤에 초라한 그림자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또 하나의 모습.

 

 

s***g 2008.11.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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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에 대해 절대 발설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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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전환이 좀 불친절하네요. 영화를(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영화화했습니다. 브래드 피트, 에드워드 노튼, 헬레나 본햄 카터가 주연을 맡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적역을 맡은 것 같더군요. 영화 참 재밌게 봤습니다.) 미리 보지 않았다면 몇 장면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영화 장면이 떠올라서 작가가 깔아놓은 복선이 고스란히 보이더군요. 즐거운 반면 아쉽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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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전환이 좀 불친절하네요. 영화를(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영화화했습니다. 브래드 피트, 에드워드 노튼, 헬레나 본햄 카터가 주연을 맡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적역을 맡은 것 같더군요. 영화 참 재밌게 봤습니다.) 미리 보지 않았다면 몇 장면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영화 장면이 떠올라서 작가가 깔아놓은 복선이 고스란히 보이더군요. 즐거운 반면 아쉽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반전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테고 더 재미를 느꼈을 텐데 말입니다.

파이트 클럽은 30채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배열되지 않고, 화제 중심으로 짤막짤막하게 서술되는 바람에 앞서 말했듯 정신이 좀 없습니다. 내용 자체도 정신(?)이 약간 없는 듯 합니다. 심하게 반사회적이지는 않은데 기성세대들이 보기에는 언짢아 할 구석이 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분도 많을 겁니다.

잭은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회사원입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불치병 환자들의 모임에 참석해서 위안을 얻는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사내 타일러 더든을 만납니다. 타일러 더든은 그에게 최대한 세게 때려달라고 요구하고, 그 결과 파이트 클럽이 탄생합니다.

파이트 클럽의 첫 번째 룰, 절대 파이트 클럽에 대해 발설하지 않는다.
파이트 클럽의 두 번째 룰, 절대 파이트 클럽에 대해 발설하지 않는다.

소설 파이트 클럽의 매력은 파이크 클럽 그 자체에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 체면 등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버리고 맨몸으로 부딪쳐 싸우고, 그 싸움을 통해서 자신과 대면한다고 것, 그것이 파이트 클럽의 의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파이트 클럽을 읽고 나서 부작용이 좀 생겼는데 식당에 가기가 겁나요.^^
책을 읽은 분은 공감하실겁니다. 앞으로는 종업원들에게 불평도 못하겠더군요. 그냥 주는 대로 먹어야 할 듯.^^

j***i 2008.11.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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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시니컬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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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 척 팔라닉. 거침없이 시니컬하시구나.   첫장면부터 예사롭지 않다. 폭탄이 설치된 건물 옥상에서 주인공 입안에 총구를 들이밀고있는 또 다른 주인공인 타일러 더든의 모습. 입안에 총이 들어가있는데 어쩜 이리도 무신경한지 주인공의 모습에 흠칫 놀라면서 책의 내용으로 빠져들어본다. 게다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영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그런 찜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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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 척 팔라닉. 거침없이 시니컬하시구나.

 

첫장면부터 예사롭지 않다. 폭탄이 설치된 건물 옥상에서 주인공 입안에 총구를 들이밀고있는 또 다른 주인공인 타일러 더든의 모습. 입안에 총이 들어가있는데 어쩜 이리도 무신경한지 주인공의 모습에 흠칫 놀라면서 책의 내용으로 빠져들어본다. 게다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영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그런 찜찜함.. 주인공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주인공인 "나"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사람도 없어서 이름이 뭐지도 모르겠고 눈먼자들의 도시에서처럼 주인공인 "나"에게만 유독 따옴표 ( " )를 적용시키지 않아 읽는내내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몇번이나 튀어나와 앞뒤문장을 곱씹어 읽어봐야만 했다.(지리멸렬한 나의 집중력과 이해력을 탓할뿐 누굴 탓하랴...)

 

책의 스토리는 대략 여행을 다녀왔더니 하루아침에 살고있던 아파트가 폭발로 날아가버렸고, 그렇게 인연이 되어 주인공이 타일러 더든에게 얹혀살게 되면서 그와 함께 치고박고 쌈박질하던게 어느새 파이트 클럽이란 행사가 되어 점점 타일러에게 휘둘려 결국 이런저런 일들을 겪는다는 내용.(생각보다 사건의 스케일이 커서 놀랐다.)

 

스스로 쓰레기라고 지칭하고 세상 밑바닥이란 밑바닥은 다 훑고 다니는것 같고. 더이상 떨어질 나락도 없을것같은데 그래도 세상 나쁜짓은 혼자 다 할것같은 사람들. 그러면서 이렇게 사는게 좋은거라고 우겨댄다. 대체 왜! 왜! 왜!! 그렇게 자기를 파괴시키면서 그걸 타당하다고 우기는거냐고 왜!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인데 그래도 곧죽어도 이 사상이 멋지다고 가진거 개뿔하나도 없으면서 그나마 있는것도 전부다 내던지고 타일러에게 매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그 씁쓸함이라니..대체 타일러가 뭐라고 그러는거냐고..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힘들었던 점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주인공인 "나"에게 따옴표가 없어서 입밖에 내뱉는 소리인지 아니면 속마음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는점.(중간정도에서는 신경질나서 울컥했다!) 그리고 작가의 문장이 너무 시니컬 하다는점. 단어를 적게 사용해서 문장을 짧게 만들어 여러문장을 나열하면서 할말다하는 작가의 이런 문체들이 도통 적응이 안돼서 힘들었던것같다. 분명 할말 다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뜻도 제대로 전달하는것 같은데 왜 이런 묘한 반감이 생기는 것인지.. 아무래도 평소 문장을 길게 말하고 한 문장안에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가능하면 표현하고자 하는 그간의 내 평소습관때문에 이 작가의 문장이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게 느껴진걸지도 모르겠다.(이건 순전히 내취향의 문제.)

 

하지만 짧은 문장이 내 평소 취향이 아니었을뿐 재미가 없었다는건 절대 아니다. 책속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소한 사건들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다. 게다가 문제의 따옴표!!! 이 따옴표 때문에 중간에 책읽으면서 울컥! 하기도 했지만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왜 따옴표를 없앴는지 이해했다! (오옷 작가는 대단해! 이래서 없앤거였어!!)

 

책을 읽으면서 슬쩍 의심했던 부분이 마지막에 이르러 눈으로 결과물을 볼수있어서 그런가? 새삼스럽게 기분이 좋아졌다. 뭐라그럴까. 주인공인 "나"는 따옴표 없는것도 전부 이해되고 주인공의 이상심리들도 전부 해결됐다랄까? ㅎㅎ 기분좋다. 중반까지는 큰 재미를 못느꼈다고 친다면 중후반에 가서야 번뜩! 거리게 된다.(나만 그런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처음 만난 작가의 작품이 나름대로 아주 만족스럽다.~

l******k 2008.11.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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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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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영화로도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던 '파이트 클럽'의 원작. 역시 문자형 인간인 탓인지, 아니면 영화의 이미지가 흐릿해질 시점이어서 그런지 책으로 읽는 것이 훨씬 박진감넘친다는 생각이다. 물론 배우 개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미 결말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책의 긴장감을 높히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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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영화로도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던 '파이트 클럽'의 원작. 역시 문자형 인간인 탓인지, 아니면 영화의 이미지가 흐릿해질 시점이어서 그런지 책으로 읽는 것이 훨씬 박진감넘친다는 생각이다. 물론 배우 개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미 결말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책의 긴장감을 높히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 
c******e 2010.03.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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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소설 사이-파이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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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이트 클럽’은 척 필라니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성공을 거둔 바람직한 사례일 것이다.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의 분열된 내면 심리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어, 영화보다는 주인공에게 보다 더 공감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은 부분이지만, 소설 중간중간 발단 전개 절정 결말에 이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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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이트 클럽’은 척 필라니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성공을 거둔 바람직한 사례일 것이다.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의 분열된 내면 심리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어, 영화보다는 주인공에게 보다 더 공감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은 부분이지만, 소설 중간중간 발단 전개 절정 결말에 이르기까지 서술자는 한 잡지에서 어린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격화된 인체 해부도를 본 것을 계기로 문맥과 상관없이 ‘나는 조의 손가락, 나는 조의 췌장, 나는 조의 창자’와 같은 식의 단어를 반복하는데, 이러한 무의식적인 반복이 분열된 그의 자아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식의 계속된 반복이 영화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재미를 준다.

영화에서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또다른 자아가 만나게 되는 곳을 비행기 안으로 설정해 현실감이 있어 타일러가 주인공의 또다른 자아라는 사실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타일러와 최초로 만나는 곳은 이름모를 바닷가로 설정되어 있다. 벌거벗은 채 타일러는 다섯 개의 기둥을 모래 사장에 꽂아 넣는데, 소설에서는 그 그림자가 마치 손바닥 모양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타일러는 그 손바닥 그림자의 가운데 앉아있다. 이 비현실적인 첫 만남은 타일러가 실존하지 않으며 주인공의 어두운 그림자일 뿐이고 앞으로 그를 통제하게 될 것임을 어느 정도는 짐작케 해준다.

또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자해를 통한 멋진 연기로 회사의 고문 자격을 얻게 되는데, 소설에서는 타일러와 함께 일하던 고급 레스토랑에서 벌어진 일로 묘사되어 있다. 그 외에도 마라의 어머니의 콜라겐을 가지고 비누를 만드는 과정도 영화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마라와 타일러와 주인공의 삼각관계도 미묘하게 그려지는데, 주인공은 타일러를 원하고, 타일러는 마라를 원한다. 그리고 마라는 주인공을 원한다. 이러한 삼각관계, 즉 서로가 서로를 원하지만 서로의 등을 바라보는 이상한 관계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와 결부되어 있으며 현대 사회 남성성의 결여에 기인한다.

실제로 포유류는 여성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었다. 실제로 포유류 중 어떤 한 종에서 수컷이 멸종했으며, 암컷들끼리 유사 교미행위를 함으로써 번식을 한다는 어떤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아마도 멀지 않은 미래에, 남성은 박물관에 박제된 채로 전시될 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그 모형이 브래드 피트와 같이 잘생긴 수컷이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소설보다 영화가 좀 더 나았던 점은 그 잘생긴 브래드 피트와 선정적인 폭력성 뿐이었다. 실제로 작가인 척 필라니는 총이나 폭탄에 대해서는 뭔가 알지 몰라도, 싸움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소설에서는 파이트 클럽에서의 피 튀기는 싸움 자체에 대해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다른 폭력적인 소설들을 읽었을 때 나는 정말 내가 링 위에 있는 것처럼 이를 악물며 폭력이 주는 짜릿함을 만끽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약간 부족했다.

확실히 나는 XX염색체를 가진 여성이지만, 그의 타일러는 내 안에도 있다. 그걸 아니무스든 아니마라고 부르든 뭐든 간에 파괴하고 싶은 욕망, 철저하게 파괴되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있는 것만큼은 분명히 사실이다. 합리주의를 그 어떤 시대보다 맹신하는 이 시대는 그 다른 시대보다도 미쳐있는 것 같다. 그래서 타일러가 승리하기를 그렇듯 간절히 바란 건지도 모르겠다.

 

a*****a 2009.01.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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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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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은 책보다는 영화를 통해 먼저 접했다. 많은 에피소드들이 영화에 그대로 사용되었는데, 몇가지 중요한 장면들은 영화와 차이가 있었다.   영화를 보고 너무 인상 깊어서 결국 책을 보게 되었는데,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느낀점은 영화가 더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들은 영화화가 되면 책을 읽으면서 상상하던 부분과의 괴리로 인해 원작을 못 따라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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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은 책보다는 영화를 통해 먼저 접했다.

많은 에피소드들이 영화에 그대로 사용되었는데, 몇가지 중요한 장면들은 영화와 차이가 있었다.

 

영화를 보고 너무 인상 깊어서 결국 책을 보게 되었는데,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느낀점은 영화가 더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들은 영화화가 되면 책을 읽으면서 상상하던 부분과의 괴리로 인해 원작을 못 따라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파이트 클럽>의 경우는 원작을 뛰어 넘어서 멋지게 영화화 되었다고 느껴졌다.

 

<파이트 클럽>은 1인칭 관점에서 서술되었다. 주인공이 하는 대화나 생각은 인용부호가 없이 서술되어 그것이 생각인지, 대화인지, 아니면 설명인지 많은 부분에서 헷갈렸다. 단지 그 다음에 나오는 타인의 대화(인용부호로 묶인)를 통해 그것이 주인공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인지, 생각인지를 판단해야 했다.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파괴적이며, 일탈적인 행동을 하는 타일러 더든의 행동의 괴적을 따라간다. 주인공은 사회규범을 무시하는 타일러 더든의 행위를 동경하며, 그에게 깊숙히 감화되어 간다. 영화의 릴사이에 포르노 필름을 삽입하고,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면서 음식에 오줌을 섞는다. 그리고 병원에서 나온 지방을 이용하여 비누를 만들어 그 지방을 제거한 사람들에게 팔아치운다. 타일러 더든은 자신만의 일탈에 만족하지 않고 <파이트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현대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폭력성이 거세되어 버린 남성들을 끌어모아 폭력성을 일깨우고, 그들을 조직화하여 사회를 파괴하려고 계획한다.

 

<파이트 클럽>의 멤버들은 처음에는 오로지 <파이트 클럽> 안에서만 그들의 폭력성을 내보인다. <파이트클럽>을 벗어나면 그 폭력의 흔적을 온몸에 새긴 채 세상의 법칙에 순응하는 사회인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타일러 더든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메이헴 작전을 계획하여 그들의 폭력성을 그들이 속한 사회를 파괴하여 무질서하게 만드는 데 이용하려고 계획한다. 어느날 주인공은 자신의 또다른 자아가 타일러 더든임을 깨닫게 되고 그를 막으려 하게 된다.

 

책은 영화와 다른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원작을 카피하지 않고 원작을 넘어서고 싶은 욕구의 표현일 것이다. 두 가지 결말 모두 타일러 더든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가 뿌려둔 파괴의 씨앗들은 자기 스스로 발화하여 이제는 타일러 더든 조차도 어떻게 할 수 없도록 커져가게 된다.

 

어찌보면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벗어나기 위해 <파이트클럽>을 찾은 우주 원숭이들이 타일러 더든이 만든 규범과 규율, 그리고 조직에 갇혀서 단지 조직의 부속으로써 사회에 그들의 폭력을 휘두른다는 점은 역설적이라고 느껴젔다.

 

b*******1 2011.01.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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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러브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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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클럽은 러브코미디이다. 황당하겠지만 진짜이다. 그런데 본론을 이야기하기전에, 이 작품에는 너무나도 재밌는 요소들이 뷔페처럼 널러퍼졌다. 대표적인 자본주의 부산물인 성형외과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어 다시 상류층한테 판다든지, 자동차 리콜검사관이었던 주인공이 교통사고에 당해버리는지. 자동차와 도로는 자본주의를 나타내는 가장 큰 메타포이다. 신호동을 따르면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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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클럽은 러브코미디이다. 황당하겠지만 진짜이다. 그런데 본론을 이야기하기전에, 이 작품에는 너무나도 재밌는 요소들이 뷔페처럼 널러퍼졌다. 대표적인 자본주의 부산물인 성형외과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어 다시 상류층한테 판다든지, 자동차 리콜검사관이었던 주인공이 교통사고에 당해버리는지. 자동차와 도로는 자본주의를 나타내는 가장 큰 메타포이다. 신호동을 따르면 안전하나, 신호등을 따르지않으면 차에 치어 죽는다는 위험이 있다.
자본주의라는 질서에 따르면 안전하지만, 질서에 따르지않으면 생계에 위험이 있는것처럼. 이 책의 방식도 흥미롭다. 이책은 나레이터에 시점에 계속 따라가고 일반적인 기승전결은 전혀아니다. 그런데도 왜 몰입되는가 생각해보면 살만루슈디의 고비문학의 효과같다. 본론말고 서론이 더 길어지고, 마치 내옆에서 이야기를 하는듯한 형식에 독자는 더 몰입하게 된다고한다. 파이트클럽은 아나키즘 옹호도, 자본주의 비판도 아니다. 그저 현대사회에 불안정한 인간의 복합적인 두개의 내면을 다룬것이다. 우리 모두들 자유를 원하지만 동시에 안정을 원한다. <- 이것을 나타내는게 타일러 더든과 주인공이다.
타일러더든은 완전히 실패한 캐릭터이다. 작가의 의도에서는 남성성 비판이었겠지만, 일반독자가 보기에는 너무 멋있게 나와버렸다.... 이건 데이비드 핀처의 탓도 있다. 데이비드 핀처는 멋없는 인물이면 관객이 설득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여, 일관되게 만든것이다. 타일러 더든은 자유를 포방하지만, 후반에는 그 누구보다 자유를 억압하는 인물이다. 자유라는 이름의 명목이 곧 탄압이 된다는건 역사에서 많이 보이는데. 게다가 타일러더든이 빌딩을 무너트린다고, 시스템이 붕괴할리도 없다. 빌딩이 무너져도 여전히 다른 건물든은 아주 잘 남아있다. 그니까 다 뻘짓이라는것이다. 은행을 붕괴시킨다고 채무가 없어져 자유라는것도 얼마나 궤변인것인가.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는 총 2개로 위로를 받는다. 하나는 모임을 통해 위로를 받는 거세된 남성성이고, 다른하나는 폭력을 통한 남성성. 모임에서 거짓으로 이름을 쓰고는 위로를 받는 장면은 하필이면 고환암 제거모임이다. 21세기에 커뮤니티로 소통하는 사람들처럼, 가짜탈을 쓰고 위로를 받는다. 거기에서 말라가 등장한다! 말라는 현실이다. 비유나 은유가 가득한 책이어서, 말라는 주인공의 가짜에 대한 내면의 무의식에 불안을 나타낸것이다. 말라는 현실의 남성성이고, 타일러 더든은 원초적인 남성성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말라를 혐오하는것이다. 파이트클럽이나 고환암모임을 통한 도피를, 말라앞에 만나면 현실의 자신을 직면해야하니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n*****0 2026.02.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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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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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팔라닉의 ‘파이트 클럽’은 처음에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데이빗 핀처의 영화 ‘파이트 클럽’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영화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어쩔 줄을 몰랐었는데, 다행히 얼마 후 원작도 번역-출판이 되어서 무척 열광하며 읽게 되었던 소설이다.   영화가 워낙 세기말 적인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지게 되었고 공개되었기 때문인지(1999년), 그리고 그 당시의 개인적인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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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팔라닉의 파이트 클럽은 처음에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데이빗 핀처의 영화 파이트 클럽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영화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어쩔 줄을 몰랐었는데, 다행히 얼마 후 원작도 번역-출판이 되어서 무척 열광하며 읽게 되었던 소설이다.

 

영화가 워낙 세기말 적인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지게 되었고 공개되었기 때문인지(1999), 그리고 그 당시의 개인적인 정서-감수성이 이 영화가 만들어내고 전달하려는 정서-감수성과 지나칠 정도로 가까웠기 때문인지 여전히 강렬하게 기억되고 있고, 자주 떠올리기는 하지만 그래서인지 일부러라도 잘 찾아보지 않게 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여전히 그때와 같은 울분과 분노로 자욱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 같지만... 과연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원작의 팬들에게는, 척 팔라닉의 팬들에게는) 무척 불경스럽게 들리기는 하겠지만 원작 소설보다는 영화가 더 만족스럽게 느껴졌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척 팔라닉의 소설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의 소설이 갖고 있는 매력이, 수다스럽게 느껴지면서도 간결하고 압축적인 특유의 글쓰기가 만들어내는 자극이 무척 마음에 들어 척 팔라닉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았기 때문에(‘파이트 클럽을 제외한다면 서바이버정도가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의 글에 열광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이런 개인적인 평가에 대해서 크게 반론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그저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어느 쪽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둘 다 마음에 들지만 결국 한쪽이 더 좋을 뿐이다.

 

몇 번은 읽어봤기 때문에,

그리고 몇 번을 읽어봤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척 팔라닉의 파이트 클럽은 어떤 식으로도 불만스럽거나 아쉬운 부분을 말하기 보다는 어떤 점들이 매력적이고 애정을 갖게 되는지를, 무엇이 그렇게 만족스럽게 만들어주는지를 말하는 것이 더 알맞은 방식일 것 같다.

 

당연히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이미 충분히 느꼈을 것이지만, 척 팔라닉의 파이트 클럽이 갖고 있는 매력은 재빠른 전개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뒤틀린 방식으로 울분을 토해낸다는 점일 것 같다.

 

삶의 분노를

세상에 대한 울분을

뒤틀린 방식으로... 마음껏 토해내고 있다.

 

냉소

혐오

비꼼

조롱

분노

혐오

그리고 기괴한 희열

 

모든 것에 대한 공허로부터 시작해서

자기혐오와 자기파괴로 향하기까지

 

이야기의 진행도 색다르고 흥미롭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그보다는 주인공의 생각-발언을 통해서 들려주는 그리고 타일러 더든을 통해서 들려주는 현대사회에 대한 온갖 토악질들이 더욱 더 관심을 끌게 만들고 (위험한 방식으로) 설득되어버리는 것 같다.

 

강렬하고 자극적이다.

그리고 읽게 된다면 잊을 수 없게 만든다.

흉내내고 따라하고 싶어질 정도로... 충동적으로 만든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그다지 설득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무척 충격적으로 그리고 자극적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부셔버리는 것에 동참하도록 선동하고 있다.

 

세상에 대한 애정보다는 혐오와 환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눈살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시선에 약간이라도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감탄스럽게 지켜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라면 척 팔라닉의 파이트 클럽은 너무나도 아끼게 되는 소설이 될 것 같고 그 어떤 작품들에 비해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완성도와 매력을 담고 있다고 말하게 될 것 같다.

 

각별함이라는 표현을 쓰게 만들고 싶어질 것이다.

 

끊임없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어지고,

죽음()을 꿈꾸는 절망으로 가득한 사람들이라면

공허로 허우적거리고 좌절감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과격한 방식의 냉소와 농담 그리고 지저분하고 뒤틀린 상상력이 한없이 유혹적으로만 느껴지게 될 것 같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다.

 

현대사회에 대한 해괴한 방식의 조롱이라는 것이 분명하지만... 과연 그 조롱이 어떤 해결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인지 그게 아니면 순간적인 재치에 불과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어쩐지 대답을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약간의 실마리는 알려주고 있기도 한 것은 아닐까 

 

아직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판단이 되진 않는다.

 

파이트 클럽에 대해서 특별한 정보나 내용을 설명해주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것들은 이 책을 읽는 것에 중요한 것은 아닐 것 같다.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이해할 것이다.

 

추락하고 망가지고 부셔진 사람들이라면... 읽어보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닥까지 내려가야만... 알 수 있다.

 

 

참고 : 20세기 말의 혹은 21세기의 미래파에 대한 짓궂은 농담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결례일까 

y*******o 2015.01.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