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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날은 간다’ 에서 둘이 나누는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사랑이 식어 이별의 순간이 오자, 은수를 찾아간 상우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고 절규하는 대목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이 순간도 너만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는 다짐을 하는 연인들의 밀어는 시절인연에 따라 또 다른 공허를 낳을 개연성이 높다.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면서 적지 않은 약속을 내세우며 지금 향하고 있는 사랑을 지켜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간다. 모든 생명체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며 사랑 또한 예외일 수 없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호모에로스를 읽고 그 감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어설프지만 설렘이 무엇보다 강렬했던 첫사랑, 첫키스 등을 추억 삼아 밋밋한 현재를 달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술만 마시면 과거의 연인을 불러 내놓고 함께 했던 시절을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는 이를 연민하다가도 되레 염증을 일으킬 때가 있다. 사랑과 연애를 둘러싼 무수한 망상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 또한 지금 살아하고 잇는 감정이 고유할 것이라 믿으며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망각하고 있다. 사랑을 받으며 상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져 편견을 낳으면서 그것을 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전제로 저자는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한 망상기제를 낱낱이 파악할 때 비로소 호모 에로스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하는 사랑은 로맨스고 타인이 하는 사랑은 불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항간에 떠돌 정도로 어떤 방법으로든 사랑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가끔 중독된 사랑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충동성은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달아 서로를 힘들게 할 뿐이다. 하지만 열정은 사랑하는 대상을 감정의 노예로 만들어 구속하지 않고 평온함을 주어 순도 높은 합작품을 선물해 준다. 서른넷인 노총각 제자는 오늘도 추운 겨울 외로움을 상쇄할 만한 일이 있어야 하는데 애인이 없어 옆구리가 시리다며 구제를 해달라는 애교 섞인 문자를 전해 왔다. 잃어버린 반쪽이 어디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 반쪽을 찾고 싶은 욕망이 기저에는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대상을 밖에서만 찾으려고 노력하며 지낸다. 하지만 저자는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한정지어 나의 반쪽을 만나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신 안에 잠재하고 있던 욕망이 표출될 때 사랑은 깃든다고 봤다.
대학 시절 졸업을 앞두고 뒤늦게 사랑을 불태우던 친구는 오로지 연인과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어 친구들의 원성을 산 적이 있다. 연애를 둘만의 관계로 한정짓고는 다른 삶과는 분리하여 둘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등(沸騰)하여 들썩거리던 사랑은 1년이 채 안 되어 서로 원수처럼 등을 돌리고 말았다. 좌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친구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가꾸는 공부를 통해 새로운 대상과 삶의 서사를 주고받으며 소담스러운 사랑을 키워 나가 결혼에 이르렀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사랑이 너무 지나쳐도[태과], 사랑이 너무 모자라도[불급] ‘사랑과 연애의 달인’에 오르기는 힘들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삶을 지속하는 한 공부는 지속되어야 하는데 1차적으로는 자신의 몸과 능동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데 있음을 밝혔다. 자신을 관찰하고 상대를 돌아보며 몸과 마음의 간극을 줄여 나가 연인은 자신과 같은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친구처럼 여길 때 서로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는 사랑을 가꿔나갈 수 있다.
영화 동감에서 여주인공은 인연이란 말은 시작할 때 하는 말이 아니라 모든 게 끝날 때 하는 말이라 일컬어 이별의 순간이 왔음을 넌지시 상대에게 알렸다. 시절인연에 따라 사랑이 찾아들고 사랑의 꽃이 피어나는 것으로 본 저자는 내 몸과 천지의 기운이 상응하는 타이밍을 잘 포착해야 함을 강조했다. 더 나가서는 화폐 권력이 쳐 놓은 그물망을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매트릭스를 찾아 자기로부터 벗어나 더 큰 인연의 장을 만들어갈 발원을 세우고 그 바람대로 맞닥뜨릴 사랑을 꿈꾸길 희망한다. 어떤 특별한 '시공간적 배치' 속에서 사랑이란 특별한 감정이 생기고 그 관계를 형성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사랑 법을 창안하길 바라며 대상에 대해 집착하기보다는 삶의 지평을 새로운 흐름으로 안내해 주는 사랑의 진정성을 떠올려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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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아직도 사랑이야기라면 관심이 만땅인데다
그건 그냥 위로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문학도 있는 거고 음악도 있는 거고 그런거다. 도무지 본받고 싶은 맘이 전혀 없는... 그런 분들은 아주 특이하신거고, 평범한 범인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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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변증법적 산물'로 보았고,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 서문에서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인류가 끊임없이 확대재생산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역사라면 그 과정 속에 자발적으로 편입되었건, 무의식적으로 휩쓸렸건 요소를 이루는 개인의 삶 또한 그러한 정의에서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스스로의 의지적 측면, 즉 자신이 원인을 만들어내는 것들과 자기 밖의 것(신채호 선생의 표현을 빌자면 비아(非我))에 의해 결정되는 다양한 사건들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개개인마다 그것이 반반이라느니, 2:8 이라느니(왠지 가르마가 생각난다. 예전 <이별 아닌 이별>로 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가수 이범학의 신곡도 <이대팔>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성분의 본질적 차이는 없다. 그 삶 속에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건 적건, 아니면 아예 없건 말이다.
누구나 이상적인 사랑을 꿈꾼다. 설령 그것이 금지된 것이라도. 그러나 실제로 진행되는 사랑의 '실재'는 꿈꾸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아니 오히려 완전 딴판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그러니 꿈을 꾸며 잔뜩 높아진 기대심리에 기별이 갈 턱이 없다. 이를테면 사랑을 할 수록에 더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 책은 저자의 놀라운 통찰력과 혜안을 통해 그런 실전 속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설득력있게 분석해간다.
흥행을 의식한 사랑에 대한 현상학 또는 세태학(트렌드)적 관점도 아니요, 사랑이라는 감정의 기제(Mechanism)를 거슬러 억압된 욕망이나 상처받은 자아의 이야기를 '어쩔 수 없어..'란 식으로 간만 보게하는 심리학적 관점도 아니어서 그런 류(流)의 흐름에 실망하거나 식상한 이들도 산뜻한 호기심으로 읽어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제목에 '에로스(Eros)'라는 표현을 써 다소 형이하학적이라거나, 남녀상렬지사적인 뉘앙스가 풍기기는 하나, 사실 사랑도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득도(得道, 선수..?)의 경지에 이를 수 없음을 피력하고 있어 제목의 뉘앙스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들고 읽기 민망한 책'이라거나 '사랑에 어리숙한 자를 위한 스킬 업그레이드용 실용서'라는 속단 속에서 폄하받으면 안되는 책이다.
저자의 기지넘치는 문장을 관통하는 요지는, 처음 이 글을 시작하면서 허락도 없이 모셔온 토인비나 신채호 선생의 유명한 말과 다소 일맥상통한다. 대부분의 감정, 이를테면 기쁨이나 슬픔, 사랑 같은 것들은 외부적 관계와 내재적 요인 ㅡ 이를테면 외부적 관계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각각의 관계에 꼬리표를 달아나가는 것 ㅡ 의 변증법적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외부적 관계는 그 관계를 맺는 개인이 별로 컨트롤할 여지가 없다는 것. 따라서 변증법적 결과물인 자신의 다양한 감정 형성에 있어 외부적 관계가 개입한 정도에 따라, 비록 스스로의 감정이긴 하지만, 통제가능의 정도가 결정된다.
즉, 감정의 형성에 아(我)의 영역(토인비의 표현을 억지로 결부시키면 도전의 영역.. 아 좀 무리스럽다)인 내재적 요소가 대주주가 되어(100% 지분은 아니더라도 현대사회는 주식회사 제도를 통해 전적인 통제권을 인정한다) 스스로에게서 발동되거나 이미 표출한 감정의 소유가가 되면, 스스로가 그 감정과 그 감정이 야기한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그는 모든 결과를 명철하게 장악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일 경우, 즉 감정과 그 감정으로 촉발된 모든 상황의 원인이 바깥에 있다면, 그는 계속 감정과 상황의 노예로 끌려다니며, 그 결과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런 메카니즘을 아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전부는 아니다. 누군가는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본능이나 기질 탓에 이런 이해나 고민 없이도 자연스레 스스로를 관계와 감정의 결정권자의 자리에 올리는가 하면,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늘 결정적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거나 번번히 타이밍을 놓쳐 늘 누군가의 기분이나 결정에 자신을 온전히 내맏기는 이들 또한 많기 때문이다. (나도 약간 그렇다)
저자는 이런 문제점 역시 간파하고 다소 억울할 수도 있는 이런 이들을 위해 동선 바꾸기, 차서(次序)를 재배치하기 등 다양한 극복방안을 제안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 공부가 사랑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 따지고픈 마음이 생긴다면, 먼저 이 책을 읽은 후로 그 실천을 유보해주길 바란다. 혹, 연애에 자신이 없다면 공부로라도 인생에서 성공하라는 의미로 곡해한 이들 역시 마찬가지. 독서와 소통이라는 공부를 통해 자신에 대한 서사(敍事)를 세련되게 다듬고 응축시키는 것, 그것이 마치 페로몬(Pheromone)처럼 어펙션(Affection)의 아우라(Aura)를 자신도 모르게 내뿜게 되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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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풋사랑에 눈멀고 귀먹어 내 사랑만큼은 절대로 변하면 안 돼를 무슨 주문처럼 외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상대를 향한 뜨거운 가슴 하나만 있으면 그 어떤 난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랑에 참 무지했던 시절의 내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사랑이 허무하게 끝났을 때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내뱉던 순진한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로 위안을 삼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분명 그랬었다.
그런데 세상만사 시간이 약이라는 어른들 말씀처럼 세월이 지나고 조금 더 성숙하고 보니 그 시절만큼 무지한 사랑 앞에 당돌했던 나도 없는 듯하다. 돌이켜보니 그렇단 말. 쯧쯧, 어찌 사랑은 죽어도 변해서는 안 된다는 짧은 생각을 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건 바로, 많은 연애 불능자들이 간과하고 지내듯, 나 역시 사랑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기 때문. 그래서 이 책을 우연히 선물 받아 읽으면서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몸을 통한 에로스 혁명을 외치는 저자의 거침없는 주장에 적잖이 당황할 법도 한데 당황은커녕 즐거워 미칠 지경이었다. 마치 저자가 옆에서 이젠 알겠지? 제대로 된 연애를 하려면 공부하란 말이야 이렇게 자꾸 간지럼을 태우는 것처럼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서론이고 보통사람들이 빠져있는 연애 오류에 관한 저자의 따끔한 지적이 계속될수록 무조건 깔깔 웃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연애 오류를 맛보기로 몇 개 꼽아보자면 대략 이런 것들- 하나, 사랑의 대상을 고른 것도, 그 대상에게 희생한 것도 전적인 '나'의 자유 의지였다는 것. 상대가 강요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아, '뜨끔'하지 않나? 둘, 실연은 없다, 바꿔 말하면 실연만한 행운도 짝사랑만한 내공수련의 기회도 없다는 것! 하하, 슬슬 어떤 책인지 감이 오나? 셋, 사랑하는 순간부터 책을 읽자, 즉 사랑엔 공부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인데 눈치 챈 분도 있겠지만 가장 굵은 가락이라고 뽑은 오류가 저자의 프롤로그 속 3가지 테제와 흡사하다. 결국 이 세 가지만 제대로 익히고 실천한다면 어설픈 사랑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다는 당찬 이야기.
압축한 위의 3가지 주장을 지키며 사랑하자면 쉽다면 쉽고, 대략 난감하다면 난감한 지침들인데 이제라도 제대로 된 사랑, 화끈한 연애 한번 하고 싶다면 과감히 믿고 한번 시도해 보자.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라는 옛말이 있듯이 실천의 중간 중간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전제 두 가지. 첫째는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한,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는 것, 즉 내가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가 사랑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결정한다는 것. 내 운명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 둘째는 사랑에 필요한 공부를 함에 있어서 착각하지 말 것, 사랑이란 상대를 소유하는 게 아닌 상대의 가치가 보다 온전한 것으로 더욱 빛나게 하는 것, 즉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마주하고 그 관계를 받아들이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첫째 전제의 초점이 나라고 해서 공부마저 나에게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는 날카로운 충고다. 책의 엑기스격인 내용만 뽑아서 대충 추려보니 어느덧 다섯 가지. 그럼 이 다섯 가지만 염두에 두면 에로스 혁명, 이룬 걸까?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하나 더, 이제 이 책을 통해 사랑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습득하고 나를 멸망시킬 근본적인 준비가 되었다면, 거침없이 두려움 없이 한 걸음을 내딛자. 주지하듯이 모든 존재는 행복을 추구한다. 책 속 표현대로라면 사랑이든 뭐든 간에 다 살자고 하는 짓인 셈.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행복해지기만 바라면, 멋진 상대를 취할 내공만 맹렬히 쌓으면 무엇 하나. 결국 에로스 혁명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단 하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 단 한 걸음만이라도 겁먹지 말고 당당히 나아가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흔히 말하는 발가락이 간지러워 미칠 것 같은 즐거운 체험을 했다. 이미 어느 정도 깨우치고 있던 내용들이지만 나도 모르게 잘못 행동하고 있던 연애 과오들을 되짚어 보는 유쾌한 시간들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현재 진행형 사랑을 하고 있는 분들 혹은 이미 완료형 사랑을 하고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분들이 더 많이 읽었으면 한다. 사랑만큼 끈질기게 우리를 쫓아다니면서 즐겁게도, 괴롭게도 하는 악동 같은 주제도 없기에. 보다 충만한 사랑을 꿈꾸는 당신에게 자신 있게 이 책을 권한다.
P.S.-프로팜님께 선물 받은 책, 팜님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좋은 책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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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이란 미명으로 나 자신을 지독히도 학대하던 때,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에서 별 웃기지도 않은 책들을 읽은적이 있다. "그 남자에게 전화하지 마라", "똑똑하게 사랑하라", "시크릿" 등등...제목만 봐도 뭔가 불순함이 팍팍 풍기지 않나.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그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책들을 사들이는 나 자신이 웃겨서 스스로에게 냉소를 퍼부었었다. (결국은 대충 읽다 말았다. 그런 류의 책들을 몇 권 읽다 보면 무슨 내용이 이어질지 빤하다. 어쩌면 책의 내용보다 무엇을 ’소비’하는것으로 마음의 공허를 채우고 싶었던 건지도 ^^) 그 때 진득이 ’사랑의 기술’같은 책들이나 읽었으면 좋았을걸. 하긴 그 당시엔 생각하는것 조차 귀찮았을 게다. ’상처받은’내게 필요한건 오직 위로와 동정 뿐이었으니까. 근데 그 ’위로’라는것이 받으면 받을수록 공허해지고 나 자신이 점점 더 초라해지는 것이다.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는 자기연민의 고리를 하염없이 맴도는 악순환. 이 책은 딱 잘라 말한다. "대부분의 심리서들이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위안과 동정으로 가득하지만, 동정과 연민만큼 인간을 나약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공허한 위로는 자신이 위로받는 대상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줄 뿐이다. 어쨌든, 이 책은 사랑에 대해 알고 싶으나 그나물에 그밥인 ’작업의 정석’들에 신물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시야를 넓히면 사랑의 환상을 신봉하는 우리 모두에게 강한 펀치한방을 날리는 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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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공부는 같이 작동한다.
고미숙의 저서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는 이 한 구절을 설명하기 위한 사례보고, 통계학적 보고서, 그리고 에세이의 형식을 동시에 지닌다. 사랑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거나 공부 때문에 연애에 집중할 수 없다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내가 범박하게 살펴봐도 둘 중 하나 때문에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자들은 대개 둘 다 실패하고 만다. 그것은 그 삶-사랑과 삶-공부는 같이 굴러가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개인의 자유와 사랑 담론이 풍성하지 못했던 80년대보다, 외부의 억압이 현저히 줄어든 현재에 사람들이 오히려 더 사랑을 갈급하고 더욱 결핍을 느낀다.
인터넷, 드라마, 영화, 광고 모든 분야에서 '대세'는 사랑인 듯 하다. 온갖 기념일들, '운명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영화와 드라마들, 상담 싸이트의 대부분은 연애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지고, 개인의 블로그에도 사랑과 이별, 연애과정에 대한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연인과의 사랑을 과장하는 사진과 글들로 도배되고, 연애의 온갖 '스킬', 즉 '작업방식'에 대한 분석이 횡행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결핍의 산물이다. 시간과 함께 견고하다고 믿었던 사랑의 열정은 변질되고 아무리 사진을 찍고 섹스하고 소비를 해도 대부분 헤어지고 만다. 그래도 부담과 쪽팔림은 싫다. 어떻게든 다시 연인을 만들자. 어떤 스킬이 있을까. 인터넷 공간은 온통 사랑 이야기로 들끓는다.
고미숙은 연애와 공부가 어떻게 같은지를 사례분석을 통해 설명한다. 자신의 세계관과 유리된 채 진행되는 연애는 필연적으로 소멸될 수밖에 없음을, 고미숙은 담담하고 예리하게 지적한다.
연인을 만나는 것이 자신의 누추한 세계관에 대한 확신을 주고, 연인과 대화하는 것이 공부와 미래설계에 도움이 되며, 그 과정을 답습을 통하여 불안을 줄이고 신뢰를 쌓아가는 연애. 꿈 같은 일이다. 그러나 의외로 쉽다. 정직하게 응시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며, 서로를 존중하는 것. 이 방안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고미숙의 사례분석들은 면밀하며 그녀의 지적은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는 연애담론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에 대하여 숙고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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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변한다. 사랑을 하려면 당신부터 변하라. 요즘 연애의 세태라니, 쯧쯧쯧. let it be, let it go.
ㅎㅎㅎ 저 네 가지의 이야기를 참 통쾌하고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친근함이 느껴지는 동네 언니의 혹은 누나의 목소리로 그렇게 살지 말고 사랑의 파워를 느껴봐라, 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복잡한 철학들도 필요한 부분만 싹싹 발췌해서 명쾌하게 풀어주니 읽는 내내 등에 간질거리던 부분들을 시원하게 긁은 기분이다. 사실 하도 명쾌해서 뭐라고 복잡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도 없다. 그저 당신도 읽어보라고 말할 수밖에.
참고로, 2년간 연애 없이 빌빌거리며 살고 평생을 짝사랑 전문가로 살아왔던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뭔가 희망의 끈을 발견했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마치 명쾌한 정신상담을 받은 기분?!
사랑하고 싶은 솔로들이여, 혹은 연애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괴로운 영혼들이여, 이 책을 읽어보라.
당신에게 파고드는 문장 속에서 뭔가 명쾌한 해결점을 발견하게 될 터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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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으면서 재미있게 웃을수 있었다.
책에는 사랑의 필수요소가 '공부','독서'라고 나온다.
웃긴 에피소드가 있다.
대학교 1학년 처음 따뜻한 봄날
여자를 소개시켜준다는 친구와 여자, 나 세명
카페에서 (친구는 술집이나 고깃집에서 왜 만나지 않냐? 태클)
인사하고 처음 내가 꺼낸 말이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내가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만.......
여자애 표정은 '이게 뭐지?'
물론 결과는 알아서 생각해 주길 바래요.
그 이후로 친구가 여자얘기 나올때마다 이 이야기를 한다.
나는 누나가 한명 있는데 누나는 책을 많이 봤고 책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보통의 여자라면 책을 읽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걸 알게됬다.
생각보다 괜찮고 재미있었던 책.
우리나라 현재 사회의 '프로세싱'보다는 '컨텐츠'그 자체에 '주체'를 두는 문제를 사랑과 연애를 통해 말하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나도 용기를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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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알고 지낸 옆집 누나 같이 편안한 필체가 매력적이었다.
여러 좋은 글귀가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2가지 포인트는 아래와 같다. 1. 연애에는 공부가 필요하다.
2. 나비효과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사소한 일상의 변화를 통해 사랑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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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고민하고 궁구한 주제는 무엇일까. 정답은 없지만, 아마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답변하지 않을까. 사랑 만큼 인간을 번뇌케 하고, 행복케 하며, 열정케 한 가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사랑에 고통했고 사랑에 행복했다.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었다. 인류사는 과히 사랑의 명멸사明滅史다. 고로 인류는 '호모 에로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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