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n. 
1【항해】 삭구 《돛·돛대·로프 등의 총칭》;의장(艤裝);장비(equipment)
2 《구어》 옷, 의류, 의복
3 (일반적인)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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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당하고 분노에 찬 13살 소녀를 기대했다. 언니를 위해 계획적으로 자신을 낳고 언니를 위해 무한한 희생을 강요하는 부모를 미워하는 그런 아이를 기대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언니와 가족을 사랑했다. 그랬기에 더 가슴이 아픈 소설인지도 모른다. 10년 후에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냐는 변호사의 물음에 그래도 여전히 언니의 동생이길 원한다는 이 어리고 착한 소녀의 마음에 그만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두 아이를 모두 지키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과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안나를 이해하는 아빠의 한숨과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차별한 반항을 지속하는 아들 제시의 엇나감도 모두 결국은 사랑으로 묶인 한 가족이라는 증명이었음을 이해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꽤 만만치 않은 분량이었지만 읽는 내내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 탄탄한 흐름이 좋았다. 마지막에는 주체할 수 없을만큼 울기도 했지만 (집에서 마지막 부분을 읽어서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이 가기 전에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소설책을 읽을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하다. 정말 주위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는 조금 힘들 거 같다. 책만으로도 이렇게 슬픈데 이런 내용이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난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 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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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책을 읽고 흥분했다. 원래 감정적이고 격정적이란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이번 책처럼 나를 달아오르게 한 책은 지금까지는 없는 것 같다. 마치 팔팔 끓고 있는 물을 그대로 입 안에 들이부은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인간 윤리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정하기 싫고 생각하기 싫은 방향이라도 과연 인간이 지녀야할 윤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숙한 의문을 던진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인간 윤리, 정체성, 태생적 권리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충족되었으며 반면에 무참히 깨어지기도 했다. 사고는 독자의 몫이었다. 이 책은 참신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사건 당사자들의 시선에 의해 사건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자아냈다.
내가 이 책에서 분노한 것은 언니의 치료를 목적으로 태어난 맞춤형 인간인 안나에게 엄마가 신장 기증을 이야기한 순간부터였다. 안나의 나이는 고작 13살이다. 안나와 케이트의 엄마인 사라는 희귀 백혈병을 앓고 있는 케이트를 간호하면서 어느 정도의 의학상식을 갖춘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런 사라가 겨우 13살의 안나에게 당연하게 케이트를 위해 신장을 기증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미국의 기준은 모르지만 한국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장기를 기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령은 알고 있다. 그 기준은 16살이다. 물론 국내의 기준은 만 나이로 정하므로 미국과 나이 계산에서 착오가 생길 일은 없다. 16살 이전에 기증할 수 있는 장기는 유일하게 골수이며 그것도 친 인척을 위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자라나는 아이에게서 신장을 떼어내겠다고 하는 사고를 이해하지 못했다. 만일 13살의 나이가 신장을 떼어내도 좋을 나이라면 이미 월경을 시작한 안나가 임신을 한다해도 괜찮단 말인가? 물론 이 질문이 비약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안나의 나이가 겨우 13살이라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안나는 운동을 하는 아이다. 물론 아직까지 신장기증자는 별다른 부작용이 없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는 내가 아는 한 의료라는 분야에서 수혜자와 기증자에 대한 연구 중 기증자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척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안나에게 기증을 이야기하면서도 안나는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 언니가 언제 자신을 필요로 할 지 몰라 대기하기 위해 아이스하키 여름 캠프 14일조차 갈 수 없는 안나였고 안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물론 안나는 언니를 위해 결국 그 캠프를 포기했다. 그런 안나에게 이제 너는 언니를 위해 신장을 기증하면 아이스하키와 같은 격렬한 운동을 포기해야하며 다른 부작용과 합병증은 어떠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 솔직히 케이트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에 윤리 위원회가 있다고 하지만 소설상의 설정 때문인지 그 윤리 위원회는 제대로 된 역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 사라의 말은 부모로서 자식을 소유하고 간섭하는 한계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하는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안나를 설득하기 위해 이번에 케이트에게 신장만 준다면 다음에는 어떤 요구도 하지 않으마라고 말하는 사라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그래, 한 명의 딸이 죽어가고 있으며 눈 앞에 그 아이를 살릴 목적으로 유전자를 맞춘 특수한 딸이 있다. 그런데 사라는 알고 있을까? 안나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케이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혈액, 골수, 신장 하나, 간 일부뿐이라는 것을. 신장을 주고 나면 간 이식까지는 고려하지 않겠다는 말인지 아직도 간절하게 애원하는 사라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겠다. 안나가 신장을 주고 만일 다시 골수 이식을 하지 않으면 케이트가 죽을 상황에 직면하면 사라는 그 때만큼은 약속을 지켜 골수 이식을 요구하지 않고 버틸 생각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요구하지는 못하지만 안나가 언니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자신에 죄책감을 느껴 자발적으로 이식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것일까? 많은 생각을 했다.
두 번째로 나는 생명의 합목적성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생명이 목적성을 지녀야한다고 믿고 있는 안나의 사고는 누가 심어준 것일까? 안나는 자신이 태어난 목적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언니 케이트에 대한 치료를 위해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어나자 마자 제대혈을 주고(이것은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제대혈이란 것은 버려지는 것이니) 5살의 어린 나이에 촉진제를 맞으며 많은 것을 준다. 그리고 안나는 자신이 그저 그런 상황이나 사랑과 같은 시시한 목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특별한 아이라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 생각에 동감할 수 없다. 세상에 부부 사이의 사랑으로 태어나는 아이가 시시한 아이일리는 없지 않은가? 사라가 매 번 하는 말, 너는 특별한 목적으로 태어났으니 혹은 특별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더 사랑한다는 말은 모순이다. 사라가 안나를 케이트보다 더 사랑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그려지지 않고 있다. 케이트의 치료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오빠 제시보다는 더 사랑하는 지 모르지만. 게다가 사라는 그 특별하게 태어난 더 사랑하는 아이를 아무 계획도 없이 태어난 케이트의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주변에는 여러 목적으로 아이들이 태어난다. 대를 잇기 위해, 부부간의 노년의 행복을 위해, 자신들의 사랑을 증명하고 싶어서. 그러나 보통의 경우 앞에 열거한 목적은 안나가 태어난 목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소한 것들이다. 안나가 태어난 목적은 바로 언니 케이트가 병에 걸려 언니를 살리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사라는 안나에게 가차가 없다. 이 책에서 사라의 안나에 대한 연민이나 고민이 보이는 부분은 오로지 골수 이식 때 아이가 통증을 호소하며 엄마를 찾을 때 뿐이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사라의 사랑한다는 말이 심지어 역겹게까지 생각되었던 것은 그것 때문일 것이다. 사라가 안나를 사랑했다면 골수 이식부터 시작해서 신장 이식을 요구할 때까지 안나에게 어떤 심정으로 그 말을 해야하는 지 명확하게 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장기 기증에 더 이상 부모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오로지 자신의 의사로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안나의 말에 분노하는 사라만 있을 뿐 장기 기증을 생각하면서 안나를 생각하고 안나 때문에 고민하는 사라의 모습은 회상으로도 보여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안나의 소송으로 안나의 뺨을 때리는 사라의 모습은 사라가 안나를 보는 시선이 안나의 태생 목적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세 번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리뷰어가 말한 성장소설을 기대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성장소설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안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수동적이었다. 13살 나이면 생각이 자라는 나이이고 사춘기가 시작되는 나이이다. 그러나 안나는 수동적으로 가족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를 묵묵히 감수할 뿐이다. 자신이 태어난 것에 대한, 그 목적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안나의 번민은 어디에 있으며 안나는 그 소송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차라리 안나가 소송을 진행한 이유가 온전히 자신의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었다면 오히려 이 소설을 읽기가 편했을 것이다. 안나는 13살 나이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 이상하다. 그것이 바로 생명 윤리의 기본이 되는 사고인데 말이다.
네 번째 결말 부분을 읽으며 나는 가식을 읽었다. 사라와 브라이언은 진실로 슬퍼했을까? 배 아파 낳은 사라도 키운 브라이언도 슬프긴 슬펐을 것이다. 케이트와 제시는? 아마 슬펐을 것이다. 결말은 가장 무난하고 소설의 흐름을 잘 따라가며 가족이 제일 행복할 결말로 지어졌다고 생각한다. 만일 다르게 결말지어졌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안나가 신장을 이식해주지 않아 케이트가 사망한 후 가족의 모습과 신장을 이식해주고 그 합병증으로 안나가 죽었을 경우라면 이 소설의 결말은 어떤 모습일런지. 생각해보고 난 후 나는 이 소설의 결말만큼은 정말 미국적인 sweet home 개념에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고 감탄했다.
이 소설을 읽고 이리도 장황하게 심정을 토로하는 것을 보며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왜 이상한 책을 읽고 복잡한 생각을 하느냐고 성화셨다. 어머니께 책 이야기를 한 것은 과연 어머니라면 사라의 입장일 때 안나를 가지겠는지 여쭤보기 위함이었다. 어머니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사라의 입장이라면 안나를 가지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냐는 입장이었지만 부모로서 어머니의 생각은 확고했다. 아마 내가 미혼이기 때문에 사라에게 매우 엄격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머니의 확답후에 해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나를 흥분하게 만든 소설을 만난 것을 좋아해야할 지, 아니면 이런 윤리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등장할 만큼 과학이 발전한 사회를 좋아해야할 지 모르지만 이 책이 꽤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각인될 것만은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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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는 바로 서 있고 다른 아이는 그 아이에 기대고 서 있는 쌍둥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쌍둥이별>의 원제는 "My Sister's Keeper"로 '내 언니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제목에서부터 안나와 케이트의 행복하지만 불행할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내 몸을 지키기 위해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라는 작은 외침에서 시작된 안나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
사라와 브라이언은 가족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그러는 가운데 첫째아들 제시를 낳고 둘째 케이트를 낳는다. 그렇게 행복하던 어느 날 딸 케이트가 백혈병에 걸리게 된다. 부부는 케이트의 치료를 위해 유전자 조합을 통해 셋째인 안나를 낳게 된다. 그로부터 안나는 제대혈, 백혈구, 줄기세포, 골수 등을 케이트를 위해 준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아픈 케이트를 중심으로 돌고 있고, 그 사이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제시와 안나.
그러던 어느 날 안나는 자신은 누구이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안나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부모님을 상대로 법정에 선다.
막내 안나, 엄마 사라, 큰 아들 제시, 둘째 케이트, 아빠 브라이언, 변호사 캠벨 이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지난이야기와 함께 화자가 되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각자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의 시선에 머물지 않고 여러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독자들은 객관적이 되면서도 때론 어느 한 사람편을 속시원하게 들어주지 못해서 애닳는다.
500여페이지의 다소 두꺼운 분량이지만 별로 어려움 없이 눈물과 함께 술술 읽혀진다.
이 책은 감수성도 풍부하고 부모님 품도 그리운 13살 안나의 성장이야기다.
다른 일반적인 아이들처럼 평범할 수 있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안나.
이 이야기는 안나를 중심으로 해서 백혈병에 걸린 언니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어쩌면 병에 걸린 케이트나 케이트를 치료하는 엄마 사라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눈물나는 투병기나 다큐멘터리가 되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픈 언니를 위해 살아 온 안나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새롭고 범상치 않은 소설이 됐다.
요즘 이슈화되고 있는 안락사를 비롯해 장기기증이나 시험관 아기, 미성년자의 자율권이나 부모의 통제권을 어느선상까지 할 것인지, 부모를 고소한 이슈가 될만한 소재들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한 편의 감동 스토리가 전개된다. 안나네 가족이 매 순간 선택의 선택이 합법적이었는지 윤리적이었는지 잔인하진 않았는지 끊임없이 묻는다. 살 권리와 죽을 권리에 대한 선택을 누구도 쉽게 할 수는 없다.
아픈 아이를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아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을까?!
언니를 위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고, 언니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꼈던 안나.
언제난 케이트를 위해 케이트를 중심으로 살다보니 삐뚤어져가는 아들 제시와 사랑에 목말라하는 막내 안나를 제대로 생각해 볼 틈이 없을 사라.
판사라면 정말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정말 솔로몬이라도 결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마지막 반전에서 결정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만든다.
눈물샘도 자극한다.
안나도 사라도 브라이언도 케이트다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처음에는 안나의 시선에서 사라가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한 아이를 병마와 꿋꿋하게 싸워서 이기게 만든다면 또다른 이름으로 한 아이를 힘들게하지 않았는지...
"언니가 짐이 되고 있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면, 나는 언니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 때문에 더 죄책감을 느꼈다." 이 문장 하나가 안나의 복잡 미묘한 마음들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다.
부모들이 흔히 말하기를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는데, 우스게 소리로 열손가락 모두 아프지만 그 아픔에 강도는 다르다고...
보여지는 모습과 마음속의 모습은 많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가슴속에만 담아 둔다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듯이, 당연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부모 자식간의 사랑도 마찮가지 같다. 때론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표현 하나가 더 크다.
부모님의 마음을 모르거나 가슴아프게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네게 커서 아이를 낳으면 내 마음을 알 거라는 부모들의 말처럼 우리도 아이를 낳으면 부모님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까?! 부모님이 되어보지 않은 나에게 부모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다 이해할 수 있다면 착각일까?! 왠지 부모님이 되어서도 우리 부모님처럼은 못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내가 안나라면 나는, 내가 사라라면, 내가 케이트라면...
지금 현재로써는 선뜻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누구나 다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무슨일이 있어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거라고 장담은 못 할 것같다.
한동안 침묵하고 있는 케이트가 마지막부분에서 깔끔하게 가족들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 주고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조만간 개봉도 할 계획이라는데 배우들이 등장인물의 미묘한 심리들을 잘 표현하고 얼마나 눈물샘을 자극할 지 기대가 된다.
요즘 정신없다는 핑계로 하늘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을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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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시스터즈 키퍼'란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물론 원작이 '쌍둥이별'이란건 알았고 책이 너무나 두툼했기에 영화가 극장에서 내리기전에 책을 읽을 자신이 없었다. 맞춤아기란 신선하고도 생각하기 싫은 주제를 가지고 너무 드라마틱하고 사랑과 슬픔이 넘쳐오르게 제작된 영화를 보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두루마리 하나분량의 화장지로 분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냈다. 영화를 보고 원작을 얼마나 살렸는지..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너무 궁금했고 또 영화와 책의 결말이 틀리다는 이야기에 책을 읽기시작했다.
부모의 필요에 의해서 태어난 맞춤아기 안나. 흔한 실수로 태어났을 지언정 내 아이이고 보면 아무리 못 생기고 머리가 나쁘다고 해도 조건없이 사랑하는 것이 부모이다. 하물며 언니 케이트의 병을 치료하고자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안나의 경우라면 더욱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안나는 막내로써 특별히 대접받는 다거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고 늘 언니의 병수발을 해주고 그녀가 아플땐 신체적인 기증을 해주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물론 마음이 너무 착하고 여려 그런 과정들을 힘들거나 억울하게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럴 수가.. 자기몸에 주사바늘 하나 대는 것도 싫어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데 안나는 칼을 대고 수술후 부작용이 있는 치료들을 끊임없이 겪고 이겨낸다. 그녀는 언니 케이트를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가족의 일상은 케이트를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고 오빠인 제시는 사회적으로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부모의 관심밖에서 살기를 바라고 또 익숙해진다. 케이트에게 올인하는 것 처럼 보이는,, 오로지 아픈 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은 엄마 사라...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하나 없다지만 각 손가락의 고통의 크기는 모두 다르다고 한다. 사라는 분명 케이트를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로 삼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녀의 인생과 가족의 인생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느끼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삶을 살아간다. 내가 아픈아이를 가진 엄마였다면 어땠을까? 난 내 자녀를 살리기위해 다른 맞춤아기를 가졌을까? 아니면 언젠가는 세상을 등지고 떠날 아이의 운명이 정해져 있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행복하고 편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노력했을까? 처음엔 사라의 이기적인 마음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남편 브라이언은 조금 정상으로 보였기에(맞춤아기를 갖는 것 부터 반대했으니까..) 그나마 진정할 수가 있었는데, 반대로 '내가 사라였다면?'이라는 질문을 떠올리는 순간부터 나도 어떠한 것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우리 아이를 생각하면 나도 내 목숨을 걸고 못 할것이 하나도 없기때문에 아마 사라도 그런 심정이었겠지. 어떻게든 내 아이를 살리고 함께 행복하길 바랬을 거다.
케이트가 아프지 않을때는 너무 나도 행복하고 평화로운 가족... 하지만 안나가 신체를 지키기 위해서 부모를 고소하면서 사건은 시작이 된다. 안나는 유명한 변호가 캠벨을 통해서 부모님을 고소하고 길고 사연많은 법정 싸움에 들어가게 된다. 가족간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대화들이 법정싸움에서 속속 들어나고 그들은 서로가 겪은 갈등과 복잡한 시간을 통해서 또 한번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캠벨 또한 오래전에 헤어졌던 옛 여인과 재회하게 된다. 영화를 먼저 본 탓인지 각 장면마다 분노와 연민, 사랑의 마음이 뒤섞여있는 안나의 눈빛.. 그리고 삶의 끈을 놓아 모두에게 평화를 선물하고 싶어하는 케이트, 케이트가 없는 삶을 단 한순간도 생각지 못하는 사랑이 지나칠 정도로 가득한 사라... 그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떠오른다. 결국 법정싸움에서는 안나가 승리하게 되고 생각하기도 싫은 대 반전이 책에 기다리고 있다. 영화와 끝이 너무나도 달랐기에..아니, 너무 생각지도 못한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서 충격을 받고 한참을 멍하니 책을 들고 있었다.
작가의 자녀가 실제로 오랜동안 병원에서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많은 지식들로 책을 써내려 간 것 같다. '맞춤아기'라는 주제만으로는 공상과학이라던지 사회적인 문제에 촛점을 맞춘 책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내용은 전혀다른 가족의 사랑에 집중한 책이라고 해야겠다. 책을 덮으면서 사라,안나,케이트... 모두의 입장이 너무 절실하게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그 누구의 선택이 옳은지에 대해선 선택이 불가능했다. 아니, 오히려 혼란스러웠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놀라운건 10대의 소녀입장에서 써내려간 감정묘사가 정말 더하고 뺄 것도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 졌다는 것, 주인공이 한명씩 돌아가면서 스토리를 전개하는 특별한 방식, 화자가 바뀔때마다 한 작가가 썼다고 하기엔 믿기어려운 각자의 말투와 입장의 묘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을 흔들어 끊임없이 울게 만드는 매력까지도......
올해 읽었던 책 중 가장 감정을 많이 흔들었던 책이었고(영화또한..) 이야기가 실화가 아니고 소설이라는 것에 다시한번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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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는 다른 별들보다 유독 더 밝아 보이는 별들이 있다. 망원경으로 그 별을 들여다보면 쌍둥이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두 별은 서로의 궤도를 도는데, 때로는 한 바퀴를 도는데 거의 백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들은 엄청난 중력을 일으켜 다른 것들이 들어올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청백색의 별을 보았다면 나중에야 그 옆에 동반성인 백색왜성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첫 번째 별은 아주 밝게 빛나지만, 두 번째 별을 알아볼 때쯤이면 너무 늦어버린다. 540쪽
소설은 꾸며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가끔 실제 이야기인양 독자를 이끄는 소설이 있다. 그래, 이건 소설이야, 분명 거짓이라고, 다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건 사실일지도 몰라, 중얼거리는 소설을 만난다.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과, 철저한 자료 조사의 힘이겠지만,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 앞에서는 허구의 성은 무너지고 만다.
난치성 질병을 소재로 한 소설, 세간의 주목을 집중시키는 광고 한 줄을 내심 무시하며 진부한 이야기일 꺼라고 생각한 것은 이야기의 진실성을 믿지 못하는 나의 오만함 이었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생과 사의 현장이지만, 사람들이 부대끼는 사회라는 것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오판.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야기는 힘이 세어 나는 완패하고 말았다.
같은 외모를 지녔지만 전혀 다른 인격체인 나의 쌍둥이 조카와는 다른, 시간 차를 두고 태어난 완벽한 생물학적 쌍둥이를 상상할 수 있는가? 백혈병에 걸린 언니를 위해 골수 이식을 위해 동생을 갖는다. 그리하여 언니가 완치만 될 수 있다면 방법으로든 동생은 태어난다. 언니에게 필요한 모든 조건으로 만들어진 동생. 섬뜩한 일이라고 말할 자격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다. 어느 누구도 비윤리적이라 손가락질할 수 없다. 부모라면 자식의 목숨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케이트는 동생 안나가 태어남으로 힘든 치료 과정이지만 잘 견뎌냈고, 병은 호전되어 일상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물론 안나를 비롯한 오빠 제시, 부모님과 함께. 그런 행복한 시간이 오래 지속되었다면 13살 동생 안나가 더이상 신장 이식 수술을 거부해 부모님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사건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라도 더 케이트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싶은 부모 사라와 브라이언.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함을 알기에 이제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케이트, 언니를 위해 무엇이라도 내줄 수 있지만 두렵기도 한 안나, 케이트의 발병으로 인해 천덕꾸러기로 자라 버린 아들 제시.5명의 가족,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상처를 품고 살고 있다. 환자가 있는 가족은 항상 웃음 뒤에 슬픔을 간직한다.
당돌하게 보이는 안나는 유명한 변호사인 캠벨을 찾아가고, 캠벨은 안나의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한다. 과거 변호사였던 사라는 스스로를 변호하기에 이른다. 등장인물들이 차례로 화자가 되어 교체되어 각각의 시선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끌어낸다. 소설은 아직 완벽하게 정립되지 않는 정체성을 가진 안나와 그를 대변하는 캠벨이 가진 비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고, 부모와 안나의 갈등, 부부의 의견 차이, 케이트와 제시의 갈등 구조로 전개된다.
케이트만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살아온 부모는 종종 제시와 안나를 놓치게 된다. 특히 제시는 더욱 그러했고 부모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던 제시는 점점 더 큰 사고를 몰고 다니게 된다. 5남매의 넷째인 나도 그랬다. 위로 오빠, 언니들, 남동생에게 엄마의 사랑을 빼앗긴다 생각 해 사소한 일에도 날카로운 말로 엄마의 가슴을 휘저었다. 그리하여 엄마가 나를 한 번 더 돌아봐주기를 바라면서. 철 없었던 시절, 나만의 엄마였기를 바랐다. 제시도 안나도 아픈 케이트가 안쓰러우면서도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부모님을 이해하려 해도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아이들에겐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사랑을 배우는 케이트가 같은 환자인 테일러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 그만 나는 울고 말았다. 테일러의 죽음은 케이트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초초와 불안이 몰려온다. 잠깐이라고 생각했던 눈물은 결국 시작이었고 책을 덮고 난 후까지 계속 이어졌다. 때마침 주말이라 다니러 온 큰 언니는 혹여 내게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생겼냐며 걱정의 눈길을 떼지 못한다. 두꺼운 이 책을 건네니, 이 책이 그렇게 슬퍼?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꾸며진 이야기, 그러나 사실 가능한 이야기이기에 그 슬픔은 커져만 갔다. 같은 엄마의 입장, 나는 사라를 이해 할 수 있다. 잠든 아이가 미열만 있어도 기침만 하여도 엄마들은 가슴이 내려앉는다. 내 살과 피, 뼈로 이뤄?? 수 있다면. 나머지 두 아이들을 위해 이제 케이트를 떠나 보낼 때가 온 것이라 말하는 브라이언의 슬픔을 누가 짐작할 수 있겠는가. 케이트도 안나도 둘은 이제 서로에게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사이, 자매는 영혼도 육체도 공유한다.
잠시 잠깐이라도 책을 내려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힘. 예상했던 결말, 반전. 그 외에 어떤 결말이 있겠는가 싶다. 문학은 인간의 삶을 투영한다. 특히 소설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 이 위험한 소재를 소설화 한 작가는 삼 년 동안 열 번 이상의 수술을 한 아이의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아마도 그래서 이 소설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나 보다. 또 이렇게 한 권의 소설은 긴 시간 내 가슴에서 빛나게 될 별이 되어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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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is my self? (- 쌍둥이별을 읽고)
인간복제, 안락사 등과 같은 문제는 언제나 이슈에 오르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의식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하게 한다. 이에 『쌍둥이별』이란 책은 안나라는 아이의 출생과 함께 그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권리의식에 대해 고민하면서 가족과 겪게 되는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생동감 있는 심리 묘사와 독자들에게 단순한 읽을거리로서의 책이 아닌, 인간으로서 깊은 공감과 자신의 존엄성 및 존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은 한 권으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그 안에서 독자에게 많은 볼거리뿐만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먼저, 소설 『쌍둥이별』은 독특한 소재와 함께 소설의 관점이 주인공이나 제 3자의 관점이 아닌 등장인물들 각자의 시선에서 보여지고 있기 때문에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독자는 이들의 갈등을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시선의 처리는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각자 여성과 남성의 입장에서 쓴『냉정과 열정 사이』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물론 그 구성이나 전개방식은 다르지만 이같이 등장인물 각자의 관점에서 소설을 보여주는 것은 독자에게 어떤 생각을 강요하기 보다는 독자 자신이 각각의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특히 서로 대립되는 입장을 취하는 안나와 엄마의 시선처리는 더욱 볼거리라 할 수 있겠다. 둘째로 이 소설이 가진 중요한 소재에 주목할 만하다. 유전자 조합을 통한 인공수정,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의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와 존엄성 및 그 아이에 대한 부모의 권리. 이처럼 중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조디 피콜트는 13살 안나와 그 엄마와의 대립을 통해 자연스러우면서도 확실하게 다루어나가고 있다. 그 예로 다음의 문구를 들 수 있다. ‘엄마아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정확히 뭔지 알았기 때문에 널 훨씬 더 사랑했단다.’ 이러한 문구를 통해 우리는 엄마인 사라에게 있어 안나는 언니인 케이트를 치료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이며 ‘이용 수단’으로만 취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나가 자신의 권리와 존엄성에 대해 고민하며 자신의 몸에 손대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하는 것에 대해 사라 자신이 변호를 직접 맡아서 자신의 딸과 대립하며 법정까지 가는 것이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한다. 셋째로 소설『쌍둥이별』은 비슷한 주제를 소재로 한 Gattaca나 아일랜드 등과 같은 영화와 비교해가며 볼 수 있다. 영화 ‘아일랜드’ 의 경우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수명을 늘리고 장기를 확보하기 위해 인간을 복제하고 한 곳에 가두면서 그들에게 소위 그들이 탄생하게 된 최종 목적인 장기 추출과 출산을 위해 희생되는 것을 아일랜드라는 장소로 간다고 속이기까지 한다. 장기 확보와 출산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복제된 인간. 과연 그들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은 존재하는 것인가? 이러한 상황은 언니 케이트를 치료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해서 태어난 안나와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에 기존에 『쌍둥이별』은 기존의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과 비교해가며 사고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다. 소설『쌍둥이별』은 쉽게 읽히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다각도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실감나는 안나와 엄마의 대립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이유와 인권문제, 인간 유전자 조작 문제뿐만 아니라 13살 소녀 안나가 언니와의 상관관계 속에서가 아닌 안나 그 자신 자체로서 부모에게 인정받고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 및 존재감을 확립하고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려는 일종의 성장소설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소설이 앞으로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더 만은 사람들이 내가 느낀 이러한 감정을 함께 느끼고 공감하고자 하는 바람과 함께 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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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1. 25
진작부터 읽고싶었지만.. 책 두께의 압박에 못이겨 이제야 읽게된.. 소설
책은 등장인물의 다양한 시점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백혈병에 걸린 언니를 치료할 목적으로 유전적 동일성을 갖고 태어난 열세살 안나가 엄마를 상대로 신장이식을 하지않겠다는 소송을 하면서 시작한다.
모든 일이 언니인 케이트의 사정에 의해 맞춰져있는 집은 언제 아플지 모르는 케이트에 의해 안나는 항상 5분대기조 상태다. 안나가 재기한 이 소송의 목적이 과연 엄마, 아빠의 관심을 끌고자 한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한쪽 신장을 떼어내는것이 두려운 열세살 아이의 항변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때문인지.. 처음 책을 잡았을 때는 부모의 애정이 필요한 아이의 관심끌기라고 생각했고 더 읽으면서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성숙한 아이일거라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언니를 사랑하는 아이였기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주인공인 안나를 나와 동일시하면서 읽어나가며... 마지막에 가서는 안나에 너무 몰입해서 아픈 케이트를 잊고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결말은 아니어서 많이 섭섭하긴 했지만.. 그래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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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2 안나교라는 종교가 있다면, 그래서 내가 인간이 어떻게 지구에 오게 되었는가를 말해야 한다면,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태초에는 달과 해밖에 없었다. 달은 낮 동안에 나오고 싶었지만, 낮 시간을 독차지할 것 같은 훨씬 더 밝은 놈이 있었다. 달은 허기지고 점점 홀쭉해져 끝내는 얇은 조각만 남았고, 양끝은 칼처럼 날카로워졌다. 그러다 우연찮게, 대부분의 일의 과정이 그렇듯, 달이 밤에 구멍을 뚫자 무수한 별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겁이 난 달은 별들을 삼키려고 애썼다. 때때로 이것은 효과가 있었다. 달이 점점 뚱뚱해지고 둥글둥글해졌으니까, 그러나 대개는 효과가 없었다. 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별들은 계속 나타나, 끝내는 태양이 질투를 할 정도로 하늘을 밝게 만들었다. 태양은 별들을 자신의 세계에 초대했고, 그곳은 늘 밝게 되었다. 그러나 태양이 별들에게 하지 않은 말은, 낮 동안엔 별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리석은 별들은 하늘에서 땅으로 뛰어내려 그 어리석음의 무게로 얼어붙었다. 달은 최선을 다했다. 달은 이 슬픔의 돌덩이들을 남자와 여자로 조각했다. 달은 여생을 다른 별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감시하며 보냈다. 달은 여생을 자신이 남긴 조각들을 붙들고 있는데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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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주제의 소설이다 불치별을 앓고 있는 딸, 케이트 그 딸의 치료를 목적으로 생긴 동생 안나 그리고 자신이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엇나가기 시작하는 아들 제시 그리고 그들의 부모 사라와 브라이언이 있다
13세의 소녀가 자신의 신체를 언니의 치료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처음에는 아픈 케이트만 자식인가 안나도 그 목적이야 어찌되었건 그들에게도 귀한 자식일텐데 태어날때부터 제대혈에 골수이식에 이제는 신장이식까지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화가 났다 하지만 점점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인 그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죽어가는 딸도 자식이요 그 딸에게 신장을 떼어주는 고통을 감뇌해야하는 것도 자식이기에 법정에서 어떤 법적 지식과 이론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정말이지 어려운 상황인듯 했다
아무리 가족이고 사랑과 신뢰를 기반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도 한 생명을 어떠한 목적에 이용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도리적으로 맞지 않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제대혈이라고 해서 탯줄을 보관하여 나중에 있을지 모르는 불행에 대비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얘기를 들은 듯도 하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그 한계가 없는 듯 하다 그러기에 지나치다고 말할 수도 없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지나치다고 말하는 그것조차도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듯 하다
차라리 엄마인 사라의 경우도 자신의 것이 딸에게 줄 수 있는 적합판정이 나왔다면 아마 주저하지 않고 주었을텐데 말이다
결국 어떤 결말로 이 이야기가 끝이 날까가 궁금했다 신장을 이식하지 않고 케이트가 죽었을때의 안나의 그 심정 아마 지옥일 듯 하다 이런 소송까지 했으면서도 신장을 주었을 안나 그 또한 가족간의 응어리가 남아있을 것 같 았다 결국 소송은 안나가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다만 아직 어린 소녀이기에 부모와의 의견 절충 그리고 변호사를 통한 대변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맺고 끝났지만 불의 사고로 안나는 세상을 떠나고 결국 케이트는 신장을 기증받는다
어쩔 수 없는 결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13세 소녀의 언니를 사랑하는 마음 왜 소송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의 마음들을 통해서 가족들의 솔직한 심정 그리고 그들이 겪는 나름대로의 끈끈함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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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딸을 위해 딸과 유전적으로 같은 배아르 찾아 착상시켜 아이를 가진 엄마.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언니를 위해 제대혈과 골수를 주고 나중에는 신장이식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아이는 이제 더이상 언니에게 희생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이것이 이 소설의 광고에 등장하는 줄거리이다. 물론 이 내용은 적확한 지적이다. 이 책은 그러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책을 끝까지 읽어가다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우리들의 일반적 문제제기가 아주 덧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가족의 끈끈한 사랑의 힘에 당연하면서도 정당한 어떤 것을 작가의 눈속임으로 인해 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줄기세포로 자신과 똑같은 또다른 자신을 만들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다는 이야기는 섬뜩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에스에프영화에서만 목격하지 않을지 모른다. 이미 우리의 과학과 장수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틀림없이 이런 과정으로 진전될 것이다. 적어도 똑같은 자신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여분의 장기를 만들어 두는 것이 유행이 되는 세상은 머지 않아 도래할 것이다. 아픈 사람을 위해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하는 의료행위도 몇십년전에는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꺼려지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마음대로 성형을 밥먹듯하는 세상이 되었음을 연예인들은 자기의 어느부위를 고쳤다는 말을 서스럼없이 하게 되었다. 조금있으면 당당하게 말하게 될 것이다. 사고의 진화또는 퇴보란 상상외로 빠른 속도를 보여준다.
영화 아일랜드에서 아기를 갖기 위해 자신의 분신에게 임신을 시키는 여성이 나온다. 그리고 아이를 낳자마자 분신인 대리모는 목숨을 잃는다. 원래의 인간을 위해 수많은 분신들이 다른 세계에서 자신이 이용되는 시기만을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고 그 때가 되면 자신은 꿈의 섬으로 이주하게 됨을 자축하며 떠나간다. 또 에일리언에서의 여주인공은 또다른 분신으로 영속되는 삶을 산다. 과거에 죽은 나는 유전자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나와 동일체로 해석된다. 한 외신에서는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가 죽자 그 고양이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고양이를 만들고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치료를 위해 그것도 한 가족내에서 가장 유사한 유전자배아를 찾아 동생을 태어나게 한다는 것은 치명적 병에 시달리는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는 누구나 생각해봄직한 시도일 것같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가 무슨 일인들 못할까. 그런데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도대체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한 서글픈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세상 모든 인간이 두 남녀의 거룩한 만남과 잉태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종족유지의 본능이라는 생물적 자연, 즉 우리속의 이기적 유전자의 정보대로 움직이는 기생하는 유전자의 숙주로서의 단순한 행위때문에 태어나는 생명이 수두룩하다. 그래도 언니의 치료를 위해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동생에게는 회의적인 생각밖에 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이런 절박한 상황에 처한 한 소녀의 입장을 모티브로 내검으로써 그 어느 이야기보다 흥미와 문제해결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차서 책장을 들춰보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다.
동생 안나는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응석받이처럼 묻고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만 하는 아이인가? 최후의 반전(안나의 교통사고)과 달리 최초의 반전인 안나와 케이트의 관계라는 공고한 기반은 소송으로 비춰지던 이야기의 전개에 커다란 반성의 물결을 만들어준다. 가족의 힘이라는 상식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도 작가의 꼬드김으로 잠시 망각하고 있던 그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다. 작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렇지 바로 그거야하고 깨닫는다. 이야기는 더이상 소송이 아니고 가족문제가 된다. 엄마인 사라가 말했던 가족문제이지만 문제가 있는 가족이 아니라 사랑이 가득찬 가족이다.
안나이야기에 겹쳐지는 줄리아와 캠벨의 사랑도 후반의 반전이 있기까지 갈등과 의혹이 점철된다. 캠벨에 대한 독자의 비난은 동정과 애정으로 탈바꿈하고 우리가 아는 표면뒤에는 더 큰 사랑의 힘이 존재함을 믿는 작가의 긍정적 사고를 느끼게 한다. 이런 어려운 의학적, 윤리적 문제가 어떤 식으로 해결될 것인가라는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책읽기는 그렇지 바로 그거였어라는 잠시 망각한 진실의 뚜껑을 열고 훈훈한 사랑을 만끽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결말에서 주인공의 사고는 작가가 염두에둔 희생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의 행복은 누군가의 희생에 의한 것이라는 진리를 말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안나의 출생은 한 가족에게 이용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케이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어긋난 길을 걷는 제시의 행동에도 드러난다. 즉 안나는 케이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스러운 아이였다. 최후에 일어난 희생은 그렇게 도움을 줄수 있어서 행복했던 주인공의 최고의 희생이자 선물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희생이란 비참하게 스러져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고대제의에서 바쳐졌던 희생의 동물들도 고대인들에게는 무한한 성스러움의 상징이었다. 결말이 불만스럽다면 나는 이 승화된 희생의 의미를 되새겨봄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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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말로 원서를 사거나 쇄를 보고 사시길 그냥 주문하지말고 몇쇄있냐 확인하시길 아니면 서점가세요 답없는 책입니다. 이글루스 렛츠리뷰에서 가져온 겁니다. 여러분 이 글은 자세한 글의 내용의 언급은 없습니다. 결말도 자세한 설명도 없습니다. 단지 오타가 어디있다 정도 책을 읽기 전에 읽으면 도움이 될겁니다. 어디를 기준으로 할까 고민하다 책을 읽다가 많이 보이는 오타 위주로 적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를 제외한 다른분들은 그걸 그다지 신경쓴것 같지않아 그대로 놔두겠습니다. ※책의 내용을 적기전※ 가을이다 등화가친(燈火可親) 이라 책을 얻어 기분도 좋았다 세상에서 꽁술도 꽁밥도 얻어먹으면 왠만하면 좋게 좋게 적을려고 하는것이 인간이 가진 예의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저의 경우 다른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지만 이타적인 이유로 기부를 받은거나 또는 도의적으로 남에게 선물을 했는데 그걸 선물로 받은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왠만하면 좋게 적을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점 있더군요 원작 원서에 관계된걸 차치해도 번역상의 문제라든가 시사회라고 하고 싶습니다. 만약 제가 다시 시간이 되고 돈이 된다면 문제점이 해결된 책을 받거나 다시 사고 싶네요 단 돈내고 산분들이 그 분들이 그런 기분이 안들었으면 합니다. 좋은 번역서 좋은 작품 하나 마음에 드는거 찾으면 여러번 읽는거 이해합니다. 그만큼 적기때문이죠 ※ 정신적 근간에 대해 ※ 인간은 인간이란 놈이 만든도구와 달리 그 생성목적으로 몰라서 자신스스로 고민도 하고 술도 먹고 매우 안좋은 짓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아픈 언니를 위해 생긴 여자아이라고 아주 정확한 이유를 달고 나온 자라고 해도 행복할까 만약 그 목적인 언니의 완치 또는 根治가 이루어졌다면 그 용도가 필요없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 반대로 그 언니가 죽었다면 마치 차가 없었졌는데 그 차를 고칠부품이 있는 그런 상태와 비슷하다고 말할수 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필요없는건가 물론 계란이 먼저나 닭이 먼저냐 처럼 쓸때없는 哲人들의 논리싸움으로 볼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국가로 보면 건국이념 또는 정통성과 관련된 것과 같다 함부로 말하기도 그렇다고 이미 그 문제가 터지면 어떻게 하긴 어려운 문제다 이 문제를 연역법같은 논리로 해결하기도 어렵다(연역법의 대표적의 예 삼단논법)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라 할수 있는 안나 피츠제럴드는 언니가 자신의 인생의 목적이자 언니이고 그렇다고 화수분처럼 계속 퍼준다면 자신은 그의 대용품이라는 걸 싫어한고 언니를 증오하게 된다 그렇다고 언니가 사라진다고 하면 자신이 태어난 목적이 날라가기 때문에 많이 고민하는 느낌이 행간에 보인다 이런 개념이 뭐냐 마치 제주도도 문제도 적으면 그렇다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새로 만든다고 평화의 섬에 무슨 군대냐 데모질을 하다 수해로 다 박살나니 육군장병이나 다른 군대가 와 수해지원을 하는건 좋다고 어서오라고 나발을 부는것과 같다 즉 愛憎의 關係 가족의 관계가 야누스의 두얼굴처럼 경쟁자 이자 가장 가까운 혈연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당 태종 이세민이 형을 죽이고 아우를 죽이고 왕을 하고 우리의 조선 태종 이방원 역시 형을 죽이고 아우를 죽이고 왕을 하고 하는건 보면 꼭 형제라고 해도 그런건 아니지만 자신이 치료를 거부 하면 그 혈연은 죽고 그렇다고 그냥 그 상태로 계속 가긴 어렵고 모순(矛盾)이 생각난다 이 아이가 전쟁을 한다면 치면 그 전쟁은 싫다 하지만 안 할수도 없다 결국 지과(止戈) 할려는것이다. 어느쪽이든 끝나면 망하니 그전에 둘다 치명상을 막기위해 물론 어느쪽이든 멸망을 막을순 없지만 둘다 다 망할바에는 한쪽은 살아야 한다. 마치 일본이라는 조금한 공간에서 관동과 관서 싸웠지만 한쪽의 몰락만 하고 한쪽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흡수가 된것 처럼 둘 다 이러니 저러니 하다 망하는것 보다 한쪽이라도 사는 그런거다 이 소설은 사람들의 물건 계산처럼 좋은곳에 좋은걸 넣고 나쁜곳은 버리는것은 아니다 결국 사사오입으로 계산되는 것과는 다르다. ※내용※ 내용에 대해 따로 언급하긴 그렇습니다. 만 소설과영화는 결말과 등장인물이 다르다 라고 하고싶습니다. 어느정도의 내용은 적고 싶었으나 안읽고 설명만 보고 구매할려는 분에게 실례에 안되게 그리고 오타및 표기부분에서 글을 보면 알지 그런 내용때문에 몰입이 매우 안되었습니다. 그점때문에 내용의 완성도가 많이 떨어졌네요 ※내용의 시간배경 공간배경 ※ 이책의 배경은 2002년도가 가장 기본 현재의 시점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과거 회상하다 다시 오고 그런점이 사람을 좀 멍하게 만든다 줄리아의 경우 캠벨의 경우는 더 심해 술먹다 밑도 끝도 없이 과거로 가고 다시술먹던 현시점으로 하고 시간적 개념도 뫼비우스의 띠 가 생각날정도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다 보통의 소설은 시점문제는 나중에 적는다 하더라도 오늘 내일 쭉 가다 뭔일이 있으면 가끔 과거에 무슨일 있었다 그런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하는 형식내지이죠 물론 과거에 가서 과거 진형형으로 서술하기도 하나 시점의 혼동을 막기 위해 많은 소설이 화자가 과거에 서술한 말처럼 합니다. 그리고 배경의 미국의 州중 가장 작고 가장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 나온 로드아일랜드의 주도 프로비던스 이야기라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다 배경을 물론 작은 집과 작은 가족의 문제를 다룬다면 작은주를 하는것이 알차보인것도 있다 만약 장남에 이녀가 가족 구성원인데 남쪽 국경근처 지방이나 멕시코 가까운 곳에서 가족 구성원도 많고 (실제로는 모르지만)이미지상 오만가지 사고도 많은 그런 동네를 배경으로 했다면 글쎄 좀 아니다 생각했을것이다 우리의 소설도 주인공이 아프고 불쌍하고 그런 경우면 보통의 경우 달동네나 좀 작은 동네로 배경을 잡는것이 정석이니 그런 면에서 설계를 잘한것같습니다. ※미국식 유머※ 유머 꼭 어디유머라고 하긴 어렵지만 이 책의 내용은 좀 불편하다 그래서 그런지 중간중간 독자들에게 편하게 계속보라고 웃음점을 넣어 시점이 자주 변해 피곤한걸 그나마 풀어준다 그 예로 캠벨의 과거 시절 아버지가 나를 혼내면 이런저런 말도 안되는 가혹 행위를 할것 같다면서 캠벨이 뭐라뭐라 헛소리 하다 "진에 절이기" 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건 고문이 될지 해탈이 될지 잘 모르겠다 하는데 글쎄 별 소리는 아닌데 술 과 여자로 심한 모멸감을 느끼지 않은 농담이 소설을 윤택하게 하네요 ※시점 문제(일인칭) ※ 보통의 책 그리고 컴퓨터 오락 많은 예술품들은 3인칭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 1인칭이다 물론 1인칭이 잘못되었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1인칭의 문제는 부담스럽고 오래보기 어렵다는것이다 오락의 예를 들어보자 1대1 대전 오락 보통의 경우 3인칭 시점에서 한 사람을 선택해 그 사람을 조종하는것이다 이른바 모험 탐험을 하는 RPG오락또는 어드벤처또는 액션 보통 3인칭이다 왜 그게 편하니까 미국에서 만든 폐르시안 왕자 툼레이더 일본에서 만든 이스 영웅전설 영화로도된 파이널 판타지 인터넷 온라인 오락 그 일인칭 오락이 있나? 내가 알기론 없다 거의 다 삼인칭이다 일인칭이 나쁘다는건 아닌데 일인칭을 할려면 짧고 단순하게 해야지 단순한 내용도 아니라 문제다 우리나라의 일인칭 소설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주인공 옥희 과부인 어머니랑 소소한 이야기 아주 짧고 간단하고 아이의 입장에서 본내용을 간단하게 끝을 내 오래 기억이 남는다 이 소설의 문제점은 문제는 일인칭을 너무 길게하고 일인칭의 단점은 사람이 어지럽다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 내가 소설을 읽을 경우 나는 그 주인공의 옆에서 투명인간 내지 관찰자라는 개념으로 들어가 몰입내지 개입하면서 이야기의 통선을 따라가는건데 이건 일인칭이고 거기다 자주 그 일인칭 대상인 사람이 중간중간 계속 변한다 사람이 편하게 볼수 없다 많이 읽을수가 없다 몰입도 할수없다 왜 일인칭으로 적어놓았고 자주 그 대상이 변하니 거기다 시간도 과거로 갔다 현재로 또는 가 라는 사람의 관점에서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 라는 사람의 관점에서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적다보니 가 와 나의 중첩된 내용도 나오는데 이건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스네이크 아이" 라는 영화가 생각나는데 그 영화도 약간의 일인칭있었다 그러나 중간에 사고가 일어난 회상장면에서 그랬지 이건 일반적으로 시간적으로 전개되는 책과는 너무 다른 마치 사건을 서술형으로 기입한 사건조사서라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일인칭으로 성공하고 독자들에게 시셋말로 먹히는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니다 이 책이 계몽적인것이 있지만 시점이 이렇게 불편하면 결국 안보게된다 1인칭으로 전세계의 광팬을 만든 퀘이크 이건 단순한 슈팅 오락오락이다 폐르시안 왕자 나 툼레이더 처럼 암호를 풀고 퍼즐을 풀고 그런것 없다 왜 오래 할수가 없다 해보면 알지만 오래하면 어지럼증과 구토가 동반된다 결국 단순하게 총을 쏘고 죽이고 도망가고 그런것이다 그게 1인칭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다시 언급하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이것 역시 일인칭인데 어려운 철학이 있냐 아니면 심각한 연애가 있냐 일인칭 오락실 오락인 "하우스 오브 데드" "타임 크라이시스" 등등 해보면 사람은 알지만 단순하다 총 들고 그냥 쏜다 시점이 이 소설의 절반을 날렸다 하지만 그 점이 특이점이라고 할수 있다 ※오타 와 표기부분※ 내가 받은 책은 5쇄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誤打 誤記 문제점이 보인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5쇄의 특징인가 서점을 찾아가 6쇄를 찾아봐도 그다지 변한건 없었다 책의 몰입도가 낮아지고 책내용 전체적인 질이 하향화가 된다 첫째 82쪽 풍첩초 라는 식물이 나오지만 확신은 못하지만 잘못적은것 같다 내가 알아본 결과로 산립청 국가표준식물목록에도 없고 http://www.koreaplants.go.kr:9101/general/Prgb02/Prgb2_1_2.jsp 이 주소에서 찾아보시길 인터넷백과사전으로 유명한 엔사이버에서도 없고 http://www.encyber.com/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에서도 없고 http://www.nature.go.kr/ 국립국어대사전에서도 없고 http://stdweb2.korean.go.kr/search/List_dic.jsp 아무튼 제가 알아볼만한 곳은 다 알아봐도 없더군요 그래서 찾아보니 그와 비슷한 단어 국어사전에 나옵니다. 出典 국립국어대사전 풍접-초(風蝶草) 「명사」『식물』 풍 접초과의 한해살이풀. 높이가 1미터 정도이며, 잔털과 잔가시가 있다. 잎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잔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이다. 두번째 단어합성과정에서 받침없어지는 합성어 버릇장머리는 뭔지 살다살다 이런말은 처음들어봅니다. 386쪽 13줄 버르장-머리 「명사」 ((흔히 ‘없다’와 함께 쓰여)) ‘버릇01’을 속되게 이르는 말. 버르장머리로 고치길 담배 이름 같지만 확신은 없는 메리트&메리츠 지포&지퍼 세번째 문제 현재의 표기법 문제가 있는건 아는데 이건 아니죠 72쪽 5에서 6번째줄에 메리트에 불을 붙인다 라는말 (아마도 담배이름같지만) 131쪽에는 16번째줄에는 "나는 주머니에서 메리트를 꺼내 탁탁 친 다음 한 개비를 입속에 찔려 넣는다. 지포 라이터의 기름이 다 떨어졌다" 라는 말이 있더군요 그런데 182쪽 4~5번째 줄에서는 "메리츠 담배와 지퍼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고 ......" 같은 쪽 19번째 줄"....... 지퍼 라이터를......" 438쪽 12줄 메리츠 그리고 그 단어가 영어단어 동일 단어를 메리츠와 메리트로 두개로 적는다는 근거는 439쪽에서는 '메리트'라고 하나 그 앞쪽에서는 메리츠 이다 딱 두장만 읽어봐도 그부분 글을 읽어보면 알지만 동일상표임을 안다 표기단어가 일관성이 없는것이 ............... 이정도는 퇴고(推敲)에서 잡을수 있어 보이는데 좀 있습니다. 메리츠 와 메리트 지포와 지퍼 둘중에 하나로 정리하길 네번째 그리고 간단한 실수라고 해야 하나 그냥 넘어간다고 할수 있지만 적자면 적는데 109 쪽 8~9 롤러코스트라고 적었는데 일반적으로 인터넷이나 간단한 검색을 해도 롤러코스터라고 적는것이 맞는것으로 나옵니다. 원서에서 롤러코스트라고 적었다면 할말이 없지만 딱 한번 인터넷에 사전만 찾아봐도 잡을 만한것을 넘어간것이 문제입니다. 거기다 다섯번째 언어적으로 문제점이 보이는데 165쪽과 212쪽 213쪽은 "휠러 스쿨" 이라고 했다가 -물론 화자가 다른건압니다- 그 후 내내 휠러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물론 번역이라고 하긴 그렇고 그 발음을 우리말로 적은건데 중간에 단어가 변하더군요 173,176,쪽에서는 "훨러 고등학교"라고 하더군요 또 380쪽에서는 휠러 고등학교로 이 두줄만 봐도 역자가 영어 한단어를 훨러 휠러 두개로 표현한걸 알겠죠 하지만 스쿨을 번역을 해 학교라고 적었던가 아니면 계속 스쿨이라고 했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다 휠러 라고 하다 훨러 라고 하다 스쿨이라고 하다 고등학교라고 하다 ..... 휠러 예) 165쪽 1번째 줄 165쪽 12번째 줄 177쪽 23번째 줄 290쪽 22번째 줄 380쪽 12번째 줄 훨러 예) 173쪽13번째 줄 176쪽 7번째 줄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것이 아니라 미국이 초중고등학교를 다 함께 붙이는 경향이 있지만 번역할때 165쪽에서 휠러 스쿨 6학년때 만났다고 했는데 -훨러 휠러 문제는 차치한다고 해도- 173쪽에서는 훨러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쌍둥이란 말을 ............. 380쪽 휠리 고등학교 뭔가 앞뒤가 안맞지 않나요 쪽 번역도 아니고 물론 사람이 실수는 할수 있습니다. 이건 책 한권입니다. 이런문제가 생긴다 좀 문제가있죠 여섯번째 제가 인명구조원 자격증이 있어 더욱 눈에 보이는건 아닌지 모르지만 199쪽 21줄 ,269쪽 20줄과 같은쪽 마지막 줄 270쪽 10번째 줄 538쪽등 척추교정판이라 솔직히 확신은 못했지만 웃음이 나오더군요 교정은 병원에서 허리병이 있는 사람 치료하는거고 사고나 그런경우는 고정판을 사용하죠 한번 그런 곳에서 확인해보시길 발로 뛰어다니거나 자료를 찾아다니면서 번역을 했으면 소방관련 자료나 근거나 공증할 글을 보면 다 고정판입니다. 다시 짜집기가 많이 사용하지만 짜깁기가 맞는것 처럼 많이 사용하는점도 있다고 해도 그런건 개인적글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냥 막적는경우 오류가 많습니다. 그런데 돈을 주고 살 제품이자 책입니다. 근거나 잘못된것이 있냐 확인을 해야지 너무 오류가 많습니다. http://www.kwlsf.or.kr/ (사)한국수상레저안전연합회 같은 곳에서 인명구조 때문에 그런다고 척추고정판이 맞냐 교정판이 맞나 물어보시길 일곱번째 표준외국어표기법신경쓰길 번역하는 사람들이 발음과 한국외국어표기법이 괴리때문에 힘든건 아는데 예를 들자면 스톱이라고 하지만 스땁이라고 하기도 하나 지역마다 다르고 우리말 역시 구어체와 문어체가 100%맞는다고 할수 없습니다. 표기법은 발음그대로 적는것이 아닙니다. 우리말 외국어 역시 '굳이'라는 말을 발음대로 구지라고 하는건 틀린거죠 특히 고유명사 별이름이나 신화속사람이름은 더 그런점이 많이 나오죠 그러면 사전을 보고 표준표기법을 사용하면 되지 300쪽의 밑에서 두번째 데킬라 그리고 301쪽은 테킬라 좀 심하다 생각 안드는지 바로 옆장인데 조정래씨가 한말로 기억납니다. 손으로 아들에게 태백산맥을 일일이 다 적으라고 했다고 하나하나 적다보면 간단히 타자 질 하는 컴퓨터 보다 그만큼 신경쓰고 잘못을 확인할 시간이 늘어나겠죠 물론 컴퓨터로 해도 ctrl+F 하면서 찾을수 있지만 하나로 통일해 주세요 그리고 아래 글처럼 표준표기법은 테킬라 입니다. 테킬라(<에>tequila) 「명사」 용설란의 즙으로 만든 멕시코 원산의 독한 술. 알코올 농도는 29~40%이다. 1 다음 페이지 10페이지 다음 324쪽 바리깡이라 ... 바리캉입니다. 설명은 생략 바리캉(<프>bariquant) 「명사」 또 203쪽의 9번째 베텔기우스라는 말 뭔가 아니다 전에 내가 아는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확인 보니 베텔게우스 베텔게우스(Betelgeuse) 「명사」『천문』 오리온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 붉은색의 반규칙(半規則) 변광성(變光星)으로 가장 밝을 때는 하늘에서 열 번째로 밝은 별이 된다. 지름은 태양의 750배이며 지구로부터 약 640광년 떨어져 있다. 出典 국립국어대사전 라고 합니다. 물론 베텔게우스 그다지 문제는 안된다고 할수있으나 다른 문제가 없다면 그냥 하나정도는 넘어갈수도 있지만 이 책이 너무 많은 부분에서 문제점이 보여서 이 부분도 적었습니다. 375쪽 10번째 줄 펠리칸 ,펠리컨 문제 역시 그다지 문제는 없으나 원칙은 펠리컨입니다. 여덟번째 거기다 중간중간 의약품이라든가 패션 용어인지 예술용어 뭔소리지도 모른 단어들 솔직히 그냥 넘어가도 됩니다. 예를 들자면 186쪽 7번째줄의리넨 장 244쪽 이퀄은 등호를 말하는건지 스위튼로 한두개가 아니라 적기도 그렇고 그리고 정말로 번역할 가치가 없다면 그냥 가구나 조미료로 의역하는건 어떤지 그냥 영어발음 그대로 하는건 뭔지 뭐에요 대충 눈치것 이해하라는건지 하지만 그런 기분 있죠 내가 책은 읽는데 외국어이지만 한국어표기니까 그냥 읽고 넘어가는데 뭔소리지도 모르고 대충 그런거 보다 넘어가는 거 그런거요 그럼 번역 왜 한 겁니까. 이게 축약본 간단하게 들고 다니면서 읽으라는것도 아니고 요재지이나 서유기 라든가 고전이라 중간에 번호 있고 뒤에서 참조 표시 찾는거 그런걸 요구하는건 아닌데 중간중간 영어한국어로 적은거 의약용어 이 책의 느낌은 나역시 환자의 부모가 되서 뭔소리진 모르고 그냥 의사에게 끌려 다닌 느낌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느낌이 있더군요 병원에서 내가 머리가 다쳐서 갔는데 영어로 대화하고 뭔소린지 잘 모르는데 진행은 되고 분명히 내가 돈내고 그런 기분이죠 인터넷에서 찾아보라고 할사람도 있지만 뭐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나오는데 믿거나 말거나 자료고 그럼 왜 책을 샀는지 그리고 아홉번째 등장인물 이름오타 기본중의 기본 이 책의 주인공인 피츠제럴드家의 경우에도 誤記 誤打의 경우는 못 벗어났다 물론 다른 실수에 비해 적은 경우이다 5쇄다 이정도면 솔직히 다 잡을 만하다 이런 오타가 결국 독자의 몰입도 없어지고 결국 돈주고 산 경우라면 이 역자와 이 출판사의 신뢰도가 낮아져 다음번 구매때 망설이게 하는 경향을 만들게 한다 자 그 쪽수를 적자면 198쪽의 17번째 '피르제럴드 분위기를 보니' 책의 내용에도 잘못발음해서 미안한다고 하거나 뭐라 가타부타 하는 것이 없는걸 보아 오타다 생각됩니다. 안나의 변호사 캠벨 알렉산더 역시 오타 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꼼꼼이 읽다가 보니 370쪽 5번째 줄 캠벨 알랙산더 하긴 등장인물이름도 실수하니 뭐 말 다 했죠 열번째 그 전문적 용어를 그냥 적으면 어떻게합니까 관해도 그나마 어느분이 한자 적으라고 해 한자 적어 이해가 되는데 375쪽의 조범장치 이건 아마도 이걸 말하는것 같은데 선박면허있는 사람도 막상 알려고 하면 잘 이해가 안되는데 한자라도 정확하게 적길 아마도 操帆 이걸로 기억하지만 정확도는 확신못합니다. 열한번째 문장 중간에 - 표시가 있으면 막히는 표시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경우도 상당히 있습니다. 예를 들면 11쪽 마지막줄 -내가 태어난 가족- 92쪽 -기화기에 결함이 있는 자동차나 착륙장치에 문제가 생긴 비행기- 96쪽 -화학요법 후 의 감염 - 154쪽 - 이 동물원에 가장 최근에 생긴 가족- 등등 이렇게 정리해서 간혹 안 읽고 넘어가도 되고 지엽적인걸 표시하는건데 -(이걸) 해놓고 뒤에 막는걸 안해놓으면 뭘 어쩌라는건지 35쪽도 앞에만 해놓고 막는 표시도 없고 491쪽도 그렇고 안 적은 쪽수도 많습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읽는 내내 정신이 없습니다. 거기다 번역자가 여자라 각종 옷이름 시셋말로 패션용어로 라고 해야 하나 그 영어를 한국말로 발음대로 적어는것 그다지 문제가 없어 경향이 있네요 당연히 알거다 언어적으로도 괜찮다 316쪽 마지막 줄 훅 이거 고리라고 안해도 상관은 없는데 hooK "훅"이라는 단어가 한국어 귀화한 단어인지 아니면 컴퓨터나 최신의 기술 개념이라 한국어로 대체할만 단어가 없는지 고리라고 하는것이 그렇게 이상한지 각종 화장품이니 뭐니 여자들은 당연히 알만한 용어가 많지만 이건 뭔소리야 그런식의 영어발음한국어로 그냥 적기가 중간중간 많이 보입니다. 남자들은 남자가 번역한 전쟁 관련 책이 그냥 영어로 또는 각종 원어를 그냥 적어도 이해 합니다. 말하자면 등화관재, 독 파이더 소개,(疏開)작업 씨피, 컴퓨터 용어 또한 그런경우 많고 또는 BOQ 라고 만 적어도 통밥으로 압니다. 뭔지 모르죠 이말은 BOQ(독신장교숙소) 이런식으로 하면 중간중간 뭔소리지 모르겠죠 그러니 번역은 영어발음을 한국어로 적는것이 아니니 안좋네요 그리고 다시 마지막으로 적자면 퇴고 전혀 안했나요?? 리뷰가 아니라 오타정오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적은 부분들도 많이 있으니 전부 다 수정하고 2판을 만들어거나 5쇄 6쇄 다 문제 있으니 문제없는수정 7쇄? 10쇄를 찍었으면 합니다. 제가 책을 읽고 기쁘게 적을려고 해도 심한경우 바로 옆쪽 또는 같은쪽에 외래어 단어 를 서로 다르게 적고 이런 문제점때문에 내용을 따로 언급 안하더라도 아쉽다 안좋다 라고 적고 싶습니다. 원래는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같은 말로 마지막줄을 적으며 좋은 책이었다 하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많은 결점이 보여 다음번에 수정된 책을 보낸다면 그렇게 할수도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