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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예술을 이용할 때,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고 그 결과물이 졸렬하기 그지없다. 그 예술이 찬미하는 위정자나 지배세력의 시대가 지나가고 나면, 시대에 영합한 예술품들은 기껏해야 우스꽝스러운 놀림감이 되고 대부분은 그냥 잊혀진다. 하지만 정치가 과학을 이용할 때에는, 과학이 정치에 영합했을 때에는 웃어넘길 수많은 없게 된다. 그야말로 파괴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으며, 아예 사회의 방향 자체를 뒤틀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치 치하의 독일은 그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다.
정치와 과학이 손잡는다면, 정치가 적극적으로 과학을 후원해 과학발전에 힘이 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야합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찰한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기껏해야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에서 리셴코가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를 되뇌는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뭐 이런 어이없는 일이 다 있었담! 정말 웃긴 이야기야!' 정도의 자세로만 접근했다. 검증되지도 않은 가설에 기초한 농법이 전국적으로 강제 시행되고, 타당한 반박은 불순분자의 책동으로 간주되어 무조건 탄압한 상황이란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일들이기는 했지만, 비웃는 것만으로 끝낼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히틀러의 과학자들>을 읽은 감상을 간단히 정리하라면, 이 말밖에는 하지 못하겠다.
"다들 미쳤어. 완전히 미쳐돌아가고 있어...."
프리츠 하버-과학과 사회의 관계, 과학사의 아이러니에 대해 말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유태인 혈통이었지만 완전히 유럽 국가에 정착한 대표적인 인물인 하버는 암모니아 비료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방법을 발견했고, 그가 발명한 독가스는 세계 1차 대전에서 크게 활약했다. 하지만 그 독가스 기술은 유태인 대학살 때 쓰인 독가스의 모태가 되었다. 하버는 명실공히 독일 최고의 과학자였고 군사적으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히틀러의 광적인 유태인 탄압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버 인생의 최대 축복은 노벨상을 탄 것이 아니라, 나치가 본격적으로 유태인을 탄압하고 학살하기 전에 죽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한편으로는 단순히 혈통이나 인종만을 문제삼아 부당하게 축출한 과학자도 많았다. 그 중 많은 수는 극한 상황에서 사망했고, 연줄이 있거나 돈이 많은 사람만이 외국으로 망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망명자가 나치에 대척하는 연합군 진영에 가담했다.
나치의 과학정책은 전쟁무기를 개발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치 정책의 기조를 이루는 것은 다름아닌 인종차별인데, 나치가 열등하다고 간주한 인종을 축출하고 탄압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는가 하면, 숫제 '사람을 죽이기 위한 과학'을 대놓고 개발하기도 한다. 나치가 과학의 이름을 내세워 저지른 만행들은 그야말로 끝이 없다.
이 책은 윤리적 측면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정치와 야합한 과학은 윤리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과학윤리와 사회윤리, 그리고 순수한 의미의 윤리는 과연 상충하는 것인가. 일방적으로 답을 제시하지는 않고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파급력이 훨씬 커진다.
'안락사'의 개념이 맨 처음으로 제기된 곳이 다름아닌 나치 치하의 독일이었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 우생학은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인종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했고, 이것이 안락사의 개념을 낳은 것이다. 이 때의 안락사는 고통받는 사람을 구제한다는 측면이 강한 현대의 그것과는 달리, 가치없다고 단정한 사람을 고통없이 처단한다는 쪽에 훨씬 가까웠지만 말이다.
동시에, 전쟁을 위해 핵폭탄을 개발한 연합군의 과학자들이 과연 '윤리적'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의문은 독일 과학자들이 '양심에 반하는 발명을 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핵폭탄 개발을 등한시했다는 주장에서 절정에 달한다.
과학과 정치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이 명제가 극대화되는 것은 전쟁 중일 때지만, 전시가 아니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의 과학은 과학 진영 스스로 자립해 연구하기에는, 너무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정치는 과학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과학계는 정치의 그런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히틀러의 과학자들>은 역사적, 사회적, 윤리적 맥락에서 가히 최악의 조합이라 할 실화를 덤덤히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묻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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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과학은 세계를 바꾸는 원동력이었다. 한 때 세계 과학의 메카라고 할 만한 시기도 있었다. 1901년부터 1921년까지 독일의 천재들이 연속해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X선을 발견한 뢴트겐에서 상대성이론의 거장 아인슈타인까지.
과학기술은 국가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레이더, 컴퓨터를 이용한 암호해독, 원자폭탄 등이 증명해준다. 하지만 나치지리학, 나치의학, 나치물리학도 등장하였다. 아리안의 피가 오염되지 않도록 장려하고 보존하는 일. 독일국민은 환자였고 유태인은 질병이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질병을 고치는 유능한 의사였다. 기술이 가진 도덕적 중립성을 핑계로 과학기술자들은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전쟁때문에 세계 과학자들에게 더 많은 기술적인 것을 요구할수록 기술자들 자체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지며, 그들이 익명의 활동으로 내놓는 결과물에 대해서도 신경쓰지 않게 되므로 점점 더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런 가운데 혼자만 인정받으려는 욕구, 경쟁과정에서의 오만과 책임회피 등 온갖 이기적인 욕망이 드러났다. 인간이 이룩한 고도의 기술과 이성이 비이성적인 목표, 전쟁을 위해 이용되었다. “과학이 칠판과 실험실을 벗어나 인류에게 참혹한 공격을 하고 있다.” 이제 과학적 지식은 자유와 공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복잡한 도덕적 갈등상황에 빠진다면 과학자라고 해서 일반인과 다를 것은 하나도 없다. 과학자가 획기적인 발견을 이뤄내려면 충분한 재정적 지원이 보장되어야 하며, 독립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과학적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기본적인 기질에 상황이 적절하고 시스템만 갖춘다면 우리 모두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짐바르도 교수의 주장이 새삼 증명되는 셈이다. “독일군을 실제로 만나본 다음부터는 나는 히틀러의 전사를 악마로 여기기 힘들었다”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 과학을 통해 인간은 더 합리적이고 더 철학적이고 더 세계적이고 더 객관적이 될 수 있을까? 과학은 독재체제보다 민주체제하에서 보다 번성할 수 있으며, 과학자의 발명품도 그 체제하에 더 책임있고 윤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거대과학이 이끌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 살고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