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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보면 매우 지적으로 느껴지는 책이 있다. 찰나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감성에 빚진 글이 아니라 부단한 독서 과정을 담보하는 책. 책을 읽으며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이 전달되는 책. 그러한 책은 그 책을 쓰기까지의 몇 개월 또는 몇 년 동안의 산물이 아니라 삶 전체의 산물이어서 의도치 않아도 그 동안 담금질 되어 온 저자의 혜안과 유머, 그리고 독서 이력이 자연스레 배어나온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는 저자의 개에 대한 몽상기이다. 하지만 1919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나(그렇다면 저자의 나이는 84세라는 말!) 제2차 세계대전과 68혁명을 거쳤으며, 알베르 까뮈와 지하신문 <콩바>지에서 함께 일했던 경력이 있는, 현재 갈리마르 출판사 독회의원으로 프랑스의 모든 문화인들과 교류하고 있는, 그리고 그 자신이 수많은 책을 낸 소설가 및 저술가인 로제 그르니에의 개에 대한 몽상은 좀 특별하다. 개를 중심으로 하여 수많은 작품들을 가로지르며 개에 대해 성찰하는 지적인 몽상이라고 할까. 개를 주제로 하여 그르니에에게 읽혀진 문호는 루소, 세르반테스, 보들레르, 발레리, 릴케, 사르트르, 라캉, 플로베르, 카뮈, 체홉 등을 비롯하여 고야, 찰리 채플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폭넓다. D.H 로렌스는 “사냥과 약탈과 피를 위해서 생겨난 사나운 짐승이 개”라고 얘기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숙명적인 사랑의 욕구에 사로잡힌 존재여서 결국은 스스로의 자유를 읽어버리고 만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인 보들레르는 버려진 개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쓰기도 했는데, 더 나아가 찰리 채플린은 <개의 일생>이라는 “걸작”을 통해 떠돌이 찰리와 역시 떠돌이 개와의 깊은 연대감(?)을 보여준 바 있기도 하다.
인간과 개 사이의 신비스러운 친화력, 문학인들의 생활과 작품 속에 잊을 수 없는 역할을 한 여러 종류의 개들의 앤솔로지를 저자가 쓸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키워 온 개 율리시즈와의 깊은 관계로 인해 저자 자신이 개라는 존재에 대하여 지긋한 애정과 경이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저자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토록 서로 다른 두 가지 종인 인간과 개가 어떻게 그처럼 소통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내게는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 더 큰 기적이요 귀중함이라고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이 보다 더 쉬운 것이 또 있을까? 저기 개가 걸어온다. 정다운 말 한 마디를 건네거나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주기만 하면 고개를 숙이고 다가와 순순히 응해준다. 개와의 이런 친숙한 관계가 너무나 신비롭게 여겨졌기에 나는 마침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책을 쓴다고 해서 해답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책을 쓰고 난 뒤에도 개들은 내게 여전히 경이의 대상이 될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개와의 무구한 사랑에 대한 감동은 이 책을 번역한 역자 김화영 교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서우’라는 개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교수는 이 책의 번역과 장정에 매우 극진해 노력을 기울여, 저자 그르니에와의 인터뷰를 책 말미에 실어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하고, 원서에는 없는 사진 자료를 저자의 협력 하에 싣기도 하였으며 6페이지의 역자의 말을 통해 ‘서우’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리고 교수가 이 책을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는 마음이 전달되는 주석들도 이 책을 보다 특별하게 만든다. 다음은 프랑스의 도시 포오에 대한 주석.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너무 자주 등장하는 도시 이름이라 한마디 해야겠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가까운 이 작고 아름다운 도시는 그것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겐 그림같이 아름답다. 멀리 보이는 피레네 산맥의 만년설이나 옛 궁전과 같은 유서 깊은 골목길…… 내가 작가 이인성과 그곳을 방문했을 때 그는 그 도시의 싱그러운 풍경에 반해서 이런 곳에 방이나 하나 얻어 글을 쓰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파리에서 7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이 시골도시가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낸 로제 그르니에의 눈에는 어린 시절의 너무나 산문적인 기억들과 만만치 않은 권태 또한 지우기 어려운 공간으로 비쳐진 것 같다. 한국 유학생 가운데 이곳에서 프랑스어 연수생활을 거친 이들이 꽤 많다.”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는 머리가 희끗한 두 노신사(저자와 역자)의 개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주축으로, 도저한 독서와 지적 능력으로 헤아려진 매우 특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