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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자연을 통한 운명의 탐구
산다는 것, 그 자체는 항상 덫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것은 이별이나 죽음과 같은 한계 상황일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조상용 시인의 작품집 『선물』은 사랑과 이별, 그리고 불안에 관한 의식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갖고 있는 타고난 운명적 불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조상용 시인의 시풍은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자와 유사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불안과 절망에 이르는 자아의 운명을 신과 자연을 마주 대하면서 그 불안한 운명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철저하게 현실적인 삶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며 그 극복의 매개체가 다름 아닌 자연이라는 점이다. 시인의 삶은 초월이나 저편을 기약하지 않은 채, 다만 ‘바로 지금 여기’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다. 그러한 긍정적 삶의 태도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외줄 타는 광대의 모습이 아니라 화해의 언어를 추구한다. 인간에게서 삶이란 살아내기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유가 <송맹동야서>에서 명즉현호천의(命則縣乎天矣)라고 말했을 때, 인간에게 있어서 삶이란 인간이 주체적일 수 없다는 말을 함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생은 이것과 저것의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어쩌면 인생을 묻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툭하고 눈꽃이 눈물처럼 떨어지는 날 아직도 그대로인 내가 눈꽃처럼 눈물을 떨군다. - 시「기나긴 날…… 회상하며」전문
그런데 조상용 시인은 인생을 직관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정의내리고 있다. 불안과 죽음, 이것이 시인이 인식한 삶의 거울이다. 그런데 문제는 죽음이 아니라 인간 전체에 내재한 불안의 극복이다. 눈꽃이 눈물처럼 떨어지는(죽음) 상황에서도 시적 자아는 눈물을 떨군다. 그것은 아픔이고 슬픔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인 것이다.
공깃돌만한 작은 것이 내 움직임을 따라 써럭써럭 소리를 내며 아리더니 가슴에, 주먹만 한 허공을 만들었다. 아픈 것이다.
그 작은 것이 눈에 들어가 눈물이 되고, 가슴에 들어가 슬픔을 만들었다. 너무 아픈 것이다. - 시「사랑, 또한 이별의 말(言)」전문
이렇게 불안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불안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의미는 생과 사에 위치한다. 그런데 문제의 중심은 언제나 생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삶을 지배하는 것은 죽음 편에 서 있다. 왜냐 하면 삶과 죽음에 위치한 인생의 참모습은 시간을 갉아먹는 제로-섬게임이 아닌가. 조상용 시인에게 있어서 불안은 생득적인 그 무엇이자, 인간 전체의 내적 그림자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불안은 삶과 죽음 사이에 위치한 하나의 운명적 아포리아이다.
서리 내린 계절에 잎사귀마저 말라버린 향기가 여럿……
져버린 가슴, 코스모스였을 추억 사이로 한 송이만 덜렁 남긴 들국화가 보인다. 너마저……
손을 대어 꺾으려 한껏 다가서다 말고 움찔, 놀라곤 다시…… 여러 번 그러다……가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 시「학곡리 화장터 오르는 길에」전문
삶의 방식에는 아마도 크게 두 가지라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절망, 위기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경우이다. 이때는 삶의 자포자기나 파멸, 나아가 자살에 까지 이를 수도 있을 것이고 긍정의 자세로 대면할 때는 오히려 국면전환을 통해 인간 통합과 휴머니즘의 확대, 새로운 인간성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헤어질 수 있는 것도 헤어져 그리워할 수 있는 것도 너와 내가 만나서 우리가 사랑했었음이니 그…… 이별 또한 사랑일 테니
조금만 아주 조금만 슬퍼하기로 해 그게…… 힘들면 아주 조금만 행복해 하기로 해 - 시「이별이야기」부분
조상용 시인은 이별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슬픔이 힘들면 조금만 행복하자고 말한다. 이별을 사랑과 행복이라고 반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가 아파하고 슬퍼하며 그리워하고 행복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함에도 헤어져야 하는 필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 속에서 나무와 혹은 새의 울음소리 속에서 혹은 생명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아침이면 네가 즐거워 지저귀는 소리에 깨고 한낮이면 네 행복한 비행에 내가 즐겁고 밤이면 네 작은 온기로 잠을 자고 그립고, 해도, 내 손이, 발이, 입이 있어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가슴으로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립게 기다리는 일이지
곧 봄이 오면 싹이 돋고 내 키가 좀 더 자랄 텐데 걱정이야 네가 돌아오고 싶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봐 - 시「나무와 새의 사랑 이야기」부분
오늘날의 시가 거의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위기의 국면에서 현대시를 어떻게 끌어갈 수 있을까? 오히려 이 같은 위기의 국면에서 우리는 시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세상이 허무와 분열과 좌절의 양상을 보인다고 하여 우리 시대 시인들이 그것을 소박한 반영론에 입각해서 무의미, 해체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이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 이외에 다른 의미는 없다. 이럴 때 일수록 시는 인간 통합, 가치 있는 의미의 세계를 지향할 때 의미를 지닌다. 그 역시 그런 흐름에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모색한다. 하지만 그것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자연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계.절.은.그.렇.게 봉.숭.아.물.이.빠.진.손.톱.위.에 안.개.빛.반.달.을.그.려.넣.고.있.다 - 시「가을 - 그리움을 망각하다」전문
그런 의미에서 조상용 시인은 자연주의자요 윤리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시란 그 마지막 순간엔 윤리성의 문제를 배제할 수 없다. 인간은 탐욕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자연의 순리를 거역할 수 없다. 언젠가 한 번은 죽는 것이다. 자연은 자신을 버리면서 사는데 인간은 오히려 가득 채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주목하는 불안과 고민의 행태인 것이다.
가을이 오면 밤도 털고, 대추도 털고, 은행도 털고, 들깨도 털고, 팥도 털고, 콩도 털고, 벼도 털고, 수수도 털고, 심지어 나무도 제 가지를 터는데
유독 사람의 곳간(庫間)만 차고 넘친다. - 시「가을이 오면」전문
물론 이와 같은 견해에 고루하다 생각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행위가 그렇듯이 시 역시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지 않고서는 그 존재의 필연성이 없을 것이다. 세월의 흐름과 추억에 대한 그리움에 한숨을 쉴 지언정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무심한 바람이 지난 그 자리 다리에서 서성이는 기억이 깊이 아득한 파도 저 아래에 이대로 남은 가슴, 이젠 내 그리움이 아닌 한숨을 쏟아내면 서해는 떠오를 붉은 해를 준비한다. - 시「다리에서 서성이는 기억이 - 서해대교에서」부분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 내지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성스러움’, 즉 신성성에 의해서 보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고귀하고 존엄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신이 그렇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인간은 하늘 아래서는 누구나 다 평등하다. 구름과 바람, 햇빛과 달빛까지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환경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롭고 가난하며 춥다. 아무리 가질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다 가진다고 한 들 하늘 아래에서는 평등하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땅을 딛고 서서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낙원동 37번지
군수도 서장도 화가도 선생도 두 발로만 오를 수 있는, 그래서 하늘 아래서 가장 평등한,
구름도 바람도 햇빛도 달빛도 한 숨 쉬어야만 넘을 수 있는, 그래서 하늘에서도 가장 평등한,
연탄도 소포도 전등도 전화도 유독 도시에서만 눈물 나게 가난해야 살 수 있는, 그래서 바람도 더 차고 겨울도 더 매섭고 허기도 더 서럽고 추억도 더 짠하고 사람도 더 그리운 낙원동 37번지 - 시「낙원동 37번지」전문
이 경우 그 신 혹은 신성성의 문제는 윤리적 차원에 주거한다. 즉 우리의 삶에서 신성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곧 인간이 인간됨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의 신성성을 부정하는 행위 역시 시가 시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 발전 혹은 인간 향상에 기여하지 않는 시란 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먼 길 떠나간 자식의 무탈을 기원하는 어미가 속 깊이 눌러온 세월의 울화를 갈아내는 노승처럼 땅을 찧는 두 무릎이 다 헤어지는 백팔 배를 여기에 비할쏘냐
빌고 빌어, 제 뜻을 씻어내야만 마침내 합수(合手)를 윤허(允許)하는 너는 문명의 기도(祈禱)이리라 - 시「비누」전문
조상용의 시는 선시적인 성격을 지니는가 하면 인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문명에 질타를 퍼붓는가 하면 남편으로 어머니로 서로 기대가며 위로하는 인간적인 삶을 추구한다.
밤이 너무 밝아 별도 달도 갈 곳을 잃었다. - 시「도시」전문
건물도, 예술도, 명예도, 권력도, 도시도 한 숨, 두 숨, 숨을 죽이고 오만하고 방자한 거만으로 한 숨, 두 숨, 쉬었다 내려놓으려는 시를 쓰고, 시만 쓰고, 시도 쓰는 머리 검은 오로지 인간
그래봐야 한 뼘 하늘 아래 그 빤한 높낮이에서 가증스런 손짓으로 쓰는 인간과 쓰이는 타워크레인은 갑과 을의 무기력한 종속일 뿐 오만도, 방자도, 거만도 결국엔 인간이 시를 쓰고, 인간이 시를 쓰고, 인간이 시를 쓰고, 머리 검은 오로지 인간만 쓴다. - 시「감성(感性)」부분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첫 만남 슬픔이 끝은 아닐 거라는 믿음만으로 부둥켜 살아온 행복한 시간 당신이, 여보가, 자기가 지팡이가 되어주고 반병신의 남편이 한 자식의 어머니가 서로가 안쓰러워 기대가며 위로하며
지난날 일상이었던 일들이 그리도 절실히 그리울 줄
그리움을 위해서 살아간다던 그들 남과 여 반병신의 남편과 한 자식의 어머니
한해를 넘겨버린 햇살이 유난히도 따스한 겨울 당신의 어깨위에 햇살이 되고 싶다. - 시「부부」부분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인간이 비인간화 혹은 물화된다 하더라도 인간이 물질이 되거나 동물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산업 시대의 인간이 설혹 물화되고 비인간화 된다고 해서 시 역시 이에 맞추어 분열되고 해체된 인간을 지향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될 수 없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한 알은 사람이, 다른 한 알은 새가 이렇게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그래서 파종은 늘 두 알을 해야 한다던 어머님의 당부를 어기고
올 봄엔 내 사는 것이 하도 팍팍하여 나만 먹고 살겠다고 한 알만 넣었더니 야속한 고놈의 새가 제 배만 채우고 있다.
그래, 또 먹고 살겠노라고 듬성듬성 등이 시린 밭고랑에 훠어이~ 훠어이~ 새가 지나간 자리를 쫓고 있다. - 시「파종」전문
1 여기서부터 이제 시작이다.
원고지 칸칸이 계절을 채워 놓고는 까만 잉크위에 가슴을 적시고 은하수 강을 가득 메운 별빛을 모아
두터워만 가는 감정의 굳은살을 발끝에서 느끼는 말초의 예민함과 가슴에서 되 얻는 심장의 격렬함으로 칼을 대고
0.7mm 펜 끝으로
빗물에 쓸려 산언저리에 묻힌 우리의 양심을 파헤쳐 내어 메말라 목 타게 오아시스를 찾는 자연에 비를, 그리고, 아직 아물지 않은 이브의 상처에 여린 입김이라도……
2 아버지의 가슴을 덮는 긴 침묵 속에
어머니의 사랑에 묻힌 여린 뼈마디에
3 시(詩)를 쓴다. - 시「시작(詩作)시작」 전문
그는 자연 속에서 시를 쓰고 자연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의 삶을 추구한다. 그의 시쓰기는 자연에서 시작되어 자연으로 끝맺는다. 시작 행위는 곧 자연을 만나는 행위인 것이다. 자연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만날 수 있어야만 진정한 문학이 되고 예술이 되는 것이다. 그는 현시대를 산이 돌아 앉아 있는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산이 돌아앉았다.
기억도 사라지는 세월 그 멀리서부터 걸어왔다던 어느 장군이 털썩 주저앉아 산이 되었다던, 그 산이 돌아앉았다.
두 손에 들고 왔다던 집채만 한 바위가 윤회에 씻겨 조각조각 살결이 되어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무심한 산이 돌아앉아 있다. - 시「연착」부분
하늘에서 바다를 만나는 날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놓아 주어야 한다면 그, 찰나에라도 네게 있었다던 그 아득한 지난날 너를 보여 주렴 - 시「하늘에서 바다를 만나다」부분
강물은 흘러도 흐르지 못하고, 빗방울은 내려도 내리지 못하고, 사랑은 소리쳐도 전하지 못한 채 소설가의 책으로 화가의 그림으로 사진사의 사진으로 손끝에 닿아 가슴에 남을 뿐 예술이…… 멈추는 순간에 오로지 예술은…… 스스로에게만 존재를 묻는다. - 시「예술이 손끝에서 날아올라」부분
조상용의 시의 또 다른 특징은 감각적이며 시어의 조탁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의태어 의성어를 사용하여 자연의 형상을 자유자재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맑은 동시적인 감각을 만나기도 하고 대상에 대한 독특한 메타포와 탁월한 어휘 구사 능력에 감탄을 토하지 않을 수 없다.
망울망울 / 방울방울 가지마다 꽃이 피고
종알종알 / 송알송알 혀끝에 바람 맺히면
중얼중얼 / 흥얼흥얼 곤한 잠꼬대도 노래가 된다.
몽글몽글 / 송골송골 장대 끝에 잎이 틔고
아른아른 / 아롱아롱 들마다 아지랑이 오르면
달랑달랑 / 살랑살랑 노곤한 일상도 꿈결이 된다.
사각사각 / 살방살방 퀭한 내에 물이 들고
소복소복 / 소곤소곤 무심한 산도 속삭이면
아름아름 / 아름답게 찬란한 볕이 쏟아진다. - 시「봄에는」전문
푸릉 푸릉한 하늘 어디메를 붓으로 톡, 따내면 와르르 쏟고야 마는 망울망울 - 시「가을비」부분
밤새 도깨비 난장 같은 그 비를 다 맞고 먼 산이 성큼, 문턱까지 걸어 왔다.
밤새 달빛에 웃자란 새순(筍)이 물기가 덜 가신 햇살에 반짝, 고양이 같은 세수를 한다.
밤새 비는 갰다. - 시「밤새」전문
조상용 시인의 시에는 나름대로 독특한 윤리적인 철학이 있고 자연을 가슴에 품는 아름다운 서정과 기품이 있다. 권면하기는 자신만의 그 독특한 시세계를 추구하되 흔들림 없이 전념하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개성을 담은 글이 가장 예술적인 것이다. 특별히 시는 고독한 자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줍는 보석이기 때문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조상용 시인은 견고한 지성의 철학과 뜨거운 감성을 지닌 역량 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개성적이고 독특한 시세계를 문단에서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