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밀리네 집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하고 아줌마를 따라 나섰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에 엄마가 나를 불러서 깊고 텅 빈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올 때, 오렌지 사오는 것 잊지 마, 알리스!” 시장 보는 일이, 아주 사소한 일들이 여전히 엄마에게 중요한 일이나 된다는 듯이, 그 목소리, 그 죽어가는 육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낸, 그 쇠약한 목소리 속에는 아주 먼 곳으로부터 날아오는 듯한 삶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자신의 육신에서 고통스럽게 뽑아 올린 그 목소리, 결국 가쁜 숨결에 묻혀버린 미약한 목소리에는 내게 내리는 단호한 명령이 들어 있었다. “알리스, 오렌지 사오는 것 잊지마.” 이 말은 내게 이런 뜻이었다. “살아라, 내 딸아, 살아야 한다.” - P.44
달콤한 엄마, 언제나 따뜻한 엄마. 그 엄마의 변화. 인정하기 싫어도 다가오고 만 엄마의 죽음. 죽음앞에서 딸에게 오렌지를 사오라고 이야기하는 엄마. "살아라, 내 딸아, 살아야 한다." 엄마가 없어도 너는 살아야 한다. 참 얇은 책 한권을 읽었다. 그리고 펑펑울었다. 왜 울었을까? 그냥 눈물이 나고.. 내 딸아이같고 그 마음이 아려서 울었다. 약해진 엄마가 딸에게 해줄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가슴이 스물스물 저며온다.
“여보, 샤를로트가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했어!” -.P.49
엄마 앞에 닥칠 일에 비하면 식사 초대 따위는 얼마나 하찮은 일인가? 하지만 내 머릿속에 새겨놓은 말, 오렌지 사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죽음의 순간에는 그 사소한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느날 엄마가 내 방이 너무 지저분하다며 꾸중 했을때, 나는 홧김에 아무 생각도 없이 툭 쏘아붙였다. "엄마는 어떻고! 엄마 머리는 얼마나 보기 싫은지 알아?" - P.30
가끔씩 아이들은 참 무섭도록 잔인하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그 잔인함보다 가슴이 아파온다. 왜 이렇게 아파올까? 청소년 도서 한권을 읽고는 눈물을 펑펑 쏟고 있다. 아이를 두고 가는 엄마의 맘이 느껴져서 울고, 부인을 떠나보낸 남편과 엄마를 떠나보낸 딸아이가 안쓰러워서 울고 있다.
만약 죽음이 하나의 사물이었다면, 죽음을 만져보고, 손끝으로 더듬으며, 두 팔로 꼭 끌어안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덜 두려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줌만이 가득한 심연을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공포에 질려 그 앞에 망연히 주저앉아 있었고, 매일매일 순간순간 소름이 돋도록 엄마가 보고 싶었다. - P.65
읽으면서 뽑아놓았던 글들을 다시 써내려가면서 또 눈물을 펑펑 쏟고 있다. 책을 읽은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아이가 책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해줬을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글로 쓰자니, 왜 이렇게 애잔하고 가슴이 아려올까? 아빠가 바르지니를 데리고 왔을때, 알리스는 기쁨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낀다. 그래서 샤를로트 아줌마에게 아빠가 엄마를 배신한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엄마는 갔어도 아빠의 삶도, 알리스의 삶도 계속 된다. 오렌지 1KG의 뜻을 여전히 잘 모르겠다. 왜 1KG일까? 어쩜 어느곳에 속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1KG속 이어지는 삶이 내 맘을 아리게 만든다. |
|
사회적(?)으로 성공한 생물학자 아빠와 너무나 우아하고 지적인 엄마를 둔 12살 꼬마 숙녀 알리스... 그런 알리스에게 생활의 변화가 왔다. 매사에 정리정돈 된 마치 FM이라 불리우는 엄마가 허둥대기 시작했다. 집안일도 뒷전이다. 계속 침대에 누워 있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는 가끔 병원에 다녀온 후 2~3일은 다시 아기가 된거마냥 아버지의 케어를 받고 있다.
더 이상 책읽기도 안해주는, 더 이상 숙제도 봐 주지 않는, 더 이상 학교 준비물을 챙겨주지 않는, 더 이상 본인을 위해 맛있는 간식도 만들어 주지 않는 그런 엄마가 자신에게 말은 하지 않지만 짐작 할 수 있었다. 알리스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엄마에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아주 얇고 가벼운 책이라 너무 부담없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쉽게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근데 방심하는 순간 울고 말았다. 어린 알리스에게 엄마의 부재가 현실이 된것이다. 알리스의 부모님들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서 관계는 더욱 숭고해 졌다. 그리고 엄마를 보기 위한 지인들의 방문이 잦아졌다. 엄마의 절친도 아빠도 알리스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한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둥지둥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로 딱 1년만에 엄마가 더 이상 집에 안계신다.
어린 꼬마 숙녀 - 12살배기 알리스에게 19살 때의 나의 모습을 전이시키고 있는 38의 나를 보았다. 물론, 난 알리스보다 훨씬 언니였고 나름 어른스러운 여고생이였건만 나이와 상관없이 엄마의 부재는 딸들에게 엄청난 충격임에는 틀림없다. 마지막 순간 난 학교에서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었기에, 시험이 끝나고서야 실내복 차림 그대로 시골집까지 택시를 타고 한참을 달린 후에야 .... 알리스처럼 떼를 쓰고 싶었다. 다시 일어나라고...아직 엄마한테 받아야 할 사랑과 관심이 더 있으니깐....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죽음의 순간에는 그 사소한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 마치 알리스의 엄마가 알리스에게 오렌지 1Kg을 사오라고 당부한것처럼... 이 사소한 심부름은 알리스에게 말하고 있다. 그렇게, 먼저 간 사람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삶을 가르친다. 오렌지 1Kg만으로도....
"인간은 인간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 불행의 구덩이 밑바닥에 쓰러져 있을 때라도 이 세상의 누군가는 나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 삶의 의미가 사라져도 누군가는 내 길을 밝혀 줄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서 누군가를 만나려 애써야 한다. |
|
연일 뉴스엔 우울한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유명 연예인의 자살, 그리고 예기치 못한 버스의 전복사고로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
의미없이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이렇게 갑작스러운 소식을 접하고 나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죽음'이라는 존재는 우리와 가깝다는걸 새삼 느끼게 된다. 친구와 수다를 떨며 커피를 마시는 와중에도, 문득 몇년전에 불의의 사고로 우리곁을 떠난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슬픔에 젖기도 하고, 즐겨보던 영화채널에서 우연히 고인이 된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보게되면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 그리고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사람들...
자꾸만 우울한 상념들이 쌓이고 또 쌓여가는 것을 억지로 떨쳐내며, 책꽂이에 꽂아두었던 이 책을 다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처하는 12살 어린 소녀의 이야기가 담긴 책,'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우아하고, 지적이며 모든일에서 완벽하기만 했던 엄마가 어느날부터인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알리스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의아하기만 하지만, 곧 엄마의 병을 알게된다.
하지만 엄마는 죽기 직전까지도 알리스에게 오렌지를 사오라고 당부한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면서도, 딸에게 삶에 대해 충고하거나, 자신의 고통을 알리려고 하는 대신, 평소와 같이 오렌지를 사올것을 당부한 엄마. 그런 엄마의 너무나도 고요한 죽음은, 알리스가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까지 지배하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 12살이었다. 그런 어린 소녀가, 너무나도 죽음을 담담하고 조용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나는 그 아이를 어른스럽다고, 장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을 일지 않았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알리스는, 12살의 소녀가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의젓하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아빠는 어린 딸에게 죽음의 의미를 너무도 일방적으로 보여준 것은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조금은 더 아이의 미숙한 마음을 생각해줬으면 어떨까 아쉬움이 남았다.
![]() |
|
[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참 추상적이면서도 막연한 제목이라는 느낌이 든 책이다. 오렌지 1kg과 삶이란 단어를 상관관계로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렇듯 함축적인 내용이 담겨진 듯한 책을 만나게 되면 나는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느낀 것 또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도 아니요, 베스트셀러 등으로 주목받는 작품이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책 제목에서 신비감을 느꼈다는 표현이 이 책을 만나게 된 첫 느낌이다. [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외국 작가 로젤린느 모렐의 작품으로 청소년소설이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12살 소녀 알리스에서부터 출발한다. 평온했던 알리스 가족에게 어느날 알리스 어머니가 암에 걸리게 되고 암과의 투병생활이 이어진다. 2번의 수술과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알리스의 어머니는 1년 뒤 세상을 떠나고, 이어서 아버지가 새로운 여자친구 비르지니와 결혼하게 되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사실 줄거리만 생각하면 그냥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할 수 도 있겠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급격한 변화를 헤쳐나가는 알리스의 심경변화에 주목할 만하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그냥 소설이 아닌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에 가깝다. 우리의 삶은 마침표가 아니라 진행형이다. ’오렌지 1kg’ 또한 그런 의미로 작가는 부여하고 있다. [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우리 주변의 알리스와 같은 처지에 놓은 수많은 청소년들이었다. 알리스를 통해 가족 누군가와의 이별을 극복하는 법을 그리고, 알리스가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심리적 안정과 용기를 얻게 되리라 생각한다. 모순된 감정이라고 표현하는 아빠의 새로운 재혼에서의 알리스의 심적변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굉장히 흥미롭다. 아빠의 재혼은 엄마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아빠의 여자친구 비르지니를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의 고민에서 서서히 더 이상 아빠와 함께 슬픈 식탁에서 슬픔에 빠져 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게 되고, 새로운 가족에 대해서 인정해 나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오히려 자신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비르지니가 더 힘든 생활이 될 지도 모른다는 배려의 마음도 읽을 수 있다. 알리스는 아빠의 재혼을 구석구석 잘 알고 있는 안락하고 익숙한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용기이고 다른 세상과의 도약하기 위해 지난날과의 작별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비르지니는 알리스의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여 가족의 일원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비르지니 그 모습 그대로 자연스레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알리스의 가족에겐 이제와는 다른 또 다른 새로운 삶이 계속되는 것이다. |
|
제목에서의 ‘오렌지’ 때문이었을까?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는 상큼한 오렌지가 순간적으로 떠올랐었다. 하지만 뒤이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구절과 이어진 책 소개를 보니 첫 인상의 상큼함이 아닌, 오히려 자몽의 쌉쌀한 뒷맛같은 것이 느껴졌다. ‘죽음’이란 단어는 그렇게 생각만으로도 우리를 움찔하게 만드는가보다. 이 책은 아이와 함께 읽으며 죽음과 이별에 대해 조금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책이다. 얼핏 보면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 내용전개도 빠르고 세부묘사도 많이 빠져있다. 그래서 어린 열 세 살 알리스가 결말에는 “엄마를 일찍 여읜 것, 그것이 내 삶이고 내 운명이다.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며 재빨리 결론짓고 현실로 돌아온다. 내용은 마음 아프고 가슴저린데 너무 재빨리 마무리짓는 듯해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아마도 아이의 수준에 맞춰 너무 깊이 상처받지 않게 빠른 전개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이 세부묘사가 잘 된 장편소설로 다시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알리스의 가족은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평화로왔던 가족이었다. 아름답고 현명한데다 세련되기까지한 엄마와 능력있고 가정적인 아빠와 사랑을 한껏 받으며 자라나는 주인공 알리스까지... 파리 변두리의 평범한 아파트에 사는 이 가족은 그렇게 계속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엄마의 암 발병을 알게 된 이후, 알리스는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현실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현실에 너무나 고통스러워 한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차츰 깨닫는 것이다. 모든 운명이 바뀐 ‘그 날’은, 이 책에서는 ‘엄마의 죽음’으로 그려졌지만 ‘그 날’은 사실 부모와 떨어지는 모든 이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지금 이 시점의 대한민국에서 엄마나 아빠의 부재를 안고 사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그것이 죽음이건, 부모의 이혼이건, 기러기아빠이건 모두 가슴의 어느 한 구석은 비워놓을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 중, 가장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것이 죽음으로 인한 이별인 것은 말해 무엇하랴마는....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이 아팠던 대목은 “부모님이 오직 나에게만 관심을 갖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자상하고 진지하게 들어주던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 정말 아쉬웠다”라는 알리스의 말이었다. 또한 “참말이구나, 참말이구나, 엄마는 이제 없구나.”말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현실에 또 마음 아파해야 했다. “뒤죽박죽이 되어도 혼자 감당해야 했고……나는 이제 그다지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알리스의 독백은 돌이킬 수 없이 상처받은 어린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알리스는 그저 ‘어둠만이 가득한 심연을 마주하고……그 앞에 망연히 주저앉아’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 말씀에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하신다. 죽음이라는 크나큰 고통이 있었어도, 그래도 어떻게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진리일 것이다. 알리스의 엄마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딸에게 “돌아올 때, 오렌지 사 오는 것 잊지마, 알리스!”하고 쇠약한 목소리에 마지막 삶의 의지를 담아낸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고통이 있었어도 ‘삶’은 그렇게 계속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에게 새 여자친구가 생기는 것도, 그걸 얼떨떨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변화와 생기가 다시 찾아올 듯한 예감에 내심 기대를 하는 알리스에게도 변화에 대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엄마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추억을 안고 새로운 삶의 이끌어 가야하는 남은 자들의 의무인 것이다. |
|
누가 원하겠는가...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을...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별이 찾아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만 좋을까. 책의 전반부는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주인공인 알리스의 엄마는 아름답고 현명하며 꼼꼼한 성격으로 집안을 평화롭고 행복한 분위기로 만드는 사람이다. 알리스의 아빠는 연구원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좋은 가장…알리스는 착한 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을 덥친 엄마의 병…행복했던 집은 불안한 공기로 채워졌고 나날이 허허로워져가는 엄마는 마지막까지도 알리스와 남편에게 무언가를 남겨주려고 애쓴다. 엄마가 나를 불러서 깊고 텅빈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올 때, 오렌지 사 오는 것 잊지 마, 알리스!" 시장 보는 일이, 아주 사소한 일들이 여전히 엄마에게 중요한 일이나 된다는 듯이. 자신의 육신에서 고통스럽게 뽑아 올린 그 목소리, 결국 가쁜 숨결에 묻혀 버린 미약한 목소리에는 내게 내리는 단호한 명령이 들어 있었다. "알리스, 오렌지 사 오는 것 잊지마!" 이 말은 내게 이런 뜻이었다. "살아라, 내 딸아, 살아야 한다." p. 44 행복했어요! 행복했어요! 사실이었다. 이 말은 오랬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가장 혹독했던 날에도 나를 파멸에서 지켜주었다. p.55 - 주인공의 엄마가 죽음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한말이 "행복했어요!"였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엄마…작은 일상 하나하나가 살아가기 위한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리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듯 저런 말들을 했고 알리스는 정확하게 그 의미를 이해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머리로 이해를 한다고 해도 가슴은 그러하지 못할때가 많다. 알리스도 그렇고…아빠도 그렇고…점점 집은 불편한 곳으로 변해갔고, 엄마가 없는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게 느껴지게 된다. 항상 곁에서 알뜰히 챙겨주던 엄마가 없으니 아빠는 대부분의 일들을 알리스에게 떠맡겨 버린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알리스는 당연히 힘에 겨워하고 자신의 생활도 해야 하기에 조금씩 아빠와의 사이마저 삐걱대기 시작한다. 갑자기 찾아온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변해버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와 아빠에 대한 이야기…결국 새로운 사람을 찾아 아빠는 결혼하고 알리스는 그녀에게 마음의 한켠을 내어준다. 그들이 엄마를 잊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사람일 뿐 엄마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다만 죽기 전까지 엄마가 알려주려 했던…”살아야한다”라는 명제를 이해한 것일 뿐이다. 이 글을 옮긴 분은 친구 한 분이 아내와 아이를 두고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건을 떠올리며 그 아내분이 마지막 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 책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읽는 나는 왠지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큰 사건이 되도록이면 결코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했다간 태풍을 막고 있는 얇은 유리창이 깨지듯 침묵이 깨지고, 그 틈으로 재앙이 몰려올것 같았다' 이런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질 않듯이 알리스는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엄마를 암이란 병으로 잃게 된다. 죽음을 앞둔 엄마를 보는 알리스, 아빠 그리고 그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엄마 이들 앞에서 나도 진지해지지가 않을 수 없었다. 13살 알리스에겐 너무 크나큰 공포이며 두려움이였을 것이다. 알리스는 엄마의 죽음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묻혀버리고 자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엄마의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걱정되는 것은 부모님이 알리스에게만 관심갖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자상하고 진지하게 들어줄 시간을 잃어버린다는것이였고 그런 상황으로 인해 변하는 자기의 상황이나 처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자연스럽게 털어내고 있다. 엄마는 알리스에게 오렌지 사오는 것을 잊지말라고 미약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명령한다. 이 말에는 엄마가 없는 세상이지만 너는 살아야 한다.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 아무일 없듯이 오렌지를 사오고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삶은 계속되니까...라는 뜻을 품고 있다. 행복했어요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엄마는 숨을 거두게 되고 아이는 엄마의 주검을 지켜보면서 아이는 죽음이라는 것은 거절이나 거부를 할 수 없는 것임을 받아들인다.
죽음은 알리스의 이해영역을 넘어서 공포로 몰아넣었고 광기를 끌여들였다. 죽음이 사물이라면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죽음은 알리스에게 어둠만이 가득한 심연으로 다가왔다. 알리스는 아빠의 새여자친구 비르지니가 자기집에 찾아왔을때 모욕감을 느꼈다 . 이런 감정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감정일 것 같다. 하지만 알리스는 어쩌면 다시 행복해질 수도 있겠다는, 변화와 생기가 집에 찾아올 수 있겠다는 예감을 하기도 한다. 알리스는 엄마의 죽음으로 아픔과 성숙을 겪으면서 엄마를 일찍 여읜것이 자기 삶이며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이 책을 통해서 위로받고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며 쓴 것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 것 같다.
오렌지 1kg는 굉장히 슬프고 어둔운 이야기이다.ㅣ 책을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가족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고통과 상처에 대해 대처하는 모습 그리고 받아들이기까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었다.
![]() ![]() ![]()
|
|
어느날" 누구든지 올수 있는 어느날이 나에게 한때 힘든 시간을 부여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타인들의 시선이 따갑기만 했다. 한부모 자식이라는 꼬리표기 이런것이구나. 그래서 한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없어진다는 것은 쉽게 잊혀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혹시라
도 익숙한 광경이나 먹는거 보는것을 통해서도 항상 눈에 보인다. 심지어 환영까지 보일 경우도 있
었다.
여기 한 꼬마가 있다. 알리스 . 병들어 죽어가는 엄마를 봐야만 하고 아빠의 새로운 여자친구에 대
한 혼란스러움으로 복잡한 아이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되지는 않았는데 아빠는 비르지니가 좋
다. 엄마에 배신이 아닐까.
이부분에서 난 눈물을 쏟고 말았다. 우리엄마가 혼자 계시니 주위에서 재혼을 하라는 것이었다. 난
싫었다. 엄마앞에서 울면서 매달렸다. 재혼하지 말라고. 아빠외에는 누구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결혼을 하고서야 남편의 든든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았다. 나 때문에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이렇게 한순간의 죽음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기라 그리 쉽
지 않을일이다.
13살 꼬마가 이 모든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을 것이다. 아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어느날 곁에 없다. 어느 프로에서 죽음을 앞둔 가족이 등장하는 프로였다. 죽음의 무서운 턱
에서 끝까지 사랑하는 가족곁에서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면서 많은 눈물을 흘려야했다. 세상에서 제
일 익숙한 것이 있다면 죽음과 이별이다.
만남뒤에 이별이 있고 이별뒤에는 뭘까. 알리스도 생각했을까. 아빠의 여자친구를 인정하는 부분에
서 왜 내가 부정하는 마음이 생길까. 아직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이건 분명
이 배신이 아닌데. 난 아직도 알리스보다 못한 이해력일까.
남은 가족들 사람들은 살아가기 마련이다. 끝나는것이 아니라 삻은 계속된다. 그리고 나 역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책을 통해서 새삼 과거가 떠오르고 내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죽음앞에는 자유롭지 못하고 익숙하지 못하다. 먼저 간 사람들은 남은 가족을 위해서 무슨 생
각을 했을까. 눈이나 제대로 감을수 있었을까. 알리스의 엄마도 어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사랑하
는 남편과 아이를 남겨놓는 심정을. 그들도 그리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
다는 것을 말이다.
첫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어둠을 직감했다. 그리고 울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는 모르겠
다. 지난간 상처가 다시 들쳐진 느낌이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이책의 말대로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
|
책장을 한장씩 넘길때 마다 많은 생각이 나서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르겠다.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내 어린시절이 생생하게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린것같다. 엄마와의 많은 추억을 지닌 알리스가 많이 부럽워서 눈물이 나기도했고 엄마와의 작은 추억 하나도 없는 내 어린시절이 가엽어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알이스의 아빠가 충분히 이해 되기도 했고 너무 밉기도했다. 그 옛날 내 아빠에 대한 기억이 파도가 밀려오듯 밀려와서~~~~
너무나도 어리고 어린 7살이란 나이에~ 죽음이란것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는 그때 난 엄마의 죽음을 맞이했다. 아무런 이유 조차도 모르고 엄마의 상여가 떠나는 날에도 한없이 웃었단다. 아무도 나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기에...... 어린 우리 자매가 상처를 받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주의 어른들이 말리셔서.....
나의 엄마도 알리스 엄마처럼 우리들만 남겨 놓고 돌아가셨다. 그때 우리 아빠도 알리스 아빠처럼 정말 많이 힘드셨을거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역시 알리스처럼 ~~ 내 아빠가 엄마외에 다른 사람과 결혼 한다고 집으로 초대해서 나와 내 동생에게 인사를 시키던 순간에는 너무 화가나서 정말이지 아빠가 미웠다. 그러기에 난 알리스의 그 혼란스런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나처럼 알리스가 남매였거나..자매였다면 또 다른 상황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아주 잠시 들었다. 내가 알리스 나이때 나의 아빠도 알리스 아빠처럼 재혼을 결심 하셨었다.
나는 반항심이 생길대로 생긴 사춘기 소녀였고...... 아빠는 이미 모든걸 결정 내린 상태였었고.......... 그러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참 많은 상처를 남겼던 시기였다. 내가 비로서 아빠를 이해할수 있었던건 10년전 첫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였다. 그때 [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게속된다]란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도 나의 아빠도 조금씩 서로가 서로를 양보하고 이해해서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않고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너무나도 간절하게 남는다.
나에게 수 많은 생각을 남겨준 책이다. 가끔씩 그때의 기억이 생각날때 책장에서 꺼내 읽으면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내 마음도 가벼워질것같은 고마운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