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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만, 어떤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발력이 좋다고도 하는 이런 분들은 대체적으로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대체적으로 느린 사람이 남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은 경향과 맞물리는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분들이 때로는 커다란 실수를 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사안을 빠르게 파악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점을 놓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른 것이 꼭 옳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느림의 발견>은 바로 느림의 장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역사교사를 지낸 바 있는 독일 작가 스텐 나돌니가 쓴 <느림의 발견>은 영국의 탐험가 존 프랭클린 해군소장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1786년 영국 링컨셔 스필즈비에서 태어난 프랭클린소장은 어려서부터 행동이 굼떠서 왕따를 당하던 소년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진면목을 알아본 사람은 옴선생님과 동네에서 배를 타는 선원 매슈 뿐이었습니다. 매슈는 그에게 해군사관생도가 되라고 권유합니다. 배를 타기 위하여 가출했다가 잡혀온 존은 결국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반응이 느린 대신 관찰력과 끈기가 뛰어나다는 장점을 살려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14세때 영국 해군에 들어가 매슈 플린더스가 이끈 오스트레일리아 탐험에 참여하고, 트라팔가해전, 뉴올리언스 전투에도 참정하였습니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탐험에서는 선장 매슈로부터 위기상황에서 선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주변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존은 이런 자질을 타고났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렸을 적에 친구들과 숲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었을 때, 존 혼자서만 태양의 위치, 바닥의 높낮이 등 느린 화를 관찰하고 돌아가는 길을 이야기했지만 모두들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존의 이런 자질은 전투 중에 빛났습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여유 있게 행동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변화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다. (…) 존은 바람 없는 밤하늘에서 달의 움직임과 구름의 변화를 음미했다. (…) 호흡이 깊어졌다. 자신을 한 조각 바다라고 생각했다.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자신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는 영상들.(89쪽)” 전투 중에 저격병과 마주한 순간에도 확실하게 맞출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기다림은 존의 특기였기 때문입니다. 2부에서는 북극을 경유해서 신대륙으로 가는 북극항로 개척을 위함 탐험에 여러 차례 나서는 모습과 호주의 태즈매니아섬의 총독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북서항로의 첫 탐험에서는 현지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데다가 그의 성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일부 대원들의 튀는 행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탐헝에 실패하였지만 대원의 상당수가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고, 존은 탐형과정을 출판하여 유명해지게 됩니다. 기사작위를 받게 된 존은 태즈매니아섬의 총독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선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신념에 따라 총독으로서의 임무를 다했던 그는 전임 총독과 유착하여 주민을 착취하던 사람들의 심한 저항을 받으면서 결국은 총독의 임기를 다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더 있었습니다. 북서항로의 개척은 사람으로서의 소명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항해에 필요한 정보, 예를 들면 기상상황, 식량조달문제, 지형 등 모든 상황들은 현지에 가서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탐험이라는 것이 성공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탐험대원들의 안전한 귀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845년 138명의 장교와 선원을 이끌고 북서항로를 찾기 위한 탐험에 나선 탐험대의 생사는 두 번째 아내의 집념에 따라 구성된 수색대가 랭커스터섬 남서쪽 킹윌리엄섬에서 선원들의 유해와 1848년 4월 25일까지 기록된 탐험이록이 발견된 1859년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느림의 발견>을 읽고 나면 느림이 가지는 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느림과 빠름이 어떤 때 유용한 지에 대하여도 알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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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은 여유를 필요로 한다.하지만 현대인들은 속도에 취해 있어서 느린 것을 견디지 못한다.이 책의 주인공 존은 천성적으로 너무 느리다. 존은 너무 느리기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들을 보게 된다.속도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그 무엇도 천천히 관찰하려 하지 않는다.하지만 존은 너무 느리기때문에 무엇이든 관찰하게 되고 남들이 놓치는 부분을 발견해 낸다.
정상적이라는 기준이 뭘까? 내가 생각하기에 정상이란 그 시대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에 잘 쫒아가는 것쯤으로 알고 있다.하지만 전문가는 공감하는 능력을 정상이라고 말한다.그래서 같은 또래보다 속도가 쳐지는 존의 느림은 장애일 수밖에 없다.하지만 존의 느림이 과연 장애일까?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느림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한다.
영국의 탐험가 존 프랭클린(1786~1843)은 성공보다는 실패로 명성을 얻은 특이한 탐험가였다. 그의 세 차례의 북극 탐험은 실패로 돌아갔고 마지막 탐험길에서 그는 사망한다.이 소설은 프랭클린이 남긴 편지와 기록에 작가적 상상력을 보태 그의 일생을 문학적으로 재조명한 전기소설이다. 그는 숲에서 자연의 느린 변화를 관찰한다.존은 항해사가 되고 싶어한다.그러나 서른여섯 시간 만에 아버지에게 붙집혀 방안에 갇힌다.그로 인해 앓고 있을 때 그를 이해 해준 사람은 선원인 매슈밖에 없다.존이 학업을 마치면 해군사관학교 생도 자격으로 그의 배에 태워준다는 매슈의 말을 믿고 학교에 들어간 존은 그 때만을 기다린다.모두들 존이 지금 이대로 멈춰 있을 거라고 믿고 있지만 존은 그 때를 위해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한다.버나비선생님은 존을 괜찮은 재목이라고 생각한다.모두들 존이 배를 타는 것을 내켜하지 않지만,열 네살이 된 존은 결국 배를 탄다.그들은 존이 거친파도와 배에서의 생활을 견뎌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열 다섯살에 선장 매슈와 함께 인베스티게이터(크세노폰)호의 선원이 된다.존은 이제 자신이 더 이상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난다.암초를 만나 53일만에 모두 포기해 버렸을 때 희망을 버리지 않은 존 덕분에 선원들이 모두 살아나기도 한다.열여덟살에 해군사관학교 생도 존은 동인도 선박 얼 캄덴에서 기수를 한다. 존은 배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을 치루기도 하고,힘겨운 생활을 견뎌낸다.어쩐 일인지 총알도 그를 비켜간다.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모두가 빈곤해졌을 때도 존은 새로운 꿈을 꾼다.존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호기심이 있다.존의 또 다른 호기심은 어떤 것일지 2편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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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와 느림의 화두가 내게 던져졌다.
소설을 통해 느림이 주는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탐험가이자 해군 장교인 존 프랭클린, 그는 타고난 관찰자이다. 그의 세밀하고 섬세한 관찰은 어떤 시점, 또는 지점에의 고정된 시선과 집중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집중력과 느림은 어쩌면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같다.
그에게 있어 느림이 주는 의미는 대외적으로는 역시 고통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무언가 끊임없는 생각의 원천이자 느림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그는 느림이라는 것이 결코 부끄럽거나 남들에게 뒤쳐진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다름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노력한다. 그 바탕에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굳건한 의지가 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존 프랭클린은 화두를 던진다. 속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느리고 빠른 것은 무엇을 통해 객관화되는 것인가?
그 속도보다 빠른 사람은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그 속도보다 느린 사람은 낙오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느림의 의미는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 속도의 차이보다는 내가 뭘 원하는가이다. 지금은 낙오자처럼 보이지만 그 목표를 향한 지속적인 노력과 전진은 성공을 이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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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큼 빨리빨리라는 말을 좋아하는 나라도 없는 것 같다. 그로 인해 많은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책이다. '느림'이라는 말에서도 느껴지듯 왠지 게으른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뒤쳐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느긋함과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여유 없는 삶에 한 잔의 향긋한 커피의 맛을 알게 해 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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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옛적의 선조 들의 말일테고 잘 가던곳이 잇는데 삼 사년이 지나고 가보면 전혀 다른곳으로 변해 있는것을 종종 본적이 있을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십년이 아니고 한 삼년이나 사년정도 아님 그보다 짧은 기간에 강산이 변하기도 하는것을 알수 잇다. 느리게 행동을 한다면 지금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뒤쳐질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너도나도 빠르게 닮아가고 또 따라 가고 잇다 그렇듯 우리는 지금 빠르게 빠르게를 외치고 행동하는 시대에 살고 잇는 것이다.
존 플랭클린 그는 어머니로부터의 유전적인 영향으로 선천적인 굼벵이로 태어낫다 그리하여 친구들로 부터 멸시와 박대를 받으며 살아간다. 친구들과 같이 빠르게 행동하고져 열심히 노력을 해 보지만 잘 되지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배를 타는것을 꿈으로 키워나간다. 엄청난 노력으로 그 꿈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을 정말 사실적인 표현으로 나타내었음을 알수 잇다 배를 타는것이 어떤것인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전문적으로 들리는지 남성적인 냄새가 물씬 물씬 풍기는 것을 알수 잇다 그래서 그런지 좀 지루하고 책의 내용과 같이 느리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런 경험을 뜻하지 않게 할수 있었다 존 플랭클린은 그 느림으로 폭 넓게 생각하고 깊게 생각하는것을 배워 자기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데...빠르게로 적응이 되어 살아가고 잇는 나로서는 폭 넓고 깊게 생각하는것을 아직 배울수가 없었다.그저 답답하다는 생각만이 들엇다
어떤 사람이 직장을 구해서 들어 갓단다 그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뚱뚱하다는 말을 듣고 살아가고 잇는 사람으로서 일을 해 보니 다른 사람보다 손이 굼뜨고 행동도 느려서 다른 사람들보다 수량면에서 차이가 낫는데..결국에는 그 회사에서 일을 같이 할수가 없다고 그래서 결국에는 그 회사를 그만둘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엿다. 그 사람이 수량에서 뒤쳐지기는 하지만 힘에서도 우위에 잇을수 있고 마음 씀씀이가 다른 사람보다 넓을수도 잇는데 결국에 느리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는 밀려날수밖에 없엇던거 같다. 물론 그렇다고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엇다
빨리 빨리를 외치는 지금 놓치고 살아가는것도 많을것 같다 더 폭 넓게 생각하고 행동할수 잇었을텐데..빨리로 인해서 경솔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서 손해보는것도 많지 않을까?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서 한번더 신중히 생각하고 행동해 봄이 어떨까 존 그는 우리에게 느린것을 배척할것이 아니라 느린것에서 무엇을 배워야할지를 다시한번 생각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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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프랭클린'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이 세상은 정말이지 냉혹한 곳이라고 결론 내려본다. 한가지 분야에서 최고가 아니면 그저 잘하는 전문가 정도로만 생각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더군다나 성공을 통하여 이름을 드높인 훌륭한 리더들 틈속에서 성공도 하지못했던 존 프랭클린의 경우는 더더욱 생소하게 느껴지는것이 당연하지 않았을까 한다. "거기서 프랭클린이 어쨌기에?"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포기란 걸 모르는 사람입니다." -(P152~153) 우선 '느림의 발견'을 읽는 내내 존 프랭클린의 느림을 염두하며 애써가며 철저하게 프랭클린이 되기 위하여 몰두하며 상황에 집착하다 한참동안 눈길이 머물렀던 구절이다. 여러번 되풀이 해서 읽고, 그것도 모자라 붉은 줄로 진하게 표시를 해 놓았다. 조금만 힘이 들어도 온갖 핑계를 들먹이며 쉽사리 포기를 해버리고 마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항상 왜들 저렇게 나약하고 끈기가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물론 나 자신도 그렇게까지 끈기가 있는 편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목표를 향한 변화의 패러다임에 과감히 뛰어들어 꿈을 이루기 위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느림의 발견"이란 책을 통하여 또, 그 주인공인 '존 프랭클린'을 통하여 현재까지의 나의 모습을 되돌려 볼 수 있었던 훌륭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어렵고 힘이 들더라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과 함께 목표와 꿈을 달성 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면 결코 포기를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 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그저 예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소설로 각색하여 즐거움이나 몰랐던 사실에 대하여 알게 해주기 위한 내용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저자가 '존 프랭클린'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세지가 과연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인정 받을 수 있는 현재의 시대상이 조금은 못마땅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쉴새없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의 패러다임에 동승하거나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빠른 결정이나 결단등도 무엇보다 필요하고 더군다나 '만만디' 라고 느림의 극치였던 중국인들 까지도 요즘엔 '콰이콰이' 라며 급하게 서두르는 시대에서 결코 느림만이 미학은 아닌것도 사실이기도 한것 같아 조금은 씁쓸한 기분마져 들기도 한다. 느림은 결코 나쁜것이 아니다. 단지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느림의 극치를 보여 주었던 '존 프랭클린'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의 분야의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항해술은 물론 이겠거니와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무장하고 목표와 꿈을 향한여 보여준 끊임없는 열정과 사람들을 대하는 대인관계 및 리더십등이 비록 꿈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많은 사람들로의 기억속에 자리잡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요즘 전 세계가 많이 힘든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 일수록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것저것 빨리빨리 수박 겉핡기 처럼 많은 지식을 습득하려 두문불출 하지 말고 한가지 분야에서 정통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기 위한 지혜를 쌓았으면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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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존 플랭클린"이라는 이름을 검색하여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적다.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이지만 가장 많이 북극 탐험을 했으면서도 북서항로는 발견하지 못한 "실패한 탐험가"로 알려져 있다. 결국 최초의 북서항로 발견...이라는 타이틀은 52년 후 로알 아문센에게 돌아간다.
세계 역사에 남겨지는 이름(일반인들이 기억하는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은 무언가를 처음 발견하거나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것이다. 분명 그 사람들이 이룩한 결과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실패가 있을텐데, 우리는 그것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여기, 장애로 보일만큼 모든 일에 서투르고 느린 아이가 있다. 그를 가르친 선생님의 표현에 따르면 아래와 같다.
"학생 F.가 느린 이유는 눈에 띈 것을 아주 오래 관찰하기 때문이다. 한번 포착하면 철저하게 탐구하기 위해 상 자체를 정지시킨다. 뒤따라오는 상들은 지나친다. 학생 F.는 완벽성을 위해 세부(細部)를 희생시킨다. 세부를 보자면 머리 전체를 사용해야 하며 다음 세부가 다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 (2권 69p)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굼뜨고 서투른 이유는 눈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눈 앞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을 제대로 쫒아갈 수가 없고 온전히 이해한 후 행동하기 때문에 느리며, 서두르다보면 제대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서투른 것이다.
하지만 존 플랭클린은 자신이 "느리다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면 자신의 이런 단점(남들이 생각할 때)을 장점(좀 더 효율적으로)으로 바꿀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하며 바꾸어 나간다.
민첩하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배" 안에서도 그는 그만의 노력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 진지함, 성실성으로 여러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빠르게 행동해야 하는 순간에 대해서는 미리 준비하고 대비한다. 이런 과정들이 얼마나 감동적으로 다가오는지....
그는 명성보다는 명예를 중요시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라면 오랜 시간 남들에게 멍청하게 보이더라도 상관하지 않았다."...(1권 238p) 느리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그는 기억하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런 결과로 탄생한 그만의 <프랭클린 시스템>. 빠른 판단을 요구하는 윗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만의 느림에 맞는 "신뢰의 대가로 충성을 다 한다."는 시스템을 만들고 배에서, 그리고 총독을 맞게 된 반 디멘즈 랜드(오스트레일리아 남쪽)에서 실행에 옮기게 된다. 하지만 이 시스템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그를 믿고 따르는 정직한 인간으로서의 실무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총독 임무는 실패하게 된다.
그의 마지막 위대한 항로에서 그는 끝내 북서항로를 발견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기록들과 지도, 항해술 등은 분명 그 후의 탐험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위대한 실패가 있었기에 위대한 발견도 있는 것이리라.
이 책을 읽는동안 난 전기소설의 함정에 빠져있었다. 이 모든 내용들이 사실일 것이라는 함정. 하지만, 분명 이 책은 "소설"이다. 작가의 말을 읽고나서야 상당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 속 플랭클린의 삶 속에는 바로 작가의 삶(영화와 학교에 대한)과 생각(느림에 대한)이 많이 녹아있다는 사실.
작가 스텐 나돌리는 아주 오랫동안 존 프랭클린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왔다. 따라서 이 책은 작가 본인의 노력의 산실이다. 제목 <<느림의 발견>>은 아주 천천히 존 프랭클린의 인생을 더듬어왔던 작가의 발견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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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기에 더 많은 것을 발견했던 존 프랭클린...
두번의 북극탐험이 실패로 돌아가고 마지막 탐험에서 죽음을 맞이한 존 프랭클린, 그의 편지와 기록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빚은 또 하나의 인간 존 프랭클린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실패를 거듭한 그가 실패를 한 후에 더 유명해진 프랭클린은 소설 처음 시작부터 이야기 하듯 열살까지 공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는 어찌보면 바보 같은 소년이었다. 그런 그가 어찌하여 북극탐험까지 했을까, 우리처럼 '빨리빨리'에 익숙한 시대에 살았다면 그의 느림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을 하며 책을 들게 되었다.
나 또한 내 성격은 급할기도 하고 다혈질이라 할 수 있어 느리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큰딸과 항상 부딪히며 말썽을 빚기도 한다. 조급함이 없는 딸은 항상 느긋하기에 늘 내 표적이 되곤 한다. 그런 딸과는 시험때라면 더욱 마찰을 빚어 집안에 큰소리가 떠나지 않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딸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고 <느림>에 대하여 좀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성경이나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연구하듯 이제 그는 '속도'를 연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 자신보다 빠른 사람들을 추월할 날이 올 것이다.....21p
그는 열살까지 공도 제대로 잡지 못하였기에 <속도>에 대하여 배우려 한다. 그런 그는 배를 타고 바다고 나가고 싶어 집을 나가기도 하는데 아버지에게 붙잡혀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 그가 해군학교에 들어가고 배를 타면서 느림은 자신의 단점이었는데 장점이 되고 만다. 남보다 <신중, 인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빠르다는 다른 동료를 보아도 전쟁에서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안 그는 자신의 장점을 잘 발전시켜 항해에서 자신감을 갖는다.
'미스터 프랭클린은 눈이 밝아. 명령을 듣지 않고도 많은 명령을 눈으로 보지. 두꺼운 벽을 꿰뚫고서 말이야.' 149p
일상 생활보다는 바다에서 자신의 장점이 더 적용이 될 수 있어 해군생활이 끝나고 일상에 적응해 보려던 그는 다시 바다로 나가게 된다.첫번째 북극탐험을 떠나게 되지만 식량이며 그외 장비들이 덜 구비된 상태이고 행운의 여신이 그의 편이 되지 못하였는지 많은 동료들을 잃고 겨우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이 실패담은 큰 화제가 되어 그를 평가하는 기준처럼 되었다. 그런 기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첫번째 결혼에서 딸 엘라를 얻었지만 엘리나의 죽음으로 인하여 다시 그에 맞는 상대라 할 수 있는 제인 그리핀과 재혼을 하여 호주 태즈메니아의 총독으로 가게 되지만 전총독과는 다르게 인간적이고 인격적으로 수감자들을 다루었던 그, 하지만 모함으로 인하여 다시 총독의 길에서 벗어나 그가 가야 할 길은 북극탐험이란 것을 깨달은 그는 동료들을 모집하여 다시 북극탐험에 나선다. 처음 실패를 발판으로 삼아 더 많은 식량과 장비를 구비하고 탐험길에 나서는 그에게 또 다른 복병처럼 나선 난관에 부딪혀 그는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가 느리다고 했지만 실은 사물을 더 깊이있게 관찰하고 사고하고 인내하고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그만의 방법이었던 듯 싶다. 빠르다고 하여 모두가 좋다는 것보다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 는 것을 말해주듯 그는 그의 속도에 맡게 인생을 재발견 한 듯 하다. 그가 느리지 않았다면 자신만의 영역에서 훌륭한 항해사가 될 수 있었을까. 남보다 더 도전정신이 뛰어나고 자신의 위치에서 남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했던 존 프랭클린, 스피드시대에 작가는 느림의 사상가인 프랭클린의 삶을 재조명하며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요즘은 빠른 것을 벗어나 먹거리외 많은 것들이 <느림>으로 돌아가고 있다. 빠르다고 결코 좋을 수만 없다는 것을 자신의 삶에 열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작가가 소설속에 던져 놓은 묵직함에서 찾아내 본다.
아는 것하고 보는 것은 전혀 달라, 잘 안다는 것과 잘 보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무엇이 존재하는지 단정 짓는 건 더 나빠.화가는 잘 봐야 하는 사람이지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155(1권)
저는 정확성이 예감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요...179(1권)
내가 시계처럼 늦게 간다면 완전히 멎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남들보다 더 오래 걸릴 거야. 그렇다면 난 갓 스물일지도 몰라..47(2권)
지난 세월 나는 내가 현명해질 때까지는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멍청하게 보일 때까지는 아무리 시간이 걸린다 해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네. 멍청하게 보일지라도 말이지. 나를 믿게나.. 91(2권)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지요. 빨리 오는 건 다시 빨리 사라집니다. 마차에 앉아 창문을 볼 때처럼 아무것도, 아무도 남는 건 없습니다. 제가 아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110(2권)
나쁜 사람이란 자기한테 맞는 속도를 모르는 사람이란다. 빨라야 할 때 느리고 느려야 할 땐 너무 빠른 거지. 222(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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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슴 먹먹해 지는 책이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에서 나온 느낌이지만, 삶이란것 , 나 자신에 대한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본 책이었죠..
이 책은 존 프랭클린 이라는 북극 탐험가에 대한 전기소설 입니다. 남보다 세상을 천천히 보고, 그렇지만 타고난 끈기와 깊이 생각하는 통찰,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을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사실 전기 소설이기 때문에 , 줄거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일생이야.. 무언가를 겪고, 좌절하고, 극복하고, 그리고 이뤄내는 파노라마 같은 역정이 펼쳐지는것이 작던 크던 , 그것이 인생인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것은 그것을 어떻게 겪고, 무엇을 느끼고,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살아갔는가, 그 속살이 중요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에서는 이 점에서 특히나 주인고의 생각에 대해서 자세하게 그려 나갑니다. 그의 감정이 고스란이 전해 오는 느낌이 오기도 하더군요.
주인공 존 프랭클린은 남도다 조금 , 아니 많이 느립니다. 너무 느려서 어려서 많은 놀림을 받았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해서 주위로 부터 그리 큰 기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제 입에 풀칠이나 하면 다행이겠다....가 그에 대한 기대의 전부 였죠 . 하지만 그는 꿈이 있었습니다. 바다에 나가서 선원이 되는것, 행동이 느리고 생각이 느린 사람, 그래서 남들로 부터 놀림감이 되는 사람이 어떻게 선원이 되고, 항해사가 될까 ,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고, 혹 마음 착한 사람을 만나면 다행히도 동정의 눈길을 받을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인공 존 프랭클린은 그 꿈을 이루었고, 더 나아가 북극을 탐험하기에 이릅니다..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그리고 탐험이라는 신세계를 찾아 떠나는 모험에 이르기까지 그를 이끈것은 바로 그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과 천천히 느리지만 그만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나가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받아 들일때까지 기다리는 끈기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많은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무엇이 삶을 이끌었던것일까.. 그리고 나의 삶은 ? 에 대한 물음표 하나.
책은 주인공의 시점을 반영하여 쓰여져, 간간히 상황설명이 자세하지 않을때도 있습니다. 바로 그가 느리기 때문에 한번에 파악하는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생각하는 절절한 감정들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이 이 책을 쓴 작가에게 큰 영광을 가져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진실되게 살아가는 삶이 펼쳐 집니다.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이책을 상처를 주는 소설 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갈것도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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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고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으며 어제의 새로움은 오늘의 익숙함으로 변해버린지 오래다. 빨리빨리가 입에 붙어 외국인들조차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한국인의 문화가 전후 50년만에 한국을 세계속에 우뚝(^^) 서게 만든 원동력이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급하다는 말보다는 성실하고 노력하는 모습이라는 뜻이라 생각했던 빨리빨리보다는 천천히 하나하나 차근히라는 단어가 더 좋아지는 것을 보니 이제는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문화가 바뀌진 않겠지만 말이다.
느림의 발견은 북극탐험가 존 프랭클린이 모델이 된 소설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주변의 속도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스스로의 성공을 만들어간 그의 인생속에서 느림이라는 것이 항상 실패만은 가져오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느리지만 그러기에 더 꼼꼼하고 관찰력있고 성실할 수 있었고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으며 자신의 꿈를 향해 한발씩 나아갈 수 있었던 삶을 묘사함으로서 우리에게는 두번의 북극탐험을 실패하고 결국 목숨까지 잃어 비운의 탐험가로서 알려져 있는 존 프랭클린의 내면을 들여다 볼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독일 최고의 문학상 잉게보르크 바하만 상 수상! 이탈리아 최고의 외국 문학상 '프레미오 발롬브로사 상 수상! 무슨무슨상을 수상했다면 관심이 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읽고 나면 어려웠다가 나의 생각이다. 아카데미작품상을 받은 작품들이 마치 흥행에는 큰 재미를 못보듯 문학적으로는 대단한 평가를 받지만 흥미나 재미로서는 별로다 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쉽게 빠져들지 못한다. 나도 성격하면 무지 급하고 빠른 편이라 모든것에 꿈뜨다는 말로 표현될만큼 느린 존의 답답함이 내게까지 전해져 책장 넘어감이 쉽지 않은가 보다. 어쩌면 작가가 원한 것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말초신경을 자극하듯 순식간에 읽어버리는 책과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을 프랑클랜의 삶을 조명하면서 느릿한 속도로 해보길 바라는 마음.
어쨌든 한 인간의 긴 인생을 함께 하는 것은 감동이다. 나와는 다른 삶속에서 나와는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때론 공감하기도 하고 때론 화를 내기도 하며 때론 슬퍼지기도 한다. 뭐 그렇다고 느림의 발견이 100% 존 프랭클린의 자서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모습에서 어른의 모습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느리다 놀림받고 비난받았던 한 사람이 평범하지 않게 변해가고 느리지만 대범함과 따뜻함과 결단력있는 행동을 통해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가며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샌가 나도 그의 발소리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을 감고 크게 숨을 쉬어본다. 힘든 시간이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현실속에서 나는 매일 뒤쳐지고 있다. 따라가려고 노력해도 항상 그자리인 듯하고 그래서 더 바쁜 걸음을 재촉하곤 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닐까. 빠른것이 있다면 느린것도 있는것 말이다. 프랭클린이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달진 못했지만 그가 선원이 되었고 탐험가가 되었으며 비록 혹한의 북극에서 괴혈병으로 살기 위해 걷다 죽었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꿈을 이루었다는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그 느렸던 아이가 기다림과 기다림을 통해 아름다움을 이룬 것이다. 프랭클린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느림의 미학을 깨닫는다. 물론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