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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1권이 가진 소설의 힘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이야기가 풀려나가고 거기에 몇 가지 장점이 더해진다. 그 얘기에 앞서 1부 리뷰에서는 소개하지 못했던 이 소설의 특장점을 몇 가지 더 짚어 볼 생각이다. [대부]라는 영화 얘기로 시작해보자. 유사점이 많으니까. 사실 내가 대부라는 영화를 처음봤을 때는 그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고전 갱스터 무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다시 대부를 접했을 때, 이 영화가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지를 알게 됐다. 위대한 이유가 일억팔천만가지도 넘지만 이건 대부의 리뷰가 아니므로 이 소설에 관계된 두 가지 사항만을 연결지어 말해보려 한다. 먼저, 대부의 수많은 매력중에는 세련된 표현이 포함된다. 가령 대부에게 장의업자가 자신의 청을 할 때 대부가 내뱉는 대사 같은 것이 그렇다. We`ve known each other many years, but this is the first time you came to me for counsel for help. I can`t remember the last time that you invited me to your house for a cup of coffee 개떡같이 직역하자면 "나는 자네와 오랜시간을 알고 지냈지. 그러나 네게 도움을 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네. 그런데 '나는 자네가 나를 초대해서 커피 한 잔을 대접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네.' 대부의 이런 표현 방법에 소위 나는 뻑이 갔는데, 이후에도 이런 식이 멋진 표현은 수도 없이 등장한다. 톰 헤이건의 대사에도 이런 표현이 몹시 많고.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표현법을 굉장히 세련됐다고 여기는 편이다. 물론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다. 저런 식의 표현으로 담화를 구사해야 할 자리에서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 능력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 소설도 그렇다. 곳곳에 세련된 표현의 문장이 한 둘이 아니다. 이를테면 "적극적으로 격려해주지는 않아도 최소한 이 도시의 부유한 권력자들에게 '우리의 노력이 참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신호를 보낸다면...." 그렇다. 나는 세련된 표현방식을 굉장히 선호한다. 나에 대해 단면만 아는 지인은 내 이런 얘기에 반문할 수도 있겠다. "넌 돌려 말하는 거 싫어하잖아!"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건 돌려말하거나, 어렵게 말할 필요가 없는 자리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걸 싫어하는 것이다. 놀자고 모인 친목의 자리에서 어렵게 말하는 건 스키장에 양복을 입고 들어가는 행위라고 믿는 편이다. 저런 식의 표현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에서는 세련되고 완곡한 어법을 사용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또한 세련된 어법이라 해서 결코 어렵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쉽게 이해할 수 있으나 그 표현 방법이 격이 있다는 점에서만 차이를 둘 뿐이다. 상기에 예를 든 문장 중에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다. 아주 기본적인 낱말의 조합으로 매우 세련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화자가 자신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완벽하게 이해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이해도 못한 사람이 세련된 표현을 할수는 없으며, 능력은 안되면서 흉내만 내고자 하는 이들이 온갖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서 소위'젠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같은 표현중에도 어려운 단어를 선택해서 구사하는 이들을 무시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점에 있어 이 작품은 매우 세련됐고 지적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있다.
두 번째로 대부는 표면에 흐르는 줄거리 뒷면에 엄청난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몇 세기가 지난다 해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췄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줄거리 이면에 숨겨진 내용 역시 간단한 메시지이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소설도 그렇다. 1권에서는 다소 심리적인 분분에 치중했다고 보면 2권에서는 드디어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정체를 드러낸다. 바로 사회성이다. 영화 대부의 대사와 비교해보자. 극중 알파치노가 이탈리아로 피신했다가 다시 돌아와 그의 연인 케이와 재현하는 장면에서 케이가 하는 대사이다. 케이는 알파치노가 자신의 아버지는 대통령이나 의원이 하는 일들과 다름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데 이때 케이가 말한다. "You know? how naive you sound" 그 얘기 굉장히 순진한 얘기처럼 들리는 거 알아요? "Why?" 왜? "Senator or president, don`t have men killed" 의원이나 대통령은 사람을 죽이지 않아요. "Oh, Who`s being naive, kay" 오, 이런. 누가 더 순진한 건지 모르겠네, 케이. 이 소설에도 이런 질문을 던진다. "시간이 나면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해보게.....이 도시의 소년들에게 가장 위험한 사람이 실제로 누군가 하는 걸 말이야."
시대적 배경과 장소배경 그리고 저자들이 하고자 하는 바가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갖췄다. 만약 이 작품이 영화와 되고 코폴라 감독이 메가폰을 쥔다면 대부 이상은 힘들겠지만 그에 필적한 만한 작품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소설 자체의 완성도가 매우 높다. 대부에서 배우들의 명연기가 그랬듯이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 역시 매우 훌륭하고 서스펜스 스릴러가 갖추어야할 반전에 반전에 반전도 훌륭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범인을 추적하고 반전으로 독자를 속이는 임무 외에 1권 리뷰에서 말한 바와 이 리뷰에서 말하는 바의 장점이 훨씬 더 크다. 즉, 단지 서스펜스 소설의 재미만으로 평가하기에 매우 아쉬운 작품이라는 얘기이다.
'범죄자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라는 심리학적 결정론을 인용한 역자의 말처럼 저자가 하고싶은 얘기의 포인트는 바로 이 문장 하나에 함축돼 있다. 1권에 이어 2권까지 마치고 나니 굉장히 지적인 서스펜스 소설이라는 확신이 배가된 것을 느낄 수 있고 2권의 재미는 1권의 두 배가 넘는다.
1권 리뷰에서 말했듯, 이 소설은 빠르게 읽어나가야 할 범죄 스릴러 소설로 국한 시켜서는 안될 것 같다. 각 문장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곱씹으며 음미할수록 맛이 우러나는 작품류에 속하며 그렇기 때문에 주저 없이 걸작이라 부르게 된다. 보기 드물게 매우 휼륭한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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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로키언으로 유명한 칼렙 카의 데뷔작이자 그의 대표작~
(셜록 홈즈의 열성 팬을 셜러키언이라 한다)
오래전에 <정신과 의사>라는 제목으로 나왔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재간 되었다.(이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이것 저것 다 빼면 기본적으론 연쇄 살인물이다. 게다가 피해자는
"어린 소년들" 잔인함의 강도도 꽤나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것 저것이 보통 수준의 이것 저것이 아니다.
사실 이것 저것이라 표현하기엔 미안할 정도의 이것 저것이다.
무대는 1896년 뉴욕~ 어린 소년이 잔혹한 시체로 발견되는 것으로
책은 시작된다. 뒤이어 또 다른 소년의 시체, 그런데
이 시대의 경찰들은 사건 해결에 별 관심이 없다. 아니~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관심을 안 갖는거다.
그 와중에 경찰 청장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미 대통령이었던 그 루스벨트)와
그의 절친한 두 명의 친구가 사건 해결을 위해 아무도 모르게
(심지어 같은 경찰도) 새로운 팀을 결성한다.
너무 암울하고 부패가 판을 치는 시대인 탓에 어쩔수 없는 선택이고
속을 들여다 보면 당시에는 검증되지 않은 수사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종의 실험인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코난 도일경의 홈즈가 절로 머리속에 오버랩 되는것을
느꼈다. 물론 홈즈와는 내용상 닮은 점은 없다.
뭐랄까~ 그 분위기랄까, 홈즈가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인정을 받는것은 작품의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당시의 런던거리나 시대상, 사람들의 모습,
심지어 기후까지도 재현해 놓은 너무나 자세하고
충실한 고증에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작가가 마치 그 시대를 실제로 살고 있으면서 책을
집필한듯한 생각까지 든다.(참고로 작가는 1955년생이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도 받을수 있을것이다.
스크린에 1890년대 뉴욕의 현실적인 모습이 보여지면서
자막으로 책의 내용이 흘러간다. 책의 내용대로 화면이 바뀐다.
책 속의 인물들이 머릿속이 아니라 눈앞에 떠오르기도 한다.
그만큼 시대적 고증이며 인물들의 묘사, 거리의 풍경, 관습들을 세세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이 책은 엄연히 픽션이다. 논픽션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시대에 실존했던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팩션 같은)
앞서 언급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제이콥 리스, 토마스 플랫, 폴 캘리,
비프 엘리슨, 토마스 번즈, 잭 더 리퍼, 등등...
그래서인지 팩션의 느낌도 강하게 느껴진다. 물론 위의 인물들의
실제 모습은 아니겠지만 그런 생각이 절로 들게끔 한다.
팩션 소설의 장점인 역사성과 오락성에 전형적인 범죄 소설의 긴장감과
스릴 넘치는 재미까지~ (수준까지 높다)
개인적으론 프로파일링 기법의 시작과 어떤 방식으로 실제 수사 현장에
도입됐는지 (지문도 증거 인정이 안되던 시대다)
사이코패스의 정의에 대한 지식적인 설명, 정신 분열증과 같은 정신에
관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왔다. (동정은 절대 금물)
범죄물에 대해 글을 쓸때는 늘 조심스럽다. 내용을 언급하다 보면
어느새 선을 넘고 만다. (표시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많이 무서버~ 무척 잔인해~ 아이~ 징그러워~ 범인 나빠~
이렇게 쓸 수는 없다...
템포가 빠르고 치고 박는 액션이 나오며 엄청난 반전이 나와야
재밌게 읽는 사람들은 이 책 쳐다보지도 마라~ (훠이~)
두 권짜리다.(조금 불만이다) 무대도 현대가 아니다. 온갖 전문지식과
사회적인 문제점까지 나온다.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한 범죄 소설과는 그 품격마저 다르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생각할 거리도 많았다.
차분히 읽을 수 있고 느린거 같은데 절대 느리지 않고 지적인 면까지
느낄 수 있는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런 류의 범죄와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에게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가 없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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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사이드에 드리운 악한의 그림자
나에겐 어린 조카가 한 명 있다. 너무 어리기에 한없이 주는 애정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지만 이따금씩 칭얼거림으로써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방해하거나 식사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경우 나도 모르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 아이를 바라볼 때가 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부당한 대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누려야 할 여유와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그 녀석에게 약간 약이 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낌없는 온정과 사랑으로 그 아일 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엄마를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다, 적정한 때가 될 때까지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야할 권리가 있는 바로 그 아이를 위해서이다.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에는 자신이 가진 이름보다 범인이나 살인범 더러는 미친놈으로 불리는 게 자연스러운 한 남자가 나온다. 불행하게도 그는 그가 아이인 시절에 앞서 내가 언급한 사랑과 보살핌의 절대적인 결핍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탄생조차도 축복받지 못했으며 가족이나 그 어떤 이웃으로부터 아이로서 누려야할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불행한 탄생에 약간의 장애가 더해져 온갖 비난과 멸시, 끔찍한 혐오와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아이는 자신이 평소에 즐기던 놀이를 하던 중 친했던 누군가로부터 또 다른 형식의 폭력까지 당하면서 이른 나이에 세상의 모든 악행을 죄다 경험하는 상황에 이른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던 그 아이가 바르게 성장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아주 자명하다.
소설은 1896년 고도의 성장과 거기에 발맞춰 고도로 타락해가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정말이지 당시의 뉴욕의 모습을 처절하리만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그것도 극과 극의 대비를 통해 당시의 풍경을 그림처럼 생생히 느끼게 해준다. 화려한 건물 속에 안락한 삶을 사는 사람들과 거리의 부랑아로 혹은 퇴폐업소의 손님으로 살아가는 그네들의 모습 속에서 당시 뉴욕의 극명한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대도시 안에서 거친 삶을 사는 이들의 대부분은 일거리를 찾아 흘러들어온 이민자들이었다. 당시 노동이민자들의 삶이 다 그렇듯 낮은 임금과 중노동, 불결한 환경이 그들과 함께 했고, 때때로 찾아오는 생존의 위협마저 그들 스스로가 강담해야 했다. 부패한 경찰과 그들의 푼돈을 노리는 다양한 무리들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환경에 있는 거대도시 뉴욕에서 끔찍하게 살해된 아이들의 시체가 연이어 발견된다. 대다수 경찰들은 무법자 천지가 돼버린 뉴욕에서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라 여기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하는 수 없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다른 이들이 나서게 된다. 현직 정신과의사와 기자, 신참 형사들로 구성된 우리의 '수사팀'은 경찰을 대신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잔인하고 몰상식한 사건인 만큼 정신과의사인 크라이즐러의 뜻에 따라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 과거행적을 캐내기로 하고 숱한 저항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범인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간다. 하지만 범인의 실체와 살해동기를 알아내는 일에 다가갈수록 모종의 위협은 점점 커져가고 결국 수사팀을 돕던 이들의 희생을 초래하는 일이 발생한다. 진실을 향한 그들의 모험을 방해하는 이들은 누구며 과연 수사팀은 범인의 살해동기를 알아낼 수 있을까?
소설은 사건의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골몰하고 단서를 모으는 수사팀의 행적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살해된 아이들의 모습에서 살해현장에 남은 작은 흔적에 이르기까지 수사팀은 얻은 정보를 샅샅이 분석한 뒤 범인의 정신상태와 살해동기에 관해 추리해본다. 하지만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는 건 크라이즐러가 가지고 있던 굳건한 편견을 깨면서부터다. 여경 새러의 줄기찬 외침과 반발에 크라이즐러가 뜻을 굽히고 다른 멤버들이 동조하는 가운데 사건을 급속도로 해결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한 인간의 행동이 빚어낸 결과에 대해서 그 이유가 어린 시절의 경험에 있다는 사실을 주시한 채 범인을 '역추적'했던 그들의 노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긋나게 채워진 단추는 어긋난 그 시점부터 바로잡아야 하듯이 범인의 과거를 알고자 했던 그들의 생각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