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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글 쓰는 일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을 한번 이상은 품었을 것이다. 요즘같이 자기 표현이 중요한 시대, 누구든 쉽게 글을 쓰고 그것을 블로그건, 자비출판이건 매체화하여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는 사회에서 글을 잘 쓴다는 것에 대한 욕심은 과거의 그것에 비할 바도 아니지 싶다. 그런데, 누구나 그런 욕심을 품고는 있지만, 그 누구도 글을 더 잘 쓰게되는 방법에 대해서 뚜렷한 가르침이나 해법을 얻는 경우는 극히 드믄것 같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글을 잘 쓴다는 것의 정의에서부터, 글을 잘 쓰게되는 방법론에까지.. 마치 개개인에게 어울리는 의복의 스타일이 다 다르 듯, 모두가 다 개별적이고 고유한 과정을 격어야 하는 소위 '과정의 불일치성(Inconsistency of Process)' 때문이 아닐까.
글쓰는 기술도 어쩌면 젓가락질이나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시적 지식(Explicit Knowledge)'이라기보다는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에 가까운 것일런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일단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바를 일목요연한 문장으로 타인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옮기는 과정이지만, 잘 쓴 글을 위해서는 두가지 별개의 프로세스가 각각 양호한 성과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무엇을 쓸 것인가를 떠올려 대강의 논리전개를 만들어가는 두뇌활동이며, 둘째는 이를 논리정연한 문장으로 옮겨 객관화를 시키는 과정이다. 이를테면 머릿 속에 막연하게 떠오르는 느낌(이것은 아무래도 우뇌의 활동영역이 아닐까..?)에 맞는 적절한 표현(이것은 합리적인 체계 하에 성립된 좌뇌의 활동일 듯)을 찾아, 저자의 머리 속에 있는 막연한 생각의 덩어리를 읽는 이의 머릿 속에서 같은 느낌과 모양을 가진 무엇으로 최소한의 왜곡과 손실로 재구성해내기 까지의 의도된 일련의 과정인 셈.
이는 라디오와 비슷하다. 내가 좋아하는 베토벤의 심포니 No.6 「전원교향곡」 5악장 'Allegretto'를 어느 클래식 FM 방속국에서 틀었다고 하면, 이는 그 소리가 그대로 라디오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 원음은 중간에 변조(變調, Modulation)라는 단계를 거쳐 고주파(전파)로 변환된다. 그리고 고주파로 변환된 이 전원교약곡 5악장은 허공을 날아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간다. 그걸 라디오가 수신, 다시 복조(復調, Demodulation)이라는 과정을 거쳐 원래의 음원을 추출해 스피커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복잡한 과정 속에서 음질이 손상될 수 있음은 물론, 라디오의 상태나 위치에 따라 치지직- 같은 잡음이 끼어들기도 하고, 음가가 다소 떨어지거나, 에코(Echo)가 생기는 등의 변형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글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기 전의 생각을 방송국의 원음에, 글을 변조를 거친 전파에, 그리고 독자의 머릿속에서 글을 읽으며 재구성되는 이미지나 느낌을 라디오에 의해 복조된 음원에 각각 대비시키면 결국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떤이의 생각이 다른 이에게 글을 통해(말도 마찬가지) 온전히 전달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전파의 종류나, 라디오의 상태에 따라 음질은 많은 차이를 보일 수 있는 것. 그러니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결국 변조과정에서 왜곡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이는 다시 말해 글 쓰는 이의 책임이 성능이 좋지 않은 라디오에서도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도록 하는데까지는 미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글을 읽지 않는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까지를 의식한 글쓰기는 '무가치하며 한심한 일'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면 어떻게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저자의 대답은 많은 이들의 염원에도 불구, 다소 공허하게 들린다. 저자는 '강하게 밀어붙이라, 모든 것을 열심히, 가차 없이 조사하라. 모든 대상을 조사하고 파헤쳐라. 마치 다 이해한 것처럼 그것을 내버려두고 지나치지 말라. 대신 자체의 특수성과 미스터리 속에서 대상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그것을 따라가라..'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써 버리고 뿜어내, 이용하고 버려가며 쓰라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그걸 누가 몰라..?' 라는 반문이 들 듯도 하지만, 글쓰기의 기술이 암묵적 지식에 의거한 것이라면 이는 어찌보면 별 대안이나 부연 없이도 당연한 정답이다.
누구나 글 쓰는 재주가 다 같지는 않을 것이다. 축구나 테니스 등 스포츠 등에서 확인되는 대개의 암묵적 지식이 다 그렇듯, 나름의 소질이 선천적으로 필요한 것도 사실일게다. 그러나,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매일 공을 발에서 떼어놓지 않아야하듯,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늘 글을 쓰는 법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함 역시 당연하다. 아무리 재주를 타고 났어도 연습을 게을리하면 훌륭한 선수로 거듭날 수 없 듯,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주가 없어도 부지런히 연습하면 웬만한 수준 - 이를테면 동네 조기축구팀에서 주전 스트라이커까지는 문제없 듯, 글쓰기의 달인으로 명성을 날리고 밥벌이가 보장되거나, 웬만한 글쟁이로 제법 방귀좀 뀔 수준이 되거나 등의 귀결은 일단 부단한 연습을 전제로 한 이후의 일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 깊숙이까지 와 닿은 말은 '자신이 쓴 글에 가격표를 붙이려들지 마라' 라는 표현이었다. 이 말은 내게, 대개 어떤 기발한 문장이나 하고자하는 말의 핵심을 꿰뚫는 단어 등이 떠오르면 그 문장을 끝내 붙잡고 버리지 못하는 성향이 강해, 결국 글의 전반적인 구조와 유연한 흐름을 흐트러버리고마는 나의 독특한 '아집'에 일침을 가하는 카운터 펀치같이 들렸다. 높은 산에 고생스레 올라가 찍었기에 소중한 사진, 노래가사가 길어 외우는데 특별한 노력이 필요했던 노래라고 남들에게 좋은 사진이나 노래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깨달음이나 남다른 산고를 통해 만들어진 문장이라고해서 그것이 읽는 이에게도 특별하고 감동적일거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문장 속에서 재차 강조하고기까지 했다면 그것은 타인에게 비싼 가격이 매겨진 가격표를 붙인 채 선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례한 일 일수도 있다.
읽어본다도 딱히 글 쓰는 실력이 바로 향상되거나 할 책은 결코 아니다. 아니, 글 쓰는 기술이 습관과 노력에 의해 형성되는 종류의 능력이라는데 동의한다면, 일단 그런 책을 찾는 것부터가 우스운 일이다. 축구교본을 몇 권 본다고 축구실력이 갑자기 향상될리야 없잖는가. 그러나, 이 책은 보통 무심코 간과하는 더 중요한 (보석같은) 진실 몇 가지를 알려준다. 글을 쓴다는 것, 특히 남에게 읽히기 위한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가 아닌 타인의 가치를 변수로 한 함수를 푸는 과정이다, 그래서 삶을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짜 싸움을 할 각오를 해야 하고, 아끼지 말고 순간순간 모든 것을 짜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이 또 샘물처럼 솟아나고, 그 샘물을 마시며 우리는 숨을 고르고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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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글에서 읽었는데, 마돈나의 현관 문 앞에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이 걸려 있다고 한다. 마돈나가 가이 리치와 결혼하기 전 이야기겠지만. 프리다 칼로의 그림 내용은 여자가 스스로 아이를 받아내는 그림이라고 한다. 마돈나는 그 그림을 손님들에게 보여 주고, 그 그림에 대한 호감 여부로 자신의 집 출입 여부를 결정했다고 한다.
애니 딜러드의 [창조적 글쓰기]를 펼쳐서 처음 만나는 문장은, 랠프 월도 에머슨의 '매일 매일이 천국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다. 두 번째 문장은 '서두르지도, 쉬지도 말라.'라는 괴테의 말이었다. 첫 느낌이 좋았다. 저자와 통한다는 느낌!
책의 내용은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경험이다. 글쓰기의 시작은 단어를 펼쳐 놓는 것이고, 한문장을 끝내고 나면 그 문장이 다음 문장을 인도해준다고 한다. 글이 계속 써지지 않을 때는 그 글 속에 미처 살펴보지 못한 잘못된 전제가 숨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잘못된 부분을 찾아서 인정할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책은 글쓰기의 미학, 상상력의 에너지, 몰입과 비전, 경계를 넘는 열정, 무한함의 가장자리, 창조성의 탄생 총 6장으로 되어있다.
책은 변주곡 같았다. [매일 부지런히 쓰고 또 써라. 글이 막히면 아까와 하지 말고 글을 잘라내고 에너지를 충전시킨 후 또 써라.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을 때 까지 써라] 는 메시지를 되풀이하여 들려주었다. 때로는 자벌레가 그 메신저이기도 하고, 여섯살 짜리 꼬마 브라이언이 저자의 '그림'을 이해해 줌으로서 앞으로 나아갈 기운을 얻기도 하며, '데이브 람'이라는 곡예 비행사가 영감을 주기도 한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저자 자의식이 흥미로웠다. 책의 80쪽에 있는 [사회는 울타리 너머 저 높은 곳에 작가를 위치 시켜 놓고 작가에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였다. 뛰어난 화가, 음악가, 물리학자..가 사회의 높은 곳에 자신의 위치를 잡을까? 작가가 만났던 이웃 여객선 승무원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친절하게 이웃의 직업까지 밝혀 주었다!) 저자에게 부족한 것은 겸손함,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부족한 것은 저자를 인간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이 한 문장이 이토록 '별로'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내 안에 분명 글쓰는 사람에 대한 열등감이 존재하는 것이다!)
번역이 조금만 더 매끄러웠더라면 모르는 상대와 두었던 체스 에피소드, 커피를 태우지 않기 위해 빨래집게를 손에 집고 글을 썼던 일 등을 더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여러번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 얇지만 단단한 책이었다. 바짝 말린 미역같다고 할까? 내 안에서 불리면 몇조각으로 한 그릇을 만들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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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비 창조적인 글쓰기도 있단 말이야?-
책 제목을 보자마자 피식, 웃으며 든 생각입니다. 모든 글쓰기는 최소한의 창조성을 바탕하는게 아닌가요. 창조성이 없다면 글쓰기,라기 보다 그냥 기술적인 의미의 타이핑이겠지요. 글쓰기는 적어도 생각쓰기요, 어떻게 하면 글을 좀 잘 써볼까.라는 생각에 갇혀 사는 저로썬 그저 처음엔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들려주는- 이라는 상업성 문구에 낚였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분명한것은, 처음 두번 세번마다 읽는 느낌이 다릅니다.
일단 첫인상이 안 좋았던 이유는, 풀어가는 말이 너무 어렵기도 하고. 쉬운 내용을 어렵게 풀어가는 진행방식. 그리고 모든걸 깨부수라고 하면서도 정작 간혹 관념속에 갇힌 저자의 어휘들이었어요.
하지만 일정부분 머리를 강하게 치는 탄식과 끌림도 있네요.
심지어, 몇가지 문장은 제 노트에 곱게 적혀져 자주 음미되고 있습니다.
< 죽어가고 있는것처럼 글을 쓰라. 동시에 불치병 환자들로만 이루어진 청중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가정하라>
정말 와 닿더군요. 가슴에 곱게 새겼습니다.
태크니컬한 부분의 요행을 바랐다면 정말 이 책은 실망스럽겠지만, 글쓰기의 본질이 뭔가, 좋은글이란 뭔가, 그리고 전문적인 글쓰기를 잡으로 하는 분들이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였다면 꽤나 도움이 될겁니다.
느릿느릿하고 어려운 어휘에 다소 짜증이 나더라도 잘 참아보세요. 보물을 건질수도 있을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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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소리 하나. 번역서를 즐겨보지만 구태여 원작 제목과 번역본 제목을 비교하거나, 번역 자체의 질을 따질 정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나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덮는 순간 난 원제를 찾아봤다. 아무리 봐도 이 책의 제목은 '창조적 글쓰기' 로는 마뜩치 않아 보였기에. 원제는 <The Writing Life>. 구지 해석하자면 글쓰는 삶 정도일까? 번역서 제목을 다시 본다. <창조적 글쓰기>, 제목만 보면 글쓰기에 대한 방법론이 한 바탕 쏟아질 것 같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낚일 사람들을 위한 조언 하나.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방법론적 조언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고, 어떻게 하면 소설가의 특성들을 배울 수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부분은 단 한 부분도 없다. 물론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지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지 바로 보고 알 수 있는 방식이 아닌 스토리텔링으로. 즉, 해석은 읽는 자의 몫이다.
요컨대 이 책은 저자인 애니 딜러드의 글쓰기 인생론이다. 자신의 삶과 그 속에서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글쓰기의 요소들을 분석해낸다. 일화에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부분은 교묘하다. 그녀가 전하는 일상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보면 어느 새 이야기는 글쓰기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 있곤 한다.
총 6가지로 나누어 글쓰기를 조목조목 따져본다. 처음엔 글쓰기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글을 쓰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면서 속도는 중요치 않다며 대가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짚어준다. 부분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도 일깨워준다. 중요한 건 큰 그림을 보는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젠 글쓰기의 소재를 찾기 위해 일상에서 상상력을 동원하는 일화들을 소개한다.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 속은 온갖 글쓰기의 소재로 가득차있다! 글쓰기를 위해서 필요한 자세인 몰입을 이야기한다. 옹골차게 준비했지만 이야기가 끝날 때쯤은 산산히 부서지는 비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때로 글의 한 부분이 글 쓰는 자에게로 찾아온다. 저자는 그 것을 아끼지 말라한다. 아껴두면 서랍 속 모셔둔 글귀는 어느 날 재가 되어 나타날 뿐이라고. 글 쓰는 자에게 중요한 건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장에서 그녀는 이야기한다. "내 한정된 경험에 의하면 그림 그리기는 글쓰기와 달리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오감이 즐겁다. 그림을 그린 후보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더 즐거운 법이다." 라고. 그녀는 글쓰기와 달리, 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이 한 문장이 그녀가 하고 싶던 한 마디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고생스럽더라도 글쓰는 과정 그 자체가 즐겁기에 그녀도, 또 다른 글을 쓰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쓸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인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이기적인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자신의 생각을 고집스레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러니 다들 괴롭다 괴롭다 하면서도 오늘도 또 한 자 한 자 백지를 채워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책은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글쓰는 방법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오늘도 부족한 글을 쓰는 나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는 하루치 비타민이 되어주기엔 부족함이 없었던 듯하다. 기대치를 낮추고 편한 마음으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기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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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지혜'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쓰면 쓸수록 욕심나고, 읽으면 읽을수록 만족하지 못하는게 글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이만큼 써내는 것도, 이런 생각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제자리 걸음만 하게 된다. 특히 내 글에는 감정이 없다. 단순히 사실만 요약하고 있을 뿐이다. 직업적인 탓이라며 스스로 위로도 해보지만, 남들처럼 감동을 주는 글을 써보고 싶은 욕심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김훈 작가를 존경한다.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했으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하고 가슴 울리는 글을 쓰는 소설가가 되지 않았는가. 그에 비하면 나는 고작 얼마되지 않는 경력을 가지고 직업 탓을 운운하며 감정없는 글을 쓰는 자신을 변명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 욕심 탓에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글쓰기 방법을 자주 엿보곤 한다. 『창조적 글쓰기』의 작가 애니 딜러드는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작가라고 한다. 사실 나는 퓰리처상 수상작들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 게다가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녀의 작품이 한 권도 번역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글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글쓰기를 엿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 책을 읽은 한 독자는 그녀에게 "낚였다"고 했다. 그 독자의 말에 나 또한 공감한다. 솔직히 말하면, '글쓰기의 지혜' 같은 건 없다. 글쓰기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반적인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썼던 글을 몇 번씩 읽어보고 지우고, 다시 고쳐쓰는게 비단 그녀만이 겪는 시행착오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녀에게서 그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노하우를 들을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 내 이해력이 부족한 탓인지, 나는 그녀에게서 어떤 노하우도 들을 수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글쓰기의 지혜'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창작의 귀재라 불리는 토마스 만은 하루 종일 다른 일을 하면서 하루에 한 쪽씩 글을 썼다고 한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도 매일 8시간씩 글을 썼다고 한다. '글쓰기의 지혜'란 그저 열심히 쓰는 일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글 쓰는 것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매번 즉시 그것을 모두 써 버리고, 뿜어내고, 이용하고, 없애 버리라. 책의 나중 부분이나 다른 책을 위해 좋아 보이는 것을 남겨두지 말라. 나중에 더 좋은 곳을 위해 뭔가를 남겨두려는 충동은 그것을 지금 다 써먹으라는 신호이다. 나중에는 더 많은 것이, 더 좋은 것이 나타날 것이다. (p111)
2009/01/05 by 뒷북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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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글쓰기라는 제목과는 달리 솔직히 이책은 읽으면서도 은유도 아닌 ..그렇다고 비유도 아닌 참 애매모호한 느낌이 든 책이었다. 내가 이만큼 책을 읽으면서 이해력이 떨어지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으니.. 이책은 창조적 글쓰기라는 제목보다는 애니 딜러스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간명한 에세이쯤이라고 해두는게 좋겠다.
저자가 이야기하듯 글쓰기의 미학/상상력의 에너지/몰입과 비전..등의 제목으로 글을 써내려 가긴 했지만 과연 이책이 제목과 깊은 관련이 있는 책인가 싶다. 하지만 다른내용은 막막하고 어렵다 해도 마지막 부분의 창조성의 탄생에서는 나름대로 느끼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창조성과 저자가 이야기 하는 창조성에 조금은 괴리감이 있었지만 창조성의 원천은 발상의 전환에서 오는것이니 만큼 나와 다른 생각에서도 번뜩거리는 생각의 충돌이 신선했던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책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지금은 전체적인 애매모호한 느낌이 강하다고 이야기 했지만 조금 어려운 책읽수록 상황이나 시간을 달리해서 읽다보면 그 느낌의 정도가 다른데 이책도 그런 느낌의 책이다.
책을 읽으며 제목을 염두해 두고 읽지 않는것이 책을 읽기전 편견을 버리는 방법이라 나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지만 이책은 솔직히 기대를 많이 했던 터라. 제목에 의지해서 책을 읽기 시작한것 같다. 얇은 책에 애니 딜러스의 글들은 이글들이 도대체 왜 창조적 글쓰기라는 책제목의 범주안에 드는 글인지.. 하고 생각했던것이 책읽기의 잘못된 길이 아니었나 싶다. 차라리 그냥 읽었더라면 어쩌면 조금은 애매모호해도 작가의 글쓰기 예찬론에 관해서 라고 생각할수 있었을텐데.. 이책을 두번은 더 읽어 볼 생각이다. 그러면 이책이 주는 메세지를 알수 있을것 같다. 또다시 공모전등 글쓰기 잔치들이 하나둘 눈에 띈다. 글재주는 없지만 서툰 글이라도 하나둘 써보면 나도 나만의 글쓰기방법을 이야기 할수 있는 날이 올것이다. 그렇게 내 글쓰기에 대한 내공이 쌓이게 되고나서 이책을 다시 펼쳤을때 그 느낌도 참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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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글쓰기. 그건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고 갈망하는 무엇이 아닐까.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소설가 김연수의 블로그를 통해서이다.
그가 재미있게 읽었다면 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부터였다기보다는 어쨌든 내가 요즘 봉착한 작가적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 컸다.
게다가 책이 얇으니 가방에도 쏙 들어가고 어디 가서 펼쳐읽기도 좋았다. 그래서 두 번이나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속에 있는 내용이 계속 내 시선을 붙들어둘만큼 매혹적이었고 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으로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글을 써내는지에 대해서 들여다보는 일은 즐겁고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실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은 순전히 내 문제다. 비교할 필요가 없는데도 비교하며 나는 왜 저러지 못할까를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런 열등감은 나라는 인간이 아직 많이 부족하고 이름을 날린 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믿기로 했다.
어쨌든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 어디로 향해가는지를 가늠하고 상상해보고 하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역시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도.
우선 글을 쓰지 않는 이상 결과물이 없으므로 무조건 글을 써야 한다는 것과, 그 과정을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해야한다는 것, (나는 하루에 4시간씩만 자면서 글을 쓰는 일은 쉽게 할 수 있을것 같지 않다) 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자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나는 현재 편집자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이기에 글쓰기에는 치중할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편집이라는 행위조차도 창조적 글쓰기를 생각하지 않고는 잘 할 수 없다. 왜냐고? 필자가 어떤 창조적인 영감으로 그 글을 썼는지를 모른다면, 내가 어떻게 그 글을 더 아름답고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겠는가? 어떤 창작의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어찌 작가가 내놓은 작품에 대한 공경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창조적으로 산다는 것은 늘 새롭고 신선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역시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이다.
이런저런 의미에서 글쓰는 사람, 글 읽는 사람, 글 고치는 사람, 글 만지는 사람, 글 쓰고 싶은 사람....모두에게 유익한 책이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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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글쓰기 지은이 애니 딜러드, 퓰리처상 수상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의 지혜라는 표지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영어교류협회(ESL)에서 뛰어난 문예작품에 주는 ‘앰버서더 북 어워드’상을 수상하고, 1989년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에 선정된 책, 창조적 글쓰기.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를 때면 표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편이다. 표지와 뒷표지에 박힌 글귀를 꼼꼼히 뜯어본 다음 마음에 들면, 그다음 책장을 넘겨본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표지와 뒤표지를 꼼꼼히 뜯어봤더니.. 화려하다. 작가의 홈그라운드에서 받은 평가가 훌륭하다. <창조적 글쓰기>는 글쓰기에 지혜와 영감을 주고, 글쓰는 기운까지 북돋워주는 책이라 한다. 기대가 크다. 책장을 넘겨 이 책을 읽다 보면 내 글이 줄줄줄 써내려갈 것 같은 느낌... 문고본 사이즈로 읽힘도 쉽겠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다. <제1장 글쓰기의 미학> 글쓰기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페이지에 적힌 괴테의 ‘서두르지도 쉬지도 말라’는 문구가 눈에 딱 들어온다. 글을 쓰고 싶어 망설였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문장이 가슴에 와 박히지 않을까? 그동안 얼마나 조바심내고 푸념하고 했던가? 시작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극한 상황에서의 예를 들며, 그만큼 간절하고 절실하면 못쓸 것이 없다는 것을 얘기해 준다. 그리고 글쓰기 속도라는 것은 단지 그 기준의 차이일 뿐이며. 매일같이 한쪽씩 쓰면 일년에 365쪽짜리 책 한권을 만들 수 있듯이 한번에 많은 양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써내려 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 중에 작가가 자신이 쓴 글을 너무 자주 읽다보면 그 자체에 마음을 빼앗겨 없어서는 안 될 부분처럼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그것은 사진 찍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힘들게 찍은 사진일수록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꼭 그런 것이 아니듯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하며, 한번에 훌륭한 문장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쓰고 쓰고 또 쓰다보면 그것들은 경험이 되고 기술이 되어.. 스스로 잘못된 부분을 찾아 인정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글쓰는 이는 서두르지도 쉬지도 말아야 한다. 이 한 문장에 이 장이 그대로 요약되어 있다. <제 2장 상상력의 에너지>, <제 3장 몰입과 비전> 글을 써야만 하는 간절한 상황을 만들고, 머릿속에 떠도는 지적인 열정을 신체적인 에너지와 서사적인 미스터리로 바꾸라고 한다. 아무리 혼자 많은 상상을 하고, 머릿속에 글을 나열해봤자...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글이란 열정을 가지고 써내려간 문장이 모여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글을 돌보지 않으면 그것은 그야말로 야생의 것이 되어버린다. 매일매일 써내려간 부분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것을 다듬고 길들여야 참 문장이 됨을 이야기해 준다.
작가는 글을 쓰러 들렀던 오두막에서 장작을 팬다. 요령없이 힘겹게 장작을 패던 작가는 어느날, 받침대를 겨냥하라는 꿈의 예언을 듣는다. ‘장작 받침대를 겨냥하라. 나무 토막을 겨냥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나무 토막을 지나 나무 토막 속을 관통하도록 겨냥하라. 장작 받침대를 겨냥하라.’ 자신을 경험을 통해 글쓰기의 원리를 설명해주고 있다. <4장. 경계를 넘는 열정> 작가는 문학 속에 스며야 진정한 문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작가 자신의 삶의 경험과 지혜에서 나오는 독창성으로 글을 만들어가야 한다. 글쓰는 이는 사랑과 무모함에 눈이 먼 채 실을 잣는 것처럼, 세미놀 악어와 싸우는 프로 레슬러처럼.. 간절하고 절실한 상황에서 진실되게 써내려가야 한다. 자신이 아는 것을 남김없이 모조리 글에 써내려가야 하며.. 나중을 위해 남기지 말것을 얘기한다. 그만큼 열정과 성의를 다해 지금 쓰고 있는 글에 애정을 쏟기를 바란다. <5장. 무한함의 가장자리>, <6장 창조성이 탄생> 바닷가에서의 집필경험과 비행사의 곡예 이야기를 통해, 글쓰기의 무한성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을 풀어내고 있다. 추락에 대한 위험이 항상 있는 비행사에게 들은 얘기, ‘설사 추락해서 죽는다 해도 그것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처럼 열정을 바쳐 어떤 일을 해냈을 때의 그 가치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아름다운 가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지금.. 글쓰기를 망설이고 있는 당신, 정말 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다면 당장 실행에 옮길 것을 이 책은 이야기해 주고 있다. 책장을 덮은 느낌.. 이 책을 읽지 않았을 때의 글에 대한 내 느낌 그대로.. 글은.. 그저 막막하다. 뭔가 또렷한 제시를 원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는데 여전히 안개 속. 내 이해력의 한계인가? 주입식 교육을 받은 결과대로... 곧이곧대로 얘기해줘야 알아들을 수 있는건가?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다시 읽어봤다. 첫 읽음이 듬성듬성 이었나 보다. 보이지 않던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 그래, 글이란 무슨 방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편안한 설명과 적절한 예시가 그제사 눈에 들어온다. ‘무엇을 해라’ 처럼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상황의 설명을 통해 글쓰기를 이해하게끔 풀어준다. 그리 적절한 예시들을 어디서 찾아냈는지.. 상황에 따악 들어맞는 이야기들.. 작가의 삶이란 경험의 연속인가 보다. 다시 읽다보니... 삶 자체가 글감의 나열이 아닌가 싶다. 글을 진정 쓰고 싶어하고 원한다면.. 부지런히, 자신의 열정을 다해.. 성의껏 쓰라고 이야기해 준다. 실행, 그것만이 글쓰기의 방도이다.
재차 읽어봐 그 참맛을 알게 된 책이다. 글쓰기에 영원한 관심을 두고 있는 나에겐, 곁에 두고 궁금할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봐도 좋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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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정의를 알다
창조적 글쓰기의 작가 애니 딜러드는 대학에서 문학과 창조적 글쓰기를 공부했으며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 문학비평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그 외 많은 상과 찬사를 받고 있는 글쓰기의 전문가로 꼽히는 사람이다. 더구나 창조적 글쓰기는 20년간 글쓰기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훌륭한 책이기에 아직 글쓰기에 관해 책을 봤던 경험이 없었던 나로써는 이 책을 보며 배울수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에 행복한 마음으로 책을 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직접 서평을 쓰기 시작할 무렵 어려서 학교다닐때는 곧잘 독후감이나 글짓기로 상도 타보고 했던 기억을 어렴풋이 더듬어보며 글쓰기가 뭐 그리 어렵냐는 식의 반문을 내 스스로에게 반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나 조차 한 권의 책을 읽은 후 내가 느끼고 봤던 그 느낌, 그 경험을 그대로 살려 표현해 낸다는 사실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지를 점점 더 느끼게 되었다. 한 개의 단어로 시작해 단 한줄의 문장이 완성되고 여러 문장들이 모여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애니 딜러드는 한 줄의 단어를 가리켜 망치라고 표현한다. 글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힘을 여기서 또 한 번 느낄수 있다. 글은 어떤 사람에겐 독이 될 수도, 또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자. 내가 쓴 한 줄의 글로써 여러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파장은 클 것이다. 작가가 자신이 쓴 글을 너무 자주 읽다 보면 마음속으로 외우고 있는 시처럼 그것이 꼭 필요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 부분이 그 자체의 익숙한 리듬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작가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게 된다. (15p) 저자는 글쓰기에서 가장 주의할 점을 잘못된 부분을 바로 인정하는 것이라 얘기한다. 그것은 곧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이며 경험많은 작가들에게 배울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얻을수 있는 감정, 느낌등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매일처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하루에도 수 천개의 단어와 문장을 연결해서 글쓰기를 반복한다. 작가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말과 같을수도 있지만 그만큼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도 없을 것같다는 생각에 안쓰럽기까지 하다. 좋은 날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훌륭한 생활은 하기 힘들다. 감각으로만 경험한 좋은 날들로 이루어진 삶은 충분하지 않다. 감각의 삶은 탐욕의 삶이다. 감각의 삶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반면에 영혼의 삶은 더 적은 것을 요구한다. 시간은 풍요롭고 그 흐름은 달콤하다. (52p) 화가는 바탕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해 완성된 작품에서 우리가 볼 때는 과정이 필요치 않다. 사진작가 역시 가장 완벽하고 화려한 순간을 렌즈에 담아 인화한 결과물로 대중들의 평가를 받으며, 영화나 방송, 잡지등 생각해 보면 글쓰기 만큼 적나라한 작업도 없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작가의 작업은 처음부터 고스란히 속내를 보이는 것처럼 작업의 모든 과정이 결과물로 들어나며 한 번 완성된 글은 다시 되돌릴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글은 위대하고도 어찌보면 무기력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창조적 글쓰기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너무나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의미는 확실하게 전달해주고 있으며 눈에 쏙쏙 들어오는 그녀의 글들은 내가 평생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책을 또 한 권 찾았구나하는 반가운 마음도 들게 했다. 또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문제.. 그동안 글쓰기에 대한 답답했던 내 문제들을 말끔히 풀어주었고, 내 고민을 해결해주는 책이었다.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란 사실을 애니 딜러드의 이 책과 그녀가 정말 말하고자 했던 의미를 깨달음으로 느낄수 있었고, 내 생각의 정리하는 법을 배웠으며 또 가장 중요한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글쓰기에 목말라 있는 누구에게라도 이 책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답답했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는 지침서가 되줄 것이다. 닫혀진 마음을 가지고 책을 읽거나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영원히 만족할 만한 글을 쓰거나 읽을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한다는 사실이고, 내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할때만이 그들도 내게 같은 감정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 눈이 커진다는 의미는 아닐까? “세계는 절대적인 것으로 가득, 가득 차 있다. 이것을 보는 것은 곧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