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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모댁에도 다리가 불편한 장애견이 있다.
타로처럼 병으로 인한 장애가 아니고, 네 다리 모두를 절단한게 아니라 큰 개에게 물려 뒷 다리가 불편한 개이지만
타로와 같이 유기견이었고 지금은 장애견으로 살고 있는 점이 같다.
'장애견 타로의 행복한 세상'
책 제목을 본 순간 1초의 망설임없이 카트에 담은 것은 아마도 이모댁의 장애견 뽀삐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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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댁의 뽀삐도 타로처럼 유기견이었다. 치와와만한 작은 점박이 잡종견으로 동네분들 말씀으로는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에게 이유없이 매질을 당하거나 돌팔매를 맞는 것을 자주 보셨단다. (그 어린 아이들이 무엇을 알고 그리 했겠나. 그래도 화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아이들을 그렇게 키운 부모가, 그 부모들을 그렇게 만든 이 사회가 화가 난다.)
어쩐 일인지, 본 성정과는 달리 이를 불쌍하게 여긴 엄마가 개를 회사에 데려가서 키우시려 했는데 그 곳에 있던 진도견에게 뒷다리를 심하게 물려버렸다.
동물병원에 데려갔으나 수술비가 부담이었고 집에서 기르는 동물에게조차도 돈쓰는건 무척 아까워하던 엄마인지라 안락사하기로 결정하고 일단 데려오셨다.
저녁에 병원에 데려가기로 하고 옥상의 상자 안에 개를 두었는데 먹을 것을 챙겨 올라가니 그새 개가 사라지고 없었다.
출혈이 심하고 통증이 상당한 듯 곧 죽을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안락사라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옥상에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던 것이다.
마당에 가보니 핏자국을 남기며 필사적으로 기어가고 있었단다.
그 모습이 너무 안 되서 결국 엄마는 그 길로 동물병원에 가셨고 내심 안락사하는 것이 몹시 안 되었던 그 수의사 선생님도 수술비를 반으로 깍아주셨다.
하지만 불행히도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성공률이 워낙 희박했던지라 수술은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개는 장애를 갖고 살게 되었다.
집에서 열흘정도 지내는 동안 개는 '뽀삐'라고 불리게 되었고 (내 생각엔 애초에 집에서 기를 마음이 없었던 엄마가 대충 지은 이름이다. 사실 기를 여건도 안 되었다.) 작은 마당이 있는 이모댁으로 가게 되었다.
![]() <뽀삐. 실물이 훨씬 예쁘다.>
이모네 식구들은 이모를 포함하여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인데다 뽀삐는 뒷다리를 못 쓰는 장애견이라 사실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마당 한켠에 개집과 사료, 물, 그리고 뽀삐가 있을 뿐 그닥 환영하는 마음도 없어서 몇일동안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모집 식구들이 집을 비웠을 때 아무도 뽀삐 생각을 하지 않아서 뽀삐가 몇일동안 빈집에서 쫄쫄 굶은 적도 있었다. (아,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다행히 지금은 함께 산 지 제법 시간이 흘러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덕분에 뽀삐도 가끔 고기 캔을 얻어먹을 만큼은 대접받고 있다.
![]() <사촌 오빠가 싸이에 올린 뽀삐 만화>
뽀삐에 대한 신비한(?) 일화가 여럿 있지만 리뷰에 잡설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그건 일상 카테고리에 따로 쓰기로 해두고,
타로는 갖 젖을 뗀 강아지 때 형제들과 함께 상자에 담겨 사찰에 버려졌다.
다행히 주지의 딸이 동물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덕분에 타로는 그녀의 애견이 다니던 동물병원 의사, 고모리씨를 만나게 되고 고모리씨에 의해 아흔살이 넘은 모친을 모시고 사는 할아버지께 입양된다.
병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생후 1년이 지나서부터였는데 원인불명에 전례없는 병이었던지라 절단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네 다리와 꼬리를 모두 절단해야 했지만 타로를 입양한 할아버지도, 타로를 입양보낸 고모리씨도 타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적지 않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타로를 수술시켰고 고모리씨는 수십만엔이 드는 치료비를 한달 3만엔으로 깍아주고 그 이상은 받지 않았다.
병 들었다고, 이웃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아기가 태어난다고, 이사간다고 갖은 이유로 몇년을 한 집에서 살 부대끼며 함께 살아온 동물을 헌 신짝 버리듯 길가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과 그렇게 버려진 개들을 숱하게 봐왔던 터라 할아버지와 고모리씨의 따뜻한 마음과 용기, 결단이 새삼 감동스러웠다.
타로 또한 네 다리와 꼬리를 잃은 것에 기죽거나 분노하지 않고 흔적뿐인 다리로 힘껏 기어다니며 혼자 힘으로 걷고, 혼자 힘으로 용변을 보는 모습이 무척 대견했다. 감정의 표현 수단으로 가장 중요한 꼬리를 잃었지만 놀랄만큼 다양하고 생생한 표정을 보여주어서 보는 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고 있다.
실제로 타로때문에 가장 먼저 변한 사람은 수의사인 고모리씨라고 한다. 고모리씨는 병원의 확장에만 관심있고 소위 돈만 밝히는 수의사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병원 직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소리도 곧잘 지르고 견주의 요청에 따라 안락사도 스스럼없이 해 주는 사람이었는데 타로를 만난 후로는 180도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 비해 크게 생명력이 약해진 아이들과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와 교육이 안타까웠던 그는 타로를 데리고 초등학교에 강연을 나가기 시작했다.
밤새 손수 그린 동화를 복사해서 나눠주고 심지어 타로를 직접 데려가 보여주기도 했다. 고모리씨의 동화에 감동한 한 아주머니는 그것을 백혈병을 앓고 있는 소녀에게 보여주었는데 소녀는 그것을 머리맡에 두고 몇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타로와 타로로 인해 아름다워진 고모리씨의 모습이 모두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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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은 타로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을 뿐 감동을 주기 위해 쓰여진 것은 아닌 듯, 무척이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어 타로가 장애를 극복한 배경에 대해서도 개의 뇌가 사람의 뇌만큼 발달하지 못해서 팔다리가 없어진 것에 대해 인간만큼 복잡한 감수성으로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식이다.
타로가 장애견이라 하여 가족들의 극진한 간호와 보살핌이 있는가하면 사실 그렇지도 않다. 병원 식구들이 바쁘게 오가다보면 본의 아니게 밟히기도 하고 일과동안엔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다. 그들의 무심함(?)에 읽는 도중 살짝 마음이 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강요받지 않은 감동이기에 더욱 사실적인 감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장애견 타로는 내가 앞으로 살아가며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마음속에 떠올라 북북 기어다니며 힘을 줄 것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오래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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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아 이야기에 이어 타로 이야기는 나를 또다른 감동에 젖게 만들었다. 불편하다는 것이 반드시 불행하다는 것과 통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작은 개를 통해 전해졌기때문이다.신체적으로 타로는 가난하다. 다른 개들에게 있는 네 다리와 두 귀, 꼬리가 없기 때문이다. 특이한 병으로 인해 절단되어져버린 다리와 꼬리. 그리고 괴사상태로 떨어져나가버린 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로는 충분히 사랑스럽다. 다리가 없는데도 산책을 좋아해서 땅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장애로인해 움추리고 있기보다는 밝은 표정과 우렁찬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필한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개를 이전에는 본적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타로에게 매료 된다. [동물농장]을 통해 잘 알려진 동물의 마음을 읽는 여자, 하이디. 그녀가 일본 프로그램에 나와 타로의 마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많은 눈물이 샘솟아 버린 적이 있다. 책에 나온 것처럼 밝기만 한 타로의 마음속이 궁금했던 수의사 선생님은 타로에게 수술이 아픈 기억으로 남지 않았는지 궁금해했고, 하이디는 타로를 만나 그 사이의 다리가 되어 마음을 전달했다. 개였기에 타로는 수술에 대한 개념은 없었지만 깨어나보니 다리가 없어져 앞발로 무언가를 잡을 수 없는 것에 슬퍼하고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하이디와 눈도 맞추지 않았던 타로의 마음을 잘 전달해 주어서일까. 타로가 하이디와 눈을 맞추고 하이디는 이어 놀라운 말을 전했다. 고마움을.....안락사될뻔한 자신을 살려주어서 고맙다고.....수술 후 깨어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살아있구나.."였다고..!!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타로의 행복한 세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살아있음으로 인해. 책을 끝까지 다 보면서 동영상을 찾아 다시 돌려보기 시작했다. 10분도 채 안되는 짧은 이야기였지만 타로는 우리에게 살아있어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전하는 사랑스러운 생명이었다. 그래서 타로의 이름 앞에 장애견이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행복한 세상을 살고 있는 타로에겐 장애란 없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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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저렇게 네 발이 없어도 살 수 있을까? 처음 책표지에 있는 타로의 모습을 보고 떠오른 의문심 하나..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비록 네 발은 없지만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타로의 모습에서 조그만 말에도 상처받고 우울해하며 이 세상을 미워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주 하찮은 존재처럼 여겨졌다. 솔직히 말해 "O만도 못한 놈"이란 말, 이 책을 읽으면 100% 동감할 거 같다.
아주 많은 부분에서 우린 타로만도 못한 인간인것이고 아주 하찮은 부분에서도 우린 타로만도 못한 인간임에 분명했다.
살아야겠다라는 의지만 있으면 안될게 없다했다. 뭔가에 대한 의지만 있으면 이 험난한 세상,쉽게 헤쳐나갈 수 있다.
무언가에 상처를 받고 꿈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듬뿍 줄 수 있는 타로 이야기.. 힘들때마다 항상 옆에서 다독여주는 친구의 모습처럼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판도라의 상자에 들어있는 희망을 꿈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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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사랑하고 개를 키우는 애견인의 한 사람으로써 당연하게 손이 가는 책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집은 이 한권의 책이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말 못하는 그저 한마리의 개일 뿐인데 그 개 한마리가 가슴을 따스하게 하고 마음을 울린다. 끝없는 고통속에서도 삶에 대한 끈을 놓치 않고 보는 이들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타로 앞에서 '나는 참 작구나...'라고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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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생각해왔고, 애완견이나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했던 것은 버릴 것이라면 처음부터 키우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동물과 함께 지낸다는 거 책임을 진다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여기 ‘타로’라는 이름의 개도 버러젼 개다. 그러다가 좋은 주인을 만나기는 했지만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겠지만 어찌되었든 강아지가 되었든 고양이가 되었든 그것이 다른 동물이나 식물이 되었든 같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끝까지 같이 보내야 할 것이다. 절에 버려진 강아지 타로. 그 이야기. 끝까지 읽었지만 죽지는 않고 잘 살고 있다고 하니 좋은 뉴스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동물병원에서 살고 있으니 일단 안심이 되기도 한다. 급작스러운 일이 생긴다 해도 바로 조치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떤 운명을 타고 났는지 모르지만 장애견으로 살아간다는 건 힘든 일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 곁에서 사는 것을 보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다행이다. 강아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나누어보고 싶기까지 하다. 어떠냐고. 지금 사는 것에 만족하냐고? 그렇게 묻고 싶다. 그러면 타로는 어떤 대답을 할까? 타로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닥친 불행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행복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사람에게 버림 받은 개, 고양이. 나는 가게를 하면서 그런 개와 고양이를 많이 봤다. 저녁때 식당일을 마치고 혼자서 가게를 지키고 있을 때 추운 거리에 배회를 하고 있는 개와 고양이들. 그들 곁으로 가려고 하면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는 줄 알고 저 멀리 도망가 버리는 개와 고양이들. 그런 개와 고양이들을 보면서 사람이 싫어진다. 그런 개와 고양이를 보기 전에도 사람이 제일 싫고 무서웠지만 더욱 더 싫어지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도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산에서도 만나기도 하고, 공원에서도 만나기도…. 그런 강아지를 볼 때마다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번 키워볼래요?, 라고 묻는다면 절대 사절. 절대적으로 No라고 말할 것이다. 아직 무엇인가 책임을 질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동물에 대한 의료과학이 발전은 안 되어 있는 건가?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점을 느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구나. 사람과 애완동물이 함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사람과 애완동물들이 오래도록 살 수 있게 의료과학이 발전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애완견이나 애완묘, 기타 애완동물들을 키우는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동물과 함께 읽는다면 한층 더 사랑이 싹트지 않을까. 추운 겨울 거리를 헤매고 있을지 모르는 동물들이 언젠가 행복한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재미있다기보다는 무엇인가 묵직한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기분 좋게 읽었다. 처음에는 애완동물들을 버렸다는 글에 울컥하기도 했지만 타로가 행복해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풀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