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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파리, 피렌체, 암스테르담, 에든버러, 쾨니히스베르크, 베를린, 런던, 바젤, 아테네, 로마 생각만 해도 모든 일을 훌훌 털고서 한번쯤은 여행해 보고 싶은 유럽의 도시들이다. 특히 이들 도시의 매력은 옛스러움과 새로움이 공존하고 있는 도시들이다. 흔희 우리의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와는 사뭇 다른 도시색을 가지고 있다. 고대와 현대가 서로 공존하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한쪽 발을 드리우면 몇백년에서부터 몇천년의 시대로 회귀하고 다시 한쪽발을 빼면 작금의 시대로 복귀하는 타임머신 같은 도시들이다.
바로 이들 도시에서 부터 서양철학의 맥을 집어 본다. 아니 그냥 그들 도시 한복판에 서 있는것 만으로도 철학을 느낄수 있을 만큼 철학과 도시가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여기서 철학이 먼저냐 도시탄생이 먼저냐는 논외의 대상이 아니고, 될 수 도 없다. 철학과 도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붙어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유럽도시로의 여행을 통해서 서양철학의 커다란 맥을 독자들에게 제시해주고 있다. 우리가 교양과목의 형태로 알고 있는 서양철학사의 역순으로 그러니까 현대철학에서 출발한 철학은 로마에라는 최종목적지에 가서 그 끝을 맺는다. 사실상 서양문화라는 틀을 만들어낸 로마제국에서 대미를 장식하므로써 현대,근대,중세,고대철학의 이어진 끈의 시작이 로마와 아테네임을 암시하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각종 도시사진과 지도등을 첨부하여 유럽여행이라는 보너스도 제공 해주고 있으면서 서양철학에 대한 진수만을 추려서 서술하고 있어 서양철학에 대해서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충의 맥을 잡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마치 여행을 하면서 서양철학을 인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철학, 서양철학에 문외한인 이들에게 그렇게 녹녹치 않는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고교시절 국민윤리라는 교과목과 대학시절 교양과목을 통해서 서양철학을 접했지만 사실 철학보다는 무슨무슨주의, 무슨무슨론이라든지 이름만으로도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자들과 그 주의를 연관해서 암기했던 나에게는 더욱더 쉬운 책은 아닌것 같다. 그런면에서 필자는 나와 같은 문외한들을 위한 많은 배려를 했지만 역시 기초적인 철학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기에는 상당한 진통을 수반하는것 같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이 그러한 각론을 접어 두고 개론서적인 입장으로 읽기에는 필자의 의도에 부합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중세만 하더라도 세상의 학문은 신학과 철학이외의 학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말은 종교를 제외한 모든 분야의 학문은 철학으로 대변 되었고 철학안에 모든 학문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근대과학이 대두되기 전까지만 해도 철학자, 과학자라는 경계를 나누것 조차 모호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철학은 인간이 고민해야 할 모든 분야를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만큼 철학의 비중이 커지다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이론과 주의들이 탄생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학이 더 발전하고 난해해지듯이 철학 또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심오해지고 어려워 질 수 밖에는 없는 운명아닌 운명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만큼 인간의 삶이 복잡해 지고 사회제도가 변하면서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양식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은 인간과 가장 밀접한 학문이다. 육체적인 만족이 아닌 정신적인 공허감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학문이다. 우리는 고래로부터 진리는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했다. 바로 철학이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고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결과물인것이다. 고대에는 그 해답을 자연에서 찾았가 어느날 소피스트라는 궤변론자들에 의해 그 해답은 인간안에 존재한다고 해서 인간 스스로에게서 정답을 찾았다. 그러다가 신이라는 유일절대자의 탄생으로 모든 해답을 신에서 찾았다. 그래서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는 표현도 하지만 그런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의 대부흥기를 맞이하고 계몽시대를 거쳐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진리추구는 지금도 진행형이며 그 끝은 아마도 인류가 멸하는 날까지 이어질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난 필자가 이 책을 통해서 서양철학의 리얼리즘, 관념론, 포스터모더니즘, 경험론등의 각종 이론을 되도록이면 쉽게 설명하면서 독자들을 이해시키려고 하는것에 목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논조에 대해서 모른다고 해도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진 않을것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헤겔의 절대정신이라는 개념을 모른다 하여 크게 낙담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정말 그러한 문제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자들의 몫인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책을 2번을 읽었지만 아직도 개념이 잡히지 않는다. 물론 나의 무지함에 동정심을 던져보지만 어럽기는 매한가지이다. 철학의 사전적 의미인 지혜를 사랑하는다는 말은 아마도 인간이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을 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도 서두에 언급했듯이 명사로서의 철학이 아닌 동사로서의 철학을 일반독자들에게 피력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싶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철학 또한 예외없이 그 결과물에 대한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특히 인간의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철학의 경우 도구로서의 철학보다는 과정으로서의 철학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피히테나 헤겔의 철학을 통해서 철학이 도구로 인식되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에 대해서 뼈아픈 경험을 했다. 물론 도구로서의 철학이 절대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본말이 전도 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사실 각종 서양철학이론에 대해서 어느 이론이나 학파의 주장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마 아무도 특정이론이 정답이라고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이 의미가 바로 과정으로서의 철학을 해야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처럼 이론과 가정에 의해 어느누가 감행하더라도 그 결과가 일치하는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철학에는 없다. 아니 있으면 철학이 아닐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명사로서의 철학보다 동사로서의 철학을 강조하는것이다. 사고의 과정중에서 다양한 이론이 추론되었고 비판과 비판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과정의 사고가 진행되는것이 철학의 진정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적인 경헙을 통해서 유일절대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계와 나 개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계가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왔고 지혜의 침체를 겪어 왔는지를 알고 있다. 또한 각종 이론에 대한 절대주위라는 미명하에 자행되었던 왜곡된 역사를 기억하고 있지 않는가? 각 개인의 사고의 과정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현대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명사는 항상 그자리에 있는것이지만 동사는 말 그대로 항상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 움직임이 진보가 될 수 도 있고 퇴보가 될 수 도 있지만 움직임이 없는 정체는 암흑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또한 모든 철학이론에는 절대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 있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사고의 과정에 절대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양의 역사, 정치, 문화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제국이 오래토록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중에 하나가 바로 절대라는 개념, 유일신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팍스로마나를 영위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서양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을 것이지만 철학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 있을것 같다. 진정한 철학의 의미와 철학에 대한 약간의 거리감을 해소하는데 일조를 한 부분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철학에 대한 문외한인 이들로 하여금 그동안의 편견을 해소할 수 있는 내용들이 상당히 많다.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하고 나면 왠지 가슴이 뿌듯하듯이 필자와 같이한 철학여행을 통해 철학에 대한 많은 부분들을 오래토록 간직하게 된것 같아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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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철학이라니...???!!!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마치 '아무나' 그것에 대해 얘기해서는 안될것 같고,
예를 들어,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양육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배우는 과정 속에서도 그런 와중에 들은 세익스피어의 삶을 철학으로 대체 하지 말라며 던지던 그 한 마디.
'철학'이라는 제목에 무게를 너무 실어주게 되면, 읽는 내내 한 줄, 한 줄 많은 의미를 심으려 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수 천년, 혹은 한 명의 철학자가 그의 삶 전체를 쏟아부었던 그 부분을 내가 어찌 이 두권의 책으로 단시일에 완벽한 이해를 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하는 제 나름대로의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지요. 그랬기에 단어 하나 하나에 무게를 싣는 무거운 여행이 아닌, 짐이 가벼운 여행자의 입장이었다고 할까요. 마치 옆 동네 누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더라~ 하는 정도로 가볍게 시작하는 도시와 철학, 그리고 철학자들의 이야기.
중간 중간 포함된 풍부한 컬러 삽화들과 자료들은 여행자의 눈요기와 호기심을 그리고 '그래서 결과가 뭐라는 거야?' 라는 결론을 요구하는 잠재적인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고 있었어요. 보는 것 없는 눈으로 읽고 뇌로 이해하는 것만 있다면....... 솔직히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겠어요?
건축/미술/음악/문학.... 어느 한 분야도 빠지지 않는 각 시대의 철학의 열매들은... 제게도 정말 새로운 시각을 열어 주었습니다. 아, 이 책은 철학 여행 문화 예술서, 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이 부분에서 였구요.
참 흥미롭고 즐거웠습니다. 단 한번 읽고 다 알게 되었다고는 할수가 없겠지만, 그가 누리던 삶과 지금의 나의 삶이 표면적으로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이해와 그 영향의 산물들... 그때와 지금이 결코 많이 다르지 않음을 알게된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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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1>과 연이어서 그리고 두 책을 번갈아가면서 읽었기 때문에 내게는 연작으로 느껴진다. 1권에서 끝난 여정은 쾨니히스베르크, 베를린, 런던, 바젤 그리고 시대를 건너서 아테네, 그리고 중세의 도시까지 이어진다. 반드시 시간순서, 그리고 연속된 느낌을 기대하지 않아도 좋다. 이번 책에서는 칸트의 선험적이라는 개념을 애써서 써놓은 작가의 열의가 느껴져서 좋았고(비록 쉽지는 않더라도) 헤겔과 니체를 기존의 도식적 정의가 아니라 절정기가 꼭 아니라해도 그 배경을 읽어내는 것이 좋았다 기존 역사서술의 주인공은 인물이지 도시가 아니었던 것처럼 이 책에서 강조하는 도시 역시 철학을 이해하는 배경으로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피렌체와 아테네를 이어서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1권의 피렌체, 2권의 아테네) 그리고 또한 왜 여정이 중세에서 마무리되었는지 미리 예상하고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동안 암흑시대로만 이해되었던 중세가 과연 어두움만 있었을지 그리고 그 혼돈의 과정과 현대의 철학은 반대편에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두 시대에서 우리가 철학에 대해서 가지는 혼돈은 공통점이라해도 좋을 것 같다. 책을 맨 처음 접했을 적과 다른 것은 도시에 모인 철학자가 경험한 세계를 조금 알게 된 것이다. 베를린의 자유와 분단 이후의 상황이 헤겔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고풍스러운 모습을 담은, 또한 박물관과 갤러리를 자유스럽게 드나들며 열린 공간인 공원이 인상깊던 런던과 그 발전과정의 그림자를 목격한 마르크스는 무슨 관계였는지 그 흔적이 어떻게 남게 되었고 변화해가는지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예상해보게 된 재미도 생긴 것 같다. 철학의 여정은 다시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를 되묻게 된다.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혹은 가까워진 어느 나라의 한 도시의, 지금의 상황은 우리의 철학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 꼭 대표적인 인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후대의 누군가가 이해할만한 지적 유산이나 희망을 보여주고 있을지 또한 절망 속에서의 또다른 사상이 피어날 준비가 된 곳인지 상상해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읽은 것은 시대의 변화, 전환이 일어난 도시공간의 상황과 그 상황을 현명하게 읽어내었던 누군가의 생각과 그 미래를 목도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