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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빛, 그리고 절망 속의 희망
"어둠 속의 빛, 그리고 절망 속의 희망" 내용보기
제가 며칠 전까지 읽은 소설인데요, 박완서의 등단 작품답게 그녀의 내면세계를 바라볼수 있는 좋은 소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완서 초기작에서 현재에 이르는 작품들에 나타나는 그의 문학적 주제는 6.25전쟁이 한 가족에 미친 영향으로서 6.25이후에 분단상황하의 개인적 삶의 모습에 투영이 있다고 봅니다. 특히 6.25와 관련되고 전쟁과 분단을 다룬 작품들은 박완서의 초기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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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며칠 전까지 읽은 소설인데요, 박완서의 등단 작품답게 그녀의 내면세계를 바라볼수 있는 좋은 소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완서 초기작에서 현재에 이르는 작품들에 나타나는 그의 문학적 주제는 6.25전쟁이 한 가족에 미친 영향으로서 6.25이후에 분단상황하의 개인적 삶의 모습에 투영이 있다고 봅니다. 특히 6.25와 관련되고 전쟁과 분단을 다룬 작품들은 박완서의 초기작에서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관심이 지속되어 왔는데, 이는 작가 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습니다. 전쟁의 소설도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될 때, 보다 절실한 체험에 진실성이 구현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박완서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자신의 가족을 붕괴시켰고 따라서 민족적 비극 이전에 개인적 비극으로서 직접적인 체험이 주가 되어 그려 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이 6.25와 관련된 가족사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6.25의 참변 속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후에 받은 상처로 인해 어머니가 겪는 한을 그리고 있는 「나목」은 6.25가 가져온 현실 생활의 파괴와 그 후 사회와의 부조화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분단의 아픔을 전하고 있으며,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두면서 6.25회고담이 삽입되어 있는데, 전쟁의 희생자인 오빠의 죽음은 가족을 파괴하였고,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개인들이 분단시대라는 상황 속에서 그 피해의식을 제각기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을 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글은 심리적인 묘사와 이경이라는 캐릭터의 정서적 불안 심리는 이 글의 특징을 잘 자아 내고 있습니다. 어두운 현실, 회색빛 일그러진 도시 속에서 황폐화 되고 막연히 무너지는 6.25 당시 서울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동떨어지게도 상상할수 없을거라 봅니다. 안락하고 따뜻한 생활과는 달리 전쟁이라는 오점 속에서 발 밑에서 꿈틀 댈수 밖에 없었던 청년들 내일의 희망은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배고픔, 그리고 몇푼 안되는 돈,,,,,, 청춘의 성숙 과정과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한 길을 교차시키며 또 하나의 모습인 어머니의 죽음은 철부지의 이경이 느낀 것과는 사뭇 달리 슬프고도 가슴 아팠습니다. 태수와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기르며 중년의 나이가 된 이경은 옥희도 씨의 유고전에서 절망의 꽃으로 바라보던 나목이 무너져 가는 현실의 희망,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노란 단풍... 은행잎...겨울 한철에서도 꿋꿋이 견뎌낸 나.목.... 그것이야 말로, 현실을 암담하고 절망적으로 바라보는 당신들의 마음에 커다란 희망을 안겨주지 않을까요? *^^*

[인상깊은구절]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e********4 2004.08.30.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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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박수근 그리고 ‘나무와 두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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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사람인 박완서의 뒤늦은 문단 데뷔작인 소설 ‘나목(裸木)’은 작가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6·25의 비극을 배경으로 한 그 자신의 개인적 체험의 기록이면서 소녀에서 한 인간으로 성숙해 가는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6·25 전쟁 중 서울 신세계 미군 PX 초상화 가게에 일하는 ‘나’(이경인데 경아라고 불림)는, 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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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사람인 박완서의 뒤늦은 문단 데뷔작인 소설 ‘나목(裸木)’은 작가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6·25의 비극을 배경으로 한 그 자신의 개인적 체험의 기록이면서 소녀에서 한 인간으로 성숙해 가는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6·25 전쟁 중 서울 신세계 미군 PX 초상화 가게에 일하는 ‘나’(이경인데 경아라고 불림)는, 부우연 하늘을 이고 선 한쪽 추녀가 달아난 우리 집이 주는 무서움과 어머니의 회색빛 고집 속에서 퇴색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한 황량함의 이유가 혁이 오빠와 욱이 오빠의 죽음과 관련 있다는 것은 작품의 첫머리부터 나오지만, 그 자세한 정황이 소개되는 것은 전체 17장(章)중에서 14장에 이르러서이다. 피난을 미처 가지 못해 은둔생활을 하는 오빠의 거처를 행랑방으로 옮긴 어느 날, 폭격에 의해 두 오빠가 죽게 된다. ‘나’는 기운을 차려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간호했으나, 어머니의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 놓셨노."라는 말은 ‘나’에게 자신이 오빠들을 죽게 한 장본인이라는 피해의식을 심어주게 된다. 그러한 ‘나’는 ‘염색한 군복을 비좁은 듯이 입고 있는’ ‘어리석지 않은 선량함으로 의젓해 보’이는 옥희도에게 이끌리게 된다. 잠시 그와 나의 눈길이 마주쳤다. 내가 먼저 섬칫해져서 눈을 피했다. 아주 황량한 풍경의 일각 같은 것이 그의 눈 속에 깊이 잠겨 있는 것 같아서였다. ‘나’가 옥희도에게 끌리는 것은 자신과 같은 고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가져온 물질적 궁핍 속에서 생계의 수단으로 미군 애인의 초상화를 그리는 옥희도는, 사회적 상황이 만들어 낸 황량한 정신의 사람이다. 두 사람은 장난감 가게의 위스키를 마시는 침팬지 인형(침팬지 인형도 나름의 고독을 지닌 존재임) 앞에서 만남을 계속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내가 아직도 화가인가 알고 싶어.” “난 오랫동안 그림을 못 그렸어. 너무 오랫동안…, 아직도 내가 화가인지 궁금할 만큼 오랫동안. 나는 내가 사람이 아니란 것보다 화가가 아닌 것이 더 두려워. 화가가 아닌 난 무엇일 수 있을까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어. 며칠 동안만 내가 화가일 수 있게 해줘.” “그냥 그림이 그리고 싶어. 미치도록 그리고 싶어. 정진과 몰두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고 싶어.” 옥희도는 진정한 화가가 되고 싶어 했고, 진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나’가 옥희도의 찾아갔을 때 본 그의 그림은,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우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枯木)’이었다. ‘나’는 그 그림에서 빈곤과 절망을 읽는다. 그것은 전쟁이 가져다준 황량함, 아무런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 불모를, 죄의식과 암울한 분위기에 눌려 살아가는 화자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바로 경아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나’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녹색 눈을 가진 GI 죠오에게 자기 파멸적인 충동을 느끼며 몸을 허락하려는 순간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침대 시트’를 보고 ‘잊은 줄 알았던, 아니 교묘하게 피하던’ 오빠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마주하게 되고, 그곳을 뛰쳐나온다. 폐렴에 걸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하지 않는 사이의 홀가분함을 한 발자국도 양보하기 싶지 않았’던 PX 전공(電工)태수와 결혼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의젓한 곳에 취직해서 신뢰받는 삶을 꿈꾸는 태수와의 결혼은 일상적 삶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황량함을 극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른 뒤 중년의 여인이 된 여주인공은, 옥희도의 유작전에 가서 예전에 봤던 그림이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자신의 황량한 삶을 일상적 삶으로의 복귀와 예술적 창작이라는 나름의 방식을 통해 극복하는 경아와 옥희도는 생명력을 상실한 고목이 아니라, 봄에의 믿음을 간직한 나목이었던 것이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슬히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었다.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박완서의 소설에서 ‘오빠의 죽음’이라는 모티브는 불혹의 문단 데뷔작인 ‘나목’을 비롯하여 ‘엄마의 말뚝’ 등 다른 작품에서 반복되고 있다. 화자 자신의 자전적 삶의 기록이라는 느낌도 다른 작품처럼 강한 편이고. 박완서의 작품은 한 여성의 가족사적인 체험과 우리의 역사적 체험이 만나는 자리에서 시작되고 있고, 그 민감한 접점이 6·25와 오빠의 죽음이다. 그것은 ‘생때같은’ 한 청년의 죽음이야말로 한 가족의 슬픔의 차원을 넘어서 민족 전체의 비극을 대표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이란 어머니의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을 집어삼킨 폭력의 과정이었고, 신앙과도 같았던 아들을 빼앗아가 버린 전쟁으로 말미암아 어머니는 삶의 의욕을 상실해버리는 것이다. 소설 ‘나목(裸木)’은 박수근 화백과 그의 ‘나무와 두 여인’이라는 그림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그러한 경험은 뒤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라는 자전적 소설로 발표가 된다. 박완서가 미8군 PX 초상화부에 있던 52년(뒷날 남편이 된 호영진을 만난 곳도 PX로, 그는 PX가 들어 있는 동화백화점 소속 직원인 측량기사였다), 장병들이 들고 오는 개인이나 가족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주는 무명 화가 틈에 박수근이 있었다고 한다. 1932년 18세의 나이로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입선한 박수근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6.25를 만나 식솔을 끌고 서울로 내려와 미군부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염색한 미군 작업복은 매우 낡고 몸집에 비해 비좁았고 말이 없는 편으로 무진 착해 보였다. 어느 날 그가 그 화집을 한 권 옆구리에 끼고 출근을 해서는, 망설이는 듯 수줍은 미소를 띠고 화집 속의 한 그림을 가리키며 자기 작품이라고 했다. 간판쟁이 중에 진짜 화가가 섞여 있었다는 건 사건이요 충격이었고, 간판쟁이들에게 못되게 굴었던 작가는,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동안 그다지도 열중한 불행감으로부터 문득 깨어나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리고 나의 수모를 말없이 감내하던 그의 선량함이 비로소 의연함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그 후 박완서는 자신의 불행에만 몰입했던 눈을 들어 남의 불행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부터 PX 생활이 한결 견디기가 쉬워졌고, 그에 대한 연민을 통해 그 불우한 시대를 함께 어렵게 사는 간판쟁이들, 동료 점원들에 대한 이해로 확대되게 된다. 그 후 박완서와 박수근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져서(물론 소설 속의 관계처럼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함께 퇴근을 했는데 을지로 입구 전차 정류장까지 같이 걷다가 도중에서 명동으로 빠지는 게 고작이었을 뿐이다. 박완서의 처녀작 ‘나목(裸木)’에서 나오는 것처럼 두 사람은 명동 노점상에서 태엽만 틀어 주면 침팬지가 술을 따라 마시는 장난감을 구경하기를 즐겼다. 얼마 뒤 박수근이 PX를 그만두고 196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하는데, 결혼 하고 아들 딸 낳고 평범한 주부가 된 박완서는 68년 '박수근 회고전'이 열리고 있던 신문회관으로 달려간다.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지만 화단의 놀라운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그림 세계는 물론 엄두도 낼 수 없는 그림 가격에 박완서는 알지 못하게 가슴이 뛰었다. 그래서 철없는 나이에 바라보았던 한 예술가의 초상을 쓰자며 '여성동아'의 장편소설에 응모했다. 그리고 1970년 11월 박수근을 모델로 한 소설 '나목'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j***g 2004.07.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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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_박완서(세계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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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나의 목표는 고전을 많이 읽는 것이었다. 요즘 나오는 소설을 주로 읽어온 내가 이전에 도전해본 몇몇 고전은 그 명성에 비해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을 당시의 시대 탓이나 번역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고전이란 외국의 소설들을 주로 생각해왔던 것같다. 우리나라 문학 또한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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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나의 목표는 고전을 많이 읽는 것이었다. 요즘 나오는 소설을 주로 읽어온 내가 이전에 도전해본 몇몇 고전은 그 명성에 비해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을 당시의 시대 탓이나 번역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고전이란 외국의 소설들을 주로 생각해왔던 것같다. 우리나라 문학 또한 고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중요할 터인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고전을 읽을 요량으로 박완서 님의 작품을 골랐다. 사실 이것을 완벽히 고전작품이라고 칭할 수는 없지만 작금의 시대로부터 40년도 전에 나온 작품이니 나에겐 고전임이 다름없다. 게다가 지난 달 그녀의 소설전집이 예스24에서 반값판매를 하고 있어 이때다 싶어 구매해버린 게 바로 <나목>이다. 사실 우리는 그녀를 안다. 하지만 아무도 잘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소설을 온전히 작품 전체로 읽어본 이는 많지 않으니 말이다. 나같은 경우도 고등학교 언어영역 문제집에 일부로 등장하던 그녀의 작품만 알고 있을 뿐이다. 


 <나목>은 그녀의 처녀작이라고 해서 고르게 된 작품이다. 나는 모든 작가의 첫 작품은 완성도나 평을 떠나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독자로서나 작가 본인으로서나 한 사람이 만든 첫 작품은 모두에게 어떤 기준이 되기 마련이다. 20대인 나에게는 책의 제목인 <나목>의 의미부터도 생소한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소설의 배경인 1950년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벌어진 직후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직원인 '경이'의 목소리로 소설은 진행된다. 여성작가가 여성주인공의 목소리로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이 방식이 나로서는 의외로 공감되었다. 그 당시는 남자나 여자나 할 것없이 모두가 자신의 존재와 환경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시절이라 그랬을까.


 혹자는 이 소설을 두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삶의 의미에 회의감을 느끼고 고독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칭했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이 소설에 주는 의미는 그렇게 크지 않아보인다. 경이의 처지가 전쟁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지만 그보다는 경이와 옥희도, 황태수의 미묘한 관계가 소설의 큰 축을 이룬다. 돈을 벌기위해 매일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미군들을 꾀는 경이는 하루하루 반복과 불안 속에 사는 여인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초상화부에 들어온 중년의 옥희도가 마음에 들어오게 되고 그와 교감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그가 유부남이라는 장벽과 진정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그녀 내면의 불안은 이들의 결실을 어렵게만 한다.


 지금 시대에서 보면 통속적인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런 설정들은 경이가 처한 상황의 일부에 불과하다. 소설은 오히려 경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옥희도씨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그에 대한 연민, 폭격으로 두 오빠를 잃은 뒤 가해지던 죄책감과 어머니의 냉랭함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그녀의 삶을 떠받치는 원동력이자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다. 장난감 침팬지의 재롱을 보며 자신과 옥희도 씨를 이입시키는 부분과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부분들은 오늘날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굳이 전쟁으로 인한 상흔이 아니더라도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감정이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나목>은 차갑고 공허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공허한 아름다움'이라 부르고 싶다. 시대의 불안함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 손에 잡히듯 말듯한 희망이 나는 좋다. 시간이 흘러 태수와 결혼한 경이 완벽히 행복에 도달하지 않은 것 같아서 좋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진짜 현실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공허한 아름다움의 절정은 바로 옥희도 씨가 그린 '나목'이다. 진짜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보겠다던 그가 그린 것은 앙상한 나목 한 그루다. 그것을 '삶의 기쁨에 대한 기갈'이라고 칭하는 경이의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어쩌면 옥희도 씨와 경이에게 필요했던 건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불안한 시대를 온전히 살아내려는 의지에의 확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현재는 나목 한 그루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그 나목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꽃이 필 날이 올 것을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게 아니었을까. 경이가 자신의 죄책감을 달래기 위해 은행잎 위에서 뒹굴었던 것처럼 나 또한 불투명한 지금을 이겨내기 위해서 어딘가에 뒹굴고만 싶다. 그러면 나에게도 나목이 아니라 잎이 풍성한 나무 한 그루가 보이겠지. 

 



j*****j 2013.03.2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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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기도 하고, 애처럽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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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한지 한참 지난 후에 읽었다. 진작 읽을 걸 하는 생각이 들만큼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깊이도 있어서 역시 박완서 소설이구나 싶었다. 대가는 역시 대가다. 주인공이 느끼는 죄책감과 서러움, 엄마에 대한 애증 등, 가슴이 짠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단점이라면, 너무 글씨체가 세련되지 못하고, 표지도 별로였다. 종이질도 너무 안 좋았다. 박완서 선생님  이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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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한지 한참 지난 후에 읽었다. 진작 읽을 걸 하는 생각이 들만큼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깊이도 있어서 역시 박완서 소설이구나 싶었다. 대가는 역시 대가다.

주인공이 느끼는 죄책감과 서러움, 엄마에 대한 애증 등, 가슴이 짠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단점이라면, 너무 글씨체가 세련되지 못하고, 표지도 별로였다. 종이질도 너무 안 좋았다. 박완서 선생님  이름만 믿고 대강 낸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독자를 배려한다면 좀더 이런 부분도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s****7 2007.01.2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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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그늘이 필요했던 여자 경아의 나목
"자신의 그늘이 필요했던 여자 경아의 나목" 내용보기
이작품을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헌책으로 구매를 해 놓은 십여권이 넘는 작품을 언제 기회를 내서 한꺼번에 읽겠다는 계획만 가지고 있기를 몇 해, 그러다 작가님을 먼저 보내고 이 작품을 대한 것이 왜 이렇게 죄스러운지. 박완서 작가를 내가 처음 작품으로 접한 것은 아이들의 <자전거 도둑> 이었고 그리곤 좀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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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작품을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헌책으로 구매를 해 놓은 십여권이 넘는 작품을 언제 기회를 내서 한꺼번에 읽겠다는 계획만 가지고 있기를 몇 해, 그러다 작가님을 먼저 보내고 이 작품을 대한 것이 왜 이렇게 죄스러운지. 박완서 작가를 내가 처음 작품으로 접한 것은 아이들의 <자전거 도둑> 이었고 그리곤 좀더 작가를 알고 싶어 에세이집인 <호미>를 읽게 되었는데 친정엄마와 같은 푸근하면서도 시골스러운, 늘상 만나던 이웃집 할머니처럼 왜 그렇게 감겨 오는지 그 후로 나오는 작품들은 미리미리 구매를 하여 읽게 되었는데 자신의 삶을 숨김없이 써 내려가는 노작가의 끝없는 현역으로의 필력이 좋아서 롤모델로 삼고 싶었다. 자신의 화단을 가꾸듯 글밭 또한 늘 열심히 호미질을 하고 꽃을 심고 잡초를 뽑는 노작가의 힘은 그렇게 내겐 큰 기쁨이었는데 작년 연말 친정아버지를 암으로 보냈기에 그 아픔을 너무도 잘 아는데 작가마져 암으로 가셨다니 더없이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그래서 얼른 더 늦기전에 잡게 된 작품이 첫장편소설인 이 작품이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겨 있어 더 실감나게 그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작품이며 옥희도라는 환쟁이로 나오는 이가 故 박수근 화백을 모델로 삼았기에 그시대의 화가들의 궁핍한 삶 또한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다. 어디 전후의 시대라 넉넉한 것이 있으랴마는 한국전쟁으로 두 아들을 잃은, 그것도 딸때문에 참담하게 잃었다고 생각하는 엄마와 반은 쓰러진 고가에서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삶을 이십대의 시선으로 복잡하면서도 잘 그려내서 참으로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경아라 불리는 그녀는 대학에 떨어지고 한국전쟁 전 해에 아버지를 잃었다. 자신과 너무도 잘 통했던 아버지를 잃고 나니 자신의 반쪽을 잃은 듯 하였는데 그 다음해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도강을 하려던 오빠 둘이 끝내 도강을 하지 않고 집으로 왔기에 그들을 숨겨야만 했다. 그런데 그들에게 뜻하지 않게 큰집의 큰아버지와 진이오빠가 오게 되고 오빠들이 그동안 숨어 지내던 곳을 큰집식구들에게 내어주고 오빠둘은 다른 곳에 숨어야만 했다. 그때 마침 경아가 생각해낸 곳이 행랑채, 그곳은 너무도 오랜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어머니도 그녀의 뜻에 동의 하여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는 그곳에 오빠둘을 피신시켰다. 그런데 그날밤에 그 행랑채가 폭격을 당한 것이다. 아뿔싸, 어머니가 깨끗하게 다림질 하여 오빠들을 위하여 깔아준 하얀 홑이불위에 낭자한 오빠들의 붉은 피와 조각조각 흩어진 그들의 육신, 그 후로 어머니와 경아는 심하게 앓게 되고 어머니는 젊음을 유지하듯 끼던 의치마져 빼놓고 생활하게 되어 십여년 아니 이십여년은 더 늙어보이게 되었고 경아하고는 먼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손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눈빛 한 번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남남처럼 살아각데 된다. 오빠들이 폭격을 당하여 죽게 된 반쯤 허물어진 행랑채를 그래도 둔 채 고가는 그야말로 흉가처럼 그들에게 전쟁의 상흔 그대로 그녀들과 함께 하나가 되어갔다.

큰집의 도움도 마다하고 경아가 서울명동의 PX 초상화부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근근히 생활을 하게 되고 그녀는 그곳에서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자신의 상처도 치유하지 못하면서 그들과 함께 하루살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머니로부터 멀어져 가는 듯한 공허함을 채우지 못하던 때에 옥희도라는 일명 환쟁이가 초상화부에 들어오게 된다. 그는 다른 환쟁이들과는 다른 무언가 다른 아우라가 있다. 경아는 그에게서 때론 아버지 같은 때론 오빠들 같은 그런 그늘을 발견하고는 그를 사랑한다고 믿게 되고 그와 자주 어울리게 된다. 함께 자주 찾아가는 장난감 가게의 위스키를 마시는 침판지를 보면서 자신들 삶 또한 그와 진배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느날, 옥희도씨는 감기몸살로 일을 나올수가 없게 되고 그녀는 그를 좋아하고 치근대는 직장의 전장 태수를 보채어 그의 집주소를 알아내고는 함께 그를 찾아간다. 그곳에 본 모딜리아니를 닮은 부인과 그의 올망졸망한 다섯 아이들, 그녀는 그의 삶에서 자신이 누려보지 못한 무언가를 보게 되고 그를 더욱 사랑한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옥희도를 향한 그녀의 사랑이 진실이었을까. 옥희도를 그녀를 품어 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었을까.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초상화를 그리게 된 옥희도는 어느날 그녀에게 '나도 경아도 침판지가 돼 가는 느낌이 들지 않겠어?' 라고 하더니만 '사람이고 싶어, 내가 사람이라는 확인을 하고 싶어.' ' 내가 아직도 화가인가 알고 싶어.' 라 말하고는 얼마간 그림을 그리겠다며 일을 하러 나오지 않겠다고 한다. 그동안 그녀와 함께 보았던 누군가 태엽을 감아 놓으면 태엽의 힘만큼 위스키를 따라 마시다가 그 힘이 약해지면 서서히 행동이 둔해지던 침판지, 지금까지 그들은 돈의 노예처럼 누군가의 줄에 의해서 타의에 의해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전쟁후의 가난, 그곳에서 자신을 잃었던 옥희도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어 한다. 그리곤 경아에게 자신이 그녀를 품어 준것은 사랑해서가 아닌 아버지로 오빠로서의 그늘을 드리워 주었다고 하며 그녀가 태수와 잘되길 바란다, 

'이 드넓은 고가에 단 둘만이 살면서 우리는 애정이라든가 의무로 묶여 있지는 않았다. 차라리 우리는 다 같이 고가에 망령에 들려 있음이 분명했다. 나도 결국 누구 때문도 아닌 채 이곳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고가의 망령처럼 살아가던 그녀들에게 어느날 찾아온 큰집의 진이오빠는 말했다. ' 너의 어머니는 이미 이 고가의 일부야. 그것이 그분의 가장 편한 처신이람녀 우린들 어쩌겠니? 그렇지만 너까지 이 고가의 일부이기에는 너는 너무 젊고 발랄하다. 그러니 어머니에 대한 의무에 너를 얽매지 말란 말이다.' 오빠 둘을 삼킨 전쟁과 고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라는 큰집 오빠의 말도 그렇고 다른 이들의 조언도 있었지만 그녀 또한 점점 어머니와 함께 고가의 일부가 되어 가는 것처럼 그곳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무심한 어머니에게 반항을 하듯 그녀는 옥희도씨의 집으로 향하고 모딜리아니를 닮은 부인에게 하루밤 재워달라고 한다. 그곳에서 옹기종기 모여자는 가족을 보며 자신이 누리지 못하고 있는 그 무언가를 이들은 가난해도 모두다 누리고 있는 듯하여 쓸쓸함에 깨었어도 일어나지 못하고 뒤척이다 늦잠에서 깨어난 그녀에게 옥희도의 부인은 어머니를 꼭 찾아뵙고 출근하라고 한다. 보기 흉하다며 의치를 끼라고 해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늘 김칫국에 의치를 뺀 흉한 모습으로 자신을 대하던 어머니가 자신이 하룻밤 외박을 한 사이 심하게 앓고 있다. 거짓말처럼. 어머니의 폐렴이 자신탓인양 전전긍긍하다 약국을 찾고 병원을 찾아 보지만 어머니는 위독한 상태이고 끝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만다. 그 순간에 태수의 형수가 결혼승낙을 받으러 왔다가 그녀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고는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의지하고는 상관없듯이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창밖의 은행나무를 보고 있다가 오래전 옥희도씨의 집을 찾았다가 보게된 그의 그림속 '나목' 과 나목 주위에 그려진 여인들을 떠올리고는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옥희도씨는 그녀에겐 은행나무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전쟁전 아버지의 죽음과 전쟁이 빼앗아간 오빠 둘과 죽은것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아왔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남긴 흉가와 같은 고가의 그 모든 역사를 간직하고 모듬어 주었던 살아있는 화석과 같은 든든한 그늘이었던 은행나무와 같은 옥희도씨, 그가 죽은후에 생전에도 열지 못했던 전시회가 열린다는 광고를 보고는 그녀는 그곳에서 달려가고자 한다. 과거의 상흔처럼 어머니와 경아의 사이를 갈라 놓았던 고가마져 자신의 손이 아닌 타인인 태수에 의해 허물고 반듯한 양옥으로 새로운 집을 건설하였듯이 이제 그녀는 옥희도의 그늘도 아닌 그녀만의 뿌리로 꿋꿋하게 서는 나무게 되어야 한다. 오빠 둘이 폭격에 의해 죽고 난 후 어머니가 그녀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듯이 세상과 결별하며 살았던 세월동안 아무 그늘없이 혼자 흔들려야 했던 경아, 어머니의 죽음은 그녀가 과거와 결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녀가 흔들리는 시간을 함께 곁에서 아픔을 함께 나누고 아버지의 그늘처럼 그녀를 품어 주었던 옥희도의 나목은 지금은 잎이 모두 떨어져 헐벗었지만 꿈을 간직한 채 희망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본 공허함이 나니 희망을 간직한, 초록의 잎들이 무성하게 달릴 그 푸르른 여름날을 꿈꾸며 나목은 그의 화폭에 담겨졌을지도 모르고 전후의 가난과 상처가 영원할 수는 없다. 무엇이든 세월이 가면 변하게 되고 아픔의 상처 또한 흐려지게 된다. 

소설속에는 이런부분이 나온다. ' 나는 고치를 벗고 훨훨 날개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날개를. 나를 꼼짝 못 하게 가둔 두터운 고치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는 날개를 갖는 것이다. 날개를. 이윽고 나는 실제로 날개를 가진 듯이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내 비상을 막는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나는 완전히 체중을 잃었다.' 옥희도의 집을 찾았던 그녀가 고치를 벗어나 날개를 갖게 되고 나비가 되는 듯한 과정을 그린 이 구절은 다른 작품인 <환각의 나비>에서 비슷한 부분이 나오는 듯 하다. 이 부분을 좀더 세밀하게 단편으로 그려냈는지도 모른다. 기억상실증에 걸렸지만 절집에서 보살일을 하면서 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런 고치를 벗어나 날개를 얻고는 훨훨 나는 나비를 보게 되는 소설인데 작가의 작품에서는 모성, 여인의 삶이 점점 주를 잡아간다. 이 작품 속에서도 반쪽을 잃어버린듯이 살아가는 의치를 뺀 경아의 어머니가 나오는가 하면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이십대 젊운 여인인 자신이 나오고 옥희도씨의 부인 같은 경우에는 외모는 모딜리아니의 그림속 모습같지만 가난으로 그녀의 모습을 잃었다. 전쟁은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앗아가기도 하고 흐려놓기도 하지만 '모성본능' 만은 어쩌지 못한다. 경아의 어머니가 갑자기 급성폐렴으로 돌아가시게 된 것도 그녀에게 무심한 듯 했지만 그녀가 외박을 하고 집을 비운 날 어머니는 집밖에서 그녀를 한없이 기다렸을 것이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와 오빠를 잃어 의지하려던 자신의 그늘과 같은 남자의 그늘보다는 어쩌면 가난이나 전쟁의 상흔등 모든것을 품어 준것은 '어머니의 품' 이었다. 손톱은 새빨간 메니큐어를 칠하고 날마다 새로운 옷으로 자신을 치장하며 검거나 하얗거나 가리지 않고 남자라면 사족을 못쓰던 다이아나 김마져 두 아들의 든든한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 아이들을 위하여 그녀는 단단한 그늘이 되기 위하여 어쩌면 자신을 날마다 치장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옥희도의 아내라고 떨어지는 여인이 절대 아니다. 가난하지만 화가인 남편에게는 가난을 느끼지 못하고 그림에 열중할 수 있도록 늘 배려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그 또한 어머니의 힘이기 품이었다. 그렇게 경아 또한 자신을 품어주지 못한 어머니를 미워하듯 했지만 그녀 또한 어쩔 수 없는 아이들의 어머니로 거듭나 이젠 뒤안길에서 그 모두를 아우르는 여인이 되었다. 한국전쟁이후 그 어려운 터널을 꿋꿋이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강인한 어머니들의 힘이었는지 모른다. 환쟁이 옥희도씨의 '나목' 에 그려진 여인들처럼 아이를 업거나 물건을 이고 있는 여인들이 있었기에 그 시대를 큰 아픔이지만 무사히 이겨내며 오늘날을 만들어오지 않았을까.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더 읽고 싶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계기로 읽지 못한 작가의 작품들을 읽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y******2 2011.02.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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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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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하면 나는 "미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설레이며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작가 박완서가 아닌 "미망"의 태임이라고 말하고 다녔을 정도로 그녀는 나의 이상형이 되었다. 이런 작품을 나에게 접하게 해준 작가의 초기작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나목을 접하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은 6.25전쟁 이후의 이야기다. 무언가 역동적으로 처절한 삶을 그려낼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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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하면 나는 "미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설레이며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작가 박완서가 아닌 "미망"의 태임이라고 말하고 다녔을 정도로 그녀는 나의 이상형이 되었다.

이런 작품을 나에게 접하게 해준 작가의 초기작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나목을 접하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은 6.25전쟁 이후의 이야기다. 무언가 역동적으로 처절한 삶을 그려낼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옆집 사람을 보는 것과 같이 너무 잔잔하게 그리고 쓸쓸하게만 그려졌다.

문학적 가치가 높다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싱겁게 다가왔다.

 

b*****0 2009.11.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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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벌거벗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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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폭격으로 죽은 오빠로 인해 엄마는 실성을 하고 생기가 없이 미치고 만다. 한 순간에 가장의 노릇을 하게된 주인공 이경은 미군부대에서 미군의 초상화를 그리는 가게 점원으로 일을 한다. 여기서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진짜 미술가 옥희도씨를 만나게 된다.   명동 거리 상점의 태엽감은 침팬지 - 아무런 생각없이 단순히 반복하는 춤을 보며 자기의 모습과 같다고 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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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폭격으로 죽은 오빠로 인해 엄마는 실성을 하고 생기가 없이 미치고 만다. 한 순간에 가장의 노릇을 하게된 주인공 이경은 미군부대에서 미군의 초상화를 그리는 가게 점원으로 일을 한다. 여기서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진짜 미술가 옥희도씨를 만나게 된다.

 

명동 거리 상점의 태엽감은 침팬지 - 아무런 생각없이 단순히 반복하는 춤을 보며 자기의 모습과 같다고 느끼는 이경과 옥희도씨

가짜로 그린 미군초상화보다 진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옥희도씨와 오빠를 잃고 아픈 엄마를 돌보아야 하는 이경이 서로 끌리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데

 

고독한 그들이 찾은 정답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가족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처녀 이경과 유부남 옥희도씨의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이 아니라 같은 처지에서 오는 정신적인 사랑일 것이다.

일탈과 방황을 하던 이경은 결국 태수와의 결혼하게되고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뒤 폭격맞은 고가의 철거한다.

 

옥희도씨는 결국 진짜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옥희도씨가 그린 그림은 그림을 그릴때 보았던 말라비틀어진 죽은 고목(枯木)이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벌거벗은 나무" 나목(裸木)"이었다.

j******k 2009.07.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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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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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 중 하나가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무심히 읽어 버렸던(?) 책들 중에는 그 나이때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어느 정도 세상일에 문리가 튼 지금에야 깊은 공감을 표할 수 있는 것들이 꽤 있다. 이 책도 내가 워낙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에 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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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 중 하나가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무심히 읽어 버렸던(?) 책들 중에는 그 나이때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어느 정도 세상일에 문리가 튼 지금에야 깊은 공감을 표할 수 있는 것들이 꽤 있다. 이 책도 내가 워낙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에 읽었을 것이다. 그때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 속에서 경아라는 인물만 보였다. 청춘의 시작에서 아버지와 오빠 둘을 잃고 매일 죽고 싶다, 살고 싶다를 되풀이해서 외치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춘의 모습이 너무나 안스러웠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만난 나목에서는 생떼같은 아들을 잃은 경아 어머니의 슬픔, 가족을 위해 헌신해 온 삶과 예술, 그리고 새로운 사랑 앞에서 갈등하는 예술가 옥희도의 모습, 태수, 형수, 진이오빠, 미숙, 다이애나 등 주변 인물들의 모습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쟁은 물질적, 경제적인 피해뿐 아니라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접수하는 냉혈한이다. 작가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장편의 글을 쏟아낼 수 있는 힘을 준 것도 전쟁에 대한 미움과 불안의 힘이었으리라. 그리고 가장 비싸게 팔리는 화가 중 하나인 박수근씨의 스산하고 신산스런 작품과 대비시켜 전쟁의 위험을 다시 한 번 경고하는 것이다.
i****3 2005.04.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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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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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裸木). 글자 그대로 '벌거벗은 나무'이다. 전쟁 중 어려운 시절에 앙상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 바로 나목이다. 나목을 읽기 전부터 박수근 화백을 모델로 한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주인공 이경이 옥희도의 유작전에서 고목이 아닌 나목을 보는 대목에서 어렵지 않게 미술숙제를 하며 찾아보았던 김수근
"나목" 내용보기
나목(裸木). 글자 그대로 '벌거벗은 나무'이다. 전쟁 중 어려운 시절에 앙상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 말이 바로 나목이다. 나목을 읽기 전부터 박수근 화백을 모델로 한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주인공 이경이 옥희도의 유작전에서 고목이 아닌 나목을 보는 대목에서 어렵지 않게 미술숙제를 하며 찾아보았던 김수근 화백의 그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책 속의 상황과 실제 내가 아는 그림이 겹쳐져 보이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한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이경과 옥희도는 모두 우울한 빛깔로 다가온다. 이경이 입은 코트를 회색이나 뿌연 황토색으로 상상하게 되고 옥희도의 그림도 왠지 칙칙하고 무거울 것이라고 느낀 것은 책 속에 전쟁중의 황폐한 모습과 우울했던 서민들의 모습이 그대로 스며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쟁 때 두 오빠가 폭격으로 죽은 것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느끼며 살아가는 주인공 이경과 죽은 두 아들의 환영에 사로잡혀 사는 어머니, 그리고 진정한 화가가 되기를 원하면 서도 미군 매점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살아가야 하는 옥희도의 모습 등 나목에서 그려지는 인물들의 모습은 모두가 전쟁이라는 황폐한 사회적 상황이 만들어 낸 것이다. 물기 없고 팍팍해져만 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황량한 들판을 상상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그 상황을 이겨내고 길을 찾았다. 이경은 태수와 결혼해서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나가고 옥희도는 초상화 화가에서 진정 자신이 원하던 화가로 거듭나 작품을 그려낸다. 그들이 다시 만나는 유작전의 나목, 그것은 책에 나와있듯이 다 죽은 고목이 아니라 싹틔울 날을 기다리는, 아직은 앙상하지만 희망을 갖고 있는 나목이었던 것이다.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목으로 살아있던 그 때를 아련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y****y 2003.12.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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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연' 하지만 그래도 희망차다
"'부우연' 하지만 그래도 희망차다" 내용보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난 후 사실 잘 정리가 되질 않았다. 20대의 자아 찾기에 관한 거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예술가에 대한 사랑, 아니면 전쟁의 후유증 혹은 아픔...이런 이야기가 동시에 제시가 되어 있어 도대체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6. 25 직후니 꽤 옛날 이야기인데, 시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 마음에 더 맞춰져
"'부우연' 하지만 그래도 희망차다" 내용보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난 후 사실 잘 정리가 되질 않았다. 20대의 자아 찾기에 관한 거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예술가에 대한 사랑, 아니면 전쟁의 후유증 혹은 아픔...이런 이야기가 동시에 제시가 되어 있어 도대체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6. 25 직후니 꽤 옛날 이야기인데, 시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 마음에 더 맞춰져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서... 화가 옥희도의 그림을 보면서 생명력이 없는 고목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잎이 생길 나목을 생각하는 장면에서는 미래에 대한 약간의 희망이라도 보여주는 거 같아 내 마음이 밝아지기는 했다. 가장 흥미가 있었던 부분은 박수근 화백과의 관계인데,난 그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읽었다가 나중에 박완서님의 연보를 보고 알게 됐다. 그럼 옥희도의 모델이 박수근 화백이란 말인가? 그러고보니 마지막에 나오는 그림이 "나무와 여인"이었는데, 박수근 화백의 작품이다. 주인공 이경이 옥희도를 사모했듯이 박완서님도 박수근 화백을 사모했을까?...무척 궁금하군.. 박완서님은 박수근 화백을 보면서 그리고 그의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나무와 여인네들에 관한 그림을 보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키울 수 있었나보다.
h***6 2002.12.1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