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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고구려 땅을 수복하고자 했던 의지 그 자체, 천추태후
'야심'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크게 두 가지의 뜻을 살펴보면 순하게 길이 들지 않고 걸핏하면 해치려는 마음, 그리고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욕망이나 소망이 있다. 여느 단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 듯 비슷한 뜻을 지닌 것이 아닌 해석하기에 따라 상반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치 책을 펼쳤을 때와 마지막장을 읽고 책을 덮을 때의 느낌처럼, <고려사>에 기록된 짧은 몇 줄 속의 천추태후와 그 짧은 몇 줄에 숨겨진 고려를 살아간 한 여성의 삶 속에서의 헌애, 천추태후처럼 말이다.
천추태후를 어떤 사람이냐고 한다면 분명 뛰어난 미모와 여성스런 자태를 지님과 동시에 현명함과 출중한 무예실력을 갖춘 당대의 여걸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기 마련인 듯하다. 천추태후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책보다 일찍이 알려져 온 2009년 새해벽두에 시작되는 드라마 <천추태후> 속 강렬한 여장부로서의 그녀의 면모를 먼저 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천추태후'의 틀 안에서 태후로서의 강인한 여걸의 면모, 고구려의 땅을 되찾겠다는 열망에만 치중하고 있지 않았다.
헌애는 어렸을 적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할머니인 신정왕후의 손에서 자랐다. 오남매 중 단연 총명하고 무예가 능해 예사롭지 않았던 그녀는 신정왕후가 들려준 고구려 이야기로 일찍이 신라가 당과 연합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잃은 옛 고구려 땅을 수복해야한다는 의지를 품게 되었다. 경종의 눈에 들어 왕후가 된 후, 누구보다도 옛 땅 수복에 많은 의지와 힘을 보탰으며 성종을 거쳐 아들 송이 목종으로 보위에 오르고 나서도 꾸준히 고구려의 기상을 잃지 않도록 상기시켜준 것이 바로 천추태후였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신중했고 현명한 묘책으로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방안을 모색했으며, 피를 부르는 전쟁으로 백성들의 헛된 희생을 용납지 않았다. 유명한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 한편에는 천추태후가 홀로 거란의 왕을 찾아가 담판을 짓는다. 천추태후이고 여성임을 떠나 고려라는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고 옛 고구려의 영토를 되찾아 한민족이 어울러 살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진정한 후손의 한 사람이 행할 수 있었던 대단한 용기였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 일찍이 지아비를 여읜 과부의 외로움은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게 하고, 결국 그로 인해 일생의 목표와 아들을 잃지만 그녀의 권력에 대한 과욕이 불러온 것은 아니다. 그저 그녀는 왕후로서, 왕가 사람으로서 고구려의 후예인 고려가 해야 할 일을 나서서 할 수 있는 위치에서 할 일을 했을 뿐, 고려의 일반 백성이었더라도 나라를 위해 백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해냈을 것이다. 왕후이고 태후이기 이전에 한 여자라는 사실, 그리고 평범한 여자의 사랑이 한낱 권력의 입에 오르내리며 초래된 비극은 아닐까.
딱 1000년 전인 1009년에 목종이 폐위되고 고구려 수복의 큰 희망도 함께 꺼졌다. 보란 듯이 논란이 되고 있는 천 년 후, 동북공정의 현실과 눈앞의 권력을 두고 싸우기만 하는 정치계의 혼란만이 가득하다. 이런 때, 천추태후라는 인물의 기상을 이을 수 있다는 것이 희망으로 다가온다. 천추태후와 같은 한 사람의 영웅이 나타나기 보다는 천추태후의 열정과 의지, 올바른 역사 인식으로 우리 모두 천추태후와 같은 인물이 되어봄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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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 그녀는 고려시대에 삶을 살았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보다도 훨씬 더 앞을 내다볼 줄 알았던 최고의 여걸이었다. 아마도 현재에 활동을 한다면 우리의 정치, 경제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소설로 다시 한번 천추태후에 대해 재조명을 하게 되므로써 그녀의 진실을 역사를 우리에게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판단을 해보는 시간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천추태후와 함께한 인물을 보면 신정왕후(천추태후의 할머니), 경종(천추태후의 남편), 목종(경종과 천추태후의 아들), 김치양(금강스님,목종을 가르쳐준 스승, 신라왕족출신), 헌정왕후(천추태후의 동생이며 경종의 두 번째 아내), 성종(천추태후의 오라버니), 안종 욱(태조 대왕의 적손으로 후에 헌정왕후 관계를 갖게됨), 대량원군(안종 욱과 헌정왕후의 아들), 서희가 역사속에서 살아 숨쉰다. 천추태후는 신정왕후에 의해 성장을 하게 된다. 신정왕후는 황주 사람으로 삼중대광 황보제공의 딸로 태어났다. 태조가 서거한후 40년을 더 살았으며 며느리인 선의왕후가 일찍 서거하는 바람에 성종과 손주들에 대해 많은 애정을 쏟았다. 신정왕후의 바른 가르침과 인성교육으로 인하여 성종과 천추태후, 헌정왕후가 바르게 성장하고 또한 우애가 깊고 역사에 대한 원대하고 야심찬 꿈을 희망을 꾸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열다섯에 이복사촌인 경종과 혼인을 하고 열여덟에 혼자가 되었지만 그의 아들 목종을 왕위로 계승시킨 그녀는 그 얼마나 대단한가 말이다. 그녀는 문무를 모두 갖추고 외교정치 또한 탁월했지만 역사속의 사건이 그녀의 꿈을 실현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녀의 꿈이 실현되었다면 아마도 중국과 우리의 관계가 지금 어떻게 변해져 있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천추태후가 김치양과의 관계로 인해 가장 큰 오점을 남겼지만 그녀의 외교정책이 잘 이루어졌다면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수치스러운 사건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믿었던 모든 신하들이 등을 보였지만 그의 이상이자 이념은 후세에도 늘 바라는 염원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 시대로 돌아가 다시금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문제 해결을 하루 빨리 풀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의 원인을 재해석하고 반성을 통해 현재의 문제해결을 찾는데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천추태후가 우리에게 바라는 염원이고 희망이 될 것이다.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보고 자신의 죽어가는 것을 알지만 결코 피하지 않고 담대하게 받아들였던 그녀처럼 우리 후손들도 고려시대 이루어야 할 과제를 풀지 못했던 것을 하루라도 빨리 원상복구하는 새로운 역사를 기대해본다. 서희가 거란이 80만대군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침략하려고 할때 외교적인 담판을 내렸던 그 순간의 용기와 기개를 떠올려 보면서 다시한번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좋은 결실을 꿈꾸면서 끝을 향해 읽어갔지만 결국 그녀도 그의 아들도 마지막으로 함께 사랑을 나눈 김치양과 그의 아들 그녀의 백성들이 어쩌면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리고픈 마음이 들었다. 일본의 독도 왜곡보다도 중국의 동북공정의 파장은 그 규모가 훨씬 더 심각하고 우리의 뿌리를 도둑 맞고 우리의 조상을 지키지 못하는 사태를 낳게 된다. 한국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탈바꿈되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뚫고 파헤쳐지는가 말이다. 자주적이고 올바른 역사를 재창조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알고 배우고 실천하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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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역사서는 잘 접해보지 않는 내가 천추태후란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냥 드라마 천추태후를 통해 주워들은 내용으로 어설픈 편견을 갖고 있었다. "천추궁에서 섭정하며 권력을 움켜쥔 여인, 야심 찬 정치가인가! 권력을 등에 업은 요부인가!" -> 책의 타이틀또한 나의 편견을 굳게 해주는데 한몫했다. 무엇보다도 근친혼인과 불륜이란 대목들이 나에게 않좋게 인식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나 나의 편견뿐이였다는걸 알게 되었다. 물론 다들 자신들이 채택한 설로 풀어나가다 보니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책의 정설을 나는 믿고 싶다.
진정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한 여인! 그 누구보다 넓은 혜안으로 나라의 장래를 내다본 여인!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력을 갖췄던 여인! 그녀의 그 북벌의 꿈이 이루어졌다면 그래서 우리 나라의 국경이 북으로 더 뻗어나갔었더라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고구려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계획하고 실행하는 그 단계에서 신하들의 반대로 그 꿈을 저버려야만 했던 그 안타까운 현실...읽으면서 내가 다 가슴이 답답했다. 왜들 그러는지..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려워서..지금의 상황에 안주하고자 왕과 모후를 유배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폐위된 왕을 후한을 위해 죽이고... 결국 그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대동강 이남까지로 만족해야만 한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렇기에 나는 그후 그녀의 그 꿈을 이어가기 위해 효종이 오랜 세월을 준비해서 그 꿈을 준비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몇장 넘기자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그 꿈도 사라지고 만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참으로 파벌도 많고 정치세력이 참 더럽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지금의 정치상황을 봐도 한숨밖에 안나온다. 두눈이 감긴다. 꼴도보기 싫다. 국민들 위해 일하라고 뽑아놨더니 자기들끼리 편갈라서 싸움이나 하고...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목종과 천추태후를 왕좌에서 내리기 위해 신하들이 조작했던 무수한 소문들... 그 소문들..그 말들 때문에 민심도 잃고 충신도 잃게 되었다. 어쩜 이건 지금의 현실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지금 대통령에 대해서 많이들 안좋게 말하지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나로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 기자들이 적어주는데로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는데로 나도 모르게 휩쓸리다보면 이것도 맞는거 같고 저것도 맞는거 같고... 대통령이 뜻이 있어 이렇게 하고자 하고 싶어도 신하들이 그만큼 따라와주지 못하면 그 뜻은 좋은 의도였더라도 불순한 의도로 탈바꿈 된다. 옛날에는 신하들이 말로서만 소문을 냈다면 지금은 말과 각종 언론매체들로 소문을 낸다. 좀 더 지능적으로^^ 그냥 권력의 최고 위치에서 모든걸 다 가진듯 보여도 그 모습이 애처롭다고나 할까... 나름대로 자신도 생각이 있고 또 그만큼 고민도 하고 사전 조사도 했을 텐데 그 뜻을 잘몰라 신하들과 국민들에게 외면받고 그 뜻이 사라질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이 책을 읽으면서 옛날의 정치세계와 지금의 정치 세계가 자연스레 매치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옛날은 좀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구축했다고 한다면 지금은 카메라가 있든 없든 대놓고 싸우기도 하고 뒤로 구린 냄새도 풍기고 앞뒤에서 할거 다한다고나 할까^^; 참 씁쓸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한 뜻을 품고 달려가기가 이렇게도 힘든가... 모이기만 하면 당파싸움이 생길까... 우리나라 사람의 자질인가... 이런 나의 의문들에 그 어떤 해답도 주지 못한 채 그저 안타까움으로 책이 끝나버렸다.
그리고 자세한 내막을 몰랐을 때는 근친 결혼에다 불륜이라 안좋게 보였는데 그게 왕실을 강화하기 위한 근친 결혼이였고 사연있는 불륜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리 나쁘게 보여지지만은 않았다. 이래서 그럴수 밖에 없었구나 하고 이해가 되는 것이였다. 다만..그 불륜으로 인해 북벌의 꿈이 사라진거 같아 좀..그렇긴 한다. 만약 김치양과 불륜의 관계에 빠지지 않았더라면..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역사서는 고리타분할꺼 같아 잘 안읽는 분야였었는데 이 책은 읽으면서 참 재밋었던거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도 바로 알고^^ 이걸 읽기 전까지 내가 좀 왜곡해서 알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있었다. 신라가 삼한을 통일했다고 알아왔는데 이책을 보니 삼한을 통일한게 아니라 말아먹었다. 당과 손잡고 통일이란 명목으로 땅을 뚜욱하고 준 것이다 ㅡㅡ; 그게 무슨 통일인가! 괘씸한 신라! 명예를 위해 나라 땅을 팔아먹었다. 안그래도 작은 우리 나라 더 커질 수 있었는데! 또한 몽골은 우리 형제다^^ 몽골의 시조모인 알랑고아는 고주몽의 땅이라는 학설이 몽골에서는 정설로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
그리고 중국이 1983년부터 동북공정이라 해서 자국의 영토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는 자국의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작업을 무려 20년 동안 했다고 한다. 그 작업 때문에 고구려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이나 왜그래 땅가지고 사람 속을 뒤집어 놓나 모르겠다. 중국이 동북 공정 작업을 하기 천년전이 983년에 울 천추태후님께서 북벌의 꿈을 이루셨다면 중국사람들이 고구려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지도 못했을 것인데... 더 안타깝고 더 가슴이 미어진다.
저자 신용우 분께 너무나도 감사드린다.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알게 하시고 또 이렇게나 재미있게 깨닫게 해주셔서^^ 어떻게 그 조각조각 난 역사를 가지고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건지 너무 신기하다.
마지막으로 여인으로서 무술, 활쏘기, 말타기 등에 뛰어나고 넓고도 깊은 혜안으로 요동 땅을 우리 땅으로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여 천년의 한을 미리 예측하신 그 놀라운 지혜를 가지신 천추태후님께서 최항과 채충순, 황보유의, 강조의 불손한 계획을 조금이라도 빨리 예측하셨더라면 그래서 그 북벌의 꿈을 이루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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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TV 역사드라마의 패턴이 바뀌었다. 천편일률적으로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권력 다툼이나 여인네들의 궁중 암투를 그리던 것에서 벗어나 고구려와 발해라는 대륙을 호령했던 나라들을 그 소재를 확대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자기땅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자신들의 역사라는 말도 안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기인한 바가 크긴 하지만 그러한 드라마들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자긍심을 보여주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TV 역사드라마들은 또 한번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것은 그저 언제나 역사의 뒤편에 서서 주변인으로 비추어졌던 여성들에 대한 재해석이다. 물론 권력의 중심에 서있던 여성들을 다룬 드라마가 없진 않았지만 있다고 해도 대부분 좋지않은 말로를 보여준 인물들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천추태후'나 '선덕여왕'등 직접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여걸들의 모습은 분명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신용우의 역사소설 <천추태후>는 실제 나이 어린 국왕을 대신해 그 모후로서 권력을 쥐고 섭정을 했던 헌애왕후 즉 천추태후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천추태후는 역사속에서 여걸이라는 이미지와는 다소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조선초에 쓰여진 <고려사>에는 경종의 왕후였지만 경종 사후 천추궁이라는 곳에서 머물며 김치양이라는 인물과의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를 차기 국왕으로 만들려 했던 요부이자 권력에만 눈이 먼 여인으로 천추태후를 묘사하고 있다. 오랫동안 그렇게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던 천추태후가 천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재평가받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저 눈앞의 권력을 쫓던 요부였을까 아니면 진정 고토회복을 꿈꾸는 진정한 여걸이었을까.
천추태후가 어떠한 인물이었나 평가하기 이전 당시의 정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듯 싶다. 태조 왕건과 함께 후삼국 통일에 기여했던 많은 호족들은 대부분 광종대에 숙청되고 얼마 남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경종대에 이르러 비로소 움츠려든 권력에의 의지를 표방하고 반격에 나서기 시작한다. 그러한 혼란의 시기 경종이 맞이한 왕후가 헌애왕후이며 경종과의 사이에서 낳은 목종의 모후가 되는 천추태후가 된다. 그녀의 친동생 역시 경종에게 시집오게 되어 헌정왕후가 되면서 자매가 모두 경종의 왕후가 되지만 경종은 호족 세력들의 견제에 부딪히면서 정치 자체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정사를 게을리하게 된다. 결국 그는 그의 사촌동생이자 천추태후의 친오빠인 성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숨을 거둔다.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통정하고 복잡한 혼인관계는 태조 왕건이 호족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펼쳤던 혼인정책에서 기인한다. 왕건은 29명의 부인과 30명이 넘는 자식을 남겼고 왕건강화를 위해 족내혼을 적극 장려했다. 천추태후 자매가 경종에게 시집가게 된 이유도 결국 왕족간의 세력결집을 위함이기도 했다. 성종은 즉위 이후 유교적 이념아래 송과의 적극적인 외교를 펼치고 거란과 대립하게 되고 마침내 거란이 칩입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천추의 한을 풉시다."
역사의 기록에 의해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릴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소설속 효종의 표현처럼 그녀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유교사상과 중국에 대한 사대가 국가이념이었던 나라가 조선이었기에 그들이 쓴 고려의 역사 역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방향으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고 천추태후에 대한 기록 역시 그러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볼 대목이기도 하다. 목종의 죽음과 천추태후의 실각이 서기 1009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천 년전이다. 그녀 스스로가 천추태후라 부르기도 했던 것처럼 천 개의 가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되는 것이 어쩌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것으로 보여지는 것 같다.
역동적이고 자주적인 고려인의 모습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치열한 경쟁만이 존재하는 오늘날의 국제 정세에서 과연 실리적인 외교가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을 갈망했고 권력만을 쫓던 요부와 시대를 앞서갔던 야심찬 여성리더라는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천추태후에 대한 재조명은 편협한 역사관에서 우리를 깨어날수 있게 해주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는듯 보여진다. 다만 그녀의 쓸쓸한 퇴장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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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친정엄마하고 난 얼마전부터 1월에 상영된 k**에서 나오는 것을 열심히 상영하고 있다. 책을 읽음과 동시에 난 캐스팅에 채시라만큼 잘맡은 역활이 없음을 만족하고, 그녀의 카리스카가 천추태후가 되고도 남음을 누누히 강조하고 주의사람들에게 어필했을 정도다. 항상 tv가 상영된 그쯤이면 이에 관한 도서들이 남발하고 있다. 천추태후도 그중 하나다. 얼마전까지 신윤복이 한창 그녀에 대해 알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천추태후에 대해서 그녀가 정말 누구인가? 고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또한 관심이 가져진다. 책에서 그녀의 기록을 살펴보자니, 상반된 내용으로 고려사에 적혀져 있다. "태후 황보씨가 김치양과의 불륜에서 나은 아이. 그아이를 왕위로 복권시킬려고 움직인 여인. 대량 원군 순을 핍박하여 중을 만들었다", 너무나 간단하기 나와있다. 정말 그런것인가. 내가 이것만의 이력만 보더라도 뭔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옛 고구려의 영토지배를 꿈과 힘있는 고려, 왕권의 확립을 바랬지만,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터다. 아마 목종이 그녀의 피보다는 연약함을 더 받아왔는지도 모른다. 책으로 통해 tv를 통해서 천추태후가 또 어떤 모습을 바뀌어갈지 천년이 지난 오늘날 그녀의 역사를 새로운 모습으로 보일 것이 자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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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란 그런 것이기에.. 섣불리 역사 속 사건들과 인물들에 대해 논할 수 없는 것이다.
고려사에 실린 천추태후에 관한 기록은...
“고려 시대 경종의 왕후이자 목종의 모후, 천추궁에서 섭정하며 권력을 움켜쥔 여인, 그리고 김치양과의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로 왕조 전복을 꿈꾼 요부." 이라 하며 짧게 그녀에 대한 간단히 전하고 있다. 진실로 천추태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불륜녀? 권력에 눈먼 왕후?
아니면 신용우의 소설 <천추태후>에서와 같이 요동 정벌을 통해 고구려 계승을 꿈꾸는 고려 최고의 여걸?
후자이길 바래본다. 아니 후자일 것이다. 천추전을 건립하고 단군와 고구려를 기리며, 고구려의 혼을 이어받아 옛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 지배를 꿈꾸었던 그녀이기에.. 분명 그녀는 힘있는 고려, 자주적 정치를 위해 노력했던 고려의 왕후이자 태후였을 것이다.
KBS에서 2009년 새해부터 만나게 될 드라마 <천추태후>를 보기 앞서 읽게 된 소설 <천추태후>..
읽는 내내 천추태후로 불렸던 헌애왕후 황보수를 향한 애정이 솟아오름과 동시에 그녀가 계획했던 요동 정벌이 실패로 끝나고 그녀마저 악랄한 왕후로 기록된 채 역사속으로 사라진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천추태후의 원대한 꿈이 이루어졌다면 현재의 우리나라는 어떠한 모습일런지..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더 강한 힘을 가진 나라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얼마전 한국사전이란 프로그램에서 천추태후의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새로이 해석하게 된 그녀에 관한 이야기들을 신용우의 소설 <천추태후>에서 그 시대의 상황과 그녀가 겪게 되는 실제 속으로 빠져들어 만날 수 있었다.
역사를 주제로 한 소설은 역사 왜곡을 두고 말들이 많다. 그러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바른 역사관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저자의 약력을 보았을 때 그동안 천추태후의 진실에 대해서 방관하며 소홀히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부디 드라마 <천추태후>에서는 단지 흥미를 높이기 위한 과장된 묘사와 역사 왜곡으로 그녀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뺏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소설로 만나게 된 <천추태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보며 자주적이고 힘있는 국력의 필요성을 다시금 느껴본다.
세월은 기다리지 않고 흐른다. 다만 지난 세월을 그리워하며 현재를 탓하는지, 아니면 오는 세월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고 그에 맞게 인생을 설계하는지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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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엄청나게 흥행을 하고 아시아 전역에 한국음식을 알리는데 큰 역활을 했던 드라마 '대장금'이 있었다. 하지만 그 대장금이 역사에는 한 줄 밖에 기록된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을 많지 않다. 역사 속에 한 문장의 글이 당대 최고의 문화 컨텐츠로 탈바꿈하였던 것이다. 그렇듯 현재 야사에 한 문장으로만 남아있던 글이 다시한번 부활을 하게 되었다. 그 이름은 천추태후.. 고려 목종의 어머니 이며 천추전에서 한 시대를 주름 잡았던 여장부다. 태조 대왕의 아들 대종의 딸로 5남매였고 어렸을 때부터 동생인 헌정왕후와는 다르게 사냥과 무예를 좋아하여 오빠들과 함께 지냈다. 그러나 아버지가 당파의 자손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므로 그녀의 일생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할머니셨던 신정왕후를 통해서 그녀는 고려가 정신적으로 근원을 삼고 있는 고구려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게된다. 그리고 고구려가 왜 사라지고 대동강 이북의 땅을 다 내어주고 굴욕적으로 신라가 통일을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고려가 저 땅들을 수복하기 위해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그녀가 고려의 왕이 었다면 역사가 달라졌겠지만 그녀는 여자이다보니 그녀가 직접나서서 할 수 있던 것이 별로 없었다. 자신의 남편인 경종이 죽은 후 황주로 내려가 천추전이라는 제단을 쌓는다. 바로 자신들의 고구려의 시조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제단이다. 이런 것을 보아도 분명 그녀의 의지는 완강했다. 고구려때 빼앗긴 저 만주 벌판을 찾고자 하였다. 거란과의 담판에서도 나오듯이 그녀는 이미 할머니와의 토론시간때에 마음속에 미래의 고려의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것이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또한 이 책의 교훈인 것 같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 것들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말아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된 뒤에도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그리고 목종이 수군을 증강하는 명을 내리면서 그 분위기는 한것 높아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세력이 위협 당하는 것을 느낀 권력층은 결국 목종을 제거하기에 앞서고 천추라는 말처럼 1000년의 한을 품은 그녀의 꿈은 또 한번 한으로 남게 되어 버린다. 이처럼 여자의 몸이지만 나라를 생각하며 민족의 혼을 생각하던 천추태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게 된다. 이 책은 야사에서 요부로만 알려저있는 천추태후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역사관으로 우리를 맞이하고있다. 더이상 외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급급했던 민족이 아닌 중원과 만주 벌판을 꿈꾸며 살았던 고려의 사람들. 지금도 그 땅을 우리가 다스리지 못하고 있지만 대륙을 호령하려던 그 혼만큼은 우리가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그리고 우리의 역사관 또한 일제의 식민지 교육으로 인한 잔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묻혀있는 우리의 역사를 찾아내어 후손들에게 우리의 선조들이 어떻게 꿈을 꾸며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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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리한 자들만 기억하지는 않는다.하지만, 우리들은 언제나 승자만을 따르고,부러워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그 것이 살아가기 편한 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운동경기에서 또는 경시대회,또는 웃고 즐기고자 하는 게임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분명하게 나누어진다.하지만,진정한 승자와 진정한 패자의 길 또한 그와 함께 구분되어지게 된다.흔히 역사가 말해 줄 것이다라는 말처럼 경기가 끝나고 나서 그들이 보이는 태도나 말을 통해 우리는 영원히 기억하게 될 진정한 승자를 가릴 수 있다.
천추태후 그녀는 오랫동안 패자로써 우리들 기억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역사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죄인이 될 수 도 있고,오늘날 영웅이 되기도 한다.특히 패자인 경우엔 그러한 엇갈린 해석이 난무하기 마련이다.우리에게 오랫동안 각인되어 온 그녀의 이미지가 오늘날 새로운 바람을 타고 새롭게 재 해석되었다..하지만,역사소설이란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몸에 주관적인 옷을 입고 나름대로 멋찌게 치장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천추태후 그녀는 패자라고 칭하기엔 당당함이 너무도 환하여 옷감을 뚤고 그녀의 기품이 느껴지는 듯 싶다.
그녀는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에 의해 세뇌되어 왔던 여성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오빠들과 말타기를 좋아하고,지기 싫어하고,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야 마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빼닮았다.하지만 때는 고려 초 호족들에 의해 이루어진 나라는 고구려 뿐만 아니라 신라 백제의 진골출신들의 제 몫 챙기기에 급급한 시절이기에 서로 경계하며 살아가고 있었다.왕건의 부인인 신정왕후의 손녀로써,일찍 부모를 여윈 그녀의 형제들은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났다.외할머니는 험난한 세월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역사를 통해 잊지 말아야 할 교훈과 뿌리의식,새롭게 품어야 할 이상을 가지도록 교육하셨다.그러한 할머니 밑에서 자란 손자들은 아주 잘 자라 주었다.
이러한 교육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일 것이다.글로벌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역사는 무슨 역사냐며 시험문제나 잘 풀 정도만 알면 되지 하는 부모도 있겠지만,자신이 누구인지,자신의 역사를 외면하는 사람들은 글로벌 시대에선 발 붙여 살 곳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소설 천추 태후는 그녀의 고구려에 대한 뿌리의식과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깨우쳐 나아가기 위해선 정확한 현실파악과 함께 자국의 힘을 길려야 함을 알고,있었다.천추태후의 천추의 한을 이루기 위해 효종이 북벌 정책을 하려 했던 그 계기를 들여다 보면서 오늘날 우리 대한 민국이 처해있는 현실은 천년 전 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는 대외정세를 살펴보며,그 대안을 찾아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마음만이라도 자주적인 국민으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갖추었으면 좋겠다.
역사는 흐른다고 한다.그 흐름 속엔 같고,다르고,생각지도 못했던 이변들이 속출하기도 하지만,분명 어떤 패턴이 있음을 역사는 들려 주고,보여 주며,우리들에게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는 힘을 길러 가도록 간접적인 훈련을 시켜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이제 그녀가 우리들에게 찾아왔다.소설,드라마로 우리들에게 역사란 무엇인지,어떻게 돌고 도는지,그녀의 선택과 그녀의 운명을 어떻게 이끌어 가고 있었는지,그리고 오늘날 그녀의 삶을 재 조명하여 보며,어떠한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인지...고민해 보게 하는 2009년의 화제가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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