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이 살아온 일생을 송두리째 빼앗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옥타비안’의 이야기를 읽고. 또 한 편의 트루먼 쇼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나는 고귀하게 길 러 졌 다!” <옥타비안 낫싱>의 주인공 옥타비안은 카시오페이아 공주라고 불리는 여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무런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았고, 많은 시인들 화가, 음악가들에 둘러싸여 많은 것을 배우고 살았다. 그들로부터 끊임없이 관찰력을 배운 덕분에 옥타비안 역시 객관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아이로 자라나게 된다. 뭔가 보통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 교육을 받고 있는 옥타비안의 이야기를 보면서, 점점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의 옥타비안에게서부터 뭔가 부자연스러움과 불안함이 느껴졌다. 평범한 가정에서처럼 어머니와 사랑을 나누지 못하며 항상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쓴다든지. 자신이 먹는 음식의 무게, 또 배변의 무게를 재야만 하는 생활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보통은 하지 않는 행동들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은 점점 불길함을 상기시켰고, 결국 이들 모두가 실험을 위한 조치였음을 옥타비안은 알게 된다. 자신의 삶의 전부가 모두 거짓이었음을, 가짜였음알 알게 된 옥타비안은 그러나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역시 실험의 일부였던 배움 덕분이었을까. 옥타비안은 입에 재갈이 물리고 몸에 사슬이 채이고 하는 등의 갖은 수모를 겪어야만 했으며, 흑인이라는 이유로 또 노예라는 이유로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대접을 받아야만 했다. 흑인은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결코 백인보다 우월해질 수 없다는 명제를 성립시키기 위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옥타비안. 끔찍하리만치 잔인한 노예제도의 적합성에 대한 실험들. 그 시대에 흑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 만큼 이 책 속에서 나는 ‘끔찍함’,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그 곳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삶이라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처럼 놀랄 만큼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행보에 전환점을 가져다 줄만한 시간을 갖게 되면서 옥타비안은 자유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옥타비안은 그의 지난날을 보상받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찾고 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까.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힘든 일 앞에서 결국 무너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옥타비안을 응원하고 싶다.
그들은 영국에 대한 자신들의 예속 상태는 애통해하면서도 자신들의 밭에서는 수천 명의 노예들을 무보수로 부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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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셔널 북 어워드의 청소년 부문 수상작이라고 한다. 가히 그 내용은 수상을 할 만큼 소름끼칠 정도의 세세한 묘사와 각종 문헌과 소문들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옥타비안은 그의 어머니와 함께 고귀한 왕족의 신분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그는 백인 사회의 실험용 쥐에 불과했고, 그의 자유 또한 의지대로 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옥타비안의 삶은 끔찍함의 연속이다. 석학협회 자들의 실험용으로, 기껏 도망쳐 몸을 의탁한 곳은 흑인을 인간이 아닌 흑인으로, 백인의 소유물로 여기는 노동의 현장, 또 다시 족쇄로 가득찬 실험용으로,,, 상상력이 덧붙여진 소설이라곤 하지만, 미국의 독립혁명기에 일어났던 사실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너무 끔찍하다.
이 책에서는 옥타비안과 그의 어머니의 삶을 통해 과거 유색인종들이 느꼈을 삶의 고통을 말한다. 백인들은 '유색인종은 열등하다.'라는 대전제를 위해 그들을 이용한다. 성장하면서 '자유'라는 개념에 눈을 떠가는 옥타비안과 달리 석학협회 인물들은 - 백인들은 - 존재의 사슬과 그것을 통해 얻게될 공익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어쩌면 백인과 옥타비안이라는 이 대립이 실제로 17세기 인물들의 화두가 아니었을까 한다. 흑인들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에게 평등을 내세우기 시작한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인과 백인, 유색인종과 백인이라는 색에 의한 차별을 논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슬픈 현실이 떠 오른다. '베트남 아가씨와 결혼하세요.',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대우,,, 소위 선진국의 우두머리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에서도 숨겨진 이야기가 바로 인종차별이다. 하물며, 선진국 대열에 끼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나라야 다른 점이 있으랴. 과거에 비해 나아진 점이 있다면 옥타비안의 이야기를 읽으며 차별의 불평등함을, 존재의 고귀함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는 것 뿐이다.
저자는 옥타비안의 탈출과 함께 그의 반란을 내비치는 2부를 예고했다. 나는 약간 두렵다. 인종의 벽을 넘어 자유를 성취한다는 것보다, 자신의 배설물을 계산당하고, 채찍질 당하며, 왕족인 어머니가 모욕을 당하며 실험용으로 죽음을 당하기 까지 했던 옥타비안의 우울함이 어떤 식의 복수극을 낳을지, 부정적인 방향일것이라는 예측때문이다. 사람의 성장 환경은 그 사람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2부에서 보여질 옥타비안은 천재적 바이올린 선율을 만들어 낼 줄 알고,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구사할 줄 아는 왕족 옥타비안이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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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인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 대상이었다! 미국 독립 전쟁을 배경으로 흑인 소년 옥타비안의 운명을 그린 작품『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제1권 '천연두 파티' 편. 미국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독립과 건국 역사의 한 페이지에 지적이고 불온한 상상력을 불어넣은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혁명의 역사 뒤에 존재하는 노예제와 인종차별, 과학과 합리주의, 애국주의의 허상과 위선에 주목하였다. 옥타비안은 보스톤의 한 저택에서 아프리카 공주인 어머니와 번호로 불리는 학자들과 함께 산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특이한 성장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느 날, 옥타비안은 자신의 성장과정이 기록된 문서를 발견하고, 자신이 미국 백인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 대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세상이 독립 전쟁의 움직임으로 술렁이면서 그의 운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이 소설은 왕자에서 노예로 전락한 옥타비안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미국의 위선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옥타비안은 '흑인도 고등 교육을 통해 백인과 같은 지적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 대상이었다. 실제로 당시에는 비유럽인들의 습득능력을 측정하는 교육실험이 이루어졌다. 작가는 이러한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섞어, 18세기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 작품 조금 더 살펴보기! 미국인들이 자긍심을 갖는 독립과 건국 신화,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을 깨트리는 이 작품은 노예 제도와 인종차별로 핍박받아온 수많은 옥타비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2006년 미국 내셔널 북 어워드, 마이클 L.
이 책은.. 나의 평가
책을 읽는 이순간만큼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 이유는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이야기 한다면 인종차별, 그리고 백인들의 실험대상 흑인, 그리그 기가 막힌 암흑한 세상과 더불어 서러움과 두려움을 넘어선 분노, 격분을 그려내는 책이라는 점이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인종에 대한 공부를 한 적이있다. 보통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크게 세 가지로 나뉘인다. 그중 우리는 백인종도 아니요 흑인종도 아니요 유일한 황인종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백인종은 황인종이나 흑인종을 엄격히 차별화했으며 백인들의 노예로 거침없이 약탈과 살육을 감행했다. 그 어느나라를 막논하고 백인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던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차별이라는 단어를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사는 듯싶다. 물론 지금 어느시대인데 차별을 하고 차별을 두고 차별을 이야기 하는가? 하는 우스운 이야기로 들어넘길지도 모른다. 지금 평등을 강조하고 인종차별의 시대를 멀리 떠나왓다고는 하지만 <옥타비안 낫싱>을 읽으면서 같은 인간임에도 두려운 백인종의 그림자를 떨쳐버릴수가 없다. 노예제도를 철처히 해산하고 인종차별화 된 법도를 무너뜨리는데는 참으로 험난한 시련과 수 많은 희생과 그에 따르는 대가가 치르어졌다. 18세기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무섭고 미묘한 사건속으로 우리 한번 빠져보자. 그럼에도 <옥타비안 낫싱>의 주인공은 옥타비안은 호화로운 저택에서 꿈같은?생활을 하면서도 결국엔 백인들의 실험대상으로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겉보기와 속보기가 다른 철저한 감시와 엄격한 생활을 내것으로?받아들이고 그에 수긍해야 하는 아픈 삶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이번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가 그렇게 훌륭하고 멋지고 대단해보일수가...? 인종의 차별화를 무너뜨리고 흑인들에게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세계기록을 깨뜨릴 기네스기록이 아닌가. 노뱅글리안 석학협회에 무리들은 옥타비안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치면서 변화도는 실험은 곧?흑인들을 백인들의 노예로 전락시키려는 인간실험이였다. 그것을 알게 되고?뜻밖에 어머니를 잃게되는 순간 많은 모순가 모순이 겹차하면서 옥타비안은 탈출을 하려고 시도한다. 시중을 곁드는 흑인노예들의 삶을 보면서 잘못된 사회를 발견하고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렇게 옥타비안은 행운스럽게 자신을 도와주는 박사 한분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저주스러운 저택 탈출을 성공하게 된다. 단권이 아닌 2권으로 이어질 내용들이 정말 궁금하다. 정의는 항상 이긴다. 나는 그렇게 간주하고 싶다. 세상은 정의의 것이니까.?거짓과 악의로 둘러쌓인 호화스러운 저택을 떠나는 옥타비안과 그가 갈망하는 자유...?어떻게 전개될지?그리고 어떤 내용으로 마무리가 될지..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모두가 궁금해 할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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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종국가의 상징, 미국!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 오바마 그가 어떤사람이라는 것은 일단,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전에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이 가지는 상징성은 대단했고, 미국인들이 흑인을 지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꽤나 고무적이었나보다. 약자를 대변하고 싶어하는 소위 말해 개념찬 진보주의 정치인 오바마! 이런점이 부각되어 당선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흑인이라다는 인종이 더이상 대통령이 되기에 걸림돌이 아니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의 고질적이고 뿌리 깊었다던 그 인종차별이 어떠했기에 화제에 화제를 낳게되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던 중 인종차별이라는 주제로 소설이 등장했으니 그것이 옥타비안 낫싱이다. 더불어, 다인종국가로 변화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떠한가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생각해 보자.
1. 정체성에 관한 물음
원래는 아프리카 한 왕족, 공주의 아들인 옥타비안은 기트니씨가 주관하는 실험의 실험대상이었다. 흑인을 백인과 똑같이 양육시켰을때 어떤가를 알아보기위한 실험이지만 애초부터 흑인이 열등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고자 의도 되었던 실험이기도 하다. 집안의 다른 흑인들과 달리 귀족의 옷을 입고 라틴어 그리스어를 배우며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특히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어느날, 그가 들어가서는 안되는 방에 들어간 옥타비안은 자신이 실험대상임을 확인한다.
2. 스폰서의 변경 협회의 후원이 끊기면서 후원자는 다수의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남부 농장 소유주들로 바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샤프라는 사람이 개입하고, 실험의 방향도 바뀌게 된다. 결국 그들은 흑인은 열등하다는 이론을 뒷받침하고 싶었겠지. 옥타비안도 똑같이 일을 하게 되고 그를 돌봐주던 또다른 노예 보노는 선물로 기증된다. 그무렵 미국은 독립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천연두가 창궐하던 때 천연두 예방접종파티가 있던 시기에 어머니가 죽는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해부한 모습을 보게된 옥타비안은 보노가 남기고간 열쇠를 가지고 탈출한다. 결국 민병대의 도움으로 살아가던 군의 사기진작을 위해 바이올린 연주를 하던 것이 알려져 붙잡혀 가지만, 트리뷰리트 선생의 도움으로 그곳을 탈출한다. 그 이후의 그의 운명은 2권에서야 알 수 있겠다.
3. 독립전쟁의 위선
1776년 미국은 영국으로 부터 독립을 했고 미국 독립선언문은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의 상징으로서 알려져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이면의 끔찍한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
'호사이아 리서터 자유의 몸으로 여기 잠들다. '367
죽고나서야 자유를 맛본 호사이아 리스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367
민병대에 몸담고 있던 옥타비안은, 독립전쟁에 주인대신 나가싸우다 전사한 흑인 노예를 보게 된다. 당시 흑인들에게는 죽고나서야 얻을 수 있는 자유.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꿈꾸던 미국인들은 역설적이게도 흑인 노예의 자유를 박탈하고 그들을 희생물로 삼아 자유를 쟁취한다.
모든 인과관계, 모든 선택, 모든 정체성을 벗어 던지지 않고서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없다. 네 존재의 네 실제의 덤비고 무한하고 적막한 공간이 아니고서는 해방을 맞이 할 수 없다. 368
4. 제목에 대하여 그의 이름은 옥타비안 낫싱이다. 옥타비안 기트니도 아닌 옥타비안 샤프도 아닌 옥타비안 석학협회도 아닌 옥타비안 낫싱. 소설안에서 그는 비록 옥타비안 기트니라고 불리우지만, "낫싱"이라는 성이 상징하는 것은, 그는 누구에게도 매여있지 않은 자유의 존재임을 예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당시 미국 초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조차도 노예제도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19세기 링컨의 남북전쟁을 통해서 노예해방이 이루어 졌으니 자유를 찾기까지 100여년의 시간,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던 차별. 200년가량이 지난 21세기가 돼서야 나타난 흑인 대통령. 채찍질과 감금, 감시. 인간의 해부, 실험, 사유재산 노예 누구누구를 찾는다는 광고들,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끔찍한 광경들이 하나하나 세부 묘사가 탁월하다. 주의 깊게 볼것은 1,2장은 옥타비안의 수기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구성하여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작가는,그 과정을 겪는 주인공 옥타비안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옥타비안의 눈으로 생각으로 감정으로 말하고자 했다. 백인들에 의해 설정된 실험대상, 타자화된 객체와 대비시켜 소설에서의 명백한 '주체'임을 드러낸다.. 그는 사건을 이야기하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견해를 표평하는 "실존" 그 자체이며 인격과 인권이 있는 인간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반면에 3장은 그에게 우호적이었던 한 민병대 군사의 편지를 통해 드러나는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본 옥타비안을 그리고 있다. 행동묘사를 통해 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얼마나 절망했고 힘들어 했는지를 관찰자의 시각에서 설명하고있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들, 잘 짜여진 구성과 표현들 완성도가 높은 소설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2편에서 펼쳐질 옥타비안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기다려진다. 단일민족국가임을 강조하며 지내왔던 대한민국에서는 다소 동떨어진 사회문제였던 인종문제, 하지만 더이상 그것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인종차별을 소재로 쓴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옥타비안이 맞았던 채찍질과 감금 등 인권유린의 모습들이 300년후의 시기에 이 나라에서도 분명히 자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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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책의 전개가 매우 신선하고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많아 계속적인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언급되어 알지는 못하지만 지적 자극을 느끼고 새로운 세계에 대해 의심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물론 소설이므로 허구적인 내용이지만 모티브는 실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작가의 말에,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엔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들이 버젓이 행해졌는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주인공-옥타비안 낫싱의 성장 그 자체가 역설적이다. 흑인 노예제도라는 사회적 배경에서 매우 고귀하고 귀족적으로 자라나지만 이것의 목적이 흑인은 원천적으로 백인보다 열등함을 증명하기 위함이였으니...
이러한 성장 특성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있으므로해서 이 책의 주제-위선을 더 잘 표현하고 독자에게 훨씬 더 메세지를 동감되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모질고 험난한 삶 속에서도 희망과 살아나가야 함에 대한 의지가 내재되어 있어 지금과 같이 혼란한 사회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건의 전개가 빠르고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책이 얇지는 않아도 쉽게 읽혀 나갔다. 2권이 매우 기대되고 2권이 없는 상태에서 이 1권을 다 읽어버리는게 두려웠을 정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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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를 뜻하는 라틴어 '세르부스'는 원래 '죽음을 면한 자'라는 뜻이다. 노예란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사람으로, 원칙적으로는 죽여도 그만인 존재였다. p367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한 흑인 노예와 어머니가 있었고, 그들은 백인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고귀하게 길러졌다. 모든 이가 이들 모자를 경애했지만, 신분은 여전히 노예였다. 영국으로부터의 자유를 갈구하는 백인, 이 백인들의 자유를 위해 대신 싸우고 죽어가는 '흑인 노예'들. 그들은 애초에 죽은사람이었기에 죽어서야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은 이렇게 고귀하게 길러졌던 흑인노예인 옥타비안의 관점에서만 진행하지 않고, 옥타비안을 둘러싼 '다른 이'들의 시각을 편지글이나 실험 보고서의 형태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치 옥타비안 낫싱이 실존인물이며, 그가 직접 이 수기를 쓴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직접 지운 듯한 흔적까지...이 흔적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옥타비안이 글을 쓰다가 마구 지운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옥타비안의 입장에 쉽게 긍정하고, 그와 일체가(?) 되어 글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소설들은 작가가 주인공들을 전지전능한 입장에서 컨트롤한다는 느낌이었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이 정말 살아 움직이고 작가는 단지 소개해 주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정말 독창적인 소설이다. <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는 자유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른 질문이 자유란 과연 무엇인가? 였다. 옥타비안은 자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적과 기회주의자가 우글우글한 이 살벌한 세상에서 자유의 비싼 댓가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자. 모든 인과관계, 모든 선택, 모든 의지, 모든 정체성을 벗어던지지 않고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없다. (p368)
옥타비안 낫싱이 실존했다면, 최소한 100여년 전의 인물이다. 이 긴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자유란 값비싼 댓가를 치러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좀 그렇지만, 광우병 사태를 통해서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지 않았던가! 언론이 국민들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자기들 관점에서 멋대로 방송했을 경우, 그리고 이를 우리가 몰랐다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을 초래했을 지 소름끼친다. 불과 1,2년 전의 보도와 어제의 보도 내용이 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관점이 얼마나 달랐던가. 국민들은 이들 언론들을 정신차리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부를 정신차리게 하기 위해서 바쁜 시간 쪼개서 촛불을 들고 나서야 하지 않았던가. 옥타비안이 자유를 이렇게 정의하는 걸 보면서 나는 문득 그 여름의 촛불을 떠올렸었다. 아, 그래 정말. 자유란 이제까지의 '나'를 전부 포기해야만이 가질 수 있는 거구나. 지금의 달콤함, 안락함을 벗어 던지고 쓴맛과 대결할 각오가 되어야만 가질 수 있는 거였다. 분야가 다르긴 하지만, 내게는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소재였다. 인종차별보다는 그 여름의 촛불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사실상 전 세계의 황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자리에 흑인이 드디어(!) 선출된 것이다. 이런 시기에 시의 적절한 소설이 나옸다. 오바마와 많이 닮은-학식과 외모 면에서-주인공 옥타비안의 '자유에의 투쟁'에 과한 기록을 읽으면서 '자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라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도 인종차별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가 아닌가.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지가 불과 얼마 전이고, 베트남 여인들이 방송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수정하라며 피켓을 들고 나선 게 얼마 전이다. 그 전까지는 감히, 방송에 나오는 것을 꿈꿔볼 수도 없는 내용이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이 '인종차별', 형태만 바뀌었지 여전한 이 인종차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 할아버지 때에는 '베트남 여자'란 가난한 농촌에 팔려온 여인(정말 미안하지만 이런 의미가 짙었다)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설사 인정하기 힘들다 하더라도 인정해야만 한다. 옥타비안 낫싱은 '백인'의 관점은 받아들이기 너무나 쉬운 우리에게, 처음으로 '핍박받는 자'의 관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양쪽의 관점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고, 다각도로 생각하며 문제 해결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생각해 볼 때라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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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V외화시리즈 중 가장 인기가 있는 '24'를 보면 드라마속의 미국대통령 의 모습은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다.이 드라마를 일단 보면 거의 폐인이 될 정 도로 몰입성이 있는 인기가 있는데 대통령이 당연히 백인이어야 한다는 선입 견을 없애기가 상당히 힘들었다.그러나 이젠 미국도 흑인을 대통령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이런 와중에 미국흑인노예의 역사적 사실을 담은 책이 출판사 양철북에서 출간되어 더욱 더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헌법에서 인간의 인권과 존엄성의 가치를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으로 정하 고 있는 미국에서 역설적으로 노예였던 흑인이 사회계층의 한 집단으로 인정 되기까지 수많은 흑인들이 피를 흘려만 하였다.더구나 오래 전 미국에서는 흑인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백인들에 비하여 유전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당연히 백인에게 지배받아야 하며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이들 인종에 대하여 실제적으로 실험하기도 하였다.그러나 실험결과에서 일부 실험대상들 이 상당히 지적능력을 발휘하자 실험자들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즉 인종의 우열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단지 피부색으로 인종을 차별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결과에 다다른 것이다.
식민지정책을 고수하는 영국정부에 미국민들이 대항하였던 미국의 독립전쟁시 당시 미국내에서도 흑인노예정책에 대하여 비판적인 북부와 고수를 주장하는 남부지역의 사람들이 함께 독립전쟁을 치르면서도 언제든지 노예정책때문에 또 다시 내전을 치를수 밖에 없는 긴박하였던 상황이 책에서 고스란히 비쳐진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옥타비안은 아프리카 왕족인 어머니의 아들로서 백인의 후원하에 학문과 예능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면서 커가지만 결국 그도 흑인 노예인 보노의 말을 통하여 다름없는 노예임을 깨닫고 커다란 허무를 느낀다. 그러나 그가 점점 자신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헤쳐가는 험난한 여정 을 보노라면 분노와 슬픔이 한없이 밀려오기도 한다.
항상 지배하는 사람에 의하여 쓰여지는 역사적 지식은 때로는 실질적으로 역사의 큰 기둥역할을 한 피지배계층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한다.그러나 위대한 역사적 산물의 근간은 분명 피지배계층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비록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이 책은 그 어느 역사적 사료보다도 우리들에게 미국의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1권을 읽고 나서 속히 2권을 계속 읽고 싶다는 마음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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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V외화시리즈 중 가장 인기가 있는 '24'를 보면 드라마속의 미국대통령 의 모습은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다.이 드라마를 일단 보면 거의 폐인이 될 정 도로 몰입성이 있는 인기가 있는데 대통령이 당연히 백인이어야 한다는 선입 견을 없애기가 상당히 힘들었다.그러나 이젠 미국도 흑인을 대통령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이런 와중에 미국흑인노예의 역사적 사실을 담은 책이 출판사 양철북에서 출간되어 더욱 더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헌법에서 인간의 인권과 존엄성의 가치를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으로 정하 고 있는 미국에서 역설적으로 노예였던 흑인이 사회계층의 한 집단으로 인정 되기까지 수많은 흑인들이 피를 흘려만 하였다.더구나 오래 전 미국에서는 흑인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백인들에 비하여 유전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당연히 백인에게 지배받아야 하며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이들 인종에 대하여 실제적으로 실험하기도 하였다.그러나 실험결과에서 일부 실험대상들 이 상당히 지적능력을 발휘하자 실험자들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즉 인종의 우열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단지 피부색으로 인종을 차별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결과에 다다른 것이다.
식민지정책을 고수하는 영국정부에 미국민들이 대항하였던 미국의 독립전쟁시 당시 미국내에서도 흑인노예정책에 대하여 비판적인 북부와 고수를 주장하는 남부지역의 사람들이 함께 독립전쟁을 치르면서도 언제든지 노예정책때문에 또 다시 내전을 치를수 밖에 없는 긴박하였던 상황이 책에서 고스란히 비쳐진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옥타비안은 아프리카 왕족인 어머니의 아들로서 백인의 후원하에 학문과 예능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면서 커가지만 결국 그도 흑인 노예인 보노의 말을 통하여 다름없는 노예임을 깨닫고 커다란 허무를 느낀다. 그러나 그가 점점 자신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헤쳐가는 험난한 여정 을 보노라면 분노와 슬픔이 한없이 밀려오기도 한다.
항상 지배하는 사람에 의하여 쓰여지는 역사적 지식은 때로는 실질적으로 역사의 큰 기둥역할을 한 피지배계층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한다.그러나 위대한 역사적 산물의 근간은 분명 피지배계층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비록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이 책은 그 어느 역사적 사료보다도 우리들에게 미국의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1권을 읽고 나서 속히 2권을 계속 읽고 싶다는 마음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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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쓰여진 무게와 달리 나는 자꾸 자꾸 이 책 표지를 보면 무한도전중의 한 멤버가 떠오른다. ㅡㅡ;;;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흑인들을 데려다가 노예로 부리고 무수히 괴롭힌 것은 알고 있지만 도대체 이책에 나오는 옥타비안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것일까? 얼마나 무서운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나는 책장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어린 옥타비안에게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게 잔인한 일이 벌어진다. 한참 흑인들을 데려다가 노예로 부릴때 그들은 노에로서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낙후성을 온 천하에 알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짓이 결코 나쁜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시키고 싶어한다. 그들은 교육을 받을지라도 효과가 없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그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키자 백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게 된다. 하지만 이미 그들이 잡고 있는 권력은 욕심은 그들을 놓아줄수가 없다.
옥타비안은 그곳에서 나고 자라면서 점점 그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삶이 자신이 한나라의 공주인 자기 어머니의 아들로서 누릴 자격이 있어서 누리는 삶이 아니라 실험대상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연구를 위해 모여있는 학자들이며 여러가지 싫험을 하는 것들을 목격하게 된다. 잔인한 인체실험들이 행해진다. 그러면서 옥타비안은 점점 안으로 안으로 자신의 감정을 감추게 된다.
자신과 같은 흑인이지만 자신들의 시중을 드는 보노에게서 옥타비안은 무엇인가 다른것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진정으로 알아가야할 진실들을 배워나가게 된다. 그들의 실험에 경제적인 후원을 해주던 사람이 죽으면서 그의 조카에게 유산이 돌아가게 되고 그는 그곳에서의 실험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확인하러왔다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후견인이 더이상 그 실험에서 손을 떼게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인종문제로 인한 사회문제가 발생하게되자 이들은 조용한 시골로 옮겨오게되고 그곳에서 그들은 천연두를 치료하기 위한 천연두 파티를 하게된다. 그러던중 옥타비안의 어머니는 천연두도 죽게되고 옥타비안은 그곳을 어느날 탈출하게된다. 그리고 우여곡절끝에 민병대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지내다가 다시 붙잡혀오게된다.
정말 있을수 없는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인종간의 갈등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나 다른 인종들을 만나게되면서 식민지 사회와 함께 일어나게된다. 백인들은 자신과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을 자신과 같은 동등한 사람이 아니라는 오류에서부터 모든 인종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옛날에 봤던 영화 '뿌리'라는 영화를 보면서 흑인들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했는지를 알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밖의 여러가지 영화들 그리고 얼마전에 알게된 나무에 흑인을 메달아 불에 태우는 끔찍한 일들이 실재 있었다는 것을 노래로 만들었던 니나 시몬이라는 가수의 이야기. 흑인들이 교육을 통해서만 해방을 자유를 얻을수 있다는 내용을 영화로 담았던 얼마전에 봤던 영화도 생각이 난다.
흑인들이 백인들로부터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서 온갖 어려운 일들을 겪었다. 만약 그들이 나는 약하기 때문에 나는 할수 없기 때문에 맞는 것이 두려워서 내 한목숨을 잃는것이 두려워서 그렇게 참았더라면 짖밟히는 삶에 굴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그러한 자유로운 삶은, 인권해방은 이루어졌을까? 그러한 고통스러운 인종차별 가운데에서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루어낸 그들의 놀라운 의지가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러한 불굴의 의지들이 투쟁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오바마대통령이 있을수 있었고 말이다. 세상에는 여러 모양의 선과 여러모양의 악이 공존하고 있다. 나는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과연 나는 나의 삶에서 떳떳하다고 말할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라고 말할수 없다. 나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내 안에서 살아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내안에도 여전히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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