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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의 "한 작가의 전작 읽어보기" 취지아래 우리가 선택한 작가는 박완서였다. 내가 읽은 박완서의 소설이라곤 최근작인 "친절한 복희씨"와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뿐이었다. "그많던.."은 너무 오래전에 읽었던 지라 대충의 느낌만 그려질뿐 구체적인 줄거리는 희미하다. "친절한 복희씨"는 정이 뚝뚝 뭍어나는 작가의 필체에 감탄하며 작가의 연륜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었다. 그 후 "꼴찌에게 갈채를"과 "엄마의 말뚝"을 연달아 읽었으며 드디어 "살아있는 날의 시작"까지 왔다. 그녀의 수많은 작품중에 그래도 네 편을 읽었으니 어느정도 그녀만의 색깔을 예감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충격적이었다. 읽는 내내 억울함이 울컥울컥 내 감정을 흔들어놨다. 일명 "끼인 세대" 우리 어머니 세대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정말 "수퍼 우먼"이다. 노망난 시어머니와 고삼입시지옥속의 아들, 폐암 말기의 친정어머니,외도한 남편까지 그녀가 짊어져야할 짐들은 너무도 고된것이었으며 보는이로 하여금 화를 불러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의 외도가 있기 전까지 완벽하게 그 모든 짐들을 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거운짐을 흔드는건 그녀가 아닌 남편이었다. 분명 그녀는 남편의 짐까지 떠맡아 오로지 그녀혼자만의 짐으로 훨씬 더 무거워진채로 있는데도 흔드는건 남편이다. 심지어 무참히 어린 여자를 짓밟더니 마치 당연히 한번쯤은 일어날 일이었다는 듯이 아내에게도 죄책감을 못느낀다. 그런데 돌팔매질을 당한는건 남편이 아니라 남편을 용서하지 않는 그녀다. 주변사람들은 남자는 한번쯤 그럴수 있는거라며 용서하지 못하는 그녀를 오히려 딱하게 보기까지 한다. 읽어가며 내내 혹시라도 그녀가 남편을 용서할까봐 조바심이 났었다. 우리 남편은 "이야기 중심"으로 책을 읽어서 그렇다고 말했지만 그건 이야기 중심이 아니라 아내가 용서해버리면 절대로 변하지 않을것만 같은 내 두려움때문이었다. 이 책은 20년전에 쓰여진것이다. 하지만 20년이 흘렀음에도 변화는 너무도 미미하다. 여성들의 사회적지위가 높아진것만큼은 사실이다. 20년전엔 상상도 할수 없었을만큼... 그로인해 여자들이 지어야할 짐은 무겁기만 하다. 남자들의 짐은 여자들의 자아실현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나눠지게 되었지만 때문에 힘들어진것도 여자 자신들이다. 더 멀리 갈것도 없이 우리 집만 봐도 그렇다. 나는 자아실현과는 관계없이 맞벌이를 하고있지만, 어쨋든 남편처럼 돈을 벌러 나간다. 먼저 퇴근한 남편은 당연히 자신만의 시간에 폭 빠져있다. 다 말려진 빨래도 모른척 하고... 하지만 퇴근해 돌아오자마자 나는.. 남편이 모른척해놓은 빨래를 걷고, 게놓고 저녁을 차리고 저녁설겆이를 해놓고 다음날 남편 도시락까지 싸놓고 밥도 앉쳐놓고....그러고 나서야 겨우 샤워를 한다. 다리도 아프다. 하루종일 서서 일했지만 집에와서도 달라질건 없다. 그나마 우리 세대는 그러다 짜증이 나면 남편에게 도와달라며 짜증..아니 호통도 칠수 있다. 그럼 우리남편은 잘 도와준다. 하지만 책속의 문청희, 우리 어머니 세대들은 끼어있다. 남존여비... 남편,아버지,오빠,남동생은 무조건 자신보다 귀한존재여야하는 그녀들. 소설속의 정인철이 딸같은 여자아이를 범하고도 당당할수 있었던 시대..
마지막 "그녀가 집 나오는 것과 동시에 벗은 부덕이란 탈은 여자가 조상 대대로 써내려오는 동안 거의 육화된 거기 때문에 그렇게 피 흘리지 않고는 벗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는 구절이 있다. "육화"되었던것. 정말 팍 꽂힌다. 우리 어머니(우리 엄마는 좀 다르다^^)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이시대를 열어준 당신들이 눈물에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아직도 더 변해야 한다.
갑자기 여성운동가라도 된것 같다. 실은 내 속마음은 이시대가 변화는것따윈 관심밖이고 우리 남편이 날 더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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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지금부터 거의 20여년전에 쓰여진 책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글의 분위기로는 박완서 선생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주인공 문청희. 자녀 셋을 두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남편과 경제적인 안정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확고한 직업을 갖고 있는 아줌마인 문청희는 이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삶을 시작한다. 진정으로 살아 숨쉬는 그녀만의 삶은 그때서야 첫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효와 婦德을 생명줄마냥 지켜오던 여자에게 자기 자신을 찾아나서기란 얼마나 많은 장애물과 사회적 혐오를 견뎌야 하는지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들은 효와 부덕을 미끼로 여자의 희생을 정당화하고 의무시하는 이 사회에 대해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을 만큼 문청희라는 여자를 공감하게 만든다. 시어머니 송부인의 철저한 여성비하사상은 너무도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 웬만한 세월의 변화로는 요동도 하지않고 오히려 여성들은 자기 최면에 걸린듯, 자신의 보호막처럼 그걸 이용하기도 한다. 같은 여성으로 이루어진 고부간은 그래서 더 철저하게 핍박하고 핍박받는 사이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인공 청희는 지독한 여자이다. 자아에 대해서 지독한 여자이다. 20여년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끝내는 치매로 생을 마감하는 시어머니를 며느리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촉촉한 마음으로 죽음을 향해가고 있는 한 노인네를 돌보게 된다. 잠자리에서 남편과 자신의 한가운데를 버티고 있는 시어머니에 대해 전혀 미움이나 고까움이 아닌 부덕을 지닌 여인으로서 극진히 모시는데 남성우월주의에 빠져있는 남편은 시어머니 송부인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철저하게 여자인 아내를 무시하고 의무만을 강조한다. 만약 청희가 자기안에 들끓고 있던 자아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끊임없이 문청희 자신을 일깨워주는 자아를 키우지 못했다면 아마 영영 남편을 시중드는 마누라 그 이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영영 효와 부덕으로 덫칠해진 자신의 껍데기를 벗어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를 인정하는 아들 명구의 모습은 정떨어지지만 듬직해 보이기도 한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들은 이정도에서 엄마도 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단계를 거쳤으니 얼마나 다행스런지 모르겠다. 맘껏 청희의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우리는 늘 어린 아이도 한 인격체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펴면서, 여성도 누구의 아내나 어머니, 자녀이기 이전에 한 인격체임을 인정하는 것에는 참 인색하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는 더욱 더 그렇다. 이 책을 통해 결국은 自我를 찾아 나서는 문청희라는 여인을 만날 수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해 본다. |
| 살아있다. 사람들은 언제 그런 느낌을 가질까. 사람들은 고사하고, 나는 언제 그런 생각을 했던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뛰었을때? 마음 뿌듯하게 일을 해냈을때? 무언가에 마음이 미치도록 설렐때? <살아있는 날의 시작>에서 박완서 선생님은 남이 만들어놓은 틀에 맞추어, 혹은 그런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진짜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인 청희. 청희는 번듯한 미용실과 미용학원의 원장님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20대의 몸매를 유지하는 멋쟁이 원장님으로 보일테지만, 청희는 삶이 버겁다. 위에 있는 여자, 옆에 있는 남자, 아래 있는 여자 때문에. 위에 있는 여자는 바로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다. '시집의 법이 너의 법이다, 친정은 잊어라'라고 말하며 꼬장꼬장하기 이를데 없었던 시어머니는 청희에게 20년간의 시집살이에 치매 병수발까지 시킨 후 죽는다. '딸 집에서 죽는 것은 수치'라던 친정 어머니는 외국으로 이민간 아들네에서 죽지 못하고 결국 친정에서 죽음을 맞는다. 어른들을 모시는 것, 그 자체가 청희에게 고통이 되었다기 보다는 그와 연관된 옆에 있는 남자가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었다. 옆에 있는 남자 인철. 오냐오냐하는 어머니에 현모양처와 같은 청희를 만났기에 그저 제멋대로 살아온 뼛속까지 가부장제가 꽉박힌 마초 대학 교수다. 청희가 일을 해 학자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자신의 경제적 부족함을 채워주는데도, 청희의 일을 '나대고 설치는 것'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그. 게다가 청희와 일과 가사를 모두 잘 해내는 것조차도, 설레발치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이자 남편에게 기죽지 않고 당당하려는 심보라고 이야기한다. 게다가 자기 딸 또래의 어린 '콩쥐'까지 덮쳤으니. 청희 아래 있는 여자 옥희. 청희는 옥희를 콩쥐라고 부른다. 옥희가 처한 상황이 너무 딱하기 때문이다. 아파서 골골하는 엄마와 대학생 오빠, 재수생 오빠, 고등학생 남동생을 다 뒷바라지 하고 있으니 어련하랴. 그런 마음에 집에 까지 데려다가 먹고 재우며 미용실에서 일을 시키는데. 아, 그게 또 화근이 될 줄이야. 그렇다. 결론은 이혼이었다. 20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의 결론이 이혼이니 이에 대한 시선을 고울 수 없을 게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과정을 다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긴, 아닐 수도 있겠다. 원래 남자들은 가끔 바람도 나고 그런 것이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여자는 꾹 참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던 시절이니. 과연 지금이라고 얼마나 달라졌나 싶긴 하지만. 아무튼 박완서 선생님이 여성문제로 치열하게 글쓰시던 시절 책을 오랜만에 보니 참으로 반가웠다! |
| 소위 잘나가는 헤어디자이너인 주인공, 교수남편, 공부 잘하는 자식들... 얼핏 보기엔 너무도 단란하고 평온한 가족들이지만 그 가족들의 마음엔 어느틈에 골이 패이고 있다. 자신이 남편보다 더 사회적으로 성공할까봐 마음 조리며 남편보다 교수자리가 먼저 들어오자 포기해야 하며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면서도 생색낸다고 할까봐서 매사에 신경쓰는 여자 주인공, 남들에게는 호남으로 자상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아내 위에 군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 그리고 엄마와 엇나가는 자식들... 암에 걸려 딸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주인공 친정 어머니는 사위의 눈치만 보고 사위는 이제와서 처가살이가 웬 말이냐며 자신의 어머니를 정성으로 돌봤던 아내에게 화를 내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분통이 터졌다. 남편은 주인공이 데리고 들어온 미용실 직원과 외도를 하고 오히려 그녀에게 큰소리까지 치고... 결말은 주인공이 자신을 찾기 위해 그 집을 떠나는 걸로 끝이 나는데 책을 덮기까지 답답함을 감출수 없었다. 작가가 이 책을 썼을 당시와 현재는 분명히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라는 이름때문에 져야 하는 원죄는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지.. |
|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마치 은희경 소설의 70년대 판을 보는 듯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해 청희라는 주인공은 독설과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이것은 박완서님의 다른 어느 소설보다 냉정하고 강경하며 삐딱하다. 남편보다 지나치게 유능해서 매력없는(?)여자. 왠지 그런 여자를 만날 때마다 밥맛없어 하는 못난 남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지금이나 20여년 전이나 거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자신의 한계와 능력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한결 편하고 평등한 관계가 되련만 한 가정 안에서도 경쟁하고 우위를 다툰다면 가족 끼리의 훈훈한 정은 어디로 갈까? 사람들의 생김생김이 다르듯 각 가정의 경제적, 사회적 속내도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같으면 여러 가지 실험적 발상들을 소설을 통해 쏟아낼 수 있었겠지만 아직도 유교적 결혼관(?)의 신봉자가 많았던 그 시절에는 청희의 절규는 대답없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전 세계의 반이 불평등하게 지낸다면 다른 한 쪽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매한 남성들이 빨리 깨달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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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육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면서 교육에서 말하는 복습 개념을 매우 중요시 하였다.
복습은 매우 중요한 학습의 한 방법인데, 하지만 이 책에서 복습이라는 어휘는 매우 생소하게 느껴지고, 솔직히 짜증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짜증나고, 화가 나고, 요즘에 이런 사람들이 있을가라는 의구심이 들면서 여러번 이 책 읽기를 그만두려 했다.
하지만 나는 문청희라는 여자가 좋은 결과(여기서 말하는 좋은 결과란, 여자다움이 무엇인지 잘 표현하는)를 맺기를 바라면서 읽기를 마쳤다.
그리고 이 책이 1980년도에 출간된 점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그 시대에는 이런 일들이 충분히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하면서 그 시대에 그 여자(문청희)의 결정과 생각은 그 당시의 여성들엑 많은 생각을 줄 뿐만 아니라 후회와 질타를 안겨주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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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직업은 나에게 매우 어렵고, 생소하게 다가온다. 평소에 느끼던 거였지만 어휘 하나, 사물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사소한 것일지라도 독자에게 엄청난 공감과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박완서 작가님의 능력에 또 한번 감탄한다. [인상깊은구절] 탄생과 사망은 정반대되는 일 같으면서도 닮은 데가 있어요. 그걸 지키고 도와준 사람에게 해방감과 완성감을 주거든요. 어머니는 고통을 잘 이기시고 마지막엔 아주 편해지셔서 곱게 운명하셨어요. 주름살이 다 펴지는 것 같아지면서 사상이 꽃같이 아름다웠어요. 인철은 자기가 청춘을 복습하는 동안 아내가 무엇을 복습하고 있었던가에 생각이 미치자 미미한 가책을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