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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짜의 삶보다는 불행하더라도 진짜의 삶을
"행복한 가짜의 삶보다는 불행하더라도 진짜의 삶을" 내용보기
가슴 속 깊은 곳, 마음의 오지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욕망들의 갈등. 박완서의 소설은 우리가 애써 잊으려하고 감추려하는 욕망의 중심을, 그 중심을 지탱하는 본질을 들춰낸다. 그래서였을까. 어린 시절, 그러니까 아직 제대로 솔직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고등학교 시절 박완서의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그의 소설들은 재미는 있었을지언정,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
"행복한 가짜의 삶보다는 불행하더라도 진짜의 삶을" 내용보기
가슴 속 깊은 곳, 마음의 오지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욕망들의 갈등. 박완서의 소설은 우리가 애써 잊으려하고 감추려하는 욕망의 중심을, 그 중심을 지탱하는 본질을 들춰낸다. 그래서였을까. 어린 시절, 그러니까 아직 제대로 솔직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고등학교 시절 박완서의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그의 소설들은 재미는 있었을지언정,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문학이, 소설이 가끔가다 먹는 수수팥떡 같은 거였지만, 아니 그랬기에 문학은 가끔씩 느끼게 되는 나의 사춘기적 감성에 감정의 덧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미료에 불과하지 않았다. 대학을 들어오고 나서, 나의 독서량은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게다가 그 독서 경험이라는 것이 소설에 국한된 극히 좁은 범위였지만, 그 소설들 중에 박완서의 소설은 없었다. 어제 집안 한 구석에 꽂혀있던 '살아있는 날의 시작'의 책장을 폈다. 그리고 하루종일 책장을 다시 덮을 수가 없었다. 이제 어느 정도는 솔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일까. 박완서가 그려내는 인간의 지형도는 너무도 매혹적이었다. 너무나 정확하고, 예리하고, 솔직했다. 그 솔직한 시선을 지탱하고 있는 힘은 작가의 삶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삶을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가슴으로 살아온 한 중년여인의 통찰력에서 우러나는 것이었기에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내가 태어난 해인 1977년에 쓰여진 작품이라니. 나는 어설프게나마 페미니즘 이론서 몇 권 읽고 나서 알게 된 것들, 그나마도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부분들을, 그 모순의 지점들과 그 것들이 사실은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폭력에서 비롯되었음을, 거친 삶의 언어로 이렇게 깊숙한 곳까지 예리하게 짚어낼 수 있다니. 좋아하는 소설은 있어도, 존경하는 작가는 없던 나에게 다시 읽은 박완서는 충격이었다. 어쩌면 나는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여성의 삶은 작품 속 청희가 걸어간 길만큼 힘들다는 걸, 비록 어깨에 메고 있는 바위의 양이 조금은 줄었어도 겨우 돌덩이 몇 개만 없어진 정도라는 걸 더 슬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행복하게 헛 사는 것보다는 불행하게라도 참으로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 라며 불행하더라도 살아있는 삶을 살겠다는 청희의 결심과 '너희 아버질 사랑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비하시켜야 돼' 라는 사랑에 대한 청희의 깨달음을 전적으로 공감하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경험만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그 여자의 경우처럼 희생이 일방적이었나 상호적이었나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오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실상을 볼 기회가 그 여자에게 왔다는 건 그 여자의 피할 수 없는 불행이었다. 껍질속의 허구를 본 이상 안 본 것이 될 순 없었다. 다시 껍질을 입힐 수 있을진 몰라도 다시 그걸 소중하게 떠받들 수는 없으리라는 게 뻔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나 자신의 껍질도 벗으리라고 그 여자는 문득 생각했다'
a*******e 2001.02.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역시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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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80년 7월에 초판이 나왔다. 작가 후기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책이 나오기 전에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결말은 놀랍다. 70년대 말에, 서울(한국)에서, 청희같은 여자가, 이혼을 택한다! 그리고 이혼을 하기로 하는 자신의 결정에 의심이 없다! 이 소설을 두 번째 읽는데, 읽었던 소설의 내용을 어지간한 경우 깡그리 잊어버리고 마
"역시 박완서......!!!" 내용보기
이 소설은 80년 7월에 초판이 나왔다. 작가 후기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책이 나오기 전에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결말은 놀랍다. 70년대 말에, 서울(한국)에서, 청희같은 여자가, 이혼을 택한다! 그리고 이혼을 하기로 하는 자신의 결정에 의심이 없다! 이 소설을 두 번째 읽는데, 읽었던 소설의 내용을 어지간한 경우 깡그리 잊어버리고 마는 나의 나쁜 기억력은 이 소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는 '이러다가도, 그래도, 그런 부실한 남편이나마 인간 만들어가며 사는 쪽으로 기울어지면 안되는데'라는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주인공인 청희가 얼마나 타당한 이유로, 원문을 빌자면, '조상 대대로 써내려오는 동안 육화된, 부덕이라는 탈을, 피를 흘리며' 벗는지 기억하고 있지 못했던 거다. 청희와 그녀의 남편 인철은, 아마 그 시기라면 서울에서도 드물었을, 대학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한 사이다. (청희가 4.19 묘지에서 감상에 젖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청희의 남편은 '우리가 4.19 세대니까' 어쩌구 저쩌구한다. 6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니고 60년대 중후반 쯤에 결혼하여 아이낳고 산 사람들이겠다.) 청희는, 여자에게만 강요되는 여러 미덕을 내면화하고 있지만 사업가 기질이 있는, 에너지가 넘치고 유능한 사람이다. 그런가하면, 인철은 명색이 대학 교수라지만, 반성 능력이라는 의미에서 '교양'이 절대 부족한 인물이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두 사람은 확고한 중산층 가정의 기반을 다지고 겉보기에 남부러울 것없는 가정을 꾸려 간다. 이런 가정 생활에 대해, 청희는 '행복하다'와 '이건 뭔가 아니다' 사이에서 오가는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다가, 결국 자기가 그토록 열심히 지키려했던 '행복'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고 이혼을 결심하며 집을 떠난다. 이렇게 요약하면, 이 소설의 내용이 매우 진부하게 들리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간혹 우스울 정도로 과장스러운 면들이 있긴 하지만,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후의 어떤 여성 소설보다도 현실감과 힘이 넘치며 독자를 진정 감동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가짜스러움과 교활함에 대한 시선이 이처럼 가차없으면서도, 사는 걸 사는 것답게 만드는 가치들을 이처럼 뜨겁게 지지하는 작가가, 별로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용렬함에 대한,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비롯되며 어떻게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박완서의 날카로운 통찰은 이 소설의 페이지 면면에서 빛을 발한다.

[인상깊은구절]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억누르는 온갖 드러난 힘과 드러나지 않은 음모와의 싸움은 문학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의 싸움을 걸 상대의 힘이 터무니없이 커졌을 때라던가 종잡을 수 없이 간교해졌을 때도 그런 싸움을 중단하거나 후퇴시켰던 적은 없고, 그럼으로써 문학한다는 게 본인에게만 보이는 훈장처럼 스스로 자랑스러울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이런 억압의 관계만은 별로 문학의 도전을 안받으면서 보호 조장돼왔던 것같다. 도전은커녕 그런 관계를 비호하고 미화하는 것들 편에 섰다는 혐의조차 짙다. 그렇다고 그 까닭을 문학하는 사람이 남자가 여자보다 수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것들은 자기가 두둔하고 있는 쪽뿐 아니라 억누르고 있는 쪽한테까지 자기 편이란 착각을 일으키게할만큼 아름답고 낯익은 미풍양속이란 탈을 쓰고 있기 때문일게다. 그러나 내가 감히 그런 것들에게 싸움을 걸어보려했던 것은 내가 여자라는 것과 무관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고 꼭 써보고 싶은 이야기였지만 이것으로 끝난 얘기는 아니다. 집요하게 되풀이 시도해볼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회성을 무시할 수 없는 신
c******r 2001.01.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