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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내용보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박완서님의 자전적 소설이다. 하지만 중간쯤 읽을 때까지  자신의 유년시절을 기억하며 쓴 에세이인 줄로만 알았다. 앞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크게 써놓지 않았다면 아마 다 읽도록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누가 봐도 저자의 이야기인데 왜 굳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택했을까? 아마 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내용보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박완서님의 자전적 소설이다. 하지만 중간쯤 읽을 때까지  자신의 유년시절을 기억하며 쓴 에세이인 줄로만 알았다. 앞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크게 써놓지 않았다면 아마 다 읽도록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누가 봐도 저자의 이야기인데 왜 굳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택했을까? 아마 과거의 기억이란 아무리 총기 좋아도 잊히고 왜곡되어 자기 위주로 편집되기 마련이니 아예 소설이란 이름을 쓴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작품 뒷부분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그대로 밝히기가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내 친구 얘긴데...’하고 운을 떼는 사람들처럼.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박적골 이야기부터 교육열 높은 어머니 덕에 서울로 상경해서 학교를 다닌 개인적인 사연과,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역사가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인 작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인상적인 대목 몇 군데를 꼽아보며 책의 여운을 느끼고 싶다.


흰옷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초가지붕마다 뿜어올린 저녁연기가 스멀스멀 먹물처럼 퍼져 길과 논밭과 수풀과 동산의 경계를 부드럽게 지워 버려, 마침내 잿빛 하늘을 인 거대한 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도 흰옷 입은 사람이 산모롱이를 돌아오는 것은 잘 분간이 되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다들 흰옷을 입었다. 특히 송도 나들이를 갈 때는 때도 안 묻은 고운 흰옷으로 호사를 했다.

(p.16)


줄거리에 큰 영향을 주는 부분은 아니지만 작품 전체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다. 평소 오감으로 느끼고 살면서도 그 존재에 고마워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 부분을 읽고 나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하게 된다. 초가지붕의 밥 냄새 섞인 검은 연기, 둥그스름한 논과 밭과 동산, 넉넉한 품의 흰옷을 입고 느긋하게 걷는 마을 사람들. 시각이 없었다면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형언할 수 있단 말인가. 따지고 들자면 박적골만의 특별한 모습도 아닐 텐데 사무치도록 빼어나게 묘사된 풍경에서 저자의 그리움이 뭉클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기생 바느질이나 하면서도 근지만 따졌다. 근지가 뭔지 잘은 모르지만 신여성보다는 쉬웠다. 시골에서 행세깨나 하는 집안, 체면 존중하면서 살아온 우리 집안의 생활방식을 말한다는 걸 대상 눈치챌 수가 있었다. 나도 내가 살던 생활방식이 그리웠고, 내가 이 동네 아이들하고는 다르다는 느낌 때문에 그 뜻이 알기가 쉬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는 왜 저럴까? 하고, 자기가 하는 일은 무조건 다 옳다고 믿는 엄마를 은근히 한심하게 여길 꼬투리가 되기도 했다. 시골에 두고 온 우리의 뿌리와 바탕을 자랑스러워할 때의 엄마는 시골 와서 식구들에게 자기의 서울 사람됨을 은근히 과시하며 으스댈 때하고 똑같았기 때문이다. 시골선 서울을 핑계로 으스대고, 서울선 시골을 핑계로 잘난 척할 수 있는 엄마의 두 얼굴은 나를 혼란스럽게도 했지만 나만 아는 엄마의 약점이기도 했다.

(p.61)


작가의 성장기가 주된 내용이지만 이미 엄마가 된 지 한참 된 내게는 어머니의 모습도 눈에 선히 밟힌다. 서른에 과부가 되어 시골 시댁을 떠나 서울 변두리에 자리 잡고 삯바느질로 두 남매를 뒷바라지 하는 어머니.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경제적 어려움을 지닌 전형적인 한부모 가정이다. 하지만 자긍심만은 남달랐기에 어린 딸의 눈에는 어머니의 근거 없는 도도함이 모순으로 보인다. ‘시골선 서울을 핑계로 으스대고, 서울선 시골을 핑계로 잘난 척’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가난한데다 동무조차 없어 외로운 어린 소녀. 어머니의 뜻이 아무리 대견해도 딸에게 그런 엄마는 마냥 좋게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순적인 허영심마저 없었다면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버티셨을까. 그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도 좋은 부모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겪어본 입장에서 생각하니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해 5월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그때는 지금처럼 시도 때도 없이 아무 꽃이나 피어나는 시대가 아니었다. 오직 5월만이 잎도 꽃처럼 피어날 때였고, 라일락과 모란과 장미와 등꽃의 계절이었다. 교정에 꽃내음이 그득했고 벌들이 윙윙댔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친 도합 12년간의 교육기간 중 처음으로 우등상이라는 걸 받으면서 졸업을 했다.

...

입학시험은 4월 말경이었는데, 그때가 또한 문리대 근처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지금은 마로니에 공원으로 변하고 개천도 복개되었지만 그때는 동숭동 초입부터 이화동까지 길게 대학천이 흐르고 대학천을 향해 개나리가 눈부시게 늘어져 있고, 마당에선 벚꽃이 어지럽게 흩날리고, 마로니에가 움트고 있었다.

(p.222~223)


딱 여기까지만 읽고 싶었다.

라일락과 모란과 장미가 활짝 피고 벌들이 윙윙 나는 계절에 있었던 여고졸업과 대학입학. 해마다 5월엔 온갖 꽃이 피고 벌이 날았으련만 다음 장면을 알고 있기에 더욱 처절하게 아름답다. 역사를 알고 있지만 기왕 소설인데 좀 더 픽션을 가미해 결말을 좀 바꿔주면 안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읽는 이도 덮어두고 싶은 비극이지만 이 책은 다시금 해묵은 생채기를 꺼낸다. 앞서 발표한 여러 작품에서 언급하면서 흉 졌지만 딴딴한 새살이 돋아난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면 여전히 더운 피가 흐르고 있다. 저자는 그렇게 감추기보다 드러내며 상처를 공유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듯이.


천사의 옷에는 바느질 흔적이 없다고 한다. 솔기도 이음선도 없이 매끈하고 날아갈 듯 가벼운 옷. 그런 옷을 본 적은 없지만 아주 가끔 천의무봉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글을 만난 적은 있다. 그렇게 좋은 작품을 만나면 눈으로만 훑어버리기 아까워 소리 내어 읽고, 따라 쓰기도 한다.

이 책이 그랬다. 예전에 한번 읽은 적이 있지만 그땐 줄거리 파악하기 바빠 문장의 묘미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왜 못 알아봤을까? 아마도 읽기 쉬운 글이라 좋은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남이 하는 일이 쉬워 보인다면 그 사람이 고수라는 말. 이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YES마니아 : 로얄 s*****e 2024.03.19. 신고 공감 1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유년기의 기억을 더듬다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유년기의 기억을 더듬다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내용보기
나의 유년시절을 더듬어 보면 언제나 아련하고, 그리웁다. 잘 살고 넉넉해서 원하는 걸 말만 하면 뚝딱 나오게 하는 그런 경제적인 풍요로움은 아니다. 60년대 시골풍경 그대로 아침이면 마당쓰는 아버지에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 아침을 먹고 나면 끼니 때가 되어야 집으로 들어왔다.   어촌이었지만 아버지는 배를 탈 줄도 농사를 지으실줄도 몰랐다. 지금 기억으로는 엄마
"유년기의 기억을 더듬다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내용보기

  나의 유년시절을 더듬어 보면 언제나 아련하고, 그리웁다. 잘 살고 넉넉해서 원하는 걸 말만 하면 뚝딱 나오게 하는 그런 경제적인 풍요로움은 아니다. 60년대 시골풍경 그대로 아침이면 마당쓰는 아버지에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 아침을 먹고 나면 끼니 때가 되어야 집으로 들어왔다. 
  어촌이었지만 아버지는 배를 탈 줄도 농사를 지으실줄도 몰랐다. 지금 기억으로는 엄마는 바쁘게 집안일을 하셨던것 같은데... 반면에 아버지가 하루종일 무얼 하셨는지 기억에 없다. 가끔 아버지가 낚시하러 갈 때면 날 데리고 가시곤 했던것 같기도 하고. 
  고향을 떠나 읍으로 이사를 하고, 초등학교를 다니며 주말이면 여전히 고향마을에서 하루종일 삐비(삘기)를 뽑아 껌이라고 씹기도 하고, 찔레순도 따서 먹고, 뱀딸기를 보면 얼른 속눈썹을 하나 뽑고서 뱀딸기를 따서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 누군가가 장난처럼 한 말(뱀한테 안 물릴려면 눈썹을 뽑고 먹어야 한다.)을 진실처럼 받아들였던것 같다. 다래끼가 나도 눈썹을 뽑고... 삼촌의 배가 해안가에 다다르면 우린 쏜살같이 삼촌한테 달려갔다. 그러면 삼촌은 작은 쭈꾸미를 된장에 찍어 우리 입 속으로 쏘옥 넣어 주셨다. 가끔씩 막내 삼촌이 삽을 들고 나서면 우리는 쫄랑쫄랑 따라갔다. 삼촌은 개불을 잡아서 집에 가져오는 법은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맛있게 냠냠... 우린 그렇게 따라다니며 한입씩 얻어먹곤 했는데 단맛이 나고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끝내줬다. (요즘 횟집에서 맛을 보면 1%도 그 맛을 찾을 수 없다.) 
 
  가을이면 모래사장에 편으로 납작하게 자른 고구마를 말리는 빼때기가 우리들 간식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 없이 우리의 놀거리는 그렇게 풍성했었는데...

더보기 (친정엄마, 나, 그리고 딸)
 
유년시절 방에서 문을 열면 이렇게 은빛 바다가 잔잔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싱아 열매와 뱀딸기, 왜? 뱀딸기라고 했을까? 요즘아이들도 먹을까?
 
 

 여기에서 빼때기를 말렸는데...
 
 

 

 



 녹차밭에서 모녀...
깽이님~~~ 어릴적(초등생시절) 사진을 찾아서 올리려 했지만... 사정상...  나중에~~~



  책을 읽으며 유년의 기억을 새록새록 다시 끄집어 내어 아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남편도 마주보고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나더러 별천지 사람인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부러움의 시선을 보낸다.

  30~40년대의 시골 모습과 70년대의 시골 모습은 큰 차이가 없는것 같다. 친구들과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꺼내면 하나같이 자기 엄마가 겪었던 이야기를 듣는것 같다고 했었다. ㅋㅋ 말해 무엇하리... 아무리 말해도 모를꺼다. 아직도 집성촌으로 마을공동체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이곳도 세대가 바뀌면서 가쁘게 변화할 것 같아 씁쓸하다.

  박완서 선생님의 자전적인 이 책에는 친정엄마가 들려주셨던 경험담과 나의 추억들이 한데 석여있어 새록새록 또 다른 유년기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렇게 책을 덮고 나서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것.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은 한 두 작품밖에 안 읽은 것 같은데 많이 읽은것 같은 착각이 든다. 왜일까?

시골 애들은 심심해서 어떻게 살까 불쌍하게 여기는건 서울 내기들의 자유지만 내가 심심하다는 의식이 싹 트고 거의 짓눌리다시피 한 것은 서울로 오고 나서였다. 서울 아이들의 장난감보다 자연의 경이가 훨씬 더 유익한 노리갯감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호들갑일뿐, 그 또한 정말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p.27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삼시 밥 외의 군것질거리와 소일거리를 스스로 산과 들에서 구했다. 삘기,찔레순, 산딸기, 칡뿌리, 메뿌리, 싱아, 밤, 도토리가 지천이었고, 궁금한 입맛 뿐 아니라 어른을 기쁘게 하는 일거리도 많았다. 산나물이나 버섯이 그러했다. 특히 항아리 버섯이나 싸리버섯은 어찌나 빨리 돋아나는지 우리가 돌아서면 땅 밑에서 누가 손가락으로 쏘옥 밀어올리는 것 같았다.--- p.26



c*****y 2011.10.07. 신고 공감 6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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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이되서야 열매가 열린 싱아
"스무살이되서야 열매가 열린 싱아" 내용보기
종전과는 좀 다른 방법으로 글짓기를 해 봤다고 해서 그전의 박완서씨의 소설기법에 어떤 변화의 계기를 삼아 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 화자가 자화상 한두 장쯤 그려보고 싶은 심정 정도로 썼다는 것을 알수있기 때문에 말이다. 여지껏 박완서가 창조한 수많은 인물 중 어느 하나도 내가 드러나지 않은 이가 없건만 새삼스럽게 이게 바로 나올시다, 라고 턱 쳐들고 전면으로 나서
"스무살이되서야 열매가 열린 싱아" 내용보기
종전과는 좀 다른 방법으로 글짓기를 해 봤다고 해서 그전의 박완서씨의 소설기법에 어떤 변화의 계기를 삼아 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 화자가 자화상 한두 장쯤 그려보고 싶은 심정 정도로 썼다는 것을 알수있기 때문에 말이다. 여지껏 박완서가 창조한 수많은 인물 중 어느 하나도 내가 드러나지 않은 이가 없건만 새삼스럽게 이게 바로 나올시다, 라고 턱 쳐들고 전면으로 나서려니까 무엇보다도 자기 미화의 욕구를 극복하기가 어렵기도 했을 것이고 교정을 보느라 다시 읽으면서 발견한 거지만 가족이나 주변인물 묘사가 세밀하고 가차없는 데 비해 나를 그림에 있어서는 모호하게 얼버무리거나 생략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바로 자신에게 정직하기가 가장 어려웠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p****o 2002.08.30.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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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싱아의 푸르름은 현실을 잊기위한 위안일뿐...
"어릴적 싱아의 푸르름은 현실을 잊기위한 위안일뿐..." 내용보기
책을 덮고도 혼란스럽고 뭔가 정리되지 못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 이 책의 내용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책의 제목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하는 다소 감성적이고 동화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 정작 줄거리는 참혹하고 처참한 우리네 현대사를 여과없이 그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박완서씨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박완서씨는 이 사실적 소설의 주인공인 자신에 대해서
"어릴적 싱아의 푸르름은 현실을 잊기위한 위안일뿐..." 내용보기
책을 덮고도 혼란스럽고 뭔가 정리되지 못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 이 책의 내용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책의 제목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하는 다소 감성적이고 동화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 정작 줄거리는 참혹하고 처참한 우리네 현대사를 여과없이 그리고 있었다. 이 작품은 박완서씨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박완서씨는 이 사실적 소설의 주인공인 자신에 대해서는 100%솔직하지 못한점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했으나, 나는 주인공의 특이한성격과 뚜렷한 개성, 독특한 가치관과 유난히도 자의식이 강한 어머니에 대한 냉소, 또한 친오빠에 대한 일종의 동경에서 주인공을 나름대로 잘 파악할 수가 있었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시골(박적골)에 살 적에 느꼈던 싱아의 푸르름과 향긋한 내음을 그리워하는 듯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이젠 기억하기조차 어려운 과거와는 너무나도 천지차이인 현실에 대한 슬픔을 얘기하고 있다.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 동란의 1.4후퇴까지 겪어야만 했던 민족사적인 비극과 아픔과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주인공이 어렸을 적부터 막연히 존경했었고, 그랬기 때문에 특별한 인간으로 보았던 오빠가 전향을 하고 이후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굴종적이고 비굴한 인간으로 변모한 모습을 냉소하는 것에서도 수이 찾을 수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겠지만, 내게는 이 소설이 너무나 크나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어릴적의 생각없이 웃으면서 또래들과 시골의 이상적인 풍경을 즐겼던 추억을 돌이키기에는 주인공은, 눈앞에 진행되고 있는 현실적 모습들의 타격으로 인해 변해버렸다. 이렇듯 잘못되고 비뚤어진 역사는 굳이 '민족'같은 거창한 이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각 개개인의 기억과 추억에 아픈 흠집을 내는 것 같다. 이념대립과 무차별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로 인해 무고하게 피해당한 이들, 그 각자가 가진 가족이 짊어져야 했던 눈물과 상처... 그것을 누가 감당할 것이며 누가 책임질 수가 있을까. 그렇기에 내게는 다소 서정적인 제목이 역설적으로 더 슬프고 가슴아프게 아리어온다. 지금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믿기 어려운 비극을 인정해야하는 부담은 또하나의 비극이다. 그렇게 개인이 겪어야만 했던 비극을 감내하기 위해서 어릴적 추억은 위안거리로나마 존재해야 한다. 이렇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이야기, 작자가 더는 기술할 수 없었던 긴긴 이야기의 행간에서 눈물을 읽었다. 이제 더이상은 분단된 허리와 빨갱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치떨림이 인간을 비극으로 몰아서는 안될 거라는 확신을 하며...
d******4 2001.12.11. 신고 공감 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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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remembrance)에서 기록(record)으로
"기억(remembrance)에서 기록(record)으로" 내용보기
우리는 저마다 한 자루씩의 기억을 이고 살아간다. 인간은 기억력이라는 거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 생존을 유지하고 ‘멍’한 상태가 아닌 ‘명(明)’한 의식을 바탕으로 수 많은 의미를 창조한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은 존재할지언정 객관적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각기관으로부터 접수된 신호를 기억으로 저장할 때 개개인의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
"기억(remembrance)에서 기록(record)으로" 내용보기
우리는 저마다 한 자루씩의 기억을 이고 살아간다. 인간은 기억력이라는 거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 생존을 유지하고 ‘멍’한 상태가 아닌 ‘명(明)’한 의식을 바탕으로 수 많은 의미를 창조한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은 존재할지언정 객관적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각기관으로부터 접수된 신호를 기억으로 저장할 때 개개인의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은 불완전하고 흐리멍텅하며 ‘회상(recall)’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반면에 ‘글’은 ‘기록(record)’이라는 실체적 존재양식을 갖기 때문에 명료하고 정적 속성을 지닌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하 ‘싱아’)’에서 작가는 수 십 년 전 자신이 직접 겪었던 사건들을 회상(recall)하여 기억(remembrance)을 기록화(record)하는 흥미로운 글쓰기를 보여준다. 휘발성 높고 균일하지 않은 기체적 속성을 가진 ‘기억’을 ‘글’이라는 차가운 미디어로 동결시켜 고체화 함으로써 형태가 일정치 않았던 개인적 에피소드를 유형의 대중적 이야기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물질이 기체에서 고체로 변할 때 열에너지를 상실하듯이 기억을 기록화함으로써 작가는 언제라도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하고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좁혀버렸고 그녀의 기억에서 활동에너지는 상당 부분 방출되어버렸다. 하지만, 작가는 그 대신 많은 대중과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하여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 안에서 잠자고 있던 기억들을 활성화 시킨다. 우리가 ‘싱아’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소녀, 소년시절을 떠올리며 무언가를 떠올리고 이내 감상 내지 추억에 빠지게 되는 것은 ‘개인적 체험’을 ‘대중적 이야기’로 연금(鍊金)해내는 박완서라는 작가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즐거움이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5가구가 조그마한 부락을 이루고 있던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에게, ‘싱아’는 오랫동안 묻혀졌던 기억의 단편들을 조용히 떨구어 주었다. 할아버지의 강권에 눌려 아이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던 작가의 어린시절은 이웃에 또래 아이가 없어 유난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의 과거를 상기시키고 혼자 있는 데 익숙한 내 지금 모습의 뿌리가 어디인지 새삼스럽게 헤아리게 한다. 특히 글 초중반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에피소드는 내 평생 다 못 갚을 사랑을 부어주신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작가의 오빠는 지금 나의 반영인 것 같아 참으로 친근하게 느껴졌다. 작가가 묘사한 ‘오빠’의 캐릭터는 나와 적지 않게 닮아있고 무엇보다 7남매의 장남으로서 내가 느끼는 책임감이 어려운 집안을 세우려 묵묵히 애쓰는 ‘오빠’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전쟁을 몸소 체험하며 이전에 품었던 정의와 이상을 얼마간 포기하고 나중에는 구차한 모습까지 보이던 그의 모습을 유난히 안타깝게 느꼈던 것은 사회에 나가기 일보직전인 내 미래의 모습이 그와 같이 변질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YES마니아 : 로얄 i****y 2005.07.15.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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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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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박 완 서     오늘 아침까지 붙잡고 있던 책이었다.. 이 책을 한 3분의 1쯤 읽었을때.. 앞으로 일어날 사건이나.. 심지어는 표현법까지도 척척 맞혀내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내가 신기가 들었나.. -_-?   만약 이 책이 요즘 작가들의 책이었다면.. 아무래도 비슷한 유년기를 보내었을테니.. 그 보편성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겠는데..     나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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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박 완 서

 

 

오늘 아침까지 붙잡고 있던 책이었다..

이 책을 한 3분의 1쯤 읽었을때..

앞으로 일어날 사건이나..

심지어는 표현법까지도 척척 맞혀내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내가 신기가 들었나..

-_-?

 


만약 이 책이 요즘 작가들의 책이었다면..

아무래도 비슷한 유년기를 보내었을테니..

그 보편성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겠는데..

 

 

나이가 일흔이 넘는 박완서 선생과 본인이 그럴 공감대도 없고..

더군다나 나름대로 도시였던..

대구광역시 출신인 필자가..

이름조차도 생소한 박적골의 유년기억을 어찌 공감할 수 있었겠느냐..

 

 

필자가 거의 유일하게 맛 본 '자연의 맛'은..

아파트 놀이터 화단에 피어있던..

사루비아 꽁지를 쪽쪽 빨아먹었던게 다였는데..

'싱아'는 뭔지도 몰랐고..

 

 

하지만 그 의문은..

얼마되지 않아 쉽게도 풀려버렸다..

 


이미 봤던 책이었던 것이다..

-_-

 


그도 그럴것이..

몇 년전에 느낌표 선정도서가 되어..

애들은 무조건 책을 많이 읽혀야 한다는..

이땅의 수많은 부모님들께서..

얼마나 이 책을 많이 사주셨을까..

150만부나 팔렸다고 한다..

아마도 필자의 고향집에도 남아있을듯 하다..

 

 


그런 연유로 다시 보긴 했지만..

다시봐도..

이 책은..

어느 누구에게나 권해줘도 좋을만큼..

'좋은 책'임은..

틀림없는 사실이 될 듯 하다..

 

 

 

 

t******4 2007.11.0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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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그리움이 묻어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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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도인가 MBC에서 특별기획으로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에서 소개된 책이라 꼭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에 그 당시 사놓고 대충 읽고 어딘가에 쳐박아 두웠던 책인데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고 나서 박완서님의 작품을 또 다른 작품을 접해보고 싶어 오랜만에 다시 책을 펼쳐봤다. 잘한것같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을즈음에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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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도인가 MBC에서 특별기획으로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에서 소개된 책이라 꼭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에 그 당시 사놓고 대충 읽고 어딘가에 쳐박아 두웠던 책인데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고 나서 박완서님의 작품을 또 다른 작품을 접해보고 싶어 오랜만에 다시 책을 펼쳐봤다.
잘한것같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을즈음에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인것 같기도 하고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 좋은 느낌이 전해져왔다.

 

작가는 이제는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개성 박적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산과 들을 뛰어 놀면서 지천에 널린 싱아를 따먹던 그 때, 
학구열에 불타는 어머니덕분에 서울로 상경해 현저동 달동네 생활하며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그리움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일제시대부터 해방 그리고 6.25동란을 겪는동안 한 가족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잘된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상황묘사를 너무나도 재미있고 자세하게 해줘서 작품속 장면들이 하나 하나 눈앞에 선하다.
작품을 통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제시대도 어렴풋이 느껴봤고 40~50년대 서울의 모습과 사회상, 풍속, 인심 등도 살짝 엿볼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격동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삶에 찌들지 않고 항상 밝고 순수했던 모습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미 세월의 나이를 먹고 이 글을 썼을텐데 어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이렇게 어린 아이처럼 잘 그려냈을까?

 

책을 읽으면서 반가운 몇 장면도 만날 수 있었다.
야다리 이야기, 수업시간에 친구랑 몰래 성인극장에 가서 영화보러갔던 이야기, 6.25때 총상을 입은 오빠를 달구지에 싣고 어렵사리 피난가던 이야기 등은 얼마전 읽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읽었던 이야기들이다.

6.25때 오빠가 총상을 입은것과 숙부가 빨갱이로 몰려 아무도 모르게 처형당했을때는 너무 슬펐다.
책속에 너무 빠져있던 탓인지 마치 나의 친척이 당한 일처럼 미칠것만 같았다.

 

이 책은 작가의 기억력과 탁월한 감수성으로 그려진 자화상같은 소설이라서 작가의 작품들에는 가끔씩 중복되서 나오기도 하나보다.
작가도 자기 기억들을 우려먹은 적이 많다했지만 책마다 다 다른 느낌으로 전해져 나쁘지 않았다.
오늘도 좋은 작품을 통해 제 삶이 아주 조금은 풍요로워진것만 같다.

 

<책 속으로>
어느 날 어떤 아이가 나보고 "시골때기 꼴때기"라고 놀리자 다른 아이들도 일제히 따라서 같은 소리를 합창했다.
나는 그 애들이 나를 놀릴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시골이란 데와 그 애들이 현재 살고 있는 형편을 비교하면서 참 별꼴 다 본다고 가소롭게 생각했다. 나도 어느 틈에 엄마의 속들여다보이는 교만을 그대로 닮아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애들 앞에서 울긴 싫고 울지 않으려면 엄마한테 들은 근지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시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뻔뻔스러워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 P63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 기슭이나 길가 아무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꺽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 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 속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때까지 헛구역징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 P77

 

엄마가 자식한테일수록 처신을 잃는 것을 극도로 경계 했듯이 나 또한 엄마에게 처신을 잃지 않으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
내가 엄마한테 가장 처신을 잃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내가 쓴 책을 엄마가 읽는 일이었다. - P237



p******8 2011.05.0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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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써 보았다. 쓰다 보니까 소설이나 수필 속에서 한두 번씩 울거먹지 않은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때의 쓰임새에 따라 소설적인 윤색을 거치지 않은 경험 또한 없었으므로 이번에는 있는 재료만 가지고 거기 맞춰 집을 짓듯이 기억을 꾸미거나 다듬는 짓을 최대한으로 억제한 글짓기를 해 보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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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써 보았다. 쓰다 보니까 소설이나 수필 속에서 한두 번씩 울거먹지 않은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때의 쓰임새에 따라 소설적인 윤색을 거치지 않은 경험 또한 없었으므로 이번에는 있는 재료만 가지고 거기 맞춰 집을 짓듯이 기억을 꾸미거나 다듬는 짓을 최대한으로 억제한 글짓기를 해 보았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집의 규모와 균형을 위해선 기억의 더미로부터의 취사 선택은 불가피했고 지워진 기억과 기억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주기 위해서는 상상력으로 연결 고리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0 2008.12.2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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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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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모으는 일이 취미인 사람들이 대부분 그럴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이 책을 사두고선, 몇 년이 지난 이제서야 책을 다 읽었다.   책을 사던 그때는 책을 읽는 일에 별 관심도 없었고 대충, 박완서작가님이 어느 분인지만 알고 있는 그런 상태였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홍보때문에 책을 구입하긴 했는데, 구입한 책이 바로 책꽂이에 꽂히면, 그 책의 운명은 대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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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모으는 일이 취미인 사람들이 대부분 그럴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이 책을 사두고선,

몇 년이 지난 이제서야 책을 다 읽었다.

 

책을 사던 그때는 책을 읽는 일에 별 관심도 없었고

대충, 박완서작가님이 어느 분인지만 알고 있는 그런 상태였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홍보때문에 책을 구입하긴 했는데,

구입한 책이 바로 책꽂이에 꽂히면,

그 책의 운명은 대개 이런 것이다. 언젠가는 읽혀질, 시간을 저장한 책.

 

그 이후에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박완서작가님이 얼마나 담백하게 글을 쓰시는 분인지 느끼게 되었고

그 분의 자서전이라는 이 책을 읽고싶은 욕심이 생겼다.

 

나는 문학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그것을 창조해낸 사람에 대해 많이 알아야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 책을 계기로 박완서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의 많은 부분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문장들이 다시 일어났고

그 시대엔 있었을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벌떡벌떡 일어나 돌아다니는 것 같다.

 

혹시, 박완서작가님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싶다면,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싶은 분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자서전아닌가.

그냥 다른 책들처럼 말고,

좀 더 느끼려고 애쓰면서 읽었으면 좋겠다.

 

 

b*****7 2008.11.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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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를 보려고 샀지만....
"글솜씨를 보려고 샀지만...." 내용보기
저는 글재주가 없습니다.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아마 글을 자주 쓰지 않아서기도 하고 무언가 깊이 생각하고 음미하는 습관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택하게 된 것은 친구가 이 작가의 글에서 평소에는 우리가 쓰지 않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표현을 접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그런지 낯설지만 한구어가 모국어기 때문에 느낌만을 알 수 있는
"글솜씨를 보려고 샀지만...." 내용보기
저는 글재주가 없습니다.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아마 글을 자주 쓰지 않아서기도 하고 무언가 깊이 생각하고 음미하는 습관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택하게 된 것은 친구가 이 작가의 글에서 평소에는 우리가 쓰지 않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표현을 접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그런지 낯설지만 한구어가 모국어기 때문에 느낌만을 알 수 있는 그런 어휘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고물고물하다", "대고대고하다", "마실을 하지 않았다" 이런 표현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된 표현들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잘 모르는 이유가 생각해보니 작가가 싱하를 도시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 처럼 제게도 그런말들을 할 대상이 제 기억이나 체험에 없던 것이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박적골에서의 작가의 어린날은 그 옛날 우리의 시골에서나 가능했던 체험이었을 것 입니다. 그리고 단조롭기만 할 것 같은 그 옛날의 시골 생활은 사실은 반대로 작가가 그렇게 다양하고 생생하게 표현할만 곳이었던 것이지요. 여하튼 늘 딱딱한 실용서적과 번역서만 읽다가 우리말로 쏟아지는 생동감 넘치는 문장 자체를 읽는 즐거움 만으로 충분히 개인적으로 제게는 읽은 만한 글이었습니다. 이 참에 자주 우리 작가들이 쓴 글을 많이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리고 바란다면 저도 그렇게 생각한 것을 보고 있는 것을 글로 적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e****7 2005.12.13.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