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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어수선한 연말, 무언가 유쾌하고 즐겁게 끝내고 시작해야할 것 같은 연말연시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그래서 약간은 위험하기도 한 영화를 보았다. 그것도 DVD를 구매해서 의도적으로.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예전 한참 화제가 되었을 무렵 이 영화가 '지나치게 우울하다'는 이유로 기피했던 것이 생각나서다. 영화가 처음 나온 1999년은 나의 서른 즈음과 겹치는 심란한 시기였기에 볼까..말까..를 선택의 기로에 놓고 안 보는 쪽으로 선택했더랬다. 당시 영화잡지를 즐겨보던 차에 부록으로 들어온 OST CD를 몇번 듣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우울한 느낌을 느껴보기엔 충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헤더 노바(Heather Nova)의 소름을 돋게하는 목소리가 흐르는 OST 만으로는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던 욕구가 내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었는지, 볼 만한 DVD를 검색하던 중 눈에 뜨인 이 영화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20세기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지 않는 것은 어쩐지 예의가 아닌 듯 싶기도 했고, 이제는 충분히 나이를 먹어 영화가 주는 우울함을 견딜 내성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보게 된 영화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전설의 곡 「Gloomy Sunday(독일어로 Trauriger Sonntag, 원제 Vege a vilagnak)」을 소재로 한 동명의 영화 「Gloomy Sunday : Eine Lied von Liebe und Tod(사랑과 죽음의 노래)」 이다.
영화의 배경은 2차세계대전이 한창인 시기의 헝거리 부다페스트. 주요한 등장인물, 즉 주연급으로는 총 네명이 등장한다. 우선 영화 속에서 '글루미 썬데이'의 작곡자로 나오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아라디(이 곡의 실제 작곡자는 레조 세레스(Rezso Seress)로 실연의 아픔을 담아 1935년 발표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레스토랑의 운영자 유대인 라즐로 자보(라즐로 자보(Laszlo Javor)는 실제 이 곡의 작사가로 원래는 詩人이며 유대인이 아닌 헝거리인), 이 둘과 동시에 사랑에 빠지는 거의 안주인 스러운 레스토랑 여급 일로나 바나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급 일로나를 연모해 이 레스토랑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독인일 청년 한스 바크 빅크다.
앞의 주요 등장인물 소개를 통해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아니다. 2차 대전이 한창인 때 강대국들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공간적 상황과 두 남자와 동시에 사랑에 빠져버린 우유부단했던 한 여인, 그리고 그런 여인의 반쪽짜리 사랑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두명의 순정남이 만들어낸 비극은 다소 상식 선에선 부적절한(?) 소재임에도 불구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배경과 원곡의 흐느끼는 듯한 선율이 잘 어우러져 한 편의 명작을 만들어냈다. 비슷한 한핏줄 영화로 프랑스의 「몽상가들」 이나 우리나라의 「아내가 결혼했다」 와는 단순비교 자체가 무리인 격(格)이 다른 영화.
영화는 생각한 것 만큼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우울해서 자살충동이 일어난다..는 말도 일종의 마케팅인 듯)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50년 후의 모습은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멜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영화의 처음에 세상의 존경을 받던 80세 노인이 사진을 보고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면 거기에 미묘한 반전이 존재함을 알게된다. 예전에 보았는데 그 반전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거나, 이 포스팅의 제목이 생뚱맞게 여겨지거나, 이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들은 기회가 닿을때 꼭 (다시) 보실 것을 권한다. 100년 영화사에 관객평점으로 역대 2위(1위는 그 유명한 「대부」)를 차지했을 정도로 평가가 좋은 영화니까.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헤더 노바의 「Gloomy Sunday」 OST 곡 MV를 소개해볼까 한다. 이 노래는 영화 이후는 물론 이전에도 수많은 내노라하는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헤더 노바의 곡만큼 호소력이 느껴지는 것은 없는 듯 하다. 아마도 그건 이 곡이 내게는 제일 처음 만난 「Gloomy Sunday」 여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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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막연히 <글루미 썬데이>를 보거나 듣고나면 당연히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다. 미치는 영역이 너무 좁은데 음악적 비쥬얼로 감성을 흔들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또 유럽의 언어는 제법 명랑하지 못하다. 내가 가보지 못한 부다페스트에 자보와 안드라스 그리고 일로나가 살았다. 그들의 청춘을 아는 할아버지 한스도.
당시 죽어간 사람은 "글루미 썬데이" 때문이 아니라 일로나가 범인이다. 일로나는 영화속에만 숨쉬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절망적 아름다움을 지녔다. 모두 그녀를 사랑했다. 자살송가를 듣는 즐거움도 잠시, 부다페스트의 고요함에 물든 것도 잠시, 영화는 곧 지루해졌다. 일로나의 육제적, 정신적 아름다움으로 나는 인내했다. 그리고 과감히 그들을 죽인건 일로나라 단정지었다.
우울이 흐른다. 세상의 비정함이 보인다. 아마추어 작곡가의 음악 한곡에 세상이 떠들썩한 까닭은 중요하지 않다. 음악에 빠진 이들이 죽어나갔고 비로소 <글루미 썬데이>는 현실성을 획득한다. 자살을 부축였다기 보단 생의 마지막 순간에 행복을 선사하고 외로운 자들의 영혼을 달래준 선물에 불과했을거다.
일로나는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지만 두 남자는 반쪽의 일로나만을 각각 소유했다. 자보와 안드라스의 고독한 최후. 일로나에겐 체념이었다. 삶은 무거웠다. 자살만이 탈출구였을 것이다. 세상을 향한 죄책감과 예술에의 천재적 기질, 일로나에 대한 반쪽사랑의 절망이 안드라스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여전히 "글루미 썬데이"는 숨막히는 사랑의 선율로 살아 숨쉰다. 영원히 "글루미 썬데이"가 흐른다. 또다시 눈을 감는다. 음악이 멈추면 숨도 멈춰질까 기대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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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음악에 모든 사람이 죽어나간다. 왜 그들은 왜 이 음악을 들으면 죽음을 택했어야 했나를 영화를 통해 자기만의 감정을 풀이해나가야한다. 아름다운 선율,,,하지만 듣고 있으면 나조차 우울해지는지를 영화를 보면서 으아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여자를 반이라도 갖고 싶어하는 그들.. 그들의 스토리는 그렇게 나아간다.. |
| 저가의 같은 영화DVD가 있으나, 굳이 소장을 원한다면 당연히 이 타이틀을 권하고 싶다. 아쉽지만 영화자체가 워낙 좋으니까. 영화제목과 같은 극중의 글루미썬데이란 곡도 좋지만, 또다른 곡들 또한 영화속에서 빛을 발한다. 야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기발하기도한 이 영화. 너무 좋은 영화가 조금더 화면비등이 훌륭이 나왔다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