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는 예수님에 관해 그가 이미 알고 있는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 제쳐놓고 새로운 시각으로 예수님을 공부해보기로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복음서를 읽으면서 경험한 것들을 저자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본서의 제1부는 "동정심을 나타내 보이는 사랑"이다. 저자에 의하면, 동정심은 예수님의 성품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감정이다. 분노나 두려움에 비해 동정심은 상당히 미묘하다. 동정심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동정심은 사람의 눈을 통해 전해진다고 말한다. 그 눈길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친절하며, 근심 어린 빛을 띄고 있다. 모든 일을 멈추고 상대방의 감정에 주목하며 귀를 기울인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공부하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신 횟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셨다는 기록이 모두 40번 가량 나온다. 그리고 종종 동정심을 갖기 전에 먼저 사람들을 바라보셨다는 사실이 특히 인상적이다(마 9:36; 막 10:21).
제2부의 제목은 "진리를 말하는 사랑 "이다. 복음서를 읽는 동안 예수님은 저자를 놀라게 했다. 그 가차없는 정직함과 솔직함이 거의 무례하게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정심이 많은 분이 어떻게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대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은 진리를 고수하셨을 뿐 아니라 진리를 위해 대담하게 자신의 명성에 가해질 위험을 무릅쓰셨다. 정의를 지키려는 예수님의 대담성과 헌신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비타협적이고 엄격한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솔직함은 급소를 찌르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옳은 것을 지키는 철저한 헌신과 그것을 표현하는 용기를 지니고 계셨다. 고대 히브리 선지자들처럼 예수님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종당하지 않으셨다. 권력에 굶주린 갈릴리 총독 헤롯을 "여우"라고 부르셨다.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은 "회칠한 무덤"이라, "독사의 자식들"이라 부르셨다(눅 13:32, 마 23:27, 33).
예수님이 사람들과 맺은 모든 관계 속에는 진실함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솔직하지 못한 관계는 투명하지 못하고 의미를 찾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진리를 대면하게 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잘못된 길로 가면서 어지러운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에게 우리가 동정심만을 보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악을 조장하는 것이 된다. 진리를 말해주지 않고 비열한 아내를 이해해주려고만 하는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이다. 동정심이라는 선물에는 진리라는 선물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상깊은구절]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건 예수님을 외면해버리기는 어렵다. 20억에 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을 따른다고 말하고 있으며 10억에 달하는 모슬렘 신자들이 그분을 선지자로 여기며 존경을 보낸다. 손꼽히는 유대인 신학자들도 위대한 스승으로 그분을 존경한다. 그분의 형상을 힌두교 사원에서도 볼 수 있다. 여러 이단 종파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화신이라고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