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체상 경어는 생략했습니다.
───────────────────────────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txt] publishing : 대원 C.I NT Novel author/translator : 아키야마 미즈히토 / 김희정, 서범주 price : 각권 5,900 원 (전 4권) ──────────────────────────────────
□ 이 글에는 전반적인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읽기 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NT 노벨을 위시한 문고판 소설은 그것이 지닌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폄하 받고 있다. 겉표지와 책 중간 중간을 장식한 왜색 짙은 만화 일러스트, 얇은 두께와 볼품없어 보이는 싸구려 표지와 포켓 사이즈. 이 중에 작품의 질 자체를 판가름할 수 있는 요소는 단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이 시대에 겉만 보고 내면을 평가하는 건 사람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문고판 소설은 (대부분) 대중 소설이다. 대중의 취향에 맞는(때론 ‘맞춘’ 경우도 있지만) 문고판 소설이 문화적 가치보다는 오락적인 재미에 치중한, 가치 없는 작품이라 매도하는 이들에겐 ‘소설’이 대중적인 것이 어째서 그른 것인지 반문하고 싶어진다. 소설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누군가에게 읽히기에’ 소설인 것이다. 독자를 간과한 소설은 면벽수행 중에 2 인 만담을 혼자 하는 것만큼이나 의미 없음이다. 영국이 낳은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대중을 위한 희곡이었고, 영문학의 딸과 같은 작품이라 평가받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도 현대의 ‘할리퀸 로맨스’ 문고판과 다를 바 없는 대중 소설이었음을 생각해보라.
즉, 어떤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는 겉표지가 양장인지 아닌지, 문장이 어려운지 쉬운지, 만화로 된 삽화가 있는지 없는지 - 등이 아니라 그 작품이 읽는 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또 어떤 메시지를 주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대중적이라 함은 그 의미 전달에 있어 다가서기 쉽다는 뜻이고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진짜 가치 있는’ 소설은 대중 소설에서 건질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여기저기 들고 다니며 언제든 읽기 편하다는 장점(쓸데없이 바쁜 현대인들에겐 휴대성portable이야말로 제일의 미덕이다)까지 겸비한 문고판 소설을 다만 표지가 만화책으로 ‘오해’받기 쉽고, 자극적이고 오락적인 소재가 대부분이라는 편견 때문에 기피한다면, 도리어 그런 태도를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책을 읽는 것을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라면 당장에 고전 철학서나 이해 못할 원서를 들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손에 들고 읽는 것이 만화책이든 뭐든 간에 열심히 읽는 것이야말로 애독(愛讀)의 첫 걸음이다.
지금까지 지극히 당연한 말을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듯 유난을 떤 이유는 최근 즐겨 읽은 한 작품 때문이다.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당연히 ‘만화책으로 오해받기 십상인 문고판 소설’이다. 미확인 비행물체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 이 세 글자는 쓰임과 동시에 자기가 속한 모든 매체를 (일반적인 시각에선) 가십(gossip)으로 만들어 버리는 놀라운 효과를 지녔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이리야의 하늘’에서 고조된 호기심이 ‘UFO의 여름’에 이르러 ‘피시시’ 소리를 내며 가라앉는 듯하다. 가장 흔한 반응이라면 “뭐야아..이건” 라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남이 즐겁게 읽는 책에 이런 반응은 결례가 아닌가. 이래서야 동방예의지국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로스웰 사건과 네바다 51구역은 자명한 사실이고, 외계인 그레이가 낯설지 않고, 아담스키형이란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어떤 모양이 형상화되는 사람이라면 ‘UFO'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입가엔 미소가 눈가엔 생기가 그리고 가슴에는 동류만이 느낄 수 있는 밑도 끝도 없는 열정이 피어난다. 로스웰은 뭔지, 네바다 51구역은 또 뭔지, 아담스키는 러시아 운동선수라도 되는 건지 긴가민가한 사람들은 도통 빠져들기가 힘든 것이 바로 이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이다.
주인공인 아사바 나오유키는 평범한 소년이다. 소노하라 시(市)립 중학교의 학생이고, 평범한 가정의 장남이며, 도통 이해할 수 없게 된 여동생의 오빠이고, 이발사인 아버지 덕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용돈벌이 삼아 머리를 깎아주기도 하는 그저 평범한 소년이다. 적당한 성격에 적당한 능력, 적당한 삶. 하지만 한 가지, 적당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가 속한 동아리이다. ‘소노하라 전파 신문’(구 태양계 전파 신문)은 ‘태양계와 같은 넓은 식견을 전파와 같은 신속성으로 보도한다’는 제멋대로의 해적 신문부로, 아사바 나오유키의 평범한 나날은 동아리 활동의 최전선에서 인간을 초월한 능력과 열정으로 부원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스이센지 쿠니히로라는 한 명의 괴인(怪人)으로 인해 언제나 평범과는 거리가 먼 무언가로 개조 당하고 만다. 계절과 함께 ‘단 하루만에’ 뒤바뀌어 버리는 스이센지의 테마에 휘둘리고 마는 아사바는 ESP(초감각적지각능력, 즉 초능력)의 겨울, 심령현상의 봄을 지나, 마침내 UFO의 여름에 입성하게 된다(물론 타의로). 이제 뜬금없는 제목의 반절을 해결한 셈이다. (언제부터 제목 해설이 목적이 되어버린지는 모르겠지만)
북(여기서의 북은 이 소설에서 가정된 일본의 적국으로 현재 우리나라와 북한과 비슷한 관계다. 같은 민족, 같은 땅 위에 살지만 서로가 서로의 적인 관계)과의 계속되는 마찰, 크고 작은 군사 충돌과 오랜 시간 지속된 긴장이 도리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소설 속의 일본에서, 소설의 무대인 소노하라 시(市)는 적국의 공격을 차단하고 역으로 공격해나가기 위한 전진 기지의 역할을 하는 도시인데, 그 전력의 중추인 공군기지는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의 군사 협력으로 만들어진 기지이며 소노하라 시는 바로 그 기지와 함께 발전해온 이른바 군민(軍民) 공동의 도시이다. 이곳의 사람들에겐 일반적인 레벨 이상의 비상 훈련이나 상황도 일상의 일부분일 뿐이고, 핵공격에 대비한 셀터라던가 최신 소재로 만들어진 방탄 헬멧도 익숙한 풍경이고, 길을 가던 꼬부랑 할머니조차 주둔 미군과 능숙한(하지만 발음은 엉망인)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게 이상할 게 없는 모습이다. 소설의 초반부는, 그런 비일상적인 일상 속에서 테마의 사내 스이센지(중학생에게 ‘사내’라니 묘한 어감이지만, 소설 속에서 묘사된 것이 비하면 ‘당연한’ 아니 ‘부족한’ 표현이다)와 소심한 아사바 특파원이 벌이는 작은 소동으로 전개된다. UFO 매니아들 사이에서 ‘블랙만타’로 불리는 수수께끼의 비행체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소노하라 기지 4 에이프런 군사 지역으로 무단 침투, 여름방학 내내 야영을 해가며 (말 그대로) 죽쳤지만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산을 내려오던 그 날에, 방학의 마지막 날에 아무도 없는 학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에 그곳으로 향한 아사바는 거기에서 자신의 운명, 모질게 길었던 ‘UFO의 여름‘의 진짜 시작이자 적당하고 평범했던 날의 끝, 그리고 한 소녀를 만난다.
이리야 카나. 지나치게 수줍어하고, 뭐든 처음 하는 것 마냥 서툴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슬픈 눈빛을 하고, 위험해 보이는 코피를 습관처럼 쏟는 그 소녀는 손목에 박혀있는 은색의 반구만큼이나(!) 수수께끼인 존재다. 평소의 아사바라면 저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사과하고는 발이 안보이게 뛰어 도망쳤겠지만, 운명이란 것일까, 아사바는 용기를 내 그 소녀에게 말을 건넨다.
“저...수영은 처음이니?”
'각인(刻印 imprinting)'이라는 현상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갓 태어난 기러기의 새끼들은 처음으로 본 대상을 무조건 제 어미로 여긴다. 그것이 장난감 로버트든 털투성이 생물학자든 상관없이 진짜 어미로 여기는 새끼들이 가짜 어미 뒤를 아장 아장 쫓는 것은 여간 신기하고 귀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새끼들이 측은하고 불쌍하다. 자신은 진심으로 제 어미라 여기는 것이 한낱 움직이는 플라스틱 혹은 터프한 수염을 잔뜩 기른 생물학자라니. (우리 어머니가 수염 난 생물학자였다면 난 절대로 비행청소년이 됐을 것이다) 새끼는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태엽 소리를 내며 걸어갈 뿐인 장난감 로버트 어미를 마지막까지 진짜 어미로 알고, 결코 원망하는 일 없이 ‘행복하게’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무섭고 슬퍼진다. 비극의 주인공이 행복하다면 그 역설의 상황을 보는 관객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라는 느낌이다.
기러기의 새끼가 이러할 진데, 아사바에게 수영을 배우고 있는 이리야는 어떨까. 자신이 속한 작은 세계의 알을 깨고 처음으로 접한 ‘세상’에서 맨 처음 마주친 아사바, 자신에게 처음으로 ‘사람으로’ 말을 걸어준 아사바, 처음으로 수영하는 법을 알려 주는 아사바. 두말할 나위도 없이 각인이다. 이리야가 좋아하는 사람. 이리야와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 이리야를 알아줬으면 하는 사람. 이리야에게 살아갈 목적을 주는 사람. 아사바 녀석, 코 꿰었다.
이후 이야기는 급진전된다. 서투른 소년과 뭐든 처음 해보는 소녀의 어설픈 데이트는 수많은 이들의 복장과 애간장을 녹이며 시작되고, 숨겨진 진실에 차차 다가서는 그레이트 스이센지는 여전히 대단하며(이런 중학생이 실제로 있다면 나는 그를 ‘형님’으로 모실 용의도 있다), 소노하라 전파신문의 부원이자 스이센지의 숙적(스이센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이자 아사바를 사이에 두고 이리야의 연적이 되는 스도우 아키라는 이리야와 정면대결, 그것도 먹기로 승부수를 띄운다. 그리고 아사바와 이리야는, 이리야 카나와 아사바 나오유키는 슬픈 결말을 향해 나란히 걸어간다. 마주잡은 손은 결코 놓지 않는 채.
전 4권, 각 권마다 숨겨진 이야기와 반전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오는 작품이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얘기를 밝혀두자면(초반에 나오는 얘기니 스포일러(스토리 따위를 미리 알리는 몰상식한 행위. 브루스는 유령이다! 등)는 아님을 밝혀둔다), 이리야는 스이센지가 애타게 찾던 블랙만타의 파일럿이며, 블랙만타는 UFO가 아닌, 현재의 공학 기술과 물리 법칙을 초월하는 최신의 전투기이고, 이리야는 오직 그것만을 몰기 위해 희망도 생의 이유도 정상적인 삶도 없이 살아왔다. 그리고 아사바를 만났다.
이 작품을 읽고 있거나, 혹은 읽을 생각인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작품의 시작이 의외로 유쾌하다고 해서, 인물의 묘사나 작가의 어투가 재밌다거나, 표지의 이리야가 ‘밝은 소년만화풍’이라고 해서 이 작품 전체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두길 바란다. 이 작품은- 맛있어 보이기에 입에 털어 넣었더니, 달디단 초콜릿 코팅은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고 난데없이 쓰고 독한 위스키 시럽(시럽이라는 게 쓸 순 없지만)이 나와 버려서 엄청 당황스러운, 하지만 뱉기엔 아깝고 삼키기엔 늦은 봉봉 초콜릿이다. 다 먹고 나면, 쓴맛만 입안에 남을 걸 알면서도 달디단 초콜릿과 묘하게 끌리는 쓴맛에 다음 포장지를 벗기고 만다. 아무리 먹어도 결국 끝 맛은 씁쓸할 걸 알면서 말이다.
예상했던 대로, 아사바와 이리야의 이야기는 세상 무엇보다도 독하고 슬픈 방향으로 흘러간다. 읽는 내내 조금만이라도 읽는 사람을 배려해서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게 해줘-라고 생각해보지만, 잔인한 작가는 독자들의 희망, 망상을 여지없이 배신한다. ‘이런 게 세상이냐’, ‘이런 게 너희 어른들 멋대로의 현실이냐’라는 아사바의 절규는 작가가 만든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공허히 울리다 이내 사그라진다. 개인의 발버둥은 결국 국가, 군부, 집단, 어른들의 손바닥 위일 뿐이고, ‘빅브라더’를 뛰어넘는 초월적 영웅은 없다. 지극히 현실주의적이고 패배적인 사상이 지배하는 암울한 작품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은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의 진짜 맛은 입에 넣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초콜릿 코팅이 아니다. 그 안에 감춰져있다 이내 곧 나타나는 쓰고 독한 에센스, 혹은 예정된 실패라던가, 저항할 수 없는 시련,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기 한계 같은 인생의 쓰디쓴 순간이 인생이란 봉봉 사탕의 진짜 맛이 아닐까..라는 얘기다. 이리야와 아사바의 운명은 평온하고 조용한 일상이 아니라 미지의 적과 눈앞의 적, 죽음과 삶 사이에서 이어진다. 아사바와 이리야는 매일 매일의 고통 속에서도 살아나갈 목적이 되고, 해 볼 도리조차 보이지 않는 현실의 벽 앞에서 같이 주저앉으면서도 ‘이젠 어쩐다’라고 서로를 마주보고 픽- 웃어 버릴 수 있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
다시금 각인 얘기다.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서로에게 운명으로 각인된 이 어린 한 쌍은 자신 하나 추스르기도 벅차고 서로에게 기대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털북숭이 생물학자가 제아무리 지극정성으로 돌본다손 어린 기러기 새끼는 결코 먹이 잡는 법, 나는 법을 배울 수 없다. 되려, 날지 못하는 제 어미를 위해 철을 나기 위한 이동도 하지 않은 채 머무르다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고). 이미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가혹한 짐이 된다. 하지만, 어린 기러기든 이리야든 나는 법, 살아남는 법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살아나갈 이유를 찾았기에 이들의 ‘각인’은 생존의 가치를 뛰어넘는다.
학교 축제가 있던 어느 여름날, 아사바와 ‘마임마임’의 왈츠를 추던 이리야의 기체는 작품의 마지막에 다시금 하늘과 춤을 춘다. 아사바를 지키기 위해, 오직 아사바를 지키기 위해. 그 아사바가 있는 세계의 위에서 블랙만타의 파일럿으로 춤을 추고 이내 곧 사라진다.
쓰다.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이상의 초콜릿은 없음을 알면서도 계속 읽어 내려간다. 정신없이 읽던 나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 작은 탄식과 함께, (솔직히 말해) 실망한다.
마지막의 아쉬움은 앞에서 보여줬던 기댓값이 만들어낸 격차 때문이었을까. 이리야의 마지막 춤 이후 몇 개월, 평화를 되찾은 시골 마을에는 여전히 평범한 아사바와 독기 빠진 아키라, 송이인간으로 전락(?)한 스이센지가 있다. 이리야가 부재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잘도 돌아간다. (작가의 악랄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더군다나 1, 2, 3권에서 그토록 강렬무비하던 인물들이 ‘그래 그랬었지’라는 대사를 읊조리며 왠지 세피아 톤으로 그려질 것 같은 맥 빠진 모습으로 등장할 때는 정말이지 ‘이게 뭐냐!’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평범한’ 아사바는 예전의 그 아사바가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가장 약하고, 가장 외롭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빛나던 한 소녀와 자신이 속한 세상의 끝까지 함께 했던 소년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소년은 아니며, 그렇다고 어른은 더더욱 아니다. 말 그대로 세계의 존망을 걸고 겪은 사춘기인 셈이다.
여하튼, 이 작품은 재미있다. 스이센지라는 역대 최강 캐릭터의 매력만으로도 가치가 있겠지만, 과격하고 서정적이고 건조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오가는 작가의 필력, 군사/음모 분야의 다양한 소재를 무리 없이 줄거리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역량, 인물의 심리 상태를 자동 기술한 듯한 참신한 시도 등, 완성된 ‘소설’로써의 외양을 갖추고 이 정도의 재미를 갖춘 작품이라면 문고판이 아닌 어떤 형식이더라도 충분히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문고판의 강점이라고 한 주제에 이 책은 책상머리에서, 소파에서 하루 종일 꼼짝도 않고 읽었었다. (물론 군 입대 후에는 그렇게 못했지만) 심각한 전개에, 과격한 심리 묘사에, 작가의 가혹한 설정에,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에 빠져들어 읽다보면 길을 가다 부딪치기 일쑤요, 지하철에서 내릴 역 놓치는 일도 다반사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분명 문고판 소설이지만, 왜소한 겉모습 속에 꽉 찬 속을 지녔기에, 여느 양장본 고급 서적 이상으로 ‘작품의 무게’를 지닌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무더운 한여름에 시원하게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처럼, 읽었던 기억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서툴고도 길었던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하며, UFO의 여름이 막 시작되려하는 6월의 어느 날에 나는 눈을 감고 이리야의 서툰 왈츠를 떠올려 본다.
(…어째서, 스이센지가 떠오르는 겁니까.) ‥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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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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