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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도시, 혼돈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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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 혹은 한 도시의 역사를 학술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쓰려면 적어도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할 것 같다. 『국화와 칼』을 쓴 루쓰 베네딕트처럼 일본을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음에도, 철저한 사료 고증을 통해서 일본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끌어내는 방식이 그 첫 번째 방식의 사례이다. 두 번째는 이 책 『예루살렘』의 토마스 이디노풀로
"평화의 도시, 혼돈의 도시" 내용보기
한 나라, 혹은 한 도시의 역사를 학술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쓰려면 적어도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할 것 같다. 『국화와 칼』을 쓴 루쓰 베네딕트처럼 일본을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음에도, 철저한 사료 고증을 통해서 일본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끌어내는 방식이 그 첫 번째 방식의 사례이다. 두 번째는 이 책 『예루살렘』의 토마스 이디노풀로스처럼 예루살렘을 17년 동안이나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모든 사료를 철저히 자기화한 사례이다. 물론 이 둘은 모두 이 작업을 해내기 전에 이미 오랜 활동을 통해서 그 분야의 최고학자로 인정을 받은 바탕 위에 작업을 시도했고, 그 축적된 실력을 통해 탁월한 저술 작업을 완성해냈다. 명저에는 그만큼의 오랜 훈련과 준비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작품들은 순간의 시선을 잡아끄는 베스트셀러의 차트와는 관계없이 보석같은 가치로 오랜 시간 동안 서가를 빛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거룩한 평화의 도시,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도시, 예루살렘. 일면 이 두 가지의 평가는 상반되는 모순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3,000년이 넘는 이 도시의 역사를 매력적이고 설득력있는 문체로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 그 모순은 필연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기원전 1,000년 경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인 가나안 지방을 완전히 정복한 다윗 왕이 그의 왕도이자 유대교 신앙의 중심지로 변형하고 건립한 이래, 그리고 70년에 후에 로마의 황제가 될 티투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기까지 예루살렘은 유대인과 유대교의 심장이었다. 예루살렘 파괴 후 완전히 쫓겨나 전 세계를 유랑하는 유대인들에게도 예루살렘은 늘 돌아가야 할 본향이었고, 그들의 삶과 신앙과 이상과 희망이었다. 예수의 탄생과 예루살렘에서의 사역과 죽음과 부활 이후, 박해받던 기독교가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공인을 받자 비잔틴 제국의 영토였던 예루살렘은 모든 제국인들이 방문하기를 꿈꾸는 소망의 도시가 되었다. 638년 이슬람의 수중에 떨어지기까지 예루살렘은 풍성한 기독교 문명으로 번영하며, 전 세계 기독교인들을 꿈꾸게 만들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모하메드는 유대인들의 성전이 있던 산에 있는 거룩한 바위에서 알라의 마지막 계시를 받기 위해 천국에 다녀왔다. 이슬람 원년인 622년 이후, 무슬림들은 파죽지세로 전 중동을 점령하고 638년, 예루살렘마저 정복했다. 예루살렘은 무슬림들에게 메카와 메디나를 이은 제 3의 성지로서 오늘날까지도 추앙받는 도시가 되었다. 결코 예루살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런 이유들로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예루살렘을 둘러싼 애증의 당사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최소 3,000년이라는 어마한 기간동안 이루어진 이런 깊은 애증의 결과,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평화"라는 이름을 가진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전쟁과 폭력과 테러, 광기가 신성함과 평화와 공존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근래인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 이후로 예루살렘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도시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엄밀하게 보면, 최근 일어난 9.11테러와 아프간전쟁,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을 비롯한 거의 모든 폭력과 테러의 진원지가 다름 아닌 예루살렘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예루살렘은 이런 슬프고 암울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본서의 독서는 단지 이런 착잡함만을 결론으로 남겨놓고 끝나지 않는다. 독자들은 본서를 읽으면서, 각 3대 종교가 태어나고 자라고 영향을 받고 발전하는 모든 흔적과 역사들을 엄밀하고 상세하게 접할 수 있다. 이들 3대 종교들이 조우하는 팔레스틴과 아랍, 지중해 세계와 유럽 세계의 복잡하고 흥미진진한 역사와 풍물, 문명의 흥망성쇠의 현장을 상상하듯 밟을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언론의 왜곡과 편견으로 오랫동안 오해해 온 역사 속의 인물들을 간접적으로 만나면서, 오늘날 우리가 이들의 후손들에 대해 내려야 할 판단에 균형감각을 갖게 해 준다. 저자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리스계 미국인인 것 같다. 수세기 동안 예루살렘과 가장 깊은 연관을 맺어온 비잔틴 그리스 정교인들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또 현대 미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얼마간의 편견이 나타날 것이라는 염려도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책의 구성과 흐름에서 그런 편견은 거의 느끼기 힘들다. 이 책은 철저하게 객관적이며 철저하게 학술적이지만, 동시에 그 생동감과 흥미진진함에서도 매우 탁월하다. 거기에 덧붙여, 원서에는 없었던 역자주와 중동지역 각 국의 약사와 왕계표, 참고연표 등을 덧붙인 번역자의 아낌없는 수고는 지금껏 접한 어떤 역사서적의 역자들보다도 칭찬을 받을 만하다. 그는 역사학자도, 전문번역가도 아니지만, 역사에 대한 넘치는 관심과 애정으로 이들 전문가들이 일반적으로 감당하는 투자의 수 배를 이 책에 쏟았다. 대체로 매우 정확한 이 자료들 덕에 독서하는 내내 큰 도움을 받았다. 저자와 역자, 출판사의 정성에 깊이 감동하고, 또 깊이 감사한다.

[인상깊은구절]
오늘날 이 유적지들은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의 야망과 원한이 날카롭게 부딪히는 곳이다.
YES마니아 : 로얄 c****n 2004.01.06. 신고 공감 8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축복과 저주가 공존하는 도시 -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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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수난 받는 도시를 꼽으라면 당연 예루살렘을 꼽을 정도로 그 도시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또 종교적으로 분쟁의 중심지의 역할을 해오고 있는 폭약과도 같은 도시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예루살렘에는 버스폭탄테러로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전세계에 타전 되고 있었다. 폭력으로 얼룩지고 극한의 대립과 이해가 현재진행형으로 첨예하게 맞서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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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수난 받는 도시를 꼽으라면 당연 예루살렘을 꼽을 정도로 그 도시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또 종교적으로 분쟁의 중심지의 역할을 해오고 있는 폭약과도 같은 도시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예루살렘에는 버스폭탄테러로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전세계에 타전 되고 있었다. 폭력으로 얼룩지고 극한의 대립과 이해가 현재진행형으로 첨예하게 맞서있는 도시. 도대체 그 도시의 역사는 어떠했으며, 오늘날 그곳에서 일어나는 피의 분쟁은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서 토마스 이디노폴로스는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이 책 "예루살렘"을 집필했다. 그 뿌리는 하나이면서도 갈 길을 달리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3대종교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의 역사를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지 이 책은 그 각각의 시각에서 역사적인 사실들을 다루고 있다. 축복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저주 받은 도시인 예루살렘은 유태인의 종교인 유대교의 탄생 지역이다.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이 그 지역을 중심으로 역사를 만들었고 그 역사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그들에게 종교가 되었다. 구약성경에 씌어진 모든 이야기들은 예루살렘이라는 작은 도시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으며 유대교인 들에게는 신성한 그들의 조상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 무슬림 등 많은 이민족에게 정복당했으며, 그 정복 하에서 탄압 받고 소외 받는 민족이었던 유태인들은 오직 하나님이 보내주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그 인고의 세월을 견뎌냈다. 그 과정에서 태어난 예수는 그들에게 메시아로 인정 받지 못하고 십자가형에 처해졌으며, 그 사건은 그 후로 긴긴 세월을 기독교인에게 탄압 받는 이유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예루살렘은 시온 그 자체였고 시온으로의 귀향을 꿈꾸는 민족성은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내다가 드디어 이스라엘의 독립선포로서 그 열매를 맺는다. 수 차례의 중동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마침내 예루살렘 전지역을 그들의 수도로 선포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는 민족의 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끈질기고 위대한지에 대한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에게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장소로서 종교적 성지의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수복을 내세우며 십자군전쟁을 일으켰고 그 결과로 엄청난 살육이 자행되었다. 그들에게 있어 예루살렘은 성지이지만, 그곳에 사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처형한 악마들이었으며, 그들 기독교인들을 이단으로 탄압하고 처형했던 원흉이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은 그들에게는 타도해야 할 이교도였다. 구세주가 살다가 가신 그곳 예루살렘은 기독교인들에게 수복하고 성지화 하여야 할 궁극적인 도시였다. 그리하여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2세의 선동 하에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7차에 걸쳐 수 백년을 계속되며 살육의 잔치를 벌렸다. 종교적 근거를 내세운 그들에게 십자군 전쟁은 성전으로 미화되었으며, 그 전쟁에서 일으킨 살육은 구원의 증표가 되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던 예수님의 가르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고, 하늘을 향한 종교인 기독교는 자그마한 현실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살인과 약탈과 만행을 자행하였다.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기독교는 그 후, 구.신교도 나누어졌다. 이슬람교에게 예루살렘은 역시 성지였다. 그들이 추앙하는 무함마드가 알라의 마지막 계시를 받기 위해 몸을 움직였던 곳이 이 곳 예루살렘이었다. 물론 그 말은 역사가들에 의해 부인되어지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예루살렘은 이슬람에게 제3의 성지이며 반드시 지켜내야 할 땅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살육을 자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유태교는 형제의 종교였으며 자신들보다는 하급한 민족으로 취급하였을 뿐이다. 얼마간의 탄압을 제외하고는 인두세만 내면 모든 종교적 자유는 허용되었다. 그러한 지배 속에서 그들은 그 땅의 주인이 되었고, 오랜 세월 예루살렘은 이슬람교에 의해 지배 받는 땅이 되었다. 십자군의 침략 속에서도 그 땅을 지켜냈던 무슬림들은 결국 유럽열강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게 되고,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예루살렘을 시온주의자들인 유태인들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스라엘의 탄생은 예루살렘이 유혈이 낭자한 분쟁지역이 된 것을 의미했다. 오늘날까지 그 땅의 주인이었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변변한 독립국가조차도 세우지 못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탄압 받고 있다. 세계 3 대 종교의 성지 예루살렘은 우리에게 영원히 남겨진 숙제의 도시이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의 실천이며, 사랑으로 인한 구원이다. 그러나 아직도 종교는 우리에게 유혈상쟁의 이유가 되고 있고, 그 당위성의 근원이 되고 있다. 신의 도시이고, 축복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저주 받은 도시인 예루살렘을 보면서 수 천년에 걸쳐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인간의 야수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살육의 악순환과 종교의 이율배반 적인 사랑의 호소는 어떻게 이해되어져야 하는 것일까? 예루살렘은 중동 속에 존재하지만, 언제나 우리 인간의 가슴속에도 동시에 존재한다. 이 도시에 평화가 깃 드는 날, 신의 가르침은 이루어 질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누가 '신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지난 3천 년 동안 정복자들의 말발굽에 짓밟혀 온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 누가 예루살렘을 짓눌러 온 끔찍한 역사의 쇠사슬을 끊어버릴 것인가? 누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결정을 할 것인가? 누가 단순히 기도만 하지 않고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행동할 것인가? 정말이지 누가!
n****t 2003.08.25. 신고 공감 7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