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9)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2%
  • 리뷰 총점8 41%
  • 리뷰 총점6 7%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8.0
  • 50대 8.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서른 살에 뒤돌아본 추억의 불빛이 앞을 밝힌다
"서른 살에 뒤돌아본 추억의 불빛이 앞을 밝힌다" 내용보기
1. ‘설운’ 살에 뒤돌아보다   서른 살은 누구에게나 삶에서 처음 마주치게 되는 큰 고개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앞만 보고 내달려온 우리의 발걸음은 서른 고개 앞에서 비로소 그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한다. 얼마나 왔나 가늠해보려고 지나온 길을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것도 서른 고개를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때로는 그 뒤돌아봄이 지나쳐서 아주 주저앉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서른 살에 뒤돌아본 추억의 불빛이 앞을 밝힌다" 내용보기

1. 설운 살에 뒤돌아보다

 

서른 살은 누구에게나 삶에서 처음 마주치게 되는 큰 고개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앞만 보고 내달려온 우리의 발걸음은 서른 고개 앞에서 비로소 그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한다. 얼마나 왔나 가늠해보려고 지나온 길을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것도 서른 고개를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때로는 그 뒤돌아봄이 지나쳐서 아주 주저앉기도 한다. 하지만 그 주저앉음은 오히려 남은 고갯길을 마저 오르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주저앉아서 우리가 뒤돌아본 풍경이 따스한 추억의 불빛이라면 말이다.

 

김연수의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를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풍경이 바로 그랬다. 높고 험한 고개의 꼭대기를 조금 남겨둔 고개턱쯤 길섶에 털썩 주저앉아 자신이 그 동안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면서 가쁜 숨과 지친 다리를 쉬고 있는 사내의 모습. 이 소설집에는, 소설가 김연수가 서른을 전후한 나이에 그렇게 주저앉아서 쓴 아홉 편의 연작 소설들이 담겨있는데, 소설집의 표제가 요약하고 있듯이, 그가 아직 아이였을 때 즉 유년부터 스무 살 이전까지의 기억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김연수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집 덕분에 나는 이 다음 작품을 쓸 수 있게 됐다고 밝히고 있으니, 그의 주저앉음 역시 결국에는 힘이 되어준 모양이다.

 

서른 고개에서 우리를 이렇게 맥없이 주저앉히는 것은, 십중팔구 거칠고 야비한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생활을 몇 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되는 삶의 가파름일 텐데, 누구나 서른쯤 되면 그 가파름을 넘어서는 힘이 되어 줄 젊음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그걸 깨달은 이에게 서른 살은 설운(서러운)’ 나이일 수밖에 없다. 서른이 되면 우리는 삶을 겨우 지탱할 뿐이다. 그 서러움이 서른 살을 통과하는 우리를 자주 주저앉히고 자꾸만 뭔가 위안이 될만한 추억을 찾아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리라.

 

서른이 넘어가면 누구나 그때까지도 자기 안에 남은 불빛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게 마련이고 어디서 그런 불빛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한때나마 자신을 밝혀줬던 그 불빛이 과연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알아야만 한다. 한때나마. 한때 반짝였다가 기레빠시마냥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 불빛이나마. 이제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불빛이나마. (79~80, 「뉴욕제과점」)

 

2. 불빛 하나 : 은빛 눈송이와 보랏빛 등꽃

 

경북 김천시 역전 뉴욕제과점의 막내 아들이었던 소설가 김연수의 경우에, 그 추억의 불빛들의 중심에 뉴욕제과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그래서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는 그 빵집에서 실제로 있었을 법한 사건인 게이코의 일화로 문을 연다(「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 대목인 크리스마스 전날 돈을 훔쳐 달아낸 게이코를 찾아나선 빵집 주인 김씨와 제빵기술자 태식의 스산하기 짝이 없는 행로에 끝까지 동행하는 것은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들뿐이다.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울 정도로 쏟아져 내리는 눈보라는 살을 에는 것처럼 추울망정 실패로 끝난 그들의 행로를 소담스럽게 감싸는 따스한 배경이 되어주고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듯이 자신의 집이나 다름없었던 뉴욕제과점에서 시작된 작가의 추억은 이웃과 학교로 넓어진다. 여러 이웃들이 있었겠으나 작가는 동네 평화시장에서 신천상회를 했던 은재네를 잊지 못한다. 은재네가 작가의 기억 속에 가장 인상적으로 새겨진 이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광주항쟁을 겪고 나서 마치 대척지를 찾아 망명하듯 경상도 땅으로 이주해 온 깽깽이들이었기 때문이리라(또다른 이유라면, 은재는 그 당시 작가가 좋아했던 여학생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들은 낯선 땅에서 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태어날 때부터 입에 붙은 전라도 사투리까지 스스로 파기해야 했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상처는 깊고 또한 숨길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어 더이상 아프지 않은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경상도 사투리가 살갑게 들리기 시작했다. 니 와 그카는데? , 가시나가. 어느 날인가, 제발 방 좀 깨끗하게 쓰라며 언니 행세를 하려는, 이제 간호대학 신입생이 된 언니와 그런 말을 주고받다가 놀라서 말을 그치고 서로 얼굴만 마주 봤다. 잠시 후, 우리는 먼저 서로의 입을 치려고 낑낑대다 한참을 웃었다. 물론 집에서는 여전히 표준어로 말했지만, 학교에서 우리는 조금씩 사투리로 말하고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로. 여전히 우리의 별명은 깽깽이였지만, 이제 그 욕설이 우리 가슴속을 헤집어놓지는 못했다. 한동안 동네에 나타나던 미친 여자도 어디서 죽었는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 우리는 제법 경상도 가시나로 자라고 있었다. (52~53,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

 

이러한 이웃의 이야기를 소설화하는 일이란, 그 칼날의 생김새를 닮은 그 무늬와 결을 하나하나 되짚는 방식을 통하여 그들에게 처음 상처를 가한 칼날이 무엇이었는가를 묻는,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그 상처를 위무하려는 작가적 양심의 소산일 텐데, 제법 아문 이 상처를 여전히 건드리면서 아프게 헤집어놓는 사람이 다름아닌 학교의 윤리선생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그렇지만 권력의 이념을 전파하는 최첨단 조직으로 기능하는 곳이 바로 학교이고 또한 그러한 교과목이 바로 국민윤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문제가 되는 폭력은 권력이 행사하는 이러한 은밀한 폭력뿐만이 아니다. 왕따삥뜯기 또는 패싸움처럼 학생들 사이에 일상화된 폭력, 그리고 훈육이라는 미명 하에 교사들에 의해서 자행된 학생 체벌 등 물리적 폭력 역시 지난 날 우리의 학창시절을 물들이고 있는 어두운 기억들이다. 이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는, 작가의 중학교 시절 동급생이었던 고아원 출신의 한 소년으로 말미암아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마는 학교 폭력의 실상을 내성적인 문체로 그려내고 있는 단편이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추억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이 기억을 불러내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목소리에는 따스함이 느껴지는데, 나쁜 기억조차도 아름답고 따스한 불빛들로 물들이는 이 신비로운 힘이야말로 우리가 추억에 그렇게나 기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가는 바람이 불어왔겠지. 등나무 잎들이 흔들렸다. 원재는 등꽃이 주렁주렁 매달렸던 자리를 올려봤다. 지난봄, 그 많았던 보랏빛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얼마나 많은 보랏빛들이 저물고 나면 여름이 찾아오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소년들은 어른이 될까?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등꽃 그 빛들은 스러진다.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소년들은 슬퍼한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원재는 등나무 그늘 아래에 섰다. 그 얼굴이 일그러지다가 그대로 멈췄다. 원재는 멍하니, 마비된 듯한 표정으로, 이제는 사라진, 그 봄날의 정경을, 바라봤다. 등나무의 색은 초록빛이고 보랏빛이고 노란빛이고 붉은빛이다. 꽃향기 머금은 가는바람이 원재와 태식의 머리 위로 보랏빛 꽃등을 떨어뜨리며 지나간다. (253,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3. 불빛 둘 :  소문의 어둠을 밝히는 이성의 빛

 

작가가 기억하는 공간이 좀더 넓어져서 뉴욕제과점과 신천상회 이웃과 등나무가 있는 학교를 모두 포괄하는 세계인 우리 동네, 경북 김천시 평화동 80번지로 옮겨지게 되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자신의 안으로 향했던 내성적인 작가의 시선은 이제 밖으로 활짝 열리면서 세계를 이해하고 탐험하려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반짝거린다. 문체가 단순하면서도 활달해지고 서사의 전개 또한 사건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마치 당시 동네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유대의 끈이 되었던 소문처럼 말이다.

 

지금 죽어가는 것들, 아니 이미 죽은 것들, 예컨대 가까운 이웃끼리 추렴한 돈으로 시장에서 수박을 사와 화채로 만들어 먹던 여름밤 정경, 길모퉁이 이름 없는 식당의 알 빠진 플라스틱 주렴 너머로 잊을라 치면 벌어지던 동네 어른들끼리의 주먹다짐, 장이 서는 5일마다 평화시장이나 아래장터 등 재래시장으로 구름처럼 몰려들던 시골 사람들 등은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생생하게 살아 있던 것들이다.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던 것들 중에 또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소문이었다. 소문은 어디선가 태어나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살이 붙고 성장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마치 바람이 건드리고 사라지면 플라스틱 주렴이 크게 넘늘거리다 서서히 잦아드는 것처럼. 소문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간 동네는 전과 약간 달랐다. 사람들은 조금씩 세상에 대해 잔인한 마음을 지니게 되기도 했고 한 움큼도 안 되겠지만 삶에 대한 희망을 얻기도 했다. (121~122,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

 

동네에 나도는 이러한 소문들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의 입을 건너 다니는 동안 비틀리고 부풀려져서 처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딴판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이렇게 변형된 소문은 때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되기도 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허위가 되기도 한다. 교도소 복역을 마치고 다시 마을에 나타난 패륜아 이수여인숙 똥개의 등장이 불러일으킨 소문이 그 동네 아이들에게 키워준 공포심을 한 소년의 시선을 빌려서 아주 실감나게 그려 보이고 있는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가 전자의 경우라면, 동네 사람들에게는 실로 우스꽝스럽고 쓰잘데없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희화적인 인물로 여겨진 한 공중보건의의 집요하고도 일관된 행적을 통해서 소문이라는 것이 때로는 공동체의 미덕으로 위장한 위선이자 악이며 더 나아가 범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후자의 경우라 하겠다.

 

어떤 경우이든지 소문이 이렇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때 우리가 소문에서 보게 되는 것은 비이성적인 어둠인데, 그 어둠을 밝혀주는 것은 과학과 이성(理性)의 빛이다. 평화동 80번지의 공중보건의가 마을에 떠도는 소문 속의 거대한 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하여 방독면을 쓴 채로 어두운 복개천 내부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학으로 무장한 이성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만든 얘기처럼 보이지만, 그 소문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즉 마을 사람들이 장티푸스를 옮기는 거대한 쥐를 죽였다는 점이죠. 말했다시피 장티푸스를 옮기는 종은 이 세상에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밖에 없습니다. 무언가가, 장티푸스가 퍼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죽었다면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뿐입니다. 여러분들은 거대한 쥐새끼라거나 문둥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227,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 마을 사람들이 몇 해 전 마을에 퍼졌던 장티푸스 확산을 막기 위해 잡아 죽인 다음에 복개천 안쪽 깊숙한 곳에 던져버린 것은 사실은 거대한 쥐가 아니라 당시 인근 베드로마을에서 탈출한 나환자였다는 것을 그는 과학적 지식에 의거하여 논증해 낸 셈.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된 이 놀라운 살인 사건을 밝혀낸 공중보건의의 설명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부인된다. 그가 이성의 빛으로 밝힌 소문의 진실은 어이 쥐포선생, 다 좋은데 으사선생이 뒈졌다고 말하는 호모 사피리인가 사카리인가가 대체 또 무슨 짐승이여?"라는 생청스런 소리에 묻히고 만다.

 

4. 불빛 셋 : 반딧불이와 연등과 멧돼지 눈빛

 

그러니 소년은 그러한 소문이 지배하고 있는 마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법. 즉 소년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집과 이웃과 학교와 동네를 벗어난 더 넓은 세계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작가가 눈을 돌리게 되는 세계는, 심리적으로는 내가 아닌 타자를 나의 세계에 처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첫사랑의 세계이며, 물리적으로는 내가 살던 동네를 벗어나서 처음으로 밟아 보는 낯선 땅, 낯선 지방이 된다.

 

하지만 사랑이란, 특히 열일곱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해보는 첫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처음 하는 사랑이기에 아무런 경험이 없어서 말을 꺼내기조차 힘들고, 또 겨우 말을 꺼냈다고 해도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망가져버릴 아름다운 사랑이기에 참으로 두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마치 어릴 적 병 안에 잡아넣고 바라본 반딧불이처럼 말이다.

 

그날 저녁, 아버지를 따라 무주 남대천에 가서 반딧불이를 봤어. 온 저녁하늘로 그 은은한 따뜻함을 뿌리는 반딧불이들이 어찌나 예쁘던지! 아버지와 아는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잡아 준비해 간 빈 병에도 넣었지. 한 마리씩 넣을 때마다 병 안의 공기는 신비스럽게 바뀌어갔어. 그 아름다운 빛을 머리맡에 바라보다가 잠들었는데, 다음날 깨어보니 모두 빳빳하게 죽어 있었어. 그 아름다웠던 빛은 끔찍하게 생긴 곤충이었던 거야. (108, 「첫사랑」)

 

단편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여주인공 예정이 수의(壽衣)를 만드는 보살들의 모임에서 배냇저고리를 만들고 대웅전 앞마당에 연등을 내거는 이유는, 결국 이렇게 죽은 모습으로 귀결되고 만 자신의 사랑(낙태한 아기)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죽은 아기의 아버지였던 방위병 봉우역시 예정을 만나러 가는 어두운 산길에서 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음을 비로소 아프게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사랑은, 특히 첫사랑은 때론 이렇게 고귀한 한 생명의 죽음마저도 초래할 정도로 힘겨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집을 펴낸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작가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꼽은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대학 영문과 신입생이자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가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와 함께 했던 겨울 멧돼지 사냥을 소재로 삼은 이 단편은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주제를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는 작가의 발군의 솜씨가 돋보인다. 이는 멧돼지를 거의 잡았으나 놓아줄 수 밖에 없었던 사냥 이야기를 서사의 중심에 놓으면서 그 실패의 이유에 대해서는 곁가지 이야기들로, 즉 세 등장 인물 각자가 지니고 있는 삶의 경험들로 제각기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서는 그해 5월 학교에서 열린 집회 도중 목격한 한 학생의 분신자살 현장 모습이 어른거렸기에, 삼촌의 경우에는 멧돼지의 눈에서 그가 예전에 목숨을 걸고 사랑한 물망초 여자의 눈망울을 보았기에, 그리고 도라꾸 아저씨는 오래 전 비슷한 상황에서 단지 공명심 때문에 죽이지 않아도 되는 어미 멧돼지를 쏴 죽인 적이 있었기에, 다들 멧돼지를 쏴 죽일 기회가 한 번씩 있었는데도 제대로 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결론 삼아 도라꾸 아저씨의 입을 빌려 작가가 말하고 있는 다음의 말이 전혀 허언이나 가벼운 말로 들리지 않는 것은, 이 투박한 말이 이들 세 사람이 자신들의 삶에서 온몸으로 경험한 바를 고스란히 요약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 봐라, 리기다소나무도 있고 직박구리도 있다. 저래 다 살아가고 있는 거라. 산 것들 저래 살아가게 하는 일이 을매나 용기 있는 일인가 나는 그때 다 깨달았던 기라. 내가 해수구제한다꼬 싸돌아다니민서 짐승들 쏴 죽인 것도 용기 있어서가 아이라 나하고 마누라하고 애새끼들하고 먹고살아갈라고 그런 거라는 걸 그때야 알게 된 거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 도라꾸가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사냥꾼인 줄 알았던 거라. 그라고 나니까 어데 약실에 돌멩이 하나도 못 집어넣겠더라.” (176,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

 

이렇게 생명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미물이라도 두루 소중한 것이며,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도 그 어떤 삶이든지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용기 있는 것이라는 진실의 자각이야말로, 소년 김연수가 어른 김연수로 성장하는데 책에서 얻은 그 어떤 지식이나 학교에서 배운 그 누구의 가르침보다도 더 큰 힘으로 작용했으리라.

 

5. ‘설은살에 앞을 바라보다

 

이러한 추억의 불빛들에 비추어 볼 때, 서른 살 전후하여 우리를 서럽게 하는 가파른 삶이란 세상이나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바로 자신의 탓이라는 깨달음에 비로소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인생이란 나이가 스무 살 정도는 더 많은 사람을 앞에 두고 앉아 모더니즘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바로잡는, 그런 게 아니라는 때늦은 후회에 이르게 되고, “내가 자라는 만큼 이 세상에 어딘가에는 허물어지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안타깝지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서른 살은 설운(서러운)’ 나이이기도 하지만 설은(설익은)’ 나이이기도 하다. 인생에 대해서 이젠 알 것 다 알아버린 나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고개도 많은 나이다. “어짜피 人生이란 그런것이 아니겠냐라고 써놓은 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아니겠냐사이에 ‘V를 그려놓고 를 부기한 아버지의 편지를 읽으면서, ‘아니겠냐아니겠느냐가 어떻게 다른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작가가 고백하고 있는 것도 그가 아직 설은살이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는 올해 마흔이 되었지만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을 쓰던 시기는 서른을 전후한 시기였다.)

 

내게 보낸 편지에서 어짜피 人生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아버지는 쓰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겠냐아니겠느냐가 어떻게 다른지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세월이 흘러서 나도 내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편지를 쓸 때쯤이면 그 차이를 알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나도 왜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는지, 왜 세상의 모든 불빛은 결국 풀풀풀 반짝이면서 멀어지는지, 왜 모든 것은 기억 속에서만 영원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내 다음 아이들이 자라게 되면,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그 정도의 짧은 시간만 흐르고 나면 나도 아니겠냐아니겠느냐의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82, 「뉴욕제과점」)

 

이처럼 소설가 김연수에게 있어, 서른 살에 추억의 불빛을 들여다보는 일이란 결국 자신의 나이가 아직 설은나이임을 인정하고 앞을 바라다보기 위한 일이기도 했던 셈. 그가 아이였을 때 경험한 따스한 추억의 불빛들로만 밝히고 있는 이 사랑스러운 소설집이 한참 달려간 도로를 유턴하는 느낌으로 읽히지 않는 것도, 그 불빛들이 밝히고 있는 그의 미래가 내게는 조금 보이기 때문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우리가 아이였을 때 우리의 삶을 밝혀준 추억의 불빛들은, 지금은 비록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그 수많은 시간들을 환히 밝혀줄 테니 말이다.

c*****t 2010.01.31. 신고 공감 4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 내용보기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2003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 책장을 덮고 조금 울었다. 주말 오전, 3월의 눈부신 햇살이 등 뒤에서 찬란히 쏟아져 들어오고 베란다에 내놓은 칼랑코에 화분에서 붉은 색 꽃봉오리가 금방이라도 터질듯 부풀고 있었다. 거실에는 세 살짜리 말티즈 한 마리가 하얀 털을 햇빛에 드러내놓고 게으른 오전을 지겨워하며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 내용보기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2003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 책장을 덮고 조금 울었다. 주말 오전, 3월의 눈부신 햇살이 등 뒤에서 찬란히 쏟아져 들어오고 베란다에 내놓은 칼랑코에 화분에서 붉은 색 꽃봉오리가 금방이라도 터질듯 부풀고 있었다. 거실에는 세 살짜리 말티즈 한 마리가 하얀 털을 햇빛에 드러내놓고 게으른 오전을 지겨워하며 기지개를 켜는 중이었다. 강아지의 늘어진 기지개를 보면서 나는 난데없이 이십여 년을 훌쩍 뛰어 넘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유년 속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찬란하고 따뜻했던 기억들은 다 밀어두고 하필이면 몹시도 춥던 겨울, 잠옷 바람으로 집을 나왔던 기억만 생생한지 모를 노릇이다. 열 살이나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별일도 아닌 일에 마음을 다쳐 얇은 잠옷 바람으로 문을 박차고 나와 집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던 기억. 엄마가 달래러 나오셨다가 언니가 나오고 오빠, 아버지가 다 나와도 들어가지 않고 버티다가 나중에는 영영 들어갈 기회를 잃어버렸던, 들어가고 싶어도 이젠 아무도 데리러 나오지 않아 들어갈 수도 없었던 기억만이 새록새록 피어나고 있었다. 맨발을 할퀴고 지나가는 매서운 겨울바람보다 맞은편 담장에서 울어대던 고양이가 무서워 울었던가. 울음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속으로 꺽꺽대다가 까무룩 잠이 들고 결국 며칠을 호되고 앓고 나서야 나는 조금, 아주 조금 어른이 되어 있었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착하게 웃고 있는 작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만 마음의 끈들이 다 풀어져 버리고 만다. 순한 음성으로 담담히 늘어놓는 진양조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느슨해진 유년의 기억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추억의 보고서’를 꾸미지 않은 맨 얼굴로 들을 수 있게 된다. 유년으로의 여행은 아홉 개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전날 빵집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시작되는「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출발하여 무기력하게 길들여진 학생들의 모습을 그려놓은「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로 끝이 난다. 그 처음과 끝을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상처위에 휘둘러지는 권력에의 폭력의 양상을 담담하게 그려낸「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 자전소설 「뉴욕제과점」, 첫사랑의 아픈 기억을 편지 형식으로 쓴「첫사랑」,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 「노란 연등 높이 내걸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기억들이 가득하다. 이는 이 글이 작가자신을 포함한 동시대의 자서전 쓰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년의 따스한 기억에 기대어 연필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그의 글에서 우리는 ‘한때나마 자신을 밝혀’줬던 그 불빛 하나를 다시 만나게 된 셈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로써 습작기가 막을 내리게 되었고 이 소설집 덕분에 다음 작품을 쓸 수 있게 됐’다는 작가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인상깊은구절]
“서른이 넘어가면 누구나 그때까지도 자기 안에 남은 불빛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들여다보게 마련이고 어디서 그런 불빛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한때나마 자신을 밝혀줬던 그 불빛이 과연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알아야만 한다.” (79~80쪽)
m*****8 2005.04.06.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김연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내용보기
학부에 다니는 동안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래 가지고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래?"하는 거였다. 대부분의 남자 선배들은 나를 매우 안쓰러워했고 그래서 자기들이 나한테 큰 그늘을 드리워줄 나무가 되어주기를 원했던 것 같다. 왜 그러는지 나는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왜 나를 안쓰러워하지? 왜 나를 보호하고 지켜주려고 하지? 이해가 안 갔다.   한 번은 한
"[김연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내용보기

학부에 다니는 동안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래 가지고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래?"하는 거였다.

대부분의 남자 선배들은 나를 매우 안쓰러워했고 그래서 자기들이 나한테 큰 그늘을 드리워줄 나무가 되어주기를 원했던 것 같다.

왜 그러는지 나는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왜 나를 안쓰러워하지? 왜 나를 보호하고 지켜주려고 하지? 이해가 안 갔다.

 

한 번은 한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야, 지금은 90년대야. 오렌지족과 X세대가 우리 정서라구. 그런데 너는 80년대 학번 선배들같은 정서로 살잖아. 그러니깐 네가 힘든 거야."

 

그때서야 알았다.

'아, 그래서 내가 힘든 거구나.'

 

대학 생활을 힘들고 치열하게 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서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구구절절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이유는 김연수의 이 작품이 한동안 잊고 지냈던 지난 시절들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 김연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난 8월, 나는 영국 서리에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보던 뭉게구름을 잊을 수 없다. 그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바라보던 뭉게구름이었다. 환경이 오염된 탓인지, 요즘 한국에서는 그런 뭉게구름을 볼 수 없다. 템스 강변에서 그 뭉게구름을 바라보면서 나는 잠시나마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덕분에 몇 가지 기억이 떠오르면서 슬프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복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 행복한 기억을 일깨워준 이국의 뭉게구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내가 사는 이곳도 오염이 안 돼서 그런지 뭉게구름을 종종 본다. 여름이면 정말 자주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에 피어나는 어떤 그리움이랄까, 그런 게 있었다. 그 막연한 정서의 정체를 콕 짚어 말할 수가 없어서 항상 아쉬웠는데 이 글을 읽다가 아! 하고 작게 탄성을 질렀다. 바로 이거였다. 뭔지 몰랐던 막연한 감정의 정체는.

 

이 작품은 내게 뭉게구름과 같다.

학부 시절부터 시작해서 계속 조금씩 조금씩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어처럼.

아, 그때는 이랬지. 맞아, 저 정서 나도 공감할 수 있겠어.

김연수가 그려내는 80년대의 정서가 눈에 잡힐 듯 선명하다.

 

같은 시간을 공유한 기억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애잔한 마음으로 김연수와 함께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 때는 아주 작은 일들도 치사량이 될 수 있었던 걸까?

지금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니었는데, 별 일로 참 많이도 고민했다. 방황하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소년들은 어른이 될까?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등꽃 그 빛들은 스러진다.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소년들은 슬퍼한다.

 

소녀였던 나도 이제는 자라 어른이 됐다. 이런 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 걸까?

우연의 일치로 이 책을 읽기 전에 [더 리더]를 봤는데 그 영화 속에서도 오랜만에 만난 미하엘을 보며 한나가 이 비슷한 말을 한다.

"꼬마가 자라서 어른이 되었구나."

그 부분에서 그때까지 꾹꾹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이전에는 '어른'이 매우 부정적인 느낌이었지만, 내가 '어른'이 된 지금 시점에서 느끼는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많은 것을 함축한다.

나는 기존의 기성세대와 얼마나 다른 어른이 될 수 있을까?

 

90년대를 80년대의 정서로 살았던 스무 살의 '아이'는 2009년 어떤 '어른'이 되어 있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자신할 수 있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원재는 등나무 그늘 아래에 섰다.

 

비에도 안 지고, 바람에도 안 지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안 지는 튼튼한 몸과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됐다는 것. 내 이후 세대에게 내가 어떤 '기성 세대'로 비칠지는 지금부터 내가 하기 여하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말해주는 선배들이 있기에 별로 두렵지 않다.

종국에 나는... 아마도... '좋은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행복한 책읽기와 삶살기를 가능하게 해주는, 나보다 앞서 살며 삶을 치열하게 고민한 선배들이 닦아준 길이 있으니깐. 그리고 그 길을 평생 함께 걸어갈 든든한 남편이자 동지이자 친구가 곁에 있으니깐.

 

당신에게도 내 책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뭉게구름같은 것이라면 좋겠다. 그건 이 전근대적인 작업으로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보람 중에 하나다.

 

과거에만 갇혀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가끔... 과거를 추억하는 건...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 같다.

가장 적절한 시점에 과거를 돌아보게 해주고, 미래로 나아갈 힘을 제공해준 김연수에게 고맙다. 



c*****g 2009.05.13. 신고 공감 2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기억속 불빛을 찾아서
"기억속 불빛을 찾아서" 내용보기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안개 속의 성처럼 내면에 희뿌연 존재를 드리운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존재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웹 서핑을 하다가 무심코 흘러나온 음악에서, 이른 아침의 맵싸한 공기 속에서, 저녁 무렵의 주택가에서 풍기는 찌개나 생선 조림 따위의 냄새에서, 이따금 나는 아련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그럴 때
"기억속 불빛을 찾아서" 내용보기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안개 속의 성처럼 내면에 희뿌연 존재를 드리운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존재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웹 서핑을 하다가 무심코 흘러나온 음악에서, 이른 아침의 맵싸한 공기 속에서, 저녁 무렵의 주택가에서 풍기는 찌개나 생선 조림 따위의 냄새에서, 이따금 나는 아련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그럴 때면, 안개 속에서 길을 더듬거리며 걷다가 들려온 음악 소리에 이끌려 성에 당도하듯, 아득한 기억의 파편과 마주하게 된다. 그 기억 속에서 나는 금세 어린 아이가 되곤 하는 것이다.

 

  그 어린 아이가 금방 꺼낸 카스테라를 손에 얹은 듯 따뜻함이 느껴지는 책을 만났다. 제목부터 몸의 긴장을 스르르 풀리게 만드는 책이다. 김연수의 책은 이 책으로 두 번째다. 그의 작품들은 시를 써서 등단한 작가답게 문장이 쉽게 읽히지 않았다.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고 했던 작가. 그의 말이 아직은 알 듯 모를 듯하기만 한, 스무 살 이후가 되어 나는 이 책을 통해 지난 이십여 년 간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는 계기를 얻었다. 행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던 지난날의 기억처럼 이 책 역시 작가의 그런 과거를 재현시켜 놓았다.

 

-서른이 넘어가면 누구나 그때까지도 자기 안에 남은 불빛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게 마련이고 어디서 그런 불빛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한때나마 자신을 밝혀줬던 그 불빛이 과연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알아야만 한다. (-79페이지)

 

  이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불빛들을 꺼내 올린 듯 이 소설집엔 다양한 불빛들이 드리워져 있다. 천애지각을 뒤덮은 하얀빛(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 가을날 오후의 노란빛(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 부서지고 녹아내려 떨어져나간 자잘한 빛(뉴욕제과점),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노란 물결, 나비 모양의 금빛 먼지(첫사랑), 보름달 마냥 밝게 하늘에 내걸린 노란 연등(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 제각기 다른 빛을 흔드는 등나무 잎(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등등. 그 빛 앞에서 소년은 눈물을 흘리고 첫사랑에 빠지고 빛과 빛 사이 오가는 생각을 되짚는다.

 

  어른이 된 작가는 그 불빛들을 꺼내보며 그 불빛 중심에 선 공간들을 추억한다. 게이코가 있던 빵집, 학교, 뉴욕제과점, 평화시장, 리기다소나무 숲, 평화동 80번지. 그곳들의 중심축엔 뉴욕제과점이 있다. 연필로 써내려간 이 짧은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뉴욕제과점이 만들어준 추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뉴욕제과점’과 비슷한 존재가 하나 둘쯤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든, 둘이든 중요하지 않다. 이 세상에서는 사라졌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 있는 존재, 그리고 그 존재로부터 우리가 살아갈 자양분을 얻을 수만 있다면 되는 것일 테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불빛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라는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j***7 2007.04.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눈물 한 줄기
"눈물 한 줄기" 내용보기
김연수 소설을 읽고 눈물을 펑펑쏟은 적이 있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우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저 설산만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진다.  새로 산지 얼마 되지 않은 마스카라는 물에 약해서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설산의 어떤 코드가 그토록 눈물이 쏟아지게 만드는지.     이번에 다시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울었다
"눈물 한 줄기" 내용보기

  김연수 소설을 읽고 눈물을 펑펑쏟은 적이 있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우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저 설산만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진다.  새로 산지 얼마 되지 않은 마스카라는 물에 약해서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설산의 어떤 코드가 그토록 눈물이 쏟아지게 만드는지.

 

  이번에 다시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울었다. 고등학교 추천 도서에 생뚱맞게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가 들어 있기에 읽어보았다. 뭐 성장 소설이라고 봐도 되긴 되겠네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동인 문학상 영향인가 아니면 고교 추천도서 영향인가 12쇄를 찍었다. 김연수가 자기 책 안 팔린다고 푸념하는데 12쇄면 선방했다. 소설보다 산문을 더 잘쓰는 작가가 자기 어린시절 이야기를 소설로 썼으니 산문처럼 재미있다. 그는 자칫 길을 잘 못들면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 사람인데 자기 어린시절 추억 속에서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러잖아도 할 이야기가 많은데 억지스런 생각들을 구겨 넣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야말로 만담같은 이야기들이 술술 잘도 나온다. 입담좋게 풀어놓는 소설들은 시종 일관 유쾌하기도 하다, 짠하기도 했다. 그러다 '리기다 소나무 숲에 갔다가'에 걸려 넘어졌다.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에서 열살 안팎이던 화자가 이제 군대갈 나이가 되었다. 스무살이 된 화자가 삼촌을 따라 사냥을 나선다는 이야기다. 멧돼지 잡으려다 총을 쏘지 못한 이야기다. 그 사냥길에 도라꾸라 불리는 사내와 만담을 한 이야기 뿐이다. 그런데 도라꾸라고 부르는 사내가 총을 꺾은 사연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이 번에는 내가 왜 우는 지 알았다. 그건 새끼를 잃은 멧돼지의 텅빈 눈을 본 도라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새끼를 가진 어미이고 그래서 도라꾸의 총을 맞은 멧돼지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역시 감동을 주는 소설은 이야기가 풍부해야 한다. 몇개의 소설은 출중했고, 또 몇개의 소설은 별로 읽을 만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 가장 떨어지는 소설이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 같은 것인데 여기서 김연수는 과하게 수사법을 사용하고 있다. 할 이야기가 떨어지면 지나치게 꾸미는 법이다. 얼굴에 자신있는 여자는 민낯으로 나설 수 있다. 

 

  생각할 수록 이야기는 참 신기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야기가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은 구원의 손이 되기도 한다. 영화 '더 리더'에서 한나가 구원받는 것은바로 이야기가 실린 문학을 통해서였다. 나는 점점 이야기교의 신자가 되어가고 있다. 세상을 구원하러 온다는 미륵도 메시아도 결국은 이야기다. 감동을 주는 이야기의 맛은 짭짤하다.   

 

 

 

 

  

h******h 2010.03.0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의 추억들을 마주한 기분...
"나의 추억들을 마주한 기분..." 내용보기
영화 추억은 방울방울이 생각났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추억 하나하나가 책 속에 내용들과 함께 몽글몽글 살아나면서 유년의 그 곳으로 나를 대려다 주고 있었다.   나이가 많이 든 것도 아닌데 요즘의 작가들의 글이 나는 쉬이 읽히지가 않았다. 그래서 김연수란 작가에 대해서 들은 바도 많이 있었지만 단 한권의 책도 읽지 못했었다. 그런데 대성당이란 외국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면
"나의 추억들을 마주한 기분..." 내용보기

영화 추억은 방울방울이 생각났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추억 하나하나가 책 속에 내용들과 함께 몽글몽글 살아나면서 유년의 그 곳으로 나를 대려다 주고 있었다.

 

나이가 많이 든 것도 아닌데 요즘의 작가들의 글이 나는 쉬이 읽히지가 않았다. 그래서 김연수란 작가에 대해서 들은 바도 많이 있었지만 단 한권의 책도 읽지 못했었다. 그런데 대성당이란 외국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그 재미에 번역이 한 몫한 듯한 느낌이 오면서 작가의 작품도 읽어 볼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선택한 책은 내가 아직 아이었을 때 작가의 자전적 작품이란 것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이유는...비슷한 시대를 살아 온 나에게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을 선물 해 줄 것 같은 기대감이 작용 했을 터...

 

역시..이 책은 나의 가슴 속에 켜켜이 묻혀 있던 시간 속의 여행을 아주 즐겁게 해 주었다.

 

힘들었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하는 말에 나는 공감한다... 책을 읽으며..나는 나의 유년을 계속 같이 떠올릴 수 있었다.

 

 

첫사랑에 등장한 크놀프란 책은 나역시 고교시절 친구로 부터 선물을 받고 자랑삼아 지방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보내었는데 그 사연이 방송을 타는 바람에 다음날 나는 친구들로 부터 이런저런 질문을 받아야 했던 기억..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에서의 쥐에 얽혀 있었던 우리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정겨운 빵집 뉴욕제과의 추억들까지...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오랜 흑백사진들을 흘러 가는 시간에 따라 감상 한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는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 하게 만들어 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w*******i 2008.01.1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앞으로 나아갈 길을 위하여 잠시 뒤를 돌아보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위하여 잠시 뒤를 돌아보다" 내용보기
몇 달전 우연히 이 작가의 단편 를 읽었다. 그때는 겨울이 아니었는데도, 그 소설을 읽으면서 한겨울 칼바람이 매서운 스케이트장에서 다른 아이들이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여자애가 된 것 같았다. 잘못 사들고 간, 아버지의 두통약(술 깨는 약) 뇌'선'을 뇌'신'으로 고치려고 칼을 들고 있는 아이, 엄마한테 매맞고 쫓겨나는 아이, 스케이트도 없는 아이...읽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위하여 잠시 뒤를 돌아보다" 내용보기
몇 달전 우연히 이 작가의 단편 <스케이트>를 읽었다. 그때는 겨울이 아니었는데도, 그 소설을 읽으면서 한겨울 칼바람이 매서운 스케이트장에서 다른 아이들이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여자애가 된 것 같았다. 잘못 사들고 간, 아버지의 두통약(술 깨는 약) 뇌'선'을 뇌'신'으로 고치려고 칼을 들고 있는 아이, 엄마한테 매맞고 쫓겨나는 아이, 스케이트도 없는 아이...읽은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항상 코를 흘리고 있을 것 같고 좀 멍청한 아이의 이미지가 또렷이 기억에 새겨져 있다. 이 소설집에는 <스케이트>가 없지만 역시, 아직 덜 자란 '아이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소설들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겼을 듯 싶다. 스스로 고백하듯 이 책을 마침표 삼아 비로소 습작기에서 벗어났다고 하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면서도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이 책의 소녀들과 소년들은 작가의 가슴 속에서 숨죽이며 언젠가는 나가리라, 말하리라 벼르고 있었을 것 같다. 가난했고, 남루했고, 슬프고 후회되는 것도 많겠지만 어쨌든 추억은 아름답다. 기억을 더듬고 발걸음을 더듬으며 취재를 거듭하여 만들어낸 따스하고 노란 불빛같은 책이다.
t****7 2003.01.0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엄마 추억이 뭐예요?
"엄마 추억이 뭐예요?" 내용보기
갑자기 어젯 저녁 큰아이가 물어온다.   어렸을 때 좋았던 기억나는걸 추억이라고 말해주는 거지..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는 유년의 추억을 소쿠리에 가득한 봄나물을 조심스레 들춰보듯 하나씩 끄집어 내고 있었다.어려서 가게를 꾸리시는 부모님을 김연수씨도 가졌었고, 나 또한 그러했다. 혹시 내 추억을 대신 적어 놓은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가
"엄마 추억이 뭐예요?" 내용보기
갑자기 어젯 저녁 큰아이가 물어온다.   어렸을 때 좋았던 기억나는걸 추억이라고 말해주는 거지..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는 유년의 추억을 소쿠리에 가득한 봄나물을 조심스레 들춰보듯 하나씩 끄집어 내고 있었다.어려서 가게를 꾸리시는 부모님을 김연수씨도 가졌었고, 나 또한 그러했다. 혹시 내 추억을 대신 적어 놓은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공감가는 부분도 많고, 가슴한켠이 싸~하고 서늘해졌다가, 금방 더워졌다가 했다.   제과점 얘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다섯살 무렵 아빠에게 점심 드시라는 말씀드리러 가게가는 길을 건너다가 남고생 자전거에 부딪쳐서 큰대자로 길바닥에 드러누웠던 기억.. 여섯 살 무렵 꽁꽁언 냇가에 썰매끌고 가서 6학년 오빠에게 뺏겨서 징징 울고 쫓아만 다녔던 기억..아빠 백원만 주세요..  가게 서랍에서 하나씩 꺼내다가 콘 사먹었던 기억..좀 더 후에는 가게문 너머로 지나는 자동차들.. 직장다니는 언니, 아저씨들을 보면서 내 미래를 생각도 해보고 멋진 옷차림의 말쑥한 사람들을 한껏 부러워하며 썬팅된 유리창 너머로 따라다녔었던 기억..     어려서 읽은 책은 작가가 무조건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니 다른세계의 얘기겠거니.. 했다가  한 두 살씩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작가와 비슷한 연배가 되어가다보니 이제는 같은 세계의 얘기를 내 대신 써놓은 그런 생각마저 들때가 많아진다.큭큭   읽은지 20여일이 지나서 몇 자 적어보려니 감흥이 떨어지긴 했지만,김연수씨는 또 한명의 팬을 얻은 셈이다.     -- 책 속 --   노란 연등 드높이 내골고 中에서     보름달이라도 떠오른 것일까, 노란빛이 환하게 마음을 밝혔다. 명부전 돌아가는 진회색 축대 밑에 애기똥풀이 하늘 높이 노란빛 꽃을 피웠다.  아기 손바닥 같은 초록 잎이 더운 공기 머금은 봄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렸다. 가느다란 꽃대를 따라 애기똥풀 노란 꽃이 끄덕끄덕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흔들었다.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버렸다. 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는 모양이었다.  대웅전 마당으로 향하던 예정은 그만 오후 햇살이 옴큼옴큼 내려앉은 명부전 섬돌 한쪽에 앉아버렸다.  애기똥풀 꽃대처럼 여윈 예정의 그림자가 섬돌의 윤곽을 따라 비뚜름하게 명부전 맞배지붕 날카로운 그림자 사이로 섞여들고 있었다.  봄바람은 애기똥풀 노란 꽃잎이나 흔들 줄 알았지, 예정의 마른 그림자나 떨리게 했지, 사래에 매달린 풍경 속 눈 뜬 붕어 한마리 제대로 흔들지 못할 만큼 기운이 없었다. 꽃 향기 훈훈한 봄볕을 너무 머금었는지 바람은 저 혼자서 무거워져 건듯 불어오다가 둥근 기와 박은 토담 모양으로 펄쳐진 비질 자국이 여전한 명부전 앞마당만 공연히 한 번 더 쓸어버리고는, 차령산맥 바로 밑이라 더이상 자라지 않고 가늘기만 한 대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인 뒤란을 휘돌았다........
g***n 2005.02.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존재에 대한 외로운 의문과 따뜻함...
"존재에 대한 외로운 의문과 따뜻함..." 내용보기
오랫만에 소개 하고 싶은 소설을 읽었다. 작가 김연수는 1970년 경북 김천생이고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작가세계문학상, 동서문학상등을 수상했다. 소설작가들이 대개 그렇듯...그의 소설 소재도 모두 자신의 추억들이다. 다만 추억을 대부분 3자가 이야기 하듯 객관적인 시각으로 써 내려 간 것이 독특하다. 구효서의 글
"존재에 대한 외로운 의문과 따뜻함..." 내용보기
오랫만에 소개 하고 싶은 소설을 읽었다. 작가 김연수는 1970년 경북 김천생이고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작가세계문학상, 동서문학상등을 수상했다. 소설작가들이 대개 그렇듯...그의 소설 소재도 모두 자신의 추억들이다. 다만 추억을 대부분 3자가 이야기 하듯 객관적인 시각으로 써 내려 간 것이 독특하다. 구효서의 글보다 조금 더 시니컬한 듯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글속에도 따뜻함이 녹아 있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이, 그리고 무엇보다 존재에 대한 외로운 의문이 관통하고 있다. 아직 작가가 살아 온 세월이 그리 길지 않아서 다양하지 못한 소재와 다소 삶의 깊이가 그다지 깊지 못한듯한 점이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세월이 가면서 더 크게 멋있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작가라서 기대가 된다.... 10년 뒤 김연수씨의 작품이 어떻게 단단하게 익어갈지...그가 어떤 멋진 인생의 답을 제시해 줄지 궁금해진다. 그 때까지 살아 있어야지... 그의 단편 중 '뉴욕제과점'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인상깊은구절]
존재하지 않는 자잘한 빛, 그 부스러기 같은 것이 아직도 나를 규정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졌다는 말은 아니다. 기레빠시는 카스텔라 틀에서 이렇게 잘라 낸 빵을 뜻했다. 가게에서 파는 카스텔라나 다름 없기 때문에 그냥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결국 기레빠시는 우리 형제들 차지로 돌아 왔다. 계란과 박력분이 범벅이 된 기레빠시의 맛은 아직까지도 혀끝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는 단팥빵과 크림빵과 곰보빵과 찹쌀떡과 도넛과 우유식빵에는 질리지 않았지만, 이 기레빠시에는 질려버리고 말았다. 결국 우리 형제가 기레빠시에 손을 대지 않게 되자, 상하기 직전의 기레빠시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의 차지가 되었다. 강아지도 얼마간은 맛잇게 먹었지만, 곧 기레빠시를 거들떠보지도 않게 됐다. 개들마저도 끝내는 알게 된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것이다. 과하면 질리게 된다. 세월이 흘러서 나도 내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편지를 쓸 때쯤이면 그 차이를 알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나도 왜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는지, 왜 세상의 모든 불빛은 풀풀풀 반짝이면서 멀어지는지, 왜 모든 것은 기억속에서만 영원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내 다음 아이들이 자라게 되면,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그정도의 짧은 시간만 흐르고 나면 나도 '아니겠냐'와 '아니겠느냐'의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공정하게 한가운데를 달린다고 했을 때, 예감은 좋은 일과 나쁜 일중 나쁜 일쪽으로 곧잘 쓰러지곤 했다. 추억이 곧잘 좋은 일쪽으로만 내달리는 것과는 참 다르다. 많이 다르다.... 어느 날인가 나는 문득 이제 내가 살아갈 세상에는 괴로운 일만 남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는 늘 누군가 내가 알던 사람이 죽을 것이고 내가 알던 거리가 바뀔 것이고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떠나 버릴것이기 때문이다. 단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문득 그런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그러면서 자꾸만 내안에 간직한 불빛들을 하나둘 꺼내보는 일이 잦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사탕을 넣어 둔 유리항아리 뚜껑을 자꾸만 열어대는 아이처럼 나는 빤히 보이는 그 불빛들이 그리워 자꾸만 과거속으로 내달았다. 추억속에서 조금씩 밝혀지는 그 불빛들의 중심에는 뉴욕제과점이 늘 존재한다.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어른이 되는 동안, 뉴욕제과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뉴욕제과점이 내게 만들어 준 추억으로 나는 살아가는 셈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뭔가가 나를 살아가게 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 다음에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내가 살아갈 세상에 괴로운 일만 남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없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위안이 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삶에서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그저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내안에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됐다. 그즈음 내게는 아이가 생겼다. 내가 이세상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그 아이가 나 없는 세상을 살아 갈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상식적으로'받아 들일 수 있게됐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불빛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세상에 어떤 동물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일부러 부수지는 않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 그렇게 망가지는 꼴을 보니 신이 났어. 나는 주먹을 움켜 쥐고 복수했다고 생각했어 그래 그 여자 내가슴에서 떠나 보낸기라. 그제서야 알았지. 우리가 진짜 우리로 사는 인생이 을매나 되겠어여. 다 그림자로 살아가는 인생 아이라여? 그란데 그여자하고 살았던 시절은 그래도 내가 나로 살았던 시절이구나...그걸 깨달은거라... 밤의 산길을 걸어가다 보면 사람은 과연 어디까지가 자신이고 어디까지가 자신이 아닌지 알게 된다. 빛이 없을 때 사람의 눈이란 그저 코앞을 볼 수 있을 뿐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현실의 공간 역시 손을 뻗거나 발을 내딛어서 닿을 수 있는 그 정도까지일 뿐이다. 그러고 나면 자신과 세계는 완벽하게 분리된다. 두려움은 자신이 이 세상 어느 것과도 연결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일어난다. 눈물은 마음에서 솟구쳐 눈에서 나와 뺨을 타고 흘러 내린다. 흘러 내리는 동안 눈물은 상처를 달랜다. 그래서 눈물은 그렇게 쉽게 마르는 법이다. 가는 바람이 불어 왔겠지. 등나무 잎들이 흔들렸다. 원재는 등꽃이 주렁주렁 매달렸던 자리를 올려 봤다. 지난 봄, 그 많았던 보랓빛들은 어디로 갔을까? 얼마나 많은 보랓빛들이 저물고 나면 여름이 찾아 오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소년들은 어른이 될까? 제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등꽃 그 빛들은 스러진다. 제 몸이 아름다운줄도 모르고 소년들은 슬퍼한다. 비에도 지지말고 바람에도 지지말고. 눈에도, 여름더위에도 지지않는 튼튼한 몸으로 원재는 등나무 그늘아래에 섰다......
YES마니아 : 골드 j****m 2005.03.0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4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4" 내용보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라틴어로 된 학명을 줄줄 외우시는 보건소장님을 지켜본 아이의 추억담입니다. 어느 먼 아프리카의 오지에 있는 마을 같은 80번지 마을에 장티푸스가 퍼집니다. 하수도 시설도 없는 마을이라 조금 큰 도시라면 여기저기 한 곳 이상에는 있는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을 ‘똥골’같이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소설. 문학동네 간행 4" 내용보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라틴어로 된 학명을 줄줄 외우시는 보건소장님을 지켜본 아이의 추억담입니다. 어느 먼 아프리카의 오지에 있는 마을 같은 80번지 마을에 장티푸스가 퍼집니다. 하수도 시설도 없는 마을이라 조금 큰 도시라면 여기저기 한 곳 이상에는 있는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을 ‘똥골’같이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마을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80번지 대장쥐가 장티푸스를 퍼뜨린 원흉이라며 쥐를 잡아 하수구 구정물이 모이는 개천에 버립니다. 복개천 아래로 찾아간 보건소장님은 장티푸스균을 퍼뜨려 쥐를 박멸하려던 계획이 틀어져 쥐는 장티푸스에 면역을 가졌다며 장티푸스를 옮기는 종은 이 세상에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밖에 없다고 주민들에게 설명합니다. 

 신발을 버릴까 봐 하수가 흐르는 개천을 맨발로 들어갔다 깨진 병에 발을 다쳤습니다. 피가 흐르는 맨발로 양손에 신발을 들고 집으로 들어온 저를 보고 어머니가 왜 신발을 신고 도랑에 들어가지 않았냐고 나무랐습니다. 신발이 더러워지면 안 될 것 같아 그랬다는 저의 대답에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더러운 개천에는 신발을 신고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 일어난 사건들로 인해서 세상을 배웁니다. 별것 아닌 듯했던 그 기억들이 사실 지금까지 버티며 스스로를 지킨 힘일지 모릅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는 말은 어린 시절 못 먹어 배고픔을 극복하는 방법이었는지 모릅니다. 도둑질을 할 정도로 배고픈 것은 아니지만 늘 배가 고팠던 기억만 남았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는 말은 그럴듯한데, 설득력은 작습니다. 실제 그렇게 하면 버틸 수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군대를 빼면 저 소리를 자주 듣던 곳은 학교입니다. 

 머리를 빡빡 밀게 하고는 교복을 입혔습니다. 수업 중 선생에게 질문을 해도 그날 선생의 기분이 나쁘면 쓸데없는 질문이라며 때리고, 날씨가 궂으면 시문 하냐며 때리던 선생이 유독 많았습니다. 선생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고 했으니 경제성장이 한창일 때 소외되었던 직업이라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 중 하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선생이라는 직업이 한때 대단한 직업이 되었다가 요즘 다시 괴로운 직업이 되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학교 추억담을 들으면 누구든지 호되게 억울하게 선생에게 당한 이야기를 적어도 하나씩은 할 줄 압니다. 저도 억울했던 경험담이 있습니다. 나이 들어 반골 기질이 생긴 이유 중 하나는 권위를 내세워 개인적 불만을 해소하던 엉터리 못난 선생에 대항하다 든 나쁜 습관일 것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습니다.

 서이초등학교에서 학부모 갑질을 이기지 못해 세상을 떠난 선생님은 이십대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이 학부모에게 시달리면 교감이나 교장이 방패막이가 되어줘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 혼자서 감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제 얘기는 아니지만 이 사건에 대하여 일리가 있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의 학부모는 어린 시절 선생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 경험이 있는데,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맞았다, 나쁜 말을 하더라 들으면 흥분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내 새끼에게 같은 아픔을 주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로 응징을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지금의 교감이나 교장 선생들이 과거에 만든 업보를 젊은 교사들이 애꿎게 감당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사실 유무를 떠나 이런 설명을 하는 그분도 과거 선생들의 학폭 트라우마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군대를 제대하고는 군대가 있던 방향으로 오줌도 싸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처럼 악으로 깡으로 버티려던 중학생은 친구를 잃고 견딜 힘을 잃습니다. 중학생 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지금의 사회를 민주사회로 만든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과거 학폭을 일삼던 선생들이 반면교사로서의 역할을 자신도 모르게 한 것으로 해몽을 하려고도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죄상이 용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도 폭력에 둔감했던 죄가 있는 늙은이로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그랬다고 아무리 변명을 해도 죄는 죄고 잘못은 잘못입니다. 아픈 자가 아프다면 때린 자가 잘못한 것입니다.

 김연수 작가를 따라 어린 시절로 갔습니다. 전근대적인 직업인이 찾은 보람 덕을 받습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끝. 
s*****m 2024.03.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