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목민적 사고가 점차 생존의 조건이 되고 있는 시대에 그 대략적인 개괄과 입문서로서 손색없는 에세이이다. 특히 저자 김종래씨의 화려한 말발과 수려한 책외장으로,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경영적 관점으로 본 칭키스칸은 드러커의 권고와 일치하는 점이 많다. 집중과 의사소통, 정보와 지식위주의 경영. 여기에 속도적 사고와 동지적 결합이라는 북방이주민의 유전적 요소까지 읽어낸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 저자는 우리의 희망이 역사적 경험에서 보듯 신바람으로 일하는 우리의 몽골적 기질에 있다고 한다. 과연 몽골리안인 우리안에 유목민의 피가 있는가? 현재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 많은 문제는 계급과 권위의 중국 통치이론이 체질화된 우리의 사고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인습으로 절대 정교화된 섬나라 정착민 일본의 통치 잔재도 무시할 수 없는 우리의 짐이다. 해방후, 유목민이었던 미국인의 새로운 사회 구성방법에 의한 테크노 헤게모니의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 이것도 사회 전체의 분위기라 말하기에는 월드컵 응원 밖에 떠오르는 건 없다. 우리는 [불]이 필요하다.스스로 정착민의 길을 택한 부시처럼 우리 또한 먹고 살만하고 누릴만 하며, 돈이 굴러 시스템이 돈을 버는 정착민이 되어가고 있는듯하다. 대안은 다시 불붙이는데 있는데 불로 정권잡은 사람은 정착민 이론의 일종인 결과평등을 추구하며 다시 물탄 나라를 만드는 건 아닌지. 민족 약동의 핵심을 잡는데 실패하고 있는건 아닌지... 개인적으로 이 책은 내게 성경에 대한 이해와 영성에 대한 깨달음을 준 책이기도 하다. 유대인은 유목민이었던 그들의 뿌리를 잘 보여주는 민족이다. 가나안전쟁 과정의 공공연한 복수심과 잔인함도, 그들의 [사막영성]이 무엇인지도 이를 통해 알 수 있었다.또한 모든 신적 책망의 이유가 정착민이 된 그들의 정착구조적 악과, 사막적 영성기준의 실패에 연관되어 있음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로 인해 다시 정착민사이에 사는 사회적 유목민,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마인드를 버리지 않고 지켰다면 그들은 나라를 잃지 않았도 되었을까? 깨어있는자는 변화하고 정복하며, 정복을 통해 다시 변화한다. 행복은 머무름에 있으나 생명은 움직이는데 있다. 움직이지 않는 영성은 썩는다. 유대인이 지켜야 했던 [사막 마인드]의 기준은 이제 나에게 가장 중요한 푯대가 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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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도대체 이 책이 왜 내 책장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책이 있다. 책을 집어들고 제목, 부제와 저자 약력만 읽어도 마치 책을 다 읽은 것처럼 느껴져서 안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심호흡하고, 드디어 읽었다. 읽다보니 의외로 흥미로와서 육포 안주에 맥주 마시며 단숨에 다 읽게 되었다.
일단 김종래 저자의 약력을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사학 전공자는 아니고,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거쳐 현재는 출판국장이다. 칭기스칸과 유목민의 역사를 21세기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한국에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는 등 두 나라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몽골정부로부터 훈장을, 몽골국립대학과 칭기스칸 아카데미에서 명예박사 학위(역사학)를 받았다고 한다. 대표작으로는 <밀레니엄맨 칭기스칸><유목민 이야기>가 있는데 이 책들은 몽골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우리나라 몽골어과의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일단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조선일보 출신, 그리고 명박(명예박사를 줄여서 썼는데, 줄인말을 다시 보니 참 맘에 안든다) 출신이라는 점에 거리감을 느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책을 집어들고 몇 쪽 읽자마자 이 분이 방대한 내용을 재미있게 요약, 재구성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예스에 들어와 몽골과 유목민을 주제로 검색해보자 몽골 관련 대중서는 상당수가 이 분의 저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분의 저서가 이 분야 사학계에서 월등히 뛰어난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국내에서 독보적인 필자임은 확실한 것 같다.
책은, CEO 입장에서 경영시 칭기즈칸의 일생과 당시 유목사회의 문화에서 배울만한 점을 콕콕 간추려 이야기해주는 가벼운 책이다. 잘 정리된 강의 노트같은 느낌이다. 너무 간략히 되어 있어서 아마 저자의 대표작인 <유목민 이야기>의 요약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으로 몽골과 유목민 사회, 역사를 쉽게 접근하기에 괜찮은 편이다. 무엇보다 책 뒤의 참고 문헌 소개가 충실하다. 블로거 xvy님이 전에 언급하셨는데 그만 담아두기를 잊었던 르네 크루세의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와 <몽골비사>를 곧 읽어 보아야 하겠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 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 본문 27쪽, 톤유쿠크 장군의 비문에서.
예순 베이는 참 훌륭한 용사다. 아무리 오래 싸워도 지치지 않고 피로한 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모든 병사들이 자기 같은 줄 알고 성을 낸다. 그런 사람은 지휘자가 될 수 없다. 군대를 통솔하려면 병사들과 똑같이 갈증을 느끼고, 똑같이 허기를 느끼며, 똑같이 피곤해야 한다. - 본문 104쪽. 칭기스칸의 발리크(격언) 제 17조에서.
그리고, 지금 예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형수 작가의 소설 <조드>의 제목인 조드가 무엇인가 했더니, 이 책을 보니 가뭄 뒤에 때 이르게 들이치는 강추위가 조드(Dzud)라고 한다. 몽골인의 가족이자 친구이자 식량이자 재산인 가축들을 몰살시키는. 그래서 급관심 갖고 클릭해보니 과연 칭기스칸을 다루고 있는 몽골 배경의 소설이었다. 이렇게 난 늘 뒤늦게 뒷북치며 다닌다. 여하간, 여러분도 관심갖고 방문해 보시길. |
| 정리해고라는 말이 잠시 스쳐가는 듯 했지만, 이제 그것은 익숙해져야 하는 단어가 되었다. 사회를 보면,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있고,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전자는 변화를 대세라고 하지만 후자는 변화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뜬금없이 800년전 중앙아시아로 우리를 몰고간다. 그리고 칭기스칸을 무대의 한 가운데 불러세운다. 그가 변화를 어떻게 주도했는지,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기에 어떻게 무대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처했던 상황은 모든 것이 불안한 시기였다. 그가 속한 부족은 내일의 안정을 약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가 상대했던 적들은 항상 그보다 100-200배 덩치가 컸다. 진정한 안정은 적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크고 강한 그의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그는 속도전을 펼쳤다. 속도, 기술, 평등 이것이 그가 추구한 가치였다. 적보다 빠른 속도, 적보다 나은 기술로 공격하였으며, 승리하고 난 뒤에는 평등하게(노력한 만큼) 성과를 분배하였으니, 당시에는 혁신적인 가치였다. 저자는 그들의 가치를 배우자고 한다. 우리는 정착민이 아니었고, 본래 유목민의 후손이기에, 우리의 핏줄속에 있는 유목민의 가치 -칭기스칸의 성공요점을-를 되살리자고 한다. 이를 오늘날의 언어로 각색하면 다음처럼 말할 수 있겠다. 한 직장에 젊음을 바치고 안정을 바라지 말자. 평생 한 직장, 한 지역, 한 가지 업종에 매여 살지 않으며, 자신의 가치를 정확히 분석하고 자신을 위해 그것을 이용하라. 자신의 결핍을 극복하고, 본질에 힘을 집중하라. 자신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직업의 세계에서는 자유만이 진정한 안정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책은 얇으면서도 무거운 책이다. 그러면서도 쉽게 읽히는 책이다. 불안정한 현대 사회가 어떻게 변화게 될지 통찰력을 얻고 싶다면 한번 읽어볼만 하겠다. |
|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하다가 누군가 추천하기에 그냥 사보았는데 책을 읽고나니 몽골과 징기스칸 그리고 지금의 세계가 새롭게 보입니다. 지하철에서 오다가다 읽기 좋은 책입니다. 읽을때는 그냥 읽었느데 자기전에 생각하니 읽을때의 내용이 머리에 지워지질 않네요. 최신의 미국식 경영서적의 핵심역량 분석 경쟁력 분석 등의 여러가지 분석도 좋지만 조직을 움직이고 기회를 선택을 하고 구성원을 배려하는 입장에서 역사에서 배우는것도 좋다고 생각이 드네요. 역사와 경영이 떨어져 있는것 같은데 이책을 읽고나니 독립적인 관계는 아닌것 같네요. 경영에 관심있으신분 부담없이 읽을수 있는책 인것 같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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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징기스칸에 대해서는 상당한 관심을 갖고 많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쉽게 선택할 수 있었는데 너무 부실한 단편만으로 논리를 전개하려는데 상당한 실망감을 갖게 되었다. 마치 2류 신문의 사설을 보는듯한 느낌....이라면 너무 혹평을 하는것일까 ? 소프트하면서도 징기스칸이 조직을 관리했던 다양한 사례를 조명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가 원했던, 그리고 실천했던 각종의 정책이나 유럽까지 원정을 가면서의 조직관리의 노하우등이 너무 짧게 구성이 되어 있었고, 시적 표현으로 장수를 늘리고자 한 것 같은.... 와닿지 않는 번역의 표현 탓이 아닌가 하는 느낌. [인상깊은구절] 매일 아침 아프리카에선 가젤이 눈을 뜬다. 그는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죽으로리는 것을 안다. 매일 아침 사자 또한 눈을 뜬다. 그 사자는 가장 느리게 달리는 가젤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어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
| 우연히 seri 사이트에서 발간한 책을 발견했다. 가끔씩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칭기즈칸이 주인공이어서 나의 눈을 더 사로잡았는지 모르겠다. CEO 칭기즈칸이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요즘은 하루가 다루게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읽지 못하고 그 변화의 물결을 타지 못하면, 앞서가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서 세상을 탓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이 책을 요즘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떻게 칭기즈칸이 그 넓은 대륙을 달리면서 정복해 나가고 150년간이나 지배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에서 요즘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뒤쳐져 있는 자신을 볼 수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볼 수 있을 수도 있다.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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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래님의 책을 알게 된 것은 크레듀 강의를 듣고나서였다.
프로마니아란..강의를 들으며 그의 에너지에 우선 놀라고 그의 말의 거침없음을 통해 더욱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손자병법 같은? 전략을 하나씩 말하고 있는 CEO 칭기스칸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은
1. 속도 숭배중의자들 2. 이름을 불러라 3. 고인 물은 썩고 프르는 물은 쌓이지 않는다. 였다.
하지만 역시..책보다는 강의로 만나는 김종래님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생각, 짧지만 책 중간부터는 조금 실망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 유목민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 지하철에서 작은하얀 표지에 빨간 줄이 있는 책을 사람들이 읽길래 무슨 책일까 궁금했었는데, 그 책이 SERI에서 나온 책이었네. 지하철에서 읽기 딱 좋은 크기다. ㅋㅋㅋ 칭기스칸. 요즘 칭기스칸에 대한 재조명이 되고 있다는 건 칭기스칸 관련된 많은 책들, 드라마등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사실 난 칭기스칸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 시피 해서 재조명 이랄건 없었다. 책은 칭기스칸의 생존 방식, 사고 방식등을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추어 어떻게 다른지, 무엇이 같은 지 등을 이야기 한다 근데 책을 읽다 보니 논리적이라기보다는 비약에 가깝게 이야기를 푼 부분이 다수 존재했다. 1 + 1 = 2. 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데, 1 + 1 = 3. 이런 것처럼 중간을 붕~ 뜨고 결론을 억지로 맞춘 느낌? 그래도 SERI 이름 값이 있는데... 다른 책들은 개안겠지? 다른거 읽어봐야겠다. 아, 책사니까 덤으로 준 이 책 저자의 명강의 10선 먼저 들어야징. |
| ‘CEO 칭기스칸'은 저자의 전작 ‘유목민 이야기’의 요약본에 다름아니다. 전작에서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칭기스칸 중심의 몽골 제국 역사에 관한 부분을 제외하고, 칭기스칸의 경영 전략을 중심으로 일종의 엑기스를 뽑은 것이다. 짧게 압축된 본 저서에서도 칭기스칸은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지만 유목민의 삶의 방식과 칭기스칸의 일대기 등을 기록한 ‘유목민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운 신천지를 안내하고 있다. 기존에 갖고 있던 몽골에 대한 편견 혹은 무지로부터 벗어나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쁨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몽골을 향한 나의 열병은 2년전 여름, ‘유목민 이야기’와 조우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장대한 초원과 자유로운 유목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게한 그 애틋한 인연을 시작으로 몽골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교양 수업까지 수강해가며 열의를 키워갔다. 그리고 지난 7월 한달 간 몽골을 여행하고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그 열병은 식지 않고 있다. 'CEO 칭기스칸’을 이제와 다시 읽어도 여전히 새로운 것은 칭기스칸의 혁신적인 경영 기법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800년 전에 21세기를 살았던 칭기스칸의 그 놀라운 철학은 유목민으로서 살아가야 했던 숙명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비롯되었다. 유목민이라는 사회 구조의 특수성은 열악한 자연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던 것이다. 먼저, 정착민과 유목민은 타자와 타문화에 대한 배타성과 개방성으로 뚜렷이 대조되는데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사회적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과정중에 생겨난 필연적 속성이다. 유목민의 개방성은 우선 타자와의 친교에서 찾을 수가 있는데 이는 책에서 지적한대로 정보의 획득을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정보를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타인과의 교류에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유목민은 타자를 받아들이고 사귀는 속도가 우리의 문화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물론 물질 문명의 지배에서 자유롭고 산업사회로의 발전이 더뎌 개인주의를 찾아보기 힘든 사회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시골 사람들의 순박한 인정 그 이상으로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해제돼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칭기스칸과 그의 동지들간의 관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러한 속성이 신뢰와 의리로써 폭발적인 힘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유목민들은 손님을 환대하고 공손히 대접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데 이는 외지인이 새로운 정보를 가져다 주는 유용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리적 환경에 의한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유목민의 거주 형태는 집촌(集村)이 아닌 산촌(散村)이다. 우리나라 같은 농경 사회야 한 마을에 많은 집들이 밀집되어 있지만, 유목민의 경우 초지 확보를 위해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거주하기 때문에 어느 때는 한 두시간을 가도 겔을 보기 힘든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 인가가 아니고서야 마실 물을 구하기도, 마땅히 쉴 곳을 찾기도 힘든 환경에서 먼 길을 온 손님을 소홀히 대하는 것은 인정이나 도리를 떠나 인간의 생존권에 대한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몽골 여행을 하면서 이런 경험을 몇차례 했는데, 한번은 장대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골프공만한 우박이 쏟아져 근처 겔로 피신을 해 신세를 지게 되었다. 옷이 비에 흠뻑 젖어 발 디디는 곳마다 바닥이 흥건할 정도가 되는데도 십여명이나 되는 낯선 사람들을 흔쾌히 집에 들여 옷을 말리게 하고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날이 갤 때까지 쉬어가게 해주었다. 만약 우리 일행을 내쳤더라면, 그 궂은 날씨에 얼마나 더 가야 다른 집을 찾을 수 있을지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대책없이 이동을 감행해야 했을 것이다. 손님이 왕이라는 것은 한국의 식당에서 통용되는 상업적 서비스가 아닌, 몽골 유목민들의 관습과 도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개방성이 곧 국민성인 유목민의 태생은 칭기스칸에게 가장 큰 환경적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칭기스칸은 시대를 앞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경영을 한 인물임에 분명하다.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사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도를 기반으로 역사상 가장 큰 파급력을 끼친 몽골 제국을 이룩하였다. 소수 4만의 몽골군으로 2,500만의 유럽인을 정복 통치하였다는 물리적 승리는 곧 칭기스칸의 전략과 전술, 지략의 승리이기도 하다. 권위 의식의 타파, 공동의 이익 도모, 공정성 확립, 다양성의 존중, 기술력 중시 등의 합리적인 마인드는 집단의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최상의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800년전 그가 이룩한 정보화, 세계화, 친환경화는 21세기의 화두로 등장하게 된다. 유목민을 주목해야 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유목민의 숙명은 이동이다. 그리고 이 ‘이동’은 곧 ‘변화’와 ‘발전’이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다. 수많은 학자들이 예측한대로 21세기는 분명 이동의 시대이다. 그리하여 한 자리에 머물며 변화 없는 삶을 사는 ‘정주’의 개념은 이제 안주하는 삶, 정체된 삶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동의 어근이 되는 유목민들은 정작 21세기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유목민의 현재는 남루하다. 이 빈곤함은 경제적인 문제에 국한될지언정 정신적인 빈곤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득의 문제에 유목민인들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국 논점은 자본주의의 가치로 귀결된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까지 3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울란바토르에서 몽골의 오지 ‘아르항가이’까지는 자동차로 13시간이 걸린다. 한국에서 울란바토르가 먼 것인가 울란바토르에서 아르항가이가 먼 것인가. 전자가 먼 것은 공간적 개념이고 후자가 먼 것은 시간적 개념인데 속도의 시대에 이르러 전자는 후자를 넘어서게 된다. 수도 울란바토르는 한국의 칠팔십년대를 재현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소비의 문화를 숭상한다. 내가 보름간 머문 아르항가이 차강솜 일원의 유목민은 겔에서 생활하며 말과 양, 염소 등을 방목하고 계절에 따라 이동한다. 그들은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는 800년 전의 생활을 어제처럼 살고 있다. 그들에게 이동은 숙명일 뿐 변화도 발전도 아니다. 이동이 곧 정주이며 안주이다. 유목민들의 현재를 직시한다면, 이동은 그 허울좋은 상징성으로만 가치가 매겨질 뿐이다. 21세기 유목민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러나 그 축제에 정작 초원의 유목민은 소외되어 있다. 장대한 몽골의 초원에서 그 서글픈 사실을 목격하였다. 거듭 그러나, 유목민의 현재가 남루할지언정 자본주의의 비루함은 없다. 이성이나 지성이 아닌, 야성으로 학습된 유목민에게는 절망이라는 개념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이 마지막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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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즐거운 책이다. 역사를 통해 지혜를 가르쳐주는 책들은 수도없이 많지만, 칭기스칸이라는 독특한 인물이 풍기는 카리스마와 신비로움, 거친 환경상의 도전을 물리쳐내는 인간적 애처로움까지 곁들여져 마음 속에서 진한 영웅상을 그려낸다. 우리가 농경정착민족이다 보니 그 한계를 벗어버리지 못해 다른 환경의 영웅에 대한 경외로움이 있는 건 사실인것같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이유를 떠나 칭기스칸은 어떤 환경의 도전도 결코 도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자기 세력확장의 기회로 삼았다는 점에서 본받을만 한것같다. 아내도 나도 일선에서 뛰는 사람인 관계로 우리는 늘 시장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요즘같은 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미래를 열어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단지 돈만 벌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미래를 차분히 준비해야 할 것인가 등등...우리는 고민거리로 밤을 새기도 한다. 이 책이 그런 고민들을 한번에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역사적인 사실들을 근거로 저자의 화려한 입담과 함께 대강의 윤관은 잡아주는듯하다. [인상깊은구절]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