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대선 결과가 나온 날 책장 구석에 있던 노암 촘스키의 『불량국가』에 눈이 꽂혔다. 다음날 내친김에 서점에 들러 그의 최근 저서 3권을 샀다. 그렇게라도 해야 체증이 가라앉을 것 같아서였다. 이번 선거에서 부시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나는 무식하다, 그러나 나는 강하다.”였다. 군더더기가 없으며 자신감에 차 있다. 한마디로 ‘무식+힘=승리’라는 단순한 등식을 환기시킨 것이다. 반면 케리는 적절한 캠페인을 구사하지 못했다. 그는 시종 “나는 합리적이다. 그리고 나도 역시 강하다”를 외쳤을 뿐이다. 부시가 '그러나but'의 속성인 ‘극적’ 효과를 톡톡히 거둔 반면, 케리는 ‘역시also’라는 김빠진 캠페인으로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다. 케리의 구호 어디에서도 촘스키식의 진솔함과 직설적인 화법, 진실을 보는 혜안이 발견되지 않는다. 아쉬울 따름이다.(물론 크게 보면 부시나 케리나 오십보백보일 뿐이지만...) 촘스키의 화법과 시대를 읽는 혜안 아쉬워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책은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 하는가』다. 책에 담긴 촘스키의 생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국화의 다른 이름인 세계화가 획책하는 신자유주의적 권력 재편이 심히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권력 음모에 가담한 세 집단, 즉 ‘초강대국(미국)’과 ‘거대기업’(책에서는 ‘기업계’라 표현함), ‘언론계’의 권력유지를 위한 ‘동의의 조작’에 의해 이루어지는 선전수법의 폐해에 대해 집중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촘스키는 “권력자들(국가, 다국적기업)과 지식인들(지식인, 언론인), 통칭해서 엘리트집단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소위 ‘조작된 동의’(Manufactoring Consent)에 의한 선전수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우리가 ‘미래의 희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권력집단들의 견고한 연대의 고리를 끊어내고, 세상사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밝혀내기 위한 노동자 대중의 새로운 각성과 연대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대중의 각성과 연대에 앞서 먼저 인식해야 할 것과 전제해야 할 조건들이 있다. 첫째, 지식인들이 본연의 사회적 기능인 진실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촘스키 자신 또한 포리송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현실은 지식인들이 진실을 외면하는 사이 권력이 끊임없이 '동의의 조작'이라는 선전수법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하고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있다. “사회가 민주화될 때, 달리 말해서 국민을 강제로 통제하고 소외시키기 힘들 때 엘리트 집단이 선전이라는 방법을 동원합니다. 거대한 기업의 주된 목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위적 욕구’를 만들어서 대중이 그 욕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로 대중은 서로 소외되어 갈 뿐입니다.”(28쪽) 둘째,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현실의 민주주의는 가짜이며, 자본주의 경제는 이미 시장의 기능을 상실했고, 일부 과점寡占 기업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강대국들,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 금융기관과 국제기관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맺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들어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공급자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공급자 중심의 경제로 진행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강력하고 전제적인 힘을 지닌 소수 집단이 초강대국을 등에 업고, 때로는 국가의 정책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면서 일부 경제 분야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입니다.”(56쪽) “이른바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시민의 권한을 개인 기업에 양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입니다.”(58쪽) 바야흐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중의 역할은 ‘참여자’가 아니라,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나 관심을 갖는 구경꾼’의 역할이어야 했습니다.”(70쪽) 셋째, 현실의 민주의의는 가짜이며, 보이지 않는 세력(다국적 기업,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한다. 또한 언론과 지식인은 '조작된 동의'의 배달부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중의 각성과 경계 이외에 현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은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는 유일 강대국으로서 세계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미국이 지난날 저질렀던 짓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외국에 투자되는 자본은 대부분이 경영 지배권의 확보를 위한 돈입니다.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기업을 민간 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에 넘기려는 속임수일 뿐입니다. 이런 민영화는 대체로 부패한 정부에서 주로 시행됩니다.”(101쪽) “민주주의를 확대시키려는 대중과, 민주주의를 제한하려 안간힘을 다하는 지배계급 간의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힘을 키워주는 정책과 무역협정은 민주주의를 제한하려는 음모입니다.”(148쪽) 결론적으로 촘스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와 그의 논리적 수단으로 전락한 '제3의 길'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책동에 단호하게 맞서기 위해 무엇보다 대중의 경계와 연대가 필요함을 재차 역설하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코소보, 소말리아 사태 개입 등이 지난날 미국이 저지른 만행들이라면 교토의정서 서명을 거부하는 것이나 정작 자신들은 핵확산방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채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서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현재의 미국이 보여주는 오만방자함이다. 부시의 재선을 통해 다시 한번 세계인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린 미국, 그들은 과연 언제까지 세계 유일 강대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을까. 새삼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다. 로마제국쇠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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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선 나의 반미성향에 대해 걱정을 한다 그러나, 나의 성향은 반미라기 보다는 반패권주의 반제국주의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모두 가짜라고 할 정도로 진실은 여태껏 너무나 왜곡되어왔다 알에서 깨어나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들의 속임수와 여론조작을 부릅뜨고 지켜봐야한다 행동하는 지식인이 목마를때이다
'슈퍼파워 미국' 흥한 나라는 반드시 멸한다는 것을 보여준 고대의 카르타고..폐르시아..,그리스..,마케도니아 왕국 그리고 로마!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미국이야말로 불량국가가 아닐까? 교토의정서까지 교묘히 빠져나간 미국으로서는 인류의 미래를 걱정할 자격조차 없는것인데 왠 세계경찰 노릇이람! 어처구니가 없는 작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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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010년이다. 수십년전에 읽은 책이 떠오른다. 새내기였을때 리영희 교수의 책들로 입문을 한 내게 주어진 다음 책은 한완상 교수의 [민중과 지식인], 그리고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이었다. 아마, 리영희 교수의 책들로 내 몸안의 분노를 일깨운 그들(?)은 본격적으로 과정을 밟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책장 안에 오랫동안 꽂혀있던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이 책을 읽고난 후, 예전에, 정말 옛날에 읽었던 [민중과 지식인]이 떠 오른다. 아마 그 시대나 지금이나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똑같은가 보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유대계 러시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노암 촘스키’는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자 정치평론가 겸 사회운동가이다.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그는 온갖 편견과 음모와 거짓으로 얼룩진 미국 주류 지식인 사회와 지배권력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외교정책과 언론, 지식인 사이의 유착의 본질에 강한 비판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다국적기업과 신 자유주의의 세계질서의 실상을 파헤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1999년 말에 두 명의 프랑스 언론인이 촘스키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며 2001년에 발간되었다. 10년이란 시간의 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촘스키의 비판은 현재의 미국사회나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유효한 것을 보면 역사의 연속성에 그저 두려움이 들 뿐이다. 촘스키는 그의 저서 [지식인의 책무]에서도 주장했지만, 여기서도 지식인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실제로 수천년전부터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려는 지식인들은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 결국 프로그램 된 존재로 만드는 데서 그 역할을 찾아왔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무력을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론과 행동을 통제할 필요를 느낀 정부는 광고산업에 힘을 쏟게 되고, 엘리트 집단들은 선전이란 방법을 동원한다고 미국의 예를 들며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고, 진실이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 이라고 촘스키는 얘기한다. 작금의 한국사회를 바라본다. 그리고 스스로 지식인이라 칭하는 이들의 행태를 생각해 본다. 그들은 오히려 국민들이 알고 있는 사실 그것 자체도 왜곡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그는 이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다국적기업이라고 말한다. 최강대국들, 거대한 다국적기업, 금융기관과 국제기관은 그들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국가와 다국적기업은 운영방식이 서로 다르나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권력을 과점하고 있단다. 2차대전후 사회주의와 다소 급진적인 민주주의 사상의 유입으로 기업의 지배가 위협받자, 사람들의 여론과 행동을 통제하기 위하여 언론기관과 홍보기관이 총동원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의 연대 같은 생각을 잊고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이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통찰력 있는 지식인 이라면 이런 흐름을 꿰뚫어 보았겠지만, 그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고 대중을 종속시키려는 이런 음모에 스스로 가담했다고 한다. 그것이 그들의 밥줄이었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란 시민의 권한을 다국적기업이라 불리는 민간기업에 양도하는 것 이라고 촘스키는 말한다. 2차대전후 형성된 ‘브레튼 우즈’협약이 1970년대 붕괴되면서 순수한 시장경제의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오직 비용과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거대한 공공분야와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 거대한 민간분야가 양분하고 있는 경제 현실에 우리들은 살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모든 성장은 금융자본에 집중되고 그들은 수익을 쫓아 국경을 넘나들며 수많은 금융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지금, 그들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실체가 없는 세력이라고 한다. 이제 세상에는 자본주의도 없으며, 현실의 민주주의는 가짜라고 말한다. 현실의 민주주의는 미국에는 이미 널리알려진 공식화된 이론에 따르면,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라고 한다. 또 그는 말하고있다.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지배계급은 공포심을 조장하고 선전에 열을 올립니다.” (156p) 라고.. 촘스키는 이미 10년 전에 이 말들을 하였다. 그때는 부시가 미국대통령이 되기 전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사실들을 알리기 위해, 강연을 하고 책을 저술하고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힘을 보태고 있다. 그로부터 10년이란 시간이 지난 우리의 현재는? 누구 하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사람 없이 그저 신자유주의란 거대한 세력 앞에 속절없이 흔들리고만 있다. 언론이라는 것과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그들의 요구대로 알고도 모르는 척, 아니 생각도 하기 싫고, 무작정 좋다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그들이 말하는 것, 주장하는 것을 되뇌기에 바쁘다. 역사는 언제나 이런 식 이었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대중이 저항하고 싸워서, 때때로 승리를 거둘 때에야 세상은 진정한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170p) 라고 말한다. 수십년전 새내기 때 [민중과 지식인]을 읽으면서 되뇌었던 말이기도 하다. “지배구조와 계급구조는 어떤 형태를 띠더라도 의혹의 대상으로 삼아 그 정당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스스로 정당화 될수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166p) 자꾸 머릿속을 헤집는 촘스키의 또 다른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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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양심으로 불리 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은 그들의 용기 있는 솔직함이었다. 탄압과 비난과 그에 따르는 고통을 감내하는 솔직함, 그리고 용기. 그런 것들이 양심의 기본적인 요소임을 그들을 통해 깨닫게 된다. 여기 촘스키 역시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 운다. 그는 대범할 정도로 솔직하다. 그러나 그는 그 솔직함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솔직함이 이 시대의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지식인들은 널려있다. 각기 자신이 지식인이라고, 이 시대의 지도층이라고, 제발 그걸 알아달라고 소리치는 지식인들은 널려있다. 그러나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진실 그대로 알리려고 노력하는 지식인들은 드물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비록 비난 받고 소외되는 지름길이라고 할지라도 소리쳐 외칠 수 있는 대범함을 가진 지식인들을 만나기는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렵다. 단지 수구족벌언론에 자기 얼굴이나 이름 한 줄 올리기 위해 기를 쓰는 지식인들은 많아도, 너무도 뻔한 진실을 언변과 곡필로 왜곡하는 지도층은 많아도,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소리치는 지식인을 만나기는 너무도 어렵다.
촘스키는 미국의 사회구조가 권력과 가진 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라고 비판한다. 매스컴 등을 통한 인위적 욕구를 창조해서 대중을 그 안에 가두어두고 단지 소비와 향락에 몰두하게 하며, 인공의 벽 속에서 맹목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유도하는 사회적 트릭을 이야기한다. 단지 미국의 이익여하에 따라 각기 다른 대접을 받는 타국의 반체제 인사들의 이야기들은 미국이 얼마나 제국주의의 일방통행 적인 폭력에 익숙해져 있는지를 고발한다. 촘스키는 이야기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진실된 말은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미국의 이익을 보호할 때만 유효하다는 것이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촘스키의 눈에 비친 미국식 민주주의이다. 미국의 직,간접적 개입 하에 죽어간 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미국적 이익의 희생양이었다. 세계경찰의 가면 뒤에 숨겨진 미국의 참모습은 지극히 배타적이고 독선적임을 우리는 촘스키의 진실된 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적 성장은 금융자본에 집중되었고 그러한 성장의 열매는 노동자가 아닌, 투기적 자본가에 집중되었다. 그러한 세계적 경제적 현상을 촘스키는 '연대국가자본주의' 혹은 '기업중상주의'의 경제체제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위기의 돌파는 대중의 각성과 경계뿐임을 이야기하는 촘스키는 민중교육의 중요성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여론의 압력과 단결된 민중의 힘만이 진정한 민중을 위한 체제로 가는 지름길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지배계급은 공포심을 조장하기위해 혈안이 된다. 전쟁과 해고의 위험은 민중이 당면하게 되는 두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촘스키의 시각은 한국의 수구세력 들의 본심을 파악하게 한다. 전쟁이 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이 땅의 수구세력 들이 바로 우리 한국민중의 적임을 깨달을 때, 이 땅에서 수구세력은 발부칠 수 없게 될 것이다. 국민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값비싼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라고 촘스키는 말했다. 그러나 일부 극소수의 가진 자와 권력만을 위한 나라가 아닌 참으로 민중을 위한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필요함을 촘스키는 함께 역설하고 있다.
조작된 동의를 배달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권력을 등에 업거나 자기 스스로 권력화 되어 있는 이 땅의 수구족벌언론은 우리 민중의 참된 이익 앞에 걸림돌일 뿐임을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 그것이 민중을 위한 참된 길임을 소리쳐 외치는 지식인들이 많아져야 한다. 어려운 단어와 복잡한 화술로 진실을 왜곡하고 꾸미어 대중의 눈을 가리고 자신의 영달을 권력에 의존하는 속물적 지식인들이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의, 꾸미지 않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촘스키들이 많아질 때, 이땅에도 민중의 봄은 올 것이다.
한국의 경제와 정치는 이미 미국에 종속되어있다. 무엇하나 우리 마음대로 하기 힘들며, 미국의 이익이라는 틀 안에서 함께 판단해야만 그것이 한국적 민주주의로 평가 받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시청 앞에서 부시를 위해 목을 놓아 기도하는 저 수구적인 친일잔재 들은 이 땅의 미국 속지화를 더욱 가속시킬 뿐이다. 전쟁과 대량학살도 자국의 이익의 잣대로서 지원하고 외면하는 미국을 똑바로 판단할 때, 이 땅의 민주공화는 제대로 자리잡을 것이다. 외세에 의존하고 극우에 기대어 기생하는 수구친일잔재의 청산과 부와 권력의 공동 권력화를 감시하는 시민세력의 깨어남만이 우리가 이루어야 할 소중한 소망이고 진리임을 오늘 촘스키와의 대화에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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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세상에 대한 믿음을 100점 만점의 점수로 평가한다면, 나는 확신한다. 30~40점 사이에서 왔다갔다 할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난 보이지 않고, 보지 못하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이런 말을 본적이있다.
과학이란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보이지않는 것에서 법칙을 발견해야 한다. 보이는 것만 밝히는 것이 과학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나는 촘스키라는 세계적인 석학과의 대화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더 중요하고, 얼마나 더 핵심에 가까운 것인가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이를 감추려는 주류라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실제로 우리사회에서 계급투쟁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되었다.
자, 나는 여러분에게 이 책을 추천하려고 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3가지로 분류해서 길게 한번 써보겠다. 그래도 리뷰니까, 그럴듯하게 써보리라.
첫째, 저렴한 가격! 당신은 50%라는 할인율을 통해서 움직이는 대학을 경험하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얻게될 수 있다.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나는 더 좋은 지식과 더 알찬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편견을 지닌 채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정가의 50%라는 저렴한 가격을 통해서 얻게되었다. 사막에서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다만 나는 또다시 의심하고 있다.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싸구려 책으로 둔갑시킬까?".....
- 가격을 보고 책의 내용을 판단하게 만드려는 작전에 휘말리지 말고 선택하라!
둘째, 마치 똑똑해진 내가 촘스키와 함께 대화하는 듯한 기분..
대화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책에서 촘스키는 다양한 질문을 받게된다. 그는 자유자재로 그의 생각을 퍼부어낸다. 나는 그 하나하나를 똑바로 듣기위해서 필기하는 기분으로 이 책을 술술 읽어내렸다. 나는 촘스키를 만났고, 대화했다. 화려하지만,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의 단어선택에 경의를 표한다.
셋째,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리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것이 진짜 지식!
세상의 지식인은 2가지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현실을 주도하는 우파라고 불리는 주류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에 저항하는 좌파 비주류이다. 나는 이 관계에 대해서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고, 어떤식으로 사회적 현상과 사건을 바라봐야 할건지 새롭게 나의 사상을 세우게 되었다.
우리는 현실에서 수많은 문제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미디어와 방송, 교육 등 우리가 배우고 익혔던 방식으로만 현실을 인식하게 되고 순응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기울어진 우리의 인식방법을 조금은 균형잡히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당신에게 이 책을 집어서 당신의 장바구니에 담기를 추천한다.
세상, 복잡하다. 다양한 역사와 다양한 사람, 다양한 시대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 이 모든것들이 얽히고 얽히는 곳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나.....
단순히 한가지 방법으로만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면 쉽고 편하련만,,,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방법이 실제를 왜곡하고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09.9.1 incheon university 용가리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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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지난 해 국방부에서 지정한 불온도서 목록에 촘스키의 책이 포함되어 있었던 걸로 촘스키란 이름을 처음 접했다. 그러니까 이 분의 책도 결국 국방부에서 권장도서로 지정한 것이나 마찬가지 인셈이다. 하나같이 불온도서로 지정한 책들은 권력자들로선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는 책들로 이루어졌다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니...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다국적 거대기업과 강력한 정부, 금융기관과 국제기관들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맺으면서 강력하고 전제적이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람들로 하여금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언제라도 돈을 빌려주는 정겨운 은행이 있고,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 일꾼과 그의 아내를 돕기 위해 땀흘려 일하는 기업주가 있는 나라, 달콤한 미국식 생활방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나라,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고 조화로운 우리나라" 라는 거짓 메시지를 심어주기 위해 언론, 성직자,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스포츠, 학부모 모임, 교사협의회까지 활용되어 은연중에 수용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론과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언론기관과 홍보기관들이 총동원되고 있는 세상, 즉 ,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은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심어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들었다.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의 연대 등과 같은 위험한 생각을 잊게 만들어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하도록 만들어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오로지 대중의 각성과 경계 이외에 현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 미국은 완전히 범죄국가의 선두에 속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줄지어 따라가는 형국이고,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나 이 정부들어서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을 가져야하고, 그래서 알아야참여해야하고, 조직화해야한다는 것....... 텔레비전을 보더라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진실 그대로가 아닌 편집된 화면일 뿐, 사실 그자체는 스스로 유추해서 볼 수 있어야하는 것이고, 진실로 세상에 관심을 갖고 알아가는 데는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본다. 특히 국방부에서 읽지 말라는 것들로... 그 중 촘스키의 이 책은 세상의 진실을 지난 날 세계 여러 곳의 분쟁이나 정치적인 사건들을 예로들어 속속들이 해부해준다.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내게도 사회를 바르게 보는 힘이 조금은 커진 기분이들어 뿌듯하다. 욕심 같아서 온국민이 모두 읽어봤으면 싶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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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얼마나 진실에 접근해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했다. 지배 계급은 체제순응적인 지식인들을 동원해서 그들의 이념을 멋지게 실행시키고 힘만 있다면 법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러 사례를 들며 얘기 한다. 거대기업이 권력의 중심이고 외국에 투자되는 자본은 대부분이 경영지배권의 확보를 위한 돈이고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에 넘기려는 속임수일 뿐이라고 공감되는 사례를 들며 주장한다.
현실은 지식인들이 진실을 외면하는 사이 권력이 끊임없이 '동의의 조작'이라는 선전수법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하고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있다. 사회가 민주화될 때, 달리 말해서 국민을 강제로 통제하고 소외시키기 힘들 때 엘리트 집단이 선전이라는 방법을 동원하고 ‘인위적 욕구’를 만들어서 대중이 그 욕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들고 그 결과로 대중은 서로 소외되어 갈 뿐이다. 강대국들,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 금융기관과 국제기관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맺고 난폭한 강자가 되어 무기력해진 많은 약자들을 지배한다고도 했다. 촘스키는 지식인들이 본연의 사회적 기능인 진실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촘스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미국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럴듯한 가면에 숨겨진 본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책의 표지 소개글에 이 책의 저자 촘스키는 MIT 대학의 언어학 교수인데 세상이 그를 언어학자로만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철학 인지과학 심리학 정치 경제 역사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학문적 성과와 탁월한 성찰을 보여 왔고 세상의 왜곡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뜨거운 열정을 불살라 왔다고 쓰여 있다. 행동하는 지식인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편견과 음모로 얼룩진 권력의 중심을 후벼대는 독설은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이 책을 읽으니 얼마 전 통과된 언론 법이 걱정된다. 대기업이 언론을 장악하면 지금도 많은 부분이 그럴 텐데 보다 더 많은 일들이 강자에 유리하게 세뇌되고 왜곡되게 선전 되고 진실이 멀어질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군부대에서 왜 이 책이 금지도서가 되었는지도 이해가 된다. 힘 있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대단히 불리한 책이 분명하니까 우리나라도 보다 더 많은 행동하는 지식인, 행동하는 양심이 있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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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몇 가지 필수 작업이 있다. 정치권과 기업, 그리고 언론의 장악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다른 정당이 반대표를 던지면 수행할 수 없다. 따라서 정치권 장악은 정책 수행에 필수불가결하다. 평상시 정부는 기업을 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에 문제가 발생하면 국익을 위해 기업을 조정하기도 한다. 언론은 사건을 사실대로 신속하게 보도하는 것을 생명으로 여긴다. 그러나 정부는 모든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국민의 불안을 지나치게 조장하는 사건일 경우 적당한 선에서 보도하게 한다. 이상 살펴 본 것은 긍정적인 면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새정부가 출범하면 자신의 뜻을 잘 따르는 인사들을 주요 요직에 앉힌다. 그러한 정치권 장악을 좋게 본다면 위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정책 수행의 걸림돌을 최소화 하기 위함이지만 부정적으로 본다면 내 맘대로 정치를 하기 위함이다. 정부는 기업과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정부의 재산은 세금을 통해 얻지만 은밀한 자금 줄로 기업을 이용한다. 기업은 그 도움으로 더 많은 물질적 이득을 취한다. 언론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부도덕함이 모두 폭로되어 큰 지탄을 받고,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새정부는 기존의 언론사 중 몇몇을 자신을 대변하고, 옹호 할 심복으로 만든다. 국민의 입을 막고, 눈을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정치권, 기업, 언론 중 가장 중립적인 집단은 언론이다. 하지만 때론 가장 편향된 시각과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 부정적인 면에서 - 정부와 기업의 대변인 노릇을 하기도 한다. 왜곡된 선전을 하는 것이다. 사실과 여론을 조작하여 국민을 기만하고, 눈을 가리곤 한다. 기업은 이익 창출, 자신의 사익을 최우선 목표로 하지만 그것이 나라의 경제 발전으로 이어져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그것을 위하여 대부분의 나라, 거의 모든 대기업은 정부와의 결탁이 불가피하다.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순수한 힘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부의 도움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때문에 이따금 정부의 만행을 돕고, 지원한다.
이 책은 프랑스의 소설가 드니 로베르와 저널 리스트 베로니카 자라쇼비치가 촘스키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미국이 세계를 어떻게 지배하는지와 그 실상을, 지배 권력의 속성과 언론의 여론 조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을 담고 있다.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1928~ 현재)는 우리나라에 알려진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세계에는 이미 '언어학자'요, '최고의 지성인', 그리고 '미국의 살아있는 양심'으로 유명하다. 그는 80세가 넘은 고령에도 멈추지 않고, 지배 권력의 잘못을 호되게 비난하고, 그들의 감추어진 진실을 밝히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로 인해 무정부주의자 혹은 지나친 비판주의자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지만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지식인의 책무와 역할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과연 우리에게는 바른 소리를 내는 지식인이 있나 돌아보게 되었다. 지난 일제강점기나 독재 정권 시절, 그리고 5, 6공 시대에는 그러한 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어디로 갔는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때문에 참으로 특이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 재난이나 큰 핍박 떄에는 단결하여 한 목소리를 내지만 그 외에는 서로 으르렁대기 바쁘니 말이다. 요즘은 지식인의 책무가 참으로 절실한데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이 없어서 안타깝다. 그래서 나부터 더 열심히 공부하여 옳은 시각으로 바른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와 언론, 정부와 기업, 언론과 기업은 서로 상부상조, 공생관계를 맺는다. 서로 도와서 각자의 이득을 취한다. 그것의 감시는 지식인이나 시민 단체가 할 수밖에 없다. 일반 개인은 힘이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이따금 지식인이나 시민 단체도 그 세 집단에 굴복하곤 하는데 개인이야 더 말 할 필요가 있으랴!
국민 개개인은 절대 우매해지면 안 된다. 늘 깨어 지배 권력에 속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아래에서 노예 생활을 면치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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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촛불로 난리(?)가 난 적이 있다. 그 난리는 매우 센세이선을 일으킬 것으로 보였다. 서울 시청 앞의 대로 변에는 수 십만명이 모였다. 전국의 중소도시에도 꽤 많은 사람이 모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 정부는 몇 천 명의 전경을 풀어서 토끼몰이 사냥을 했다고 한다. 전경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아 댔다고 한다. 언론에서도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요란스러움이 지나간 후에는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 갔는가?. 그 난리는 허무하게(?) 끝났는가? 남은 것은 '촛불 집회'가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불리었다는 것과 오직 참여의 주동자들은 법대로의 심판을 받았을 뿐이라는 것인가?
자유민주주의의 대표 국가라는 미국과 유럽 연합에도 이런 난리는 얼마든지 있었다.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연금 개혁 때문에 파리 시내가 난리가 났다. 시민들의 행동과 정부의 대응은 대한민국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두 나라를 움직이고 지배하고 있는 무언가의 본질적으로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어떤 것이고 그의 본질은 무얼일지에 대해서 궁금해진다.
이 지구상에는 170여 개의 나라가 있다. 그 국가 안에는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경제적 계층이 구분되어 있다. 나라들 사이에도 강자와 약자가 있고 사람들 사이에도 그렇다. 유산자 계급과 무산자 계급 사이에는 공존의 의식도 있지만 경쟁과 갈등의식이 더 강하게 존재한다. 이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합리화하느냐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라도 일상화된 오늘날에는 일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이들의 규칙이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하나의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경우에는 조용한 균형의 관계가 깨지게 된다. 그 관계가 깨지는 과정에서는 많은 비인간적인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비인간화된 현상은 계속될 것인가는 하나의 궁금증을 던진다.
노엄 촘스키는 미국과 유럽의 민주주의에서 언론과 지식인의 역할과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비판적인 outsider이다. 때로는 그는 무정부주의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는 미국의라는 국가의 폭력, 신자유주의라는 탐욕으로 무장된 다국적 기업, 이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언론, 진실에 침묵하거나 지식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지식인의 숨겨진 얼굴을 세상에 공개하려고 합니다. 현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그의 거침없는 말들은 여과없이 전달되고 있다.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엄청난 권력을 지닌 개인 기업들이 서로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강력한 국가 권력에 의존하면서 위험과 비용을 분산시키는 체제이어서 아담 스미스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할 것이라고 한다.(p87 참고) '자본은 이동하지 않는다.'는 리카도의 자유 무역론이 형해화된 지는 오래이다. 자유 경쟁체제는 껍데기만 남았고 현재의 체제는 자본주의의 아버지들이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대체로 부패한 정부에서 시행하는데, 공공기업을 민간 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에 넘기려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의 정부의 역할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한다. 현실의 민주주의는 가짜라고 한다. '제3의 길'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세상을 염려하는 사람으로써 세상의 insider의 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거짓말을 폭로하고 그에 관련된 주역들과 꼭두각시를 구별하고 문제를 합리적으로 제기하고 현실적인 차원에서 분석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일련의 말들은 새삼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리 색다른 느낌으로는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렇게 고군분투를 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이렇게 떠벌리고 다녀도 다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에, 그는 엄청난 큰 행운을 타고 났다고 생각할 뿐이다. 역사적으로 인사이더의 아킬레스를 거드리고 다니는 사람들은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 역사에서도 그는 살아남았고 생명의 위협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는 것에 부러움이 절로 난다. 이게 미국 자유의 힘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는 현재 미국을 주름잡고 있는 장막의 세력과 同色인 유태인이다. 부모의 배경도 미천하지는 않다. 그는 인사이더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아웃사이더를 위한 아우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세상을 향해서 쓴 소리를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특히 '지식인의 책무'를 강조하면서 조국 미국의 기득권자를 귀찮게 한다. 언론의 자유는 모든 이에게는 그림의 떡이지만, 그는 엄청 큰 특권층임에 분명하다. 그가 만약에 대한민국에 있었다면, 그는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역사 속에서 조용히 사라지거나 모두의 지탄을 받으며 시끄럽게 교도소에서 몇 년은 썩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 자유라는 것도 우리의 헌법규범과도 어울리지는 않는다.
헌법 제1조에는 민주 공화국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은 현실에서는 맹탕인 규정이다. 모든 것은 시간따라 그냥 흘러 간다. 누구는 뒷산에 올라가서 그것을 보고는 많은 것을 반성했다고 했지만, 몇 달 전에는 그 때와는 전혀 다른 말도 했다. 법이라는 것은 인간이 하는 행동이며 기계로 표 찍어 내듯이 그냥 대량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것을 법치주의를 내세워 주물럭거리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것보다 쉽다. 더구나 수범자가 정해진 신분범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법은 제정자에게는 금상첨화이다. 다수당은 행정부의 거수기로 전락한 지금에는 국회에서 입법과정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주요 방송은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이 이데올로기로 몰아가면 정말로 쉽다. 이 한바탕의 리얼리티 쇼에는 익명의 여러 사람이 나온다. 촛불 난리를 일으킨 사람들, 반성했다가 반성을 하지 않은 사람, 전경, 언론이 등장 인물이다. 지식인은 두 편으로 나뉘었다. 세상은 그대로였는데 요란하기만 했다. 권력과 언론과 지식인과 촛불들은 숨바꼭질만 했다. 누가 잡힐 지는 시간만으로는 해결해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