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칸트의 도덕 철학이 새롭게 관심을 끄는 이유는 20세기 들어 인류가 겪었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20세기 초반에 유럽을 휩쓴 전체주의의 광풍이 저지른 악들은 보편적 이성과 보편적 자유에 근거하지 않은 법과 권력이 얼마나 인간성 자체에 위협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많은 철학이 전체주의자들에 의해서 이용되었지만, 인간성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의 본질을 이성적 사유와 자유에서 찾는 칸트의 실천 철학은 그런 전체주의 사상에 결코 섣불리 이용될 수 있는 철학이 아니었다. (중략) 칸트의 사상을 부정하든 긍정하든, 모든 인간에게 타당한 그 무엇을 찾는 사람이라면 그의 사상을 지나칠 수 없다. 그래서 칸트 연구자 로저 설리번은 이렇게 말한다. "칸트 이후 철학자들은 그에게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칸트를 논하지 않고는 더 이상 철학을 할 수없게 되었다.

(해설, p.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