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한 소설. 처음 얼마쯤 읽었을 때의 느낌이었다. 핵전쟁 후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구도 자체가 퍽 특이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나온 책이나 영화들은 핵전쟁 전의 긴박한 상황이나 사건들을 그리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 소설은 서술시점이 핵전쟁후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핵폭발이라는 '사건'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새로운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의 삶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말빌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사는 성의 이름이다. 최후의 생존자는 단 일곱. 나중에 다른 생존자들이 더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어딘까지나 말빌의 주민들이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절망과 좌절을 희망으로 바꿔나간다. 그 희망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엠마뉘엘이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다시 미래를 향한 희망을 일구어 나간다. 미래에 대한 희망없이는 현재도 없다는 것이 엠마뉘엘이 터득한 지혜다. 친근한 친구이자 냉철한 지도자로서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그의 모습은 이상적인 지도자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낙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관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말빌' 공동체는 조금씩 조금씩 발전을 이루어낸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 이 소설의 함정이 있다. 등장인물들 전체가 너무나 착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은 매우 도덕적이고 절제력도 강하며 다수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다. 이기심도 거의 없고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주려고 노력한다. 도대체 이런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가능한가? 작가는 이런 구도를 통해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상황을 상기시키려고 한 것은 아닐까? 우리의 현재는 어떤 모습이고 지향점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말빌'의 이야기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말빌'에서의 유쾌한 모험,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고전적 명제를 재확인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 속에서 반전과 반핵의 의미도 찾을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인간 자체에 대한 생각을 할수있게 하는 의미가 더 강하다 하겠다. 아무튼 말빌이라는 공동체가 나 자신과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곰곰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
|
「흥미진진한 이 책은 난파당한 사람들과 무인도의 고전적인 주제에 관한 이야기다. 덧덧덧덧, 이 작품은 1996년에 두 권짜리 <말빌>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음. 출판사는 '책세상'.(한 가지 특이한 것은, 1996년판 초판본에서는 "<말빌>은 공상과학소설의 기본적인 주제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나 공상과학소설은 전혀 아니라고 할 수 있다."라는 해설이 있는데, 2002년 개정판에서는 "SF소설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최후의 성 말빌>"이라며 책소개를 하고 있다. 흠, 그새 SF에 대한 인식이 바뀐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