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가 나오기 전에 책을 먼저 읽었거든요.. 황금가지에서 나온 반지의 제왕 이었는데..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가 꼭 사고싶어 황금가지의 책을 찾았는데 모두 절판이더군요 그래서 씨앗을 만드는 사람들에서 나온 전집 세트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받아보고는 실망이 크더군요.. 특히나 고유명사에 대한 번역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스트라이더를 성큼걸이로, 백엔드의 빌보를 골목쟁이네 빌보로..우리말로는 그런뜻들이 되겠지만 고유명사를 그렇게 번역해 놓으니 우스꽝스러워서 책을 다시 반품할까 하는 생각에 상당히 고민스럽습니다. 굳이 좋은 점을 꼽자면 부록을 황금가지의 책과는 달리 따로 만들었다는 점이구요.. 저처럼 등장인물 한사람 한사람에 큰 매력을 느끼시는 분이 아니라면 괜찮은 책인것도 같습니다. 책 구입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 해리포터와 마찬가지로 영화로 보고 책을 읽게 된 소설이다. 사실 난 영화를 무척 재미없게 보았다. 요정족이니 난장이족이니 그런거에 전혀 관심없었던 내가 무작정 영화라고 보러 갔으니 내용도 이해 못하겠고 뭐가 재미있는지 몰랐었다. 역시나 판타지물은 별로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을 선물 받았다. 6권의 책을 보면서 한참이 지나서야 읽을만한 책이 없었을때 그때서야 집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집어드는 순간, 나는 '반지제왕'의 포로가 되버렸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영화를 보니 내가 이해하지 못한부분들이 술술 풀려나가자 지루했던 이야기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로 변하는것이었다. 확실히 해리포터보다 반지제왕이 더 깊이가 있는 판타지물같다 |
| 번역자의 목적은 그 책을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는 것이다. 다행히 생전에 톨킨 교수는 자신의 책을 번역할 때에 지침할 번역 가이드를 작성해 놓았다. 이 책은 최초로 그 번역 가이드에 따라 제대로 번역한 유일한 번역본이다. 배긴스가 골목쟁이라고 번역한 것은 옳다. 왜냐하면 톨킨 교수가 Baggins는 골목과 관련된 그런 번역을 원했기 때문이다. 골목쟁이는 골목의 고어이고 또한 뒤에 붙은 쟁이란 말은 아시다시피 사람의 행위 같은 것을 뜻할 때에 붙이는 접미사다. 그런 의미에서 골목쟁이란 번역은 중의적이면서도 원래 뜻을 잘 살린 번역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왜 이렇게 이 소설에서 성의 번역까지 이루어져야 하는가? 바로 이 책이 판타지 소설이기 때문이다. 일반 생활에서 미국 대통령을 덤불숲 조지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판타지 소설이다. 판타지 소설에서는 주로 무기, 모험, 자연물 같은 쉬운 단어들이 주로 주인공의 성을 이룬다. 그래서 독자들은 주인공의 성이 왜 붙었는지 알게 되어 주인공의 직업이나 성격 등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난쟁이 참나무방패 소린은 고블린들과의 싸움에서 방패가 부러지자 옆에 있는 참나무를 꺾어서 방패로 쓰면서까지 혁혁한 공을 세웠던 소린을 칭송하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라고른의 별명인 성큼걸이는 그를 얕보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맨 처음에 그는 황야의 순찰자로 보잘것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실 그의 정체는 왕의 후예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스트라이더가 왕이었다니!" 라는 표현은 독자들에게 그리 감흥을 주지 못한다. 스트라이더가 무슨 뜻인지 쉽게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큼걸이가 왕이었다니!" 라고 말한다면 독자들은 아라고른의 변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성큼걸이는 아라고른의 초기의 그리 대단하지 않은 모습을 잘 드러내 주는 별명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것이 번역되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로는 이 영어로 된 원서조차도 번역물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톨킨 교수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소설들은 호빗 빌보와 프로도가 남긴 경험담을 자신이 영어로 번역한 거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실제로 톨킨 교수는 수많은 영어 단어들을 조합해서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만들어 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빌보 배긴스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또 다르다. 어디에서나 빌보는 빌보이지만 배긴스라는 성은 프랑스에서나, 독일에서나 다 다르게 번역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도 빌보 배긴스의 프랑스 어 판 이름이 나오므로 참고 바란다. 그러므로 이 판본은 현존 최고인 황금가지 판본보다 더 공을 들인 작품이라 하겠다. 물론 일본어 판을 영어 원서 한번 제대로 안 보고 그대로 중역한 동서문화사 판과는 비교가 안됨은 물론이다. 앞으로 이 출판사에서 톨킨 교수의 나머지 작품, 실마릴리온이나Unfinished Tales 같은 작품들이 출간된다고 하니 기대되는 바가 아닐 수 없다. |
| 영화와 함께 새로운 옷을 갈아입은 반지의 제왕. 칙칙한 표지에 번역도 엉망인 황금가지판보다 씨앗판 반지의 제왕은 영화스틸에 제대로된 번역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간혹 상업주의에 책 표지를 영화 스틸로 바꿨다는 매니아들의 비난도 있지만 출판 역시 판매를 하기 위한 상업 행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는다. 문제는 책 표지가 아니라 실제 독자들이 톨킨의 문학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황금가지판에서는 다소 난해한 문체로 독서의 흐름을 제한한 반면 씨앗판은 옛 예문판의 저자들이 다시 모여 문장을 손질해 매끄럽게 이어간 측면이 있다. 여기에 톨킨의 번역지침을 충실히 따라 고유명사의 번역을 시도한 점은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줄 수 있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많은 독자들의 의견 교환이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황금가지가 책 판매를 위해 스스로 책을 덤핑 처리하여 출판계의 유통을 교란한다는 비난이 있다.(손석희의 시선집중 12월 13일 방송) 얼마전 한 신문에서는 저작권을 포기했으면 깨끗이 승복하여 정정당당한 경쟁을 벌일 일이지 오히려 서점측을 압박하여 대량으로 밀어 넣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아무쪼록 씨앗은 부화뇌동 하지말고 정직한 출판사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
| 저는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우리정서에 맞게 번역에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배긴스같은 고유명사는 그대로 쓰는 것이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전한다고 생각됩니다. 영어의 man을 한글로 '사람'이라고 번역을 한다해도 두 단어의 의미는 똑같다고 할수 없습니다. 문화적 언어적 차이때문이죠. 그리고 밑에 밑에분 아라곤이 처음에 스트라이더로 나온게 얕보기 위해서 붙혀진 이름이라는게 근거가 있는것인지.. 아라곤은 처음에 스트라이더로 나오는데 판타지용어(?)로 말하면 ranger쯤 되겠죠.. 사냥과 추적에 능숙하고 요정만큼이나 빨리 이동할 수 있는.. 그래서 성큼걸이 라는 재미있는 번역이 나온 것이겠죠.. 새로운 시도가 좋긴 하지만 저는 원작의 느낌이 훼손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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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빨풍입니다. 이 책은 총 5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분량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다른 판타지 소설에 비해 결코 긴 분량은 아닙니다. 하지만! 완독에는 통상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리는군요. 이 위대한 책을 읽으며 떠올린 첫 번째 단어는 ‘인내심’이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위킹 푸어’를 읽으면서 한달여를 가슴에 참을 인자를 새기던 기억과 묘하게 겹치는 상황입니다. ‘워킹 푸어’는 인문학 서적이라 그렇다고 치고, ‘반지 전쟁’은 소설, 그것도 판타지라는 장르 소설인데도 말이죠. 물론 총 시간은 워킹 푸어에 비해서 덜 걸렸습니다만 받은 느낌은 비슷합니다. 그래도 한번 탄력을 받기 시작하면 꽤 빨리 읽어 지는데, 이 발동이 늦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건 아마도 사건 전개가 느린 템포로 진행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독자의 흥미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건 전개를 빠르게 진행하는 편입니다.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배제하고 상황 설명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반지 전쟁’은 ‘이건 스토리에 필수적인 대사가 아닌데? 좀 빼도 간결해지고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상당히 보입니다. 장면의 묘사도 매우 세세하고 장황합니다. 어느 분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오디세이를 읽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하시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이 대서사시의 위대함과 유명세를 불구하고도 실제 완독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반지 전쟁’이 비슷한 경우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위대한 중간계의 서사시는 일반 판타지 소설을 읽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새로운 세계의 역사를 접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좀 더 완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꺼운 인문서적을 완독했을 때와 비슷한 즐거움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가 있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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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부터 환타지 세계에 조금은 심취해 있던 나로서는 이 작품을 빼놓을 수가 없다. 물론 방대한 분량에 읽는 것을 포기했었지만 군대에서 남는 게 시간이라는데 이 정도 못 읽을까?
1960년대에 쓰여진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스케일과 엄청난 상상력이 어우러져 환타지 매니아라면 정말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이다. 지금 환타지가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는 장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작품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할까?
누군가 수학을 공부할 때 정석을 보라고 한다면 나는 환타지를 알고자 한다면 반지의 제왕을 먼저 읽어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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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src=http://www.lordoftherings.net/legend/gallery/images/hobbiton/hobbiton8.jpg"> 최고의 판타지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세계에서의 일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하여 독자로 하여금 그 세계에 빠져들게 하고 흥분시키게 하는 문학장르를 말한다면 나는 이 책에 가히 만점을 주고 싶다. 작가가 창조한 ‘가운데 땅’ 이라는 세계, 그 땅에서 살고 있는 인간을 비롯한 마법사, 엘프, 호빗 등 수많은 종족, 그들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언어, 인간뿐만이 아니라 말이나 풀 따위의 동식물을 포함하는 모든 생명체의 역사나 계보의 창조. <실마릴리온>, <호빗>에서부터 <반지의 제왕>에 이르기까지 톨킨이 창조해낸 세계는 단순히 판타지 세계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도 형태만 약간 변형된 채 그 법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일단 Quenya, Sindarin 등의 문자?언어체계를 만들어낸 그의 언어학적인(단순한 음운론을 논하는 것이 아닌, 언어에 녹아 있는 역사와 관습까지도 아우르는 말로 하나의 '언어'를 만들었다는 것은 대충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하는 알파벳 몇 개를 만들어낸다는 암호학적인 의미로 국한될 수 없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한마디로 ‘엄청나게 대단한’) 깊이 있는 접근과 애정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동기이고 목적이며 여정을 이끌어 나가는 '절대반지'는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지니고 있는 이의 탐욕을 부추겨 마침내는 타락하게 만드는 엄청난 악의 힘을 가지고 있다. 반지를 갖고 있던 자들(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스로 반지를 포기한 빌보 배긴스를 제외하고)은 모두 파멸의 길을 걷게 되며 하나같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과 어두움을 본다. 하나하나 설명을 다 하지 않더라도, '탐욕'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도 '절대반지'의 존재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척이나 크고 하나의 문학적 장치로서 훌륭한 구실을 하고 있다.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프로도를 비롯한 아홉 명의 반지 원정대가 싸우는 상대는 악을 상징하는 사우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느낌을 잘 살렸다고 본다. 반지 원정대에서 프로도가 겁먹은 눈으로 아라고른에게 당신 자신으로부터 날 지켜줄 수 있느냐는 그 대사만큼 ‘절대반지’의 속성을 잘 나타내주는 말이 있을까. 절대반지가 요정 왕들이 가진 세 반지와 드워프의 군주들이 가진 일곱 개의 반지, 위대한 인간 왕들을 타락하게 만든 아홉 반지를 지배하는 반지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반지를 갖고 있으면 탐욕과 집착의 마음이 커져서 마침내 스메아골처럼 반지에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설정이야말로 '절대반지'의 매력이 아닐까. 그냥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모험을 하면서 온갖 괴물을 만나고, 다른 종족과 타협하고 우정을 나누는 정도였다면 여타의 평범한 모험소설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우정'이 중요시되는 것은 우정은 '본능'을 누르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로리엔의 갈라드리엘이 강조했던 것처럼 '절대반지'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탐욕을 누르고 끝까지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결국 신념과 우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권력'을 가진 물건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나라면 운명의 산꼭대기에서 유혹을 뿌리치고 불구덩이 한가운데로 반지를 던져버릴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 '선'과 '이기심', 그리고 '탐욕'에 대해 생각하고- 인간의 나약함(유혹에 굴함)과 강인함(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김)을 깨닫게 되는,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절대반지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고통스런 내면의 싸움을 하고 있는 프로도가 되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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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The return of the king)이 개봉되었다. 본인같은 경우는 괜찮은 영화가 개봉되면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혼자 영화관에 가는 케이스다.(참고로 백수는 아니다. 캐나다 유학생이다)
반지의 제왕은 내 평생 가장 감명있게 본 영화이어서 이번 마지막 편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지 않았다. 영화표를 끊으며 직원에게 얼마나 기냐고 물어보자 3시간 45분정도란 소리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말을 들으면 지루함을 느낄지 모르겠으나 왠지모를 뿌듯함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본인이 반지의 제왕책들을 읽은바에 의하면 영화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부분, 혹은 스토리상이 영화와 책과는 상당부분이 달랐다. 물론 영화를 4~5번 가량 반복해서 보다보니(볼 기회가 많았다;;) 피터잭슨의 상상력과 원작의 충실함에 대한 노력은 감명을 받았지만 역시 세기의 대서사시를 영화로 완벽하게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가령, Two towers영화에서 프로도일행, 프로도,샘,골룸이 파라미르에게 붙잡혀 곤도르의 폐도인 오스길리아스까지 끌려가고 파라미르가 약간 보로미르 비슷한 이기주의자로 묘사되는 반면, 원작에서는 파라미르가 프로도와 샘을 최대한 도울수있는한까지 도와준다.(물론 골룸은 불신한다) 가장 인상깊게(^^?) 달랐던 점은 나팔산성, Helm's deep의 전투에서 숲의 여주인, 갈라드리엘이 할디르를 장군으로 상당수의 사수를 인솔하고 오지만 원작에서는 절대로 그런 엘프군대는 도우러 오지않을 뿐 더러, 이건 그렇게 중요하진 않지만, 로리엔의 할디르(Haldir the lorien)는 공용어를 쓸줄아는 평범한 엘프이다. 또한 헬름의 전투에서 원작에서는 팡고른의 후오른들이 헬름을 공격하는 오르크들의 뒷톨수를 때리지만 영화에서는 스킵되었다. 여기까지는 대표적으로 2편에서 다른 점들이고. 3편 영화에서 하나 가장 크게 아쉬웠던점은 간달프와 앙그마르의 마술사왕,lich king,의 곤도르 성문앞에서의 결투를 담지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아쉬웠던것은 샤이어전투를 영화에서 담지않은것인데 이건 충분히 납득할수 있는것이다. 아마 그것까지 넣었다면 영화는 상당히 길어졌을테니까. 나는 몇몇사람들이 왕의 귀환에서 왜 호빗들이 샤이어로 돌아가는 것까지 담았는지, 왜 곤도르의 성수앞에서 모든이들에게 호빗들이 절을 받는 장면에서 끝내지않아 관객들을 짜증나게 만들었냐는 평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나중에 프로도를 비롯한 요정왕들,간달프, 다시말해 가운데땅을 지도하던 이들, 그들이 가운데땅을 떠나는 의미는 반지의 제왕, 톨킨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은 세상이 만들어지던 시절, 발라들이 맹세를 하고 가운데땅을 지키기위햐 파견되었던 것(물론 몇몇 발라들은 타락하고 말았다), 어둠의 제왕 모르고스 (사우론은 그의 똘마니에 불과했다)와 벨렌과 루시엔의 아름다운 사랑,(참고로 실마릴리온을 안 읽으신 분들에게는 죄송하다. 이들은 아라곤과 아르웬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칭송받는다.훗날 톨킨사후, 톨킨의 묘비에는 벨렌, 그의 아내의 묘비에는 루시엔이라 적혔다고 한다.) 그들이 신의 보석, 실마릴을 차지하기위해 어둠의 마왕 모르고스와 벌인 전투들, 그들의 비극적인 결말...사우론이 살아있어 가운데땅을 점거하고 있을때 그를 정벌하기 위한 서쪽나라의 위대한 황금왕 아르파라존의 상륙, 사우론이 부활하여 3개의 반지를 요정왕에게 선물하고 6개의 반지는 전당의 난쟁이왕들에게. 9개의 반지는 훗날 사악한 나즈굴이 되는,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왕들에게 선물한뒤 절대반지를 주조한일. 그 사실이 폭로되어 벌어진 1차 반지전쟁. 희망이 없던 가운데 땅에 서쪽나라의 누메도르인, 엘렌딜과 그의 두 아들이 군대를 이끌고 엘프들과 마지막 동맹을 맺은일, 이실두르가 그의 손가락을 잘라 사우론을 파멸시킨뒤 '이실두르의 재앙'이라 불리는 죽음을 맞을일, 친구를 살해한뒤 절대반지를 차지한 스미골,스미골을 버린 반지를 찾아낸 빌보, 빌보의 모험담후 마침내 프로도에 이르는 장대한 선과 악의 전투가 가운데땅에서 종결되었음을 의미한다. 마침내 가운데땅의 오르크,마왕,슬픈일이지만 엘프들의 운명은 종결되고 인간의 세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글을 쓰다보니 너무 길게 나열한것 같아 죄송하다.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영화는 역시 영화나름대로는 웅장함,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투신들은 경이롭다 할만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기술이 발달하는 것을 느낀다. 주인공들의 운명, 그들의 행위를 눈으로 볼때의 기분이란!. 그라나 역시 톨킨의 영화속 비하인드 스토리들, 어떻게 해서 어떻게 되었고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것은 필수적이라 할수있겠다. 책이 길어서 지루하다? 본인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적어도 톨킨의 대서사시에는. 따분한 하루, 세기의 걸작을 읽은후 영화를 빌려와 '아, 저게 저거로구나' '저게 바로 저거로구나!' '내가 상상한것과 비슷하구나, 혹은 굉장하다, 어떻게 저걸 찍었을까'등등의 자기성찰(^^;;)을 하며 현대인들에게 필수적인 창의력을 길러보는 것은 어떨지. 꼭 창의력을 길르지 않아도 하루하루 짜증나는 이 일상을 벗어나 자신이 상상한 세상과 영화를 보며 뿌듯함을 느껴보는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맺는다. [인상깊은구절] '돌아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