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을 꼼꼼하게 챙겼다기보다는 작가의 이름만 보고 고른 책이기 때문에 뒷표지의 'EDGA ALLAN POE AWARD NOMINEE' 라는 문구를 보고 약간 놀랐다. 그렇다. 이 책은 탐정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미스테리가 있고 그것을 푸는 탐정이 있다.이 작품의 홈즈는 13살의 중학생 코너 케인이고 왓슨 박사는 코너의 이복누이 마가렛이며, 그리고 의뢰인은 코너의 단짝친구 브렌웰이다. 코너는 되도록 빨리,브렌웰이 이복동생 니키를 혼수상태로 빠지게 한 '범인'이 아니라는 걸 밝혀내야만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브렌웰이 아빠의 갑작스러운 재혼과 새로 태어난 여동생 사이에서 질투심을 보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니키의 보모의 증언은 브렌웰에게 지독히도 불리하다.과연 코너와 마가렛은 브렌웰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 문제는 브렌웰이 니키가 혼수상태에 빠진 그 날 이후로 말을 잃어버렸다는 점. 그 누구와도 의사소통을 거부한 채 juvenile behavioral center에 격리된 브렌웰에게 코너는 직접 만든 플래쉬 카드를 펼쳐 보이며 '대화'를 시도한다. 브렌웰이 최초로 택한 카드에는 '마가렛'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이렇게 해서 코너의 '수사'는 이복누이 마가렛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책은 탐정소설이며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담고있다.하지만 그것은 '누가 범인인가? 아기를 해친 것은 누구인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왜 브렌웰은 침묵하는가?'이며 코너는 친구의 침묵이 서서히,뚜렷하게는 사건이 일어나기 약 한달 전부터 시작되어왔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면 왜 침묵인가? 왜 브렌웰은 침묵했던 걸까? 마가렛의 이야기를 통해 밝혀지는 속사정은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 마가렛은 거의 10여년 전 어느날 저녁을 생생히 기억한다. 아빠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날을. 결국 엄마와 자신을 '버린' 아빠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어른들의 사정이란 열두세살 정도의 아이에겐 중요하지 않다.오직 버려졌다는 배신감과 상실감,아주 오래가는 깊은 상처만 남을 뿐. 본질적으로 똑같은 일이 브렌웰에게도 일어났다. 새엄마의 등장과 멀어진듯한 아빠.그리고 새로 태어난 아기. 진정한 가족이 되고싶어했던 브렌웰의 마음은 제대로 전해지지못하고 거부당한다.홀로 버려진 듯한 외로움. 소외감. '침묵'의 시작. 그러므로 코너와 마가렛이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브렌웰의 침묵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침묵은 때론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용이었다가 의도적이었건 아니건간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공격적인 것으로 변하기도 한다.용기가 없어서 침묵하기도 하며 죄책감으로 인해 침묵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 위에 브렌웰은 니키를 위해 침묵할 이유가 또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책은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가렛과 아빠가 서먹서먹해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습. 친구와 이복 누이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는 코너의 모습.그리고 브렌웰 가족들. 새로이 확장되며 회복되는 관계들. 마가렛의 표현대로 사랑-혹은 가족(인간)관계-는 아름답고 순수하며 극도로 정교한 상아세공과 같다.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선 사려깊게 돌봐줘야만 한다. 방치해둔다면 그것은 때가 타고 깨져나가 더이상 최초의 그것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더러움은 닦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조각난 상아세공을 다시 이어붙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의 결말은 바로 그 어려운 작업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상대의 침묵에 귀기울이고 나 자신의 침묵을 깨버린다면. 뼛속깊이 잠식한 침묵을 깨버리고 크게 외친다면. 마지막으로 노파심에서 한마디 덧붙이고싶다. 이책의 어휘나 문장 수준은 쉬운 편이지만 아무리 영어를 잘 한다해도, 또 아무리 코닉스버그를 좋아한다해도 초등생들에겐 그다지 권하고 싶지않다. 일정 정도의 이해력을 요구하는 내용도 그렇고, 사춘기 소년의 성적인 매혹과 수치감을 다루는 부분도 그렇고. 물론 그저 단순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덧말> 브렌웰이 코너에게 마음을 연 이후로도 플래쉬카드에만 매달리는 이유는 뭔지? 연필과 종이는 다 어디에다 쓰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