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째 그 자리에 있다. 조금씩 먼지가 쌓여간다. 가끔 눈길을 주곤 하지만 흔들리는 눈빛을 이내 다른 곳으로 돌린다. 차마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물론 읽을 작정으로 샀다. 그것도 대충의 줄거리를 이미 알아버린 상태에서…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나는 그를 사랑했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나는.. 나는 그를 사랑했네.. 그 사랑이 이제 담담해지기를 더 이상 마음 졸이지 않기를, 마음 아파 하지 않기를 주문처럼 바랬다. 아직 효과가 없는 주문탓에 흔들리는 마음인 상태로 그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겐 그 마저도 모험인 셈이였다. 그 책으로 인해 기껏 외면해온 내 감정이 휘저어지기를 원치 않았으니깐.. 난 한낱 책 한권으로도 더 슬퍼질까 겁이 날 만큼 용기가 없었다. 소설 속 그 남자도 용기가 없었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지만 자신을 내던질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그 여자 역시 그 남자를 미치도록 사랑했지만 그들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것이였기에 언제나 뜬구름 같았다. 일상이 빠진 사랑은 그 여자를 지치게 했고 남자는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여자를 잡지 못했다. 여자는 사랑한다면서 남자에게 자신을 놓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랬다. 번잡한 세상살이와는 무관할 것 같은 순수한 사랑마저도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가 될 수 없다면 그 시작은 비극으로 가는 예정된 티켓과도 같이 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에도 무수히 많은 조건들이 만족되어야만 한다. 조건없는 순수한 사랑이란 허울좋은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 속 그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그 자체만으론 지극히 순수하고 열정적이지만 그것이 불륜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들의 사랑이 순수하다며 돌을 던지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사랑은 예기치 않게 닥치는 교통사고와도 같다고 한다. 그 사고로 내가 얼마나 다칠 지 예상을 한다면 아예 차 근처에도 가지 않고 살아가야 할까? 내가 그 남자와 같은 경우가 된다해도 아마 같은 결정을 했을 것 같다. 평생을 그 사람을 잊지 못하며 후회를 하게 된다 해도 말이다. 사회적 책임과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는 윤리의식이 살아가는 내내 너무나 강하게 자신을 얽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비하면 사랑이라는 건 순간적인 감정일 뿐이라고, 감정적이기 보다는 이성적 인간이 잘 사는 방법이라고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상이 빠진 사랑… 앞이 훤히 보이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랑이 얼마나 사람을 공허하게 하는지 뼈저리게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받는 관계에서만 행복할 수 있는 감정인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결국은 서로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생채기만을 남기게 된다. |
| 최근 내 정신은 온통 안나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에 집중되어 있었다. 출퇴근시간과 점심시간(애써 점심시간을 온전히 확보하고서) 심지어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까지도 이 책에 몰두했다. 실선을 그리는 삶과 점선을 그리는 삶 중에 어느 것이 더 행복할까? 일상을 공유하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불륜 끝에 자신의 고통을 택한 아버지와 남겨진 가족에게 상처를 주면서 미련없이 떠난 아들..모두 불륜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두 경우 모두를 외도로 치부하기에는 관계되는 구성원에 대한 책임의 한계를 제법 무겁게 생각하게 한다. 새로산 집과 '부부'라는 틀로 묶여 관계된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없어 남편을 용서하는 시어머니와 모범적인 아버지와 남편의 지위를 포기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시아버지, 어느 날 불쑥 찾아 온 젊은 여인을 쫓아 조강지처를 버리는 아들, 그리고 남겨진 며느리.... 이 소설은 실선과 점선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끝까지 이어지는 실선은 일상을 공유하지만 신선하지는 못하고, 일상을 공유하지 못하는 점선은 아쉽다. 비극은 실선과 점선을 모두 살 수 없다는 것이고, 어느 것이 더 행복한지를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이 고통일지라도 우리가 고통을 사랑하는 까닭은 고통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감내하는 까닭은 몸이 말라 비틀어지고 영혼이 꺼멓게 탈진할수록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지속적인 냄새를 피우기 때문이다.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집요한 냄새를 피우기까지 우리의 사랑은 의지이다 태풍이 불어와도 떨어지지 않는 모과 가느다란 가지 끝이라도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의지는 사랑이다 오, 가난에 찌든 모과여 亡身의 사랑이여!" 김중식 <모과>전문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난 김중식 시인의 <모과>를 생각했다.‘몸이 말라 비틀어지고 영혼이 꺼멓게 탈진’하도록 지속되는 의지의 사랑은 이제 미덕이 아닌가? 고통을 감내하는 집요한 향기는 더 이상 이 시대를 대변하는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뚜렷한 결론이 없는 이 소설(오히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게 하는)을 읽으면서 깨어지는 모든 사랑에 '행복'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남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드물게 시원하게 읽히는 책이었다. |
| "엄마랑 아빠랑 언제가는 다시 사랑하게 되는 거야?" "아니."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하긴, 난 벌써 그런 줄 알고 있었어..." 안나 가발다의 <그녀를 사랑했네>는 이혼의 위기에 서 있는 클로에가 시아버지와 가까워지면서 그의 감추어진 '사랑이야기'를 듣게 되는 내용이다. 세 아이를 키우는 클로에는 남편에게 새로 생긴 여자때문에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데, 흔들리는 삶의 가녀린 모습과 그 삶을 다잡으려는 안타깝지만 강단있는 그녀의 모습이 시아버지의 '사랑'과 겹쳐져 보는 이를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안나 가발다는 이혼의 기로에 선 여인에게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클로에는 남편을 사랑했지만 그는 더이상 그녀가 알던 그가 아니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때 많은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인 공항과 복받치는 슬픔을 안나 가발다는 섬세하고 재기발랄한 문체로 조근조근 이야기를 건넨다. 이 책의 매력은 새로운 사랑에 눈 뜬 남편때문에 이혼을 결심한 그녀가 무뚝뚝하고 매정하게 보이던 시아버지의 감추어진 사랑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정리해나가는 조금은 특이한 플롯을 선보인다. 남편에게 다가온 사랑이 그녀에겐 절망이 되지만 아무도 몰랐던 시아버지의 사랑은 그녀에게 절망을 이겨나가는 힘이 된다. 속된 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구닥닥다리 멘트가 이 책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삶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것을 앞서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욕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아버지의 사랑은 흔히 스쳐 지나가는 바람으로 볼 수 없는 묘한 울림이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을 버릴 수 없었고 그를 사랑했던 마틸드는 누가 보기에도 매력적인 여자이기 때문에 그 둘의 사랑이 타인에겐 지독한 아픔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긍하게 된다. 안나 가발다는 영리하게도 편파적으로 한쪽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자와 그 사랑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의 감정을 모두 맛볼 수 있게 배려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독자는 '사랑'이라는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또 이상하게도 삶에 대한 의지로 나아간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는 명백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외피를 감싸는 행복에의 의지 또한 강렬한 힘을 발휘하는데, 클로에와 시아버지의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감정의 교류가 빛을 발휘하는 흐뭇한 책이다. |
![]() 얼마전 영화 <라스트 나잇>을 보고 나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사실 의도했던 건 아닌 우연이였을뿐, 이웃 블로그에서 우연히 알게된 책이여서 호감이 가기도 했고, 얇아 금방 읽히겠다는 생각에 구입했다. 리뷰책들을 잔뜩 쌓아놓고도 이 책을 집어들었던건, 요 며칠 지끈거리는 몇권의 책을 연이어 읽은 탓에 조금은 가볍고, 난해하지 않은 책을 읽고 싶었을 뿐. 금방 읽을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여전히 200페이지 남짓한 이 책한권도 4일씩이나 잡아먹고 마는구나.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집을 나간 남편 때문에 슬픔과 절망에 빠진 클로에는 시아버지(피에르)의 권유로 어린 두 딸과 함께 시골 별장으로 내려간다. 시아버지는 평생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도 늘 거리감이 있는듯하다. 늘 가족들에게 냉정했고 차갑고 무뚝뚝하기만한, 그리고 일밖에 몰랐던 성실하기만한 사람이였다. 그런 시아버지의 호의가 클로에는 달갑지 않다. 어쩔수 없이 시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별장에 간다. 그곳에서 며칠을 보내던 어느날 시아버지와 클로에는 마주 않아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번도 자신의 마음을 , 자신의 이야기를 한적이 없는 시아버지의 이야기가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찬 클로에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왜 내가 답답한 늙은이라고 생각하지?"/"아무도 사랑하지 않으시니까요. 아버님은 마음가는 대로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법이 없어요. 단 한 번도 우리들 속에 들어오신 적이 없죠. 우리의 대화, 우리의 바보 같은 짓거리에 동참 하신 적도 없고, 우리의 보잘것 없는 잔치에 끼신 적도 없어요. 아버님은 단 한번도 자상한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어요.언제나 입을 꾹 다물고 계시지요. 아버님의 과묵함은 우리를 무시하거나 경멸한다는 느낌을 줘요. 또... "(72쪽) 가족에게는 늘 이렇 존재로 느껴지는 시아버지는 며느리(클로에)와의 대화에서 그의 또다른 모습은 어쩌면 본 모습, 말하지 않음에 표현하지 않음에 가족들이 몰랐던 피에르(시아버지)의 모습을 모두 토해내는듯하다. 피에르가 며느리 클로에에게 하는 대화를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이 찡하게 아려오는듯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라고 치부하고 생각해온 가족들에게 차가운 냉대를 받은 긴 세월동안 피에르는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처음 이 책을 집어들었을때 사실 몰입이 되지 않아 살짝 애를 먹었다. 뜬금없이 시작되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클로에의 대화에 적응하기도, 내용을 이해하고 파악하기도 꽤 시간이 걸렸다. '이게 무슨 내용이야?' 갸웃거리며 읽어내려갔지만, 200페이지 남짓한 이 소설 한권은 점점 나의 시선을 빨아드리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거의 90%이상이 클로에와 시아버지(피에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었고, 시아버지 피에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읽는 나로 하여금 흥미롭기도 또한 그들의 그때의 감정들이 내게로 그대로 흡수되는듯하기도 하다 대부분의 대화형식의 소설 이여서 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피에르는 처음으로 자신이 다른 여인을 사랑했던 지난날의 일들을 며느리에게 털어놓기 시작한다. 피에르 역시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 자식들을 두었지만, 사랑해서 한 결혼이 아닌 어쩌면 풋사랑에 얼결에 하게된 결혼이였다. 그는 자신이 절대 사랑할수 없는 , 그리고 가족을 두고 바람 피지 않을 거라는 자신만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뜻밖에 그런 그에게 진실한 사랑이 찾아온다. 그녀와의 사랑과 추억, 이별들을 며느리에게 세세한 기억까지 모두 토해낸다.
"어느날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에게 잘못을 저지를 권리가 있을까?' 하고 또박또박한 말투로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이야. 그 몇 마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자기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잘못된 것과 추악한 것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해. 모든 것을 부숴 버리고 모든 것을 망가뜨릴 것을 각오하는 용기 말이다. 그런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기심에서? 순진한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건 아닐거야. 그럼 뭘까? 생존 본능?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용기. 우리 인생에서 적어도 한번은 그런 용기를 내야 돼. 오로지 자기 혼자서 자기 자신과 맞서야 할때가 있는 거라고. '잘못을 저지를 권리', 말은 간단하지. 하지만 누가 우리에게 그래주겠어? 아무도 없어. 있다면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야" (98쪽)
누구나 한번쯤 다른 사랑을 꿈꾸지 않을까? 피에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이 가기도 , 그리고 안타깝기도 했다. 자신의 가슴아픈 진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어쩌면 피에르는 클로에게 현명한 삶의 선택을 하길 바랬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이런 혼란스런 마음으로 충동적인 후회의 삶을 선택하지 않길 바라며 기나긴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던게 아니였을까? "네 나이의 두 배를 살다 보니 내 나름의 깨달음이 생겼다. 삶이란, 네가 아무리 부정하고 무시해도, 너보다 강한 거야. 그 무엇보다 강한게 삶이야. 전쟁중에 수용소에 갇혀서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본 사람들도 돌아와서는 아이들을 만들었어. 고문당한 사람들, 자기 가족과 집이 불타는 것을 본 사람들도 예전과 다름없이 버스를 잡기 위해 달음박질을 치고 날씨에 대해서 말하고 자기네 딸들을 결혼시켰어. 어떻게 그럴수 있는가 싶겠지만 인생이 그런거야. 삶은 그 무엇보다 강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지만, 삶에 맞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 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목소리를 높이지.(206쪽)"
책을 덮은후 참 오랜시간 여운이 남는 소설인듯하다.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 쉽고 빠르게 읽히지만, 이야기는 가볍지않은, 가슴 어딘가를 꾸욱 눌러주는 느낌이다. 작가 '안나 가발다'는 이 소설을 32세에 썼다고 한다. 그리고 두 아이를 둔 이혼녀라는 말에 소설속 '클로에'의 이미지가 저절로 떠오르기도 한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어떻게 그런 젊은 나이에 이런 내면 깊숙한 소설을 쓸수 있었는지 감탄스럽다. 위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영화 <라스트나잇>과 비슷한 듯한 소재의 내용이지만, 이 소설이 한결 진실되고 정직(?)한 느낌이 든다. 언젠가 구입해두었던 <함께 있을수 있다면1.2>도 조금 여유가 생긴다면 그녀의 글을 다시 읽고 싶다. |
| 삶은 강하다. 짧은 소설에 그다지 큰 점수를 주지 않는 나로서는, 그다지 치열하지 않은 소설의 작가에게 인색한 나이지만 삶이 가장 강함을 이 소설을 통해 알게된 것은 아니지만. 시아버지와 며느리라는 도저히 공통점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둘은 가장 다른 상대방이기에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아.. 그럴 수 도 있구나 라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각각 남자고 여자이며 세대가 다르며 떠나지 못한자이고 남겨진 자이다. 혈연으로 묶여 이해를 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며 매개된 자(남편이자 아들)가 그들을 엮지도 못한다. 클로제와 시아버지는 그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그 강한 삶으로 돌아갈것이고 그러면 또 다시 자신들의 변화하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실상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게 그 정도일 것이다. 지극히 예상할 수 있는 그 점이 우리를 공감케하고 그 뻔할 것 같은 그들의 미래에 대한 상상이 우리를 다소나마 자유롭게 한다. 아.. 그들도 우리와 같구나.. 나라가 다르고 가족내 관계에서 서로 위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우리 독자들이 소설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같이 치열한 고민을 하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이 나와 같음을 알고 나면 우리는 다소나마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마치 그것은 시아버지가 자신의 비서를 보고 자신의 행동의 당위성을 찾는 것과 같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삶-자신보다 더 강한- 그 삶 속에서 위안과 위로를 받는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너무 절절하게 읽어서였을까.. 나는 살아남는자가 짊어질 그 슬픔이 그 책임이 그 고통이 늘 안쓰러웠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해주는 것 같다. 죽은 자도 슬플 수 있고 떠나는 자도 아픈것이다. 누구나 아프다고 여길 수만 있다면, 우리가 그 아무것도 아닐 것같은 생각을 할 수 만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나를 덜 괴롭힐 것이며 삶을 위해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개체가 그 천적보다 강해질 수 없는 이유는 그 개체내에서 약한 자들이 그 천적에게 먹히게 될 것이므로 우리는 단지 약한 우리의 동료들을 이길 수 있게 자랄 수 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인정하기 싫은 우리의 추악한 면이라고 해도 모든 개체는 경쟁을 통해 서로 성장하고 위안하고 안도한다. 이 소설가는 그러한 생물학적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분명 삶의 방식에 주의깊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성품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마도 그러한 성품에 매료된 것이 아닐까? |
| 저어되는 책. 이 책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듯한, 자신을 찾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사랑을 함으로써. 남자주인공은. 그는, 최소한 그 인생에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사랑이라는 것을 몰랐고, 처자가 있고 지켜야 할 가정이 있었다 할지라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사랑을 만나게 되었다. 평생, 그런 사랑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고 그런 사랑을 몇 번이나 만나는 행운(???)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뼈가 움직이는 듯한 아픔을 느낄정도의 사랑을 하다가도, 또 다시 사랑을 만나게 되는 우리는.. 뭘까. 뭘까. 다 읽고 난 다음에,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어서. 빌려줄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들킬까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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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쓴 작가 안나 가발디는 단편소설 3편을 응모했다가 1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해가 안되지만), 퇴짜를 맞고 자신의 단편을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는다. 그래서 출판한 책이 [누가 어디에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좋겠다]란, 멋지면서도 누군가 한번쯤은 읇조려봤음직한 대사를 제목으로 한 작품이다.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 콘테스트에서도 당선되고 여러 편지를 대필해주었다는 현대판 시라노인 그녀의 작품에, 아닌 그녀의 문장에 큰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쳤다. 읽는 글이 아닌 듣는 글 (불어로 읽어야 알겠지), 장황한 묘사가 아닌 간략한 문장으로 상황을 전달한다는 그녀의 글. 책을 읽기 전에 이 소설의 간략한 줄거리는 파악하고 있었다.
다른 여인과의 사랑때문에 버림받은 여자주인공에게 그녀의 시아버지는 고백을 해온다. 자신도 아내를 버리고 늦게 찾아온 사랑을 따라 떠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여기까지는 다소 시큰둥했다. 상처받은 며느리에 대해 정반대의 시각을 보여주며 상처를 달래주는 그런 내용이 아닌가하고...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느닷없지만 조용히 남편을 떠나보낸 클로에는 아직은 어린 딸들, 뤼시와 마리옹과 함께 시아버지의 차를 타고 시골집으로 내려간다. 그녀는 루브르박물관 지하 3층에서 미술품 복제일을 하고 있지만, 시아버지의 병환을 핑계로 갑자기 다가온 사랑과 신뢰의 무너짐을 마주하고 자신을 추스릴 것을 종용받는다. 이기적이고 냉정하고 자식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시아버지로 부터.
'그래, 울자. 이번을 마지막으로 한바탕 오지게 울자. 눈물이 마르게 하자. 스펀지를 꾹꾹 눌러짜듯이, 이 슬픈 몸뚱이에서 물기를 뺴버리자. 그리고 나서 이 모든 것을 지난 일로 돌리자. 생각을 다른데로 돌려야 한다. 이제 걸음을 옮기자. 모든 걸 새로 시작하자'...p.18
이런 대사는 실연을 당한 사람이면 다들 해봤음직한 결심이었다. 그녀는 당장 무너져내려서 식음을 전폐하고 싶지만, 그녀만을 바라보며 슬픈 그녀를 웃게만들려는 두 딸로 인해 추수린다.
'엄마, 저 옛날 아기 침대 내려줘. 언니가 색칠을 새로 해야한대.' '분홍색으로?' 내가 묻자 아이는 놀라서 되묻는다. '어떻게 알았어요?' '엄마는 척보면 알아' ..p.44
(하하하) 여하튼, 작품 제목이 '난 그녀를 사랑했네'이므로 이 이야기는 레즈비언이 아닌 이상, 클로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에게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시아버지 피에르의 것으로 돌아간다.
"자기 때문에 남이 불행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괴로움 말이다....남아있는 사람들은 동정을 받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지.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은 어떠냐?" ...p.97
"나에게 잘못을 저지를 권리가 있을까?...누가 우리에게 그걸 주겠어?..있다면 오로지 자기자신 뿐이야...나는 나 자신에게 그런 권리를 주지 않았어..."p.97-98
너무나 사랑했던, 재능이 넘쳤던 형이 하잖은 여자의 토라짐에 군대를 갔다가 돌아와 허무하게 죽고 난 것을 본, 피에르는 풋사랑에 결혼을 하고, 무미건조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사업을 운영해간다. 42세의 피에르는 어떤 계기로 순식간에 마틸다라는 아름답고 신선하고 지적인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아내를 버리고 사랑을 찾아가 신뢰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받을 것인가, 적당히 두 여인의 사이에서 아무런 무리없이 부유할 것인가...
'당신은 스쿼시를 좋아하고, 나는 조커리 (줄에 매달린 공을 나무 라켓으로 치는 놀이)를 좋아해요. 그점이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마음속이 단단하고 굳센 사람들은 늘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면서 삶에 부딪혀 자꾸 튕겨 나오지요. 그에 반해서 마음속에 말랑말랑한 사람들, 아니 말랑말랑하다기보다는 유연하다는 말이 낫겠네요. 마음속에 유연한 사람들은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받으면 고통을 덜받지요...당신은 조커리를 더 해보는 것이 좋겠어요...공이 어디로부턴가 돌아오는 것을 알면서 잠시 기다리는 것, 그것은 감미로운 서스펜스예요..'p.162-163
정말 그럴까? 사랑이 누군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일까? 묶여있는 공을 계속해서 쳐내는 것보단 난 차라리 쳐내버리고 싶다. 역시나, 마틸다 또한 튕겨져 나간다. 둘이 다시 만나는 장면은 뭘까 마르크 레비의 작품 속 한 장면을 보는 듯 애틋하고 안타깝고... '삶은 그 무엇보다도 강하다'는 말로 끝을 맺는 피에르, 하지만 상처받은 마음으로 일상을 지켰던 그는 자신과 같이 있었던 가족들도 슬프게했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찾아 마음과 육체가 같이 있지 못했다. 맨마지막 에피소드와 대사는 며느리를 위로한다기 보다는 자신의 권리를 비겁하게 포기했던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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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번역한사람의 이름땜에 책을 고르기도 하는데,, 이책이 그책이다. 가격대비 실망스럼을 감출수 없다. 그렇다고 짧게 읽히는 그 시간이 아까운 건 아니다. 다만 내 기대가 컷다고 해야 하나. 무엇이 아름답고도 절절한 사랑 이야기 인지 내 감수성이 이미 무뎌버린 것일까? 주인공은 저만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편에게서 휭하니 버림을 받는다,, 그리고 아이들과 남겨져 있는데 평생을 무뚝뚝함의 대명사로 살거 같은 분이 잠깐이나마 같이 지내자며 데리러 온다. 그리고 몇칠을 지내며 시 아버지의 색다른 면을 보게되고, 그의 사랑이야기를 듣게 된다. 결국 화자는 그녀가 아닌 시아버지가 되고,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는 무슨 맛으로 사는지 모를것 같은 워커홀릭 시아버지의 로맨스이다. 남들의 사랑은 불륜이고, 자신의 사랑은 로맨스라고 했던가,,, 그의 자세한 여자친구의 대한 묘사는 내겐 그저 불륜이었다. 용기없음이었다. 색다른 느낌이었다면,, 그것은 시아버지가 딸같은 며느리에게 옛사랑얘기를 수다쟁이처럼 늘어놓는 것에 대한 신선함 정도였을까? [인상깊은구절] "나는 내가 바라던 걸 얻었어요. 그 동안 당신을 떠날 수 없었어요. 당신을 기다리면서 평생을 보낼 순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예요. 당신을 떠나기 위해서는 그런 말을 들을 필요가 있었어요. 당신의 비겁하고 치사한 모습을 볼 필요가 있었던 거지요. 내 손가락으로 당신의 비열함을 느껴볼 필요가 있었다고요. " |
|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괜찮은 무언가를 발견하면 그야말로 행복을 느낀다. 얼마 전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의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얼마나 흐뭇해했던지. 제목은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보게 되었는데, 보고 나서 가슴이 따뜻해지고 왠지 설레기까지 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또한 그런 종류의 하나다. 숱한 홍보물들을 보았고, 사람들이 몇 번 거론하는 듯도 해 보였는데, 시쳇말로 그다지 땅기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고 그런 로맨스 소설 중에 하나가 아닐까도 싶었고, 대강의 줄거리를 봐도 도무지 흥미가 돋지는 않았다. 어느 날 위시리스트를 뒤적여보다가 적당한 가격대의 책을 고르면서, 그 소설의 번역자가 눈에 띄었고 그 이름만으로 한번 속아주는 셈하고 책을 주문했다. 여류 소설가, 라는 말을 어떤 사람들은 싫어한다. 남류 소설가, 라는 말 따위는 없지 않냐며 그런 식의 분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여류 소설가들의 글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나 역시도 몇몇 여류 소설가들의 글은 아무리 그들의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고 신간은 한번쯤 읽어줘야 하지 않을까 한다지만 비껴가려고 노력한다. 속으로만 파고들고, 너무 피해의식에 젖어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글들을 보면 조금 답답해서 부러 찾지는 않는다. 그러나 또 한편 남자는 좀체 쓰기 힘든 여자로서의 글쓰기를 하는 소설가도 있다. 가령, 이혜경의 소설을 보면 남자들은 놓치기 쉬운 부분을 잘 잡아서 묘사를 하고, 설명을 한다.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여성적 글쓰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여자와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다른 부분도 있다지 않은가. 태어나면서 사고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그 다른 방식을 누려보는 것도 좋을 터, 그런 능력을 가진 여류 소설가는 환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여자가 쓴 글, 이란 느낌이 글을 읽는 중간중간에 많이 들었는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세심하게 하나하나 골라낸 단어들과,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 나누는 대화들을 읽으면서 기대한 것보다 괜찮네,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얼마 전 누군가의 에세이에서 음악이나 소설을 듣다보면 자신을 투영시켜 이건 내 노래잖아, 이건 내 이야기잖아의 단계를 거쳐 내 노래가 아니어도, 내 이야기가 아니어도 그 음악이나 소설을 즐길 수 있는 때가 온다고 했다. 좋은 소설을 읽다보면 그런 때가 조금 빨리 오는 것도 같다. |
| 모 일간지에서 이 책의 서평을 읽고 서점을 찾았던 나는, 매진 행렬을 보아야만 했다. 이로 인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던 것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조금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가정이 있으면서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들. 가정을 택하는 남자와 사랑을 택하는 남자. 삶은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감수하는 것이라 했다. 비록 내가 원하지 않는 큰 결정들이 외부 요인들로만 인해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중심이 바로 서 있다면 이를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주인공의 시아버지는, 사랑이 아니라 가정을 택했던 그는, 인생의 많은 굴곡을 넘어온 선배로서 차분하게 주인공에게 삶에 대해 얘기해 주는 것이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이다. 시아버지의 얘기를 따라 가면서 자신의 상황을 조금씩 정리해가는 - 확실히 정리가 되는지 혹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게 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 주인공을 보면서 살아 가는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