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고 또 읽어서 정말 몇 번을 읽었는지를 모르겠다. 아무리 읽어도 지겨워지지 않는, 이런 것을 우리는 명작이라 부른다지. 우리 시대의 모든 비극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고통스럽지만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우리 이웃들의 상처와 원한, 좌절과 꿈을 작가는 특유의 삐딱한 듯하지만 정이 철철 흐르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상처때문에 읽는 내내 함께 가슴이 아팠고, 그래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 주어서 안도하며 책을 덮을 수 있었다. 평소 책을 멀리 하던 사람들에게 특히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두권이지만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책이니 부담갖지 말고 한번 읽어보시도록. 같은 감동을 느낀다면 우리 사회가 더욱 따뜻해지지 않을까. |
| 이 소설은 비련의 여주인공과 남 주인공의 슬픈 로맨스 소설도, 비참한 인생을 살다간 주인공이 불쌍해서 울 수밖에 없는 소설도 아니다. 그런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도중 간간히 울 수밖에 없었다. 내자신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슬픈지 모르겠다. 물질에 집착하다 술집에, 마약의 늪에서 헤어나 올 수 없게 되 버린 누나 때문에? 정신적 지주이자 인생의 선배, 운동의 선배였던 ‘이정하’를 산송장으로 만든 고문자를 처단한 형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어쩌면 마지막이 되버렸을지 모르는, 나성여관 앞에서의 찌르레기아저씨와의 이별 때문에? 세상에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느끼는 민수에 대한 동정 때문에? 이책을 읽기 전, 나는 운동권 학생을 어리석다 생각했었다.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진다면 주저 없이 ‘피해보지 않는 삶’을 택할 거라 말할 수도 있었다. 비굴한, 여우 같은, 교활한, 소심한, 용기 없는… 등의 수식어구를 갖다 붙여도 내 성격 내에서의 대답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내가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함으로 다치게 될 나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형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때, 나는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모든 것은 ‘용기 없는’으로 압축되는 것이었다. 형이 단순한 복수와 원한으로 인해 살인미수의 죄를 저질렀다면, 나는 그냥 안타깝다, 라는 생각에 미쳤을 것이다. 형은 그자를 처단하는 것이 복수와 원한을 넘어서 이상했던 사회를 이룩하는 한걸음이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물론 이기적인 바람으로 개인이 희생이 되는 것과는 차원이 틀리게… 물론 형이 불가피하게 취했던 살인을 옳다 그르다 논하고 싶지는 않다. 형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일말의 부끄러움도 업었다. 그것으로 모든 대답은 답해졌다고 생각한다. 누나는 현대의 황금만능주의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색과 값비싼 옷에 집착하는 누나는 결국은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 타락 - 이라하면 타락인, - 한 누나가 내심 불쌍해졌다. 허영된 욕심 – 본인으로서는 간절했던 – 으로 타락한 모습은 인간본연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찌르레기 아저씨의 일기장을 볼 때 ‘인생이 어쩜 저리까지…’ 하는 탄식이 절로 새어 나왔다. 찌르레기아저씨는 형에게 죽임을 당한 고문자에 의해 가정이 망가졌다. 그래서 평생을 그에 대한 복수로 살아왔다. 그 때문에 아들을 외면하고 있어야 했던 한. 이 인생은 어쩌면 1980년대 비참했던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일기인지도 모르겠다. 죽도록 일해도 끼니를 겨우 연명했지만, 가난한 현실속에서도 밝게 살도록 노렸했다. 그 무엇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아내가 죽고, 가정이 망가지고, 마음에 복수의 칼이 섰다. 설사 소설과는 다르게 그가 임씨(고문자)를 처단했다 하여도 형의 경우에서 처럼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의 ''나'' 는 삼수생이다. 소설 처음의 나와 끝의 나는 다른사람 이다. 처음의 나가 순진하고, 세상을 내심 삐뚤게 바라보고 있었다면, 소설 끝의 나는 삐뚤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인물들간의 매개체역활을 한 인물이었다. 나성여관은 이 모든 사람들이 안주하고 있던 삶의 터전이었다. 물론 지독히도 벗어나고 싶어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곳에서 저마다의 생각을 품으며 사람을 만나고, 슬프고, 웃고 하였다. 마지막에 을씨년하게 자취만을 남긴 나성여관은 모든 사람들을 이어주게 하는 매개체, 혹은 그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도시화된 사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한쪽 저편에 소외되었던 사람들과, 나성여관. 나는 나성여관의 마지막 쓰레기만 남은 모습에서 변화한 사회에 저항하려는 몸짓을 볼 수 있었다. 지나간 것은 싫든 좋든 추억에 남겨두고, 세상에 발걸음 지었던 모습, 부화한지 얼마 안된 새가 날기 위해 짓는 날개짓. 삼수생의 1인칭으로 전개된 소설 ‘희망’. 삼수생이라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회적 신분과 그랬기에 어쩌면 더 곧게 혹은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그래서 더 적나라하게 현실을 묘사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가슴에 와닿았다. 형은 그를 처단함으로써 이상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희망을, 누나는 그 생활 속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색의 희망을, 찌르레기아저씨는 만날수 없을 거라 믿었던 아들과의 재회에서 삶의 희망을,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성여관을 등지고 새로 터놓은 집에서 앞으로의 희망을. 그리고 나는 직장에 안주함으로써. 각자 삶에 대한 희망을 꿈꾸고 잇는지도 모른다. 내가 여태까지 내 일이 아니라 방관했던 일들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이책은 나에게 또 하나의 희망을 주었다. + 새록새록 생각나는 기억, 고2 교실에서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도서 목록에서 고른 작품이었다,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 두권을 빌리고서는 다른것을 다 제쳐두고 이책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곤 기숙사 방 침대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연습장 같은 A4용지에 반쯤 쓴 연필로 감상문을 적었던 그런 소소한 기억들 ~ |
| 처음에는 '희망'이 아닌 다른 제목으로 발표된 것 같았는데...써클룸 캐비넷 구석에 박혀있던 그 글을 읽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음을 기대하던 그 책이, '희망'이란 새옷을 입고 완결되어 기뻤다. (하지만, 첫 느낌이 강해서일까...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첫 제목이 '희망'보다는 이 글에 더 어울린다고 고집스럽게 되뇌고 있다) 좀 엉뚱한 비유같지만, 한국판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생각이든다. 주인공 우연이와 홀든 콜필드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우선 그 상황에서는 삼수생과 퇴학생이라는 실패자라는 점, 세상을 어느정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을 어떤 의미로든 '잃는다'는 점, 알고 보면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라는 점... 그들의 그런 점들이 내게는 더할나위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제까지 읽어본 소설들을 돌이켜보면, 작중의 인물에서 현실감이 느껴질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경우에는 이야기는 볼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풀려나가는 것 같다. '희망'의 경우도 소설 속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나름의 생명력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인물들을 창조해낸 것 까지가 양귀자의 뛰어난 점이고, 그 이후는 그들을 그냥 풀어놓은(?)것만으로도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바래지 않는 매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좋은 책이다. 그러고보면, 양귀자는 참 괜찮은 작가다. |
| 한 삼수생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둡기만 하고 어느 것 하나 좋게 끝나는 것이 없다. 그가 살고 있는 나성여관은 점점 퇴락의 길을 걷고 사람들도 허물어져 간다. 나성여관의 주인이자 돈을 움켜쥐고 사람들을 흔들어 대는 엄마, 그런 엄마의 그늘에 가려 아버지 노릇도 제대로 해 보지 못하는 아버지. 자식 셋이 모두 부모 마음대로 되주질 않는다. 머리가 좋아 공부 잘하고 대학까지 갔던 형은 데모한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내놓은 자식이 되어 버렸고, 아름다운 것만을 추구하던 누나는 안락하고 호화로운 삶을 찾아 떠나 버렸다. 막내인 우연이 마저 삼수생 생활을 청산하기로 마음먹어 버렸지만 차마 엄마에게 말하지 못한다. 어느날 미이라 같이 생긴 사람과 함께 나타났던 형은 미이라가 발작을 일으켜 나성여관의 문짝을 부수던 날 결국 완전히 집을 나가버린다. 지독한 고문으로 인성마저 망가져 버린 미이라같은 형의 선배이야기를 보면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망쳐놓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캄캄한 관(칠성판) 속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누운 사람이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밀실공포증이 극대화 되어 버려 잘 때조차 무릎을 펴서 편하게 누워잘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의 심정,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고문형사 '이근안'사건이 새삼 떠오른다. 권력의 비호 아래 자행된 고문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망가졌을까? 이제는 그런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과연 그러할지는 의문이다. 한편 나성여관에서 함께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이 함계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평양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딸이 죽으면서 정신연령 미달의 손자까지 데려와 살게 된다. 그러나 고향으로 가고픈 열망에 눈이 어두워 그만 전여행사 직원에게 전 재산을 사기당한 할아버지는 나중에 행려병자로 돌아가시고 만다. 자신의 고향과 재물에 미련을 두고 평생을 살아 온 할아버지는 기어코 휴전선을 향해 떠나버린 것이다. 하늘나라에서나마 고향땅을 밟아보셨기를 바랄뿐이다. 색깔에 뛰어난 감각을 지녔으며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하던 아름다운 누이는 집을 뛰쳐나가 돈많은 유뷰남과의 생활을 반복하다가 결국 술집으로 흘러 들어간다. 마약에 찌든 누나의 모습을 보며 우연은 삶의 등불을 잃어버린 것처럼 절망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결국 누이는 그런 삶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점점 아름다움을 잃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인지.. 그리고 나성여관에 찾아 든 또 한 사람, 공사판을 찾아 돌아다니는 찌르레기 아저씨. 주인공은 찌르레기 아저씨의 노트를 본 후로는 불안하기만 한 삶을 지탱해 나간다. 노트에 언급된 찌르레기 아저씨의 삶 또한 우리에게 절망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한 건의 살인 미수사건을 통해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들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인간에게 희망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겠는가.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은 인간의 삶의 원동력으로 영원히 우리를 지켜주리라. |
| 시대흐름을 아주 잘 타는 작가죠. 양귀자!! 방송에서 한 때, 그렇게도 떠들어댔던.. 베스트 셀러들.. 희망, 천년의 사랑, 모순.. 저도 후기를 쓰자면 한 없이 길게 쓸수 있지만.. 윗분들이 넘 길게 쓴 관계로 제 후기가 그리 의미있을 것 같진 않네요. 한번 읽어보세요. 양귀자란 작가의 편한함에 빠져들거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양귀자 소설중에 가장 좋았었던 작품입니다. 왜그리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찡하던지 아직도 그 느낌은 잊을수가 없네요. 한없이 약한 이들이 전하는 아픔과 절망들, 그리고 가느다란 희망의 메세지.. |
| 양귀자라는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작가'다운 위트스러움이다. 양귀자 특유의 그 입담과 구수한 이야기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톡톡하게 끌어 당긴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작가' 양귀자를 참 좋아한다. 양귀자를 좋아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아니다. 물론, 그녀의 얼굴이 예쁘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향학열 높은 대학에서 나온 박완서나 공지영 작가같은 사람이 아니라 설사 그럴 지라도 그 특유의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그런 톡톡튀는 필체. 그것이 바로 그녀가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매력이랄까. 나는 그래서 양귀자를 참 좋아한다. 흥미를 유발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녀의 화술은 나로 하여금 몇 번이고 다시 그녀의 책 첫장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에게 희망을 주는 유일한 사람, 그리고 내가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유일한 사람, 그것이 바로 양귀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내게 희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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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씨의 작품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다. 오래전 드라마로 한번 방영된 적이 있었고 (그때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있었기에 책이 다시 새로운 표지로 재판되었을 때에서야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썩 괜챦은 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해버리는 것은 괜챦은 소설 한 편을 그냥 매장시키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나성 여관' 이라는 곳, 대학갈 의사를 포기한 삼수생 우연의 눈으로 본 세상이다. 우연의 바라본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미국행을 간절히 꿈꾸며 집에서 무위도식하는 우연의 부, 거친 성격과 강한 생활력으로 나성 여관을 이끌어 나가는 우연의 모. 운동권인 도연이 저지른 살인이 죄값에 대한 응징보다는 그 당시 사회에 던져진 사회성을 각인시키려는 점. 화려한 생활을 꿈꾸며 집을 나가 버려 결국은 마약에 빠져들어버리지만 누나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희망. 모든 세상사를 노래로 잊으려 하는 경쾌한 캐릭터의 뽕짝 아줌마. 이북에 자신의 재산이 있다며 딸의 죽음으로 생긴 보상금으로 이북행을 계획하다 결국 사기를 당하고 걸어서 이북으로 간다고 집을 나가 버린 10호실의 이북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손자를 자신의 양아들로 삼으려 한 하얀 이빨의 정겨운 찌르레기 아저씨. 그리고 우연의 여자친구 보라. 가수를 꿈꾸다 결국은 정신병원에 가둬진 우연의 친구.....
그들의 삶의 유형은 너무나 다양하고 그 구석구석 아픔과 때론 좌절도 엿볼수 있지만 우연은 끝까지 어둠 속 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 한 것 같다. 어두운 사회의 단면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엔 상쾌함을 느낄수 있고 사건 하나 하나에 경쾌한 해석도 있다. 그들을 보고 있는 나 역시 즐거울수 있었다. 나 역시 희망을 꿈꾼다. 비록 그 희망으로 가는 길에 몇번의 좌절이 동반되더라도 그 걸음걸음을 멈쳐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 쉬어갈 뿐이라고, 다시 일어나 발걸음을 내 딛어야 한다고. [인상깊은구절] "네가 누나를 사랑하는 것이 곧 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었겠지. 우리 모두가 그렇다. 네가 사랑을 준 만큼 사랑받고 싶어 했었지만 인간정신의 무게는 각각 다르다. 네 고집에서 깨어나. 누나는 어차피 자신의 길을 선택해서 떠난 사람이야. 누나에게 행운이 있기를, 그래서 그 행운이 인도하는 대로 빠른 시일내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늘에 비는 수 밖에." 그와 내가 합의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구질구질하고 어두운 나성 여관일지라도 이곳이 집인 이상 바깥 세상보다는 안전하다는 바로 그 점 뿐인 듯 싶었다. 우리는 감잎차를 다 마신 뒤에도 금방 헤어지지 않았다. 그는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사온 석간을 읽었고 나는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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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진우연은 허름한 나성여관의 막내아들이다. 주인공 주변엔 온통 가난한 사람 투성이다. 미국길만을 꿈꾸는 아버지, 구두쇠에 억척스런 어머니, 데모하다 가출한 형, 몸을 팔며 가출한 누나, 이북만을 꿈꾸는 10호실 할아버지, 사연이 있는 9호실 아저씨, 모자란 민구, 삼수생 친구들...... 다 가슴에 하나씩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많은 일들이 전개되고 그래도 주인공은 마지막에 희망이라는 것을 본다.
이 소설의 배경은 어두움 그 자체 였다. 뭔가 하나 완벽한 것도, 화려한 것도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 누나의 화려함이 있다지만 내 눈엔 화려함이 아닌 천박함으로 보였다. 앞부분을 읽을 땐 다 그랬다. 다 속직히 좀 한심하고 불쌍한 사람들로 보였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미국에서 데리러 온다던 누나가 있어 아버지가 누나를 기다리고, 젊을 당시 북에 많은 재산과 행복한 가정을 두었기에 10호실 할아버지가 북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을 천시보려 했던 내 자신이 갑지가 한없이 부끄러워 지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민구에게 미안한 느낌이었다. 민구를 보고 찌르레기 아저씨가 영원히 천사로 남을 아이라던 말이 인상깊게 내 머리에 새겨진다. 정말로 그럴 것이다. 영원히 천사로 남을 아이 민구...그 아이 민구가 '햇빛마을'로 가게 됐을 때 난 진심으로 기뻤다. 모두가 슬픈 건 싫어서 혼자만 슬플거라고 하던 아이...그 아이의 순수한 눈망울이 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리고 우연이와 그 주위의 가난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희망을 찾아 갈 것이다. 민구는 '햇빛마을'에서, 우연이는 구인광고에서. 이 책의 제목처럼. [인상깊은구절] "찌르레기는 동네 근처를 떠나지 않고 모여 사는 새야. 등은회갈색인데 머리통은 까맣지. 그리고 울음소리가 되게 슬퍼. 바람만 불어도 가슴이 아프다고 찌르륵 찌르륵 울어대는 거야." "그런 새도 있어요?" "있지. 찌르레기는 내 별명이야. 밤이면 술 처먹고 찌르륵 찌르륵 울어댄다고 함바집 아줌마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싫지 않더라. 찌르레기, 좋지? 너도 그렇게 불러봐. 가슴이 찌잉 울릴 거야." 그가 밤마다 찌르륵 찌르륵 울어댄다니, 이건 뜻밖에 고백이었다. 찌르레기 아저씨, 찌르레기 아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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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주인공 진우연은 허름한 나성 여관의 막내아들이다. 주인공 주변엔 온통 가난한 사람 투성이다. 미국길만을 꿈꾸는 아버지, 구두쇠에 억척스런 어머니, 데모하다 가출한 형, 몸을 팔며 가출한 누나, 이북만을 꿈꾸는 10호실 할아버지, 사연이 있는 9호실 찌르레기 아저씨, 모자란 민구, 삼수생 친구들...... 다 가슴에 하나씩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많은 일들이 전개되고 그래도 주인공은 마지막에 희망이라는 것을 본다.
이번에 이 희망이라는 책을 두 번째로 읽은 것이다. 이 책하면 연관되는 것이 몇가지 있다. 하나는 이 책을 나에게 권해준 친구한명과 또 하나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내 일기장, 마지막으로 하나는 장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책의 느낌을 장마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아마 처음엔 책을 깊이 안 읽었나보다. 지금와서 다시 읽어보니 그런 느낌이 들긴하지만 뭔가 더 큰 것을 느낀 것 같다. 이 소설의 배경은 어두움 그 자체였다. 뭔가 하나 완벽한 것도, 화려한 것도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 누나의 화려함이 있다지만 내 눈엔 화려함이 아닌 천박함으로 보였다.
앞부분을 읽을 땐 다 그랬다. 솔직히 다들 한심하고 불쌍한 사람들로 보엿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미국에서 데리러 온다던 누나가 있어 아버지가 누나를 기다리고, 젊을 당시 북쪽에 많은 재산과 행복한 가정을 두었기에 10호실 할아버지가 북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을 한심스레 보려했던 내 자신이 갑자가 한없이 부끄러워 지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민구에게... 솔직히 생각해보면 내가 감기끼 정도로 가볍게 아팠을 때 울어줄 사람이 있을까? 아니 몸을 심하게 다쳤다 해도 울어줄 사람이 부모님정도 밖에 없을 것 같다.
민구가 우연이가 좀 아프다고 하자 문을 두드리며 "형아 아파, 아파? 아파." 하고 울 때, 그리고 그 말에 우연이도 울 때 그 눈물과 함께 나의 나쁜 마음도 슬며시 씻겨 나가는 듯했다. 민구를 보고 찌르레기 아저씨가 영원히 천사로 남을 아이라던 말이 인상깊게 내 머리에 새겨진다. 정말로 그럴 것이다. 영원히 천사로 남을 아이 민구...... 그 아이 민구가 '햇빛마을' 로 가게 됐을 때 난 진심으로 기뻤다.
그리고 우연이가 햇빛마을의 민구과 작별을 고할 때 우연이를 보내기 싫은 민구가 우연일 잡자 큰 고모(아주머니)께서 민구에게 말하셨다. 민구가 가면 친구들이 다 슬프다고, 모두 다 슬프게 할꺼냐고 아니면 민구 조금 슬플래 라고... 민구는 혼자 슬플 꺼라고 말했다. 그 말에 괜시리 눈물이 나왔다. 정말 순수한 아이다. 모두가 슬픈건 싫어서 혼자만 슬플꺼라고 하던 아이... 그 아이의 순수한 눈망울이 떠오르는 듯하다. 그리고 모든...그러니까 우연이와 그 주위에 가난한 (마음에 조금씩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희망을 찾아 갈 것이다. 민구는 '햇빛마을'에서, 우연이는 구인광고에서. 이 책의 제목처럼...... [인상깊은구절] "찌르레기는 동네 근처를 떠나지 않고 모여사는 새야. 등은 회갈색인데 머리통은 까맣지. 그리고 울음소리가 되게 슬퍼. 바람만 불어도 가슴이 아프다고 찌르륵 찌르륵 울어대는 거야. (생략)찌르레기는 내 별명이야. (생략)찌르레기, 좋지? 너도 그렇게 불러봐. 가슴이 찌잉 울릴거야." 그가 밤이면 찌르륵 찌르륵 울어댄다니, 이건 뜻밖의 고백이었다. 찌르레기 아저씨, 찌르레기 아저씨. |
| 이 책이 처음 나온건 90년이다. 90년대 중반에 이 책을 뒤적거려 본 기억이 난다. 읽었다고 말 할수도 없을 정도로 건성으로 몇 페이지 넘기다가 한 쪽 구석에 밀어 넣어버렸다. 아마 그 당시의 나에겐 소설류보다는 흥미 진진한 만화책을 읽는 것이 더 값진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20살이 넘어서야 이 책을 다시 뒤적거리다 이제는 이 책에 빠져들어가 버렸다. 서민적이면서도 주제의 암시가 분명하고 각기 여러가지 모습과 사연들을 간직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나성여관이라는 곳, 그 여관에서의 일상과 그들의 삶을 통해 진뜩하게 배겨있는 희망이 나타나 있다. 경쾌하면서도 중량감이 있는 소설이다. 아마 밤을 보내고 새로이 아침을 맞이하며 새로운 날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이 슬프기도 하지만 정답다. 이 책이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희망을 꿈꾸며 이 책에서의 희망에 동화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몇년이 흘러 다시 이 책을 펼친다면 그때 난 어떤 희망을 꿈꾸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