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수는 세중과 수직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것은 가부장적 제도권 아래에서 유지되는 가정의 한 단면을 드러냄으로써 여성이 처한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세중은 퇴근 후, 돈 냄새가 나는 손을 씻고 곤히 잠이 든다. 하지만 은수는 한밤중에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남편 세중의 맨발을 바라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다. 여성인 은수가 남편의 헐벗은 발을 보고 겸손이나 비애, 슬픔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것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성상을 그리려는 의도로 파악이 가능하나, 남성인 세중이 아내의 발을 보고 이와 같은 연민을 느낀다는 서술을 가정해보면 좀체 어색하게 느껴지므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가부장적 제도의 씁쓸함을 맛보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은수는 비죽="" 드러난="" 살이="" 없고="" 뼈가="" 두드러진="" 커다랗고="" 헐벗은="" 발을="" 모두어="" 가슴에="" 안았다.=""> 이는 남성을 포용하는 여성의 자연스러운 행위로써 그것이 마치 의당 치러야 할 과정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은수는 세중의 발을 통해 함께 살아온 여섯 해의 부피를 느끼고 있는데, 이러한 회한은 현재 그녀의 삶이 만족할만한 것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또한, 은수는 p.209에 드러난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직업을 갖지 않은 가정주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가부장적 제도권 아래에서 남편에게 순종하는 여성상을 그리기에 가장 적적한 설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반면 세중의 경우, 돈을 만지는 직업이라는 직접적 언급(돈냄새가 나. 돈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당신은 모를거야.)이 물질적 가치가 중시되는 오늘날의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더불어 남성이 권위를 가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위계 질서에 순응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남편과의 이뤄낸 은수의 가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은수는 결혼한 지 육 년이 되었지만, 안정된 가정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딘가 떠나려는 욕망에 몸부림친다. <그 어떤="" 안타까움이="" 자신을="" 자꾸="" 떠나도록="" 손짓하는="" 것일까.="" 은수는="" 눈을="" 크게="" 뜨고="" 어둠="" 저편에서선연히="" 살아나는,="" 그녀가="" 집을="" 벗어나="" 헤매고="" 다녔던="" 낯선="" 길목,="" 낯선="" 거리,="" 낯선="" 방들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어딘가 떠나려는 욕망에 몸부림치는 이유는 유년시절의 상처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은수의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그녀의 떠나고자 하는 욕망은 무료한 나날 속에서 일탈을 꿈꾸는 소녀적 취향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그녀의 가출이 결코 단순한 도피나 여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역마살이 끼었다는 푸념을 듣고 자란 그녀가 현재에 와서 가장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살을 푸는 행위인 것이다. 그녀가 어린 시절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헤맸다는 서술은 당시의 가정으로부터, 삶의 터전으로부터 붕괴를 맛본 때문이므로 일종의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녀가 어린 시절 떠도는 존재였다는 서술은 자신이 현재 사는 곳이 자신의 본래 집이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되므로, 어린 아이는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본래의 집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어린 시절, 그녀의 떠나려는 몸부림은 결국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한 행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은수는 정작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단서를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그녀는 생전 처음 보는 거리를 무한정 걸었다는 기억을 토대로 유년의 상처를 끄집어 내려 하지만 정작 떠오르는 것은 '안타까움'에 다름 아니다. 은수의 떠나려는 몸부림은 지극히 안정적인 가정에서 남성의 권위를 누리며 살아가려는 남편과의 갈등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세중이 비틀대며="" 들어온="" 후="" 대문="" 빗장은="" 은수="" 자신의="" 손에="" 의해="" 단단히="" 잠겨졌음을="" 알면서도="" 그녀는="" 또="" 한="" 번="" 잠긴="" 문을="" 확인했다.=""> 이는 은수가 남편과의 관계에서조차 동등한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채, 정작 남편에 의해 길러지는 한 마리 새 같다는 감정을 표현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녀의 떠나려는 몸부림은 반대로 가정에 안주하고 싶다는 욕망과 부딪침으로써 한 가정의 안주인인 은수를 가정 파괴범으로까지 몰고 가는 극한 상황의 연출에 이용되는 것이다.세중이>그>은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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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있었다. “바람이 불어, 바람은 왜 불어?” 라는 다섯 살짜리 아들의 조금 당황스러운 물음에 “바람은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부르며 손짓하는 것이란다.”고 마음으로 대답할 줄 아는 여자가 있었다. 여자에게 바람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우물처럼 존재의 바닥에 늘 고여 있었다. 어떤 남자가 있었다. 삶에 대한 어떠한 감상도 없고 생애를 걸고 이루어야만 할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런 남자가 있었다. 그는 약간의 예술적 분위기만을 탐하는, 집에 돌아오면 비누로 몇 번씩 손을 씻으며 “돈 냄새가 아직도 나는 것 같아.”라고 자조적으로 되뇌는, 자신의 직업에 얼마쯤 염증을 지닌 평범한 은행원이다. 한 여자와 어떤 남자가 결혼했다. 여자는 결혼은 <옮겨 심음>이 아니라 ‘파종’, 새로운 뿌리 내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결혼 생활은 마치 뿌리가 손상된 식물의 파종 같았다. 여자와 함께하는 춘곤 같은 노곤함 속에 왠지 모를 불안 혹은 차가움이 감지되기도 했지만, 남자는 그런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처음으로 집을 나가기 전까지는. 여자에겐 그녀를 사로잡고 떠나지 않는 배경은 흐릿하지만, 중심 피조물이 또렷한 인상으로 남은 스틸 사진 같은 기억이 있다. 햇볕이 쨍한 오후 잡풀이 무성한 마당에 함부로 뒹굴어 먼지가 뽀얗게 앉은 검정 고무신 한 켤레를 중심으로 희미한 배경의 목조 이 층 건물에 대한 그녀의 기억은 플래시를 터트리는 빛의 순간적인 착란처럼 까무룩하다. 온기가 있는 집 밖에서 누군가가 그리워하는 손짓으로 여자를 부르는 것 같았다. 처음에 여자는 일상적인 외출처럼 집을 나섰다. 여자는 ‘조금만 있다 갈 거야.’ 하면서 자꾸만 자꾸만 집으로 가는 때를 놓쳐 버렸다. 남자는 여자의 느닷없는 부재에 놀랐지만, 다소 감상적인 여자들의 철없는 행동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후 막 돌이 지난 어린 것을 두고 다시 반복되는 여자의 가출에 남자는 그녀를 포기할 것 같은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잠깐 쉬어가려고 했었다. 기억 속의 오후처럼 구두를 벗어 옆에 두고 담배 한 개비를 태울 정도의 편안함만을 누리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갑작스런 침입자들에 의해 기억 속의 한가한 풍경이 깨어지듯 여자의 평화는 군복을 입은 세 명의 남자들에 의해 무참히 짓이겨졌다. 남자는 여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여느 때 같은 긴 부재는 아니었지만, 저물녘 퇴근길에 맞닥뜨린 어린 아들이 대문 앞에 옹송그리고 앉아 잠든 모습은 그를 분노케 했다. 남자는 여자한테서 아이를 떼어놓았다. 여자는 남자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잠깐 아들의 얼굴만 보려고 했었다. 자신이 살았던 M 시가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줄 정말 몰랐다는 듯 여자는 아이와 함께 기차에 오른다. ‘조금만 더 있다, 가야지’ 하는 되풀이되는 가출처럼 여자는 아이와 함께 기억의 흔적을 찾아 헤매다 또 때를 놓쳐버렸다. 여자는 아이를 영영 다시 못 볼지도 모를 예감을 느끼며 남자가 아이를 데려가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전쟁 통에 미처 피난의 때를 놓친 여자의 가족은 집에 남아 있었다. 그녀와 똑같이 생긴 한 몸 같은 쌍둥이 동생과 그녀는 불안 속의 평화스러운 한나절을 보내고 있었다. 한 무리의 굶주린 남자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여자는 얼른 화장실로 숨는다. 문틈으로 여자는 보았다. 허적허적 여자는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의 친구 집을 찾아왔다. 그 후 여자는 기억의 파편 중 하나에 사로잡힌다. 그녀를 내내 뿌리내리지 못하게 했던 기억 속의 그리운 넋들은 그렇듯 바람이 되어 여자를 그리운 손짓으로 휘휘 부르고 있었다.
여자를 부르는 바람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호출하는 신호이다. 한낮의 평화가 군홧발에 뭉개지는 장면을 목격한 어린 아이에게 고여있는 물 같은 죄의식, 초자아의 단죄 같다. 그리운 넋들처럼 사라지기 전까지 떠도는 혼이 뿌리내릴 곳은 없다. 다사로운 햇살이 낯선 침입자에 의해 깨어지는 폭력의 상처를 한 여자의 혼에 내재한 ‘그리운 넋들이 부르는 바람의 소리’로 그려낸 처연하게 슬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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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학서평을 보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저는, 이 책의 서평을 보고도 이게 뭔가, 했습니다. 한데 바람의 넋이라는 표제의 중편을 읽고 가슴이 참 미묘하게 서늘해지는 거 같았어요.
은수라는 여자가 세중이라는 남자와 만나서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여자 의식에 떠오르는 기억이 아닌 어딘가에 묻혀있는 기억 때문인지 자꾸만 떠나고 결국은 돌아오게 됩니다. 마지막엔 은수라는 여자의 가장 슬프지만 눈이 부신 기억이 나타지만, 은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꾸만 무언가 공감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까지 그렇게 슬픈 일도 그렇게 기쁜 일도 없이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나인 줄 알았는데, 기분이 이상하게 공감이 되더군요.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떠나있는 주인공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같은 마음이었답니다.
오정희라는 분의 소설을 읽으면, 어딘가에서 정말로 있을 법한 그런 분위기와 기분이 들고...무엇보다 전 편을 흐르는 그 산 속의 고요함과 비슷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달콤하지도 씁쓸하지도, 말로 할 수 없는 그 기분이. 오랜만에 들었던 그 기분덕에 더 깊은 가을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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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의 넋="">에서 고통스럽고 가슴 쓰라린 여자의 중년을 보았다. 아직 오래 남은 시간, 아직 먼 곳이라는 걸 알면서도 먹먹해지는 가슴은 무엇인가.
동일 인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외롭고 권태롭고 소외된 환경에 방치되어있는 여자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바라고 또는 두려워한다. 또한 여자들은 자주 외출하고, 가출하고, 여행을 간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가족의 곁으로 돌아온다. <순례자의 노래="">에서처럼 상처받은 채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에게서 따돌림을 당하는 여자도 있다. 그녀는 눈 내리는 날, 술에 취해 흔들리며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겨놓는다. <동경>의 노인들은 과거의 사건만 뚜렷하게 기억한 채 무기력하게 삶과 죽음 사이에 있다.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하며 모든 여자들은 불행해지는 걸까.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세월에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해야 하는가. 소설 속에도 내 안에도 답은 없다. 존재와 삶에 대한 모든 비통한 질문들은 언제 어디서건 바람처럼 불어올 테니까...(*) [인상깊은구절] 집을 떠날 때는 매번 그랬다. 꼭 닫힌 분합문의 틈서리로 비비대며 안타깝게 아우성치는 바람 소리를 들을 때, 빨래를 하다가 문득 깨끗이 닦인 유리창에 담긴 시리도록 차갑고 새파란 하늘을 가슴속에 한 줄기 청량한 바람이 지나가듯 서늘한 느낌으로 오래 바라보다가, 어린 승일이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시장에라도 가는 시늉으로 집을 나설 때 은수 자신 고작 한나절의 외출 이상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세중의 퇴근 시간까지는, 저녁을 지어야 할 시간가지는 돌아오리라. 어느 모진 손길이 아이와 남편, 고양이처럼 길든 집에서 떼어낼 수 있으랴.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무심히 나선 걸음이 집에서 멀어질수록 마치 한없이 풀리는 연줄처럼, 바닥모를 깊이로 소리없이 떨어져내리는 추처럼 점차 무게 없이 가볍게 등을 밀어내는 것이었다. 아이와 남편, 자잘한 일상 생활로 이어지는 현실이 뿌리 없이 부랑하는 삶으로 불투명하게 흐려지며, 현재의 삶을 환상으로 밀어낸 자리에 대신 가슴 밑바닥에 단단히 매몰된 기억의 촉수가 살며시 고개를 들곤 했다. 때문에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들이 자신이 가고있는 곳도 모르면서 제 걸음에 취해 한 발짝씩 옮겨놓는 것처럼 뭔가 잊어버린 것과 만날동경>순례자의>바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