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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창간된 1988년부터 한겨레는 수많은 이 시대의 글장이들의 산실이었다. 초기 리영희 선생(감히 이름만 부르지 못하겄다.)을 비롯한 송건호 선생, 김중배, 정운영, 고종석 등부터 현재의 손석춘, 정연주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관통하는 진실한 글장이들을 배출한 용광로와 같은 공간이 바로 한겨레였다. 그러나 그 진실의 용광로에서 나온 쇳덩이들이 그 선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산화해 간 적도 많았다. 대표적 인물로는 정운영을 들 수 있겠다. 현란한 수사와 방대한 지식을 동원하는 그의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동경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글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현학에 갇혀 결국은 중앙일보로 투항해서 마치 그와는 전혀 격이 다를 것으로 생각했던 조선일보 김대중과 같이 '감상법'을 남발하는 천박한 글장이가 되고 말았다. 그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객관을 가장한 너무 높은 자긍심이다. 즉,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단계 높은 곳에서 바라봐야만 하고, 자신은 바로 한 단계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현실로부터 유리된 감상자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정운영에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은 바로 정연주라고 할 수 있겠다. 정연주 한겨레 논설주간이 새로운 책을 두권 내었다. '기자인 것이 부끄럽다.', '서울-워싱턴-평양', 첫번째 책은 그동안 여러 매체에 실렸던 그의 칼럼들을 묶은 것이고, 두번째 책은 그의 10여년 간의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정리하는 일종의 개인 화일이다. 특히 이 책은 정연주 개인의 자서전적인 성격도 있어서, 정연주라는 인물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여러가지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두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정연주라는 인물이 글재주가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연주의 글은 투박하고, 소위 말하는 객관의 외피를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진실이 있고, 힘이 있다. 그의 글이 이런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가 외부에서 또는, 한 단계 위에서 일을 서술하지 않고, 현장에 발을 딛고 서술하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의 대외 전략을 이야기할 때는 그 전략이 한국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고려한다. 그가 발딛고 태어난 이 땅의 미래와 역사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 그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고은의 시처럼 이러한 글의 행동은 그의 피가 맑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그의 애정어린 글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역사의 힘과 희망이지만, 그의 '서울-워싱턴-평양'은 미국과 북한에 대한 현실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 정보라는 것은 단순히 사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연주라는 조국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기자의 눈으로 가공된 쓸만한 정보로 독자에게 제공된다.앞으로 이 책은 더 발간될 것으로 기대되는데, 그 어떤 매체에 의한 정보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획득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재승덕(材勝德)보다는 덕승재(德勝材)라는 평범한 진리를 정연주를 보며 새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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