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우... 아직 다 읽진 않았지만, 너무 큰 감동으로 다가와 우선 감상을 남긴다.
몇 주 전, 기독교 교육에 관한 전문가이신 웨슬리 선교사님을 만나서 얘기를 하다가, 올바른 교육에 대해 우리가 막막해 하자, 그 분이 하신 말씀이 '하자센터에 가서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라.'고 하셨다.
하자센터에 대해서 얘기는 그전부터 많이 들었지만, 한번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찾아가는 것도 좋을 듯 했지만, 우선 책부터 읽어보는 게 어떨까 싶어, 가장 처음 펴낸 책인 듯한 이 책을 빌렸다. 부제가 "하자센터가 만들어지기까지"이다. 지역 청소년을 위한 방과후 교육문화공간을 꿈꾸고 있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책일듯 해서다.
아직 얼마 읽지 않았는데, 완전 감동이다. 내가 지금까지 고민하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던 게 바로 다 여기에 있다. 이분들은 이 문제들을 이미 다 고민하시고, 거기에 대해 연구하고 대안을 내어 놓으신 거다.
아주 기쁜 마음에 이후에 나온다는 하자총서의 책들을 찾아봤지만, 계획대로 나오지 않았는지 보이지 않아 살짝 아쉽다. 그 이후 다른 책들이 나오긴 했지만...
교육과 우리 사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청소년이든 아니면 성인이든지 간에) 이 책을 권한다. 같이 읽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생각하고, 같이 대안을 모색해 보면 좋겠다.
새삼스럽게, 책의 위대성... 사람들의 고민과 사유와 시도와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만드는... 에 고마움과 찬사를 보낸다.
|
| 하자센터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게 된 여러가지 배경들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이것이 비단 대안교육이라는 분야에만 한정시켜서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기력한, 꿈이 없는, 배회하는, 저급한 성인문화에 찌든.. 이런 형용사들로 대변되던 우리나라의 청소년들.. 이들을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든 어른들의 패러다임, 어른들의 사회구조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내가 10대였던 시절.. 뭔가 불합리하다는 느낌,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을 항상 가지고 살면서도 한편으로는 꾸역꾸역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느라 힘들어 했었던 것 같다. 힘들어 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 나부터 실천해보자는 생각까지는 이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엔 그냥 그런 나 자신이 더욱 싫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이책을 읽으면서 약간은 위로받는 기분도 들었다. “ 그건 니가 못나서만은 아니었어.괜찮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 아직 삶의 방식에 대해,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놀면서 일한다]는 사상은 정말 큰 숙제를 해결한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해주었다. |
|
이 책은 앞쪽의 이론 부분에서 자본, '낯선' 청소년 문화의 도래, 미디어의 발달, 아이들의 정체성과 문화 그리고 다양한 방향으로의 자아실현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와 '꺼리'들을 잘 버무려 세련된 글을 만들어 낸 게 마음에 든다. 나는 이미 청소년기는 지난 사람이다. 아직 과도기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고등학교에 다니지도 내 의복에 대해 규제를 받지도 않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데로 내 생활을 조직할 수 있는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면 내가 지금 스스로를 청소년이 아니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사회라는 특수한 배경 속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문화와 청소년 문화의 단절. 돌아가서 뭔가 말해주고 싶어도 졸업생에게는 닫혀있는 내 고등학교의 홈페이지를 보며 체험으로 느낀 부분이었다. 뭔가 '있어' '들어'보이는 척 해야 하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나를 보며 또한 느껴던 바였다. 내가 좋아하던 댄스 가수의 노래 대신에 잘 알지도 못하는 자우림 노래를 버벅대며 부르는 나를 보며 느낀 바로 그 문화의 단절이 우리 사회의 근대화 - 민주화 과정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비교적 잘 보여주어서 좋다. 물론 책의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쪽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책 역시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소외, 탈선한' 아이들에 대해 참으로 긍정적인 시각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각은 후반부의 '왕따'가 컴플렉스의 반영이라는데서 멈춰버린 글에 이르면 절정에 달한다.ㅡ 방황하는 아이들 중에서도 소수의 당하는 아이들보다 가해자인 다수의 입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하지만, 나도 정말로 토론을 통해 즐겁게 공부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춤추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컴퓨터를 멋지게 조립하거나 고쳐보고 싶었다. 하자 센터가 ('하자있는 사회의 하자있는 아이들이 오는 곳'이란 의미에서 하자!로 변환) 비록 학과 공부에 대해서는 크게 개선에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그 외의 공부를 통한 삶의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곳이기에, 답답한 학교 공부에만 치우쳤던 내 과거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쯤은 꼭 교육을 받아보고 싶다. 신 인류이자 낯선 존재라는 청소년에 대한 전반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나는 내내 내 생각을 했다. 지난 내 삷과 내 가치관, 그리고 내 인생, 앞으로의 나. 지난 세월은 공부와 소소한 놀거리들을 빼면 남는게 없고 앞으로의 나는 부슬비 내리는 밤 안경을 벗고 우산 없이 걷는 것 처럼 마냥 뿌옇고 불확실해서 누군가의 안내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하자 센터의 아이들이 많이 부러웠다. [인상깊은구절] 나도 예전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고 안타까워서 잠도 안 올 지경이다. 한마디로 철저하게 속고 살았다는 분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성공적이지 않았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만성적으로 소외된 삶을 살았다. 사고할 줄 모르고 그냥 불편해도 다른 방법을 모르니까 참고만 지내 왔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