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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와 한 여자가 저녁 만찬을 나눈다. 한 때는 연인이었다. 지금은 따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헤어진 뒤, 오래도록 만나지 않았다. 대략 6년. 서로 연락조차 없었다. 끝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여자는 이별의 말 한 마디 없이 남자의 인생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아이도 둘 낳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었다. 남자가 보기에도 여자의 삶은 완벽해 보인다. 자신은 여지껏 혼자이고, 아직도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는데. 남자의 이름은 헨리. 여자의 이름은 셀리아. 언뜻, 로브라이너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주인공의 이름이 해리, 샐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비록 서로 미련이 남아 있다 해도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둘은 원래 미국의 첩보원이었다. 근무지는 오스트리아의 빈. 남자는 현장 요원, 여자는 연락책이었다. 혹시 '본 아이덴티티'라는 영화를 보았는지? 보았다면, 헨리를 맷 데이먼으로, 셀리아를 파리 지부에서 비슷한 일을 했던 줄리아 스타일스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나는 그 둘이 주인공 커플이라 상상하며 책을 읽었다. ![]() 남자는 아직도 현직이지만 여자는 전직이다. 여자는 남자를 떠나는 것과 동시에 첩보원 일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의 만남이니 만큼, 오늘의 만남이 순수한 만남일 리는 없다. 첩보원 일을 떠났어도 여자는 잘 알고 있다. 남자가 옛 추억 따위에 젖어 자신을 찾아 올 리는 없다는 것을. 맞다. 남자에겐 남자에겐 꿍꿍이가 있다. 그들을 결정적으로 헤어지게 만들었던, 6년 전 사건. 여객기 하나가 아랍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었다. 그들은 동료의 석방을 요구하며 빈 공항에서 대치 중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그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과 내통하는 자가 있었다. 그 변절자로 인해 피랍 여객기 안에서 범인들의 정보를 알려주던 요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비극으로 끝났다. 요원은 머리에 총을 맞아 죽고, 여객기에 인질로 잡혀 있던 120명의 승객도 전원 사망해 버린 것이다. 그 사건으로 둘은 영영 갈라졌다. 그런데 6년 후, 바로 그 사건이 다시금 과거의 심연에서 현재의 수면으로 불쑥 부상했다. 배신자를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 하나가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그 정보가 나타내는 주요 용의자는 두 명. 하나는 여자의 직속 상사 빌이고, 다른 하나는 셀리아, 즉 여자다. 그렇게 남자는 순서대로 찾아 온 것이다. 먼저 빌을 만나고 이젠 여자 차례다. 남자는 여자가 배신자라 생각한다. 오늘의 만찬은 그 진실을 확인하는 자리다. 하지만 단순한 만찬은 아니다. 사실상 재판이나 다름없다. 여자가 배신자라는 게 확인되면, 첩보부의 관례에 따라 바로 즉결 처분 당할 테니까. 첩보부에 관타나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자, 과연 이 만찬의 종막은 어떻게 될까? ![]() 미국의 스릴러 작가 올렌 슈타인하우어의 2015년 발표작, '배신의 만찬'은 오로지 남자와 여자의 만찬으로만 이뤄지는 작품이다. 독자는 그 만찬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며(일단 만찬이 시작되면, 작품의 현실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만찬 장소를 떠나지 않는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다이얼 M을 돌려라'나 '로프'처럼.) 서로에게 유일했던 사랑이 어떻게 고통과 죽음만을 낳은 배신에 이르게 되었는지, 세밀한 내면 묘사(책은 남자와 여자의 내면을 한 장씩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우리는 남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다가, 그와 똑같은 상황을 여자의 입장에서 읽게 된다.)와 거듭된 반전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 묻게 될 것이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냐?" 왜냐하면, 이 모든 배신과 비극의 기저(基底)엔 바로 사랑이 있었으므로. 사랑이 그들의 모든 고통을 가져 오고, 죽음마저 불러 왔던 것이다. 사랑, 그것이 유죄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그들이 사랑을 버릴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러겠는가? 아무리 대의를 위한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운명의 연인을 죽도로 내버려 두거나, 등 뒤에 차디찬 배반의 단검을 꽂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랑 때문에 가문과 신분 그리고 조국을 배신하는 것을 오히려 위대한 사랑의 힘이라며 칭송한 우리가 아니었던가?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처럼. 이성으론 아무리 알아도,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들의 선택은 필연이었다. 그들의 비극은 예정된 운명이었다. 오직 사랑한 것이 죄였고, 그것에 이미 파국은 점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소설로 깊이 깨닫는다. 사랑이 가진 비극성과 그것에 결부된 한없이 연약한 인간의 실존을.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했나? 그 사랑을 보존하기 위해 잘라 버려야 할 것이 이다지도 많은 것을. 마음이 연약하기에 그렇게 밖에는 달리 할 수 없는 인간인 것을. 헨리와 셀리아. 알고보면 그들은 햄릿의 후예들이다. 햄릿은 자신의 복수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감행했다. 많은 사람과 자신마저 파멸될 것을 알았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어찌하랴? 그것이 인간인 것을. 이청준 작가의 '벌레 이야기'(나중에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만들어진)에 나오는 주인공이 생각난다. 자신의 아이를 유괴당한 여인이. 그녀는 신의 믿음을 통해 범인을 용서한다. 자신의 용서로 범인을 구원할 것이란 생각에 감옥에 있는 범인을 면회한다. 하지만 범인이 먼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한다. 감옥에서 신을 믿고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비로소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하면서. 신의 용서로 새 삶을 살게 된 그는 반드시 여인을 만나 사죄를 드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낯빛은 정말 신의 용서를 받은 것처럼 평온해 보인다. 그녀는 절망한다. 용서는 자신이 해야 할 것이었다. 범인으로 아들을 잃은 자신이. 반드시. 하지만 게임은 이미 끝나 있었다. 비극의 당사자인 자신은, 그로 인해 지금도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은 정작 신과 범인의 협잡에 의해 소외되어 버렸다. 여인은 절절히 깨닫는다. 자신이 믿었던 신에게 배신 당했음을. ![]() 우리는 여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녀는 이미 그를 용서하려 했다. 그 용서의 마음 밑엔 그가 과거의 잘못에서 자유롭게 되어 다시금 삶을 새로이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자비심이 있을 것이다. 자비심이 주가 되었다면 누가 용서하든, 아무 상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인에겐 누가 용서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반드시 자신이어야 했다. 그녀가 믿었던 신은 여인에게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했다. 이웃 사랑의 원동력은 자신의 부재에 있었다. 하지만 여인도, 우리도 자신을 포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프로이트도, 바디우도 그런 이웃사랑을 불가능한 명령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는 감정따라, 마음따라 흐를 수밖에 없는 미약한 벌레이기에. 겸허히 인정하자. 그러므로 헨리든, 셀리아든 누구의 잘못이라 단죄하는 건, 오롯이 자만일 뿐이라고 말해야 하리라. 우리는 그들을 그저 연민해야 한다. 같은 햄릿으로서, 같은 벌레로서, 그들과 같은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동포로서. 그 연민의 눈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서로에 대한 위로와 격려 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며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것을 믿도록 하려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바로 거기서 우리 고통의 대부분이 나오는 것 같다. 할 수 있다 생각하기에 못하면 질책부터 하고, 가능하다 믿기에 닥달부터 하고 본다.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지닌 자질, 개성은 쉽게 묵살되고 목표가 절대이자 그것을 이루느냐 마느냐가 전부가 된다. 그가 아무리 열악한 처지에 있든, 가지고 있는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했던, 상관없다. 이루지 못하면 모조리 무능한 자의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가 겪는 아픔마저도 그리 치부되어 우리가 그를 배려하지 않고, 돌보지 않아도 쉽게 정당화할 수 있도록 만든다. 만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했다면 어땠을까? 이와 반대의 상황에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우리가 겪는 아픔의 절반 정도는 줄지 않았을까? 우리가 강하다는 생각은 이 불안정하고, 예측불가의 세상에서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란 달콤한 환상을 준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마저 상하게 할 달콤한 독약에 불과하다. 허세란 독이 든 음식인 것이다. 내 생각 대로, 믿음 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는 삶은, 정녕 '배신의 만찬'이라 할 만하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헨리와 셀리아가 그랬듯, 삶이 발 밑에서 붕괴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내가 못나서, 더 잘난 나가 될 수 있었는데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고만 생각했다.아니다. 인간이 약한 것이다. 삶 자체가 그런 것이다. 그러니 나의 단점도, 약점도 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겸허히 우리가 가진 약함과 한계를 인정한다면, 그 한계 안에서 나와 똑같이 버둥거리며 범위를 좀 더 넓히려 애쓰는 우리들만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한다. 연민으로 위로와 격려의 손길을 절로 내미게 되는. '배신의 만찬'은 이런 걸 돌아보고, 자주 곱씹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알고 보면 헨리와 셀리아, 그들에게 더욱 필요했던 존재의 진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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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의 스파이 소설 작가
"올렌 슈타인하우어(Olen
Steinhauer)"가 2015년에 발표한 "배신의 만찬(All the Old Knives)" 입니다. 이 작품 "배신의 만찬"은 현재 영화 판권이 팔려서 작가가 직접 각본에 참여하며 프리프로덕션 상태에 있습니다.
오랜만에 고국인 미국으로 온
"헨리 펠헴"은 6년 전 빈에서 같이 일 했던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셀리아
파브로"를 만나기로 합니다. "셀리아"가 정해준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의 대화는 지난 추억들에서 6년 전에 자신들의 이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 비극적인 테러사건으로 흘러갑니다.
그날 밤 많은 일들이
끝났다. 우리가 함께한 마지막 식사였고, 그 뒤로 몇 시간
뒤 공항에서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에 우리는 마지막 섹스를 나눴다. 아주 좋지도 않았고 아주 나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때가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좀 더 열심히 했을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주고, 더 많은 것을 받아야 했다. 좀 더 많은 추억을 쌓았어야 했다. 나중에 남는 건 추억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6년 오스트레일리아, 비엔나 국제공항에서
120명 이상이 타고 있는 비행기가 과격 이슬람 단체에게 납치되는 테러 사건이 일어납니다. 120명의 목숨이 위태로운 긴박한 순간, 빈 주제 CIA 요원들은 우연히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베테랑 정보원을 통해 정보를 알아내며 테러범들과 인질들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보원의 정체가 발각되고, 그 정보원의 정체가 어떻게 발각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남긴 채, 테러는
인질들과 테러범들이 모두 죽는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6년이 지난 후, 여전히 CIA 비엔나 지국에서 일하는 "헨리"는 새롭게 밝혀진 당시 테러 사건의
정보 때문에 당시 동료들을 만나러 다니고, 이제 동료이자 당시 연인이었던 "셀리아"를 만날 차례가 됩니다.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평범한 주부가 된 "셀리아"는 반갑게 "헨리"의 연락을 받으며 자신의 동네 레스토랑에서 만날 약속을 합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당시 서로가 가졌던 감정들을 회상하며 소소한 잡담을 나누다가 결국 테러 사건의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이제 오랜만에 재회한 두 남녀는 6년 전 테러 사건 때 정보원의
정체가 발각된 경위를 두고 각자의 입장에서 기억하는 당시 이야기들을 주고 받기 시작하며 심리전을 벌이게 됩니다.
그녀가 머뭇거리며 적당한
말을 찾는다. "완벽해. 거기에 비하면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건 귀여운 정도지. 열정은 작은 눈속임 같은 거야.
열망 같은 것도 마찬가지지. 그 모든 것이 아이에 대한 사랑 앞에서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니까."
오랜만에 만난 과거의 연인들이
만나 심리전을 벌이는 "배신의 만찬"은
이야기의 대부분이 레스토랑 한 곳에서만 진행되는 상당히 독특한 형식의 스파이 소설입니다. 히치콕의 몇
영화("로프"나
"다이얼 M을 돌려라" 같은)를
연상시키는 스타일이지만 간간히 회상씬이 끼어들어 과거의 이야기가 긴장을 고조 시키는 작품입니다. 한
연인의 사랑은 비극적 테러사건이 일어난 날 갑작스럽게 여자가 떠나가면서 끝이 납니다. 6년 뒤, 남자는 자신을 떠난지 6개월 만에 늙은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전 연인을 만나러 갑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확인받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들어야 할 말을 확실히 듣게 되고 나면 어떻게 해야할지 알고 있지만 여전히 여자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습니다. 여자도 조금씩 정보원 시절의 감을 되찾기 시작하며 두 남녀의 대화는 미묘한 감정들과 긴장감
속에 빠지게 됩니다. 한때 사랑했던 남녀는 서로의 입장과 감정, 시각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각자가 몰랐던 사실들과 오해를 알아가지만 이 대화와 식사가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 나는 셀리아가 입을 열길
기다리지만, 그녀의 눈빛은 딱딱하다 못해 무섭게 보일 정도다. 이런
유토피아에서 사는 사람이 지을 표정이 아니다. 나는 걱정과 흥분이 뒤섞인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셀리아가 판세를 뒤집으려고 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는 지금 자기가 같이 식사하던 사람이 누군지 잊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작가 "올렌 슈타인하우어"는 국내에 출간된 "코드명 투어리스트"를 포함해 냉정시대의 동유럽을
배경으로한 "The Yalta Boulevard" 시리즈 등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떠오르는 실력파로 인정받는 작가입니다. 이 작품 "배신의
만찬"은 작가가 한 장소에서만 벌어지는 심리 첩보전을 쓰고 싶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작품입니다. 그 결과 상당히 독특하고 세련된 스파이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제가
읽어본 작가의 작품은 단 두 작품뿐이지만 스파이 소설이라는 틀에서 사람의 보편적인 감정을 상당히 잘 포착하고 묘사하는데 탁월합니다. 이 작품에서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한 심리전 속에 사랑, 희생, 의심, 미련, 이기심
등이 섞이는 감정 변화를 아주 훌륭하게 녹여냅니다. 조용히 시작하다 마지막 100페이지 쯤부터 밝혀지기 시작하는 진실들에 독자들은 그냥 넋놓고 빨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고 나면 정말 인상 깊은 엔딩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 "당신이 날 지켜줄
거지?" "늘 그랬듯 언제까지나." 나는 거짓말을 한다.
"배신의 만찬"은 근래 제가 읽은 스파이 소설 중 가장 정적이지만 수많은 감정들의 소용돌이를 경험하게된 아주 멋진 작품입니다. 형식은 단순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진화된 에스피오나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인간은 모두가 자기중심적인 생물이다라는 걸 확인하게 되어 씁쓸하기도 합니다만, 올해 출간된 소설 중 어쩌면 저의 베스트 리스트에 올릴 멋진 소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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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무슨 내용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원제목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제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것은 2006년 빈 공항 테러 사건 이후 서로 사랑했던 두 연인이 6년 만에 만나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심리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일 때문에 갑자기 헤어진 전 여자 친구를 만나러 온 헨리의 로맨스 정도로 생각했다. 그가 보여준 셀리아에 대한 감정과 표현들이 살짝 나의 이성을 흐려놓았다. 물론 이 만남이 단순한 과거의 추억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업무가 주된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언제나 어떻게 튈지 모른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헨리와 셀리아가 번갈아서 화자로 등장하고, 마지막에 두 사람이 같이 화자가 된다. 헨리가 현재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면 셀리아는 과거 속에서 현재로 넘어온다. 모든 사건은 바로 이 과거 속에 있다. 바로 2006년 빈 공항에서 있었던 이슬람 과격단체의 비행기 납치 사건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건으로 비행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죽었다. 이것이 헨리와 셀리아 모두에게 강한 트라우마가 된다. 특히 셀리아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고, 일을 그만두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아주 건조하게 풀어낸다. 이 건조함 속에 진실은 단편적으로 표현되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이어간다.
헨리가 갑자기 셀리아를 찾아온 것은 2006년 빈 공항 사건 당시 있었던 미 대사관 내부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다. 납치된 비행기 속에는 정보 요원이 있어 문자로 정보를 보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언론이 생방송을 하는 상황에서 특수부대가 작전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이 단체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이 과장에 작가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설정이나 어떤 액션도 넣지 않았다. 실제 상황이란 점을 제외하면 일상적인 삶의 풍경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지만 실제 무대와 그 뒤에서 벌어지는 정보전은 조금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6년 만의 재회는 약속이란 이름의 레스토랑에서 벌어진다. 셀리아가 선택한 식당이다. 오랜만에 만난 두 연인은 가벼운 이야기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일상적인 모습이다. 이 모습 뒤에는 서로 다른 숨겨진 의도가 있다. 솔직히 후반부로 가기 전까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 사이사이에 현재의 삶이 드러나고, 옛 감정이 흘러나온다. 여기에 휩쓸리면 작가가 살짝 풀어놓은 함정에 빠진다. 특히 헨리의 감정에 빠지면 더 심하다. 나는 그의 손길과 추억에 빠졌다. 그러다 예상하지 못한 문장을 읽고 놀랐다. 뭐지? 숨겨진 다른 의도가 있나, 하고. 이것은 작은 시작일 뿐이었다.
셀리아는 현재 두 아이의 엄마다. 그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자와 결혼했다. 당연히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진실은 그녀만이 안다. 이야기 후반부는 바로 이것에 대한 설명이자 이 소설의 백미다. 그녀가 발견한 한 통의 전화가 모든 것의 시발점이다. 이 전화 때문에 연인과 직장을 떠나야했다. 이 한 통의 전화가 빈 공항 사건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127명의 죽음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평생 이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한다. 꿈속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이 상황과 연결되는 일도 일어난다. 이렇게 진실은 잔혹하고 무자비하게 다가온다. 사랑의 이름을 가지고.
무슬림과 테러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이것이 주된 내용은 아니다. 실제 중요한 것은 약속 레스토랑에서 만난 두 남녀의 심리전이다. 현재와 과거는 어느 순간 만나게 되고, 진실은 이 둘의 충돌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각자가 가진 패를 숨겨놓고 싸우는 둘의 모습은 그냥 평범하기만 하다. 그래서 마지막이 더 인상적이다. 제목 그대로 배신의 만찬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잘 짜인 구성 속에서 스파이의 직업과 인간의 본성 중 한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연출할지 궁금하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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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헨리와 셀리아는 6년만에 '약속'레스토랑이라는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다. "아니, 자네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야.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뿐이지. 그녀도 나처럼 자네가 무모하다고 말할 거야. 벌써 5년이나 지났고, 그 여자는 결혼도 한 데다 아이도 있어. 자네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약속'레스토랑이라는 이름에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희망을 가지는 헨리는 아직도 셀리아를 그리워하고 그녀와의 재회에 은밀한 기대감을 품는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감과 동시에 헨리에겐 분명한 목적이 있고, 한때 사랑했던ㅡ어쩌면 아직까지도 사랑하고 있을지 모르는 여자에게서 그 목적을 달성해야만 한다. 셀리아. 전CIA 요원이었던 그녀는 과거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캘리포니아로 오면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간다. 이제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다. 그런 그녀에게 헨리가 찾아온다. 그들은 약속된 장소에서 만찬을 즐기며 서로를 향한 진심과 거짓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심리게임을 펼친다. 그들 앞에 놓인, 과거 120명의 목숨을 앗아간 빈 공항 테러 사건의 진실. 서로를 향한 의심속에 감추어져 있는 그 사건의 진실을 이제는 밝혀야만 한다. "시작하지그래?" "시작하다니 뭘?" "빈 공항 사건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내가 취하기 전에 물어 보는 게 좋을 거야." 나도 모르게 오른손이 지멘스가 들어 있는 주머니 위로 향한다. 헨리는 셀리아의 손짓 한 번에 그녀와 함께 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녀에 대한 감정을 여전히 피부로 느끼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오직 그녀에게서 테러 사건에 대한 진실을 듣기 위해 능수능란한 거짓말을 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몰래 녹취하는 등 치밀한 행동도 한다. 인간이 때때로 이성과 감성을 얼마나 쉽게 분리하는지, 그로 인해 감성이란 게 이성에 비해 얼마나 부질없는 건지, 혹은 이성이란 게 감성에 비해 얼마나 하찮은 건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테러 사건의 진실은 이성적 판단이 필요한 시기에 감성에 지배를 받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 분리할 수 없는 두 가지, 이성과 감성으로 인한 비극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두 명의 주인공이 펼치는 심리전에 그들이 겪은 과거의 사건과 서로에게 품은 비밀들은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헨리를 위한 셀리아의 비밀, 셀리아를 위한 헨리의 판단이 만들어 낸 비극은 결국 그들에게 주어진 결말로 다가간다. 작가가 그린 결말은 이 책의 모든 부분 중 가장 흥미로웠다. "완벽해. 거기에 비하면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건 귀여운 정도지. 열정은 작은 눈속임 같은 거야. 열망 같은 것도 마찬가지지. 그 모든 것이 아이에 대한 사랑 앞에서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니까." 셀리아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과거는 없고 언제나 미래만 있는 그녀의 인생을 위해, 그녀의 아이들을 위해 처음부터 그녀는 헨리의 음식에 독을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헨리는 셀리아를 처리하길 원하냐는 질문에 그녀가 아이들과 쓰는 말인 "당근이지."라고 대답한 후 죽게 된다. 그녀를 지키기 위한 그의 판단은 과거 테러 사건에서도, 그리고 그녀로 인해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계속된다. 테러 사건과 무슬림 등 무거운 소재들을 사용한 스릴러 소설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와 그녀라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읽은 나는 사랑이 많은 것들을 파괴하지만,ㅡ설사 그게 누군가의 목숨일지라도ㅡ'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역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