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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0-003 오래된 일기>
저자 : 이승우 출판사 : 창비 발행일 : 초판 2008년 6쇄 2014년 11월
잃어버린 일기장을 다시 채우는 용기. 가면 쓴 자아의 내면을 두 눈 크게 뜨고, 심장 벌렁거리며 돌아보도록 하는 외침. 숨겨졌던 진짜 나를 만나는 고독한 독서.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책을, 이런 이야기를 목말라했던가. 이승우 작가의 가슴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한국문학의 깊은 층위를 다져주는 질곡한 이야기는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의 살아있는 이야기이고, 내게로 흘러 들어와 나를 흠뻑 적시고 다시 자녀에게로 구전으로 젖처럼 물려주는 영혼의 상속과 같다.
비교적 근래에 발표된 그의 9편 짧은 소설은 한 편 한 편이 혼자 읽기가 아까울 정도로 섬세하고 고독했다. 내 어린시절의 이야기였고, 어머니의 아픔이었으며, 아버지의 통곡이었다.
인간은 모두 고독하고 고립된 섬이면서 뭍으로 연결되어 군락을 이루며 함께 살아간다. 이 책은 고독하고 고립된 섬으로서의 인간을 집중 조명한다. 살아있는 자아, 자아의 깊숙한 내면에 뿌리 내리고 있는 깊은 슬픔과 마주하면서 동시에 너를 불러온다. 고독은 너가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혼자 살아가는 동물들은 고독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함께 무리지어 살아가는 개체는 외따로 떨어질 때 내면의 고독과 마주한다.
대학생이 된 나는 고향을 떠났다.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으로부터 놓여날지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가 서울로 향하는 내 짐보따리에는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착각이었다. 물리적 거리가 의식의 거리와 비례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유치한가. 그러나 그런 줄 알면서도 짐짓 유치함에 의지하게 하는 간절함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나의 짐보따리에는 아버지는 물론 규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나는 거리와 의식의 상관관계에 대한 유치한 믿음을 견지하는 쪽을 택했다. 마음이 기울면 믿음이 된다. 유치한 것이 크게 기울 수도 있고, 고상한 것이 조금 기울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다. (16쪽, 오래된 일기편)
지난 추석 때 부산에 내려가 어머니를 뵈었다. 처갓집에 갔다가 수원으로 올라오면서 다시 인사를 드리러 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독거노인으로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어머니가 안쓰러웠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너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 했노, 하면서 어머니는 목이 메었다. 나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어머니와의 쓴뿌리가 있다. 어린 시절 가슴에 박힌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도 뽑혀지지 않았다. 어머니도 알지 못할 것이니 나 혼자만 가슴에 안고 있는 숙제다. 그래서 어머니를 뵐 때마다 나는 늘 양가감정을 가진다. 그랬는데, 지난 추석 때 돌아서며 들은 그 말에, 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부산에 사는 동생은 거의 매주 어머니를 찾아와 애교도 부리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간다. 멀리 떨어진 나는 그저 일주일에 두어 번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게 고작이다. 동생이 그랬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맨날 이렇게 와도 형밖에 없제. 어머니가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고, 동생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나가 뇌졸중으로 하늘나라로 간 뒤, 동생과 나는 이제 이 세상에 형제라곤 우리 둘밖에 없구나.하며 새삼 형제애를 강조했다.
이승우의 표제작, “오래된 일기”는 형과 동생의 이야기다. 둘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우월감, 열등감, 죄의식, 피해의식 그러나 끊을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형제라는 관계, 그것이 만들어주는 숨어 있는 자긍심. 자부심. 자랑거리 같은 것들이다. 중국 작가 위화는 거의 900쪽에 이르는 대서사로 형제 이야기를 만들어냈지만, 한국 작가 이승우는 단 27쪽으로 그 모든 것을 품었다.
’상규는 집이 흔들린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그의 누나였다. 그녀가 밥상을 치우러 들어갔을 때 그는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38쪽) 으로 시작하는 두 번째 작품 “무슨 일이든, 아무 일도”는 읽자마자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다.
상규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모텔에서 돌아왔을 때 상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60쪽)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 바빠 아들의 상태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상규의 집에서는 상규가 있을 때 (상규가) 없는 것과 같았던 것처럼 (상규가) 없을 때도 (상규가) 있는 것과 같았다.
마지막 글인 ‘그리고 아직은 밥을 잘 먹었다. 세상은 불안한 채로 잘 굴러갔다. 무슨 일이든 일어났지만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도 했다.’ (61쪽)을 보더라도 카프카의 「변신」과 닮았다는 생각을 더욱 굳게 해준다.
나의 어린 시절은 상규와 닮았다. 그것은 내가 바라보는 가족에 대한 입장이다. 당연히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은 아니었겠지만, 나에게 ‘나’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에 속했다. 투명인간이라고 생각한 나는 초등학생 때에도 방학만 되면 가출을 꿈꾸고, 가출계획을 세우고, 가출을 위한 용돈을 모으고, 출발지점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기억은 나의 동화작품에 설핏 끼워져 있는데, 나중에,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고아가 될 때, 어떤 식으로든 나의 문학작품으로 표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어른이든 어린아이든, 삶에서 느끼는 무게는 결코 다르지 않다. 소설 속에서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을 거라 굳게 믿어본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의 작품 하나씩 뽑아내어 길고 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시간이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리뷰는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비록 300쪽이 되지 않는 짧은 단편들 모음이지만 이 책에는 한국사회가 품고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한국단편 만만세!
저자는 정말 끈질기게 한국인의 가슴을 꽉꽉 짜낸다. 치약 튜브 마지막까지 짜내듯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기억의 언저리, 관습의 언저리, 한(恨)과 인연과 사랑과 삶의 건조함을 우리 머리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한줄한줄 마지막까지 들쳐내고 뒤집고 끌어내어 기어코 문장으로 만들고 만다. 아, 이승우다.
가슴 한켠에 슬픔을 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 스스로 섬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리뷰]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품고 있는 모든 생각과 갈등 그리고 아픔과 성숙 그리고 후회와 화해가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린 수많은 버들처럼 밤이 되어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모두 따로 떨어져 있지만 결국 하나의 나무에 매달린 같은 핏줄이라는,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성찰 같은 것.
그러니 우리, 너를 외면하지 말자. 나는 곧 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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