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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낯선 친구들 데려왔다. 방문을 닫고 저희들끼리 속닥거린다. 나는 뭔가 볼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방문을 연다. 별로 할 말이 없다. "저, 간식 뭐 줄까?" 딸의 못마땅한 표정은 내 심사가 눈치채였다는 반증이리라. 그리 오래지않아 딸의 친구가 갔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묻는다. "걔, 공부 잘하니?" 아마 그 아이가 뭔가 못마땅했었나 보다. 내가. 남의 집 아이가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뭐 어쩌겠다는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 아이도 그리 성적이 좋지 않으면서, <어린 왕자>를 읽은 이래 그처럼 유치한 질문을 하지 않겠다 다짐해 놓고도 입에서 튀어나와 버린 질문. 어쩌나. 딸의 실망한 표정과 하루 종일 속으로 싸우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공부를 잘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시험 성적이 높다는 뜻일까? 나는 소도시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그때까지는 소위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러나 기억에 뭐 특별히 공부를 했던 것 같지는 않다. 당시에도 과외라는 게 있었는데, 내 아버지는 별다른 방법을 써서 성적을 높이는 일이 가소롭다고 여겨, 무조건 교과서만 보게 했다. 심지어 참고서 사 주는 일에도 인색했고, 몸을 똑바로 하여 공부해야 된다며 회초리를 들고 등 뒤에 서 있기 다반사였다. 온갖 것에 간섭이 심했던 아버지는, 공부는 무릇 정신이 맑은 새벽에 해야 한다며, 밤에는 책을 읽고 있어도 불을 꺼버리고 꼭두새벽에 깨워 감시의 눈길을 부라리기도 했었다. 그 불만이 아버지 아닌 엄마에게로 쏟아져 유독 엄마에게만 가시 돋힌 말을 뱉어내곤 했던 건 그야말로 어린 날의 치기에 다름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버지가 그 불손한 모습을 보았다. 6학년이었던 나는 발가벗긴 채 추운 골목길로 내쫓겼다.
"인간 안 될 것은 공부시키는 게 죄다."
그 말이 가슴에 와 박혔다. 아마 조금은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공부가 인간됨과 어느 정도 상관이 있으리라는 것. <공부를 잘해서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이하 <공도인>)이란 책 제목이 예사롭게 보아넘겨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20년 전 이맘때 언땅에 묻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 돌이켜 보면, 공부란 도덕적 인간을 기르는 일 외에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양호 저자가 강하게 주장하듯 경쟁력이 공부의 '목적'일 수 없고, 경쟁력 운운이야말로 세상을 이처럼 '비열한 거리'로 바꿔 놓은 장본인에 다름 아니다.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 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라 '욈'이고 '베껴 씀'이다. 그것을 통해 어떻게 바른 인간이 길러질 수 있으랴. 그저 이기고자 하는, 생존욕구만 남은 다른 동물과 비슷해질 수밖에. 공자가 말한 '學'이 달달 욈, 혹은 남을 이기고자 하는 수단일 수 없음은 당연한데, 우리 어른들은 툭하면 자녀에게 공부하라면서, 공자의 말을 가져다 붙인다. 웃길 노릇.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할까? 그러면?
<공도인>에서는 '빼어나고 고운 얼굴을 지닌 선비들', 예컨대 정도전, 세종, 이순신, 허난설헌, 허준, 김홍도, 정약용, 김만덕, 최제우, 최시형, 한용운, 함석헌, 윤동주, 김구, 전태일, 윤상원 등을 본받는 일을 공부라고 하였다. 그를 위해 다섯 씨를 싹틔워야 한다고 했는데, 솜씨, 맵시(씨), 맘씨, 말씨(말의 씨), 글씨(글의 씨)가 그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글씨를 아무렇게나 쓰는것이 창의성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풍조에 대해 못마땅하던 내게는 반가운 이야기. 그리고 배울 과목은 언어 마당에서 우리말, 영어(외국어), 한문. 헤아림 마당에서 수학, 과학, 생명체, 눈여겨보기와 책읽기. 예술 마당에서 음악과 춤, 미술. 삶 마당에서 먹거리 기르기와 먹거리 만들기, 몸 기르기, 손재주 등으로 갈래지어 설명해 놓았다. 각각을 왜,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대해 세세히 적어놓았는데, 그 시선과 깊이가 참 감탄스럽다. 그가 '헤아리다'라고 한 말은 우리가 흔히 '사유'라고 하는 말에 해당되는데, 수학과 과학, 생명체, 눈여겨보기와 책읽기가 왜 사유의 과목인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책에 '판때리다' 즉 판단하다, '고갱이' 즉 '정수', 헤아림 즉 '사유' 등의 순수한 토박이말을 자주 쓰는 것은 우리말이 철학을 다루는 언어가 되지 못하고 문학의 일부에서만 다듬어지고 깊어져 온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그는 '지금이라도 우리말에 품과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말은 언제까지나 깊이 없는 말이 될 것'(91쪽)이라 경고했다. "존재,라는 말 한 마디로 한 권의 철학책이 나오는데, '있음'으로 그러지를 못하는 것"에 대해 저자 만큼이나 독자인 나도 안타까움이 새삼 몰려왔다. 그랬구나.
사실 이 책은 공부에 대한 저자의 실천철학을 드러낸 책이기도 하고, 이양호 저자가 꿈꾸는 '현대식 서당'에 대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그가 왜 앞으로 세울 대안학교에 대해 이처럼 긴 설명을 하는가에 대해, 그를 만나본 사람은 공감한다. 세울 학교에 대한 설명이 곧 철학책이 되고, 공부에 대한 개념을 잡아주는 원론서가 되고, 실제 공부를 할 수 있게 이끄는 방법론이 된다는 것에 대해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듣기 좋은 말 한두 마디로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실천의지가 다 보이면 좋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어불성설. 그는 적어도 자신이 꿈꾸는 학교에 대해 이만큼이나 깊은 생각과 포부와 실천의지를 지닌 사람이다. 이양호 저자를 두 번 보았다. 한번은 저자간담회에서, 또 한번은 두 사람으로 구성된 인터뷰단에 끼어서. 맑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두 번 모두에서 전해졌다. 부드럽지만 꼿꼿한 성정이리라, 여겨졌다. 그래서 믿음이 갔다. 그가 세울 학교에 대해. 적어도 평등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실현될 학교에 대해. 작금의 평등은 경제적 평등, 돈앞의 평등이라는 그의 말은 재삼 확인할 필요 없는 진실이다. 배우고 싶어 하는 모든 이에게 똑같은 금액의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은 불평등이다. 하지만 그게 실천되지 않는 사회다. 그가 그걸 이루어 보겠다고 한다. 어찌 보면 요원할 듯도 한, 그러나 저자는 내년이나 내후년으로 학교 세울 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현실적 어려움이 한두 가지 일까! 그래서 더욱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함께 꿔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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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과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덕과의 위기는 참 자주도 찾아온다. 이번 정권 들어서는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무한경쟁의 교육 분위기와 함께 소위 '미래형 교육과정'이라는 무책임하고 무시무시한 교육과정이 소리 소문 없이 벙커에서 만들어져 나와 우리를 경악케 했다. 확실히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도덕교육은 파시즘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좋은 인성과 생각하는 힘을 갖추는 것은 필요하고 도덕과 교육과정이 그러한 방향을 모색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여전히 옛 교육만 생각하고 덮어놓고 도덕교육을 미워하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다. 아이들의 인성은 점점 황폐해져 가는데 전 교과목에서 인성교육을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역시 전문적으로 그에 대한 고민을 하고 가르치는 교과가 필요하지 않은가. 도덕을 배워서 착해지지 않는다는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러면 어떻게 하면 도덕교육을 통해 착해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얼마전 작은 학술세미나에 갔다가 참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도덕교과와 철학교과가 싸웠던 역사는 어렴풋이 들어 왔다. 그 역사에 있어서 제3자나 다름 없는 내가 지금에 와서 느끼기에는 도덕교과가 철학적 교육과정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밥그릇을 지켜낸 것 같다. 하지만 '윤리와 사상'을 선택해서 배우는 고등학생 뿐만 아니라 초, 중학생도 철학을 쉽게 접할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위의 세미나는 윤리교육과 관련된 분들이 주축이었고, 도덕과 교육과정에 철학적인 내용을 집어넣자던 한 발표자를 일제히 비판하는 그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일선 교사로서나 학생, 학부모들도 분명 철학적 교육과정의 필요를 느끼고 있고 그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교과는 도덕교과인데 여전히 맹목적인 싸움을 하고 있구나 싶어서였다.
이 책은 오랫동안 읽고 싶은 리스트에 담겨 있었다. 생각해보면 제목을 거꾸로 이해했다. '도덕적인 학생이 공부를 잘한다'고. 이 책을 통해 도덕을 배우는 이유에 대한 힌트를 얻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저자는 발도르프를 기반으로 한 학교를 만들고 싶어한다. 이 책에는 그 학교에서 운영하고 싶은 체계적 프로그램이 소개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생각들에서 희망을 보는 것은 이상적 인간상에 따라 명확하고 일관된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교육이 제대로 된 철학 없이 갈팡질팡 흔들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학교를 꿈꾸게 되는 것일테다.
지난 학기말에 예비기독교사아카데미 종강과 함께 대안학교 탐방을 다녀왔다. 산울어린이학교, 이우학교, 수원기독중학교를 보고 왔는데 이 세 학교에서 일관된 분위기와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의 공교육과 차별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특히 대안학교인 이우학교 학생들을 보면서 '공교육의 틀 안에서 혹사당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가치를 추구하며 학생의 개성과 인격, 소질을 존중해주는 다양한 교육과정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공교육은 왜 그렇게 될 수 없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미래 사회의 모습과 교육에 대해 고민하며 지금의 공교육 모습으로는 도태되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고, 살아남는다 해도 효용성도 없이 교육 주체들에게 폭력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요즘 한 줄기 희망이 있다면 공교육 틀 안에서 변화해보자는 혁신학교와 배움의 공동체 운동이다. 어떻게 준비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 책에서 많은 배움을 얻은 것 같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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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은이가 말하고 싶은 거겠죠? 독일에서 발도르프를 3년동안 공부하고 왔다네요 그리고 곡산서당에서도 3년을...
자신이 원하는 지향하는 교육을 위해 정말 열심히인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우선 들어요 그리고 그 주장을 정말 소신껏 펼치는 사람이구나 물론 발도르프에 무척 감동을 받은 사람이구나란 생각도 들구요 발도르프에 대해서는 유아교육과 연관해서 아주 조금 밖에 모르지만 초중등교육까지 연결할 수 있는 것을 보니 저도 더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일단 겉표지 마음에 들어요.. 울 딸내미 그림을 가리키고는 절 쳐다봅니다. 이건 굴렁쇠야 쇠로 된 둥근 것인데 또르르 굴릴 수가 있단다 이렇게 설명하면서 정작 저도 굴려본 적이 없군요 88올림픽 때 제가 8살 이었으니 티비서 본 일 밖에는... 우리 교육은 우리 안에서 나와야 한다는 지은이의 생각이 표지에서부터 묻어나온다고 생각해요 표지는 그 책의 얼굴이잖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지은이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는 면에서 정말 좋네요 그리고 글씨체도 마음에 들고..
안의 내용... 여러 가지 내용들 중에서도 전 수업료와 교육의 평등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우리나라는 돈이 없으면 공부하기 힘들어요 게다가 국제중학교다 이제 2011년이면 고등학교 서열화를 가능하게 하겠다란 발표들... 정말 갑갑합니다. 지금도 강남과 강북의 사교육비가 8배 차이라고요? 그렇다면 정말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저소득층을위한 사교육비는 얼마나 될까요? 그들이 자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자신의 배움욕구를 위해서 투자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요? 이런 면에서 교육 기회에서의 평등은 정말 중요합니다. 독일에서 정말 돈에 대한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정말 부러웠습니다. 전 우리나라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힘들었거든요. 등록금이 워낙 비싸서 아르바이트를 몇 개 씩이나 하면서 중간중간에 휴학을 하면서 학업을 유지했으니까요...
그리고 수업료에 대한 부분.. 수입에 따라 수업료를 차등으로 내야 한다는 말.. 맞는 말이긴 한데.. 솔직히 나라도 그럴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만약 중산층 이상이라면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더 낼까? 그것도 지은이가 말하는 4배 차이로? 그것으로 다른 것을 더 가르치거나 다른 곳에 사용할 수도 있는데? 역시 이것은 우리 사회의 교육에 대한 돈이 곧 권력이고 곧 교육이고 내 경쟁력이다란 생각에 세뇌되어 있어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
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고 정말 이상적인 주장도 있었다. 그리고 외국어, 수과학, 예술 등이 왜 꼭 필요한 교과인지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소신껏 펼쳐나가는 지은이에게 감동을 받았다.
더 감동적이었던것은 책 앞지에 나의 이름을 친필로 써서 보내주셨다는 거
아무튼 경쟁을 위해서만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여지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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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 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 책의 제목을 보고 독특하다라는 생각과 함께 반드시 읽고 싶었습니다. 본 책, 공부를 잘 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첫 편에 나오는 심청전, 심학규에 관한 이야기는 다소 놀라움이었어요. 그저 알고 있던 심청전의 이야기는 효성 지극한 심청이가 공양미 삼백석에 스스로 팔려가 아비의 눈을 뜨게 하였다.. 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는데 심학규가 상징하는 의미, 그 시대상을 반영하던 그의 모습을 꼬집음에, 아! 그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심학규가 눈을 뜬 시점은 심청이가 자신이 부려야 할 종이 아니라 되려 섬겨야 할 황후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서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런지요? 책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중간 나오는 내용처럼 그저 공부를 잘하고 뛰어난 두뇌, 젊음, 자신이 가진 기량만을 뽐내서 성공적인 인간상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바로 알고(앎) 자신이 가졌음을 통하여 섬길 줄 아는 마음을 가지는 것, 그것이 성공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즘 사회는 어떤가요? 경쟁에서 이겨서 살아 남아야만 강자라고 생각하는 현실. 과연 그런가요? 주위를 둘러보면 심심치 않게 이런 말들을 듣게 됩니다.
"우정이 밥 먹여주니? 네가 그 친구보다 더 공부 잘하는 거, 그게 우선인거야." "친구가 다 뭐냐? 공부 잘하는 친구 아니면 만나지 마라. 대학가서 만나도 되는 것이 친구야." "앞만 보고 달려. 일류대만 가면 원하는 거 다 해주마." "음악이고 미술이고~ 도덕.윤리가 다 뭐냐. 국영수과에 집중해."
억지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 모두 공감하는 바이죠? TV 드라마에서 오버스럽게 나오는 연기자의 대사가 아닙니다. 지금 바로 우리의 현실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학생에게 하는 부모나 선생님의 해당되는 것일까요? 저런 말을 들으며 자란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가고 성인이 되면 갑자기 도덕성이 뛰어난 사람이 되겠습니까?
뉴스에서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 강남권의 모 지역 모 민영아파트에서 인근 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어울리지도 말 것이며 임대아파트의 학생들이 민영아파트를 통과해서 학교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트를 쳐놓았다는 것을요. 그 때문에 몇 분이면 도착할 학교를 그 시간의 몇 배나 걸려서야 등하교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비통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어쩌다 우리 사는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말입니다. 부모의 그런 모습을 본 아이들이 자라서 소위 지도계층에 올랐다고 치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부정부패, 뇌물사건, 공금횡령 등등... 앞으로 그런 일들은 더욱 난무하여 되려 뉴스거리가 아닌 일상다반사가 되지 않을까요? 공부만 잘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고 '우리'가 아닌 오직 '나'만 알고 자란 그 아이들이 이끌어 갈 사회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합니다.
요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참 많습니다. 언어, 수학, 과학, 음악, 미술, 체육 등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어디서 저런 재능이 나왔을까 궁금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지요. 많은 학생들이 그 뛰어난 재능만큼 도덕성도 갖추었기를 소망하는 바이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얼마나 될까요?
며칠 전 병원에 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아파트 어귀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서로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 살 배기 제 아들의 주먹(또래 아이들보다는 꽤 큰 주먹입니다.)만한 단단한 돌맹이를 화단에서 꺼내어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혹여 학생들이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낼까, 돌에 맞기라도 할까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고 더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행동은 아주 나쁜 짓이다. 왜 친구에게 서로 돌을 던지는 것이냐 라고 묻자 주춤주춤 얼버무리며 도망을 치더군요. 보아하니 별 이유가 없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나 봅니다. 약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입안이 까끌거리며 씁쓸해 오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신문사이에 끼워져 오는 전단지들의 90% 이상이 학원 홍보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예전같으면 주의 깊게 보았을 터인데 이제 그것들이 우선이 아님을 잘 알기에 접어 둡니다. 이 세상의 아이들이... 그리고 내 아이들이 단순히 공부만 잘하는 사람으로 커 나갈 것이 아니라 바른 사람으로 자라야 겠다는 절실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저자 이양호님은 독일로 가서 더 심도 있는 공부를 하셨더군요. 지금 현 세대의 선생님들의 대부분은 정말 올바른 교육자의 길을 걷고 계실터이지만 간혹 보면 그렇지 못한 분들도 계시니.. 그 분들 또한 어렸을 때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심성으로 자라왔는지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의 바람대로 올바른 교육의 길로 이끄시는 선생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또 그 가르침을 배우고 깨달아 올바른 길을 걷는 아이들, 학생들이 더욱 많아져 결국은 바른 사회가 세워지는 데 흔들림 없는 반석이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느 분야의 공부를 잘 하든 도덕성과 바른 윤리를 그 밑바탕에 두고 공부해서 '남 주는' 그런 유익한 사람이 되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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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빌라 단지 내에 중고등학생들이 실내화로도 외출용으로도 애용하는 삼선 슬리퍼 한 짝이 접착 면이 완전히 떨어져 초라한 모습으로 버려져 있었다. 얼른 주위를 돌아보니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하얀 양말을 신은 채로 땅을 밟고 걸어가는데 10여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내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아니, 지가 신고 다니던 신발인데 못 신게 됐다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에 버려둬도 되는 거야? 저 녀석을 당장 불러 호통을 칠까? 아니지, 요즘 청소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얼라하고 싸움이라도 붙으면 동네 창피하지.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게? 혹시 앙심 품고 우리 딸한테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해? 그나저나 뉘 집 아들이야? 저쪽 통로에 중고생 남학생이라면 둘 밖에 없는데. 혹시? 그럼 학생 엄마한테 얘기를 해줘야 해, 말아야 해? 에고... 재활용 쓰레기장 꼴을 좀 보라지. 어른들의 행태가 그러니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 나나 잘하자!’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학생의 모습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이젠 또 다른 고민에 휩싸였다. 버리고 간 아이는 그렇다 치고, 못 볼 꼴을 본 나는 버려진 슬리퍼를 그 자리에 그냥 둬야 할까, 아니면 쓰레기장에 갖다 버려야 할까 하는. 결국 나라도 잘하자는 결심을 했으니 치우기는 치우는데 도저히 손으로 만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겨 발로 차 가면서 쓰레기장에 버렸다. 쓸모가 없어진 슬리퍼를 버리고 간 학생을 비롯해 100여 가구가 채 안 되는 우리 빌라에는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인 아이들부터 온갖 학원을 다니며 성적을 올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어 심하게는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도 있어 맘이 짠하다. 이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람다운 사람은 몇 없겠구나 싶은 생각에 씁쓸한 생각도 많이 든다. 왜냐하면 교과서에 든 내용만 깊이 파고들 뿐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는 관심을 쏟을 여유도 생각도 못하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될 만큼 문제 많은 요즘 아이들의 행태에 소름 끼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기에 교육에서 진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현직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들이 좀 깨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가득하다. 교육에 대한 안타까움만 가득한 이때에 만난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이란 책은 제목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공부든 도덕이든 교육을 통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데, 공부 잘하는 아이치고 성품 좋은 아이 없고 오히려 공부에 목매지 않는 아이들 성품이 좋다는 인식이 너무 강한(실제로 주변을 돌아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스스로 사고하고 느끼는 행위를 통해 도덕성과 자유에 이르는 것을 내세운 발도르프 교육을 정식으로 받고도 발도르프를 그대로 베낀 교육을 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도 ‘이때,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이 삶’이 빠지면 결코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교육을 함에 앞서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구체적으로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 교육이 뿌리를 단단히 내리지 못함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정권만 바뀌어도, 누가 어떤 주장을 했는가에 따라서 수시로 바뀌는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나 교육 현장을 보면 충분한 공감이 간다. 때문에 저자는 우리 조상의 얼굴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찾는다. 살아온 삶이 녹아 떳떳하고 당당함과 모지락스럽지 않은 곱게 늙음이 어우러진 얼굴 말이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이 빼어남만 강조하고 곱게 늙을 수 없는 비인간적 행태가 판치는 현실이기에 통탄한다. 이러한 현실을 뛰어넘어 이상적 인간상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 교육이 담당해야 할 몫이 바로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모든 교과가 도덕교육과 관련을 갖고 있음을 새롭게 인식하고 수없이 많은 길로 통할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의 눈을 갖게 하는 것 말이다. 우리말과 외국어, 한문, 수학, 과학, 음악, 미술, 책읽기 등 다양한 교육의 장에서 우리의 삶과 연결되는 수많은 갈래를 인지하고 이들이 모여 하나의 독립된 인간을 만드는 것에 우리의 촉수를 집중한다면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이 요원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때, 이 땅에서 교육 받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며 도덕적 인간상에 이르는 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교육자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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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발도르프와 한의학이 만난 학교 1 )
많은 내용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늘 경쟁속에 내몰리는 우리 아이들의 제도권 교육 중 많은 부분 갈등과 번민에 빠지곤 하기 때문이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매번 현실에 타협하면서 적당히 중간의 위치를 그럭 저적 버티는 것이 최선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곤 하지만, 경쟁이라는 힘겨루기에서 늘 힘들어 하는 아이들의 일상은 수시로 나를 흔들리게 한다. 늘 마음뿐이고 실천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책을 쓰신 저자 부부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읽어나가는 과정은 너무도 존경스러운 분들과의 만남이었다.
부부가 함께 새로운 교육에 뜻을 품고 오랜 교육자의 길을 접고 '발도르프사범대학교'에 공부를 위한 이유로 독일을 향한다. 그리고 2007년 귀국과 함께 이 책의 제목이자 두 분의 교육 이념을 그대로 담은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강에 이르는 학교' 의 설립을 위해 노력 중이다. 그저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사람만이 성공한 사람이자, 우등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지금의 교육에 대해 조목 조목 참 교육의 의미를 얘기하고 있는 이 책은,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 너무도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갈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늘 현실의 교육에 아쉬움이 남고, 지쳐가는 아이를 볼 때마다 아니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방송이나 책을 통해 여러 대안학교의 행복한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선뜻 행동하지 못하는 용기없는 부모였다. 그런 내게 저자는 지금의 우리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 대해, 참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온 나라가 오로지 '빼어난 젊은이'를 만드는 데에 넋을 빼놓고 있는 듯합니다. 옛날에 걸었던 길과는 완전히 반대쪽으로 가는 길 위에 선 것이지요. ... '빼어난 젊음' 만이 판치는 곳은 겉보기에는 아름다워도 속을 잘 뜯어보면 비인간적인 것들이 여기저기서 돋아나 재앙을 가져온다는 걸, 그 옛날에 그리스 시인들이 목이 쉬어라 경고했건만, 우리는 그런 말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 본문 44 쪽 )
머리에 한 가지라도 더 암기해서 실력을 겨루고 그 능력이 우등한 능력으로 보는 '지식교육'이 참다운 교육의 본질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 최근에 '필란드의 부모혁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많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등생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 아니라, 열등생이 없게 하는 교육. 우등생보다 열등생에게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하는 교육, 절대 시험이라는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교육의 모습 등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의 교육이 조금씩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왜 이런 제도가 국가적으로 불가능한가 아쉽기만 했었다.
바로 내가 의문을 품고, 아쉬워하던 많은 문제들이 저자의 생각을 담은 이 책 속에 모두 있다. 저자가 이후에 가르치고자 하는 학교의 교육 마당을 한 가지씩 읽어가는 과정은 어떤 부모라도 희망하는 그런 학교의 모습이었다. 독일에 대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내용을 읽는 시간은 천국의 이야기를 듣는 마음이었다. 나 역시 최소한 교육만큼이라도 빈부의 격차에 의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 외국인에게까지 공짜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는 그들의 제도들이 부럽기만 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진정한 교육의 의미에 대해 행동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말 더 늦지 않기를.
'우리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을 일찌감치 경쟁의 마당에 내놓고, 거기서 쓰러지지 않도록 옛날 로마가 검투사를 만들어내듯 그렇게 학생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 본문 206 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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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이라는 제목이 나를 붙잡았던 것은 제목 자체가 주는 울림 때문이었다. 사실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른다는 것은 지금의 현실에서 볼 때는 공허한 소리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되었다. 이 글은 저자가 세우려고 하는 학교의 교육철학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책이었다. 그가 꿈꾸는 학교에 관한 모든 것이 이 안에 들어있었다. 출발점부터 시작해서 그가 고민하는 것들, 그리고 그가 꿈꾸는 교육에 관한 것들이 말이다. 왜 자신이 학교를 세우고자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바른 교육을 이끌고자 하는 열의가 느껴진다. 그리고 다섯 시 키움터에서 펼쳐질 공부에 관해 말하는 부분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보여진다. 이분의 교육철학을 보여주는 한 부분을 인용한다면 다음과 같다. " 저희들이 새롭게 판 샘에서 솟아난 물이 학생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 학생마다에 심겨져 있는 곱고 빼어나고 거룩한 씨앗을 싹 틔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그들이 자신의 씨앗들을 잘 키워 열매를 맺고 잘 여문 씨앗을 남겨서 그들을 "빼어나되 고운 선비'라고 사람들이 불러주는 데까지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p50) 학생마다 심겨져있는 곱고 빼어나고 거룩한 씨앗을 싹 튀워야 한다는 말에서 정말 공감되는 것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숨겨져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신다는 것과 그 아이들 저마다의 특성에 따른 물 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열매를 잘 맺도록 하는 것, 빼어나지만 고운 사람이 되는 것, 이 부분은 정말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더불어 저자가 말하는 새로운 학교에서의 공부 방식도 읽으면서 정말 공감이 갔다. 우리말에 대한 부분에서는 우리가 너무나 많은 낱말을 중국과 일본에서 빌려다 쓰고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 그래서그런가, 이분의 글에서는 은 정말 조심스럽게 우리말을 사용하시고, 한 문장 한 문장 세심하게 고민하신 흔적이 보인다. 또한 외국어를 왜 배워야 하는가에서 다른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언어 속에 들어있는 보편 정신과 언어를 통해 다른 언어를 만나기 쉽게 하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요즘 대세가 영어인지라 쏟아지는 영어 이야기로 인해 잠시 나도 중심을 잡지 못했던 것 같다. 실용 영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를 언어로 대하고, 언어 속에 녹아있는 것들을 아이들이 접하게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인데 말이다. 또한 한문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첫째, 한문의 마력으로부터 우리말을 풀려나게 하기 위해서이고, 또 한문의 길을 통해서 우리 옛분들을 만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고전독서교육을 큰 틀로 하고 싶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는데, 나도 고전을 접하면서 새삼 한문을 잘 알고 싶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어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옛 우리 문학에 녹아있는 고고한 정신과 아름다운 정서들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한문 공부는 필요하다! 수학과 과학을 어떻게 공부하게 할 것인가를 말하는 부분에서 중간중간 예시로 보여주는 독일의 발도로프 교육 방법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특히 수학 과목 본연의 즐거우을 탐색하게 하고, 또 그를 통해 통합적인 학습으로 나아가는 부분은 배워야 하는 점이었다. 나도 늘 이 부분이 안타까웠다. 원리를 통해 펼쳐지는 신기한 수의 세계에 대해 재미있게 풀어가며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 위주로, 계산 위주로 풀어가는 재미없는 수학이 너무 안타까워서였다. 수학을 해야하는 이유는 수학을 통한 혼의 전환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감각적인 것만을 바라보고 있던 혼이 정신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으로 눈길을 돌릴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과학 공부를 해야 하는 까닭은 과학을 통해 올바른 정신적 습관을 기르게 하고, 또 사실을 존중하는 마음을 배우게 하고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는데, 이 부분은 글을 인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과학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있음새, 즉 그것들이 뿔뿔이 있지 않고 이리저리 엮여 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똑같은 원리와 법칙에 따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고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입니다. 물리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 놀라움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세상에 있는 것은 같은 바탕 위에 있되 제 색깔 제 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제 색깔 제 꼴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 다른 색깔과 버무려 새로운 색과 새로운 꼴을 이루어냄을 화학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리가 같음을 말한다면 화학은 다름을 말합니다.그래서 우리는 물리를 통해 모든 존재의 평등함을 배우고, 화학에서는 각각의 것들이 제 색깔을 가진 개성적 존재임을 배울 수 있읍니다."(p122-123) 그외로 예술마당과 삶 마당에서는 체육 수업이나 음악, 미술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먹거리를 기르고 만들고 몸을 기르고 손 재주를 기르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특히 자신이 쓸 책상을 본인이 만들게 한다는 것은 인상적이었고,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되었다. 그외 기숙학교나 수업료나 시험 부분에서 제안하신 것들은 어찌보면 조금은 파격적인 부분이기도 하지만 설명을 읽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상이 높기에 이런 이상을 따라올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시작이 중요한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현실이 녹녹하진 않을 지라도, 이 땅에서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이제 조금씩 그 이야기들이 퍼지고 퍼져서 좋은 땅을 일구지 않을까 그것이 이 책을 읽은 나의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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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당생활을 마치고 돈을 벌기 위해 학원 강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새 학교를 세워 공부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교육 방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독일에서 발도르프학교 교육을 제대로 배워오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1년 정도 공부할 생각이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배울것이 많다는 생각이 깊어져 결국엔 졸업까지 하게 됩니다.
많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으로 많지만, 새 문화를 일구어낼 일꾼을 기르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가르침이 있어야 할 것이고 또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뛰어난 옛분들 거의가 가학이 있었던 걸로 봐서, 어린 시절의 공부는 무척 중요합니다. 모든 교과목이 '다섯 씨'를 길러야겠지만, 특히 책읽기와 한문은 말씨와 글씨를, 미술과 손재주는 솜씨를, 몸기르기는 맵씨를 그리고 모든 교과목이 마음씨를 길러야 할 것입니다.
외국어를 배워야 할 까닭을 밝히기 위해서는 모국어와 견주어보았을 때 드러나는 외국어의 성격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피히테는 "인간이 언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다른다면 외국어는 내 쪽에서 보았을 때 가장 낯설고 먼 사람을, 내 안에 길러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나와는 전혀 다르고 낯선 사람을 내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까닭은, 어느덧 굳어져 딱딱해져 버린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풀고 더욱 더 보편적인 정신 속으로 들어가자는 데 있습니다. 나를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는 데에 낯선 외국어 공부가 아주 좋은 길이라는 점, 그 언어 속에 들어있는 보편정신 그리고 그 언어를 통해 다른 언어를 만나기가 쉽다는 점이 영어를 공부하는 까닭입니다. 어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같은 낱말, 같은 표현, 같은 문법을 거듭거듭 만나는 게 중요합니다. 이 말이 맞는다면,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가지 보는 게 어학공부의 기름길인 것도 또렷해집니다. 책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억지로 반복하려 하지 않더라도 낱말, 표현법, 말하는 방식이 계속 반복될 테니까요. 많은 분들이 영어연수를 위해 자녀들을 외국에 보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두세 해 이상 외국에서 지낸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그 학생이 한국을 떠났던 적이 있었음을 저자는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언어감각과 사고력이 떨어지기 때문인데, 외국에서 지낸 동안 새로운 어휘를 익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휘가 모자란다는 게 심각한 일인 줄을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잘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국어문제집 두 세권 풀면 어휘력과 사고력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더라도 시험에서 틀릴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고등학교 수학능력시험도 문제집만 풀면 점수가 잘 나오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고력과 언어감각이 뛰어나야 수학능력시험을 잘 치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언어영역은 물론이고 사회탐구, 과학탐구 심지어는 영어조차도 그렇습니다. 이러니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인성과 학습능력을 두루 돌보는 것이라는 데 우리 모두 맞장구를 칠 것입니다. 문제는 여러 해 동안 차근차근 잘 할 수 있느냐입니다.
학생의 실력과 인성을 기르는 데 큰 밑돌이 될 '고전독서교육'은 한국어 독서, 영어 독서에 한문 독서까지 힘을 보태, 완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알찬 열매를 맺으리라 생각합니다. <본문 p.92 일부 발췌>
어떤 가르침이 되었건 보통 사람들을 위한 길을 걸어야 하는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책읽기와 눈여겨보기를 통해 헤아리기와 캐묻는 힘을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읽은 책을 얼마나 잘 소화했는가뿐만 아니라 얼마나 맣은 양의 책을 읽었는가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이기에, 학생들은 많은 책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변증법에 '양이 쌓이면 질적으로도 영 다른 것에 이른다'는 양질전환 법칙이 있는데, 얼음에 열이 가해지면 물이 되고 또 그 물에 열을 더하고 더하면 수증기가 된다든가, 숯을 엄청난 힘으로 누르고 누르면 다이아몬드로 바뀐다는 것을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양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건성으로 대충 읽어도 된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고전독서교육은 교양이나 도덕성을 높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지적 능력이 전반적으로 올라가서, 논술은 물론이고 수학능력시험도 잘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학원 강사생활을 겪어보면서 저자가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다. 책읽기의 힘이 언어영역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탐구는 물론이고 영어, 심지어는 과학탐구까지 미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 반에서 10등 하다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전교 1등으로 올라선 가장 큰 바탕은 수많은 책을 읽은 것이 중학교 때 뒷심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책읽기를 팽개치고 논술쓰기에 많은 품을 들인다거나 문제풀이에 매달리는 것이 얼마나 잘못든 길인지도 깨달을 것입니다.
* 핀란드 교육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 첫째, 질 높은 교사들인데 그들은 모두 핀란드의 교육 철학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둘째, 교육 현장에 부여된 자율권이다. 셋째, 아이들에 대한 기대 수준을 끌어올려 개개인에게 자신과의 경쟁을 유도해 성취도를 높인다.
경쟁의식을 갖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남과의 경쟁을 통해 자기도 발전하기 때문이다. 경쟁의식을 가짐으로써 노력해야 할 목표의 초점이 보다 선명해지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경쟁의식이 좋은 결과를 나타내는 경우는 비교적 적다. 대부분의 경우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갖고 있는 정신 에너지 중 창조에 쓰이는 부분의 비율이 경쟁의식으로 인해 질투로 변형됨으로써 상당히 낮아지기 때문이다. 질투심 때문에 정신 에너지가 마멸되고 판단력이 흐려지며 결과적으로 자기가 겨냥하는 목표의 초첨을 잃어버리게 된다. <본문 p.208~209 일부 발췌>
핀란드는 시험이라는 게 아예 없는데도 국가경쟁력이 일등인 것을 보면, 시험이 학습능력을 키우는 바른 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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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 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은 우리가 알고 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떤 것이 진짜 공부인가?
공부가 나를 위한 것인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가?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가?
과목별로 공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부를 잘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정말 재미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어떤 태도로 가르쳐야 하는가? 등이다.
정말 교육에 관심이 많은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책이다. |